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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나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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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ger FEDERER)
노박 조코비치
(Novak DJOKOVI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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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fael NADAL)

올림픽 테니스 남자 단식 우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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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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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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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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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P 투어 세계 랭킹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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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02. ~ 2008.08.17. (237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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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8. ~ 2009.07.05. (46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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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9. ~ 2018.04.01. (6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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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5. ~ 2019.11.03. (5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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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박 조코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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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스페인의 방송국 안테나3가 스페인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가장 위대한 스페인인 100명'을 선정
TOP 10
1위 2위 3위 4위 5위
후안 카를로스 1세 미겔 데 세르반테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그리스와 덴마크의 소피아 아돌포 수아레스
6위 7위 8위 9위 10위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 펠리페 6세 파블로 피카소 예수의 테레사 펠리페 곤살레스
11위~100위
11위12위13위14위15위
이사벨 1세 세베로 오초아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호세 사파테로 레티시아 오르티스 로카솔라노
16위17위18위19위20위
살바도르 달리 안토니오 가우디 엘 시드 알폰소 10세 페르난도 알론소
21위22위23위24위25위
프란시스코 데 고야 프란시스코 프랑코 안토니오 마차도 미겔 인두리안 미카엘 세르베투스
26위27위28위29위30위
로라 플로레스 펠리페 2세 카를로스 1세 로시오 주라도 그레고리오 마라뇬
31위32위33위34위35위
디에고 벨라스케스 이사벨 판토하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미겔 데 우나무노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
36위37위38위39위40위
비센테 페레르 카밀로 호세 셀라 페드로 두케 다니 페드로사 파우 가솔
41위42위43위44위45위
다비드 비스발 라파엘 나달 카마롱 데 라 이슬라 아스투리아스의 펠라기우스 후안 라몬 히메네스
46위47위48위49위50위
산티아고 카리요 안토니오 반데라스 이냐시오 데 로욜라 페드로 알모도바르 후안 세바스티안 데 엘카노
51위52위53위54위55위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미겔 에르난데스 후안 마누엘 세라 로페 데 베가 엘 그레코
56위57위58위59위60위
아구스티나 데 아라곤 호아킨 사비나 로살리아 데 카스트로 앙헬 니에토 마누엘 아사냐
61위62위63위64위65위
조르디 푸졸 프란시스코 데 케베도 알레한드로 산스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에르난 코르테스
66위67위68위69위70위
카를로스 사인츠 파퀴리 텔모 사라 몽세라 카바예 마누엘 데 파야
71위72위73위74위75위
이삭 페랄 플라시도 도밍고 미겔 길라 루이스 부뉴엘 엘 코르도베스
76위77위78위79위80위
프란시스코 피사로 마리아노 바울바시드 라울 곤살레스 에밀리오 부트라게뇨 프란시스코 페르난데스 오초아
81위82위83위84위85위
아만시오 오르테가 마놀레테 에두아르도 칠리다 페란 아드리아 아란차 산체스 비카리오
86위87위88위89위90위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호아킨 로드리고 에밀리오 보틴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 프란시스코 헨토
91위92위93위94위95위
세바 바예스테레스 이삭 알베니스 페데리코 바하몬테스 부에나벤투라 두루티 카르멘 아마야
96위97위98위99위100위
빈센트 블라스코 이바네스 마누엘 산타나 알리시아 코플로비츠 안토니오 루이스 솔러 자코네로
출처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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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나달 파레라
Rafael Nadal Parera
파일:Rafael Nadal Parera.png
<colbgcolor=#FF9933> 출생 1986년 6월 3일 ([age(1986-06-03)]세)
발레아레스 제도 마요르카 섬 마나코르
국적
[[스페인|
파일:스페인 국기.svg
스페인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프로 선수 생활 2001년~2024년
신장 185.4cm (6 ft 1 in)[2]
사용 손 왼손 (양손 백핸드)[3]
ATP 싱글 랭킹 최고 1위
ATP 더블 랭킹 최고 26위
개인전 통산 성적
1080승 228패 (82.57%)
복식 통산 성적 142승 77패 (64.84%)
개인전 타이틀 92회
통산 상금 획득 $134,946,100[A]
후원 나이키, 기아, 리처드 밀, 바볼랏, 타미 힐피거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선수 경력3. 기록
3.1. 그랜드 슬램
4. 플레이 스타일5. 평가6. 여담
6.1. 루틴6.2. 기아와의 긴 인연6.3. 마드리디스타
7. 참고 링크

[clearfix]

1. 개요

스페인 국적의 前 테니스 선수. 노박 조코비치, 로저 페더러와 함께 21세기 남자 테니스계의 황금기를 이끈 선수이다.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최다 우승기록을 보유중이다.[5]

2024년 11월 19일, 스페인 말라가에서 열린 데이비스 컵 파이널스를 끝으로 현역 은퇴했다.

