최근 수정 시각 : 2019-07-06 10:57:07

아나톨리아

소아시아에서 넘어옴
1. 개요2. 역사
2.1. 고대2.2. 중세2.3. 근세2.4. 근현대
3. 그리스와 아나톨리아4. 대중매체의 아나톨리아

1. 개요

파일:Anatolia.jpg

고대 그리스에서 아시아라고 불렀던 지방으로서, 오늘날의 터키 영토에 속하는 반도이다.

과거에 아시아는 소아시아(Asia Minor, Μικρά Ασία)를 지칭하는 말이었고, 소아시아는 현재의 터키 영토 중 토로스 산맥과 폰투스 산맥 서쪽의 반도, 그중에서도 에게 해와 인접한 지역 만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아시아의 의미가 점점 넓어져서 유라시아에서 유럽만 뺀 나머지 지역을 다 지칭하는 말로 바뀌어 버렸다.

세계사 교과서 등에서는 소아시아(小ASIA - Μίκρα ασία)라고 나오는 반도 지역이다. 과거에는 아나톨리아 전체를 아시아라고 불렀으나, 로마 제국 시기에 아나톨리아 반도 서부 지역에 아시아 속주가 설치되면서 아나톨리아와 아시아가 구분되기 시작한다. 참고로 '아나톨리아'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동쪽'을 의미하는 Ανατολή(아나톨리)에서 비롯되었다. 북쪽에는 흑해, 서쪽에는 에게 해마르마라 해, 남쪽에는 지중해와 접하고 있다.

전통적인 범위의 '아나톨리아'가 가리키는 지역은 위 지도에서 테두리로 표시한 지역으로 그 동쪽의 산이 많은 지역은 전통적인 범위의 아나톨리아가 아닌 아르메니아 고원, 즉 아르메니아쿠르디스탄이나 20세기 초반의 대학살 이후 그리스-터키 전쟁으로 새로 성립된 터키 공화국은 아르메니아와 쿠르디스탄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의도적으로 아나톨리아의 범위를 동쪽으로 확장시켜 동아나톨리아라는 이름으로 아나톨리아의 일부로 편입시켰다. 또한 남쪽의 안티오크 지역도 전통적으로는 시리아 영역에 속한 곳이었지만 터키인이 지역 인구의 다수를 차지해 터키 영토가 되었다. 때문에 오늘날 아나톨리아는 터키의 영토 중 다르다넬스 해협과 보스포러스 해협 서쪽의 유럽 영토를 제외한 나머지 전체를 가리킨다.

지중해 인근에서도 손꼽히는 풍요로운 지역으로, 이 지역은 꽤 오랜 기간부터 문명이 꽃피운 곳임에도 아직까지 생산력이 창창하다. 동로마 제국은 이 지역을 기반으로 천 년 세월을 버텨냈고 현대 터키도 여기 덕분에 식량 자급자족이 가능한 몇 안 되는 국가일 정도이다. 아나톨리아와 비슷하게 고대 문명의 발상지였던 메소포타미아 지방이나 이집트 및 북아프리카 지대는 과거엔 비옥한 토지를 바탕으로 우수한 생산력을 뽐냈으나, 계속되는 농경 활동에 현재는 지력이 고갈되어 사막화가 진행되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실로 엄청난 지력.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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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sia_Minor_in_the_Greco-Roman_period_-_general_map_-_regions_and_main_settlements.jpg
아나톨리아의 고대 지명

2.1. 고대

한반도의 약 3.5배 정도 되는 드넓은 영토에 오래전부터 식량이 풍부하게 생산되었고, 그리스, 페르시아, 러시아를 잇는 초원무역로와 비단길이 지나가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땅으로 여러 문명이 흥망했으며, 철기시대를 연 히타이트 제국이 이 지역의 중심부에 위치했다. 고대로부터 중요한 지역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인 차탈회윅(Çatalhöyük)이 이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아브라함이 야훼의 명령을 받기 전에 살던 땅은 이곳의 동남부에 위치한 하란(Harran)이었다. 이곳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모두의 성지로 사이좋게 교회와 모스크가 들어서 있다.

히타이트 제국이 멸망한 뒤에는 아시리아, 리디아, 메디아 등의 뒤를 이어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제국이 차지했다. 알렉산드로스 3세 이후에는 헬레니즘 국가들이 이곳에 위치하였으며, 페르가몬 왕국 등이 유명하다. 헬레니즘 시대에 들어서면서 에게 해 연안 일대에서만 거주하던 그리스계 주민들이 동쪽으로 대거 진출해 원주민들을 그리스계로 동화하면서 로마가 아나톨리아를 정복할 때쯤 되면 아나톨리아 전체가 그리스 문화권의 일부로 편입된 상태가 되었다.

