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실 사망 사건 | ||
최진실의 사망 소식을 보도한 뉴스 | ||
발생일 | 2008년 10월 2일 오전 6시 15분경[1] | |
발생 위치 | 서울특별시 서초구 잠원동[2] | |
유형 | 자살 | |
원인 | 우울증 | |
인명피해 | 사망 | 1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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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8년 10월 2일 배우 최진실이 사망한 사건.국민 여배우이자 슈퍼스타라 일컫던 최진실의 자살은 대한민국을 큰 충격에 빠트렸는데, 여파가 워낙 컸던지라 사망 이유에 관한 추측과 루머가 난무하였고, 이혼과 전남편으로 인해 생긴 우울증과 악플 루머를 원인으로 잠정 결론 내려졌다.
이 당시에는 대한민국 언론 보도 지침상 돌려 말하는 풍조가 없었기 때문에 사인이 '자살'인 것은 공식적으로 보도되었다. 허나 그 자살의 원인이 우울증인지에 대해서는 메모장에 적힌 내용, 최진실의 어머니와 주변 지인의 증언을 토대로 추측했을 뿐 정확하게 밝혀진 사유는 없다.
최진실의 우울증은 가난과 가정환경으로 인해 10대 때부터 있었으며 이미 18살에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있었다. 따라서 정확히 말하면 이혼 후에 우울증이 생긴 것이 아니라 이혼 후에 우울증 증세가 악화된 것이다. 최진실은 결혼 전에도 고독함과 우울함을 자주 비췄고 "나는 말 상대가 한 명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더 고독하고 외롭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2. 갑작스러운 사망
2008년 10월 1일 최진실은 오후 1시부터 오후 4시까지 배우 손현주와 광고 사진을 촬영하였으며 이후 <드림엔터박스> 대표이사 서상욱, 스타일리스트 이경은, 노컷뉴스 방송연예팀 팀장 김대오 등과 회식 자리를 가졌다. 회식이 끝난 후 매니저 박상호가 차로 최진실을 자택까지 이동시켰다.2008년 10월 2일 오전 0시 47분 퀸 편집장 김재우와 마지막 통화를 하였다. 그때 괴로운 심경을 드러냈고 죽음을 언급했으며 최진영을 도와 자신의 아들과 딸을 지켜 달라고 부탁했다. 최진실과의 통화 직후 김재우는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과 통화를 했고 최진실의 상태를 설명했다. 김재우와의 통화 직후 정옥숙은 최진실의 상태를 살폈고 최진실은 정옥숙을 안심시켰다. 최진실은 2003년부터 김재우와 인연을 맺어 왔고 김재우에게 많은 말과 글을 남겼는데 언젠가 그 글들을 통해 자신에 대한 대중의 오해가 풀리기를 바랐다. 즉, 최진실은 김재우에게 비망록을 남긴 바 있다.
2008년 10월 2일 오전 6시 15분 서울특별시 서초구 잠원동의 자택 욕실에서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 경찰은 자살로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고 직접적인 사인은 경부압박질식사였다. 경찰 조사에서 최진실은 경한 수준의 우울증 증세가 있었고 자녀의 양육과 연예인의 위상 등과 관련하여 고민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처음 유족들은 검찰이 내린 부검 결정에 반대했으나 유족들 중 한 명이 부검 동의서에 서명함에 따라 강남성모병원에서 2008년 10월 2일 오후 9시부터 오후 10시 20분까지 1시간 20분에 걸쳐 부검이 진행되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부검 결과 타살을 증명할 만한 단서를 발견할 수 없다는 부검 소견을 밝혔다. 2008년 10월 3일, 경찰은 공식 브리핑에서 자살이라고 발표하였다.
2008년 10월 4일 유해는 오전 7시 30분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의료원에서 발인식을 가졌고 오전 10시 경기도 성남시 성남영생원에서 화장되어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에 있는 갑산공원에 안치되었다.
3. 사망 이전의 루머
3.1. 황색언론의 밥
스포츠서울 2001년 2월 3일자 1면 헤드라인[3] |
최진실은 거의 데뷔하자마자 어린 나이에 인기 원탑을 찍고 국민배우로서 최정상의 지위에서 롱런하던 연예인이라 황색언론의 밥이자 기자들에게 많이 시달린 연예인 중 한 명이다. 당시 최고의 지위에서 국민가수라 일컫던 가왕 조용필, 가수 이미자와 국민배우라고 일컬어지던 배우 안성기, 최불암, 김혜자 등은 이미 연차가 오래된 중년 가수, 중년 배우이었지만 최진실은 이들보다 한참 어린 나이, 흙수저·고졸 출신[4]의 서민 이미지와 작고 귀여운 요정 이미지로 인해 만만하게 보던 기자들이 있었다.
그 시절 기레기들과 미디어, 언론은 모든 연예인들에게 악질이었지만 특히 최진실을 신문 1면에 헤드라인에 걸면 국민들이 궁금증으로 신문을 사들이기 때문에 최진실로 언론플레이를 하거나 소설을 쓰면서 루머를 퍼트리거나 과장되고 자극적인 기사들로 괴롭혔다.[5] 최진실에게 유독 터무니없는 루머들이 많았던 이유다. 예를 들면 1면에 '최진실이 호텔을 자주 드나든다'는 타이틀을 걸어 둬서 신문을 사들이게 하고 막상 내용을 까 보면 '최진실이 호텔 안 헬스장을 자주 드나든다'는 내용처럼 말이다.
