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20 01:21:34

김관진(군인)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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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진(金寬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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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8월 27일 ~
복무 대한민국 육군
기간 1972년 ~ 2008년
임관 육사 28기
최종계급 대장
최종보직 합동참모의장
주요보직 제3야전군사령관

1. 개요2. 군인 시절
2.1. 생도 시절2.2. 주요 경력
3. 국방장관국가안보실장 시절4. 사건사고/논란5. 여담6. 관련 문서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군인이자 정치인. 前 국방부장관, 국가안보실장.

전라북도 임실군 출신으로 전주북중학교[1]서울고등학교졸업(제20회)하고, 1972년 육군사관학교 제28기로 임관하여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까지 지냈다. 2008년예편했으며, 최종 계급은 대한민국 육군 대장이다.

이후 2010년 11월 23일 발생한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인하여 전임 김태영 장관이 국방부 장관직을 사임하자, 26일에 그 후임 장관으로 내정되었고 다음달 4일 정식으로 대한민국 제43대 국방부장관에 임명되었다. 김관진 장관 취임사 전문 그리고 2014년 6월 1일, 전임인 김장수 실장의 후임으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후보자로 내정되었다. 이임 후, 국방장관직은 후임인 前 합참의장 한민구 장군이 맡게 되었다. 퇴임후에는 국방부를 동원해 여론조작을 저지른 정황과 증거문서가 발견되고 재판 중에 있으며, 군형법상 정치관여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외에도 2017년 계엄령 모의 사건의 주동자임이 밝혀져 진행중인 재판이 하나 더 생겼다.

2. 군인 시절

2.1. 생도 시절

육군사관학교 생도 시절 학업 성적이 우수해 육사 기수 중 1명만 선발하는 서독 유학 시험에 합격, 한국에서 1학년을 마친 후 서독 육군에서 졸업까지 하고 왔다. 당시 그가 수학했던 1969년 뮌헨의 서독 육사는 대한민국과 비슷한 처지의 후진국 출신 생도들이 유학 중이었고, 그중 한 달에 60달러($)로 생활해야 했던 김관진 생도는 졸업할 때까지 그럴듯한 식당에서 식사 한 번 못 해봤다고 한다.

독일 육사가 학사 학위를 주지 않은 탓에 한동안 학력이 고졸로 처리되었다.[2] 육군에서 보상으로 서울대학교 위탁 교육을 제안했지만 자기는 군인이 되기 위해 임관했다며 거절했다. 나중에야 학력이 인정되고 육사 명예학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2.2. 주요 경력

1972년 육군 보병소위로 임관해 32사단 수색중대 소대장12사단 52연대 전투지원중대에서 소대장을 지냈다. 서울대학교 학군단인 101학군단 교관을 지낸 후 서독 육군 전투병과학교에서 고군반을 이수했다. 귀국 후 수방사에서 203차량화보병대대 3중대장을 지내고 육군보병학교 전술학처 전술교관을 거쳤다.

영관급 장교 시절 육군대학 정규과정을 이수했으며, 대통령경호실 경호요원으로 파견근무를 했다. 이후 15사단 50연대 2대대장을 지냈으며, 동사단에서 작전참모를 지냈다. 육본 작전참모부 군사대책계획총괄장교를 지냈으며 국방대학원 안보과정을 이수했다. 이후 국방부 818기획단 법규과장을 지냈다. 수도기계화보병사단에서 26기계화보병여단장을 지냈는데, 이때 수기사의 차상급부대인 제7기동군단이현부 중장(육사 20기)이 헬리콥터 추락사고로 순직했다. 이후 합참 전략기획본부 군사전력과정과 대통령비서실에서 근무했다.

장군으로 진급한 후 7사단 작전부사단장을 거쳐 육군교육사령부 전투개발부 차장을 지냈다. 이후 준장 요직인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 비서실장과 육본 전력기획참모부 전략기획처장을 지냈다. 소장으로 진급하여 제35보병사단과 육본 기획관리참모부장을 지냈다. 기획관리참모부장 후임으로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이 맡게되었다. 중장으로 진급하여 제2군단과 중장 요직인 합참 작전본부장을 역임했다.

