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4-26 20:30:47

B-24

파일:attachment/B-24/b24aerial.jpg

Consolidated B-24 Liberator
제원

전체길이 : 20.43m
전체 폭 (날개포함) : 33.53m
전체 높이 : 5.49m
자체 중량 : 14,790kg , 최대 이륙중량 29,510kg
최고 속도 : 467km
상승 한도 : 28,000 ft. (8,540 m)
항속 거리 : 3450km
엔진/마력 : P&W R-1830-65 14실린더 1200마력 엔진 x4
승무원 :7-10명
무장 : M2 12.7MM 기관총 10정, 폭탄 5800kg

1. 개요2. 개발/특징3. 단점4. 세부형식 및 파생형
4.1. 해군판 B-24. PB4Y-2 프라이버티어
5. 실전기록
5.1. 대서양 전투5.2. 유럽 전선
5.2.1. 플로이에슈티 공습
5.3. 태평양 전선5.4. 전투지원, 비전투임무 수행5.5. 2차대전 종전 후
6. 둘러보기

1. 개요


B-24 리버레이터란 걸출한 폭격기가 있는데 혹시 아십니까?

아니요. B-17는 많이 들어봐서 알겠는데 리버레이터요? 모르겠네요.

- 1943년 컨솔러데이트드사(B-24 제작사)의 설문조사에서
B Dash Two-crash Four (추락기 B-24)
(B-to crash for 동음이의어 말장난)
- 1944년 미 육항대의 어떤 B-17 승무원이.
독일군은 B-24를 튼튼했지만 둔해서 돼지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걸 격추시키는 BF-109를 살인기계,양키 도살자라고 불렀다.

- 루프트바페 지상요원

많은 사람들은 미국의 폭격기라 하면 B-17B-29를 꼽지만, 사실 미군 폭격기중에서 가장 많이 생산된 폭격기는 바로 B-24였으며 무려 18,000여대 이상 생산되어 서유럽, 지중해, 태평양, 남중국해 그리고 소련의 하늘에 이르기까지 제2차 세계대전 중의 모든 하늘을 날았다. 특히 태평양에서는 오히려 B-17을 밀어내고[1] 미 육군의 주력 폭격기가 되는 등, 2차 대전에서 미군이 참전한 모든 전쟁터의 하늘을 날았다.

폭장량, 항속거리, 속력 등의 성능 또한 B-17보다 앞서있었고, 디자인 또한 매우 현대적으로 되어있었다. 하지만 저 설문조사에서 보이듯이 대중적인 인지도는 처참했고, 당대 미국인 뿐만이 아니라 현대의 여러 밀리터리 커뮤니티에서도 마찬가지. 결국은 2인자라는 죄 하나 만으로 콩라인이 되었지만 B-29까지 끌어들이면 3등으로 떨어진다. 다만 리버레이터는 B-17보다 상승한도가 낮았기에 강력한 대공망을 지닌 독일을 피해 태평양을 주로 날았지만 미군 폭격기 부대의 대들보 역할이나 다름없었으니 그야말로 주목받지 못한 조연인 셈이다.

2. 개발/특징

콩라인 아니랄까봐 B-24의 개발은 B-17의 부흥에 영향을 받은 바가 크다. 1938년 미 육군 항공대는 컨솔러데이트드사에게 "프로젝트 A"에따라 B-17의 면허생산을 요구했다. 그러나 컨솔러데이트드사는 "내가 B-17보다 더 좋은거 만들어 줄게"라고 역제안을 했고, 미 육군항공대는 이런 당돌한 주장을 받아 들였다.

콘솔러데이티드사는 그 이전에도 PBY 카탈리나 비행정[2] 등으로 어느 정도는 대형항공기 및 군용항공기 개발에 대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었고, 또 프로젝트 A 자체가 미 군수 공장 산업 부흥의 목적도 띄고 있는 계획이었기에 단기간에 시제품을 제출할 것을 요구받고 개발에 착수한다.

1939년 1월 20일 원형 설계안 "Model 32"가 완성되었고 이것을 검토한 미 육군 항공대는 같은해 3월 30일 "XB-24"로 명명했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12일 샌디에이고에 위치한 린드버그 비행장에서 초도비행을 했다.

개발과정에 역경도 없었고 재원 문제도 없었고 외부 압력이라든지 이상한 사태가 벌어진다든지 하는 일도 없이 매우 순탄하게 개발이 완료된 것이다! B-17은 추락하고 이상한 태클걸리고 보잉이 거의 망할 지경까지 갈 정도로 코피터지는 경쟁을 했던 반면 컨솔러데이티드 사의 XB-24는 아무 장애없이 개발에 성공하고 채택된 것이다! 물론 콘솔러데이티드 사의 사전 준비가 철저했었기 때문이지만.

모습을 드러낸 B-24는 보잉의 B-17과 비교해서 매우 컴팩트한 크기였다. 크기도 작고 날개면적도 좁았던 것이다.