변진섭과의 열애도 기자들의 루머에서 비롯되었다. 변진섭과의 열애설은 최진실이 자서전에서 직접 언급한 바가 있다. 1989년 변진섭이 진행하던 라디오 '밤을 잊은 그대에게'에 게스트로 출연해 처음 인사를 나누었는데 당시 변진섭은 인기가 최고 절정이었고 최진실은 CF스타로 막 이름을 알리고 주목받던 햇병아리였다. 최진실은 라디오 게스트로 몇 번 출연하며 여의도 포장마차에서 가수 김혜림, 개그맨 이휘재 등과 함께 자주 어울렸다고 한다. 한 번은 변진섭 매니저의 집들이에 매니저 배병수, 가수 변진섭, 강수지, 김혜림, 원미연, 홍서범 등과 함께 초대받아 갔는데 이 일이 최진실이 변진섭의 집에 드나든다는 소문으로 번졌다. 이때 최진실은 변진섭의 콘서트에 초대받았고 '사랑 나누기 최진실 콘서트'에 변진섭이 출연한 것에 대한 답례 형식으로 최진실이 콘서트에 참석했다고 한다. 그런데 공연을 축하하기 위해 찾아온 개그맨 이휘재가 무대에 오르더니 "지금 이 자리에는 변진섭씨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자리하고 있다"면서 묘한 뉘앙스를 풍기며 최진실을 소개했고 최진실은 얼떨결에 "저희 오빠의 콘서트에 이렇게 많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관객들에게 인사했는데 다음날 '최진실, 변진섭 내년 9월 결혼, 콘서트에서 공개선언' 이라는 타이틀로 기사가 나갔다고 한다.
1991년 최진실이 출연한 다큐 '인간시대-최진실의 진실'에 초등학생 팬들이 최진실에게 싸인을 요청하면서 "변진섭 오빠하고 약혼 진짜예요?"라고 장난스레 물어보고 최진실은 "아니라고 그랬잖아~!"라고 웃으며 대답하는 장면도 나온다.
이에 최진실과 변진섭은 루머를 해결하기 위해 만나서 의견를 나누기 시작했다. 한 번은 마침 둘 다 MBC 방송국에 볼 일이 있어 잠깐 만나 대화를 나눴는데 이것이 파파라치에게 찍혀 또다시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이라고 잡지에 실렸다고 한다. 최진실과 변진섭은 해명하기 위해 자주 만나다 보니 자연스레 정이 들었고 두 사람은 "이런 것이 사랑인가?" 하는 감정이 들어 '결혼'이라는 단어를 기정사실로 인정해 가면서 공개적으로 서로 응원하고 격려하며 우애를 나눴다. 루머가 어느새 현실이 되었던 것이다.
항간에는 양가에서 만나 인사를 하고 약혼반지를 교환했다는 말까지 나왔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어 느날 과로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최진실을 보고 어머니가 "네가 좋으면 결혼하라"고 말했지만 최진실은 그 시점에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 결혼이 아니라 상황에 떠밀려서 하는 결혼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결론을 내려 변진섭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1995년 말에 변진섭과의 공식 결별 기사가 나왔다.
이병헌과의 열애설도 기자들의 설레발과 소설로 이루어진 경우다.
2002년 12월 조성민의 파경 기자회견으로 매일 집 앞에서 진을 치던 기자들 때문에 자녀들과 1년 동안 집 밖에 나가지 못했으며 둘째도 첫째를 낳았던 병원에서 낳으려고 했지만 기자들이 출산 며칠 전부터 그 병원에 몰려 있었기 때문에 결국 다른 병원으로 가서 거의 숨어서 낳았고 파파라치들과 기자들이 꾸준히 따라다녔다고 한다. 자녀들과 해외여행을 할 때는 공항에서 최대한 사람들 눈에 안 띄는 맨 구석에 자리하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2008년 10월 장례식장에서 언론들의 도가 넘는 취재 행태가 도마에 올라 또 한 번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장례식에 참석한 유명인들에게 '심정이 어떠한가' 라는 넌씨눈스러운 질문은 기본에 오열하다 못해 실신하는 모습을 그대로 연예신문 1면에 때려박는 등 몰상식한 취재 행태로 인해 취재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이때 여론의 뭇매를 워낙 세게 맞았던 탓인지 이후 연예인의 장례식 모습은 직접 카메라를 들이밀거나 심경을 묻는 게 아니라 멀리서 참석하는 모습만 찍는 식으로 바뀌었다.
3.2. 루머와 마녀사냥
배병수 사망 관련, 조성민 관련, 안재환 사망 관련 명예훼손 피해를 심각하게 겪었는데 이런 인격살인 행각에 대해 토크쇼에서 깊은 분노를 표현했다. 연예인에 대해 함부로 대하는 세태에 대해 큰 우려를 했다.[6]최진실은 연예계 생활 중 크게 살인교사범, 유책배우자, 악덕사채업자로 부당하게 몰렸으며 그 외에도 여러 모함과 모욕을 겪었다고 인터뷰한 게 적지 않다. 1991년 <인간시대 - 최진실의 진실>에 연예인을 향한 인격권 침해에 이모 정현숙한테 분노를 표현하는 게 나오는데 일찍부터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의미다. 최진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연예인으로서 겪는 이런 고통에 대해 언급했다. 김재우에게도 가짜 뉴스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서 분하다고 했다. 2007년 <무릎팍도사>에도 이로 인한 깊은 고독감 혹은 고립감을 강호동에게 표현하는 게 나온다. 2008년 <최진실의 진실과 구라> 진행도 이런 잘못된 문화를 타개하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연기 못지않게 심혈을 기울여 임하게 되었다.
2008년 9월 최진실을 악덕 사채업자로 몰았던 백승연이 선처를 바라면서 최진실에게 수시로 전화를 해 대자 최진실은 '악마의 전화'라고 분노했고 백승연이 자신의 연락처를 알아낸 경위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가졌다. 이런 상황에서 2008년 10월호 월간 잡지에 조성민이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로 모함하는 인터뷰가 실리자 다시 시작된 조성민의 범죄 행각에 대해 분노하고 문자메시지로 경고했다.[7] 최진실은 백승연의 범죄 행각에 이은 조성민의 범죄 행각에 대해 김재우에게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했다.
2008년 9월 8일 이후 정선희의 남편 안재환의 사망과 관련된 거짓 소문을 겪었는데 2008년 9월 8일 배우 안재환이 자신의 승용차에서 숨진 채 발견된 직후 일어난 일이다. '대통령실 경호처 경호과장이 말하길 최진실이 수십 억 원을 안재환에게 빌려주었고 그 돈을 갚으라고 압박을 가하자 안재환이 자살했다'는 쪽지가 인터넷상에 유포된 거다. 쉽게 말해 최진실이 악덕 사채업자라는 거다. 남편 사망이라는 엄청난 돌발 상황으로 멘붕 상태에 빠진 친구 정선희가 이런 일까지 겪게 되자 최진실은 자신의 우정을 모욕하는 범인들에게 크게 분노하고 합리적•이성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사회 상황에 큰 고통을 토로하다가 2008년 10월 2일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최진실의 죽음은 사회적으로 여파가 매우 컸기 때문에 베르테르 효과도 크게 일어나 연구 결과 1위로 나타났고 구체적인 수치로는 700여 명이 사망한다. 2008년 9월 22일 최진실은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2009년 6월 16일 백승연 등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처벌을 받았지만 고소인은 세상을 떠났다.