군단장 시절 2003년 10월 1일에 열린 국군의 날 제55주년 기념행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보국훈장을 받았다. 작전본부장 시절 이라크 파병을 총괄했는데, 상당히 중요한 보직이라 이때부터 언론에 노출되는 빈도가 꽤 높아졌다. 2004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김선일씨 사건 당시 이라크 파병과 부대 경계 회의 등에 참여했었다. 10월 14일에는 국회 국방위원회에 가서 동해안에서 잠수함 추정 물체 출현 첩보에 대해 보고했다.

이후 대장으로 진급하여 제3야전군사령관에 임명되었다. 이후 강원도 명예 도민으로 선정되었다. 한편 2005년 5월, 노무현 대통령의 자이툰 부대 방문을 다룬 '대통령님, 한번 안아보고 싶습니다'에 저자로 참여했다. 2006년, 군 최고 서열인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이 되었다.

3. 국방장관국가안보실장 시절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김태영 국방장관의 뒤를 이어 국방장관이 되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군인사를 불신하며 여러 국방장관 후보자들을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었는데, 누군가 김관진을 추천하였고 그와의 대면에서 몇 시간 동안이나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대담의 내용은 정확하게 알려진 것은 아니지만, 도발이 있을 경우 가장 강경하게 대응할 것을 피력한 점이 장관 후보로 발탁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았다.

인사청문회에서 증여세나 건보료 탈루 의혹 등의 문제가 있었지만, 당시 연평도 포격 도발이라는 전례없는 도발행위로 인해서 그에 대한 강경한 대응을 주장했던 김관진의 인사청문회는 큰 문제 없이 통과되었다. 취임 초기부터 재임 기간 내내 강경한 대북정책의 입장을 취해왔던 터라 김관진이 국방부 장관 재임 시절에는 전군에 선조치 후보고의 매뉴얼이 매번 강조되었다. #1 취임 첫날, 연평도 방문 北, 추가도발시 항공기 동원 폭격, 선조치 후보고

2013년 3월 22일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새로 내정했던 후임 국방장관 후보자인 예비역 육군대장 김병관 장군이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온갖 비리가 드러나 자진 사퇴함으로써, 김관진 장관이 유임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에 따라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국방부 장관이자 박근혜 정부의 첫 국방장관으로서 국방업무를 계속 총괄하게 되었다. 이에 뒷이야기가 좀 있는데, 골치 아픈 일도 다 그만두니 유학 중인 이나 보려고 관사에서 짐 다 빼고 미국으로 건너갈 준비를 하다가 덜컥 유임 결정이 내려졌다고... 말년이라고 무시하던 실무자들이 유임 후 굽신굽신하는 모습을 꼬집기도 했다.



파일:external/image.chosun.com/2013041900794_1.jpg

북한에서는 김관진 실장을 김관진놈이라고 부르며, 훈련 때 목표물에 사진이나 그림을 붙여놓고 훈련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으나 이명박을 비롯한 보수 정권의 주요 인물들이 공개적으로 강경한 대북 정책을 취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특히 김관진은 전임 장관이었던 김태영이 사실상 경질될 무렵 강조되었던 '도발 원점 타격', '적 지휘부 공격', '선조치 후보고'를 임기 기간 내내 전군에 강조한 바 있었다.
북에서 김관진놈이라고 사진을 가지고 붙인것은 김관진본인이 참군인이기에 북에서 두려워서 그런것이다라고 주작했으나 박근혜탄핵전후에 밝혀진바로는 김관진이 먼저 김정일김정은사진을 사격판에 붙이는등 북한을 먼저 도발했기에 북에서도 김관진사진을 훈련에 쓴것으로 밝혀졌다

2014년 6월 1일 세월호 참사 수습 실패로 인한 분위기 쇄신을 위해 사퇴한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의 후임으로 임명되었다. 2015년 8월 22일 판문점에서 북한과의 대화에 나선 바 있다.

