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6 04:01:45

공산주의 유머/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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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 유머
소련 동유럽 / 동독 북한 중국 기타
정치 경제 언론 신앙

1. 서적이 유죄2. 중소전쟁 13. 중소전쟁 24. 시골 마을5. 건물 철거를 막는 방법6. 낙서7. 중화인민공화국8. 자본주의 도로, 공산주의 도로9. 제로 코로나가 주제가 된 경우
9.1. 선전물 의뢰9.2. 어느 문답9.3. 수용소의 죄수들
10. 중국의 전차11. 초상화12. 가수13. 우마오당이 싸움을 건 사례
13.1. 뭐 믿고 나대긴13.2. 민주화 운동
14. 썩은 정부15. 외교부의 발언을 해석하는 법16. 의용군 진행곡17. 중국사 연구 방법18. 나라를 잘못 태어난 사람19. 중국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되는 법20. 뉴스의 차이점21. 추억22. 메이드 인 차이나?23. 양자역학의 정의24. 패닉25. 이상과 현실26. 시진핑의 권력욕 그 자체가 주제가 된 케이스
26.1. 그리고 후진타오, 장쩌민과 시진핑의 사이에 관련한 유머

1. 서적이 유죄

손권, 유비, 조조가 가족과 동료들과 함께 현대의 베이징[1]을 방문하여 관광하던 중 군대 장성들의 초대로 군대를 시찰하게 되었다. 모두들 좋아했고, 특히 손상향밀덕후였던지라 엄청나게 좋아했다. 한참 구경하던 중, 손권은 자주포를 보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휴… 거 포수레 참 크네. 나한테 이런 포수레가 1대만 있었어도 합비를 공략할 수 있었을 텐데."

유비는 무장헬기를 보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휴… 강철로 매를 벼려서 날린다니… 나한테 이런 강철매 1마리만 있었어도 형주를 되찾을 수 있었을 텐데."

조조는 모주석어록을 읽고 한숨을 푹 쉬었다.

"휴… 나한테 이런 책만 있었더라면 눈치 안보고 주저 없이 황제 자리에 올랐을 텐데…"
이 내용은 소련 유머에도 있다.

2. 중소전쟁 1

중국과 소련 간에 전쟁이 일어났다.

소련군은 기계화 부대로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막아내고 있었다.

전쟁 첫째 날에 소련군이 중공군 포로 1천만 명을 잡았다.

전쟁 둘째 날에 소련군이 중공군 포로 2천만 명을 잡았다.

전쟁 셋째 날에 중국의 모택동이 소련의 브레즈네프에게 전화를 걸었다.

"브레즈네프! 이래도 항복 안 할 텐가?"
1969년 중국-소련 국경분쟁 당시 모스크바에서 돌던 농담이었으나, 현장의 소련군 극동군구 사령관들은 전혀 웃기다고 생각하지 않고 진지하게 우려했던 사안이었다. 수천만 명이나 되는 포로들을 어떻게 먹여 살릴까[2]는 둘째치고 만약 중국이 정말로 수백만 단위의 민간인들을 마구 밀어넣어서 진격하면[3] 여기에 어떻게 대응할지부터가 소련군은 1969년 이전에 전혀 고려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 마오쩌둥은 이와 비슷한 언급을 정말 했었다.

3. 중소전쟁 2

전쟁 첫째 날에 소련군이 30km 진격하고 중공군 1천만을 포로로 잡았다.

전쟁 둘째 날에 소련군이 60km 진격하고 중공군 3천만을 포로로 잡았다.

전쟁 셋째 날에 소련군이 120km 진격하고 중공군 1억을 포로로 잡았다.