2. 선수 경력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라파엘 나달/생애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 기록

  • 개인전 통산 성적: 1080승 228패 (승률 : 82.57%)[6]
  • 단식 타이틀 획득: 92회
  • 복식 통산 성적: 142승 77패
  • 복식 타이틀 획득: 11회
  • 통산 상금 획득: $134,946,100[7]
  • 연말 랭킹 1위 (year-end ATP No.1): 5회 (2008, 2010, 2013, 2017, 2019)[8]
  • ATP 스테판 에드베리 상 (스포츠맨십상): 2010, 2018, 2019, 2020, 2021
  • ITF(국제 테니스 연맹) 월드 챔피언: 2008, 2010, 2017, 2019

그랜드슬램 대회: 우승 22회[9] / 준우승 8회 - 통산 314승 44패(승률 87.70%)
  • 호주 오픈: 우승 2회(2009, 2022) / 준우승 4회(2012, 2014, 2017, 2019) - 통산 77승 16패(승률 82.80%)
  • 프랑스 오픈(롤랑 가로스): 우승 14회[10](2005, 2006, 2007, 2008, 2010, 2011, 2012, 2013, 2014, 2017, 2018, 2019, 2020, 2022) - 통산 112승 4패(승률 96.55%)[11]
  • 윔블던: 우승 2회(2008, 2010) / 준우승 3회(2006, 2007, 2011) - 통산 58승 12패(승률 82.86%)[A]
  • US 오픈: 우승 4회(2010, 2013, 2017, 2019) / 준우승 1회(2011) - 통산 67승 12패(승률 84.81%)[A]

기타 대회
올림픽
<colcolor=#373a3c> 금메달 2008 베이징 남자 단식
금메달 2016 리우데자네이루 남자 복식[17]

3.1. 그랜드 슬램

라파엘 나달의 연도별 메이저 대회 성적표
연도 호주 프랑스 윔블던 US
2003 불참 불참 3라운드 2라운드
2004 3라운드 불참 불참 2라운드
2005 4라운드 우승 2라운드3라운드
2006 불참 우승 준우승 8강
2007 8강 우승 준우승 4라운드
2008 4강 우승 우승 4강
2009 우승 4라운드 불참 4강
2010 8강 우승 우승 우승
2011 8강 우승 준우승 준우승
2012 준우승 우승 2라운드 불참
2013 불참 우승 1라운드 우승
2014 준우승 우승 4라운드 불참
2015 8강 8강 2라운드 3라운드
2016 1라운드 3라운드 불참 4라운드
2017 준우승 우승 4라운드 우승
2018 8강 우승 4강 4강
2019 준우승 우승 4강 우승
2020 8강 우승 취소[18] 불참[19]
2021 8강 4강 불참 불참
2022 우승 우승 4강 4라운드
2023 2라운드 불참 불참 불참
2024 불참 1라운드 불참 불참

4. 플레이 스타일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라파엘 나달/플레이 스타일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5. 평가

비록 GOAT 논쟁에서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선 모양새이지만[20]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불세출의 전설적인 선수이다. 그랜드슬램 22회 우승은 물론이고, 특히 프랑스 오픈에서 기록한 14회 우승 / 112승 4패 승률 96.55%의 통산 기록은 앞으로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불가능의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다[21]. 클레이코트에 편중된 커리어 아니냐고 평가절하되기도 하지만 오픈시대 이후 역대 단 2명뿐인 더블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자에게 코트 편중을 논하는건 우습고[22], 전성기에는 타 코트에서도 세계 최정상급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었으며 남자 테니스 최고의 황금기를 이끈 주역 중 한 명이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6. 여담