3.3. 일기장 기록
최진실은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언론에 의해 유책배우자로 몰리는 부당한 일을 겪으면서 수면제와 항우울제를 복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최진실이 얼마나 극심한 심적 고통을 겪었는지는 그의 일기장 일부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엄마… 미안해! 약[8]에 취해, 약 먹은 사실을 까먹고, 또 입에다가 한 움큼 물구. 눈은 반쯤 감겨서. 나 죽으면 그냥 흰 천에 둘둘 말아 갠지스강에 띄워 달라구…”#
“환희야. 수민[9]아. 나의 아들. 나의 딸아. 엄마 어떻게 하면 좋아? 너희를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프구나. 엄마는 지금 너무 막막하고 무섭고 너희를 지푸라기라고 생각하고 간신히 너희를 잡고 버티고 있단다. 너희만 아니라면 삶의 끈을 놔버리고 싶을 정도다. 하루를 살더라도 너희와 활짝 웃으며 푸른 들판을 달리고 싶고, 한창 예쁜 너희 재롱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눈에 담아 기억의 창고에 넣어두고 싶은데 사는 것 자체가 너무도 힘들어 너희 모습도 놓치고 있구나, 떠날까? 우리 떠나자. 미지의 세계에 대해 불안감, 엄마의 소심한 성격 탓으로 지옥 같은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너무도 한심하다. 온 집안을 어두컴컴하게 해두고 불안한 마음으로 해가 지기를 기다리고 해가 지면 어두운 세상을 바라보며 울부짖는다. 환희야 수민아 미안하다. 여러 가지로 엄마가 부족한 게 많아 너희에게 항상 죄짓는 기분이다” #
“환희야. 수민[9]아. 나의 아들. 나의 딸아. 엄마 어떻게 하면 좋아? 너희를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프구나. 엄마는 지금 너무 막막하고 무섭고 너희를 지푸라기라고 생각하고 간신히 너희를 잡고 버티고 있단다. 너희만 아니라면 삶의 끈을 놔버리고 싶을 정도다. 하루를 살더라도 너희와 활짝 웃으며 푸른 들판을 달리고 싶고, 한창 예쁜 너희 재롱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눈에 담아 기억의 창고에 넣어두고 싶은데 사는 것 자체가 너무도 힘들어 너희 모습도 놓치고 있구나, 떠날까? 우리 떠나자. 미지의 세계에 대해 불안감, 엄마의 소심한 성격 탓으로 지옥 같은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너무도 한심하다. 온 집안을 어두컴컴하게 해두고 불안한 마음으로 해가 지기를 기다리고 해가 지면 어두운 세상을 바라보며 울부짖는다. 환희야 수민아 미안하다. 여러 가지로 엄마가 부족한 게 많아 너희에게 항상 죄짓는 기분이다” #
내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그 남자를 저주하며 살 것이다. 아빠라는 존재를 모르고, 아빠의 사랑 없이 자라야 되는 우리 환희와 수민이를 생각하면, 그냥 눈물이 흐른다. 난 아이들을 위해, 우리 엄마가 진영이와 나만을 위해 살았던 것처럼, 나두 우리 아이들만 위해 살 것이다. 보란 듯이... 나쁜놈, 나와의 인연이 고작 이것밖에는 안 될 거면서 뭘 그렇게 결혼하자고 난리를 피웠을까?... 수민아, 환희야. 엄마가 너희들에게 정말 미안한 점은 아빠를 지켜주지 못한 점이다.
그인 떠났다. 3살도 채 안 된 환희와,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뱃속에서 아빠에게 버림받은 우리 수민이. 그리고 나 세 명뿐이다. 그는 자신만의 또 다른 행복을 위해, 나를 짓밟고, 아이들을 짓밟고 떠나버렸다.
밤만 되면, 더욱 끓어오르는 분노 때문에 그냥 있을 수가 없다. 바보 같은 나 자신이 한심스럽다. 그 두 사람(조성민과 내연녀 심마담)에게 늘 당하기만 한다.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두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내가 나약해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면 그냥 쓰러져 영원히 잠들었으면 생각밖엔 없다.
하나님이 정녕 계시는 걸까?.... 계신다면, 계신다면 제발, 저를 지켜주세요.
그인 떠났다. 3살도 채 안 된 환희와,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뱃속에서 아빠에게 버림받은 우리 수민이. 그리고 나 세 명뿐이다. 그는 자신만의 또 다른 행복을 위해, 나를 짓밟고, 아이들을 짓밟고 떠나버렸다.
밤만 되면, 더욱 끓어오르는 분노 때문에 그냥 있을 수가 없다. 바보 같은 나 자신이 한심스럽다. 그 두 사람(조성민과 내연녀 심마담)에게 늘 당하기만 한다.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두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내가 나약해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면 그냥 쓰러져 영원히 잠들었으면 생각밖엔 없다.
하나님이 정녕 계시는 걸까?.... 계신다면, 계신다면 제발, 저를 지켜주세요.
조성민과 이혼한 후에는 김재우 기자에게 만일 내가 잘못되면 세상에 공개해 달라며 '진실'의 일기장을 남긴적도 있다. 원본 자료는 인터넷에 남아 있지 않지만 일부가 남아 있다. 다음은 일기장 내용의 일부분이다. ###
사업이 진행되면서 전남편은 저에게 "사업하는데 돈 좀 보태라"고 종용 했습니다. 때마침 저는 CF모델료 1억을 현찰로 받은 상황이라 그 돈 전부를 건네줬습니다. 조건은 "지금까지 생활비 한 번 받아본 적이 없으니 이제부터 다달이 2백만원씩만 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제 마음은 아무리 여유자금이 있어도 아이들 우유 값은 아빠가 힘들게 벌어오는 돈으로 사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너무도 실망스러웠던 점은 1억원을 가져가면서 고맙다는 말은커녕 "그 많은 돈 중에 고작 1억! 이제 당신에게 돈얘기 또 안 해"하며 퉁명스럽게 애기했던 것입니다. 그에겐 고작 1억인지 모르지만 제가 건네준 그 돈은 둘째 아이 수민이(준희)를 임신한 상태에서 밤을 새워가며 CF출연료로 받은 돈이었기 때문에, 그 서운함은 더욱 컸습니다.