전쟁 넷째 날, 소련은 항복했다.
※ 소련이 항복한건 위에서와 마찬가지로 포로가 너무 많아 버틸 수가 없어서다. 그도 그럴게 중공군 1억 4천만명을 먹여살려야 하니… 풀어주면 되는거 아님?
이 숫자가 어느 정도인지 감을 잡기 위해 설명하자면, 소련의 인구는 3억 수준이었다. 결국 이 유머에서의 소련은 전쟁 4일만에 전인구의 절반분의 인구를 먹여살려야 하는 처지에 놓인 거다. 이러니 물자가 바닥나고 보급으로도 충당할 수 없는건 당연지사. 다만 소련이 아닌 인도라면 정반대로 심정을 이해할수도. 그러나 유머는 어디까지나 유머이고, 현실적으로는 소련군이 진짜로 그렇게 상대편 포로 인권까지 챙겨줄 정도로 신사적일지도 고려해봐야 한다.[4] 그리고 아무리 중국이라도 1억 4천만 규모의 병력을 징집할 가능성은 없고, 심지어 천만 단위로 병력을 보유한 적도 없다. 오히려 정예화를 추구하면서 병력 규모를 지속적으로 감축해왔다.

4. 시골 마을

저우언라이 총리와 류사오치 부주석이 어느 마을에 도착해 마을의 원로를 만났다.

류사오치: "이 마을에 18세 이상의 처녀가 있는가?"

원로: "아뇨, 없습니다."

류사오치: "그렇다면 16세 이상의 처녀는 있겠지?"

원로: "아뇨, 그들도 없습니다."

저우언라이: "음… 류사오치 동지[5], 이 마을은 마오 주석께서 이미 다녀가셨었나 보오."
※ 실제로 마오쩌둥은 여자를 무척 밝혔던 인물로, 생전에 여러 종류의 성병을 앓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늙어 죽을 때까지도 처녀와 잠자리를 하면 수명이 길어진다고 믿었다.

5. 건물 철거를 막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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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중국에서 건물 철거를 막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B: 시진핑 주석의 사진으로 도배하면 됩니다.
※ 놀랍게도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반분열국가법 참고. 결국 시진핑 사진을 흠집 하나 나지 않도록 전부 일일이 조심히 다 떼어내서 겨우겨우 철거했다고 한다. [6]

6. 낙서

"中华人民共和国 民主少一点"

직역: 중화인민공화국은 민주화가 조금 부족하다.
진의: 중화인민공화국은 (독재적인) 백성의 왕이다.
천안문 6.4 항쟁(천안문 사태) 당시의 낙서라고 한다. 主에서 점 하나가 빠지면(少一点, 점 하나가 적다) 王이 된다.

7. 중화인민공화국

출처: #
베이징의 중학교에서, 선생이 학생에게 질문을 건넸다.

선생님: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나라는 어디입니까?"

학생: "중화인민공화국입니다."

선생님: "세계에서 가장 경제가 발전한 나라는 어디입니까?"

학생: "중화인민공화국입니다."

선생님: "세계에서 가장 문명이 발달한 나라는 어디입니까?"

학생: "중화인민공화국입니다."

선생님: "세계에서 가장 스포츠가 번성한 나라는 어디입니까?"

학생: "중화인민공화국입니다."

선생님: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어디입니까?"

학생: "중화인민공화국입니다."

선생님: "자, 그럼 중화인민공화국이 얼마나 훌륭한 나라인가, 잘 알겠지요?"

학생: "네!"

(수업이 끝나고)

학생: "훌쩍훌쩍"

선생님: "왜 울고 있나요?"

학생: "저도 그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나고 싶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자유롭지 않고[7] 경제가 최고로 발전하지도 않았고[8] 문명이 최고로 발달하지도 않았고[9] 스포츠가 최고로 번성하지도 않았고[10] 훌륭한 문화를 가지고 있기는 했었으나 스스로 파괴해 버렸다.

※ 북한 유머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8. 자본주의 도로, 공산주의 도로

어떤 도로에 "자본주의 도로"와 "공산주의 도로"라는 이정표가 붙은 갈림길 하나가 있었다.

맨 처음 미국 대통령이 갈림길에서 표지판을 보더니, 기사에게 자본주의 도로로 가라고 했다.

한참을 잘 달리다가 갑자기 나타난 웅덩이와 기름구덩이, 심지어는 못까지 박힌 곳이 있어 겨우겨우 달리다가 그만 타이어가 터져서 멈춰버렸다. 미국 대통령은 기사에게 타이어를 교체하라고 지시했고, 타이어를 바꾸자 금방 다시 도로를 쌩쌩 달려가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이 갈림길에 소련 서기장이 도달했다.