  • 만성적인 왼발 부상을 달고 있다. 기사에 따르면 뮐러-와이스 병(Müller–Weiss disease)이라고 한다. 외상이나 감염 등의 선행 요인이 없이 주상골 외측부 압박 및 분절화 소견을 보인다고 한다.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진 바 없다고 하며 보행시 중족부의 심한 통증이 유발된다고 한다.링크 22년 연승 행진이 끊긴 것도 본인은 부상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 질환이 원인이다. 롤랑가로스에서 커리어의 마지막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도 이 질환이 아직 답이 없고, 언제 다시 뼈가 부스러져 통증을 유발할지 모르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 몸을 험하게 굴리다보니까 손 상태도 말이 아닌 경우가 많다. 공에 스핀을 엄청 먹여서 치는 스타일이다 보니 그런 건데, 대단한 것은 이러한 부상상태에서도 끝끝내 우승을 쟁취하곤 하는 것.
    파일:attachment/라파엘 나달/나달손부상.jpg
  • 평소 성격이나 경기장 내 매너에 대한 평판이 좋다. 밑의 시계 도둑 사건에서의 대인배적인 일화나 코트 체인지 시에 상대에게 먼저 양보하는 것이 그 예. 단순 일화 뿐만이 아니라 기록으로도 증명이 가능한데 공식 경기에서 라켓을 스매싱한 기록이 현재까지 단 한번도 없다. 아무리 화가 나도 라켓을 땅에 던지려 하는 시늉 정도나 손바닥으로 라켓을 살짝 때리는 선에서 끝난다. 성격 좋다는 선수들도 최소 한 번 이상은 라켓을 부숴 먹는 게 흔한 일인 걸 생각해본다면 꽤나 대단한 일.[23][24] 여기엔 어렸을 적의 숨은 일화가 하나 있는데 나달의 삼촌이자 전속 코치인 토니 나달이 "너 말고도 테니스 치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지만, 라켓을 살 돈이 없어서 못하는 이들도 있다."라고 말하며, 라켓 스매싱을 하면 테니스를 가르치지 않겠다고 단단히 일러두는 식으로 엄하게 교육을 한 영향이라고 한다. 여하튼 나달도 자신이 이러한 점을 대중들이 선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지, 연습 때 실수를 하고 나서 라켓을 던지는 시늉을 취한 뒤 연습을 보러 온 관객들에게 익살스런 미소를 지은 적도 있다. 나달의 라켓 스매싱 모음집에서 라켓은 단 한 개도 손상되지 않았다.[25] 아래의 그림에서 빅3가 스매싱으로 라켓을 부숴버린 숫자가 정리되어 있다.
    파일:tenrac.jpg
  • 본인이 수비적인 플레이어라고 불리는 걸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 듯 하다. 기자들이 해가 갈수록 플레이가 공격적으로 변모하는 것 관련해 질문을 하면 수비력이 좋은건 인정하나 자신은 예나 지금이나 플레이스타일은 공격적인 것을 추구한다고 항상 강조하기도 한다.[26] 이것에 관련된 재미난 일화가 있는데 테니스 비디오게임을 즐길때 나달은 언제나 자기 대신 로저 페더러를 고른다고 한다. 이유는 성능이 탄탄하고 무엇보다도 다른 플레이어블 선수들보다 더 공격적인 플레이가 가능해서라고... 개발자들이 자신을 너무 수비적으로 디자인해서 (농담조로) 불만이라고 하기도 했다.
  • 라켓을 길게 잡아서 끄트머리가 손바닥 안에 위치하도록 하는 그립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그립법은 라켓을 포함한 팔 길이를 늘려서 수비에 유리해지고, 헤드의 무게를 이용해 빠른 스윙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강한 손목 힘이 동반되지 못하면 공을 칠 때 라켓이 뒤로 밀려버리면서 타구의 힘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다 조금만 컨트롤이 안 돼도 라켓 면이 흔들리면서 타점이 엉망이 되어버리는 단점 때문에 프로 레벨에서는 사용하는 이가 극히 드물다. 그만큼 나달의 손목 힘이 뛰어나다는 증거인 셈이다.
    파일:나달 그립법.jpg
  • 가끔 상대방이 멋진 플레이로 포인트를 따내면 "Bravo"라고 소리쳐 칭찬 해 주기도 한다.
  • FC 바르셀로나의 레전드이자 스페인 대표팀 수비수로 활약했던 미겔 앙헬 나달[27]이 나달의 삼촌이다. 삼촌 덕에 12세까지 테니스와 축구를 병행하며 하체 힘을 길렀다고 한다. 그리고 나달의 전담 코치를 맡아 지금의 나달을 세계적인 선수로 만든 것은 미겔 나달의 형이자 큰 삼촌 토니 나달이다. 토니는 테니스 선수로 어릴 때 오른손잡이인 조카의 왼손을 단련시키고 양손 백핸드 등을 가르쳐주어 테니스계에서 대성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조카의 플레이 스타일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2017년을 마지막으로 전담 코치에서 물러났다. 대신 2017년부터 같은 마요르카 섬 출신 선배 테니스 선수인 카를로스 모야가 코치를 맡아주고 있다.
  • 본래 테니스 선수들은 스트로크시 양팔을 모두 움직여야 하기에 땀흡수용 리스트밴드 외엔 손목 악세사리를 차는 걸 꺼리는데[28], 특이하게도 나달은 스위스의 최고급 시계 브랜드 리차드 밀의 후원을 받으며 제품을 차고 뛰는 것으로 유명하다. 리차드 밀에서 기술력 과시를 위해 나달과의 협업작 실험을 통해서 극한의 연구 끝에 만들어낸 한정판 제품들을 만들어 냈는데, 무게는 20g도 안되지만 매우 튼튼해 나달의 강 스매시나 탑스핀을 다 견딘다고 한다. 당연히 최신소재와 기술을 몽땅 쏟아부은 특제품이기 때문에 가격은 약 8억 5천만원 정도로 매우 비싸다. 리차드 밀은 이 시계를 나달에게 협찬하기 위해 무려 7번이 넘게 실험작들을 폐기 후 재개발하는 과정을 거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차드 밀에겐 엄청나게 남는 장사가 된 이유는 “경기력에 그토록 예민한 나달이 우리 시계는 경기 중에도 착용할 정도로 가볍고 혁신적이다!”는 홍보가 제대로 먹혔기 때문. 더군다나 테니스 경기의 주 관람객과 시청자들은 다른 스포츠 시청자들보다 경제력이 높은 편이기 때문에(즉 해당 제품을 실제로 구매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 나달 스폰 이후 제품 판매량 역시 증가했다고 한다. 성공적인 마케팅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파일:attachment/라파엘 나달/나달시계.jpg