하지만 저는 전남편뿐 아니라 그 여자(내연녀 심마담)의 진술서를 보면서 참을 수 없는 또 다른 분노를 느껴봤습니다. 소송은 정말 더 이상 사생활 침해를 받지 않고 전남편과 그 여자가 더 이상 거짓말로 일관된 인터뷰를 하지 못하게 하기 위했던 것인데, 이제는 제가 이들을 쉽게 용서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 온갖 거짓말로 일관하며 수많은 사람을 속였던 그들은 이제는 한 치의 거짓이 있으면 안 되는 법의 기관을 통해서도 또 다른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 과연 이들은 죄값을 어떻게 치를지 모르겠습니다. 설령 그들이 주장하는 것이 사실일지라도 과연 저에게 얻어갈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이혼만이 모든 문제의 해결점이라고 생각하는 전남편은 두 아이의 존재를 잊은 것일까요.
이제 두 아이는 '저만의 아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리고 두 아이를 위해서 아빠 몫까지 열심히 살겠습니다. 특히 아들 환희는 어느 정도 제 말뜻을 알아듣습니다. 그 누구보다 아름답고 올바른 것만 보여주고 일러줘야 하는데, 그동안 그렇게 못했던 것이 가슴이 아프네요. 이제는 아빠 없이도 꿋꿋하게 잘 키워 나가는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생각 뿐입니다. 전남편은 아직도 아빠로서 아이들을 보러 올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제는 그것도 전 거부하고 싶습니다. 둘째가 자신의 아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경솔한 말을 할 때부터 그는 아이들 아빠로서 자격을 상실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껏 몇 번의 방문을 통해 전남편은 아이들 분유 한 통 사온 적이 없습니다.[10] 그런 사람이 어찌 아빠라고 할 수 있습니까.
최진실은 사망 직전[11] 김재우 기자와 통화하면서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
"아무리 친권을 포기했어도 어떻게 한 번을 안 올 수 있을까..." 그녀는 자살하기 이틀 전 죽으면 어쩔 수 없이 두 아이의 친권이 아버지에게 갈 수 있다는 말에 상당히 놀라워하고 흥분했다. 그러고는 이런 말도 내뱉었다. "이혼 당시 친권을 포기한 이유는 내가 대신 빚(대출과 어머니, 동생 최진영의 돈까지)을 갚는 조건이었는데, 그 증거가 지금 고스란히 있는데 그게 말이 되냐. 정말 누구를 위한 법인지 모르겠네"라고. "너 아니면 환희, 준희 지켜줄 수 없으니 꼭 최진영 곁에서 돕고 지켜봐줘야 해. 6년간 힘들었던 부분 자료가 너에게 다 있으니 꼭 도와줘라, 혹시나 잘못되면 꼭 공개해 밝혀달라. 누나가 뭐 때문에 힘든지 처음부터 봐서 알잖아. 그리고 내가 왜 이러는지 알잖아. 그 진실을....그 진실을...(밝혀줘). 재우야, 믿는다. 미안하다. 너 내 동생 맞지?"
2008년 9월 여론조작이 심각하게 진행되었을 때 “나는 외톨이…, 왕따…, 도무지 숨쉴 수가 없다. 사채니 뭐니 나와는 상관이 없는데 세상 사람들이 왜 나를 괴롭히는지 모르겠다. 나는 꿋꿋하게 극복하겠다”라는 다양한 상념의 메모를 남겼으며 삶에 대한 애착도 드러냈다.
최진실은 월간 잡지 <퀸>의 기자 김재우 편집장에게 다음과 같은 말들을 남겼다.
“오늘은 '최진실 안티 사이트'에 들어가 봤어. 이들은 왜 나를 싫어하는 걸까, 알아보기 위해서였어. 아마도 이런 게 아닐까 싶어. 최진실이라는 사람이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웃집 사람 같은 편안함 때문이었는데, 어느 순간 톱스타라는 칭호가 따르게 되고, 자신들과 다른 이질감을 느껴서가 아닌가 싶어. 그 어떤 배신감 같은 거라고 나 스스로 정의를 내려봤어. 인기를 얻고 돈을 벌고 그들과 다른 삶을 산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내 성격이나 취향이 달라진 게 아닌데…. 난 명품도 안 좋아하고, 아직도 수제비와 분식이 좋은데, 왜 그들은 자신들의 잣대로 날 평가하고 그렇게 믿는 걸까? '안티팬들과의 만남', 뭐 이런 거라도 해서 해명을 해야 하나? 그러면 세상은 또 뭐라 할까…? 나 언제까지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하는거니? 그냥 은퇴를 하는 게 옳을까? 은퇴를 한다고 해서 나에게 주던 시선을 거두기나 할까?”
“이혼하는 과정에서[12]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그 때 들었던 말들이 더 힘들 수도 있는데, 왜 지금 마음은 그 때보다 더 힘들까? 처음에는 사채업자란 소리에 웃음이 났는데, 그냥 웃을 수가 없었어. 가까운 사람들조차 조금은 연관된 게 아닌가 싶은 눈빛을 보내는 거야. 난 그저 친한 동생(정선희)의 아픔에 손이라도 먼저 잡아주기 위해 달려간 것뿐인데, 그래서 발인 때까지 함께 있어준 것인데, 세상은 어쩌면 내 진실과 다르게 매번 나를 구렁텅이에 빠뜨리니? 이젠 더 이상 내가 설 수 없을 것 같아. 이걸 또 이겨내면, 또 다른 일에서 난 사채업자에서 포주로 불릴지도 몰라.”
