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6-08-17 20:37:08

윌리엄 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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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합중국군 원수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대원수
General of the Armies / Admiral of the Navy
육군
Army
조지 워싱턴 | 율리시스 S. 그랜트 | 존 조지프 퍼싱
해군
Navy
조지 듀이
원수
General of the Army / Fleet Admiral
General of the Air Force
육군
Army
윌리엄 테쿰세 셔먼 | 필립 셰리든 | 조지 C. 마셜 | 더글러스 맥아더 |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 헨리 아놀드 | 오마 브래들리
해군
Navy
윌리엄 리히 | 어니스트 킹 | 체스터 니미츠 | 윌리엄 홀시
공군
Air Force
헨리 아놀드
* 헨리 아놀드의 원수 진급 당시 공군은 육군 항공대였다. }}}}}}}}}
<colbgcolor=#00518f><colcolor=#fff> 미합중국 초대 제3함대사령관
윌리엄 홀시
William Halsey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W_Halsey.jpg
본명 윌리엄 프레더릭 홀시 주니어[1]
William Frederick Halsey Jr.
출생 1882년 10월 30일
뉴저지주 엘리자베스
사망 1959년 8월 16일 (향년 76세)
뉴욕주 피셔아일랜드
묘소 알링턴 국립묘지
재임기간 제2대 남태평양전역사령관
1942년 10월 18일 ~ 1944년 6월 15일
초대 제3함대사령관
1943년 3월 15일 ~ 1945년 10월 7일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00518f><colcolor=#ffffff> 복무 미국 해군
1904년 ~ 1959년
최종 계급 원수 (미국 해군)
주요 참전 제1차 세계 대전
과달카날 해전
레이테 만 해전
주요 서훈 육군수훈근무훈장
해군수훈근무훈장 (4회)
해군십자장
아시아-태평양 전역 메달
제2차 세계 대전 승전 메달
}}}}}}}}}

1. 개요2. 일생
2.1. 생도 시절2.2. 제2차 세계 대전 이전2.3. 제2차 세계 대전2.4. 전쟁 이후
3. 평가
3.1. 홀시가 5성 진급을 한 이유?
4. 일화5. 대중매체에서6. 어록7. 진급 내역8. 둘러보기

1. 개요

파일:external/www.historyofwar.org/halsey.jpg
Kill Japs, kill Japs, KILL MORE JAPS!
쪽발이들을 죽이고, 쪽발이들을 죽이고, 쪽발이들을 더 많이 죽이는 겁니다![2]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 해군제독. 최종 계급은 원수였다. 별명은 Bull(황소), Japs Killer(쪽발이 킬러), Fighting Chicken(싸움닭).[3]

체스터 니미츠, 어니스트 킹, 윌리엄 리히와 함께 미 해군 역사상 아직까진 단 4명뿐인 해군 원수 중 한 명이다.[4]

위에 나오는 Kill Japs, kill Japs, KILL MORE JAPS! 같은 문구를 봐도 알 수 있듯 적을 대하는 태도가 꽤나 극단적이고 무자비했던 사람으로, 육군의 자칭 Son of Bitch 조지 S. 패튼이나 공군의 석기시대 매니아 커티스 르메이해군 버전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홀시는 부하들을 아껴서[5] 전쟁 후반기에 홀시가 자질 논란을 빚은 여러 심각한 실책을 저질렀지만 부하들 및 후견인 등 그를 좋아하는 단단한 팬들이 그를 옹호했다.

워낙 캐릭터가 독특하고 연예인처럼 명암이 뚜렷한 일생을 살았던 사람답게 빠와 까가 공존하는 사람이다. 그는 지휘관으로서의 열의와 실력도 상당했고 특히 인맥 관리와 친목 및 이미지 관리에서 압도적인 재능이 있었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 후반부에 아쉽게도 대형 실책들을 저질러 체면을 구긴 바 있다. 이 때문인지 지금도 미국인들 중에는 그의 전투력과 군인적 자질 등이 과대평가 됐다는 의견이 있다.#[6]

2. 일생

2.1. 생도 시절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아버지가 윌리엄 홀시 시니어로 동명이인이고, 해군 대령까지 지냈던 인물인데, 홀시와 체스터 니미츠가 사관생도였던 시절에 중령이었던 아버지가 해사 항해학부 부장으로 근무했다보니 홀시와 니미츠가 홀시 시니어에게 함상 훈련을 받기도 했다.

2.2.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행정상의 이유로 소위에서 중위로 진급하자마자 바로 대위까지 진급(사실상 중위 계급을 스킵)해 버린 독특한 전력이 있다. 한국에서는 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장성으로서의 활약만이 알려져 있지만, 이미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대서양 함대의 어뢰 전대를 지휘하기도 하였으며, 여러 어뢰정구축함을 지휘하면서 상당한 공훈을 세운 인물이었다. 1차 세계대전 당시의 공적으로 이미 해군십자장(Navy Cross)을 수훈한 경력이 있다. 이후 구축함 전단을 지휘하다가 1930년대 초반에 해군대학(Naval war college) 과정을 수료했다.

1934년, 홀시의 이후 삶의 방향을 결정할 중요한 일이 발생한다. 당시 미 해군은 항공모함을 차례차례 건조시켜 취역시키면서 해군항공대를 급속도로 확충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 해군에서 항공모함의 함장을 맡기 위해서는 해군항공조종사(Naval Aviator) 또는 최소한 항공관측사(Air Observer) 자격[7]이 있어야 했다.[8] 당시 홀시 대령은 이미 50세를 넘긴 장년의 나이였으므로 누가 봐도 해군항공조종사 과정을 이수하기는 무리였고, 그래서 미 해군 항공국장 어니스트 킹 당시 소장은 어떻게든 홀시를 항공모함 함장과 해군항공대의 일원으로 밀어주기 위해[9] 항공관측사 자격과정을 이수하라고 권했다. 그러나 황소 홀시는 상대적으로 편한 항공관측사 과정을 거부하고, 아예 12주짜리 정식 해군항공조종사 과정을 수료했다 홀시는 1935년 무려 52세의 나이로 해군조종사 윙을 가슴에 달수 있게 되었으며 이는 최고령 해군조종사 기록이다. 이후 홀시는 항모 새러토가의 함장을 거쳐 1938년에는 소장으로 진급하여 해군 제독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이후 항공모함 기동부대를 지휘하였고 1940년에는 중장으로 진급하여 미국 태평양함대에 배속되어 있었으며, CV-6 엔터프라이즈를 중심으로 한 태평양함대 TF 사령관으로 복무했다.

2.3. 제2차 세계 대전

1941년 12월 진주만 공습부터 1942년 6월 미드웨이 해전 사이에 있었던 주요 항공모함 작전의 야전 사령관은 홀시 제독이었다. 진주만 공습 당시 홀시는 엔터프라이즈를 타고 웨이크섬에 비행기 갖다주러 갔다가 오고 있었는데, 태풍을 만나 회항한다고 입항이 늦어져 진주만 공습의 목표물이 되지 않았다. 이후 진주만에 입항한 뒤 미국의 분노를 잘 나타내는 이른바 "(이 전쟁)을 끝장내기도 전에 일본어는 지옥에서나 쓰는 언어가 되어 있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미드웨이 해전 직전에 대상포진을 앓는 바람에 상관인 체스터 니미츠의 명령에 의해 강제로 하선하여 장기간 요양을 해야 했고, 그 후임으로 엔터프라이즈 기동부대를 지휘했던 사람이 훗날 홀시 제독과 함께 태평양함대의 야전 지휘관으로 활약하는 레이먼드 스프루언스 제독이다.

과달카날 전투 중반에 완전히 회복되었으며, 원래 프랭크 플레처 제독의 후임으로 항모기동부대를 지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당시 과달카날 전투에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남태평양해역군 사령관 로버트 곰리 제독이 워낙 소극적인 지휘를 하고 있었던 까닭에[10] 교체해달라는 요청이 어니스트 킹 제독의 귀에 들어가고 있었고, 스프루언스 제독이 항모 운용에 적응하기 시작한 시점이라서, 곰리 제독을 대신하여 남태평양해역군 사령관으로 부임[11]하였다.[12] 당시 이 소식을 들은 남태평양 방면의 해군과 해병대원들 모두 환호했다고 하며, 이후 적극적인 지원을 하여 과달카날 해전에서 최종적인 승리를 얻는데 일조를 하였다.

이후 남태평양 해역군의 해군 부대를 중심으로 미 제3함대[13]가 창설되자 대장계급을 부여받고 초대 사령관으로 부임하게 된다. 그리고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지휘하는 남서태평양해역군[14]과 긴밀한 협력 하에 수레바퀴 작전(Operation Cartwheel)[15]에 참여하였다. 대부분의 해군 고위 장성들은 맥아더를 껄끄럽게 생각했지만, 맹장 스타일이면서도 인화력 또한 좋았던 윌리엄 홀시는 맥아더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맥아더 또한 자신을 인정해 주는 홀시 제독을 꽤나 좋아했는데, 자신이 태평양 전선의 완전한 지휘권을 잡으면 홀시에게 함대 전체를 맡기겠다고 하면서 그 유명한 "당신을 넬슨보다 더 위대한 인물로 만들어 주겠소."라는 발언까지 했다.출처 물론 눈치도 빨랐던 홀시는 '킹 제독에게 맥아더 장군 제안을 한 번 말은 해보겠습니다'라고 슬쩍 빠져나갔다.

