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김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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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 | 평가 | ||
비판과 논란 | 비판 및 논란 ("후보는 연기만 좀 해달라" 발언 논란) | ||
가족 | 할아버지 김병로 · 아버지 김재열 · 매형 박봉환 | ||
관련 단체 | 새누리당 · 더불어민주당 · 미래통합당 · 국민의힘 · 개혁신당 |
1. 성격
장점도 소신과 고집, 단점도 소신과 고집- 아주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다. 고집이 강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고, 자신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으면 서슴없이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고. 출처
- 자신의 목소리를 소신 있게 내는 건 좋지만, 반대 의견이 나오면 그것을 무시하거나 사퇴를 거론하는 부분은 양날의 검이다. 그런 모습이 강직하고 소신있는 모습으로 비춰지는 경우도 있으나, 때론 '벼랑 끝 전술'을 쓰는 고집불통으로 비춰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경제 정책인 경제민주화를 관철하기 위해 앞뒤 가리지 않는 성격이라는 비판이 있다.또 스스로 이미 판단한 부분에 대해서는 타협시도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즉,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거나, 집단 내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반발을 어루만지며 무난한 결론을 이끌어 내는 재주는 없다는 뜻이다. 그저 '전권'을 위임받아 독선적으로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을 현실화 할 줄 아는 전형적인 고위 관료 스타일이라는 비판이 있다. 출처 즉 일생을 경제민주화에 올인한 사람이지만 정작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있는 정치관의 소유자. 시어도어 루스벨트식 경제체제를 신봉하지만 정작 그 방식은 전형적인 엘리트주의라는 것도 모순적인 행보이다.
- ‘소신’하면 김종인 의원도 만만치 않다. 그는 정치권에서도 정당을 초월한 소신있는 언행으로 유명하며 당을 초월한 의원들의 모임인 ‘조화로운 사회를 위한 모임’을 이끌고 있다. 출처
- 새누리당에는 대선 때 김 위원장의 공(功)을 인정하면서도 "그와 함께 일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당시 김 위원장과 일했던 한 관계자는 "김 위원장은 자리를 맡으면 전권 행사를 요구하는 스타일이어서 기존 조직과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사퇴 카드 등을 던져 불협화음을 일으켰다"고 했다. 출처
- 광주광역시를 찾은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가장 먼저 한 일도 5ㆍ18 유족회 등 관련 단체를 만나 자신의 국보위 이력을 사과하는 것이었다. 갑작스런 김 위원장의 행동에 기자들은 물론 의원들까지 모두 놀랐다. 평소 ‘독불장군’이라고 불릴 정도로 자신의 고집을 쉽게 꺾지 않는 성격의 그였기 때문이다. 출처
- 고집불통이란 별명을 얻으면서도 정말로 고집스럽게 반(反)재벌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걸로 잘 알려져 있다. 직선적인 성격에 원리원칙주의자로 노태우 정권에서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일하던 시절에는 노태우 대통령의 친인척과 마찰을 빚기도 했고 정권 말기 당시 노 대통령이 추진하던 이동통신 사업에 대해서는 '국민의 의혹을 살 수 있으니 진행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출처
- 정치인 김종인의 행보는 다소 어지러워 보였어도, 경제민주화를 신봉하는 경제학자 김종인의 행보는 30여 년 동안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는 적어도 경제학적 일관성면에서만큼은 자신이 가진 철학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출처
- 비례대표 4번 동안 법률안 발의가 0편이었다고 한다. 출처 의원 활동을 무려 4번이나 역임했는데, 소위 '경제민주화의 상징'이라면서 이에 대한 경제 법안 발의가 하나도 없는 것은 정말 의아한 일. 80년대 군사독재 시절 국회의원은 시절이 시절이라 국회의원이 명목상이었다 치더라도 하더도, 2004년 새천년민주당 시절 비례대표 당시에도 법안 발의가 없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이에 대해서는 당시에 새천년민주당에서 부대표 직함을 주며 우대하였는데, 본인의 요구 사항이 대표나 당론으로 통하지 않자, 부대표임에도 그 직도 내놓지 않고 당무도 거부하고 당사에 나오지 않았다는 설이 있다. 출처
- 정리하자면 시대적 흐름에 맞는 아젠다를 세팅하는 능력이 있고 전권을 가지고 - 100% 가지고 있어야 한다 - 있는 경우 조직을 이끄는 능력 또한 있다. 나이까지 감안하면 꽤나 유연하고 본인 판단에 합리적인 주장이라 생각하면 들이받아도 그 주장 받아준다는 점도 장점이다. 미디어와 매우 친화적인 사람이라 전언정치로 권력을 획득함에 상당히 능하다. 이게 바로 김종인이 이른바 킹메이커라고 불리는 이유.
2. 경제민주화
김종인을 한 마디로 상징하는 단어.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김종인 著)1964년 독일 뮌스터대학으로 건너가 경제학 석박사학위를 딴 뒤 독일 정치계, 학계와 두루 교류해온 독일통답게, 그가 지향하는 경제모델은 '독일식 사회적 시장경제 모델'이다. 이는 노동유연성 강화 등 시장경제의 틀을 인정하면서도 양극화 해소를 위해 사회안전망 확충과 소득 재분배, 대기업의 독점 규제 등을 위해 국가가 적극적인 역할을 펼쳐야 한다는 점이 골자다.
그가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이끌어온 중도보수 성향의 기민련이다. 기민련이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깨닫고 정책 수정을 했듯, 국민의힘도 성장주의, 민영화, 감세 등 보수 진영이 강조해온 가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게 김종인의 지론이다.
변양균에 따르면 80년대 신군부에 노동자 경영참가제 시행을 요구했다고 한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5/0003252206}
2000년대 이후 경제민주화의 아이콘처럼 등극했지만, 사실 과거 군사정권에서 일하면서 현재 진보진영에서 경제민주화의 핵심이라고 여기는 토지공개념, 재벌개혁, 금융실명제를 모두 무산시킨 장본인이다. 6월항쟁 직후 당선된 노태우 정부는 조순 부총리-문희갑 경제수석의 경제팀을 기용해서 토지공개념, 금융실명제, 재벌 순환출자 규제 같은 과감한 경제개혁 정책을 시도했는데, 1990년 후임으로 들어온 김종인이 이 정책들을 모두 어설픈 이상론이라면서 맹렬하게 비판하였다. 이미 법안까지 통과된 토지공개념은 시행령과 세부규정을 건드려서 사실상 무력화[1]시켰고, 노태우의 대선공약이었던 금융실명제에 대해서 "이거 하면 자금 해외도피로 나라망한다"는 재벌쪽 논리로 맹렬하게 반대해서 무기연기시켰다. 또한 순환출자 규제나 부채비율 제한처럼 재벌의 방만경영, 족벌경영을 방지하기 위한 규제도 모두 없던 일로 만들어버렸다.
2.1. 삼성그룹과 대립
삼성과의 악연은 최소 삼성이 자동차 사업을 추진하던 시절부터 형성되였다. 자서전에 의하면 노태우 정부 시절, 경제수석으로서 삼성의 자동차 사업 진출을 강하게 반대하던 자신을 이건희[2] 회장이 매우 미워했는데, 청와대에서 마주치자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낼 정도였다고 한다.17대 국회에서 재정경제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검찰 고발안건에 찬성표를 던졌다. 당시 이건희 회장은 삼성자동차 손실보전 문제와 관련해 국감증인으로 채택됐으나 출석을 거부해 논란이 됐다.
김종인은 “삼성이 갚지 않고 있는 돈이 이자까지 붙어 5조원이 넘는다”며 “돈을 그렇게 많이 버는 삼성이 왜 이 돈은 갚지 않는지 국민들은 궁금해하는데, 당사자를 불러 이를 따지지도 못하는 국회를 국민들이 어떻게 보겠나”고 증인채택을 요구했다.최고 재벌 삼성은 왜 빚을 안갚나?