소련 서기장은 공산주의 도로로 가라고 명령했다. 도로에서 잘 주행하다 공사가 안 된 진흙길에 빠져서 더 이상 운전해갈 수 없게 되자, 소련 서기장은 기사에게 차를 돌려서 자본주의 도로로 가라고 했다.

그 뒤에 온 중국의 주석. 갈림길에서 표지판을 보더니 기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표지판을 서로 바꾸고, 바뀐 공산주의 도로로 가세."


이 유머를 한번 더 뒤틀어놓은 버전도 있다.
마오쩌둥, 덩샤오핑, 시진핑이 갈림길에 도착했다. 길의 가운데에는 표지판이 서 있는데, 왼쪽은 사회주의, 오른쪽은 자본주의라 써져 있었다.


마오쩌둥은 생각도 해보지 않고 왼쪽 길로 걸어갔다.


덩샤오핑좌우의 표지판을 바꿔놓고는 오른쪽 길로 걸어갔다.


시진핑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9. 제로 코로나가 주제가 된 경우

9.1. 선전물 의뢰

봉쇄방역기간 동안, 당국은 화가에게 『 바이러스와 싸우는 인민대중 』 이라는 제목의 유화를 의뢰했다.

화가는 딱히 원치는 않았으나 그 의뢰를 맡았다.

그림이 완성된 후 위생건강위원회의 간부가 검수를 하러 왔다가, 크게 놀랐다 한다.

왜냐하면 그림에는 그저 도시의 중심가만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간부가 분노하며 묻기를, '이 그림 속에 그린 게 뭐지?'

"난징둥루입니다." 화가가 답했다.

'여기 녹색 부분은?'

'"그야 길가의 들풀이죠.'

'인민대중은 어디에 간 건가?'

"인민군중은 방역조치 중입니다."

9.2. 어느 문답

문 : 동태청령예술인가? 과학인가?

답 : 예술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과학은 아니다.

문 : 왜 그런가?

답 : 만일 과학이라면 최소한 모르모트로 실험해 보지 않겠는가?

9.3. 수용소의 죄수들

본래 이런 짧은 풍자 유머는 같은 플롯을 다른 대상으로 돌려 쓰는 경우가 많은데[11]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무려 수십년 전에 유래한 소련 유머를 아래처럼 현재의 중국에 적용시킨 경우가 존재한다.
  • 포포프 드립과 비교해 보자. 여기서 대백(大白)은 하얀 방역복장을 뒤집어 쓴 방역요원을 속되게 부르는 말인데, 포포프 드립이 여전히 중국에서는 현역(!)임을 알 수 있다.
감옥에 갇힌 세 사람이 할 일이 없어서, 서로 감옥에 들어온 이유를 얘기했다.

"나는 대백(大白)에 반대했기 때문에…" 첫 번째 사람의 말이다.

"나는 대백(大白)을 지지했기 때문에…" 2번째 사람의 말이다.

3번째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대백(大白)이어서…"

3명의 면직당한 간부들이 진성감옥(秦城監獄)에서 자신이 면직당한 이유를 얘기했다.

첫 번째 사람이 말한다. "나는 항상 새롭고 효과적인 정책을 집행했다. 그랬더니, 내가 당의 앞에 나서서 간다고, 권력 야심이 있다고 말했다."

2번째 사람이 말한다. "나는 항상 정책중 집행가능한 범위내에서 집행했다. 그랬더니 나는 당의 발걸음을 따라오지 못하고, 중앙의 시정방침을 망의(妄議)한다고 말했다."

3번째 사람이 말한다. "나는 항상 정책이 나오면 바로 따라서 집행했다. 그랬더니 내가 소식이 정통하다면서, 분명히 상사와 결탁하여 소집단을 이루어 정치적으로 도모하고 있다고 말했다. "

10. 중국의 전차

중국이 베트남을 공격했으나, 계속해서 털려 결국 패전했다.

아래 내용은 중국인민해방군 병사들의 잡담이다.

"위대한 중화인민공화국 인민해방군이 고작 월남에게 지다니!"