남태평양의 주요 섬들이 정리된 후로는 딱히 굵직한 전투가 없었는데, 그 때문에 홀시 제독의 능력을 묵혀 두기 아깝다고 판단한 태평양함대는 전투 부대의 지휘관을 스프루언스 제독과 홀시 제독이 1년씩 번갈아가면서 지휘하도록 조치하였다. 이 때문에 홀시 제독이 지휘하는 동안은 3함대, 스프루언스 제독이 지휘하는 동안은 5함대로 불리면서 사령부 참모진만 바뀌었다뿐, 사실 부대원은 바뀌지 않은 해괴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였다.[16]

레이테 만 해전 당시 일본군 해군 오자와 지사부로의 유인 작전에 낚여서 주력 부대를 끌고 추적하는 바람에 상륙 부대가 털릴 뻔한 적도 있으며, 이후에 태풍이 몰아치고 있는데도 대처 미숙으로 함대가 2번이나 피해를[17] 보아서 군사법원에 소환되어 강제로 퇴역할 뻔한 적도 있는 다소 아쉬운 이력도 남아 있다.[18] 이것이 홀시 제독이 저지른 몇 안 되는 전략상의 실책이었다. 그러나 단순 실책이라기에는 800명가량이 태풍에 휘말려 죽는 등 그 여파가 매우 컸다. 전투가 아닌 태풍에 의해 함재기 150대와 구축함 3척 침몰, 함선 수십 척 손상, 790명의 사망자 발생 등이 일어난 것이다.[19] 그러나 이러한 실책에도 평소의 인맥 관리와 열성팬들의 두터운 지지 덕분에 퇴임을 당하지 않았다.[20]

이후 일본 침공 직전에 스프루언스 제독과 교대하였다가, 다시 귀환하여 일본의 항복 때까지 함대를 지휘하였다. 참고로 일본이 항복문서를 서명한 전함 미주리가 바로 홀시 제독의 기함이다.

2.4. 전쟁 이후

일본군의 항복 후 항복 조인식에 참석한 홀시 제독은 그 후 10월 25일에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가서 퇴역신청을 냈는데, 오히려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은 4일 후에 그를 원수로 추대했다. 원래 원수로 추대되는 것은 전쟁 중에 이미 결정이 난 상태지만 동일한 함대를 교대로 지휘하면서 아직 대장계급인 레이먼드 스프루언스 제독의 문제 등이 있어서 미루어진 것이었다.

그 외에 46년 시점에서 홀시는 해군의 소장급 제독 조기퇴역 선정 위원회(가칭) 의 위원장으로 활동했는데 이 위원회의 구성원은 모두 4성 제독들로 레이몬드 스프루언스, 토머스 킨케이드, 존 H. 타워스, 마크 미처 제독(타워스와 미처는 전후에 대장으로 승진) 등이 있었고 모두 전쟁에서 활약한 최고위 지휘관들이었다.[21]

전쟁 중의 팽창으로 늘어난 제독들의 정원을 종전 후 군축의 흐름 속에서 구조조정을 단행하기 위한 목적에서 설립된 이 위원회는 당시 복무중이던 215명의 해군 소장들[22] 중 50명을 선정해서 조기퇴역을 권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활동했다. 이 외에 여러 가지 전후 처리 업무들을 수행한 홀시는 1947년에 퇴역했다. 그 후 홀시는 정부 임원과 여러 회사의 중역들을 거치다가 1957년에 뇌졸중으로 모든 직함에서 물러났고, 2년 뒤인 1959년 8월 16일, 자택에서 심장 발작으로 사망했다. 홀시의 장례는 국장으로 진행되어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치됐다.

3. 평가

레이테 만 해전에서 적의 기만 전술에 말려든 일화[23]태풍으로 워낙 유명했지만 그는 상당한 기간 동안 기동 부대를 이끌어온 베테랑[24]이기도 했다. 또한 둘리틀 특공대, 산타크루즈 해전, 과달카날 해전, 시부얀 해전, 구레 군항 공습 등 다양한 전투에서 기동 부대를 지휘한 지휘관이다.

그렇지만 그는 여러모로 레이먼드 스프루언스처럼 유동적으로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불확실한 정보만으로도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인물 격인 지휘관이라기 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한 자리나 오히려 인간적인 면모로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 있는 자리에 적합한 인물이라는 평가가 많다.

물론 고위 제독으로서 역량이 아주 부족한 것은 아니기에[25] 남태평양 해역군 사령관 재직 시절 수레바퀴 작전을 이끈 홀시는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줬는데, 흔히 알려져 있던 불 같은 성미와는 전혀 다르게 전술,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와 그렇지 않는 곳을 잘 구분해서 전쟁 중기부터 미군이 벌인 개구리 뛰기의 초석이 된다.[26] 이 밖에도 홀시 제독의 전략적 식견이 돋보인 사례로 필리핀 탈환전이 있다. 미군은 원래 필리핀 해 해전 이후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에 1944년 12월 경에 상륙할 예정이었다. 홀시는 필리핀 해 해전으로 일본군의 잔존 항공전력이 박살났음을 확신하고는 곧장 필리핀 남부가 아닌 중부(= 마닐라에 더 가까운)인 레이테 섬에 원래 계획보다 2개월 앞당긴 1944년 10월에 상륙하자는 과감한 제안을 했다. 이 제안을 따라 조기에 필리핀 탈환전에 돌입한 미군은 이토록 신속한 공세를 예상치 못한 일본군의 허를 찔러 전략적 기습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덤으로 부랴부랴 결전장으로 뛰쳐 나온 연합함대의 잔존 전력까지 분쇄하면서 일본 해군에게 최후의 일격을 먹이기도 했다. 물론 홀시 본인은 그 결전장에서 심각하게 체면을 구겼다.

또한 육군을 제외한 미군의 타 군종과 호주 같은 타국 군대를 깔보았던 맥아더 장군과 달리, 특유의 친화력을 잘 살린 지휘 덕분에 휘하 육군과 해병대 장성들과의 마찰이나 그의 구역에 있었던 동맹국인 뉴질랜드군과 마찰도 없었고, 같은 해군의 마크 미처 제독과 리치먼드 K. 터너 제독 같은 실력 좋으면서도 성격이 정 반대인 제독들을 마찰 없이 지휘를 하며 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나중엔 해군을 무시하던 맥아더 장군과도 거의 관포지교에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다만 오점으로 남은 레이테 만 해전에서 오자와에게 낚인 일화는 홀시의 명백한 실책이다. 하지만 이는 당시 홀시 뿐 아니라 미군 측은 오자와 함대가 대체 무슨 임무를 맡았기에 거기서 알짱대고 있었는지 종전까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 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27] 물론 미군 측 입장에서는 오자와 함대가 뭐하러 온 건지 정확히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최소한 일본 항모가 함재기 전력이 필리핀해 해전에서 전멸하고, 따라서 미군 항모 기동 부대에 별 위협을 가할 수는 없다는 것 정도는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자와의 항모를 끝장내러 쫓아간 건 홀시가 내린 결정이고 따라서 홀시의 큰 실책이다.

홀시를 옹호하는 측에서는 항모를 쫓기로 한 이 결정도 레이테 섬 해전 직전에 있었던 필리핀 해 해전에서의 결과와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필리핀 해 해전에서 스프루언스 제독이 지휘하는 미 항모 기동 부대는 일본의 항공모함을 전멸시키지는 못했지만 일본의 함재기와 조종사에 치명타를 입히면서 일본 항모들을 사실상 무력화시켰다. 실제로도 일본 항모 부대는 이후로 두 번 다시 미군에게 함대 항공전을 시도하지 못한다.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스프루언스는 필리핀 해 해전 이후 일본 항모 부대를 끝장 내지 못했다는 실망 섞인 불평을 들어야 했다. 단적인 예로 기동 부대의 전단장 중 한 명인 클라크 소장은 필리핀해 해전의 결과를 두고 백년에 한번 올 만한 기회를 놓쳤다고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전쟁의 전체적인 진행 과정을 고려하면 상륙 중인 미 육군을 엄호하는 것이 타당했다. 하지만 직전의 필리핀해 해전의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적 항공모함을 멀쩡히 냅둔 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홀시는 일본 해군을 여러 차례 크게 무찌르고 5성 제독 임명과 각종 상훈까지 받으며 실력을 증명한 지휘관이다. 그러나 주로 전쟁 후반부로 가면서 감정과 분노 조절에 실패하거나 판단 미스로 대규모 손실을 초래하는 등 아쉬운 실책들을 저지른 바 있다. 이는 전쟁 종료까지도 빈틈없던 불패의 명장 스프루언스 제독과 비교되며 저평가되는 한 가지 요인이 되어왔다. 베테랑 사령관임에도 레이테에서 적의 기만책에 속아 넘어간 실수는 지금도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태풍에 대한 오판으로 함대의 진로를 잘못 잡아서 멀쩡한 전함들과 800여 수병의 목숨을 싸워보지도 못하고 태풍에 죽게 만든 일 등으로 인해 이전의 눈부신 전공들이 대폭 깎인다. [28] 특히 홀시 제독은 전후 수많은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허락 없이 동료 장군들의 이름을 팔면서 자기를 옹호하는 바람에 구설수에 오르곤 했다. 하지만 하술할 아이스크림 사건 등에서 드러나듯 제독으로 수병들에게 사적인 갑질권위주의를 크게 자제했고 수병들의 관리와 복지에 크게 신경썼기 때문에 홀시가 많은 이에게 사랑받았다.