이전에도 삼성그룹에 불리한 금산분리 관련법(은행법 개정안)에 찬성하는 등 삼성그룹과 각을 세워왔다.
2.2. 재벌규제 및 부동산 안정화 5.8조치 단행
노태우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된 지 2개월만에 역사상 가장 강도 높은 수준의 재벌규제로 여겨지는 5.8조치를 단행했다. 재벌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을 강제로 매각하고 신규취득을 금지하도록 하는 내용이다.5.8조치 때 5대재벌 기조실장들을 청와대로 불러 부동산 4800만 평을 매각하도록 하면서 빨갱이 소리는 물론 모욕적인 비난도 들었다고 한다. 전경련이 주최한 토론회에 가서 전경련 회장을 맡은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에게 “자본주의가 기업인 멋대로 하는 게 아니다”라며 2시간 넘게 자본주의에 대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김종인이 말하는 '재벌과의 전쟁'
2.3. 경제민주화론 헌법 등재
1987년 제9차 헌법 개정 당시 개헌특위 경제분과위원장을 맡아 119조2항 이른바 경제민주화 조항을 밀어붙였다. 김종인은 이 조항을 만들고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별도 보고해 허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87년 헌법개정 때 경제민주화 조항, 전두환 대통령도 빼자고 했다"김용갑 새누리당 고문이 경제민주화 조항이 남재희 민정당 정책위의장의 작품이라는 주장을 했으나 남 전 의장이 직접 이를 부인하며 김종인이 만든 것이라고 확인했다.87년 경제민주화 주역?…김용갑 "남재희", 남재희 "김종인"
2.4. 의료보험도입 기여
1977년 서강대 교수로 재직하던 중 의료보험제도 도입을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김종인은 국무총리실 산하에 설치된 의료보험제도 도입 평가교수단 단장을 맡아 보고서를 작성해 올렸고 이를 근거로 의료보험제도 도입 결정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김종인 "당시 경제팀 모두 의료보험 반대했지만... 박정희가 밀어붙여또한 1989년 의료보험의 전국민 확대 과정에서 당시 노태우 정부의 보건사회부 장관직을 맡아 일임했다.
코로나19 사태에서 드러났듯, 그가 이룩한 성과 중 가장 의미있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대목.
3.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에 기여
예전부터 수많은 진보적 정치, 경제 전문가들(예를 들어 한성대학교 김상조 교수)로부터 정무적 감각과 경제 정책의 전문성을 모두 갖춘 인물로 평가받아왔다. 호남 출신의 내공 있는 경제 분야 테크노크라트로, 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에게서 존경을 받아왔던 인물.그러다가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때 박근혜 대선 캠프에 합류해 박근혜 정부 출범에 크게 공헌하였다. 이명박 대통령의 실정으로 새누리당에 대한 민심이 나빴던 상황에서, 박근혜는 이명박과 달리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보살필 것이고, 재벌들의 전횡에도 철퇴를 내릴 것이라는 희망을 심어주었던 것.
그리고 김병로 선생의 손자로서 호남 출신의 명문가[3]의 자제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박근혜 당시 후보가 호남에 대해 우호적일 것이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에도 공헌했다. 그 결과 한화갑, 한광옥 등 동교동계 출신 인사들이 박근혜를 지지하게 만들었고, 호남에서 제법 많은 박근혜 표를 가져왔다. 특히 과거 일자리 등의 문제로 수도권으로 상경한 호남출신이 많다는 것을 고려하면 단순히 보이는 호남표 그 이상의 효과를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참하게 토사구팽 당했다. 포털 사이트들에 '김종인'을 검색하면 '토사구팽'이 연관검색어로 등장하고(...) 손석희 JTBC 보도 담당 사장도 JTBC 뉴스룸에 출연한 김종인에게 '토사구팽' 당했다는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할 정도(...)[4]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에 표현에 의하면 박근혜 정부의 정도전이 된 인물.
4. 더불어민주당의 구원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동교동계가 안철수, 김한길과 손잡고 국민의당으로 갈라져 나가고 야권이 분열되는 위기 속에서 2015년 말 김종인을 세 번이나 찾아가서 입당을 제안하는 삼고초려에 나섰다. 결국 2016년 1월 14일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 겸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하고 그에게 공천권을 포함한 전권을 부여하는 원톱 체제를 구성하여 총선을 일임했다.김종인의 영입 후 민주당은 경제에 집중하는 민생 노선으로 유능한 경제 정당을 표방하였으며 이를 통해 내홍에 빠진 새누리당과 차별화를 선보였다. 당시 지지부진한 경제 상황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경제민주화 외길을 걸어온 김종인의 테크노크라트 이미지가 결부되어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유능한 경제 정당으로써 국민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공천권을 부여받아 컷오프를 실시하였는데, 문재인 대표 당시 만들어진 공천심사 하위 20% 컷오프를 정무적 판단을 통해 2차 컷오프로 재심사 하였고, 이를 통해 친노 핵심이었던 이해찬의 지역구 세종을 전략공천 지역으로 설정하여 컷오프하였다.[5] 또한 이미경(정치인), 신계륜 등 수도권 다선의원들이 일부 물갈이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국민의당으로 탈당한 아버지 정대철을 따라가지 않고 민주당에 남은 정호준이 컷오프되어 탈당하고 국민의당 소속으로 출마하는 등 크고작은 잡음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의 적극적인 인재영입과 더불어 김종인의 정무적 감각이 동원된 컷오프는 민주당의 인적쇄신을 가능케 하였고, 총선의 좋은 결과로 이어지게 되었다.
과거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전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진보 진영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대표적인 진보 정치인인 노회찬 정의당 전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영입 소식에 대해 "오랜만에 더불어민주당이 예뻐 보인다. 한국의 보수가 김종인 박사 정도의 노선이라면 이 나라는 훨씬 좋은 나라가 되었을 것."이라고 긍정 평가를 내렸을 정도.#[6] 하지만 이는 더불어민주당을 중도 보수로 밀어내고 진보 진영에서의 득표력을 높이려는 의도의 발언이기도 하다.
이 때문인지 김종인을 선대위원장으로 영입한 이후 민주당은 중도층 표심 공략을 위해 지난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때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했었던 당 대 당 야권 연대'를 거부하는 바람에[7] 지역구 선거 경쟁력이 취약한 정의당이 지역구에서 노회찬, 심상정을 빼고 모두 패배하여 정의당 지지자들에게는 원한을 샀다.
영입 이후 더불어민주당의 분열 흐름은 잠잠해졌고, 국민의당으로 탈당하던 흐름 역시 멈추었다.[8] 탈당의 흐름이 멈추자 전세는 역전되어 거꾸로 국민의당으로 탈당한 사람들이 고립되었다.[9][10]
더불어민주당 선대위원장이 된 뒤 두 달 만에 자신만의 식견과 정무 감각으로 당의 지지율을 끌어 올렸다. 본래 더민주의 고질병 중의 하나가 '불복의 문화'였다. 그 정도로 내부적 총질과 돌출 행동이 난무했었고 이로 인한 거부감이 높았는데[11] 김종인 대표 취임 이후 분란이나 책잡힐 행동을 할 여지가 있는 사람들은 전부 걸러지거나 자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김종인 중심으로 철저하게 단합하여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였다.[12]
일각에서는 어그로 탱킹에 능한 김종인을 '기레기 조련사'라 불렀고,관련 글 참조 일부 지지자들에게서는 '갓종인'으로 추앙을 받았을 정도. 관련 글 참조
THAAD 배치 문제에 대해서도 김종인 대표의 현실적인 정무 감각은 훗날 빛을 발했다는 평을 듣는다. 박근혜 정부가 THAAD를 경북에 배치하겠다고 했을 때 더불어민주당은 찬성도 반대도 섣불리 하지 않는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대응 방식을 내놓아 종북몰이의 여지를 없애고 사드 배치 예정지의 주민 반발을 피할 수 있었다. 북한이 SLBM을 발사하고, 다섯 번째 핵실험을 강행하는 등 연일 무력 도발을 일삼는 것에 대해 THAAD 배치의 당위성이 높아지고 있었는데 민주당 차원에서 일찌감치 '신중하게 결정하자'는 입장을 내놓은 덕분에 보수 진영으로부터 안보 공세를 받을 건덕지가 없었던 것이다.