“이제와서 내 이미지가 뭐가 그리 중요하겠니. 벌써 이런저런 일로 내 사생활은 세상에 모두 알려져, 늘 발가벗겨진 기분으로 대중 앞에 놓였던 사람인데. 난 이제 예쁜 척도 고상한 척도 못해.[13] 근데 우리 환희가 올해 초등학생이 됐잖니. 요즘 아이들은 우리 때와 달리 그 나이엔 인터넷 검색은 다 기본으로 한다는데, 그 어린 아이들이 우리 환희에게 어떤 말이나 시선을 보내면 어떻게 하니? 엄마 때문에 우리 환희가 마음의 상처라도 받으면 얼마나 세상 살아가는 데 위축이 되겠니. 그 생각만 하면 빨리 범인이 잡혀 이 억울한 마음을 한시라도 빨리 벗어야 하는데. 정말 조바심 나 미치겠어.”
“범인한테서 전화가 왔어. 너무 소름이 끼쳐. 무슨 공포 영화 찍는 줄 알았어. 어떻게 번호를 알고 전화를 했지? 형사한테도 전화가 왔는데, 번호를 알려준 것 같은 눈치는 아니던데, 정말 그 사람 목소리 무서워서 혼났어. 그 사람 무슨 대단한 위력이 있는 거 아냐? 나이도 어린데, 힘 있는 집 딸인가? 어떻게 번호를 알았냐고 물었는데, 그냥 말을 흐리더라고. '그냥 무조건 용서해달라'라고 너무도 당당하게 요구해오는 거야. 물론 중간에 흐느끼기도 했던 것 같은데, 어딘가 모르게 가식처럼 느껴졌어. 그렇다고 내 입장에서 막 욕을 해댈 수도 없는 거잖아. 또 '욕쟁이 최진실'로 글을 올릴까봐. 욕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데, 안 나오더라. 그러면서 어느 순간에는 너무도 비굴하게 타이르게 되더라. 왜 그랬냐고 물으니 '무조건 미안하다, 한 번만 봐달라'라고 하는데,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게 옳아?”
“사채설 유포자의 일방적인 전화가 하루에도 몇 번씩 왔어. 전화가 올 때마다 '악마의 전화'가 울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그런데 또 무슨 말을 할지,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닌지, 진짜 범인을 알려줄지도 몰라서 전화를 받았어. 그러나 전화를 받으면서도 어린 사람에게 매번 우롱당하는 기분이었어.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사람에게 철저하게 유린당하는 기분이었어.”
“사채설 유포자가 잡혔는데, 세상은 여전히 나를 안 믿는 사람이 많구나. 죽으면 내 진실을 믿어줄까? 내 이름은 '최진실'인데, 인터넷 속 사람들은 나를 '최가식'이라고 부르네. 너무도 슬픈 일이지 않니? 환희, 준희에게 미안하지만,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어머니보단 죽어서 진실이 밝혀진 어머니가 낫지 않을까? 10월 3일이 환희 운동회 날인데, '사채업자 엄마'라고 환희 친구들이 놀리면 어떻게 하니?”
“그 사람은 나에게 용서를 구하면 되지만, 세상의 수많은 오해들은 내 몫인데, 내가 어떻게 또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그동안 많은 위기들을 넘겨오는데도 숨이 차올라 죽을 지경인데, 너무도 자신이 없다. 안재환의 자살에 왜 내가 연루돼 이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인터넷에 '안재환, 최진실'이란 이름이 동시에 뜨는 이유를 내가 또 어떻게 넘겨야 아무렇지도 않게 웃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 그런데 그렇게 넘기고 웃는 게 정말 행복이고 진실일까?”
“이혼하는 과정에서[12]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그 때 들었던 말들이 더 힘들 수도 있는데, 왜 지금 마음은 그 때보다 더 힘들까? 처음에는 사채업자란 소리에 웃음이 났는데, 그냥 웃을 수가 없었어. 가까운 사람들조차 조금은 연관된 게 아닌가 싶은 눈빛을 보내는 거야. 난 그저 친한 동생(정선희)의 아픔에 손이라도 먼저 잡아주기 위해 달려간 것뿐인데, 그래서 발인 때까지 함께 있어준 것인데, 세상은 어쩌면 내 진실과 다르게 매번 나를 구렁텅이에 빠뜨리니? 이젠 더 이상 내가 설 수 없을 것 같아. 이걸 또 이겨내면, 또 다른 일에서 난 사채업자에서 포주로 불릴지도 몰라.”
“이제와서 내 이미지가 뭐가 그리 중요하겠니. 벌써 이런저런 일로 내 사생활은 세상에 모두 알려져, 늘 발가벗겨진 기분으로 대중 앞에 놓였던 사람인데. 난 이제 예쁜 척도 고상한 척도 못해.[13] 근데 우리 환희가 올해 초등학생이 됐잖니. 요즘 아이들은 우리 때와 달리 그 나이엔 인터넷 검색은 다 기본으로 한다는데, 그 어린 아이들이 우리 환희에게 어떤 말이나 시선을 보내면 어떻게 하니? 엄마 때문에 우리 환희가 마음의 상처라도 받으면 얼마나 세상 살아가는 데 위축이 되겠니. 그 생각만 하면 빨리 범인이 잡혀 이 억울한 마음을 한시라도 빨리 벗어야 하는데. 정말 조바심 나 미치겠어.”
“범인한테서 전화가 왔어. 너무 소름이 끼쳐. 무슨 공포 영화 찍는 줄 알았어. 어떻게 번호를 알고 전화를 했지? 형사한테도 전화가 왔는데, 번호를 알려준 것 같은 눈치는 아니던데, 정말 그 사람 목소리 무서워서 혼났어. 그 사람 무슨 대단한 위력이 있는 거 아냐? 나이도 어린데, 힘 있는 집 딸인가? 어떻게 번호를 알았냐고 물었는데, 그냥 말을 흐리더라고. '그냥 무조건 용서해달라'라고 너무도 당당하게 요구해오는 거야. 물론 중간에 흐느끼기도 했던 것 같은데, 어딘가 모르게 가식처럼 느껴졌어. 그렇다고 내 입장에서 막 욕을 해댈 수도 없는 거잖아. 또 '욕쟁이 최진실'로 글을 올릴까봐. 욕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데, 안 나오더라. 그러면서 어느 순간에는 너무도 비굴하게 타이르게 되더라. 왜 그랬냐고 물으니 '무조건 미안하다, 한 번만 봐달라'라고 하는데,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게 옳아?”