3.1. 홀시가 5성 진급을 한 이유?

스프루언스 제독과 같은 명제독이 5성 진급을 못한 것을 홀시 제독의 언론플레이와 농간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의견도 있다. 특히 미 국회에서 홀시를 밀어주던 세력이 스프루언스를 싫어했다는 의견도 있다.[29]

홀시는 실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미 해군에 항공모함이 연구되고 도입될 때부터 함께한 고참이었고 항공모함 기동 부대를 효과적으로 지휘해 니미츠와 킹의 큰 지지를 받았다. 그는 항공모함 기동 부대 사령관에 걸맞은 사람이 되고자 장년의 나이에도 조종사 자격을 취득할만큼 열정적인 사람이었고[30] 스스로도 전쟁 내내 커리어 관리를 잘 하며 실력을 입증했다. 특히 홀시의 실력은 무엇보다 그가 통합군 사령관일 때 친목 부문에서 가장 빛을 발했다. 사람들과 친해지고 자기 편을 만드는 능력이 누구보다 뛰어났기에 남서태평양해역군 사령관 재직 시절 육군, 해군, 육군항공대, 해병대 가리지 않고 대부분의 각군 사령관, 지휘관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다. 특히 영국적인 호주, 뉴질랜드군 장성들은 물론 맥아더 장군과 같이 때로는 오만하다는 인상을 줄 정도로 강렬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나 그 휘하의 성질 드럽다는 육군 항공대의 조지 케니 장군과도 원활한 관계를 유지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반면 스프루언스는 부하 사병들의 공적을 부풀렸다고 지레 의심하고 깎아서 보고하는 등[31] 다른 측면에서 원성을 샀다.

흔히 마리아나칠면조 사냥과 같은 임팩트 있는 신화가 많이 나온 중부태평양 전역에 비해 남서태평양 전역은 상대적으로 관심이 떨어지나 그 중요성은 중부태평양 못지않게 높았다. 아예 일본군 전력을 지속적으로 갉아먹은 수레바퀴 작전이 없었다면 타라와사이판, 등의 일본군 전력은 미군 예상보다 훨씬 강했을 것이고 역사보다 미군은 중부태평양 돌파에 훨씬 애를 먹었을 것이다.[32] 즉, 남서태평양 전역에서 연합군을 이끌고 일본군을 효과적으로 소모시킨 홀시의 공은 컸다.

스프루언스 제독은 전투력만 본다면 가히 미 해군 내 최강자라고 볼 수 있었다. 물론 그는 너무 조심스러워 일본군 항공모함을 놓쳤다고 미국에서 대대적으로 욕먹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일본군 사료를 연구한 결과 스프루언스의 판단이 정확했음이 드러났다. 대규모 손실을 입은 일본 해군이 후퇴하는 척하며 매복계를 써서 손실을 만회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프루언스는 한 번도 걸려들지 않았고 결국 일본군만 번번이 농락당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과 친목하며 아우르는 통합군 사령관으로서는 홀시보다 낫다고 보기 힘들었다. 이를 뒷받침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사이판 전투에서 보인 스프루언스의 해군 두둔 사건이다. 당시 상륙군 사령관 해병대 홀랜드 스미스 장군이 육군의 랄프 스미스 장군을 독단적으로 해임하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일어났는데, 결과적으로 미군 내의 분열을 초래한 이 사건에서 암묵적으로 홀랜드 스미스를 두둔한 스프루언스의 책임은 결코 적지가 않았다. 실제로 스프루언스는 당시 홀시처럼 통합군 사령관의 자격으로 육군과 해병대를 중재할 수 있었음에도 일방적으로 해병대를 두둔하였고 스프루언스가 이후 견책받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육군과 해병대 사이의 관계 악화에 간접적으로 스프루언스가 기여한 것은 사실이었다.[33][34] 일본군이 육, 해, 공군 간 불협화음과 다툼 및 비협조로 시달린 걸 생각해 보면 홀시 제독의 눈부신 친목과 정치 능력은 탁월한 것이었다.

즉, 홀시가 실력보다는 연공 서열이나 연방하원의원 칼 빈슨을 위시한 정치계의 비호 및 회고록 작성을 통한 자기 관리만 갖고 5성 진급을 했다는 주장은 잘못되었다.[35] 전후 미 해군의 권위있는 전사가로 이름을 날린 새뮤얼 모리슨은 홀시를 정치질로 진급한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허나 그는 통합군 사령관(5성 제독)에 걸맞은 정치 능력과 친목력을 갖춘 사람이었고 수레바퀴 작전 성공에서 보이듯 역량도 준수했다. 가장 아쉬운 점은 전쟁 말기로 갈수록 집중력 저하 때문인지 몰라도 홀시가 자주 실수를 했다는 점이다. 즈이카쿠 추격 사건이나 니미츠의 전보를 받고 1시간가량 쌍욕하며 울었던 시건, 그리고 태풍 속으로 함대를 돌진시켜 1,000명에 육박하는 수병을 죽였던 대형 실책은[36]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37]

