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7 16:49:49

안치오 상륙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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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의 전투 목록 | 유럽/아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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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오 상륙작전 (The Battle of Anzio)
제2차 세계대전이탈리아 전선의 일부
파일:OperationDiademMay1944.jpg

파일:S1768.jpg
날짜
1944년 1월 22일 ~ 6월 5일
장소
이탈리아 왕국, 안치오, 네투노 해안
교전국 [[틀: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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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틀: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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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트 케셀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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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하르트 폰 마켄젠|
에버하르트 폰 마켄젠
]]
결과
연합군의 상륙작전 성공
영향
연합군로마 진격
<colbgcolor=#c0c0ff,#00003f> 병력 초기 기준
- 3만 6천 명
작전 개시 기준
- 15만 명
초기 기준
- 2만 4천 6백 명
작전 개시 기준
- 13만 5천 명
피해규모 - 전사 4천 명
- 부상/실종/포로 3만 6천 명
- 전사 5천 명
- 부상/실종/포로 3만 5천 명

1. 개요2. 구스타프 방어선3. 라피도 강변의 학살4. 대중매체

[clearfix]

1. 개요

이탈리아 전역당시 펼쳤던 상륙작전.

2. 구스타프 방어선

1943년 9월 3일 연합군이 처음 이탈리아에 상륙한 이래, 10월에 미 제5군이 나폴리를 점령하고 버나드 로 몽고메리의 영국 제8군이 동부해안의 포지아를 점령함에 따라 연합군은 이탈리아 반도에서 견고한 발판을 굳혔다. 이제 연합군은 독일 국방군의 군화 아래 있는 '영원의 도시' 로마를 점령하기 위해 전열을 재정비하였다. 로마는 알다시피 그리스와 더불어 서양 문명의 뿌리인 로마 제국의 발상지이다. 이러한 상징성 때문에 연합군 장군들은 서고트족알라리크, 반달족가이세리크에 이어 자신의 이름이 로마 입성이라는 역사에 남기를 바랐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장군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기싸움이 시작되었고 서로 로마에 먼저 입성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일단, 나폴리에서 로마로 가는 길은 딱 두가닥 밖에 없다. 둘 다 로마 제국때 건설된 도로인데 하나는 해안가의 평지를 따라 로마로 뻗어있는 아피아 가도고, 또 하나는 카시노 산을 따라 로마로 이어진 카실리나 가도였다. 이탈리아에서 진격하는 동안 숱한 산악전을 치른 연합군은 이제는 산이라면 진절머리가 난다고 할 정도로 이탈리아의 험준한 산세에 질려있었기 때문에 아피아 가도로 진격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독일군도 바보가 아니므로 연합군이 이 길로 진격하는 동안 산 정상에서 집중포화를 퍼부을 것이 뻔할 뻔자고 설사 포화를 무사히 탈출한다 하더라도 북쪽에 위치한 폰티네 늪지대가 연합군의 발목을 잡을 것이 분명했다. 결국 연합군은 울며 겨자먹기로 카시노 산의 카실리나 가도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이탈리아 전선 총사령관이자 독일군의 명장 중 하나인 알베르트 케셀링 원수 또한 연합군이 이러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카시노산에 구스타프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이 구스타프 방어선은 가히 제2차 세계 대전을 통틀어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방어선이라고 평할 수 있었다.[1] 포진지와 지휘소는 산중의 단단한 자연 암반층을 뚫고 그 속에 건설되었고, 무수한 박격포MG42가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촘촘히 배치되었다. 크레인을 통해 필요한 곳에 간단히 옮겨 설치할 수 있는 토치카가 수없이 제작되었고, 그 중 큰 것은 75mm 대전차포를 발사하도록 설계된 것도 있었다. 또한 산의 지형지물을 이용해 연합군 진격로의 요충지마다 파묻힌 전차가 포탑만 내놓은채 매복하고 있었다. 이곳에 배치된 독일군도 코흘리개 신병들이 아닌 헤르만 괴링 기갑사단, 제15장갑척탄병사단, 제1공수사단 등 아프리카와 이탈리아에서 이미 만렙을 찍은 역전의 베테랑들이었다.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방어선 전방에 매설된, 지뢰 탐지기에도 포착되지 않는 목함지뢰인 슈와 밟으면 공중에 튀어올라 파편을 뿌리는 S 지뢰 7만5천개로 가히 연합군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파일:external/tv02.search.naver.net/WWIIEurope48.jpg
주황색이 구스타프 라인이다.