2016년, 국회운영위원회 회의에서 THAAD 배치를 발표했다. #

4. 사건사고/논란

군인시절엔, 야전 주요 지휘관과 작전, 전략, 정책, 전력증강 분야 등에서 폭넓은 경험을 쌓았다. 중장이었던 합참 작전본부장 시절 치밀한 이라크 파병 작전을 수립해 자이툰부대가 한 건의 사고도 없이 이라크 북부 아르빌에 입성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 재임 시절 선진병영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동기생활관 제도를 통해 일이병들의 병영 난이도 해소에 일조하였다. 또한 전투복을 신형으로 개선하여 장병들의 전투력 향상에 기여한 것도 그의 업적이다.[3] 군대 내 권위주의 타파와 북한도발억제, 진보언론 지지가 있었다는 국방부의 홍보도 있었지만 국방장관 재임기간이 길어져 감에 따라[4] 정치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관료로 평가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국가정보원·국방부 여론조작 사건으로 인해 2017년 11월 11일 구속수감 되었다.

4.1. 사고 대처 논란

2003년 10월 28일에 이라크에 주둔중인 자이툰 부대 근처에서 폭발물이 터지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일체의 브리핑을 하지 않아 논란이 있었다. 한편, 같은 해 10월 26일 벌어진 강원도 철원 전방부대 철책 절단 사건과 관련해 "전문가의 소행"이라는 UN군 보고서에 대해 "UN 조사는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군의 보고가 더 정확하다"고 반박했다.

530GP 사건 이후 희생자 장례식에 참여했는데, 희생자의 모친이 "내 아들 살려내!"라고 하자 3분도 안 되어 자리를 떠나 논란이 일었다. 당시 의견이 둘로 나뉘었는데, "3군사령관이면 하루에도 엄청난 일정이 있으며, 저렇게 이병, 일병을 위해 장례식에 찾아오는 것 자체가 대단한 행동."이라는 의견과 "육군의 최고위 지휘관 입장이면, 희생자의 부모들과 대면해 위로의 말을 건네는 지휘관다운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다.

2011년 6월 초에는 군 비리, 횡령을 고발한 영관급 장교를 오히려 징계 하였다. ### 또한 국방개혁 307에 대해서도 논란이 존재한다.

김관진이 국방부 장관 재임기간 동안 벌어진 사건만 해도 강화군 해병대 동료 총격 사건, 북한군 노크 귀순 사건, 국가정보원·국방부 여론조작 사건, 북한 무인기 추락사건,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 제28보병사단 폭행사망 사건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연이어 터졌지만 그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았다. 그것뿐만 아니라 오히려 청와대 안보실장으로 승진까지 했으니... 특히 강화군 해병대 동료 총격 사건이 일어나자 병영문화 개선 등을 약속했으나 가시적인 성과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물론 강화군 해병대 동료 총격 사건해병대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온 해병대 특유의 폐쇄적인 악습 문화 때문이지 모두 김관진 장관의 탓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해병대도 국방부 예하에 있는 군이다. 국방부장관이 육군 문제만 책임지는 직책인가? 이 논리대로면 530GP 사건 당시 국방부장관이던 윤광웅 제독대한민국 해군 출신이니 육군 장병들의 죽음엔 책임 질 이유가 없다. 또한 이런 변명이 무색하게도 재임기간 중 두 번째 총기난사 사건인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하고야 말았다는 것. 심지어 김관진은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사건 직후 부대 내에 집단 따돌림이 있었다는 발언까지 하여 큰 논란을 일으키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22사단 사건 당시 이미 국가안보실장 자리에 내정되어 이취임을 앞두고 있던 탓에 책임논란이 유야무야되었다.

이후 제28보병사단 폭행사망 사건까지 발생했었음이 후임 한민구 장관 시기에 뒤늦게 국민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이 사건 역시 김관진이 국방장관으로 재임하던 시절에 일어난 일이었다. 게다가 사건 발생 이후 자세한 정황까지 보고받았음에도 두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사건해결에 대한 의지를 보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예 사건을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었다.관련기사

결국 강화군 해병대 동료 총격 사건 이후의 병영문화 개선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던 셈. 게다가 22사단 사건이나 28사단 사건이나 각각의 해당 항목을 들여다 보면 알겠지만, 두 사건 모두 국방부의 대응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고 언론을 상대로 축소 은폐공작까지 벌였다는 의혹이 있었다. 심지어 김관진 본인은 논란이 될만한 발언까지 했었다.