4. 일화

  • 체스터 니미츠 제독이 태평양함대 사령관으로 부임하고 항공모함을 투입한 첫 작전을 입안했을 때, 항공 관계 쪽 지휘관들이 크게 들고 일어났던 적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니미츠 제독은 항공관련 병종에서 근무한 적이 없으며, 수많은 선배들보다 먼저 소장에서 바로 대장으로 승진한 새까만 후배[38]인 데다가 동기였던 허즈번드 킴멜 제독이 말아먹은 태평양함대를 니미츠가 더 말아 먹을까 봐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작전에 나갔던 홀시 제독이 돌아와서 회의에 참석하였는데, 돌아가는 꼬라지에 꼭지가 돌아서 대성 일갈하고 작전을 지지함으로써 반대파들을 조용하게 만들었다고 한다.[39]
  • 기자들이 일본군을 상대할 때 어떤 자세로 지휘를 하느냐고 질문을 하였는데, 그는 말없이 카메라를 다소 엄하게 노려보는 자세를 취하였다. 그런데 사진에 촬영된 그 모습이 황소와 같다고 하여 이후 황소(Bull)란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런 별명에 어울리는 화끈한 성격의 소유자였는데, 그의 명언들로 알려진 이야기들, 그리고 이 항목에 소개된 일화들에서도 그렇긴 하지만 행동도 과격해서 머리 위로 일본의 폭격기가 지나가는데 함교 위로 올라가 주먹을 휘두르며 욕을 하기도 했다.
  • 홀시 제독이 작전을 나가기 직전 사령부에서 제13기동부대란 번호를 부여받았다. 게다가 작전을 위한 출항일까지도 13일. 서양에서 불길한 숫자로 받아들여지던 13을 2개나 받자 홀시 제독은 심기가 불편하였고,[40] 유능한 참모장이었지만 성질이 좀 불 같았던 브라우닝 중령을 사령부에 보내 온갖 진상을 부리게 함으로써 결국 출항일을 하루 미루고, 제16기동부대란 번호를 새로 부여받았다. 그 후 제16기동부대는 이후 엔터프라이즈 부대의 상징적인 번호로 자리 잡게 되었다.
  • 진주만 공습을 일으킨 일본을 매우 증오하여 일본을 비하하는 발언은 많이 했지만, 일본계를 비롯한 동양계 미국인들을 차별하지는 않았다. 일본계 미국인들로 구성된 제442연대전투단 소속의 일본계 미국인이자 중위인 케이 키타카와가 2차 세계대전 동안 윌리엄 홀시의 통역병으로 근무하였다.출처
  • 과달카날 전역이 후끈하게 달아올랐을 때, 니미츠 제독이 잠시 말라리아에 걸려 입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홀시 제독이 "니미츠가 와병 중이라 근무를 할 수 없으니, 현재 태평양에서 내가 니미츠 다음으로 유일한 사성 제독이자 잠정적인 태평양함대 사령관"이라면서 나설까 봐 두려워서 태평양함대 사령부의 사성제독 깃발을 계속 게양했다고 한다. 즉 조금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깃발을 계속 게양하도록 지시한 사람은 당시 태평양함대 참모장인 스프루언스 제독이었다.
  • 원래 1944년 겨울에 미 의회가 해군 제독 4명의 원수 승진을 승인하였으며, 그 대상자에는 홀시 제독도 포함되어 있었다. 다만 동격의 5함대 사령관인 스프루언스 제독이 대장인데, 3함대 사령관인 홀시 제독을 원수로 승진시키기가 좀 그렇다는 의견으로 인해 승진 추천이 보류되었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 대만 항공전 이후 일본군이 "대규모 공격으로 미 제3함대에 큰 피해를 주었으며, 여러 척의 군함을 격침하였다"고 거짓발표[41]를 하자, 홀시 제독은 즉시 니미츠 제독에게 "침몰 당했다는 제3함대는 현재 해저에서 무사히 인양되어 적을 향해 급속 퇴각 중"[42]이라고 재치있게 보고하였다.
  • 레이테 만 해전 당시, 오자와의 미끼에 걸려서 한참 헤매고 다니던 상황에서 체스터 니미츠로부터 보안 통신문을 받았다. 이는 "어디 있는가? 반복한다. (홀시의) 34기동함대는 지금 어디 있는가?"라는 내용으로 평소라면 크게 문제될 내용이 아니었다. 그러나 당시 홀시는 다른 제독들의 반대를 무시하고 일본 함대의 기만작전에 낚여 북상하던 중이었고, 해당 시점에는 본인도 자신이 실수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암호 통신문은 앞뒤로 아무 문구나 집어넣어서 도청을 하더라도 문장 길이로 내용을 추측하기 힘들도록 만드는데, 마침 통신을 보낸 당일은 90년 전 발라클라바 전투에서 그 유명한 경기병대의 돌격이 있었던 날이어서, 송신측 통신장교는 이 전투를 소재로 한 알프레드 테니슨의 유명한 시의 구절인 "온 세상이 궁금해한다"를 넣었다. 하필 이 통신을 수신한 홀시측 통신장교가 이를 도청 방지용 문구가 아니라 정식 내용이라고 착각하고는 이를 빼지 않고 홀시에게 그대로 보고해버렸다. 홀시 입장에선 안 그래도 속아서 엉뚱한 위치에 있는 자신이 수치스러운데, 니미츠가 "(전투는 딴데서 벌어지고 있는데) 넌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온 세상이 네가 한 짓을 궁금해한다"라고 비아냥거린다고 생각하고는 그만 이성을 잃어버렸다. 당시 홀시는 자신의 모자를 패대기치고는 울면서 온갖 욕설을 퍼부어댔다고 한다. 보다 못한 홀시의 참모장이 "이제 그만 하십쇼. X발(What the hell…)" 도대체 지금 그게 뭔 상관이랍니까? 정신 좀 차리십쇼."라고 말렸다고 한다.
    • 위 내용에 대해 미국에서는 "니미츠가 홀시의 폭주로 인해 쌓인 게 많은 상황에서 소심한 복수를 했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니미츠가 잠시 와병 중일 때 홀시가 진정한 태평양 사령관이 자신이라고 냉큼 뒤통수 칠까 걱정하여 스프루언스를 통해 사령기를 계속 게양하게 한 일화는 유명하다. 해당 전문의 내용을 보면 더욱 명확한데, 전문 맨 앞의 내용(맨 앞 문구) 는 "칠면조가 종종거리며 물가로 뛰어가네(TURKEY TROTS TO WATER)."라는 내용이다. "온 세상이 궁금해한다"와 결합해 보면 공을 세우고 즈이카쿠를 전력으로 추격하며 병사들을 내팽겨친 홀시를 보며 니미츠가 헐레벌떡 뛰어다니는 칠면조에 빗대어 비꼬았다는 해석도 있다. 다만 홀시에게는 어떤 식으로건 뜬금포로 욕을 먹은 셈이라 격분한 것도 당연하다.
      • 그러나 위 주장은 신빙성이 적다. 우선 해당 보안용 취사문구를 넣고 빼는 것은 니미츠가 아닌 통신장교의 일이다.
        설령 (그랬다는 기록이 없지만) 니미츠가 송신측 통신장교에게 권력을 사용해 해당 문구를 넣는다 하더라도, 홀시 함대의 수신측 통신장교가 이를 빼서 전달하는 것이 정상이므로, 니미츠가 의도적으로 이를 홀시에게 전달할 수는 없다. 굳이 의심하자면, 이 시점에는 누구나 홀시가 고집부리다 큰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알았으므로, 홀시의 결정에 불만을 가진 통신장교들이 고의적으로 해당 문구를 넣거나 안뺐을 수는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제독에게 일개 통신장교들이 그랬다고는 보기 힘들 듯 하다.
  • 3함대 사령관을 역임하는 동안 휘하에서 고속 항공모함 기동부대(제38기동부대)를 지휘했던 사람이 존 매케인 시니어 제독인데[43] 홀시는 매케인 시니어 제독이 급사하는 원인을 제공했다. 당시 매케인 시니어 제독은 상당한 고령에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도 해군의 주요 장성이라 직무 강도가 매우 높았고, 때문에 전쟁 기간 내내 수십 kg이 빠질 정도로 몸을 해쳤다. 매케인 시니어는 일본이 항복하자 바로 군복 벗고 미국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홀시가 항복 조인식에 참석해 달라고 붙들어서 종전 이후에도 쉬지 못하다가 결국 본국으로 돌아간 지 얼마 안 되어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 일본 방송에서 하도 전사설, 사망설을 보도해서 막상 일본의 항복 조인식 때 중화민국 국민정부 대표단은 홀시가 살아서 행사에 참석한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 전후 여생을 레이테 만 해전에서의 자신의 결정에 대해서 해명하는 데 보냈다. 유명한 역사가들과의 논쟁은 아직도 말이 많았던 사항. 홀시는 기본적으로 그때 자신이 그 상황이라도 동일한 결정을 했을 거라고 했다. 다만 지나가는 말로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 때 자신이 있었고 레이테에서 스프루언스가 있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말을 남겼다.[44]
  • 홀시는 전후에 마지막 전쟁을 치렀다. 세계 최고의 수훈함인 엔터프라이즈가 해체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엔터프라이즈에 근무했던 수병들이 모여 '엔터프라이즈 협회'를 만들어서 홀시와 함께 싸웠지만, 미 의회의 집요한 공격을 막아낼 수가 없었다. 결국 홀시는 엔터프라이즈의 해체를 막지 못했지만 일부 부품[45]을 기념으로 남길 수 있었으며, 엔터프라이즈의 이름을 새로운 항공모함에 계승한다는 약속을 받아낼 수 있었다. 세계 최초의 원자력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급 항공모함이 바로 그 결실이며, 이 배가 해체된 후에는 제럴드 R. 포드급 항공모함 3번함이 엔터프라이즈의 이름을 잇게 되었다.
  • 아이스크림 때문에 한 위관급 장교를 참교육시킨 적이 있다. 당시 미 해군에서는 수병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배급하였는데, 아무래도 아이스크림을 원하는 사람은 많고 아이스크림 만드는 기계는 한정되기에 배급을 받으려면 긴 줄을 서야 했고 소형함은 아이스크림 기계가 없었다. 그나마 홀시는 함대 기함으로 전함이나 항공모함을 탔기에 아이스크림 기계가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이 아이스크림 배급 시간이 되자 수병들이 배급을 받기 위해 긴 줄을 서 있었는데 한 소위가 수병들의 줄을 새치기해서 먼저 아이스크림을 받아가는 일이 발생했다. 당연히 수병들은 불만을 가졌지만 계급이 깡패인지라 대놓고 뭐라 말하지를 못했다. 그런데 그 순간 줄 뒤에서 그 소위에게 욕설을 퍼붓는 소리가 들렸다. 수병들은 감히 장교에게 욕설을 하는 사람이 누군가 싶어서 돌아보았는데 그 자리엔 대장, 즉 4스타인 홀시 본인이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려고 수병들과 함께 줄을 서 있다가 새치기하는 꼴을 보고 욕설을 퍼부은 것이다.출처 소위가 무려 4스타 사령관에게 욕을 들었으니 엄청나게 깨진 셈.
  • 명배우인 어네스트 보그나인과 닮았다. 실제로 보그나인도 1935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미 해군에 입대해 1941년에 제대했지만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재입대하여 1945년까지 USS 렘버튼에서 근무했다.
  • 일본이 항복할 당시, '히로히토백마를 타고 도쿄에 입성하겠다'라고 한 적이 있었다.[46] 본래 히로히토 덴노는 공식 행사 때 백마를 타고 다녔는데, 이 때문에 당대에는 히로히토 하면 백마를 탄 모습이 공식일 정도로 유명했다. 홀시는 이를 노려서 자신이 그 백마를 타고 나타난다면 선전에 아주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다만 실제 도쿄에 입성할 때는 히로히토가 소유했던 그 말을 타지는 못했고, 미국 육군에서 따로 제공한 다른 백마를 타고 갔다.
    그런데 정작 홀시는 말을 탄 뒤 "내 평생 이렇게 무섭기는 처음이다"("I've never been more scared in my life")라고 심경을 고백했다. 즉 승마가 겁이 날 정도로 말을 제대로 타 본 적도 없으면서 저런 행동을 감행한 것. 출처