2.2. 중세

헬레니즘 시대 이후에는 로마 제국에 정복되어 동방 속주가 되었다. 동/서 로마 분단 이후 동로마 제국 시대에 아나톨리아 지방은 제국의 인적/물적 중심지가 되었다. 7세기경 제국의 알짜배기 영토였던 시리아와 이집트를 이슬람 세력에게 상실한 후에도 아나톨리아를 건사한 덕분에 제국은 완전한 몰락을 피할 수 있었고 수세기에 걸쳐서 제국군의 기반이 된 테마 제도가 처음 실시된 곳이 바로 아나톨리아 일대였다. 또한 9세기 중반부터 시작되는 제국의 반격 시에는 제국의 경제적/군사적 기반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어 제국이 일시 단절되고 라틴 제국이 들어섰을 때, 아나톨리아를 중심으로 삼은 니케아 제국이 일어나 제국을 부흥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만지케르트 전투 이후 아나톨리아 내륙을 투르크 계열 국가들에게 빼앗긴 뒤로 제국은 계속 내리막길을 걸었다.

동로마가 아나톨리아 수복에 썩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이유 중 하나로 아나톨리아 지역에서 반란이 자주 발생했던 점이 있다. 아나톨리아를 기반으로 한 군사 귀족들은 유사시엔 이슬람 세력을 막아주는 기반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콘스탄티노플의 중앙정부에게 사사건건 반발하는 역적 무리이기도 했기 때문. 때문에 오히려 성지인 안티오키아의 수복에 관심을 두었는데, 군사 요충지인 아나톨리아 없이 그게 될 리가 없다. 또한 경제적인 측면에서 아나톨리아 지방의 상실이 제국에 큰 타격이 아니었던 점도 있다. 아나톨리아의 인구와 농업 생산력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곳은 튀르크족이 눌러붙은 내륙이 아닌 서부지역 및 해안지역이었기 때문인데, 실제로 만지케르트 이후의 콤네노스 왕조 시기에 오히려 제국의 경제력은 절정에 달했다.

다만 이러한 인식이 얼마나 정확한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의 여지가 있다. 만지케르트 전투의 패배로 아나톨리아를 상실한 이후, 그 탈환이 중요한 과제로 다뤄진 시기는 소위 콤네노스 의 제위 기간인 1081년~1180년의 100년인데[1] 이 시기 동로마 제국은 분명 국력, 경제력, 문화적 역량 모두 유럽-지중해-근동의 최강국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는 강대국이기는 하였으나, 군사적 측면에서는 그렇게까지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음을 감안해야 한다.

아나톨리아 내륙에 자리잡은 셀주크계 룸 술탄국을 보더라도 (대체로 동로마 제국이 국력면에서 우세한 입장이기는 하였으나) 간단하게 제압할 정도로 만만한 적수는 아니었고, 동로마 제국의 역사 내내 제국을 괴롭혔던 양면 전선 문제는 이 당시에도 여전했다. 즉, 제국의 서방과 북방을 위협하는 노르만족이나 헝가리, 페체네그족 등을 일단 제압해 놓지 못하면 동방의 대 이슬람 전선에 총력을 기울일 수 없었던 것. 이런 상황에서 독자적으로 이슬람 세력을 상대하기는 어려운 나머지 성지 탈환을 위한 십자군을 명분삼아 서유럽 세력까지 끌어들여야 했던 것이 당시 동로마 제국의 입장이었다. 문제는 이렇게 등장한 십자군 세력에게 있어서 아나톨리아 내륙은 중근동의 대도시이자(막대한 전리품) 5대 총대주교좌 도시(예루살렘 뿐 아니라 여기도 성지)라는 강력한 유인을 가진 안티오키아에 비해 전혀 매력적인 목표가 아니었고, 따라서 동로마 제국이 '자국의 안정과 국방력 확보를 위해' 아나톨리아 내륙의 수복을 우선시하는 입장을 취했다면 십자군으로서는 그에 협력할 이유가 크지 않았던 것이다.