초기에 제작된 프로토타입의 속도는 미 육군이 요구했던 480Km에 못미쳤는데, 이 때문에 본래 쓰기로 한 엔진에서 동력을 공급받는 과급기(super charger)가 달린 R-1830대신 터빈으로 작동하는 터보방식의 과급기(turbo-super charger)가 달린 R-1830으로 변경하였다. 이 외에도 수평 꼬리날개 폭이 60cm가량 넓어지고 속도측정용 프로브(pitot tube)도 날개에서 동체쪽으로 옮겨지는 등, 몇가지 설계 변경이 이뤄지면서 B-24는 군의 요구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었다.

파일:attachment/B-24/triland.jpg

삼각 착륙장치

앞서말한듯이 B-24의 설계는 시대를 앞서 있었는데, 데이비스 날개와 삼각 착륙장치가 그것이다.

데이비스 날개(Davis Wing)는 1937년, 컨솔러데이티드사의 사장인 류븐 H 플릿(Reuben H. Fleet)이 항공 기술자인 데이빗 R 데이비스(David R. Davis)의 설계조언을 받으면서 탄생한것이다. 데이비스는 그 자신이 프리랜서 기술자였기에 맡는 프로젝트에 따라 다양한 요구사양을 받았고, 그래서 그는 자신만의 공기저항이 가장 적은 유선형(물방울) 형태의 에어포일을 먼저 설정해 두었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이 에어포일 형상을 적절히 변형시켜 설계하는 방법이었는데, 일반적으로 다른 날개꼴에 비하면 앞뒤 길이가 좁고 좌우 폭이 넓은 대신 날개가 두꺼워졌다. 이 방식은 날개가 두꺼워서 그 안에 연료를 탑재하거나 혹은 날개에 엔진을 달 구조물을 설치할 공간이 넉넉하여 좋았으며, 그러면서도 기존 날개꼴에 비하면 공기저항도 작고 양력효율도 좋았다.[3]

세발 자전거식 착륙장치(Tricycle landing gear)는 기존의 테일휠(Tail Wheel)방식이 가지고있던 착륙시나 택싱시의 문제점을 개선한 것이다. 기존 항공기들이 날개 근처의 큰 바퀴로 기수를 들고, 꼬리를 작은 바퀴(테일 휠)로 끌고 다니던 방식을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큰 프로펠러가 땅에 닿지 않게 하기 좋고, 항공기 이륙시 기본적으로 기수가 들린 형태가 되어서 이륙거리를 짧게 하는데 좋은 이점이 있었다. 그러나 지상에 있을 때 기본적으로 기수가 위로 들리다보니 조종사가 활주로와 앞을 보기 불편하였고, 착륙시에도 자연스레 기수를 들어야 하다보니 항공기가 갑자기 양력이 커져서 다시 튀어오르는 등의 문제점이 생기기 쉬웠으며, 착륙을 위해 급정거시 잘못하면 항공기가 앞으로 고꾸라지거나[4] 혹은 이륙을 위하여 활주할 때 꼬리의 바퀴가 작다보니 제대로 방향을 잡아주지 못해 갈짓자로 꼬리가 왔다갔다 하는 문제점이 발생하기 쉬웠다. 반면 세발 자전거식 착륙장치는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였기에 당시에도 몇 몇 항공기들이 선구적으로 쓰기 시작하였으며, B-24도 이러한 신식 시스템을 쓴 것이다.

그밖에 독특한 쌍수직 꼬리날개 또한 주요한 특징이다. H형 꼬리날개라고도 하는 이것은 설사 한쪽 꼬리날개가 파괴되어도 반대편에 수평꼬리날개와 수직꼬리날개가 남아있으므로 어떻게든 비행자세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었기에 생존성면에서 좋았다. 또한 수직꼬리날개가 수평꼬리날개 끝부분을 막아주는 형태가 되는데 이렇게 되면 수평꼬리날개의 효율이 높아져서 수평꼬리날개의 크기를 상대적으로 작게 만들어도 되었으므로 결과적으로 중량/공기저항 감소에 도움이 되었다. 더불어 쌍발 이상의 항공기는 이렇게 수평꼬리날개 끝에 수직꼬리날개가 오게 하면 자연스레 수직꼬리날개가 프로펠러에 의해 만들어지는 강한 바람 뒤쪽에 놓이게 되는데, 덕분에 수직꼬리날개의 효율이 높아져서 수직꼬리날개의 크기 역시 줄이는데 도움이 되었다.[5]

B-24D 후기형부터 장착된 동체 하부 격납식 볼터렛 또한 특징인데, B-17의 볼터렛은 동체 바깥으로 툭 튀어나와 있지만 B-24의 터렛은 하부에 격납되어 있어 필요할때 밖으로 사출되었다. 이러한 방식은 순항중인 B-24의 공기저항을 줄이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1939년 2월 ,4월 8월달에 총 46대의 리버레이터를 구매했고 생산이후 영국군이나 프랑스군에게 수출된 정도였지만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 벌어진 후 대량으로 발주된다.