5. 대중매체에서

  • 1950년대 이미 세미 다큐 영화가 제작될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이때는 1940년대 유명한 악역 전문배우 제임스 커그니가 역을 맡았는데, 의외로 닮았다.
  • 영화 도라 도라 도라에서는 제임스 위트모어[47]가 홀시 역으로 출연했다. 앞 부분에 항모를 끌고 나가기 전에 잠깐, 진주만 공습 후에 파괴된 진주만으로 항모가 입항하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유명한 대사를 원래 상영분에서 하지만 일본과의 관계 때문에 이후 나온 매체에서는 이 부분이 삭제되어 있다.
  • 1976년작 영화 미드웨이에서는 로버트 미첨이 홀시 역을 맡았다. 실제와 같이 피부병에 걸려서 미드웨이에 안 나갔기 때문에 앞부분에 병원에서 이야기 하는 부분만 처리. 실제와 달리 스프루언스한테 "레이, 나한테 묻지 말고 자네 방식대로 하게."라며 전폭적인 신뢰를 보낸다.
  • 허만 우크의 Winds of War에서는 레이테 만 해전 부분에서 유명한 결정 때문에 꽤나 까인다.[48] 1980년대 후반에 이를 원작으로 제작된 드라마[49]에서도 주인공의 대사[50]를 통해 홀시의 결정을 비판한다.
  • 붉은 10월에서 잭 라이언이 홀시 관련 연구를 하는 역사가이다. 원작에서는 홀시의 전기를 쓰고 있다가 호출을 받는 것으로 되어 있고 홀시의 결정이 정당했다고 이전 책에 썼다. 소련에서 라이언의 책을 읽었던 라미우스 함장이 "나도 당신이 쓴 책을 읽었소. 결론이 다 틀렸더군. 그의 선택은 잘못된 거요. 홀시는 치명적인 오판을 했지."라고 이야기 하는 건 원작이나 영화나 다 묘사된 장면. 국내 공중파에서 방영된 더빙판에서는 "당신이 틀렸소. 홀시는 어리석었소."라고 번역되기도 하였다.
  • 굽시니스트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에선 '윌리엄 시'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황소라는 그의 별명답게 황소뿔을 달고 나온다. 또한 그 레이테 만 해전에서는 오자와에게 항모를 내놓으라며 투우를 건다. 그렇지만 태평양 전쟁의 다른 인물들처럼 비중은 공기 그 자체.
  • 일본 가공전기 만화 몽환의 전함 야마토에서는 주적으로 등장. 주인공 쿠루스의 개입으로 전함 야마토가 활약하자 야마토를 악마의 배라 부르며 잡으려 날뛰지만 오히려 야마토의 활약에 역으로 번번이 당한다.
  • 지팡구에서는 일본군에 낚인 레이먼드 스프루언스 대신 마리아나 침공에 나서는 제5함대 지휘관을 맡기를 원하지만 해군참모총장 어니스트 킹은 스프루언스에게 제5함대 지휘권을 다시 맡긴다. 이후 그를 취재하러 온 종군기자 굴드에게 열폭하며 등장 끝.
  • 카이저를 구했다에서는 엔터프라이즈를 타고 신형 함재기를 받으러 본토에 갔다 온 사이 진주만 공습이 발발, 초토화된 모습을 보고 분노해 '전쟁이 끝나면 일본어는 지옥에서나 쓰는 언어가 될 것이다'에 '맥아더란 성씨는 묘비석에 적힌 이름으로만 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훈시한다.[51]

6. 어록

성격만큼이나 강렬하고 인상적인 말도 많이 남겼다. 아래는 그 말들.
"Before we're through with them, the Japanese language will be spoken only in hell."
'(이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일본어는 지옥에서나 쓰는 언어가 될 것이다.' [52]
진주만 공습 당시에 기동부대를 이끌고 진주만으로 오던 중이었는데 약간의 시간 차이[53]로 진주만 공습이 끝난 후에 도착해서 진주만의 참상을 보고 한 말.[54]

만약 일본 제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맞고 홋카이도 주둔군을 쓸어버리고 혼슈 동북부로 내려오는 소련군을 보고도 항복하지 않아서 몰락 작전이 계획대로 진행됐으면 진짜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일본은 핵지옥이 되었을 것이다.
"I'll take it! If anything gets in my way, we'll shoot first and argue afterwards."
"내가 책임지겠소! 내 앞길을 가로막는 게 있다면 일단 쏴 버리고, 언쟁은 그 나중의 일이오."
진주만 공습 이후 기동부대를 이끌고 웨이크섬으로 가려는 그를 허즈번드 킴멜이 막으며 "자네 혼자 전쟁할 생각인가? 책임은 누가 지는데?"라고 하자 한 대답이다.

홀시는 분명 지략과 용맹이 균형이 잡힌 훌륭한 제독이었지만 감정적인 면이 종종 이성을 앞지를 때가 있었는데, 이때도 그런 상황이었다. 건실한 타입의 제독이던 킴멜은 혹시나 홀시가 함대를 이끌고 갔다가 더 주력함 손실을 입어 돌이킬 수 없을 것을 두려워 했던 것이다. 실제로 이때는 일본군의 기세가 절정에 달하던 때로 일본군이 눈에 불을 키고 찾던 항공모함을 아무 대비없이 끌고 갔다가 잠수함이나 공습 또는 적 주력함대와 마주쳐서 잃어버렸다면 아마 태평양 전쟁은 더욱 길어졌을 것이다.
"Attack. Repeat, attack!"
"공격하라. 반복한다, 공격한다!"
산타크루즈 해전 당시 토머스 킨케이드 제독이 적을 발견했다고 통신을 주자 그가 한 대답.
"Hit hard, hit fast, hit often!"
"강하게 쳐라, 빠르게 쳐라, 계속 쳐라!"
그의 좌우명이다. 홀시 제독이 모델이 된 해군 모병 포스터에도 쓰였으며 각각 전함의 함포사격, 함재기 이함, 대공포의 화망을 그려넣어 표현했다. 월드 오브 워쉽의 캠페인 제목에도 쓰였다.
"I never trust a fighting man who doesn't smoke or drink."
"술•담배 안하는 전사는 신뢰가 안 가던데. "
가까운 후배이자 친구인 레이몬드 스프루언스를 놀리는 농담. 스프루언스는 평소 술담배를 하지 않고 체력단련에 열중하는 편이었다.
"All problems become smaller if you don't dodge them, but confront them. Touch a thistle timidly, and it pricks you; grasp it boldly, and its spines crumble."
"모든 문제는 피하지 않고 맞설 때 작아진다. 엉겅퀴를 소심하게 만지면 찔리지만 대담하게 움켜쥐면 가시가 뭉개지듯 말이다. "
흔히 홀시를 장비 같은 맹장으로만 생각하는데 가끔 깊은 통찰의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Kill Japs, kill Japs, kill more Japs!"[55]
"쪽발이들을 죽이고, 쪽발이들을 죽이고, 쪽발이들을 더 많이 죽이는 겁니다!"
남서태평양 방면 사령관이 되고 과달카날 시찰에서 앞으로의 전략을 묻는 기자들에게 한 대답이다. Jap은 영어권에서 일본이나 일본인에 대해 쓰이는 멸칭 중 하나.
파일:external/www.balloon-juice.com/halsey.jpg
홀시 제독님께서는, "쪽발이들을 죽이고, 쪽발이들을 죽이고, 쪽발이들을 더 많이 죽이자!" 라고 훈화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성실한 복무가 노랭이 새퀴들을 족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Admiral Halsey says "Kill Japs, Kill Japs, KILL MORE JAPS"!.
You will Help kill the yellow bastards if YOU DO YOUR JOB WELL.
이게 기사화된 이후로는 태평양 방면의 미군은 물론이고 미국 본토에서도 크게 유행하였다. 국내 인터넷에서도 홀시가 한 말하면 많이 나오는 말.
"The only good Jap is a Jap who's been dead six months.”
"좋은 쪽발이는 오직 죽은 지 6개월 지난 쪽발이 뿐이다."
출처: LIFE지 1944년 1월 24일자 30페이지
"The Third Fleet's sunken and damaged ships have been salvaged and are retiring at high speed toward the enemy."
"제3함대의 침몰 및 손상된 함들은 현재 해저에서 인양되었으며 적을 향해 급속 퇴각중"
대만 항공전에서 일본군이 항모 19척, 전함 4척, 순양함 7척, 함종 불명 15척 격침 및 격파라는 거짓 보고를 올린 것을 도쿄 로즈가 발표하자 체스터 니미츠 제독에게 보낸 전문. 그 전투 하나에서 항모 19척을 잡았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태평양전쟁 전체에서 격침당한 미군 항모의 총 수는 11척에 불과하다.# 물론 태반은 호위항모들.
"There are no great men, there are only great challenges, which ordinary men like you and me are forced by circumstances to meet."
"세상에 위대한 사람은 없다. 오직 당신이나 나같이 평범한 인물들이 일어나 맞서야 하는 위대한 도전이 있을 뿐이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지만 홀시가 남긴 말이다. 임팩트가 부족해서 그렇지 홀시가 남긴 문구 중에는 가장 멋진 말. 브래디 제임스의 논픽션인 아버지의 깃발에도 기록되어 있다. 본인의 전공과 미국 국방을 위해 세운 위대한 업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이 어록은 여러 버전의 녹취가 있다.)
At the end of WWII, all the towns and cities across the country were looking for a “Hero” to celebrate America’s victory with, Los Angeles chose Admiral Halsey and had a ceremony on the steps of the LA County courthouse to honor America’s hero and at the end of it when Admiral Halsey was leaving, they had a line of sideboys.
The sideboys were active duty and retired Chief Petty Officers that had been brought in from all over the country who had served with Admiral Halsey at one point in their careers.
Admiral Halsey approached one of the retired Chiefs, and they winked at each other.
Later on that evening at a reception for Admiral Halsey, one of the civilian guests at the event asked the Admiral about the wink he shared with the Chief. Admiral Halsey explained, “That man was my Chief when I was an Ensign, and no one before or after taught me as much about ships or men as he did.
You civilians don’t understand. You go down to Long Beach and you see those battleships sitting there, and you think that they float on water, don’t you?”
The guest replied, “Yes, sir, I guess I do.”
To which Admiral Halsey stated, “You are wrong. They are carried to sea on the backs of those Chief Petty Officers.”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온 미국의 도시와 마을은 승리의 기쁨을 함께할 "영웅" 을 찾아다녔고, 로스앤젤레스는 그 주인공으로 홀시 제독을 지목해 LA 카운티 법원의 계단에서 영웅을 기리는 행사를 벌였다. 홀시 제독이 행사가 끝나고 자리를 떠날 때 즈음에는 위병들이 사열해 그를 맞이했다.
위병들은 전국에서 모인 현역 혹은 전역한 CPO들이었고, 모두 한번씩은 홀시 제독 아래에서 근무했던 부사관들이었다.
홀시 제독은 전역한 부사관 하나에게 다가가서는 서로 윙크를 주고받았다.
그 날 저녁 만찬에서 한 민간인이 제독에게 그 윙크가 무슨 의미였는지 물었다. 홀시가 설명하길, "그 사람은 내가 소위였던 시절 내 부사관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나에게 함선이나 수병들에 대해서 그만큼 가르쳐 준 적이 없소.
당신들 민간인들은 모르겠지요. 롱 비치에 내려가서 거기에 전함들이 가만 앉아 있는 걸 보고 있자면, 그것들이 그냥 물에 떠 있는 것이리라 생각되지 않소?"
하객은 "네, 그렇겠지요" 라고 대답했다.
홀시가 거기에 대답하기를, "틀렸소. 군함은 그 CPO들의 등에 업혀서 바다로 나아가는 것이오."
군함에서 기술적으로 전문성을 요하는 CPO들의 역할을 강조하는 말이다.
"쪽발이(Japs)들도 끝이군."
이미 폭망한 전황에도 불구하고 카미카제로 발악하는 일본군을 무심하게 바라보며 시크하게 내뱉은 말이다.