"이게 다 우리가 보낸 전차부대 탓이래."

"왜?"

"글쎄, 마오 동지의 대약진운동으로 경제가 다 망해버리는 바람에 베이징 짚차[12]를 개조해서 전차를 만들었다지 뭐야."
실제로 중국은 문화대혁명의 여파로 현재까지 59식 전차를 현역으로 운용중이며, 중월전쟁에서는 62식 전차를 들이밀었다가 폭죽처럼 터져나갔다. 기껏 점령한 지역은 이미 베트남군이 미제 트럭, 장갑차와 헬기, 수송기로 모조리 도망쳐 텅텅 비었었고, 부비트랩, 포격과 공중폭격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11. 초상화

"여기 베이징에서 나에게 100만 위안을 주면 내가 모든 걸 해결해 줄 수 있지."

"그렇다면 제가 100만 위안을 드릴 테니, 천안문광장에 제 아버지의 초상화가 걸리게 하실 수 있습니까?"

"흠… 사흘 안에 해결해 주도록 하지."

사흘 후, 천안문광장의 초상화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이에 화가 난 의뢰인이 화가에게 따지자 화가가 한 말.

"아니, 저한테 사기를 치신 겁니까?"

"자, 자, 너무 화내지 말고 이걸 보게나."

건네받은 것은 자신의 호적부, 거기에는 마오안잉이라고 적혀져 있었다.
돈을 준 사람의 호적을 마오쩌둥의 아들로 위조해서 아버지의 초상화가 천안문광장에 걸리도록 한 것이다.

12. 가수

어떤 관료가 베이징의 노래방에서 자랑을 하였다.

"노래 아무거나 시키보게. 가수가 여기 베이징에 있기만 하다면 나는 그 가수를 여기에 불러와서 그 노래를 부르게 할 수 있지."

곧바로 옆에서 한 사람이 <희망의 전야에서>라는 노래를 골랐다.
<희망의 전야에서>의 가수는 시진핑의 부인 펑리위안이다.

13. 우마오당이 싸움을 건 사례

13.1. 뭐 믿고 나대긴

홍콩에서 일어난 민주화 시위때문에 한국인중국인이 싸움이 났다.

중국인: 근데 니네 뭘믿고 그렇게 나대냐? ㅋㅋ어린새끼들이라서 진짜 중국건들면 좆되는걸 모르는구나?

한국인: 뭐믿고 나대긴ㅋㅋㅋㅋㅋ 대한민국 국적 병신아ㅋㅋㄱ. 가지지 못한거 ㅋㅋㅋㄱㅋ

출처 아카이브
2019년 하스스톤 홍콩 시위 지지 프로게이머 징계 사건으로 인해 올라온 에피소드.

13.2. 민주화 운동[13]

2010년대, 어느 온라인 게임에서 중국인 유저와 한국인 유저가 채팅을 통해서 싸우고 있었다

분노한 한국인 유저는 중국어로 "천안문 6.4 항쟁"이라고 적었다

당황한 중국인 유저도 이내 침착하고 반격을 하였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그러나 한국인 유저는 침착하게 바로 '광주 민주화운동을 본받아 광저우에서도 혁명[14]을 일으키고 싶다는 거구나?'라며 반격을 했고, 중국 유저는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워 썬더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원본. 댓글에 5.18을 부정하거나 왜곡하는 망언이 있으니 주의. 중국에서 천안문 항쟁은 언급만 해도 코로 마라탕을 먹어야 하지만, 한국에서 광주항쟁은 헌법 개정안과 교과서에 역사로 수록된다. 오히려 5.18을 갖고 폭동이라는 등의 주장을 하거나 부정하는 것 자체가 일베충이나 정신 나간 사람, 망언 제조기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 없다.
5.18과 천안문 항쟁 둘 다 결과상으로는 실패했지만, 7년 후 결국 군사 독재 정권을 뒤집고 민주화에 성공한 한국과 달리, 여전히 독재의 치하에 있는 중국의 현실을 시사하는 부분. [15] 더불어 중국인이 직접 민주화 운동을 거론했으니 이것이야말로 치명타 또는 자멸수라는 드립이 쏟아졌다.
여담으로 광주광역시광저우시는 한자 발음 상으로는 둘 다 광주로 같아서 위의 말장난식 반격이 가능했다. 신해혁명이 시작된 곳도 광저우시이고, 지금도 광동성은 반골들의 지역이라 중국 공산당에게 홀대받는 지역으로도 유명하다. [16]

14. 썩은 정부

어떤 사람이 천안문 광장에서 화난 목소리로 크게 소리쳤다.