국민의당은 재빨리 THAAD 배치 반대를 당론으로 채택했지만 이후에 벌어진 안보 상황들 때문에 보수 진영 지지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았고, 그로 인해 스텝이 꼬여 이제 와서는 더불어민주당과 비슷한 신중론 쪽으로 당론을 바꾸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진보 성향이 강한 지지자들이야 비겁하다고, 싸워야 한다고 비판을 한다지만, 더민주의 전략적 모호성 전술이 현실에서 적지 않은 효과를 본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김종인 선대위원장의 뒤를 이어 당권을 잡은 추미애 당대표도 당대표 경선 때에는 THAAD 배치 반대를 당론으로 채택할 것처럼 이야기하다가, 막상 당대표가 된 뒤에는 당론 채택을 계속 연기하면서 김종인 전 대표의 전략적 모호성 노선을 이어갔다.
어쨌든, 김종인과 더불어민주당은 100석도 어렵다고 평가받던 20대 총선에서 123석의 의석을 획득함으로써 원내 1당이 되는 깜짝 승리를 일궈 냈다.
4.1.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공천 이후 논란
그러나 그 후 공천과 관련된 그의 행보에 대해서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4.1.1. 공천 칼바람에 대한 비판
김종인 대표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은 김종인의 공천이 친정(親政) 공천이라는 것이다. 더민주에서 지난 1년간 쌓아온 혁신 결과를 물거품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실 문재인 대표는 인적 요소가 개입되지 않고 각 분야 점수를 종합하여 컴퓨터로 당락 여부를 가리는 시스템 공천 하에서 컷오프가 이루어지는 제도를 만들고 물러났다. 그러나 김종인 대표는 이러한 시스템 공천 제도를 사실상 무력화시키고, 지극히 불투명한 기준,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 친노 세력들을 솎아내버렸다.실제로 김종인 대표가 직접 매체에 '친노 솎아내기'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종편에 출연하여 자당 공천 방향을 친노 세력 정리라고 소개하였다. 보수 언론 및 국민의당에서 특정인을 찍어서 누구누구 떨어뜨려라 요구하였고, 김종인 대표도 그에 호응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의원들이 탈락하자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은 동요하였다.
썰전에서 정의당 소속 유시민 작가는 더불어민주당이 왕정으로 돌아갔다고 비난했다. 비교하기 그렇지만, 현재 더불어민주당의 상황은 마치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 혼란의 혼란을 거듭하는 프랑스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프랑스 공화국은 훗날 혁명으로 수립한 민주주의 대신 왕정 즉, 나폴레옹을 선택하게 된다. 만약 총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다면 김종인 대표의 위치는 아주 견고해질 것으로 보인다. 김종인 대표를 비토하는 사람들은 그가 총선에서 이기더라도 나폴레옹처럼 황제가 될지, 아니면 워싱턴 대통령처럼 민주주의를 지킬 지 알 수 없다고 주장했다.
유시민 작가는 김종인 대표로부터 시작된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논란과 정의당과의 야권 연대 거부를 놓고 '더민주는 붕괴 중이다'라고 진단했지만, 20대 총선 실제 결과는 이들의 예상을 완벽하게 빗나간 더민주의 화려한 부활이었다. 하지만 박근혜에 의해 10차 개헌 떡밥이 국회에 투척된 이 후 미국식 대통령 중임제 개헌을 주장하는 친문 그룹과 김종인을 필두로 의원내각제 내지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지지하는 반 문재인 그룹이 의원총회에서 종종 썰전을 벌이고,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반문 진영이 전략적으로 지지하는 안희정 충남지사의 지지율이 점차 높아지면서 유시민의 예측이 맞아떨어질 지 귀추가 주목된다. 현재까지는 더불어민주당이 정당 지지율이 40%를 초과하는 등 60년 정당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고, 그 선두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친노 • 친문계가 존재하는 만큼 아직까지는 지켜볼 일이다.
4.1.2. 중도 싸움을 위한 고육지책, 그리고 차도살인설
김 대표가 정청래 의원과 이해찬 의원 등을 자른 이유에 대해서는, 이를 이른바 '중원 공략'의 차원에서 그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훗날 여론조작 사건으로 전국구 스타(?)가 된 드루킹과 그 추종자들이다.그들의 개소리에 따르면 여태껏 민주당계 정당이 번번히 새누리당에 진 이유는 바로 이 중도 싸움에서 밀렸기 때문이며, 게다가 이번에는 국민의당으로 분당까지 되었기 때문에 호남 유권자를 잡는 게 매우 중요한 이상, 이러한 고육지책을 썼다는 것이다.
중도 무당파층과 호남 유권자층의 마음을 잡기 위해서는 기존 민주당에 덧씌어진 두 가지 이미지를 해소시켜야 한다. 하나는 '대화와 타협 보다는 투쟁만을 고집하는 운동권 정당'이라는 이미지와 호남을 소외시킨 '친노 패권 정당'이란 이미지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은 번번히 중요 선거에서 새누리당에게 졌으며 국민의당은 한때 호남에서 민주당을 여론조사에서 압도했었다.
이 두 가지 이미지를 불식시키거나 최소한 희석시키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에 따르는 상징적인 조치가 필요했다. 그래서 싸움만 하는 운동권 정당 이미지와 친노 정당 이미지 각각을 대표하는 인물로 정청래 의원과 이해찬 의원을 선정해 잘라낸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운동권 정당과 친노 정당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대안 야당으로서 박근혜정부의 경제 실정에 집중한다면 중도 유권자들과 방황하는 호남 유권자들을 잡을 수 있다고 계산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다만, 친노 & 비노 이런 구분이 어떤 실체가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유념해 두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친노라고 불리는 의원 20~40명과 나머지는 적게는 3~4명, 또는 10여명의 인맥으로 이뤄진 그룹 몇 개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른바 '계파 정치'라는 것인데, 김종인 대표는 더불어민주당에 영입된 직후에는 "친노 패권은 모르겠는데, 분명한 것은 비노계가 훨씬 더 많다"고 말한 적이 있지만, 뒤에는 친노, 친문 주류와 갈등, 대립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2, 3차 컷오프를 진행하면서 문재인 전 대표가 강력한 당권을 휘두른 적이 없었으니 친노 패권주의라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셋째 아들인 김홍걸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객원교수는 "친노가 누구인지 알 수 없고, 확실한 것은 친문 의원은 1명 밖에 없더라" 하는 말을 했었다.
친노 세력이라는 말은 처음에는 호남의 보수층에서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후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 되면서 현재 종편을 비롯한 조중동 등 보수 언론에서 기정 사실처럼 광범위하게 통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지만, 조중동 뿐만 아니라 다른 언론에서도 친노라는 용어는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친노 혹은 친문계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당사자들 이야기이지, 언론과 대체적인 평가는 더불어민주당의 주류는 친노 혹은 친문이 다수라는 것이 중론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친노가 일시적으로 후퇴하였으나 이명박 정부의 거듭된 실정으로 전임자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이 되살아났으며 그 바람을 타고 2012년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취임하면서 친노, 친문이 주류를 형성했다는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정청래 의원, 이해찬 전 총리 등은 탈락했는데 친노무현 & 친문재인 성향의 초, 재선 의원들은 많이 살아남은 것을 두고 "상징성이 있는 중진들은 뽑아내고 경쟁력을 갖춘 초, 재선 현역 의원들에겐 기회를 주는 전략이 아니겠느냐"는 분석도 있다.