“사채설 유포자의 일방적인 전화가 하루에도 몇 번씩 왔어. 전화가 올 때마다 '악마의 전화'가 울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그런데 또 무슨 말을 할지,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닌지, 진짜 범인을 알려줄지도 몰라서 전화를 받았어. 그러나 전화를 받으면서도 어린 사람에게 매번 우롱당하는 기분이었어.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사람에게 철저하게 유린당하는 기분이었어.”
“사채설 유포자가 잡혔는데, 세상은 여전히 나를 안 믿는 사람이 많구나. 죽으면 내 진실을 믿어줄까? 내 이름은 '최진실'인데, 인터넷 속 사람들은 나를 '최가식'이라고 부르네. 너무도 슬픈 일이지 않니? 환희, 준희에게 미안하지만,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어머니보단 죽어서 진실이 밝혀진 어머니가 낫지 않을까? 10월 3일이 환희 운동회 날인데, '사채업자 엄마'라고 환희 친구들이 놀리면 어떻게 하니?”
“그 사람은 나에게 용서를 구하면 되지만, 세상의 수많은 오해들은 내 몫인데, 내가 어떻게 또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그동안 많은 위기들을 넘겨오는데도 숨이 차올라 죽을 지경인데, 너무도 자신이 없다. 안재환의 자살에 왜 내가 연루돼 이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인터넷에 '안재환, 최진실'이란 이름이 동시에 뜨는 이유를 내가 또 어떻게 넘겨야 아무렇지도 않게 웃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 그런데 그렇게 넘기고 웃는 게 정말 행복이고 진실일까?”
최진실은 이전에 이미 자신의 생명을 걸고 불의와 싸울 결심을 하고 있었으며 평소에 주변인들에게 자신의 '부재'에 대해 자주 언급해 두었다. # 2004년 드라마 '장미의 전쟁'에 출연하기 전에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저에게는 두 아이가 있고 제 이름과도 같은 '진실'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그 진실은 제가 죽어서라도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아줄 것이라고 믿고, 이제는 당당히 세상과 맞서 열심히 살 것입니다."
최진실은 자신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완성시키고 싶어했다.
"언젠가 저도 죽겠죠. 그 때 저를 위해 뜨거운 눈물 한 방울 흘려줄 사람들이 있으면 돼요. 그럼 비교적 잘 산 거예요. 돈 많고 힘 있을 때 꽃등심 먹은 사람보다 어려울 때 같이 라면 먹어준 사람이 오래가는 법이거든요. 사람 때문에 늘 상처투성이가 되지만 새 살이 돋게 해주는 존재도 역시 사람인 것 같아요. 인생? 그거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길지 않아요. 살면서 실패도 하고 좌절도 할 수 있는 거죠. 전 죽는 날까지 드라마틱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에요."
3.4. 건설사 <신한>에 대한 분노
2004년 8월 1일 최진실은 자택에서 조성민에게 폭행을 당했다. # 당연히 최진실은 얼굴을 다쳤고 집안 내부도 어질러졌다. 직접 보지 않아도 폭행 사건이 발생했다고 하면 누구나 추측할 수 있는 상황이며 피해자는 필요하면 그 모습을 공개할 수도 있다. 실제로 최진실은 그렇게 했는데 이유는 조성민이 당시 폭행 사실을 아예 부인하면서 언론에 뿌렸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이후 소송의 주된 쟁점이 등장하는데 단순히 법정에 피해사실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폭행당한 자신의 사진을 공개하였던 것이다. 이는 훗날 소송에서 최진실 측이 패소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폭행 장면을 언론에 뿌려서 채무불이행책임이 인정된 것이다.2004년 11월에 광고주 <신한>은 광고 모델 최진실이 다친 얼굴과 범죄 현장을 언론에 공개했다는 이유로 손해배상금을 청구했다. 정확히는 광고모델 계약을 체결하면서 별도로 맺은 품위유지약정 위반을 사유로 계약을 해지하고 손해배상금을 청구한 것이다.
원심은 2005년 9월 "모델료 2억 5,000만 원을 돌려주라"는 원고(신한)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2심은 2006년 5월 "최진실이 폭행을 적극적으로 유발했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최진실이 스스로 자신의 사회적·도덕적 명예를 훼손했다고 볼 수 없다. 최진실의 인터뷰는 쌍방 폭행이라는 주장을 반박·해명하려고 한 것이기 때문에, 최진실에게는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는 원고(신한) 패소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에서는 2009년 6월 <신한>의 주장에 따라 2심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으며 2010년 2월 서울고등법원 파기환송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
이는 많은 민법 개론서의 채무불이행 파트에 흔히 "최진실 판례"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판례다. 즉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의의가 있는 판결이라는 이야기. 다만 주로 법리 자체가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비판하는 입장에서 소개되는 편이다. 쟁점은 아래의 세 가지다.
- 소위 '품위유지약정'의 유효성 여부
- 최진실 측의 고의 및 과실
- 불완전이행으로서의 채무불이행
먼저 소위 품위유지약정에 대해서는 대법원은 계약자유원칙에 의거해 별도의 검토 없이 그 효력을 인정한다. 채무불이행의 성립요건인 '고의 및 과실'도 인정하였는데 단순히 폭행을 당한 사실이 아니라 최진실측이 적극적으로 인터뷰를 통해 폭행 사실과 폭행 직후의 사진 등을 공개하였다는 점에서 고의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를 두고 형사피해자가 자신의 피해사실을 증명하는 것을 이유로 채무불이행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에 대한 비판이 있었고 실제로 2심은 원고패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가장 큰 쟁점은 이 사건이 불완전이행으로서 채무불이행에 해당하는지의 여부였다. '불완전이행'이라 함은 '채무를 이행을 하긴 하였는데, 그 이행이 불완전하다'는 것으로 현실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사례는 아니다. 왜냐하면 현실에서 채무불이행은 이행지체(이행이 늦어지는 것), 이행거절(이행을 거부하는 것), 이행불능(이행이 불가능한 것)의 형태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행을 하면 하고 안 하면 안 하는 것이지 했는데 불완전하게 이행했다고 떠올릴 수 있는 사례가 현실에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최진실측의 '품위유지약정'의 불완전이행을 긍정하였다.