"정부는 썩어빠졌다!!!"

곧바로 경찰에 연행된 그는 "구체적으로 어느 정부가 썩었다고 말 안 했는데요"라고 항변했다.

경찰의 대답이 걸작.

"내가 여기서 하루 이틀 일했냐? 어느 정부가 썩었는지 내가 모를 것 같아!?"

  • 위구르족 탄압을 은연중에 암시하는 버전도 있다. 해당 항목을 적절히 띄워놓고 읽어보자.
한 사람이 어떤 도시의 우루무치둥루[17] 거리를 지나고 있는데, 경찰은 단지 거리를 지나고 있는 그를 국가전복죄 혐의로 체포했다.

그 사람이 부르짖었다. " 이유도 없이 왜 나를 체포하는 거냐? "

경찰은 차갑게 비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너는 네가 왜 이 길로 지나가는지 내가 모를 줄 알았냐? "

어느 사람이 경찰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존경하는 경찰 동지. 내가 신고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국가에서 제공한 사기방지 APP은 아무 쓸모가 없는 것 같습니다.'

경찰이 답하기를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나요?'

"제 핸드폰에 인민일보 APP이 설치되어 있는데, 신고가 되지 않습니다.

15. 외교부의 발언을 해석하는 법

문 : 중국에서 안경을 어디에 팔면 가장 좋을까?

답 : 외교부. 항상 '눈을 비비고 기다리겠다(拭目以待)' 고 말하잖아.[설명]

문 : 중대사고의 책임관계는 어떻게 판단하면 좋을까?

답 : 간단하다. 책임은 모두 미국 측에 있다.

16. 의용군 진행곡

한 외국인이 의용군 진행곡을 듣다 물었다.

"노래 가사에서처럼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고 일어난 자들은 있었나요?"

그러자 중국인이 한숨을 쉬며 답했다.

"천안문에 있었는데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심각한 수준의 언론통제로 외신을 빼면 당시 중국 내에서는 그다지 소식이 빠르게 퍼지지는 못했다. 알고 있더라도 천안문 항쟁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순간 중국공산당에 의해 반역죄인으로 몰락해버리기에 대답을 매우 꺼린다.

위의 질문에 대답하자면 1989년에 있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학살이라는 잔혹한 결과로 이어지면서, 항쟁에 가담한 시민군이 참패하고 학살을 주도한 중국공산당인민해방의 탈을 쓴 학살군대의 초압승으로 끝났다. 천안문 항쟁 이후 현재도 중국 각지에서는 민주주의 운동이 벌어지지만, 공산당의 무자비한 탄압과 검열에 의해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을 뿐이다.

17. 중국사 연구 방법

한 외국인 역사학자가 중국의 역사학자에게 "본토에 연구차 방문할 수 있냐"고 묻자 중국인 역사학자가 답했다.

"그렇게 연구거리 찾아서 방문하지 않아도 됩니다. 당나라일본에서[19], 송나라베트남에서, 원나라몽골에서[20], 명나라한국에서[21], 청나라홍콩에서, 중화민국대만에서,[22] 마오주의네팔에서, 대약진운동문화대혁명북한에서 연구하면 됩니다."
문화대혁명 때 문화나 유적들을 다 부숴버리는 바람에 그 흔적이 외국에 더 많다는 우스갯소리. 실제로 유교는 중국이 발상지임에도 불구하고 문혁 때문에 공자의 묘를 포함한 수많은 유적들, 사료들이 파괴되어 한국이나 대만에 남은 자료들을 토대로 연구되고 있다.[23]

2007년에 한 일본인 중국학자가 이와 비슷한 발언을 했다는 루머가 중국에 퍼져 중국 여론이 분노했던 바 있다. 그러나 그 일본인 학자는 실제로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애초에 중국인의 자조적인 유머가 출처.