5선의 문희상 의원, 3선의 유인태 의원, 노영민 의원 등 ‘현역 하위 20% 컷오프’에서 1차로 물갈이된 인사들과 4차 컷오프에서 이해찬 전 총리와 함께 공천에서 탈락한 5선의 이미경 의원은 대체로 문재인 전 대표와 가까운 주류 쪽 중진들, 즉 올드보이들이다.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과도 가까웠고 문재인 전 대표와도 가까웠던 김태년, 홍영표, 박남춘, 전해철, 백원우 등 초선, 재선 의원들에겐 단수 공천을 주었다. 기사
그러한 연유로 이 컷오프 파동은 일반적인 주장과는 다르게 꼼꼼히 살펴보면 그저 모두 존재감이 큰 거물들이라 그냥 일이 커 보이는 것일 뿐인 착시 현상이라는 말도 있다. 이들은 "김종인 대표가 친노를 공천 학살했다."는 주장은 과장이라고 본다.
친노 & 범친노 인사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공천에서 배제된 건 사실이지만, 지난 18대 총선과 19대 총선 때 친박근혜계와 친이명박계가 서로 주고 받았던 수준의 대량 공천 학살까진 아니었고, 문재인 전 대표와 우호적인 관계에 있었거나 측근이었던 초재선 의원들과 그가 앞장서서 영입한 신진 인사들은 거의 모두가 컷오프의 칼바람을 무사히 피해 국회의원 후보가 되었으며, 오히려 그 중 몇몇은 전략공천이라는 특혜를 받아 선거에 나섰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쉽게 말해서, 더불어민주당의 컷오프 파동은 친노라는 그룹의 시각에서 보면 일방적인 탄압이지만, 막상 문재인 전 대표의 시각에서 보면 오히려 본인의 지분을 크게 늘려준 고마운 소동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시각에 조금 문제가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문재인 전 대표가 영입한 인사는 모두 정치 경험이 거의 없는 신인에 불과한데, 비례대표를 준 것도 아니고 대부분 지역구에 출마, 그것도 대부분 험지로 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입 인사들 대부분 자신의 지역구는 스스로 결정했고, 지역구가 결정된 영입 인사들 중엔 경선을 통과해서 출마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대개 전략공천 아니면 단수 공천으로 출마했다. 단수 공천이야 한 지역구에 더불어민주당 소속 예비 후보자가 그 영입 인사 한 명 뿐인 경우도 있어서 그렇다고 칠 수 있다지만, 전략공천은 특혜다. 한 지역에 출마를 준비하는 예비 후보자가 여러 명인데도 당 지도부가 한 후보을 골라 경선 없이 그냥 후보로 확정하는 게 전략공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문재인 키즈'들 중에서 수도권에 출사표를 던진 후보들은 전원 전략공천을 받아 출마했는데 대개 당선되어 돌아와 20대 국회의원이 됐다. 특히 국가 재정 전문가인 김정우 세종대 교수의 경우는 호기롭게도 험지 중의 험지이자 본인의 고향이기도 한 강원도 철원군에 출마하려고 했다가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김 교수의 지역구를 철원군보다 여건이 더 좋은 경기도 군포시로 바꿨고, 김 교수는 비록 근소한 차이이긴 했지만 당선에 성공했다.
호남으로 간 영입 인사들은 전패했으나, 더불어민주당의 호남 참패는 예상했던 사람이 별로 없었던 돌발 변수였다.
영남으로 간 영입 인사들의 경우, 오창석 전 팩트TV 아나운서는 패기있게도 '부산 정신'이란 슬로건 아래 조경태 의원이 내리 3선을 했던 부산 사하구을 출마를 자청했다. 유영민 포스코 ICT 전 사장도 부산광역시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새누리당 강세 지역인 해운대구 출마를 스스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유 전 사장은 거물 하태경 의원을 상대로 41%의 득표율을 기록해 충분히 후일을 기대해도 좋은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정찬모 울산광역시의회 전 교육위원장도 아예 입당을 더불어민주당 울산광역시당에서 하면서 울산광역시 울주군에 도전하겠다는 용감함을 보여주었다.
경상남도 양산시에 출마한 서형수 전 한겨레신문 사장이 떨어질 가능성이 무척 높다던 예상을 깨고 당선된 특별한 사례다.
그리고 비례대표에 출사표를 던진 문 전 대표의 영입 인사들도 처음에는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의 월권으로 인하여 낙선권인 C그룹으로 몰렸다가[13] 문재인 前 대표와 김종인 대표가 김 대표의 자택에서 만남을 가지고, 더불어민주당 중앙위원회에서 재선거를 거친 결과 다시 당선권으로 거의 다 올라와 대부분 국회의원 배지를 받게 됐다.
특히 당선권 명단에 김 대표의 추천 인사들과 문 전 대표의 영입 인사들이 섞이게 되었기 때문에 김 대표와 문 前 대표 모두 자신의 영입 인사들을 국회로 진출시켜 윈윈하였다.
그래서 나온 게 문재인 전 대표의 차도살인지계(借刀殺人之計)설이다.
'친노 패권주의 프레임'으로 인해 제대로 된 권한 행사를 못했었던 문재인 전 대표가 바깥에서 온 이방인이자 강골인 김종인 박사를 데려와 절대 권력을 가진 '차르'로 만든 뒤 '비문(非文) 친노' 인사들을 싹쓸이한 다음[14] 그들의 빈자리에 자신이 직접 영입한 외부 인재들을 심어 '친노 패권주의'라는 족쇄를 확실히 깨부수고, 자신의 당 장악력도 최대화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종인이 총선 이 후 대놓고 문재인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민주당의 당 케미스트리에 해를 끼치다가 탈당하고, 또 이 갓종인의 빅픽처, 문재인의 차도살인지계설을 주장한 드루킹이 훗날 대선 승리의 댓가(?)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문재인 대통령의 안티로 돌변하여 매크로를 돌려 문재인 대통령을 비방하고, 안희정을 신격화하는 여론주작을 시도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가설은 말 그대로 흑역사가 되었다(...)
4.2. 반문(反文)인 듯 반문 아닌 반문 같은 행보
총선이 끝난 뒤 문재인 전 대표와 김종인 의원의 관계는 애매모호하다. 서로 닭 소 보듯 소 닭 보듯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정확히 누가 말했는지를 확인할 수가 없어 편리한, '관계자에 따르면' 이라는 표현을 쓴 인터넷 기사에서는 거친 표현이 나온 적이 있긴 한데, 둘 다 서로에게 공개적으로 직격탄을 쏜 적이 없었다.[15]그러다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건이 터지고 '이런 일을 재발하지 않게 하려면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로 우리나라의 정부 체제를 바꿔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차기 대통령의 임기는 3년으로 줄여야 한다'는 개헌론이 대두되면서 이 개헌론자들 중 가장 대표적인 한 사람으로 김종인 의원이 부상하였고, 이로 인하여 2012년부터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을 주장해온 문재인 전 대표를 본인이 직접 저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이 대선판에 나왔을 때 민주당 의원의 신분으로 그와 만남을 가져 김종인 의원이 반기문 캠프로 갈 것이라는 이야기가 힘을 얻기도 했고, 또 더불어민주당에서 19대 대선의 후보 자리를 놓고 문재인 전 대표와 경쟁하고 있는 이재명 성남시장이나 안희정 충남지사 쪽을 은근히 지지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근데 재밌는 점은 소위 '반문(反文) 연대' 혹은 '친박과 친문을 제외한 제3지대'를 완성할 마지막 고리 같은 존재로 언론이 띄워주고 있는(?) 인물인데도 불구하고 막상 말은 그렇게 하면서 정작 중요한 행동이나 떡밥은 하나도 안 보여준다는 것이다. 반기문 캠프로 갈 것처럼 보였을 때는 본인이 '나를 왜 그 사람과 결부시키나, 기분 나쁘게'라며 가능성을 일축했고#, 개헌에 관해서는 개헌론자들과 뜻이 통하는 발언은 계속 하고 있지만, 막상 그쪽에 직접 가담한다거나 하다 못해 공동 선언문이나 결의문 같은 것도 내지 않았다.