파일:external/tv01.search.naver.net/USA-MTO-Salerno-p324.jpg
흑백이라 잘 보이지 않지만 구스타프 방어선의 모습이다. 사실 방어선이 암반 속에 지어져서 컬러여도 보기 힘들다. 흰 선은 라피도 강

이 방어선을 공략하기 위해 분투하던 미 제5군은 엄청난 사상자에 결국 GG치고 11월 5일 공세를 중단하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연합군 지휘부는 바다로 눈을 돌려 안치오에서 상륙작전을 전개하는 것을 계획하게 된다. 연합군의 작전구상은 이러했다.
  • 2개 사단을 배에 실어 구스타프 방어선 너머 안치오에 상륙시킨다.
  • 그에 따라 독일군의 전력이 안치오로 분산된다.
  • 이로 인해 약화된 방어선을 미 제5군이 뚫어낸다.
  • 안치오에서 상륙부대와 미 제5군이 합류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바로 병사들을 실어나르기 위한 상륙정이 부족했던 것이다. 이미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위해 대부분의 함선이 서부전선으로 총 투입되고 난 상황이라 도저히 이탈리아 전선에 지원을 해줄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 작전은 쓰레기통으로 던져지기 직전에 이르렀다. 그러나 여기서 한분의 구세주가 나타났으니 바로 영국 수상인 윈스턴 처칠이었다. 처칠은 이상하리만큼 이 작전에 집착하며 루스벨트에게 간청해 LST상륙함을 얻어냈고 이에 힘입어 안치오 상륙은 1944년 1월 14일로 결정되었다.

여기서 상기해야 할 점은 안치오에 상륙하는 부대는 어디까지나 독일군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조공(助攻)으로 주력은 미 제5군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미 제5군은 독일군이 분산된 사이 반드시 신속하게 방어선을 돌파해야만 했으며 조금이라도 늦으면 마땅한 중화기가 없는 상륙부대는 바다로 되쓸려갈 운명이었다. 결국 시간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연합군은 참극이 발생하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3. 라피도 강변의 학살

"우리는 살쾡이를 해변에 풀어놓기를 원했는데, 낚시줄에 걸린 고래 한 마리를 해변에 놓아둔 꼴이다."[2]
윈스턴 처칠
1944년 1월 22일 안치오 상륙작전이 시작되었다. 전의 살레르노 상륙 때처럼 반격을 예상했으나 루프트바페의 기총소사 이외에는 별다른 저항이 없었다. 기습상륙은 성공했고 정찰대는 로마 외곽까지 진출했다. 진격로에 독일군이 없다는 보고에도 불구하고 루카스 소장은 진격하지 않고 상륙지점의 교두보를 안정시키고 군대가 충분히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이날 늦은 저녁까지 미군 제3보병사단, 제504공수보병연대와 제6615레인저부대 그리고 영국군 제1보병사단의 병사 3만 6천 명과 차량 3200대가 상륙했다. 미군 13명이 전사하고 97명이 부상을 입었지만 독일군 200명을 포로로 잡았다. 영국군 제1보병사단은 내륙으로 3 km, 미군 제3보병사단은 5 km를 진군했으며 레인저는 안치오 항구를 점령했다. 이날 이탈리아 저항군이 고지대까지 연합군을 안내하겠다고 했지만 연합군은 거부했다.