7. 진급 내역

  • 1906.02.02: 소위(Ensign)
  • 1909.02.02: 대위(Lieutenant)
  • 1916.08.29: 소령(Lieutenant commander)
  • 1918.02.01: 중령(Commander)
  • 1927.02.10: 대령(Captain)
  • 1938.03.01: 소장(Rear Admiral)
  • 1940.06.13: 중장(Vice Admiral)
  • 1942.11.18: 대장(Admiral)
  • 1945.12.11: 원수(Fleet Admiral)

8. 둘러보기

파일:us_army_ww2.png 제2차 세계 대전 미군 장성급 지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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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준장
마크 클라크 | 돈 프랫 | 케네스 N. 워커 | 프레더릭 워커 캐슬AAF† | 네이선 베드퍼드 포레스트 3세AAF†| 제임스 돌턴 2세 | 스톤월 잭슨 | 가이 포트| 클로디어스 이즐리 | 허버트 다그AAF| 찰스 키런스 주니어 | 앨런 C. 맥브라이드 | 제임스 로이 앤더슨AAF | 브라이언트 무어 | 시어도어 루스벨트 주니어 | 제임스 에드워드 워튼 | 로렌스 B. 카이저 | 노먼 슈워츠코프 시니어 | 리 S. 게로 | 찰스 H. 바스 주니어 | 하워드 녹스 래미AAF† | 헤이우드 핸셀AAF | 로버트 싱크 | 조지 A. 테일러 | 존 H. 처치 | 찰스 D. 파머 | 윌리스턴 B. 파머 | 윌리엄 H. 윌버 | 에드윈 L. 시버트 | 해럴드 휴스턴 조지AAF† | 에밋 오도넬 주니어 AAF | 윌리엄 켈리 해리슨 주니어 | 앨버트 M. 존스 | 프랜시스 윌리엄 패럴 | 윌리엄 E. 브라우어 | 루서 R. 스티븐스 | 클리퍼드 블루멀 | 클린턴 A. 피어스 | 루이스 C. 비비 | 브래드퍼드 G. 시노웨스 | 찰스 C. 드레이크 | 칼 H. 실즈 | 제임스 R. N. 위버 | 케네스 로열 | 벤저민 O. 데이비스 시니어 | 러셀 A. 윌슨AAF 전 † | 넬슨 메이시 워커 | 에드먼드 윌슨 서비전 † | 데이비스 던바 그레이브스AAF 전 † | 클라이드 D. 에들먼 | 브루스 C. 클라크 | 제이 W. 매켈비 | 아서 트루도 | 구스타프 J. 브라운 | 에이사 N. 던컨AAF † | 칼라일 H. 워시AAF † | 윌리엄 H. 터너 AAF | 리처드 E. 뉴전트전 AAF | 존 L. 매그루더 | 존 그롬바크 | 웨인 C. 스미스 | 루벤 엘리스 젠킨스 | 토머스 레너드 해럴드 | 로버트 H. 소울 | 아이라 P. 스위프트 | 리로이 H. 왓슨 | 케일럽 V. 헤인즈 AAF | 로버트 몬태규 | 리질리 게이더 | 제시 A. 래드 | 찰스 S. 킬번 | 프랭크 S. 베슨 주니어 | 헨리 B. 클래짓 AAF | 에드워드 J. 팀버레이크 AAF | 프랭크 F. 에버레스트 AAF | 글렌 O. 바커스 AAF | 케네스 니콜스 | 찰스 P. 커벨 AAF | 로버트 B. 맥브라이드 | 드와이트 존스 | 앨프리드 케셀러전 AAF | 리처드 C. 샌더스전 AAF | 로버트 A. 매클러 | 해롤드 허글린AAF | 존 P. 매코넬AAF | 프레더릭 H. 스미스 주니어AAF | 윌리엄 F. 맥키AAF | 제임스 C. 프라이 | 해럴드 프랜시스 루미스 | 줄리안 W. 커닝엄 | 레뮤얼 매튜슨 | 보너 펠러스 | 휴 F. T. 호프먼 | 펠럼 D. 글래스퍼드 | 윌리엄 B. 브래드퍼드 | 온슬로 S. 롤프 | 조셉 클리랜드 | 크럼프 가빈 | 새뮤얼 D. 스터지스 3세 | 엘리엇 루스벨트AAF | 클로드 퍼렌바우 | 존 H. 콜리어 | 코트니 휘트니 | 빈센트 에스포시토 | 조지 윈들 리드 주니어 | 레이먼드 E. S. 윌리엄슨 | 찰스 G. 헬믹 | 존 L. 피어스 | 밀턴 B. 홀시 | 조셉 R. 시츠 | 로렌스 E. 쉬크 | 로렌스 A. 로슨전 AAF | 로저 M. 레이미전 AAF | 윌리엄 O. 다비 | 로버트 휘트니 번즈전 AAF | 블랙셔 M. 브라이언 | 윌러드 에임스 홀브룩 주니어 | 코틀랜드 스카일러 | 게리슨 H. 데이비드슨 | 더글러스 B. 네더우드AAF † | 케네스 P. 로드 | 토머스 프랜시스 히키 | 폴 D. 애덤스 | 프레더릭 B. 버틀러 | 윌리엄 F. 히비 | 핼리 G. 매독스 | 토머스 S. 팀버먼 | 마커스 B. 벨 | 랄프 프랜시스 스티얼리전 AAF | 제임스 C. 마셜 | 알론조 패트릭 폭스 | 프랜시스 K. 뉴커머 | 해리 H. 본 | 에드윈 W. 롤링스AAF | 윌리엄 A. 매케인 | 월터 K. 윌슨 주니어
해군
준장
알레이 버크 | 해리 W. 힐 | 로렌스 A. 애버크롬비 | 메리트 에드슨M | 레이 A. 로빈슨M | 제임스 알렉산더 로건 | 로슨 H. M. 샌더슨M | 로버트 H. 페퍼M | 윌리엄 스털링 파슨스 | 프랭클린 A. 하트M | 버나드 L. 오스틴 | 프레더릭 무스브루거 | 윌리엄 W. 로저스M | 리오 D. 허믈M | 윌리엄 O. 브라이스M | 알퐁스 드카레M | 윌리엄 C. 제임스M | 하워드 H. J. 벤슨 | 머윈 H. 실버손M | 해리 K. 피켓M | 로저 W. 심슨 | 롤랜드 N. 스무트 | 새뮤얼 C. 커밍 M | 루이스 R. 존스 M | 모리스 C. 그레고리 M | 존 T. 워커 M
AAF:육군 항공대, M: 해병대, N: 주방위군 C: 해안경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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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마다 읽는 방법이 다양해서 홀시 외에도 헐지, 할제이, 할시, 핼시 등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심지어 일본어 중역 판에서는 '하루제'라고 나오기도 한다.[2] 과달카날 시찰에서 그가 앞으로의 전략을 묻는 기자들에게 한 대답이다.[3] 위의 "쪽발이들을 죽이고, 쪽발이들을 죽이고, 쪽발이들을 더 많이 죽이는 겁니다!"라는 명언을 하기 전에도 성격이 꽤나 과격해서 별명이 싸움닭이었다.[4] 여담으로 조지 듀이는 해군 대원수로 군 생활을 마쳤으나, 이건 명예직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실제로는 대장(4성 제독)까지만 진급했고, 원수(5성 제독)는 되지 못했다.[5] 수백억 원을 써서 부하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배급하거나 잠수함 승무원을 특별히 챙겨주는 등 부하들을 위한 군 복지 증진에 노력했다.[6] 물론 그는 니미츠나 스프루언스 같이 단독함급에 이름이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리히급 순양함 23번함(CG-23)과 그 뒤를 이어서 알레이 버크급 구축함 97번함(DDG-97)이 Halsey의 이름을 이어받아 USS Halsey가 된 만큼 미 해군 내에서 홀시가 전혀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니미츠를 제외한 나머지 두 원수인 어니스트 킹과 윌리엄 리히도 각각 패러것급 구축함(DDG-41), 리히급 방공순양함(CG-16)에 이름이 들어가 있다.[7] 쉽게 말하면 전투기나 폭격기의 후방석[8] 2차대전 당시에도 그렇고 오늘날에도 미 해군에서 항공모함 함장의 자리는 항해병과가 아니라 항공병과 대령 TO이다. 