  • 참고로 상술된 리차드 밀의 나달 한정판 시계가 워낙에 고가인 만큼 이 시계를 도둑맞을 뻔한 적도 몇 번 있었다. 그리고 한 번은 롤랑 가로스 오픈 기간 중 나달이 묵고 있던 호텔 직원이 우승 다음 날 실제로 훔쳐갔다고 한다. 호텔 측은 나달에게 정말 미안하다며 어쩔 줄 몰라했는데, 나달은 괜찮다며 쿨하게 넘어갔을 뿐 아니라 롤랑 가로스 시즌마다 투숙하던 이 호텔의 서비스가 아주 만족스러우니 앞으로도 계속 애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범인은 하루만에 체포되었다.
  • 나달은 니시코리 케이의 재능을 가장 먼저 알아본 선수이기도 하다. 니시코리가 프로에 데뷔하기도 전 그랜드슬램 결승 전날 니시코리를 연습상대로 지목했고 '니시코리는 향후 세계랭킹 top10에 들어간다. 100% 틀림없다.'라며 작두타는 수준의 예상을 한적이 있다. 재미있게도 훗날 니시코리는 리우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나달에게 비수를 꽂았다.
  • 2013년 9월에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 , 이때 한국 남자 테니스계의 유망주로 불리는 이덕희 선수(서울 마포고)를 만나 언제든지 도움을 주겠다는 약속을 한적이 있다. 그리고 약 8개월 뒤인 2014년 5월말에 프랑스 오픈 주니어 부분에 출전하는 이덕희 선수를 위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테니스 아카데미인 BTT(Barcelona Total Tennis Academy)의 코치진으로부터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며 약속을 지켰다.
  • 2016년 고향인 스페인 마요르카에 자신의 이름을 건 테니스 학원인 Rafa Nadal Academy by Movistar를 세웠다. 공식 홈페이지 구글 지도 총 27면의 클레이 + 하드 코트가 구비되어 있는 데다 수영장과 기타 체육관까지 있는 초호화 시설을 자랑하는 곳으로 토니 나달, 카를로스 모야 등 나달을 지도한 세계적인 코치들에게 배울 수 있어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자체 대회도 주기적으로 열면서 유망주를 발굴하는 중인데, 출신 선수 중 상위 랭커가 된 인물은 카스퍼 루드가 있다. 그리고 내부에 나달이 선수로 활동하며 받은 상패 및 각종 개인 소장품을 전시한 전용 박물관도 있어 팬이라면 한 번 가 볼만 하다.[29] 참고로 나달이 여기서 트레이닝 및 연습 경기를 자주 갖기 때문에 운이 좋다면 직접 만나는 것도 가능하다.
  • 뱀처럼 휘어지는 일명 스네이크 샷을 기막히게 구사해 그의 시그니쳐로 통한다. 이걸 사이드 라인에서 시도하면 볼이 네트의 옆 기둥을 바깥쪽으로 돌아서 지나가는 기가막힌 장면이 연출된다. 일본의 유명 테니스 만화인 테니스의 왕자의 등장인물인 카이도 카오루이와 비슷한 기술을 구사해 스네이크 샷이란 이름이 붙었는데, 동양쪽 테니스 팬들이 나달의 샷을 이렇게 부르곤 한다.[32] 만화처럼 터무니없는 각도로 휘어지진 않지만, 꽤나 각도있게 구사되기에 실제로 보면 엄청 멋지다. 상대가 코트 구석으로 깊숙하게 볼을 보내면 나달은 빠른발로 달려가서 러닝 포핸드로 스네이크 샷을 치는데 상대 발리 커버 범위를 피해서 휘어져들어가기 때문에 일반적인 다운더라인보다 막기가 어렵다. 이 기술은 공에 스핀을 강하게 줄수록 휘어지는 각이 크기 때문에 헤비 스피너 스타일인 나달만 할 수 있는 전매특허 기술이다. 타 선수들도 시도하긴 하나 휘어지는 모양새가 안 나온다.
  • 대한민국에서의 인기는 정말 극과 극인 선수라고 할 수 있다. 국내에서 테니스 그랜드슬램을 중계하면, 대다수의 해설위원들은 나달과 페더러가 붙을땐, 페더러 응원을 많이해서 나달을 악역화 시키는 반면, 일반팬들 사이에서는 스폰서인 기아자동차에 대한 충성도가 높고, 매너가 좋아 나달을 호의적으로 보는 팬들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국내 테니스 중계만 하면, '왜 그렇게 나달에게 편파적이냐'라고 해설위원들을 욕하는 팬들이 많은 편이다.
  • 주니어 및 프로데뷔 초기엔 풍성한 머리를 자랑했으나, 현재는 탈모가 많이 진행되었다. 프로 선수로서 남성 호르몬에 영향을 주는 탈모약을 먹을 수 없는 슬픈 현실..
  • 2022년 9월 23일부터 개막하는 레이버 컵 1일차 일정에서 로저 페더러와 함께 복식에 출전해 그의 현역 은퇴 경기를 함께 했으며, 진심으로 슬퍼하며 펑펑 우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후 페더러가 언급하길, 본인 가족 및 코칭 스태프를 제외하고 은퇴 사실을 처음으로 알린 사람이 바로 나달이며[33], 둘의 우정은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고 뭔가를 계속 같이 하겠다고 밝혔다. #1 #2 #3 즉, 페더러와는 정말 가깝게 지내는 절친 of 절친이라는 게 다시 한 번 인증된 셈.[34]
  • 2024 파리 올림픽개회식에서 성화 봉송 주자로 참여했을 때 KBS의 중계 방송에서 이재후 캐스터가 그를 마이클 펠프스라고 소개하는 오류를 범했다. 라파엘 나달과 마이클 펠프스가 외국에서만 인지도가 있는 인물도 아니고 2명 모두 나무위키에도 별도의 문서에다 장문의 내용이 서술되어 있을 정도로 한국에서도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인물들이다. MBC 역시 나달을 잘 몰랐는지 올림픽 메달리스트라고만 소개했다. SBS만 파비앙 코르비노가 특별 해설을 맡았기 때문에 그가 누군지를 인지했기에 제대로 소개할 수 있었다. 이는 방송사들의 문제라기 보다 올림픽 조직위 측이 각국 중계 방송사에 성화 봉송 주자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은 잘못이 더 크다.