이렇게 끊임없는 사고가 터져나가고 아무런 개선도 되지 않았음에도 그가 재임기간 중 사임을 하지 않고 끝날 수 있었던 이유는 군인다운 모습을 어필하고 안보와 인성을 중요시하는 국민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는 군 측의 주장과 달리 관운이 매우 좋았다는 것이 중론이다. 가장 논란이 되었던 28사단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김관진이 이미 국가안보실장에 취임했는데, 후임이 정해지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국방부 장관까지 겸직하고 있었던 시점이었다. 때문에 국방장관에서 물러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고, 안보실장으로서 책임을 지기엔 이 사건 자체가 안보실장이 책임을 져야 할 것은 또 아니기 때문에 결국 이도저도 아니게 되어버린 것.

2017년 5월 14일 새벽 05시 27분, 북한이 평북 구성 일대에서 탄도 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 1발을 발사했다. 이런 중요한 사항에 대해서 담당 부서 책임자인 김관진 실장이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건 것이 아니라 위기관리센터에서 상황을 전해 들은 비서실장이 대통령에게 전화로 상황을 보고했고, 이에 대해서 대통령은 책임자인 안보실장이 직접 전화를 걸 것을 지시해 안보실장이 직접 다시 전화로 보고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전 정부에는 어떤 식으로 보고가 됐는지가 여실히 보이는 일화라고 할 수 있겠다.

4.2. 하나회 출신 등용 논란

2011년 11월 10일 단행된 '후반기 장성 진급 및 보직 인사'는 청와대기무사의 영향력이 없었던, 김 장관이 전권을 행사한 인사라고 알려졌다. 이번 인사는 설령 진급 해당자가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거나 심지어는 지금은 없어진 군내 사조직 하나회 출신일지라도(!) 출중한 능력을 인정받았다면 대거 발탁한 보기 드문 인사였다는 평이다. 기사 해당 인물들은 육사 36기[5] 김현집최익봉으로 둘 다 동기 중 1차로 중장으로 진급했다. 하지만 다른 조직도 아니고 불법적 권력찬탈과 헌정유린 세력으로 규정된 하나회 출신이 기용된 만큼 반발에 부딪히는 것은 어쩔 수 없으며, 문제를 삼아도 할말이 없다.

한편, 이유로는 군 내외로 라인이 탄탄해서 파워 게임을 할 때 전혀 밀리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6] 몇몇 언론에 따르면 국방부 내의 인사권은 김관진이 확고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기도 하다.

4.3.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 논란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건으로 국정이 혼란할 때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 가서명을 주도했다며, 한민구 국방장관과 윤병세 외교부장관을 포함한 세 사람은 신(新) 친일 3적이라고 더불어민주당이 비난했다.

4.4. 사드 배치 논란

2016년, 국회운영위원회 회의에서 사드 배치를 발표했다. # 또한 국회질문에서 '한국에 사드 배치를 요청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판단은 미국이 한다. 미국이 (판단)하고 우리는 받아들였다'라는 대답을 하여 논란이 일었다.

2017년 사드 배치와 관련, 트럼프가 미국이 부담하기로 한 설치 비용 10억 달러를 우리나라가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해서 논란이 일었는데 미국의 국가안보보좌관인 허버트 맥매스터와 대화한 후 설치 비용 부담은 미국이 하고 우린 토지를 제공하기로 했다는 기존 협상을 재확인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허버트는 폭스뉴스 선데이와 인터뷰에서 김관진이 말한 한국 측 주장이 사실이냐 묻자 본인이 제일 싫어하는 게 대통령의 발언을 부정하는 것이라면서 재협상 전까진 기존 협상이 유효하다는 뜻이었다고 말함으로써 재협상의 여지를 남겨두는 발언을 하였다.