18. 나라를 잘못 태어난 사람

역덕이 나라를 잘못 태어난 사람이 누구인가를 논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역덕이 "모택동이 나라를 잘못 태어났다"고 말했다.

역덕 A :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데?
역덕 B : 인도에서 문화대혁명을 했으면 카스트 제도를 없애고 인도를 구한 영웅이 됐을 텐데, 중국에서 태어나 뛰어난 문명을 다 때려부순 악마가 됐으니까.
※ 당연하지만 인도에서 문화대혁명을 했다고 해서 그게 순수한 구습 타파라는 긍정적인 효과를 거둔다고 볼 수 없다. 애초에 문화대혁명의 의도와 결과는 그게 아니기 때문. 물론 인도와 힌두교 문화권에서 이런 이유로 정말 마오주의 게릴라 세력이 강하긴 하다.[24] 네팔은 아예 혁명 이후 다당제에서 집권했다. 위 문단에 언급된 네팔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 물론 문화대혁명 같은 걸 하고 다니는건 아니라고 한다.

19. 중국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되는 법

광전총국이 식품의약안전을 책임지게 하고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에서 매체검열을 담당하면
중국은 살기 좋은 나라가 된다.

해석하자면, 식품 안전관리는 광전총국에서 사소한 것까지 검열하듯 철저하게 하고, 중국의 식품이 아닌 언론을 허술하게 관리하면 잘 될 것이라는 의미다. 물론 현실은 다르다. 중국의 식품의약안전 문제는 단순히 관리를 허술하게만 하는 게 아니고 불필요하게 엄격한 기준과 처벌을 하는 것도 있기 때문. 사례

20. 뉴스의 차이점

문 : 미국중국뉴스에는 어느 차이점이 있나요?

답 : 미국의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은 "현장의 보도에 따르면" 이고, 중국의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은 "또다시 승리했다." 이다.

21. 추억

중국인이 좋았던 시절을 추억하며 외쳤다.

"응답하라 1997!"

그러자 홍콩인이 화를 내며 따졌다.

"니들이 그동안 뭘했다고 응답은 응답이야!"

22. 메이드 인 차이나?

어느 국제박람회에서, 중국 항공기업에서 파견나온 직원이 중국에서 생산한 비행기를 흥분한 상태로 열심히 소개하고 있었다.

어느 미국인이 이렇게 질문했다. "구체적으로 중국 기술이 사용된 부분이 어디인가?"

그 직원은 이렇게 대답했다.

"비행기 머리부분의 외형설계, 비행기 몸체부분의 외형설계, 비행기 꼬리부분의 외형설계."

23. 양자역학의 정의

물리학 수업 때 학생이 교수에게 질문한다. "교수님, 양자역학이 무엇인지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교수가 대답한다.

"그것은 간단하다. 네가 이 문제를 외교부에 물어보면 "그건 정치문제다. 내가 대답할 수 없다." 라고 대답할 것이고,

네가 이 문제를 국무원에 물어보면 "그건 외교문제다. 내가 대답할 수 없다. " 라고 대답할 것이다.

24. 패닉

파일:ccp3장사진공산주의유머.webp
톈안먼광장에 학생들이 모였다 (CCP : 패닉)
학생들이 '사회주의 음악'인 인터내셔널가를 열창한다. (CCP : 휴…)
가사가 일어서서 지배 계층을 무너트리는 노동자들에 관한 것이다 (CCP : 패닉)
천안문 사태 관련 유머.

25. 이상과 현실

이상(위에서 아래로 읽는다.)

교사: 아드님이 전체 반에서 1등을 차지했습니다.
학부모: 감사합니다.(돈봉투를 건넨다.)
교사: 당신은 나를 해치고 있습니다.

의사: 다행히 환자가 위험한 순간은 넘겼습니다.
환자가족: 감사합니다.(돈봉투를 건넨다)
의사: 당신은 나를 모욕하는 겁니다.