그 결과 많은 민법 교과서에 불완전이행의 사례로 "최진실 판례"가 예시로 사용[14]되고 있다. 대법원은 이런 모호한 개념을 도입하여 기업측의 손을 일방적으로 들어주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졌으며 그로 인해 대한민국 법조계가 친기업 단체로 변질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비판까지 받았다.
<신한>은 승소하였으나 기업 자체가 폭행을 당한 피해자에게 기업의 이미지 실추라는 짐을 씌워서 매우 큰 비판을 받았다. 한편 <신한>은 계약 종료 및 폭행 사건 이후에도 최진실의 사진이 박혀 있는 쇼핑백과 브로셔를 계속 사용했다. # 이러한 모순적인 행동에 큰 비판이 뒤따랐다. 가정폭력 피해자를 동정하는 문화 및 개인에 대한 기업의 갑질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문화가 2000년대보다도 더더욱 강해진 2010년대 이후 같으면 더더욱 비상식적으로 느껴질 법한 판결이었다.
<rowcolor=#FFFFFF> 날짜 | 내용 |
2004년 8월 1일 | 조성민이 최진실 폭행 |
이후 조성민이 쌍방폭행이라고 여론조작하기 시작 → 이에 대해 최진실이 폭행을 당했던 자택 현장, 다친 얼굴 공개 → 이에 대해 광고주 <신한>이 광고 모델 최진실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 제기 | |
2005년 9월 23일 | 1심 <신한> 일부 승소(부장판사 조해섭) |
2006년 5월 3일 | 2심 <신한> 패소(부장판사 길기봉) |
2008년 10월 2일 | 최진실 사망, 3심 소송 진행 중 |
2009년 6월 4일 | 3심 파기환송(대법관 박시환)# |
2010년 2월 9일 | 파기환송심 <신한> 일부 승소(부장판사 이대경) |
2010년 3월 29일 | 최진영 사망 |
2013년 1월 6일 | 조성민 사망 |
4. 사후
최진실의 사망 소식은 외국에도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미국,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인도, 독일, 싱가포르 등은 최진실의 사망을 비중있게 다뤘다. 뉴욕 타임즈, AP통신, UPI, BBC, LA타임스, 가디언 등 미국의 유력 언론들도 최진실의 사망 소식을 앞다퉈 보도하던 가운데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도 최진실의 사망 소식을 대서특필했다. 악플과 루머를 주요 사망 원인으로 보도했던 한국 언론과는 달리 당시 한국의 보수적인 사회 문화를 꼬집기도 하였다.2008년 10월 7일(한국시각) 타임은 《South Koreans Are Shaken by a Cerebrity Suicide(스타의 자살에 한국인들이 흔들리고 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최진실이 자살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한국 사회의 문제점과 최진실의 자살이 한국 사회에 미치는 후폭풍을 집중적으로 소개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최진실은 '한국의 줄리아 로버츠', '한국의 안젤리나 졸리'라는 표현도 부족할 정도로 국민적인 배우이다. 한국은 정서적으로는 매우 보수적인 사회이고 정보기술적으로는 능숙한 사회이다. 최진실은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한국 여성이 맞닥뜨릴 수 있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대표적으로 보여주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강한 여성을 좋아하지 않고 싱글맘은 인격 장애를 가진 것으로 여겨진다. 최진실은 2004년 이혼을 했고 싱글맘이었는데, 한국에서 금기시되는 이혼모에 관한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했으며 싱글맘이 환영받지 못하는 한국 사회를 바꿔보기 위해 노력했다. 최진실은 자살한 동료 배우와 관련된 악성 루머 때문에 힘들어 했고 그로 인해 죽음에 이르렀지만, 한국 사회에서 사회생활하는 여성의 경우, ‘싱글이고 이혼모’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면 '괄시받는 계층(pariah status)'으로 여겨져 사회활동에 불이익을 받는데, 최진실은 이러한 것들로도 고초를 겪어왔다. 최진실의 죽음이 모든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지만,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이혼모로 살아간 최진실의 고통을 언급하는 데는 거의 없었다.
외신의 언급대로라면 결국 최진실의 '너무도 당당한 삶'이 못마땅한 자들이 최진실을 계속 범죄자로 음해한 것이다. 최진실은 '너무도 당당한 이혼'으로 한국 사회의 '정상가족 신화'를 박살내게 되고 한국 사회의 기득권자들은 '정상가족 신화'를 지키기 위해 그런 최진실을 제거해야 했던 상황인 셈이다. 그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최진실을 '살인교사범', '유책배우자', '악덕 사채업자'로 만들어야 했고 그걸 간파한 최진실은 그 다음은 '포주'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15] 즉 한국 사회는 '당당한' 최진실에게는 엄청나게 환호했지만 기득권의 핵을 깨 버리는 '너무도 당당한' 최진실은 두려워했다는 의미다.[16]
- 2008년 11월에 청룡영화상에서 '명예 인기 스타상'을 받게 되고 영화 '남부군'에 같이 출연한 배우 안성기가 대신 이 상을 수상했고 2008년 12월 MBC 연기대상에서 '공로상'을 받게 되고 텔레비전 드라마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에 같이 출연한 배우 정준호가 대신 이 상을 수상했다.
- 2009년 8월에 최진실의 유골함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한 남성이 최진실이 자기에게 빙의해 지금 묏자리가 답답하니 자신을 꺼내달라고 부탁해서 유골을 훔쳤다고 한다.
- 유골을 되찾은 후 유족들은 2009년 9월에 유해를 재안장하면서 묘원 내부에 최진실을 기념하는 공간을 꾸몄다. 참배객들이나 등산객들은 그 공간에서 최진실을 추억하기도 하고 휴식을 취하기도 하였다.
- 2010년 3월에 남동생 최진영이 최진실과 같은 39세[17]의 나이에 스스로 세상을 떠났으며# 최진실의 묘 옆에 안장되었다. 각자의 묘 위에는 각자의 얼굴이 담긴 비석이 세워져 있고 그 두 얼굴은 서로 바라보며 웃고 있다.