박근혜 탄핵 이후 결정권자가 부재한 상황에서 조언자 역할을 해야 할 안보실장이, 그것도 선출직도 아닌 탄핵된 박근혜가 임명한 직위임에도 기습적으로 사드 배치를 주도하는 등 이와 관련돼서 안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아예 사드를 처음부터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다는 언론 보도와 JTBC1, 신문기사 비용 문제를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 하고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JTBC2. 이와 관련하여 김관진 본인은 지난해 말 트럼프가 정부 인수 위원회 차원에서 우리 정부에게 사드 배치 비용을 분담할 것을 이미 통보했다고 보도한 언론사한국일보를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

2017년 5월 17일 JTBC 보도에 따르면 김관진 실장이 있는 국가안보실은 새로운 정권에 제대로 인수인계를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 현안 보고를 받거나 자료를 넘겨 받은 적이 없다. 특히 북핵 문제나 사드 배치 등 중요한 안보 관련 사항에도 이전 정권과 미국의 협의 내용, 황교안 전 권한 대행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의 통화내용, 사드 비용에 관해 김관진 실장과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전보좌관 사이에서 통화한 내용 등 아무것도 듣지 못해 다른 루트로 협의 내용을 파악했으며, 결국 5월 30일엔 사드 추가반입마저도 보고하지 않은 점이 밝혀지면서 최소는 한민구 국방부 장관. 가장 높게는 그 정보를 가지고 있었을 김관진 실장까지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반항하고 있음을 보여주게 되었다. 대통령과 안보실장의 사이가 아무리 좋지 않아도 대통령은 국가 안보를 책임지는 군대의 최고통수권자이다. 그런데 최고통수권자에게 안보 관련 정보를 알지 못하고 안보실장이 정보를 독점하거나 은폐하려 한다면 국가의 안보에 큰 문제임은 당연하고, 군인의 커리어에도 흠이 갈 행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5월 30일 국방부가 사드 발사대 4개를 청와대에 보고도 하지 않고 비공개로 반입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국방부는 안보실장을 통해 보고를 했다고 주장했지만 청와대에서는 국방부를 통해 사드 발사대와 관련된 어떤 보고도 받지 못했다고 반박하며 진실 공방이 벌어지게 되자 당시 안보실장이었던 김관진 실장에게 화살이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동안 쌓아놨던 참군인 이미지가 박근혜 정권 말기 그리고 문재인 정부로 들어서면서 완전히 추락하고 있는 상황.

이렇듯 이런저런 국가정책에 직간접적인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는 국가안보실장으로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기가 매우 어렵다'''. 애초에 김관진 본인부터가 군인 시절, 국방부 장관 시절에 북한에 대해 매우 강경한 인물로 유명한지라 외교적, 정치적 판단이 필요한 안보실장에 적합한지 의문이 있었다. 시작부터 대북 강경이라는 좁은 틀 안에서 인재를 찾을 수밖에 없었던 박근혜 정부의 패착이었고, 결국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인선이라는 실책을 낳게 되었다.

4.5. 군 내부 사조직 결성 의혹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의원이 국방부 내에 김관진과 같은 독일 육군사관학교 연수 출신의 인사들로 구성된 이른바 '독사파'라는 사조직을 만들었다는 주장을 하였다. 현재 군 내부는 알자회, 김관진의 독사파, 한민구 파벌과 같은 사조직 중심으로 주요 인사와 정책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에 의해 보고 누락이나 은폐, 비리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으므로, 사드 배치 보고 고의적 누락 의혹에 대해서도 군 내부 사조직과의 관련성을 감찰을 통해 규명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4.6. JTBC의 중고 치누크 도입 관련 논란

항목 참조.

4.7. 국가정보원·국방부 여론조작 사건

2011년 7월 공작 악용 방지와 문민통제를 위해 국방부 직할부대로 승격한 사이버사령부에 대한 국방부 실무 부서의 감시·통제를 회피할 목적으로 사이버사를 ‘국방장관 직보 비밀조직’으로 재편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리고 댓글부대를 모아놓고 정신교육도 하고 댓글공작을 직접 지시까지했다는 사실까지 드러나 댓글부 장관이라는 조롱도 듣고 있다. 여기에 2012년 2월 총선을 앞두고 여론조작을 위해 군 사이버사령부에서 작성한 문건에 김관진의 서명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까지 확인되면서 국방부 적폐청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거세지고 있는 상황이다.