이제 뭔가 일을 하려나 보다 싶을 때마다 항상 발을 빼는 등의 행보로 제3지대의 김을 빼놓는 짓만 반복해온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그때마다 전권을 달라는 요구를 했지만 번번이 거절을 당해 '그럼 내가 있을 이유가 없다'면서 손을 끊은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또 더불어민주당의 비례대표 2번 후보로 당선돼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기 때문에 제3지대나 반기문 캠프 등으로 넘어가려면 탈당을 해야 하는데 그럼 우리나라 법에 따라 국회의원 배지도 떼야 하기 때문에 이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본인은 의원직에 연연해하지 않는다고 반론하지만.
안희정 충남지사가 '문재인 대세론'에 그나마 맞설 만한 다크호스로 떠오른 뒤로는 안희정 캠프 쪽에서 김종인 의원으로부터 경제 정책에 대한 의견을 많이 듣는다던가, 안 지사의 측근이라는 모 민주당 의원이 김종인 의원실에 상당히 자주 드나든다더라 등의 이야기도 나왔으며, 실제로 안희정 캠프에서 김종인 의원에게 경제 정책에 관한 전권을 위임할 테니 오라고 제안했다는 뉴스도 보도됐었다.
김종인 의원 본인도 "안희정 지사는 초기의 노무현 모습 같고, 문재인은 말기의 노무현 모습 같다"고 하는 등 두 사람 간의 관계에 훈풍이 부는 기조가 보이고 있는데, 김종인 의원은 여전히 이렇다 할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안희정 캠프에서 경제 정책에 대한 전권을 줄 테니 오라고 했다는 뉴스에 대해서도 '특정인을 지지하지는 않는다'라며 선을 그었다#.
단, 1월 16일 독일 뮌헨에서 열리는 안보회의에 참석한 뒤 우리나라로 돌아오면 자신의 거취에 관한 결심을 밝히겠다고 말한 걸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순교'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는데 본인이 생각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순교하겠다는 말이 정확히 무얼 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김종인 의원 본인조차 이 순교라는 단어를 무슨 의도로 말한 것인지에 대해서 확답을 주지 않는 상황.#
일각에서는 김종인 의원 본인이 직접 대선 출마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예측을 내놓기도 하지만 2월 23일에 대선 출마설에 대해 질문했을 땐 그럴 뜻이 없다고 말한 바가 있다.#
그러나 뮌헨에서 닷새 만에 돌아온 뒤에도 본인의 거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김종인 의원은 기자들의 질문에 "헌법재판소의 탄핵 판결이 나고, 정치 일정이 어떻게 잡히느냐에 따라서 두고 봐야지. 미리 단도직입적으로 뭐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답한 걸로 알려졌다.#
그러나 2017년 3월 8일 더불어민주당을 배은망덕한 정당이라 디스하며 탈당계를 내 20대 국회의원직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3월 10일 중앙선데이와의 인터뷰에서는 "이번 대선에서는 킹메이커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하면서 간접적으로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히며 타도 문재인의 각오를 다짐에 따라 이 논쟁 역시 어이없이(...) 끝나버렸다. 그리고 4월 5일 19대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5. 보수정당의 구원투수, 그리고 승리
미래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이 된 2020년 3월 20일, 문재인 정부에 대해 "마치 천하를 손에 넣은 것처럼 판단하고 행동하는 중"이라고 언급했다. 자신의 비례대표 2번 배정에 대해서는 문 대통령이 비례대표를 먼저 제안하고서도 이후 '셀프 공천' 논란이 발생하자 "전후 사정을 설명하지 않고 나 몰라라 입을 닫은 채 은근히 그 사태를 즐기는 태도를 취했다"고 주장했다.# 3월 25일에 출간된 회고록 '영원한 권력은 없다'를 통해서 “영원한 권력이란 없는 법이다. 글 쓰고 있는 이 순간 재임하고 있는 대통령도 돌아가는 형국을 보니 편안하게 임기를 마칠 가능성이 극히 낮아 보인다”고 밝혔다.비례대표를 제안했던 사람이 문 대통령이라고 주장하면서 “모멸감을 느낀다”고도 했다. 그는 “밤늦게 우리 집까지 찾아와 ‘위기에 빠진 당을 구해달라’ 부탁했던 사람, 선거 승리만을 위해 민주당에 가지는 않겠다고 하니까 ‘비례대표를 하시면서 당을 계속 맡아달라’고 얘기했던 사람이 그런 일이 발생하자 전후 사정을 설명하지 않고 나 몰라라 입을 닫은 채 은근히 그 사태를 즐기는 태도를 취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총선이 끝나고 민주당은 이른바 친문(親文) 세력이 당권을 장악하고 급격히 그런 방향으로 분위기가 쏠렸다”며 “나에게 셀프 공천 모욕이라니, 물에 빠진 사람 살려줬더니 보따리 내놓는 정도가 아니라 숫제 파렴치범 취급하는 모양 아닌가”라고 했다.# “애초에 정치인의 말을 온전히 믿지 않았지만 … 인간적인 배신감마저 느꼈다. 이런 건 정치 도의를 떠나 기본적인 인성의 문제다”라고 밝혔다. “문재인 후보가 박근혜보다 나아 보이지도 않았다. 그동안 내가 지켜본 바에 의하면 문재인 후보는 주변이 좀 복잡한 사람이었다. 그를 에워싸고 있는 그룹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면 결국 그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권력을 휘두르면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것이 뻔했다”고 했다. 그는 “나는 국민 앞에 두 번 사과해야 한다. 하나는 박근혜 정부가 태어날 수 있도록 했던 일이고, 다른 하나는 문재인 정부가 태어날 수 있도록 했던 일이다”라고도 했다.#
그러나 당대표인 황교안을 필두로 김대호, 차명진의 실언으로 인해 김종인의 자질이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 당내 여론과 강경 지지자의 뜻에 맞게 움직이는 셋에 비해, 선거를 이기기 위해 중도층을 안아야 하는[16] 김종인은 당의 선대위원장인 입장에서 이들을 제지해야 하는 입장에 놓였고, 이 와중에 징계의 수준에 따라 일어날 수 있는 당 내의 분열까지 잠재워야 하는 상황이라는데 과연 한국 정치현실상 중도층의 존재가 있는지 여부도 확인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결국 이러한 선거지형 속에서 결국 미래통합당이 쉽게 정리를 못하면서 미래통합당은 역대급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이후 김종인은 선대위원장에서 사퇴하고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황교안을 비롯한 지도부와 윤리위, 그리고 극우 지지자들을 비판했다.