공무원: 당신의 심사허가절차가 끝났습니다.
신청인: 감사합니다.(돈봉투를 건넨다)
공무원: 당신은 나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교통경찰: 축하합니다. 운전면허 시험에 통과했습니다.
응시생: 감사합니다. (돈봉투를 건넨다)
교통경찰: (경례를 하며) 나를 존중해 주십시오

현실(아래에서 위로 읽는다)
  • 꽌시를 극단적으로 요약한 유머라 할 수 있다. 결국은 모조리 뇌물로 귀결된다는 의미. 원래는 중국 정부가 내놓은 반부패 취지의 공익광고였으나 순서를 뒤바꾼 패러디 버전이 오히려 유행을 탔고, 원본은 결국 자체적으로 검열당해 버렸다.

26. 시진핑의 권력욕 그 자체가 주제가 된 케이스

문 : 중국에서 가장 긴 정치유머는 무엇인가요?

답 : 시진핑 동지의 임기.

문 : 세계의 카레이싱계에서 누가 가장 용감한가요?

답 : 당연히 시진핑 동지이다. 그가 차를 몰면 항상 가속 페달만 밟기 때문이다.[25]

문 : 중국에서 가장 하기 쉬운 일이 무엇인가요?

답 : 국가주석. 초등학생도 할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연명으로 시진핑에게 암병원을 영도해 줄 것을 청했다.

시진핑은 사양했다. "동지들의 나에 대한 지지에는 감사하나, 나는 암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

과학자들이 말했다. "친애하는 시진핑 동지! 그저 경제를 지휘했던 것처럼 암세포를 지휘해 주시면 됩니다. "

새로운 비서가 밤을 새워, 아주 뛰어난 문장으로 글을 써서 왕후닝에게 보냈다.

그런데 왕후닝은 그것을 본 뒤 비서에게 돌려보내며 다시 쓰라고 한다.

그 비서는 왕후닝을 찾아가서, 자신의 원고가 이렇게나 출중한데 어째서 다시 써야 하느냐며 따졌다.

왕후닝이 답하기를, "동무가 쓴 글이 너무나 출중해서 다시 쓰라고 한 것이다. "

26.1. 그리고 후진타오, 장쩌민과 시진핑의 사이에 관련한 유머

후진타오가 당대회에 참가했을 때, 시진핑에게 이런 말을 했다. '솔직히 말해서 내게 걱정되는 한가지 일이 있다.'

시진핑은 귀를 기울여 들었다. '말씀해 보시지요, 친애하는 후진타오 동지.'

후진타오가 말했다. '내가 만일 정치에 참여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동무을 따를까?'

시진핑이 말했다. '그들은 반드시 나를 따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동무의 뒤를 따라가야 할 테니까.'

그 말이 들리자마자 곁에 있던 경호원들이 후진타오를 밖으로 끌고 나갔다.

한 사람이 인민일보의 편집장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 자신의 정치적각오를 제고할 수 있을까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누가 지도자인지 찾아낼 방법이 있을까요?"

편집장이 대답한다. "아주 간단하다. 후진타오 동지가 돌아가시면 된다."

질문한 사람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를 못하자, 편집장이 보충설명을 하는데,

"그렇게 되면, 오직 지도자의 사진만 컬러로 실리지 않겠나?"
  • 2번째 상황은 장쩌민이 사망한 후 1주일간 웹사이트며 여러 방송사들이 사진 등을 흑백으로 바꾼 사건을 풍자한 것이다.