거기에 2017년 9월 29일 장관 재직시절 당시 사이버사에서 김관진 장관의 얼굴을 합성하여 유포한것이 알려져 우상화 작업이라는 비아냥을 샀다.

마침내 군 사이버사령부의 댓글 조작 사건의 윗선으로 해외출국이 금지되고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되기에 이르렀다. 검찰 조사 중 자신이 지시를 하고 보고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해당 활동이 불법 인 줄 몰랐다고 진술 한 것으로 알려졌다.[7]

11월 7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되었다. 검찰은 김관진 전 국방장관이 댓글공작에 투입될 군무원들중 호남 출신등 특정 지역 사람 채용을 배제하고 특정 정치인과 연예인에 대한 SNS 조사, 선거기간에 이뤄진 동향 조사에 대한 지시를 내렸다는 군계자의 진술과 증거를 확보한것으로 알려졌으며, 검찰에 와선 '북한의 대남 선전선동에 대비해서 만든 것이 사이버사령부 심리전단이고 본연의 임무에 최선을 다했다.'며 국민에 대한 공작행위가 당연했단 입장을 밝혔다. 본인이 호남출신이고 호남출신 차별을 너무 겪어서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양반이 호남출신을 배제하라고 한 것에 많은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국방부 장관 시절 호남 출신을 배제하는 정도가 아니고, 오히려 호남 출신 숙청에 나섰다고 보기도 한다. 전라도 광주 출신으로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대장 진급 1순위였던 박선우 중장이 대장으로 진급한 당연한 사례를 제외하고, 전남 영암 출신 1군단장 모종화 사령관이 후배에게 밀리고, 해군 중장 진급 예정자 5명 중에서 유력한 호남 출신 후보 두명이 모두 탈락하고, 육사 42기 1차 장군 진급자 중에서는 아예 호남 출신이 한명도 나오지 않은 배경에는 김관진이 있지 않겠느냐는 추측도 있다.

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관진은 군 생활을 하면서 불이익을 우려해 호남 출신이라는 것을 철저히 숨겼다고 한다. 본적도 서울로 옮겨놓고 서울고 출신이라는 사실만 강조했다는 것이다.[8] 그 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 비로소 자신이 호남 출신이라는 것을 '커밍아웃' 했다고 한다. 기사 그 당시 기사를 보면, 그가 호남 출신임이 밝혀진 후에도 출생지가 전주냐 임실이냐를 두고 혼란이 있었으나, 장관 취임 후 향우회와 함께한 자리에서 비로소 임실 출생임을 밝혔다고 한다. 그때까지도 출생지를 잘 숨기고 있었던 듯하다. #

결국 11월 8일 임관빈 전 국방부 정책실장과 더불어 구속영장이 청구되었고 소환조사를 받고 있다 (11월8일 pm10:00 현재) 소환조사에서 김관진 전 장관은 사이버 댓글부대 운용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진술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당시 국방부는 호남출신, 가족 중 진보성향이 있을 경우 인사배제를 했단 의혹을 받고 있다.

하지만 김관진 전 국방부장관은 댓글 활동은 정치관여가 아닌 대북 사이버전의 일환이라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

한편 포승줄에 묶여 호송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인터넷 기사에 올라와 논란이 되기도 했다.기사1기사2

결국 서울중앙지법 강부영 판사는 11월 11일, "주요 혐의인 정치관여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발부하였다. 그러나 11월 21일, 김관진은 구속적부심사를 청구했으며 심사를 맡은 신광렬[9] 판사는 "혐의에 다툼의 여지가 있고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고 판결하여 11월 22일 오후 9시에 석방되었다. 일각에선 이미 밝힐거 다 밝혔으니 굳이 구속할 필요까진 없을 것이란 반응도 있지만, 이번 일은 논란이 클 수밖에 없다. 같은 사건과 같은 인물을 놓고 한 사람은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해서 구속시켰는데 다른 한 사람은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고 풀어줬기 때문.