선거 참패 후 미래통합당에서는 김종인을 비대위원장으로 모셔오자는 움직임이 나타났고, 심재철 원내대표가 대표 권한대행으로 김종인 비대위를 통과시키려 하였으나 김종인 비대위만 통과하고, 임기를 고치는데는 중진 의원들의 방해로 인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후 주호영이 압도적인 표차로 신임 원내대표가 되었고, 강력하게 김종인 비대위를 밀어부쳐 당선인의 총의로 김종인 비대위를 다시 통과시키고 임기도 2021년 재보선까지로 정해놓았다. 김종인 입장에서는 난파선이 된 정당의 대표가 되면서 어쩌면 인생 마지막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17]
2020년 6월 1일 비대위원장 취임 이후 보수정당으로서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진취적 정당'을 내세우면서 보수 삭제를 언급하기도 했고, 기본소득, 적극적 재정투입, 사회안전망, 재벌 개혁, 불평등 해소 등 그동안 보수진영이 앞세웠던 가치와는 거리가 먼 것들을 거론하면서 정치권 어젠다를 주도했다. 다만 당내 반발은 극복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취임 1개월 동안, 중도층의 미래통합당 지지율도 올라갔다. 리얼미터의 5월 4주차 여론조사에서는 중도층의 미래통합당 지지율이 24.5%[18]였는데, 6월 3주차 여론조사에서는 31.5%[19]로 7%p 상승했다. 이슈 선점 능력과 자기정치에서 합격점을 받았다는 평[20]. 아직 성과를 못 올렸다는 평도 있지만, 김종인 위원장은 취임한 지 1개월밖에 안 되었다. #
여당인 더불어 민주당의 성추행 논란과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의 연이은 부동산 정책의 실책, 견제세력 없는 독선적인 국정운영을 연발하면서 그 반사이익을 얻었고 김종인이 비대위원장이 된 후 통합당에서는 막말 논란이 줄었으며 장외투쟁 대신 장내투쟁으로 전환한 것과 초선 윤희숙의 나는 임차인입니다 라는 명연설로 중도층이 상당수 유입되었다. 전례없는 폭우로 침수피해 입은 지역 중 호남을 가장 먼저 방문하여 피해에 관한 위로를 하는 결단력 있는 행동력을 보였다.
8월 13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미래통합당의 지지율이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보다 높게 나온 것으로 조사되었고, 중도층에서는 오차범위 밖에서 민주당을 앞섰다. 물론 직후에 터져버린 사랑제일교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집단 감염 사건으로 인해 지지율이 다시금 떨어지고 말았지만 어찌 되었든 미래통합당 입장에서는 총선 참패로 인해 힘들어진 상황을 상당부분 회복했으며, 이 사건이 끝난 이후에는 미래통합당의 당명 변경과 여러 변화가 예정되어 있는지라 결국 이 시점에서 다시금 당을 살릴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김종인의 정치인생 마지막 승부수가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인지 중요한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후 재보궐선거에서는 황교안 체제의 가장 큰 문제였던 친박과 태극기 부대의 완전배제와 국민의힘 당직자들의 입막음을 철저하게 수행해 낸것과 동시에 안철수와 오세훈의 단일화 경쟁으로 주목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하고 LH 사태와 백신, 그리고 부동산 민심으로 민주당의 지지율이 낮은것이 시너지를 불러일으켜 결국 출구조사에서 서울 전 지역 오세훈 우세와 부산에서 박형준 60% 득표율이라는 진기록을 이뤄내는 등 국민의힘 구원투수로서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실현해냈다. 2020년 21대 총선 이후 여당에 모든 상임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넘겨주거나 장외투쟁을 포기하고 극우파들과 거리를 두는 등의 행보로 비판과 비난에 시달렸으나 결과적으로 거대 여당의 폭주로 인한 법무부와 검찰 간의 갈등, 부동산 정책 실패 등에 대한 책임이 전혀 전가되지 않으면서(...) 김종인의 이러한 행보는 신의 한 수가 되었다.
다만 서울시장 야권 단일화 과정에서 본선도 아닌 경선치고 상대 후보인 안철수에 대한 비방전이 다소 과한 감이 있었던데다, 선거 직후 지나친 공치사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행보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김종인의 한계는 이미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202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에 180석을 내준 참패에서 한계가 입증되었으며,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의 승리 역시 궁극적으로는 정부에 대한 불만, 특히 LH 투기 사건으로 정부와 여당에 대한 지지가 추락하면서 반정부 민심이 모아진 결과물일 뿐 특정 개인의 공이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선거 이후 김종인은 국민의힘, 특히 중진 정치인들을 두고 "외부 세력과 야합하여 권력 투쟁에 골몰할 생각만 해서는 정권 탈환이 불가하다"며 "정신 못 차렸다"고 날선 비판을 가했고, 여기에 국민의힘 정치인들 역시 야권 화합을 강조하면서 "곱게 떠나시라"는 반응이다.# 여기에 더해 "야권의 승리"라는 발언을 두고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쌍방에 독설을 날리는 등 마지막까지 잡음을 일으키는 모습 때문에, 선거 승리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 전통 지지층이나 국민의당 지지층에서는 여전히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편이다.
5.1. 안철수와의 갈등 끝에 흡수완료 그리고 선거 승리
김종인 “安, 감이 안 돼”… 안철수 “근거없는 비판”(동아일보)김종인, 안철수 직격…"혼자 살려다가 모두 죽는다"(연합뉴스)
김종인 “안철수 ‘국민의힘 간판’으론 당선 어렵다며 입당 거절”(경향신문)
김종인 "국민의힘 후보로 충분, 안철수에 끌려다닐 수 없다"(중앙일보)
2021년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안철수가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함에 따라,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의 단일화 가능성이 새롭게 대두되었다. 단일화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국민의힘 후보, 안철수가 각자 출마했다가 표 분산으로 민주당이 당선될 경우, 다음 대선에서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인지라 지지층 대부분은 단일화를 바라는 입장이었는데, 매번 안철수와의 갈등을 부추기는 발언을 하고 단일화 가능성을 떨어뜨리는 행보를 보여 신뢰도가 상당히 떨어진 상황이다. # 그래서 목표가 정권교체인 것에는 안철수에 동의하면서, 정작 꼭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되어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은 결국 정권교체란 목표는 안중에도 없고 그저 자당의 이익만 추구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앞서 김종인은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안철수로 구성된 3자구도로 맞붙어도 승리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인 적이 있었는데#, 여론이 전혀 그렇지 않음을 뒤늦게 깨달은 모양인지 한달이 지나지 않아 갑자기 "야권 단일화는 숙명적"이라며 입장을 바꿨다.# 그러나 안철수가 지난 대선에서 야권 단일화를 하지 못하고도 그대로 출마했듯이, 여전히 국민의힘 후보로 단일화를 하자고 주장하는 김종인의 주장에 안철수가 따를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안철수의 입장은, 국민의힘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기 때문에 국민의힘 간판으로는 야권의 승리가 어렵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권에 대한 심판론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이 곧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는 점, 아직 지난 정권에 대한 불신 및 부정적 시각이 가시지 않은 점, 양당정치체제의 신물이 나 이탈한 중도층이 크게 늘어났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는 합리적인 시각이라고 볼 수도 있다.
다행히도 오세훈과 안철수의 단일화 경쟁에서 오세훈이 승리하면서 안철수가 이에 승복하고 매우 적극적으로 투표운동을 도와준 결과[21]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민주당을 압살해 정권교체 가능성에 청신호가 켜지기 시작하면서 본인의 정치경력을 승리자로 기록함은 물론 대한민국 보수정당의 구원자 역할을 충실히 하는데 성공하여 킹메이커의 면모를 다시 한번 보여줬다.