B-24의 생산은 제조본사인 컨솔리데이티드사의 샌디에이고 공장(6,724대)과 포트워스 공장(3,034대), 더글라스의 툴사공장과 오클라호마공장(966대), 포드의 위 로란공장(6,792대), 마지막으로 노스 아메리카의 공장(964대)에서 분할 생산되었다. B-24의 한대당 가격은 자료마다 다르지만, 약 2만 9천 달러에서, 3만 2천달러 정도로 경쟁기종인 B-17보다 약간 비쌌다.[6]

그리하여 B-24는 모두 1만 8천기가 생산되었는데 이를 환산해보면 무려 53분에서 63분, 그러니까 1시간마다 한대씩 뽑아져 나왔다는 말이 된다(…). 물론 비행기를 아무리 많이 뽑아봐야 조종사가 없으면 말짱 꽝이니까, 이런 생산력을 요구해야만 했던(혹은 모두 태울 수 있었던) 미군의 인재 양성 능력 또한 대단했다고 할 수 있다.

승무원은 10명이 있다. 장교로 구성된 조종사, 부조종사, 항법사(전방 사수 겸), 폭격수가 있다. 병사는 6명으로 무전병과 후좌우 기관총 사수와 상부, 하부 회전 포탑 사수이다.(사수로 번역할지 포수로 번역할지는 재량.)

항법사는 전방 사수를 겸하며, 상부 회전포탑 사수와 측면 기관총 사수 중 1명은 기술병이다.

3. 단점

B-24의 특징은 앞부분이 칼로 잘린 것처럼 평면이며 기체가 직사각형이라는 것이다. '리버레이터'라는 닉네임 외에도 항공병들은 '날아다니는 벽돌', '하늘을 나는 화물열차', '변비에 걸린 벌목업자'라는 별명을 붙여 줬는데 그중에서 하늘을 나는 관이 가장 유명했다.

B-24가 악평을 들인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외형이 너무 볼품없이 후졌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욕먹게 되었으며, 별명들 대부분이 투박한 외형을 비꼬는 것이다.

그리고 전반적인 편의성이 떨어지는데 일단 조종석이 너무 작았고 시야가 제한되어 조종사가 목을 쭉 빼도 비행기 코 부분의 전경 밖에 안 보였다. 폭 22센티미터의 폭탄 투하실 통로를 지나다니기가 무척 어려웠고, 특히 난기류에서 더욱 그러했다. 한 걸음만 잘못 디뎌 미끄러지면 사람의 몸무게에도 뜯어질 정도로 약한 알루미늄 문이 장착된 폭탄 투하실로 굴러떨어질 판이었다.

지상 주행 속도가 느렸는데, 바퀴에는 조종 장치가 없어서 한쪽 엔진에 힘을 가하며 왼쪽과 오른쪽 브레이크를 앞뒤로 살짝살짝 밟아주며 좌우를 조정해야 하는 환장할 방식이었다.

기체는 세계에서 가장 무거워 D 모델의 경우 적재량이 3만 2,295킬로그램이었다. 조종사들은 이 무거운 비행기를 조종하며 지치고 팔 통증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 주제에 불규칙한 난기류를 만나거나 대원이 기체 안에서 걸어 다니기만 해도 중심축이 기울어져 조작하기 힘들었다.

동일한 4발 엔진 기체인 B-17의 경우 엔진 중 하나만 살아 있어도 비행과 착륙이 가능할 정도로 위험관리 능력이 뛰어났다.(영화 멤피스 벨에 잘 표현되었다.) 그런데 B-24는 반대로 4개 엔진 중 하나만 멈춰도 하늘에 떠 있기 쉽지 않았고 엔진 두 개가 고장 나면 비상사태였다. 도입 직후에는 상공에서 꼬리 부분이 떨어지는 사고가 여러 건 났으며, 전쟁이 시작되자 얇은 날개를 비롯해 전반적인 기체가 치열한 교전에 휩쓸리면 부러질 정도로 약하다는 이야기가 이미 자자했다. 일부 항공병들은 B-24를 죽음의 덫으로 생각했고 이 때문에 얻은 별명이 바로 '하늘을 나는 관'이었다.

넓고 낮은 날개와 평평한 동체를 같은 B-17과 B-29는 바다에 불시착해도 파도를 타고 움직이며 떠 있었다. 심지어 최초로 불시착한 B-29는 폭발하지 않고 다음날 멀쩡하게 해안가로 떠 내려왔다. 그러나 B-24는 날개는 좁고 동체에 높이 달려 있는 데다 부서지기 쉬운 폭탄 투하실 문이 바닥에서 살짝 돌출되어 있어, 불시착할 경우 폭탄 투하실 문이 물에 휩쓸려 찢어지는 바람에 기체가 폭발했다.

만약 불시착에 성공했다고 해도 B-24는 동체가 밀폐되지 않아 즉시 가라앉았었다. 이런 위험 때문에 바다로 불시착을 시도 하기보다는 차라리 낙하산을 타면 될 것 같지만 문제는 바다에 떨어지지 마자 상어들이 몰려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일말의 희망을 걸고 불시착을 하는 동시에 배출 핸들을 돌려 구명정을 사출시켜 타는 게 생존 확률을 올려 주었다. 구명정에는 각종 생존도구가 포함되어 있어 며칠 정도는 버틸 수 있었지만, 낙하산을 타고 태평양 한가운데 떨어져 구명조끼만 입고 있으면 생존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B-17이 불시착하는 경우 1/4 이하로 부서졌지만, B-24가 불시착하는 경우 2/3가 부서졌고 대원들 중 1/4가 사망했다. 문제는 이렇게 생존성이 뛰어난 B-17 주로 유럽 대륙에서 활약하여 불시착을 하던 낙하산을 타고 대피하든 상관없었지만, 태평양을 작전 구역으로 삼던 B-24에게는 치명적이었다.