6.1. 루틴

징크스가 많기로 유명한 선수라 독특한 버릇을 여러 개 가지고 있다.
  • 경기 45분 전 차가운 물로 샤워하기
  • 똑같은 높이로 양말 맞추기
  • 코트 입장시 한 손에 라켓 하나, 가방에 다섯개를 가지고 들어오기
  • 벤치 앞에 물병 줄 세우기 - 무슨일이 있더라도 양발 사이의 빈공간에 이걸 각잡아서 정성스럽게 줄을 세우는데, 테니스계에서 워낙 유명한 이야기라 가끔 공에 맞아서 넘어가면 볼키즈들이 센스껏 다시 세워주기도 한다.[35]
  • 네트에서 코인 토스시 점프
  • 코트의 선을 발로 안밟도록 엄청 조심함과 동시에 오른발부터 선을 나갈때 항상 그쪽을 먼저 내밀며, 항상 2개의 수건을 코트로 가져가 양쪽 볼키즈들에게 주고[36] 수건 2개를 다 돌려받지 못하면 벤치에 안들어간다.
  • 서브전에 독특한 루틴을 수행하는데, 바지 뒤쪽을 약간 잡아 당기기 - 옷의 양 어깨부분 잡아 당기기 - 코를 2~3번 만지고 양귀 옆 머리를 쓸어서 넘기는 행동을 반드시 한다. 이게 20~30초라는 긴 시간을 잡아먹어 가끔 경기시간 지연으로 심판이 경고를 주는 장면도 연출되는 편.
  • 코트 체인지시 상대보다 먼저 들어가지 않고 양보하는 버릇도 있었는데, 요건 최근 경기를 보면 반드시 준수하지는 않는 듯 하다.[37]