6. 퇴임 이후
2021년 재보궐선거가 끝나고 은퇴 이후 국민의힘, 야권, 안철수에게 거센 비판을 잇따라 하면서 이에 반발하는 일부 국민의힘 정치인들과 안철수를 옹호하는 여론에 많은 비난을 받고 있으며 국민의당과의 협력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표출하여 이에 반발한 안철수, 국민의당 지지 여론에서 김종인을 거세게 비난함과 동시에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대표도 공개적으로 김종인을 비난하였다.#6.1. 국민의힘 비판 행보
하지만 은퇴후에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하면서 쌓여온 것들이 많아서인지 결국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국민의힘의 정치인들의 행적들에 대해 거세게 비판을 하였다.#주호영에 대해 안철수를 서울시장 후보로 만들려던 사람이라고 직격으로 비판하며 주 대표 대행이 국민의당과 통합을 추진하는 것을 두고 "내가 그 사람은 도저히 이해를 못 하겠다"고 성토하며 내가 그런 사람들을 억누르고 오세훈을 후보로 만들어 당선시켰는데, 그 사람들이 또 지금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서울시장 후보 경선 당시 국민의힘 중진 의원들이 당내 오세훈 후보가 아닌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를 지지하면서 오 후보에게 사퇴를 종용하기도 했다고 폭로했다.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비대위원장이자 현직 국민의힘 세종시당위원장이 자신에 대해 뇌물을 받은 전과자'라며 윤 전 총장이 손을 잡을 리 없다고 비난한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비대위원장을 두고는 "진짜 하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고 반발했으며[22],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에 대해선 “홍준표 의원 꼬붕”이라며 “상대도 안 한다. 지가 짖고 싶으면 짖으라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국민의힘에서도 김종인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들이 나왔다. 4선의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이 이날 국민의힘 중진 의원 연석회의에서 “마시던 물에 침을 뱉고 돌아서는 것은 훌륭한 분이 할 행동이 아니다”라고 비난하는가 하면 또 다른 중량급 인사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원래 그런 사람”이라며 “자기 장사를 위해 일부러 저러는 것”이라고 비난하면서 국민의힘과 김종인 사이의 갈등이 불거졌다.# 장제원은 "선거가 끝난 지 고작 일주일 남짓 만에 저주의 막말을 쏟아내는 것은 탐욕적 당 흔들기에 불과하다", 기술자 정치는 반드시 청산해야 할 구악김 전 위원장은 희대의 거간(居間) 정치인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표현들을 써가며 김종인을 비난했다.#
또한, 김종인은 국민의힘을 두고 "아사리판"이라고 비판했는데, 실제로 국민의힘은 재보궐선거 이후 당대표 선거에서 자중지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선 안철수, 국민의당과의 통합이 논란이 되었다. 차기 당권과 야권 통합 문제를 놓고 당내 파열음이 터져나온 것. 국민의힘 비대위원들은 주 권한대행이 당권을 거머쥐기 위해 통합을 지렛대로 삼고 있다고 의심하는 중인데 실제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를 상대로 통합 논의에 별다른 진전이 없는데도 마치 조만간 극적 타결에 이를 것처럼 포장하며 거취 결단을 미루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주호영은 신설 합당에, 비대위원들은 안 대표의 개별 입당에 기울면서 국민의힘 통합에 대해 시각차가 크다. 한 비대위원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안 대표가 국민의힘에 입당하면 그만"이라며 "신설 합당까지 하면서 통합할 이유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
이에 대해 15일 비대위 비공개회의에서 "합당이 비대위에서 논의된 적 없다"(김현아), "합당의 당위성이 뭔가"(김재섭)라는 문제 제기부터 "거취부터 결정하라"(김병민)는 압박까지 다양한 목소리가 쏟아졌으며 지난 12일 재선 모임, 14일 4선 이상 중진 모임과 초선 모임에서 일제히 주 대표대행을 견제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태경 등은 아예 주호영의 조기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데 문제는 주호영이 물러나더라도 당권과 통합을 둘러싼 난맥상은 당장 봉합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실제로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도 언론에서 당 대표를 노리는 주자들의 '뒷작업'이 판치고 있다며 김 전 위원장의 '아사리판' 발언이 선견지명이 돼가는 것 아닌가 라며 우려를 표했다.(출처)
6.2. 국민의당/안철수에 대한 비판
11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에 대해 “그 정도 수준 정치인밖에 안 된다고 확신했다”고 밝히며 안철수가 야권의 승리라는 표현을 쓴 것에 대해 비판하며 어떻게 건방지게 그런 말을 하나. 자기가 이번 승리를 가져왔다는 건가”라며 “유권자들은 ‘국민의힘 오세훈’을 찍었다. 안철수는 ‘국민의힘 승리’를 축하해야 했다”고 반박했다.#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의 합당 논의에 대해서는 비판하며“안철수는 지금 국민의힘과 합당해서 대선 후보가 되겠다는 욕심이 딱 보인다”“서울시장에 출마하면서 대선은 포기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 사람이 대통령 되면 나라가 또 엉망이 된다”고 했다. 오 시장과 안 대표의 단일화 효과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3자(오세훈·안철수·박영선) 대결로 해도 우리가 이긴다”고 반론했다.
김종인의 안철수 비판에 국민의당은 거세게 반발했다. 국민의당 구혁모 최고위원은 이날 당 최고위 회의에서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겨냥해 “뇌물수수로 징역형을 받아 의원직이 박탈된 범죄자 신분이었으니 쌓았던 공도 그렇게 크진 않은 것 같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해서 이준석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사과하지 않으면 공개적으로 더 크게 문제 삼을 것“이라고 받아쳤다 #
7.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캠프의 구원투수 그리고 선거 승리
이준석 대표와 윤석열 후보 캠프와의 갈등이 폭발하면서 윤석열의 지지율이 처음으로 이재명한테 역전당하는 사태가 일어나자 결국 선거 승리를 위해 윤석열이 한발 물러서 갈등이 가까스로 수습되었고 12월 3일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직을 수락하였다. 고령의 나이임에도 4월 재보선에 이어 국민의힘 대선캠프를 이끌게 되었다.[23]그러나 이마저도 얼마 못 가 윤핵관의 지속적인 도발과 이를 막으려는 당대표 이준석과 조수진의 갈등이 일어나고 이준석 대표는 조력을 포기를 선언하고 선대위 사퇴를 하는 대악재를 만나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준석 당대표에게는 자신이 만류하였는데도 나간 것과 나가고 난 뒤 당대표라고는 전혀 볼 수 없는 마치 제3자처럼 논설, 평가하는 모습에 섭섭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와중에 윤석열 대선후보로부터 선대위 대수술을 할 권한을 받게 된다.
그런데 윤석열 대선 후보자는 김건희 여사의 대국민 사과가 전혀 안 먹혀든 것과 윤석열 후보자의 계속된 실언으로 대중들의 지지도가 계속 내려가는 와중 페미니스트 진영 인사들을 영입하는 행보로 인해 2030 청년들의 지지철회가 늘어나면서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이다.하지만 김종인이 이들을 모두 날려서 다시 위기에서 1차적으로 벗어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윤석열 후보는 자신을 꼭두각시화와 지지율 떨어진 것은 온전히 후보책임 메시지가 담긴 메시지에 자신에 대한 쿠데타라며 반발하였고 결국 5일에 선대위 해체로 김종인을 자르는 수단을 취한다. 이에 김종인은 나가더라도 내 발로 나가겠다며 구원투수 역할을 하기도 전에 종료되었다.