알렉시오스 1세의 치세 초기, 극도로 위태로워진 제국의 회복에 총력을 기울여야 했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일단 경제의 중심지인 아나톨리아 해안지역 수복을 우선시하고, 서유럽 세력의 협력을 얻어낼 수 있는 안티오키아 수복을 그 다음 목표로 삼았다는 것이 납득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콤네노스 황제들이 아나톨리아 수복에 완전히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다. 마누엘 1세 치세 말기의 미리오케팔론 전투에 이르기까지, (그 노력이 충분했는가, 즉, 군사적 요충지인 아나톨리아 내륙의 수복의 가치에 걸맞게 우선시했는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겠으나) 아나톨리아 수복 자체에는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왔음을 생각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즉, 아나톨리아의 내륙 상실 이후 제국이 탈환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기보다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못 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2.3. 근세

로마 제국이 물러난 자리에는 각종 투르크계 군소 세력이 난립하다가 오스만 제국이 이 지역을 통일했다. 문서 참조.

2.4. 근현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터키가 패배하자 그리스 왕국에서 스미르나를 확장기지 삼아서 아나톨리아 서부를 고토회복하고자 침공하였다가 터키 독립전쟁에서 패해 현재는 터키 공화국의 영토이다. 터키어로는 그리스어의 '아나톨리아'를 음차해 아나돌루(Anadolu)라고 부른다.

3. 그리스와 아나톨리아

현재는 그리스인들이 발칸 반도 남부 끝자락서 주로 분포하고 있지만 소아시아 일대는 고대부터 그리스인의 활동무대였으므로 아나톨리아에도 20세기 초반까지 그리스인들이 많이 거주했다. 1923년 종교를 기준으로 민족분류를 한 뒤 실행된 그리스-터키 인구 교환 당시 이스탄불 인구의 3분의 1이 그리스계였고 그 이전에는 더 많았다. 소아시아 서부 연안과 흑해 연안에는 전통적으로 그리스인들이 많이 살았다. 한편으로 카파도키아 지역의 일부 그리스인은 중세 이후부터 터키어를 사용하였다.

이슬람교를 믿는 투르크 정복 후 기독교도들은 세금의 일종인 지즈야를 내게 되었는데, 이것이 당장의 생활이 힘들 만큼 과중하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부담이 되었기 때문에 17세기에 이르러 카파도키아의 정교도(그리스인)들은 차츰 이슬람교로 개종하였다. 기독교도들의 영향력이 비교적 강했던 시노페와 트라브존 등의 폰토스 지역도 18세기 이후부터 기독교도 비율이 점점 줄어들었고 이슬람으로 개종한 사람들은 대부분 터키인에 동화된다.

그리스와 터키 사이의 반목, 20세기 그리스-터키 전쟁 시기 그리스인들은 소아시아에서 이즈미르와 트라브존 시노페, 에게해 제도, 카스타모누, 삼순같은 몇몇 해안지역들에 분리된 채 남아있었으며 이것마저도 전쟁 후 터키 독립전쟁에서 그리스가 패배하고 1923년 그리스-터키 인구 교환으로 150만 명의 그리스인들이 터키에서 추방됨으로써 그리스로 넘어간 에게 해 지역을 뺀 나머지는 완전히 사멸하게 된다.[2] 아나톨리아에서 그리스인 비율은 극소수로 떨어지게 됐다. 이 때 추방된 그리스인들은 아테네 인근과 마케도니아 지방에 주로 정착하여, 그들의 원래 살던 지명을 따서 새 정착촌을 세웠다.

그리스와 터키간 인구 교환이 종교에 따라 진행됐기 때문에 이슬람교를 믿는 그리스인들은 터키인으로 분류되어 여전히 터키에 남았다. 한편 1923년 인구교환 때 그리스에서 터키로 이주해온 이슬람교도들도 있다.

4. 대중매체의 아나톨리아

묘하게 엄청난 곳이다.

[1] 만지케르트 전투 이전에는 아나톨리아를 잃지 않았으니 수복할 필요가 없었고, 마누엘 1세 사후 알렉시오스 2세안드로니코스 1세의 제위기간 및 앙겔로스 왕조 치세에는 국정의 혼란으로 고토 수복을 이야기할 상황이 아니었으며, 그나마 1204년 제4차 십자군에게 수도를 빼앗기고 나서는 영토 탈환은커녕 안 망하는 게 용한 처지가 되었다.[2] 이스탄불과 부근 섬들은 예외였으나 마찬가지로 터키인들의 탄압으로 사실상 거의 다 쫓겨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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