검찰도 법원의 이 같은 결정을 납득하지 못하고 크게 반발했다. 검찰은 "증거관계가 웬만큼 단단하지 않으면 영장을 발부하지 않는 현재의 법원 심사 기준에 비춰볼 때 구속 이후 별다른 사정 변경이 없고 공범에 대한 추가 수사가 예정돼 있음에도 혐의에 대해 다툼이 있다는 취지로 석방한 법원의 결정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기사참조

하지만 사이버사 댓글 공작 사건 축소·은폐 건을 총지휘한 혐의가 새롭게 드러나면서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재소환됐으며, 또 다시 구속이 될 위기에 몰렸다.

2019년 2월 21일, 서울중앙지법은 군형법상 정치관여 혐의로 김 전 장관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하였다. 다만 항소심에서도 불구속상태로 재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판단해 구속하지는 않았다. 한겨레

4.8. 2017년 계엄령 모의 사건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가 기각될 경우 바로 시위에 참가한 국민들을 병력으로 제압하기 위해 한민구와 모의하여 각 부대 병력들을 준비했다는 정황이 포착되었다. 이로 인해 김관진은 한민구와 같이 군인권센터에 의해 내란음모죄로 고발당했다. 안그래도 국가정보원·국방부 여론조작 사건에 대한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 사건에 대한 재판까지 같이 받게 되었다. #

4.9. 그 외 논란

2009년 미국 워싱턴 연수 시절 록히드마틴 등 미국 방산업체의 이권을 담당한 로비회사 직원으로부터 억대의 금품을 전달받은 사실이 기무사 문서에 드러났다. # 보수 정권 당시의 방산비리에 김 전 장관의 이름이 자주 언급되는 탓에 방산비리의 핵심이 아니었냐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5. 여담

  • 김 장관의 집무실 의자 뒤편 벽에는 북한 국방위원장 김정일의 사진과 함께 인민무력부장 김영춘, 군사보좌관 김격식북한군 수뇌부의 사진이 A4용지 크기로 걸려있다고 한다.[11] 이러한 적들의 사진이 장관의 집무실에 걸려있다는 것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적이 장관의 등을 노려보고 있는 만큼 한시도 적을 잊어선 안 된다는 마음가짐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 2011년 8월 10일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김관진 장관 암살을 위한 간첩단이 국내에 잠입 중이라고 했으나, 이는 언론의 추측성 보도로 판명났다.
  • 참여정부 시절 장성으로서 10년이 넘도록 중용되는 몇 안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를 두고는 참여정부에서 국방개혁과 전작권 반환을 적극 추진하였지만 보수정권에서는 180도 바뀐 모습을 보이는 줏대없는 인물이라는 비판이 있다. 군인 김관진과 국방장관 김관진의 행적이 너무 대비된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서도 금배지나 달아보겠다고 정계 기웃거리는 똥별들보다는 묵묵히 튀는 일 없이 주어진 소임에 충실하는 게 낫다는 긍정적 시선도[12] 있었다
  • 2017년 5월 29일 주진우,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 안민석 의원이 출연한 SBS 라디오 방송 중,노승일 전 부장이 “내가 ‘박원오 원장님이 너(정유라)네 아버지(정윤회)랑 형님 동생 한다는데?’ 그러자 유라가 ‘웃기지 말아요. 우리 아빠는 김관진 아저씨하고만 형님동생이에요’라고 말해서 저는 ‘김관진? 국방부장관?’ 이렇게만 생각하고 그다음부터는 질문 안 던졌다”는 주장을 꺼냈다. #
    이어서, 노승일 전 부장은 당시 정유라의 남편(신주평)의 대한 병역비리에도 관련되었다는 주장을 했지만, 이미 신주평의 병역 비리 의혹은 안민석 의원의 실수임이 밝혀졌다. 신주평 본인은 2016년 12월 5일 채널A 단독인터뷰에서 이를 부인하면서 본인은 처음부터 현역입영 대상 판정을 받았으며, 1회 연기했으며 2017년에 입대할 예정이라고 현역병 입영장 까지 공개하며 밝혔다. #