6.2. 기아와의 긴 인연

파일:나달기아.jpg
It’s not a KIA, but it’s still good
메인 스폰서 중 하나가 대한민국기아(계약 당시 기아자동차)이다. 그것도 단순한 비즈니스 관계가 아니라 나달이 기아에 대한 고마움을 공적인 자리는 물론이고 SNS 등에서도 자주 표시할 만큼 매우 돈독한 사이다. 한 번은 메르세데스 컵 대회에서 우승하고 메르세데스-AMG GT를 보상으로 받은 적이 있는데, 내 스폰서인 기아보다는 별로지만 좋은 차라며 립서비스를 한 적도 있다.

기아가 나달에게 후원 계약을 제안할 당시 기아는 유럽에서 인지도와 판매량이 현저히 낮은 기업이었고, 나달은 성장 가능성이 높은 유망주이긴 했지만 부상(발목 피로골절)으로 신음하던 상황이라 장기 계약을 맺기에는 위험 부담이 있는 선수였기 때문에[38] 위험한 거래라는 평가가 있었다. 하지만 기아는 주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2004년에 과감하게 나달과 후원 계약을 맺었고, 이는 신의 한 수가 되었다. 나달은 빠르게 부상에서 탈출했고, 바로 1년 만에 2005년 프랑스 오픈에서 우승하며 전성기의 시작을 알렸으며 그렇게 당시 기아의 위험한 계약은 초대박으로 변모했다. # 이후 2006년에 기아는 프랑스 오픈을 우승하고 세계 랭킹 2위까지 오른 나달과 글로벌 앰버서더로 10년짜리 장기 계약을 맺었는데, 2004년에 후원 계약을 했던 것도 한 몫 했을거라 추측할 수 있다.

2006년 10년짜리 장기 후원 계약을 맺은 이후, 계약 후반인 2013년경 나달은 부상을 당하며 고생을 하였다. 여기에 기아는 나달의 회복을 기원하는 캠페인을 벌였을 뿐만 아니라 2015년에 스폰서십을 5년 추가하는 연장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2020년에 2차로 5년 계약을 추가로 하며 최소 20년은 같이하게 되었다. 참고로 2차 계약은 코로나19 때문에 나달은 고향인 마요르카 / 기아는 본사인 서울에서 온라인 비대면 방식으로 조인식을 갖고 페이스북에서 라이브로 방송하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워낙 사이가 좋은 관계이기 때문에 스폰서 계약은 나달이 현역은 물론이고 은퇴한 후에도 계속 연장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2007년 출연한 기아 쏘렌토 광고
참고로 2019년 5월엔 기아와의 스폰 15주년을 맞이하여 본인 트위터인스타그램에 포스팅을 했으며, 고향 스페인의 기아 광고에도 출연해 Calidad con siete años de garantia(7년 품질보증)라는 말을 했다. 나달이 15년 이상 메인 스폰서 및 광고 모델을 서준 덕분인지 스페인에서 기아의 인지도가 많이 올라서 상당히 잘 팔리고 있다고 한다.

6.3. 마드리디스타

파일:DWRxbiPVwAAErYl.jpg
나달의 모습을 그림으로 나타낸 배너

축구를 매우 좋아하며[39] 그 중에서도 레알 마드리드 CF의 골수팬으로 유명하다.[40] 나달의 축구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 2006년 윔블던 때는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2006 독일 월드컵 경기일정과 본인의 윔블던 경기일정이 겹쳐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41][42][43]

직접 경기를 관람하는 경우도 많다. 2022년 4월에는 레알 마드리드와 RCD 에스파뇰 간의 라리가 경기 시작을 앞두고 시축을 하기도 했으며, 5월에는 프랑스 오픈 도중에 레알 마드리드의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 2차전결승전[44][45]을 보기 위해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스타드 드 프랑스를 들렀다.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가 14번째 UCL 우승을 거머쥐었는데, 나달 또한 커리어 14번째 프랑스 오픈 우승을 거머쥐었다.

한편 마요르카 섬 출신인지라 트위터에 고향팀인 RCD 마요르카의 게시물도 종종 리트윗하며 응원한다.