- 2011년 6월에 어머니 정옥숙이 생전에 거짓 소문에 시달린 딸과 아들을 위해 자전적 에세이를 출간하였는데 이 에세이에는 최진실과 최진영 남매의 어린 시절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생애가 개괄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제목은 '엄마가,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 2013년 11월 17일 방영된 MBC <섹션TV 연예통신>에서 '연예가 5대 사건' 중 '최진실의 사망'이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최진실의 죽음은 대한민국 사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
4.1. 친족법 개정
최진실은 2004년 9월 1일 당일치기 이혼 시 단독 친권을 가졌는데 이때 조성민이 작성한 친권포기각서도 수령했다. 2008년 10월 시점에는 이혼 등의 사유로 단독 친권을 얻은 사람이 사망할 경우 생존 부모에게 친권을 주는 것이 관행처럼 여겨졌지만 단독 친권자가 사망하면 생존 부모의 친권이 자동으로 부활한다는 법 조항은 없었기 때문에 법적인 문제는 아니었다.2004년 9월 1일 이래 조성민은 최진실의 두 자녀에 대해 면접교섭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으며 2008년 10월호 월간 잡지에서 본인이 직접 면접교섭의무를 이행해 오지 않았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라고 인터뷰한 게 널리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최진실 사망 직후 태세전환해 생뚱맞게 최진실 자녀의 재산 관리에 참견하겠다고 나섰다. 조성민은 간통, 사기, 중상모략, 사문서 불법 유출뿐만 아니라 가정폭력 전과도 있었고 가정폭력, 중상모략과 관련해 최환희, 최준희도 직접적 피해자였기 때문에 친권을 요구할 자격이 없었고 대중은 조성민의 행태에 분노했으며 이런 반인권적 행태를 법으로 규제하자는 여론이 일었다.
인터넷상에 '조성민 친권 반대 카페'가 개설됐으며 회원들은 2008년 11월 15일 서울 여의도에서 조성민의 친권 회복을 반대하고 '친권법' 개정을 촉구하는 '카네이션 집회'를 열었다. 인터넷상에 '한부모 진실방'이 개설되었고 2008년 11월 21일 국회의원 김상희,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함께 국회 토론회를 열었다. '아이들의 법적 권리를 위한 실천 모임'도 결성돼 서명[18] 운동을 펼치고 여러 유명인사[19]가 동석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2011년 친족법이 개정되어 단독 친권자 사망 시 생존 부모 친권 부활과 관련하여 생존 부모에 대해 가정법원이 자격 심사를 하도록 규정하였다. 이 법률은 2013년 7월부터 시행되었다. #
5. 둘러보기
[1] 최진실이 사망한 시각.[2] 최진실의 자택 욕실에서 발견되었다.[3] 불임 내용 같지만 사실 읽어 보면 조성민과 결혼한 최진실이 TV·영화·CF 스케줄 때문에 바빠서 임신할 틈도 없다는 별 것 없는 내용이다. 한국신문윤리위원회는 이 기사에 대해 주의 조치를 내렸다.[4] 당시 연예계는 학력 중심으로 학력위조가 허다했다.[5] 최진실은 키우는 강아지의 종류나 위경련으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사소한 일상들까지 신문에 실렸다.[6] 비슷한 일을 겪은 나훈아의 기자회견을 언급하면서 연예계 대선배 나훈아를 다시 못 볼까봐 두렵다고 했다. 관련 영상[7] 월간 잡지는 통상 전월 마지막 주에 발간된다.[8] 수면제 혹은 우울증약으로 추정된다[9] 딸 준희의 개명 전 이름.[10] 이혼 후, 최진실이 사망하고 나서도, 본인이 사망할 때까지 양육비를 지급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물론 최진실 자녀들은 굳이 아버지의 경제 지원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지만 아버지로서 최소한의 성의를 표하지 않았다.[11] 10월 2일 0시 47분 마지막 통화[12] 정확하게 말하면 조성민의 이혼 과정. 조성민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이혼하고 싶다고 언론에 떠들고 다녔기 때문이다. 2002년 12월 18일부터 2004년 8월 31일까지 대중은 조성민의 간통, 폭행, 사기, 중상모략, 사문서 불법 유출 등의 범죄 행각을 확인했다.[13] 2005년 10월 연예기획사 '싸이더스HQ' 본부장 박성혜가 최진실을 두고 '고상하지 못하다'고 떠들고 다닌 적이 있다. # 박성혜는 연예인이 범죄 피해자일 때 범인 편에 서서 일을 한다는 의미다. "성혜야 범죄 피해자가 왜 고상하지 못하지? 그럼 범인이 고상하다는 거니?" 이런 후려침이 가능한 행태다. 박성혜나 박성혜의 이런 범죄적 언사를 그대로 기사에 실은 김갑식이나 범죄자 조성민의 수족 역할을 잘 하고 있다. 참고로 이 사이더스 hq 창립 멤버였던 박성혜는 이후 키이스트 공동대표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14] 비록 불완전이행이 드물게 인정되는 법리이기는 하지만 폐기물을 묻은 후 그러한 하자를 매수인에게 이를 알리지 않고 매매한 경우, 액젓 탱크에 존재하던 하자로 인해 균열이 생겨 액젓이 변질된 경우 건물 신축공사의 하자 등 하자담보책임과 채무불이행책임의 경합과 관련하여 이전부터 인정되어 왔던 법리였다.[15] 살인교사범(1994년에 시작) → 유책배우자(2002년에 시작) → 악덕 사채업자(2008년에 시작) → 포주(?)[16] 최진실은 1993년 주병진이 진행하는 토크쇼 <주병진쇼>에 출연했을 때 자신은 여성 팬이 더 많다고 했으며 물론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17] 세는나이로는 41살(연 나이 40세)이었으나 그 해 생일이 지나기 전이었다.[18] 방송인 허수경, 배우 권해효, 코미디언 이영자, 배우 박철민, 배우 신애라, 방송인 서세원-서정희 부부, 만화가 박재동, 제3대 여성부 장관 장하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혜신,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조한혜정 등이 참여했다.[19] 여성학자 오한숙희, 변호사 원민경,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 신의진, '진실한 아버지 카페' 운영자 오성근, 오다향 등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