6. 관련 문서



[1] 전주고등학교와 함께 전라북도의 수재들만 모여든 학교로 전주고등학교와 같은 캠퍼스 안에 있었다. 중학교 입시의 과열을 잠재우고자 명문고와 연계된 중학교들이 폐교되었다. 폐교문서 참조[2] 당시 서독 연방군에 육사는 없고 부사관학교만 있어 부사관학교에서 2년간 수학하고 나머지 2년은 병과학교를순회하며 교육 받아 정식 학사학위를 받지 못했다.[3] 전투력 향상이라고 나와있지만, 실제로 신형 전투복이 보급된 당시에 하계용 전투복이 없어서 일선 전투부대에서 불만이 자자했기 때문에 이 부분은 논란이 있다.[4] 3년 6개월 남짓으로 1990년대 이후 최장수 국방장관이다.[5] 여담이지만 하나회는 육사 11기~36기에 존재했는데 김현집과 최익봉은 하나회 끝물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6] 기무사 장경욱 사령관/국방장관 한민구와 갈등을 일으켜 모두 이겼다. 국방 장관 때 기무사를 때려 잡아놓고 본인이 안보실장이 된 뒤엔 잘 써먹고 있다는 비판도 있지만.[7] SNS가 활성화 된 이후 군대에 갔던 예비역 위키러들은 휴가 나가서 군의 정치적 중립성 운운하며 정치적 발언 하지 말라고 간부들이 귀 아프게 강조 하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런데 국방부 장관이 이런 말을 한다는게...[8] 과거엔 사회생활 중 이유없는 왕따나 승진상 불이익 때문에 호남을 본적으로 갖고 있는 사람들이 왕왕 본적을 옮기기도 했다.[9]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출생지, 대학, 사시, 연수원 기수 모두 동일하다.[10] 당시 취임한 사단장이 전방 격오지 사단의 휴가에 1일씩 붙여주던 '1야전군 위로 포상'과 함께 잡다한 포상 휴가들을 일거에 폐지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위로포상의 삭감 때문에 그 병사뿐만 아니라 다른 병사들의 분노도 하늘을 찌를 기세였고, 이 포상휴가 삭감은 7사단이 소속된 제2군단 내의 전 부대에 전파되기까지 했다. 이에 김 장관은 알았다며 사실 확인 후 시정할 것이라는 답을 보냈다. 당연하게도 해당 병사는 상급 지휘관들에게 분노를 샀다.[11] 우리나라의 국방장관에 해당하는 북한의 인민무력부장 김영춘은 2000년대 중반 후계자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2004년 사망)의 군내 우상화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또한 김격식은 2005년 김 장관이 합참 작전본부장을 마치고 서울과 수도권 방어를 주 임무로 하는 3야전군사령관을 맡았을 때 반대편에서 서울과 경기 북부를 공격대상으로 하는 2군단을 지휘하고 있었다. 군 관계자는 "당시 두 사람 간에 눈에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꽤 있었다."고 말했다. 김 장관이 2006년 11월 ~ 2008년 3월 합참의장이었을 때 김격식은 김영춘에 이어 군 총참모장(2007년 4월 ~ 2009년 2월)을 맡았다. 김격식은 이어 황해도와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관할하는 4군단장으로 내려왔는데, '강등'이라기보다는 전권을 갖고 NLL을 무력화하라는 임무를 띠고 왔다는 게 우리 군의 분석이다. 2009년 11월 대청해전, 지난해 11월의 연평도 포격 도발은 김격식이 주도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고, 2010년 3월의 천안함 폭침은 그가 김영철 정찰총국장과 함께 일으킨 도발이라고 한다. 이렇듯 대남도발에 많은 전과를 올려 김정일에게 상당한 총애를 받아왔고 일찌감치 후계자인 김정은의 측근으로 분류돼 2011년 9월 그의 군사보좌관으로 승격되었다.[12] 문민통제를 기본으로 하는 한국군의 특성상 제복군인은 정부의 방침을 따르는 것이 당연하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