김종인은 이번 대선에서 패배할 경우 이준석이 당의 분란의 중심이었던 만큼 당대표로서 져야하는 책임은 물론 대표직 사퇴는 물론이고 앞으로의 본인 정치인생에 대한 사망선고를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24]
그러나 이준석의 세대포위론이 반쯤 성공하며 마침내 정권교체에 성공하게 되었다. 혹은 그의 젠더 갈라치기나 선거운동과정 중의 당내 분란 촉발, 막판 안철수와의 통합 반대 등으로 인해 민주당 후보와의 표차를 더 늘리고 이길 수 있는 결과가 사라졌다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22년 8월 17일 기자회견 중 "1월 초, 김종인 선대위의 해체급 재개편이 없었다면 대선 승리는 없었을 것"이라 말했다. ##
[1] 이마저도 나중에 헌재의 헌법불합치 판결로 모두 폐기된다.[2] 정확히는 "자동차를 아주 좋아하는 반도체 기업 회장".[3] 김병로와 김성수, 김상협 등으로 대표되는 울산 김씨 가문은 명실공히 호남 최고의 명문가로 불린다. 왜 호남 최고의 명문가가 울산 김씨인지 궁금할 수 있으나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다. 본관이야 천 몇백년전 조상의 출신지인거고 그 후손들은 여러 곳에서 집성촌을 이루어 뿌리내려 사는 게 보통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독립운동 명문가로 이름이 높은 이회영은 경주 이씨이지만 그의 고향은 서울이며 독립운동에 쓴 대부분의 가산도 서울에 있었다.[4] 당장 이 문서에도 토사구팽 드립이 이 문장 포함 10번이나 있다. 정작 경제민주화는 이 문장을 포함해도 6번. 뒤에 책 제목까지 합쳐서 7번이라 치자[5] 다만 이해찬은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한 뒤 당선되어 복당한다.[6] 그밖에도 노회찬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최근의 정치 상황에서 경제민주화의 아이콘 같은 분이다. 박근혜 후보가 김종인 위원장을 영입했던 일도 국민들이 경제민주화를 원했기 때문에 잠시 빌려 쓴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문제는 김종인 위원장이 박근혜 후보를 도와준 게 문제가 아니라 박근혜 후보가 경제민주화를 잠깐 활용만 했지 지속적으로 실현하지 못한 게 문제."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정의당은 과거부터 "박근혜 얼굴 마담하시기엔 그 이름 너무 아깝다."#라거나 "박근혜는 재벌과 손잡을 거라면 김종인을 내려놓으라"#고 발언하는 등 김종인을 은근히 탐내는 모습을 보였었다.[7] 대한민국 정치에서 진보 정당은 기반이 취약한데다가 통합진보당 분당 사태로 인해 진보 정당의 이미지가 악화된 점을 고려했을 수 있다.[8] 원래 국민의당 탈당파는 순번을 정해두고 차례차례 탈당하여 더민주를 혼란에 빠뜨리려는 계획이 있었다고 한다. 안철수의 국민의당은 더민주 탈당 인사를 받아들여 궁극적으로 제1야당을 국민의당으로 만들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총선 중에는 더민주 주요 인사에 저격 공천을 하여 낙선시키고, 더민주가 망하면 그 책임은 문재인 대표가 져야 하므로, 차기 야권의 대선 주자는 안철수가 된다는 계산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총선은 폭망하게 되고 야권은 쪼그라들지만 대선에서 국민은 정권 교체를 위해서는 야당 1군데에 표를 몰아주게 될 것이므로, 자연히 제1야당 대표인 자신이 대권 주자로 떠오르게 된다는 논리다. 동교동계 인사 한화갑이 "동교동계 탈당은 더민주당에 대한 원폭투하"라고 괜히 주장한 게 아니다. 진중권 교수는 이를 야권 종말론이라 명명했다.[9] 진중권 교수는 지난 10여년 간 민주당에서 혼란을 계속 일으켰던 사람들이 고스란히 국민의당으로 옮아갔다면서, 신기하게 고름만 쪽 빠진 결과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김종인 대표 영입 이후 국민의당은 기세가 급격히 꺾였지만, 호남에서 압승하고 정당 득표율에서도 더민주를 미세하게 앞서면서 기반을 마련했다.[10] 허나 국민의당은 전라도 이외의 지역에서는 사실상 전멸하는 바람에 중도를 지향하는 제3당 노선을 고수하기가 좀 어려워졌다. 전라도의 반 새누리당 정서는 여전하기 때문에 새누리당과 보조를 맞추자니 전라도의 눈치가 보여 불안하기 때문이다. 반면 더민주는 텃밭에서는 망했지만 그 이외의 지역에선 크게 이기면서 전라도당 이미지를 조금이나마 벗어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전개되었다.[11] 이는 2012년 대선만 봐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2012년이 시작할 무렵만 해도 한나라당의 분위기는 선거 패배를 확신하는 등 몹시 침울했다. (국회선진화법을 제시한 것이 이 무렵이다.) 그러나 민주통합당은 마치 이긴 게 확정된 것 마냥 파벌 싸움 등의 추태를 보였고 그 결과 선거에서 당연하게 망했다.[12] 물론 그 기반은 문재인 지도부가 적법한 절차를 거쳐 사실상 모든 전권을 김종인 대표에게 위임한 이후, 민주당 역사를 통틀어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막강한 권한을 가진 대표가 되었다는 데서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13] 나중에 알려진 바로는 김종인 대표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일부 비대위원들의 월권으로 인한 일이었다고 한다.[14] 이 가설이 맞다고 믿는 사람들은 정청래 전 최고위원이 문재인 전 대표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행보를 보여준 건 맞지만, '공갈 발언' 때문에 문 전 대표를 크나큰 곤경에 빠뜨린 주범이기도 하기 때문에 여기서 '찍혔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만, 정청래 전 의원은 문 전 대표가 자길 구명하려고 노력했었다는 후문을 밝힌 적이 있다. 그리고 최고위원 서열 1위였던 주승용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뒤, 비노 세력이 문 대표에게 사임 요구를 못했던 이유도 서열 2위였던 정청래 전 의원이 대표직 권한 대행을 이어받게 되기 때문이었다.[15] 문재인 전 대표가 호남 선거 결과 때문에 정계를 은퇴해야 한다는 요구가 잠깐 나왔을 때 김종인 대표는 "(문재인 전 대표가) 집에 갈 일은 없다"라고 선을 그었었다.[16] 민주당의 지지가 40%대, 미래통합당의 지지가 30%대인 이상, 미래통합당이 유리해지려면 중도층의 지지를 추가로 받아야 하며, 후일을 위해 전국정당으로 발돋움 해야 한다. 그리고 이건 더민주의 선대위를 뛴 김종인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부분이다.[17] 이번에 미래통합당과 그 외 보수야당들을 구제하는 역할에 성공할 경우, 사실상 이분은 2012년 이후로 대한민국 정치를 혼자서(...) 좌지우지한 게 된다. 이는 민주당계 정당과 보수정당의 이념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은 대한민국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김종인 본인이 이념을 초월한 정치 원로이자 전문가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큰 승리를 이끌어내며 보수정당의 정권창출 가능성을 끌어올리고 20대 대통령선거까지 총괄선대위원장 직함으로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18] 출처: #[19] 출처: #[20] 특히 상임위원회 관련으로 민주당의 일방적인 공세에 주호영이 사퇴를 할 정도로 강력한 반발을 한 상황에서 민주당이 상임위 독식하게 놔둬라 라며 주호영을 설득하여 혼란을 빠르게 수습시킨 것과 당장 상임위를 차지하지 못한 디메리트는 있어도 이 선택으로 인해 민주당의 남탓 행위를 차단하고 민주당의 성과 여부에 따라 책임을 강하게 호소 할 수 있다.[21] 오세훈이 토론회 준비로 바쁠 때도 혼자 오세훈 지원 유세를 다닐 정도였다.[22] 김종인으로서도 기가막힌게 애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뽑아온 것 자체가 김종인의 과거 논란들을 어느정도 감수하고 뽑아온 것이다.[23] 사실상 물건너 간 듯 했던 김종인의 합류는 권성동 사무총장과 김재원 최고위원, 그리고 부인인 김미경 여사의 설득이 주효했던 것으로 밝혀졌다.기사[24] 평가 자체는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는 대선을 이겼지만, 만약 패배했을 경우엔 이준석의 정치생명은 끝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