또한 유럽에서 격추되어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혀 포로수용소로 갈 경우 적십자에게 구호품을 받으며 꽤 잘 먹고살았고, 오히려 빈곤한 독일군 경비병에게 담배 등을 제공하기도 했다.

반면에 태평양 전선에서는 불시착하다 기체가 터지거나 상어에게 잡아먹히는 것보다 두려운 것은 일본군에게 잡히는 것이었다. 일본군이 난징에서 전쟁 포로들 목을 베고 기관총을 쏘고 총검으로 찌르며 산 채로 불에 태워 죽인 것은 잘 알려져 있었다. 일본 언론들이 경쟁적으로 이른바 '100인 참수 경쟁'하며 목 베기에 혈안이 된 일본군 보도를 하는데 모를 수가 없었다. 일본군 영토인 마셜 제도와 콰절런 환초에서도 전쟁 포로를 살해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때문에 B-24 대원들은 낙하산 대신 그냥 기체와 함께 땅에 처박혀 폭발해 죽는 것을 선택했다. 그나마 일본군이 섬지역의 미군 포로들을 잡아먹거나 본토의 포로들은 마루타로 삼아 생체 실험했다는 것은 전쟁 끝나고서야 알려졌다.

4. 세부형식 및 파생형

  • XB-24 : 모델32란 이름이 붙은 원형기.
  • YB-24A : 선행 양산기로 LB-30A란 명칭으로 영국에 일종의 '샘플'로 공여 됨.
  • B-24 : 실제 군 운용을 위한 테스트기로 몇 가지 설계 변경이 이뤄짐.
  • B-24A : 외부 형상 몇 군데를 손봐서 성능을 향상시킨 모델. 실질적으로 미 육군 항공대는 1대만 운용하였으며 영국군에 LB-30B란 이름으로 20대 공여됨.
  • XB-24B : 미군의 요구사양(최대속도)를 만족하지 못함에 따라 터보과급기가 달린 R-1830-41엔진으로 변경된 모델
  • Liberator II : 영국군형. 기수의 연장과 무장의 강화. R-1830-S3C4-G엔진으로의 교체
  • B-24C: 엔진 덮개(카울링) 형상 변경 및 꼬리쪽의 기총좌석을 유압식으로 변경. 신규 생산은 아니고 B-24A를 개조하는 형태로 9기만 생산
  • B-24D : 대량생산된 첫 모델. Pratt & Whitney R-1830-43 엔진 장착, 기수 양측면의 소켓식 총좌 증설 기체 하부에 수동조작식 기관총(터널건) 장착, 이후 벤딕스 총좌로 교체,후기형엔 수납식 스페리 터렛이 장착. 자동방루 연료탱크(self-sealing fuel cells) 장착 및 항속거리 증가. 2696대 생산.
  • B-24E : 포드에서 생산된 버전이다. R-1830-65엔진을 장착했고 B-24D 후기형엔 사라진 터널건이 그대로 장착. 엔진의 프로펠러를 알루미늄에서 강철로 변경함. 더글라스도 생산하였으나 B-23D의 R-1830-43 엔진을 그대로 씀. 809대 생산.
  • B-24F: 제빙 부츠(de-icer boots)[7]를 사용한 모델. D형이 모체로 1대만 생산.
  • B-24G/G-1/H : G형은 노스아메리카가 생산에 동참하라는 명령을 받고 참여했다. 스페리 터렛과 기수에 에머슨 사제 전동식 선회 총좌장착. 25기 생산. G-1 형은 B-24H의 노스아메리카 버전 생산명 405기 생산. 스페리 A-5 자동 조동장치의 장착. H형은 B-24의 전방 기수 방어력 강화를 위해 만들어졌다. 전자 구동식 A-15 총좌가 전방에 설치되었으며 동체 상부엔 시야가 확장된 A-30 하이햇 총좌. 꼬리엔 개량된 A-6 총좌가 설치되었고 측면에도 K-6 신형 총좌가 장착되었다.3100대 생산
  • B-24J : 엄청난 양이 생산된 버전. 때문에 기수 총좌를 공급하던 에머슨사가 제대로 납품하기가 힘들어 총좌가 변경되었다.(나중에는 환원) M-9 광학식 조준기가 설치되었고 기존의 제빙부츠가 철거되고 엔진열로 얼음을 녹히는 히터식 제빙장치가 도입되었다. 6678대 생산
  • B-24L: 무게를 대대적으로 감축해 454KG이 줄어들었다. 전투기의 호위를 대대적으로 받게 되자 동체 하부에 걸리적 거리는 스페리 총탑을 없애 버렸고 후방 A-6 총좌를 경량의 K-5로 교채하였다. 1667대 생산
  • B-24M: 사실상 최후의 버전으로 후방 총좌가 더 가벼운 A-6B 총좌로 교체되었다. 전방의 시야 또한 향상 되었다. 2593대가 생산되었지만 종전 즈음에 만들어진 탓에 상당수가 실전 배치도 안된 채 폐기되었다.
  • XB-24K/B-24N : YB-24K는 H형 쌍수직꼬리날개를 포기하고 B-23 드래곤 폭격기에 사용된 단일 수직 꼬리날개를 장착한 버전이고 B-24N 역시 단일 수직꼬리 날개형으로 생산예정이었으나 종전으로 취소되었다.
  • C-87 :요인 수송형으로 278대가 생산되었다.
  • C-109: 연료 수송용으로 B-29를 위해 열심히 날아다녔다. 208대 생산
  • F-7A/B /XF-7 : 사진 정찰기형
  • EB-24M 다양한 무전기를 탑재
  • CB-24 : 폭격 편대 지휘용. 유럽전선에서 사용되었다