예를 들어 미드웨이 해전에 출격했던 미 해군 3 항모의 함장(요크타운 - 엘리엇 벅매스터 대령, 엔터프라이즈 - 조지 머레이 대령, 호넷 - 마크 미처 소장(진))들은 전부 해군조종사 출신들이다. 현대 미군에서도 해군항공대 중령 정도에서 항해병과로 파견을 나가 구축함에서 부장으로 항해 업무를 배우고 돌아아 대령으로 승진하면 항모 함장에 앉는다. 반대로 항해병과 중령이 항공모함 부장으로 착임하여 항공병과 출신 함장(대령)을 보좌하여 업무를 수행한다.[9] 당시 홀시는 어니스트 킹에 의해 항공모함 새러토가의 함장으로 내정되어 있었다.[10] 이것은 곰리 제독이 변화한 상황에 파악을 못하고 부임 당시에 부여받은 목표인 호주와 미국 서해안의 연결선 방어에만 급급했던 탓이다. 심지어 저러고 있을 때 육군항공대 사령관, 헨리 아놀드 장군은 해군이 과달카날에서 전선 유지에만 급한 걸 보고 "안 그래도 유럽에 보낼 비행기도 모자라 죽겠는데 그쪽에서 이런 식으로 하면 앞으로 재미없을 것"이라는 경고를 보내기도 했다.[11] 참고로 태평양함대 사령관 겸 태평양해역군 사령관인 체스터 니미츠 제독이 로버트 곰리 제독 이전에 이미 홀시 제독을 남서태평양 방면 해군 사령관으로 추천해둔 상태였다. 특히 곰리 제독을 임명한 것은 어니스트 킹 제독의 해군 인사상 최악의 인사가 되고 말았는데, 곰리 제독은 애초에 참모만 맡았을 뿐, 현지 사령관은 한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랬기에 실제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격전지의 엄청난 부담감을 짊어지기에는 한계가 있었다.[12] 이때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외친 말이 "Kill japs, kill japs, KILL MORE JAPS!"이다.[13] 남태평양 주둔 미국 해군에 번호 함대를 부여하여 제3함대로 개칭되었다. 홀시 제독의 경우 이미 42년 10월 남태평양해역군 사령관으로 전구사령관(통합군)이 되었으며 직책상으로 제3함대의 사령관도 겸직했다.[14] 미국이 치른 태평양 전쟁은 크게 볼 때 맥아더 장군과 니미츠 제독이 각각 책임지는 2곳의 전쟁 구역으로 나뉘었다. 니미츠가 태평양해역군을, 맥아더가 남서태평양해역군을 지휘하고 있었으며 필리핀을 포함한 동남아시아, 뉴기니섬 ,오스트레일리아 등, 육군의 대규모 주둔이 가능한 큰 섬들과 ANZAC 연합국의 구역을 제외한 나머지 작은 섬들과 태평양 지역은 전부 니미츠의 구역이었다. 니미츠 제독이 관할하는 구역 자체도 무척 넓어서 다시 남태평양, 중부태평양, 북태평양으로 나눠서 중부태평양은 직접 책임지고 나머지는 홀시 제독 같은 부하 장성들을 책임자로 앉혀서 위임했다.[15] 과달카날 전투 종료 후 일본군의 전략거점인 라바울을 목표로 실행한 1943년 전 기간에 걸친 남태평양(맥아더, 홀시)의 미군들이 벌인 공세전역작전, 홀시 제독의 미군은 중부, 북부 솔로몬제도의 주요 섬들을 점령했고 맥아더 장군의 미군은 북부 파푸아 지역을 장악, 뉴브리튼 섬 서부에 상륙했다. 1943년 후반 미군의 전략이 변경되면서(개구리 뛰기) 양쪽의 미군은 라바울을 포위한 채 그 외곽 거점들만 점령하고 1944년 3월경 종결되었다.[16] 이 함대의 주력 기동부대의 부대명도 38기동함대, 58기동함대였는데 이 역시 3함대, 5함대라는 함대 이름 때문이고, 실제로는 똑같은 부대이다.[17] 1944년 12월 태풍 코브라에 구축함 3척이 침몰하고 다수의 함선이 손상을 입었고 1945년 6월 태풍 코니에는 침몰은 없었지만, 다수의 함선이 침수 또는 손상을 입었고 800여 명의 군인이 사망했다.[18] 홀시를 퇴역시키면 승리의 공이 모두 육군의 맥아더에게 돌아가 버린다는 해군의 내부 사정으로 인해 처벌은 받지 않았다. Quora 전직 군인의 성명에 따르면 당시 어니스트 킹과 체스터 니미츠는 홀시의 실책을 전해 듣고 크게 격분했다고 한다. 그러나 향후 경위 보고서를 작성할 때 이들 둘은 홀시를 크게 비호했고 니미츠는 자신이 직접 주최한 군사재판에서 홀시의 책임을 덮어주는 쪽으로 마무리했다. 홀시와 친하던 상원 내 홀시 지지세력들도 홀시에게 힘을 써줬다고 한다.[19] Quora의 관련 질문 가운데 전직 군인이 분석하고 최다 추천을 받은 답변에 따르면 홀시는 잘못된 기상정보를 믿고 주변 만류에도 3함대를 태풍 속으로 강행 돌파시키면서 이런 사태가 발생했다고 한다. 당시 사망한 790명은 익사하거나 추운 바닷물에 동사했으며 90명가량만 구조됐다. 소식을 전해 들은 니미츠 제독은 격분했고 킹 제독은 아예 화를 참지 못하고 사무실 물건을 바닥에 마구 내동댕이쳤다.[20] 대신 부하였던 제38기동부대 존 매케인 시니어 중장이 제대군인부 차관으로 견책성 전출을 가게 되었다.[21] 같은 시기, 미국 육군에선 최소 212명의 전시 준장들의 계급을 일괄적으로 대령으로 강등시키는 구조 조정과, 소장 이상의 윗 계급들도 경우에 따라선 1 ~ 2 계급 강등이 진행 중이었다. 아마도 육군에서는 군축 목적으로 해군과 비슷한 인사조정 위원회가 있었을 것이고, 정황상 제이콥 데버스 장군(육군 대장, 육군 지상군 사령관)이 그 위원장인 것으로 추정.[22] 이 정원이 얼마나 많냐면, 훗날 9년 후인 1955년에 알레이 버크 소장이 해군참모총장으로 전격 발탁될 당시에 그의 선임 2, 3, 4성제독이 92명이었다.[23] 레이테에서 실수하게 된 원인은 진주만 공습 당시 공습에 참가한 항공모함 중 한 척인 즈이카쿠 때문이다. 그러나 홀시가 즈이카쿠가 미끼인 것을 알고 있음에도 갔다는 의견도 설득력이 있다. 홀시는 진주만 공습에 가담했던 즈이카쿠를 잡기 위해서라면 물불 안 가릴 성격이었기 때문. 실제로 레이테 만 해전 당시에 홀시가 저 행동을 저지른 원인이 즈이카쿠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다른 전대 역시 이것만은 인정했다. 심지어 저 당시, 정확히는 사마르 해전 당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77.43 임무전대, 일명 태피3마저도 후에 홀시로부터 "당시 즈이카쿠를 잡으러 갔고 결국 격침시키는 데 성공했다."라는 해명을 듣고는 저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레이먼드 스프루언스 제독이 필리핀 해 해전에서 승장임에도 부하인 마크 미처 제독 등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이유 역시 즈이카쿠를 살려서 보냈다는 게 가장 컸다.[24] 태평양 전쟁 초기부터 미드웨이 해전까지 기동 부대를 지휘해 왔다.[25] "머리가 나쁘다"는 어니스트 킹 제독의 평가가 있던 건 사실이다. 다만 킹 제독이 똑똑하다고 인정한 사람은 본인과 스프루언스 제독 둘 뿐이다. 그는 당시 미 해군 최고의 두뇌 중 하나였는데 성격도 특이한 편이라 그 자신보다 판단력이 떨어지면 모조리 머리 나쁜 놈으로 취급했다.[26] 특히 홀시는 사람보는 눈도 뛰어났는데, 그가 수레바퀴 작전 중 고평가한 지휘관들은 모두 이후 전장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어 3성, 4성장군까지 진급한 사람이 많았다.[27] 노나카 이쿠지로 et al., 《왜 일본 제국은 실패하였는가?: 태평양 전쟁에서 배우는 조직경영》중 제2장 5 레이테 해전 - 자기 인식의 실패, p. 179, 출판: 주영사 / 발행: 2009.06.08.[28] 당시 태풍에서 살아남은 생존 장병중에는 아직도 홀시 제독의 5성 진급을 놓고 "그런 사람이 왜 5성 장군이냐"면서 격분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29] 홀시에 대한 평가는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이면엔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미 해군 내 정치 파벌 싸움까지 얽혀 있는 뜨거운 감자다. 