[1] 여담으로 유비의 고향인 탁군 탁현은 현재의 베이징 줘저우시이다.[2] 포로 학살은 제네바 협약에 위배되는 중대한 전범행위라서, 무슨 일이 있어도 포로는 잘 살려둬야 한다.[3] 당장 대한민국부터가 6.25 전쟁 당시 인천 상륙 작전 이후 최전방인 압록강두만강까지 진출했지만 중공군의 50만 병력에 의해 38선 밑으로 전선이 후퇴하게 되었을 정도다.[4] 다만 포로 인권을 챙겨주는 것과 목숨은 살려주는 것은 별개다. 즉 아무리 학대를 일삼아도 목숨은 챙겨준다면, 당연히 앞에서 말한대로 1억명 이상의 사람들의 식량은 챙겨줘야 한다. 이게 싫다고 해도 다른 방법이 그리 많지는 않은데, 중국으로 다시 풀어주면 중공군이 회복되는 꼴이고, 러시아 영토에 풀어주면 다 러시아가 먹여살려야 하고, 굴라그 같은 곳에 집어넣어도 마찬가지. 그렇다고 포로 학살도 좋은 선택지는 아닌데, 나치 독일도 2~3년간 학살한 사람이 천만 단위가 될까말까 하는 수준이며, 결정적으로 이딴 짓을 하면 소련의 이미지는 시궁창이 된다.[5] 북한은 아랫사람 한정으로 순우리말인 동무라는 표현을 쓰지만, 중국에서는 공산주의적인 호칭이 동지밖에 없다. 윗사람 아랫사람 대상을 따지지 않고 모두 사용할 수 있다.[6] 그 외로 배틀필드 등의 게임에서 방패를 시진핑 얼굴로 했더니 중국 유저들이 공격을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다.[7] 이 쪽은 중화민국, 미국, 대한민국, 일본, 독일, 스위스, 남아공 쪽이 정치적, 사회적으로도 압도적으로 자유롭다.[8] 이 쪽은 미국이 압도적인 1위다.[9] 황하 문명까지 친다 해도, "가장" 이라는 표현을 써서 1위로 치켜세워주기는 어렵다. 21세기 기준으로는 미국이 압도적인 1위.[10] 이 쪽은 미국영국이 스포츠를 크게 번성시키거나 고안했다.[11] 예시로 변호사 유머 항목의 변호사를 비꼬는 유머들은 국내에서는 주로 국회의원 같은 정치인을 풍자하는 유머로 변형하여 사용하며, 고전 유머인 티코 시리즈 또한 동독의 트라반트 유머에서 유래한 것이다.[12] BJ212. 중국의 군용차로, GAZ-69를 대체하기 위해 만든 자동차이다.[13] 실전 중국어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14] 혹은 민주화 운동.[15] 사실 천안문 이전에 한국은 민주화가 되어 있었다! 한국의 민주화는 1987년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고, 중국의 천안문 항쟁은 1989년에 일어났다.[16] 다만 광주광역시의 한자 뜻은 '빛 광(光)', 고을 주'인 반면 광저우시의 한자 뜻은 '넓을 광(廣)', '고을 주'로 다르다. 물론, 대한민국의 廣주시도 있다.[17] 우루무치둥루 거리는 중국 각지에 각 지역 최대도시의 이름을 붙인 거리 이름일 뿐이다.[설명] 외교부에서 상투적으로 쓰는 표현으로, 拭目以待이라고 구글에 검색하는 순간 중국 외교부 대변인(자오리젠)이 질문하는 기자를 지명하는 사진을 목도할 수 있다.[19] 17세기 에도 막부 설립 이전까지 매우 긴 세월동안 일본의 수도 역할을 한 교토가 당나라의 장안을 벤치마킹했다고 할 정도였다.[20] 애초에 원나라는 몽골 제국이 중국 지역에 세운 국가이다. 비슷한 예로 슬라브 지역에서는 킵차크 칸국이 몽골 제국의 후예국가로 세워졌다.[21] 조선 왕실이 명나라를 황제국으로 대접하며 명나라의 관습을 받아들인 것 때문.[22] 하지만 어폐가 살짝 있는데, 중화민국이(당시 중화민국 국민정부) 국공내전에서 패퇴하여 대만 섬으로 도망치는데 1970년대에 소련중공이 압박 넣어서(2758호 결의안) 지금의 대만이 된 것이다. 말 그대로 대만의 정식 국호는 중화민국.[23] 농담삼아 대한민국이 소중화의 위업을 달성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유교에 대한 유물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국가가 대한민국이기 때문.[24] 대표적인 게 낙살라이트.[25] 시진핑의 별명 중에 '총가속사(總加速師)' 가 있는데 이걸 가지고 비꼰 것이다. 구글에 바로 쳐보면 알겠지만 절대 좋은 의미가 아님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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