4.1. 해군판 B-24. PB4Y-2 프라이버티어

파일:external/cdn-www.airliners.net/1296225.jpg
[8]

PB4Y-2 Privateer[9]
제원

전체길이 : 22.73m
전체 폭 (날개포함) : 33.53m
전체 높이 : 9.17m
자체 중량 : 12,467kg , 최대 이륙중량 29,500kg
최고 속도 : 482km
상승 한도 : 21,000 ft. (6,400 m)
항속 거리 : 4.540km
엔진/마력 : P&W R-1830-94 14실린더 1,350마력 엔진 x4
승무원 :11명
무장 : M2 12.7MM 기관총 12정, 폭탄이나 기뢰, 어뢰 등을 5,800kg까지 폭장 가능.

미 해군 또한 PB4Y-1 씨 리버레이터라는 명칭으로 B-24를 운용했는데, 성능이 꽤나 만족스러웠는지 아예 본격적으로 해군용으로 개조한 PB4Y-2 프라이버티어(Privateer)를 주문했다.

출력이 향상된 엔진과 늘어난 동체 길이, B-24와는 달리 커다란 단일 수직 미익을 가진 것이 특징으로 해군 입장에서는 그다지 필요 없는 고고도 운항 능력(과급기, 엔진 부스터, 프로펠러 방빙 장치 등)을 제거하고 배쪽 포탑을 제거한 대신 탑재량, 항속거리, 방어 무장을 증설하고 시야를 좀 더 확보했다.

정찰, 수색 및 구조, 전자전, 통신 중계, 대함 임무[10]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했다. 전쟁 후기에는 아예 도쿄 상공까지도 정찰을 다니고 한국전쟁에서도 활약했으며, 냉전 초기 중국과 소련에 대한 전자정보 수집 임무도 맡았다. 1954년에 현역에서 물러났지만 2002년까지 민간용 소방 항공기로 활약하기도 했다.

5. 실전기록

위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2차 세계대전 기간 중 미군이 참전한 모든 전선에서 활약했으며, 사실상 유럽전선에 집중 투입되었던 B-17 세력들이 미처 커버하지 못한 영역들을 메워주었다.

5.1. 대서양 전투

파일:attachment/B-24/b24_canada.jpg
초계중인 캐나다 공군 소속 B-24

B-17이 그렇듯 B-24를 먼저 공여받은 것은 영국이었다. 영국은 망한 프랑스 발주분과 합쳐 LB-30A/B로 운용했고 이때 "리버레이터"라는 별명이 붙어졌다. 원래 B-24의 별명은 "플라잉 박서"였다고...이후 렌드리스로 B-24D 366대를 공여받았는데, 영국은 대지 폭격보단 해안경비용으로서 더 중용했다.[11] 영국은 B-24D를 GR.MKV 혹은 리버레티어 IIIA로 명명하고 Pratt & Whitney R-1830-S3C4G 엔진으로 교체, 엔진부의 두개의 과급기를 장착했고 전기 작동식 페더링 프로펠러를 장착했다. 동체 하부엔 ASV Mark II 대잠 레이더와 20mm 히스파노 기관포, 그리고 3인치 로켓탄을 장비했고 항속거리 증대를 위해 추가 연료탱크가 장착되었다.

왕립 공군 해안 사령부 휘하 120전대에 배치된 이 대잠초계기 B-24의 첫 희생자는 1942년 10월 12일에 격침당한 U-597로, 이 유보트를 필두로 대전기간중 72대의 유보트가 B-24에게 격침당했다. B-24를 비롯한 장거리 초계기들은 호위항공모함[12]과 함께 대서양 에어 갭을 막아서 유보트를 고인으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 B-24에게 격침, 확인된 유보트

1942년 :U-597, U-216, U-599, U-611,
1943년 :
U-225, U-623, U-524, U-635, U-632, U-189, U-332,
U-109, U-456, U-258, U-304, U-200, U-628, U-535, U-951,
U-232, U-514, U-506, U-558 +, U-598, U-404 +, U-706 +, U-84,
U-468, U-604 +, U-341, U-389, U-419, U-643, U-470, U-844,
U-964, U-540, U-274 +, U-848 +, U-966 +, U-508, U-280, U-849, U-391.
1944년 :
U-271, U-177, U-990, U-292, U-629, U-373, U-441,
U-821 +, U-971 +, U-317, U-988 +, U-478 +, U-319, U-347, U-471 +,
U-608 +, U-618 +, U-867, U-863, U-1060 +,
1945년 :U-681, U-1106, U-326, U-1017, U-534, U-579, U-1008, U-3523

출처 : http://uboat.net/allies/aircraft/b24.htm

영국 공군 뿐만 아니라 캐나다 등의 영연방군 및 대서양 방면 미 육군항공대 및 미 해군항공대 등에도 배치되어 유보트에 대한 대잠초계작전에 투입되었다.