그후 독일군이 배수펌프 작동을 중지시켜 습지대가 바닷물에 침수돼버렸고 미군은 분지에 고립되었다. 그리고 고지대의 독일군은 4주 동안이나 고립된 미군에게 포탄을 쏟아부었다. 이때 사용된 포는 210mm Mrs 18 중야포, 600mm 자주박격포 칼 등이었다. 분명 구스타프 라인 후방으로 상륙해서 당황한 독일군이 로마 북서쪽으로 후퇴하는게 만드는 것이 루카스 장군의 임무였지만, 장군은 전진은 커녕 모든 병력과 장비를 비좁은 교두보를 강화시키는데 투입했다. 독일군은 안치오를 포로수용소라 비웃었고 약 한 달간 치열했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는 전투를 치른 루카스 소장은 해임되었다. 후임자로는 루시안 트루스콧 장군이 임명되었다.

4. 대중매체

록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이름을 들어봤을만할 사건일 것이다. 이유는 영국의 전설적인 록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전 리더 로저 워터스의 아버지[3]가 영국군 Z중대로 추축군과 싸우다가 이 전투에서 전사하였기 때문.[4] 이 사건은 이후 로저 워터스의 반전주의적 정치 성향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후일 로저 워터스가 다른 핑크 플로이드 멤버들과 법적 공방을 벌일때 핑크 플로이드라는 밴드는 시드 바렛의 정신과 안치오 전투에서 전사한 아버지의 영혼을 포함해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앨범 The Wall을 기반으로 제작한 영화 핑크 플로이드의 벽에서도 가상의 음악가 "핑크"의 아버지가 안치오 전투에서 영국군 C중대에서 싸우다가 전사했고 이것이 핑크에게 큰 영향을 줬다는 묘사가 곡 When the Tigers Broke Free를 통해 표현된다.

미국 전쟁영웅인 어디 머피가 쓴 안치오에 십자가가 자라네(The Crosses Grow On Anzio)에서 안치오가 언급된다. 메탈 밴드 Sabaton의 노래 To Hell and Back의 가사 일부가 이 시를 인용했기에 To Hell and Back에서도 언급된다.

1968년 미국-이탈리아 합작 영화 안지오(Anzio)가 이 작전을 다루고 있다. 형사 콜롬보로 유명했던 피터 포크가 주연이었으며 한국에서는 안지오,안지오의 영웅들이란 제목으로 개봉 및 비디오 출시, 더빙 지상파 방영했다. MG42가 무섭게 나오는 영화 중 하나.

심슨 가족 시즌 28 14화에서 바트 심슨이 해당 사건을 바탕으로 한 게임을 한다. 에이브 심슨은 직접 전투에 참여했다고 한다. 손자 바트가 해당 작전을 다룬 게임이 현실과 다르다고 비판하면서도 게임 속 독일군 탱크인 5호 전차가 자신을 겨누자 바로 항복했고, 게임 속 독일군 전차장그걸 받아준다.[5]

함대 컬렉션의 2019년 여름 이벤트의 배경이 되었다.

더 리버레이터 500일의 오디세이 Episode 2 안치오에서 (넷플릭스)


[1] 케셀링은 카시노 산을 중심으로 3중의 방어선을 쳤는데 구스타프 선은 이 중 마지막 방어선이었다.[2] 쉽게 말해 본래는 상륙지에서 신속하게 진격하여 독일군을 밀어내야 하는데, 상륙지에 병력과 장비들이 북적대면서 정작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리.[3] 에릭 플레처 워터스, 1914~1944.02.18.[4] 워터스는 1943년생인데, 1944년 초에 벌어진 이 작전 때 만 1세도 되지 않았다. 즉 태어나자마자 거의 바로 아버지를 잃은 것.[5] 본인은 포로인 척 함정을 팠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