7. 참고 링크



[1] 2020.03.25부터 2020.08.23까지는 코로나19로 인하여 랭킹 기간 적용 X[2] ATP 공식 프로필 기준[3] 테니스를 제외한 일상생활은 오른손으로 하는 오른손잡이이다.[A] [5] 14회[6] 통산 승률 2위, 1위는 노박 조코비치의 83.53%[7] 노박 조코비치에 이어 역대 2위[8] 조코비치 7회, 페더러 5회, 머리 1회[9] 역대 2위, 1위는 노박 조코비치의 24회. 3위는 로저 페더러(20회)[10]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최다 우승[11] 다승 및 승률 1위. 노박 조코비치가 기록중인 통산 96승이 2위[A] [A] [14] 연말 랭킹 기준으로 1 ~ 8위까지만 참가가 가능한 대회로 전승으로 우승할 경우 랭킹 포인트를 최대 1,500포인트까지 받을 수 있어 그랜드슬램 다음으로 많은 포인트를 주는 중요한 대회이다. 쉽게 말해 연말에 Top 8을 모아놓고 누가 최강자인지 가리는 대회. 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이유로는 경기가 치러지는 장소가 실내 하드 코트라 나달의 탑스핀 구질이 잘 먹히지 않는다는 점도 있고, 신체에 무리가 많이가는 나달의 플레이 스타일로 인해 시즌 말미에는 제 기량을 펼치지 어려웠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나달의 무관은 그의 커리어를 감안하면 확실히 이례적이다. 두번의 준우승은 2010년 결승전에서 페더러에게, 2013년 결승전에서 조코비치에게 패한 결과이다.[15] 2009년부터 마스터스 시리즈에서 명칭 변경.[16] 역대 2위. 1위는 노박 조코비치의 40회[17] 팀원은 마르크 로페즈(Marc Lopez).[18]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대회취소[19]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감염 우려로 인한 불참. 로저 페더러 역시 같은 이유로 불참했다.[20] 노박 조코비치가 2024 파리올림픽에서 금메달까지 획득하면서 GOAT논쟁은 사실상 종결된 상태이다.[21] 롤랑 가로스의 나달에 그나마 비견될만한 유일한 사례는 10회 우승 / 94승 9패 승률 91.26%을 기록한 노박 조코비치호주 오픈 통산 기록 뿐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조코비치의 호주 오픈 지배력도 앞으로 다시 나오는게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평가받는다.[22] 나달의 커리어에서 프랑스 오픈 우승을 전부 빼면 호주 2회, 윔블던 2회, US 4회가 남는데 이것만으로도 지미 코너스, 안드레 애거시, 이반 렌들과 동률의 역대 6위 그룹이다. 차라리 인도어 하드가 너무 약하다는 점을 지적한다면 몰라도, '클레이 편중'은 까놓고 말해 '조코비치가 프랑스 오픈 3번밖에 우승 못했으니까 조코비치는 클레이 코트에서 약했다'라는 수준의, 반박할 가치도 없는 헛소리에 불과하다.[23] 나달을 제외한 빅3 일원 모두 라켓 스매싱을 해본 전적이 있다. 신사라고 불리는 로저 페더러도 커리어 초창기에 적지 않은 라켓 스매싱을 보여주었고, 노박 조코비치의 경우는 너무 잦아서 각국 테니스 원로들에게 비판을 많이 받아왔다. 유소년에서 초창기 시절 후 매너남이 된 페더러와는 달리 조코비치는 베테랑이 된 2020년까지도 그랜드슬램에서조차 라켓을 부순 이력이 있다. 이러한 점들을 미루어 놓고 보면 나달의 이 기록은 매우 드물고 대단한 것임을 느낄 수 있다.[24] 물론 나달도 인간인 지라 경기 중 불만을 표출하거나 심판 혹은 상대방과 설전을 벌이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본인이 볼 때 오심이거나 상대가 무례하게 행동했을 때다. 만약 심판의 판정이 오심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된 경우엔 바로 수긍한다. 이정도는 모든 테니스 선수가 기본으로 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논란 축에도 들 수 없다. 사실상 나달이 최대로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은 스트링을 주먹으로 가격하는 것인 셈.[25] 그저 때리거나 던지는 시늉을 하거나 심해봤자 자신의 다리로 때릴 뿐, 절대 라켓을 손상 시킬 정도의 강한 힘을 실은 행동은 없었다.[26] 나달은 데뷔초때부터 테니스 전문가들 사이에서 '어그레시브 베이스라이너'로 불렸지 '디펜시브 베이스라이너'로 분류되지는 않았다. (비교대상이 조코비치가 된다면 상대적으로 '디펜시브'하긴 하지만.. 