5.2. 유럽 전선

미국의 B-24는 독일을 주 타깃으로 하는 제8공군에 배치되었고, 44폭격단은 B-24를 이용해 8공군 내 최초로 B-24를 폭격작전에 동원해 1942년 11월까지 344번의 출격을 기록했다. 이탈리아아프리카를 전담하는 제9공군에도 배치되었으며[13] 똑같이 이탈리아를 전담하는 15비행대에도 배치되었다.

그러나 B-24에게는 B-17보다 떨어지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는데, 바로 상승한도였다. 때문에 고사포탄에 잘 맞는다 하여 독일 대공포병들은 대공포탄 자석이라 부르기도 했다. 대신에 항속거리도 길고 왠지 명중률도 좋고해서 영국에서 출격하는 B-17이 커버하지 못하는 지역에 대한 전략폭격에 동원되었고 일을 잘 수행했다.

1942년 12월 4일, 제9공군에 소속된 270여대의 폭격기를 동원해 로마와 나폴리를 처음으로 폭격하면서 유럽하늘에 등장한 리버레이터는 1943년 10월 59대의 B-24가 독일공장을 폭격, 1944년 3월에 독일의 수도 베를린을 폭격하는데 동원되었다. 또한 1944년 7월 7일에 제8공군의 B-24 49대가 발진에 독일 베른베르크(Bernberg)를 공습하다 6대가 격추당하고 5명이 실종되기도 했다. 그 밖에도 B-17에 가려 안보일 듯하면서도 B-24는 유럽에서 세세하고 자잘하게 수많은 하늘에서 활약했다. 하지만 B-24가 참여한 가장 유명한 폭격작전은 바로 루마니아의 플로에스티 유전을 공습(Operation Tidal Wave)하는 것이었다.

5.2.1. 플로이에슈티 공습

파일:attachment/B-24/b24_raid.jpg

B-24를 가장 빛낸 공습작전으로, 유럽에서의 B-24 전과의 전부라고 해도 좋을 공습이었다.

루마니아의 플로이에슈티(Ploieşti) 유전은 당시 나치 독일의 자원 공급의 가장 중요한 곳이었고, 그 이전부터 영국 수상 처칠이 자주 언급하던 곳이기도 했다. 별다른 석유 공급원이 없는 나치 독일로선 플로에스티 유전은 매우 중요한 곳이었고, 그 만큼 방어도 삼엄했다.

플로이에슈티 유전 공습에 B-24가 동원된 가장 큰 이유는 B-17의 항속거리보다 훨씬 먼 곳을 타격할 수 있기 때문이었고, 그렇기에 B-24만이 선택되어 플로이에슈티 폭격 작전에 동원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리비아에서 루마니아까지는 너무 멀고도 멀었다.

1943년 8월 1일, 리비아벵가지(Bengahazi)에 주둔 중이던 미 제8공군 소속 179대의 B-24가 플로이에슈티 유전을 목표로 이륙하였다. 이윽고 그들은 나치 독일의 무수한 대공 포화를 뒤집어 써야 했고 I.A.R. 80, Bf109 편대에게 엄청난 피해를 받아야만 했다. 그 와중에 80대에 달하는 B-24와 532명의 승무원들이 창공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하지만 그 막중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B-24 편대는 나치의 방공망을 돌파, 플로이에슈티 유전에 폭탄을 한번에 쏟아붓고 저공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비록 피해는 컸지만 전과는 엄청나서 독일의 합성석유생산의 약 60%가 마비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리고 1년 뒤인 44년 6월에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루마니아가 이탈하게 됨으로써 독일은 전쟁수행능력을 크게 상실하게 된다.

5.3. 태평양 전선

태평양에는 제5공군과 제13공군에 배치되었고, 그 특유의 항속거리를 되살려 사실상의 항공위협이 전투기밖에 없는 일본군을 상대로 B-17을 빠르게 대체했다. B-24는 태평양의 격전지 오키나와부터 중국, 필리핀, , 사이판 그리고 호주의 뉴기니 작전 등에 동원되어 활약했다. 사실 태평양에서 크게 활약했음에도 B-24의 태평양에 대한 자료는 별로 없는 편이다. 70여대가 동원된 발릭파판(Balikpapan)같은 비미군 작전 같은 경우는 더한 편.

그도 그럴 것이 태평양 전선에서 미군 중폭격기 세력들은 전쟁 기간 전반에 걸쳐 일본군의 일선기지에 대한 공격이나 일본 함대에 대한 공격, 항로 방해, 초계 등 크게 티나지 않는 자잘한 임무에만 투입되었기 때문에 유럽 전선처럼 대규모로 지속적으로 투입될 일이 없었다. 게다가,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기 좋은 적성국 본토에 대한 대규모 전략 폭격은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는 1944년 후반에 일본 본토에서 그나마 좀 가까운 지역을 확보하고 나서야 가능했는데, 그조차도 항속거리 문제로 인해 신형폭격기 B-29가 사실상 전담했기 때문에 B-24가 부각될 일은 없었다.

파일:attachment/B-24/b24_raid2.jpg
오키나와 전투 이후 일본 본토가 B-24의 사정권안에 들어오면서 B-24도 일본 본토 공습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 B-24의 대표적인 참전 기록은 구레 군항 공습이 있다. 1945년 7월 28일 79대의 B-24가 오키나와에서 발진해 군항 구레를 공습했다. 그러나, 중순양함 아오바에만 4발 적중했고 일본군 대공포의 저항으로 2대가 떨어지고 14대가 손상을 입었다.

5.4. 전투지원, 비전투임무 수행

이미 B-17과 랭카스터를 주력 중폭격기로 보유하고 있던 미국과 영국에게 B-24의 항속거리와 속력은 자신들이 기 보유한 전력을 까먹지 않고도 다른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여지를 주었다. 유럽과 태평양 가릴 것 없이, 별도의 비전투형 파생형이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다수의 B-24가 인원 및 화물수송 임무로 전용되었다. 기본적으로는 전투용 항공기였기에 단순 후방 수송 임무 외에 적진에 요인을 침투시키거나 친 연합국 게릴라를 지원하는 등의 특수 작전에도 동원되었다.
연료 수송형인 C-109의 경우 중국에 주둔한 B-29의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투입되었지만, 히말라야 산맥을 넘는 과정에서 다수가 손실되었다. 소수의 연료 수송형은 유럽전선에 배치되어 서유럽에 상륙한 연합군에 대한 연료 지원 임무에 투입되었다.

수송형으로 개조된 기체들은 조종사들에게 그리 인기 있지는 않았다. 폭격기로서 설계할 당시에는 상정되지 않았던 하중 초과 및 하중 분배 문제가 불거지면서 엔진 출력이 부족해지고 기체가 불안정해졌기 때문이다. 일반 폭격기형 보다 이착륙에 긴 활주로가 필요했으며 이착륙 사고 빈도도 폭격기형에 비해 높았다. 원래대로라면 폭탄창에만 집중되었을 하중이 기체 후방으로도 가해지면서 전반적인 비행 안정성이 나빠졌고, 원래대로라면 이륙했을 때 보다 하중이 크게 가벼워진 상태[14]에서 착륙하도록 설계된 전방 랜딩기어는 화물에 의해 원래 설계보다 과도해진 착륙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곤 했다. 연료수송형은 화물 특성상 비행 성능이 더더욱 나빠졌고 이는 중국 기지에 대한 지원 임무 중 일어난 비전투 손실의 원인[15][16]이 되어서, 결국 원래 적재량보다 적은 양만 싣고 움직일수 밖에 없었다.

미 8공군에서는 대량의 전자장비를 장착하여 전자전 및 전자정보수집 임무에도 투입되었다.

유럽 전선 B-24의 비전투 임무 중 제일 특이한 것은 Assembly Ship 임무였다. 이는 한 번에 백 단위로 출격하는 폭격기들의 편대 구성을 지원하는 임무로, 해당 기체는 편대 구성의 기준점이 되고 또한 편대 구성 상황을 모니터하는 역할을 했다. 이를 위해 기체 도색은 흡사 써커스단 마냥 화려하게 도색되었고, 기관총과 폭탄 대신에 점멸등과 신호탄 발사기를 장비했다. 보통 신형 기체로 교체된 뒤에 남은 구형 기체들을 활용했으며 편대 구성이 끝나면 Assembly Ship은 기지로 복귀했다.

5.5. 2차대전 종전 후

미군에서는 1945년 이후 주력 폭격기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해상초계기나 기후측량기로 조금 더 활동했다.
PB4Y-2 프라이버티어가 미 해군 소속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하기도 했지만, 전후 항공기술의 급격한 발달로 인해 B-24는 급속히 구식화되었고, 결국 1950년대를 넘기지 못하고 미군 일선에서 사라져버렸다.

몇몇 국가에서 소량의 기체를 인수받아서 해상 초계나 수송임무에 사용했지만, 이들도 대부분 60년대 초를 넘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전후 해외에서 폭격 임무에 사용한 경우는 중화민국과 인도 정도가 있다. 48대 정도가 중화민국군에 인계되어 국공 내전에 투입된 전적이 있고, 이들중 일부는 중국 인민해방군에 노획되어 1950년대 초까지 사용되었다.
인도의 경우는 특이한 운용 경력을 갖고 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인도에서 영국공군이 운용하던 B-24들은 랜드리스 계약에 따라 현지에서 폐기되었다. 그러나, 카슈미르 분쟁 중 한대의 비행기가 아쉬웠던 인도군은 이 폐기된 기체를 되살려내서 약 40대 가량의 기체를 일선배치하였다. 이 기체들은 현지에서 폐기된 기체들의 부품을 이용하여 1968년까지 일선 전력으로 운용[17]하였으며 그 중 한대는 다시 영국에 넘겨져서 현재 영국 왕립항공박물관에 전시중이다.