디펜시브 베이스라이너를 폄하하는 멸칭으로 푸셔(pusher)라는 단어가 있는데, 나달이 푸셔가 아니냐고 테니스 관련 포럼에 쓰레드를 띄우면 바로 비웃음 당할 것이다. 현역 탑급 선수들 중에서 디펜시브 베이스라이너 or 카운터펀처로 분류되는건 보통 앤디 머리 정도다.)다만 이런 인식이 생길 수 밖에 없는건 나달이 워낙 우주방어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몇몇 기래기들이 매년 같은 질문을 한다는 것이다.[27] 94 미국 월드컵에서 우리나라와의 경기에서 퇴장당한 그 선수다. 2002년에도 월드컵 대표로 한국에 오기도 했다. 91-99 바르샤 전성기에 뛰던 선수로 마요르카에서의 활약상으로 바르샤에 갔다가 99년 당시 바르셀로나 감독 루이스 반 할 때문에 다시 마요르카로 돌아갔다. 66년생인데 2005년 40살까지 현역 활동했으며 스페인 국대로는 91년부터 02년까지 뛰었고 62경기에서 3골을 기록했다. 이에로의 파트너로 맹활약. 발이 느리지만 압도적인 피지컬로 비스트란 별명이 있었다고 한다.[28] 테니스뿐 아니라 배드민턴 등의 라켓 스포츠는 대부분 해당한다. 간혹 스마트워치 정도의 가볍고 고장 적은 악세사리 정도를 반대팔에 차는 것이 마지노선이고 기계식 시계처럼 무겁고 손 많이가는 걸 찼다가는 얼마못가 내부 부품이 박살나거나 경기도중 줄이 끊어지는 참상이 벌어진다.[29] 친분이 있는 다른 스포츠 선수들의 친필 싸인이 들어간 물품들도 꽤 있는 편인데, 축구 선수들의 것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축구광인 그의 성향이 반영된 듯.[30] 연인 샤키라도 함께. 한편 나달은 샤키라의 노래 Gitana의 뮤직비디오에 상대역으로 나와 열애설이 인 적도 있다.[31] 고향 스페인과 바로 옆나라인 포르투갈 지인들 위주로 초대했음을 알 수 있다.[32] 서양권에선 바나나 샷, 버기윕 샷 등으로 불린다.[33] 은퇴 공식 발표 10일 전에 미리 귀뜸을 해줬다고 한다.[34] 참고로 이 대회 및 이벤트가 있을 때 아내 시스카가 건강 및 출산 문제를 겪고 있었다. 어지간하면 불참했을 확률이 굉장히 높지만, 절친 페더러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참여한 것.[35] 상대 선수인 앤디 머레이가 체어 엄파이어에게 나달의 물병이 쓰러져 있다고 장난스럽게 어필을 했고, 체어 엄파이어가 곧바로 볼키즈에게 세워줄 것을 부탁했다.[36] 보통의 선수들은 수건 1개만 사용한다.[37] 상대가 너무 늦게 걸어오고 있거나, 아니면 상대가 오히려 양보해준다.[38] 물론 나달은 그때도 17세로 세계 최강이던 로저 페더러를 잡고 최고 랭킹 30위권에 오른 손꼽히는 유망주였다. 다만 나달이 나고 자란 스페인은 유망주 말고 이미 터진 상위 랭커들이 허다한, 세계에서 테니스 선수 풀이 가장 풍족한 국가이다. 나달 역시 이미 주니어 때부터 나이키 등과 계약을 맺었을 정도로 가능성은 충분히 인정받았지만 괜히 기아가 메인 스폰서 자리를 꿰찬 게 아니라는 소리다.[39] 사실 나달은 어렸을 때 유소년 축구 유망주로 촉망받던 경력이 있으니 이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삼촌이 테니스와 축구 중 하나에 집중할 것을 주문하자 쿨하게 테니스를 선택해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다른 선택을 했으면 프로 축구선수로 대성했을지도 모른다.[40] 삼촌 미겔 앙헬 나달이 뛰었던 팀이자 레전드로 평가되는 FC 바르셀로나가 아닌, 라이벌인 레알을 좋아한다는 점이 특이하다고 평하는 팬들도 있다.[41] 당시 스페인은 2006 FIFA 월드컵 독일/H조에 속해 전승으로 16강에 진출했지만, 프랑스에게 1:3으로 패해 탈락했다.[42] 2012년에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함께 나이키 머큐리얼 축구화 광고를 촬영하기도 했다. 두 사람 모두 스폰서가 나이키였기에 가능했던 일.[43] 이런 나달의 레알 사랑 때문인지 레알 팬들 중에서는 나달을 차기 회장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44] 결승 경기 직전 세르히오 가르시아, 카를로스 알카라스와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45] 파일:호드리구의 골을 보고 좋아하는 나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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