민간 수송 목적으로 몇몇 국가의 항공사에서 운용하였으며, 미국에서는 PB4Y-2 프라이버티어가 2000년대까지 소방용 항공기(Air Tanker)로 운용되었다. 그러나 1945년에 제작된 너무도 노후한 기체에 무거운 소방액을 싣고 산악지역을 급기동하며 가혹하게 운용한 탓에 2002년 7월 18일 프라이버티어를 개조한 Tanker 123기가 기체 골조에 누적된 피로파괴로 비행중 왼쪽날개가 부러져 추락하고 2명의 조종사가 순직하고 말았다.[18] 더군다나 해당기 사고 바로 전날 C130 개조 소방기도 역시나 피로파괴로 추락하여 3명이 사망했던 상황이었다. 이 연쇄 추락사고로 인해 노후 소방기들의 안전 문제가 제기되자 프라이버티어는 물론이고 33대의 노후 소방기가 전량 퇴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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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럽에서 60만톤에 달하는 폭탄을 떨군 B-17과는 달리, B-24가 유럽에서 떨군 폭탄은 45만톤이었다. 하지만 B-17의 활동무대는 서유럽 뿐.[2] 태평앙 전쟁 관련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보면 흔히 등장하는 'PBY 카탈리나'. 영국에도 제공되어 비스마르크 사냥에도 참가했다.[3] 사실 데이비스 날개는 약간 운이 좋은 케이스였는데, 정작 개발자인 데이비스는 잘 몰랐으나 이것은 일종의 층류날개라 하여 날개 위의 공기흐름이 흐트러지지 않고 안정되게 지나가는 효과를 가졌다. 다만 이러한 두꺼운 날개꼴은 고속, 특히 초음속 비행에 적합하지 않아서 제트기가 판을 친 2차대전 이후가 되자 전투기에서는 급격히 사라졌다. 하지만 아음속기들 특히 쌍발기 이상들은 살짝 수정해서 지금까지 쓰고 있다.[4] B-17의 이/착륙시 급정거는 항공기의 기수가 땅에 처박힐 가능성이 높은 행동이었는데, 실제로 이륙 중에 급정거한 B-17가 고꾸라져서 기수가 땅에 처박힌 사고가 있었다. 이 사고로 기장을 포함한 기수 탑승 승무원들이 사망했다. 묵념.[5] 단 이 방식은 수평/수직꼬리날개가 직각으로 꺾이는 부분에서 예상치 못한 간섭으로 인한 저항이 생기거나, 고속에서 구조적으로 불안정해지는 등의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현대의 고속 제트 항공기에는 잘 안쓰이는 편이다.[6] B-17은 2만 2천달러에서 ~ 3만달러정도.[7] 날개 앞에 일종의 고무튜브 같은 것을 설치해 둔 다음, 고공으로 비행 중 날개 앞쪽에 얼음이 얼면 이 고무튜브에 바람을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여 얼음을 깨는 방식.[8] 출처[9] 프라이버티어라는 이름은 사략선, 사나포선이라는 뜻이다.[10] 초기형 레이더 유도 폭탄을 사용했지만, 큰 전과를 내지는 못했다. 애초에 그 때 쯤이면 가라앉힐 배 자체가 별로 없어서….[11] 여기에는 좀 복잡한 사정이 있다. 당시 영국엔 대서양 한복판까지 초계가 가능한 폭격기가 아브로 랭커스터밖에 없었는데, 폭격기사령부에선 죽어도 랭커스터를 내놓지 않으려고 했고 대잠을 담당하는 해안사령부는 어떻게든 얻어내려고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는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항속거리가 긴 B-24가 들어오자 폭격기사령부는 얼쑤 좋다 하고는 랭커스터 대신 B-24를 해안사령부로 넘겨버린다. 랭커스터 성애자[12] 주로 보그급[13] 이후 영국으로 이동하여 "전략폭격"을 전담.[14] 폭격기라면 목표 지점에서 폭탄을 전부 투하하거나 아니먄 착륙 전에 폭탄과 연료를 모두 버린다.[15] 기체는 무겁고 불안정하고 엔진 힘은 딸리는 반면, 이런 기체로 높디 높고 날씨도 안 좋은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가야 하니 사고가 안나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16] 이 당시 똑같은 임무에 투입되었던 B-29도 역시나 같은 처지가 되어서 다수의 비전투 손실을 당햇으며, 이를 견디다 못한 미 육군 항공대는 사이판 전투, 괌 탈환전 등으로 북마리아나 제도를 손에 넣자마자 냉큼 그곳으로 B-29의 기지를 옮겼다.[17] 마지막까지 군용으로 남아있던 B-24들이 바로 인도군 소속 기체들이다.[18] 무거운 하중이 가해진 상태에서 기류변화가 심한 화재지역 상공을 비행해야했다는 점에서 위에서 언급된 연료수송형이 처했던 상황과 비슷하다. 여기에 더해서 비행중 급기동과 소방액 투하에 따른 급격한 하중변화까지 더해지니 기골에 가해지는 부담이 매우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