일례로 홀시를 극렬히 비판한 저명한 역사학자 새뮤얼 모리슨은 홀시에게 “배 한 척 안 지휘해 본 자가 제독의 정당한 결심을 비판했다”고 까였고, 과거에는 이런 모리슨의 비판이 정당하고 홀시의 전쟁 중 및 전후 대응이 졸렬하다고 평가되었다. 허나 정보 접근성이 크게 높아진 지금에는 홀시가 그런 비판과는 달리 나름 레이테만 해전에서 근거 있는 정당한 결단을 했다는 주장도 있다. 다만 홀시와 자주 비교되는 스프루언스는 전술적 판단에 대한 논란이 없다시피 하고(지나치게 조심스럽고 수비적이었다는 점 정도만 지적됐으며 그나마도 정확한 판단이었다고 평가됨.) 인맥 관리나 정치질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 지적돼 왔다.[30] 일본의 경우 항모전단을 지휘하는 제독 중 해군 항공 조종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 조종사의 고충을 몰라 무리한 작전을 지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우리가 익히 아는 대부분의 일본 제독들이 이에 해당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야마구치 다몬으로 그는 명장이라는 이미지에 걸맞지 않게 조종사를 갈아넣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31] 실제로 이런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해되는 부분은 있지만 그만큼 억울한 피해자도 나오기 마련이다.[32] 실제로 수레바퀴 작전 동안 일본군은 미군의 진로를 크게 오판하여 라바울을 위시한 뉴브리튼 지역에 지속적으로 병력과 함대를 차출하여 소모했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중부태평양 등 다른 지역의 방위 약화를 초래했다. 특히 구축함의 손실이 막심하여 일본 항모전단이 이후 잠수함에 지속적으로 털리는 결과를 초래한다.[33] 이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여서 오키나와 전투 때도 상륙군 총사령관인 육군의 사이먼 버크너 장군은 해군과 불편한 관계를 계속 이어나갔다.[34] 스프루언스가 이 사건에 대해서 별다른 전후 회고를 남기지 않아서 그의 생각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타고난 해군 제독으로 해군 입장을 언제나 먼저 생각했던 사람임을 고려하면 홀랜드 스미스를 두둔한 사건에 대해서 어느 정도 윤곽있는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전에 마킨 섬 전투 때 육군이 육군 방식의 전투를 하다가 바다에서 호위 및 초계 임무를 하던 호위 항공모함 리스컴베이가 장시간 작전에 노출되어 일본 잠수함의 어뢰 공격에 의해 굉침, 함대 제독과 함께 1,000여 명의 수병과 함께 전사하는 일이 있었다. 이때 만약 해병대 방식으로 마킨 섬을 속전 속결로 탈환했으면 리스컴 베이가 침몰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즉, 스프루언스는 해군의 전력 보존 및 작전 피로도를 고려했을 때 해병대 방식이 옳다고 암묵적으로 묵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오키나와 전역에서 버크너 장군의 해군과의 불편한 관계도 결국 이러한 해군 입장과 육군 입장의 차이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카미카제에 시달리던 해군이 빨리 배를 빼기 위해서 육군에게 진격할 것을 압박했고 이번에는 그 중용을 강조하던 니미츠 마저 오키나와에 직접 와서 버크너를 채근할 정도로 해군은 장시간 상륙작전 지원 시 고통 받았다.[35] 물론 홀시를 당시 미 해군에 막강한 영향을 끼치던 칼 빈슨 의원이 호의적으로 보고 비호한 것은 사실이며 홀시가 전후 회고록이나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자기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쓴 것 또한 사실이다.[36] 나무위키에도 잘 작성되어 있는 태풍 코브라 항목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일단 태풍 코브라에 대한 홀시의 ‘전 함대 급유 지시’는 매우 적절했다. 이 명령이 없었으면 모든 함대가 파멸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불운하게도 태풍 코브라는 통상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았고 가장 빠른 배라고 해봐야 30노트 수준이고 인공 위성도 없던 항공모함 기동 함대에게 태풍을 실시간으로 피하는 능력은 없었다.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함대가 파손되어 도크 신세가 되었지만 그것이 홀시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물론 이런 재난이 지휘관의 책임으로 인한 것이 아니더라도 결국 책임은 지휘관이 지는 것이 리더의 임무 중 하나인 만큼 최종적으로는 홀시가 미 해군 사문회에 출두하게 된다. 허나 다른 제독들은 이런 논란이 잘 없던 것도 사실이다.[37] "Seven Decades of Debate", Alan Rems, Naval History, Volume 31, U.S. NAVAL INSTITUTE.[38] 일단 짬밥 순으로는 해사 1년 후배지만 니미츠는 고등학교를 마치지 않고 해사에 진학했기 때문에 동기들에 비해 나이가 어렸다. 엄밀히는 미군 기준으로는 새까만 후배가 아니다. 아이젠하워가 맥아더의 전속부관 출신이었다. 파격적이긴 하지만 미군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다.[39] 이 내용은 홀시가 2차 대전 종전 후에 썼던 자서전에 나오는 내용이다. 참고로 이 시기에 좀 유명하다 싶은 장성들이 죄다 자서전을 써서 팔아먹는 것을 니미츠가 싫어했다고. 이 내용은 니미츠 제독의 언급이 없이 홀시 제독 자서전에만 나오므로 교차 검증이 필요하다. 홀시 제독은 자기 인맥 관리와 이미지 관리의 귀재로도 유명했다.[40] 사실 홀시가 심기가 불편한 것도 이유겠지만, 부하들의 사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미신이라 불리는 것들이 많이 남아있는 해군에서 터부시되는 것들을 원천제거하여 부하들이 불안해 하거나 입방아에 오르지 않는 일은 지휘관으로서 홀시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다.[41] 일본군은 정말 여러 척의 군함을 격침시킨 줄 알았기 때문이다. 실제 피해는 중순양함 캔버라가 대파되었고 항모 프랭클린이 경미한 손상을 입었던 것뿐이지만.[42] "The Third Fleet's sunken and damaged ships have been salvaged and are retiring at high speed toward the enemy."[43] 오바마 대통령의 상대였던 존 매케인의 할아버지다. 참고로 존 매케인의 아버지 존 매케인 주니어 제독도 베트남 전쟁 당시 해군 대장으로 태평양사령관까지 올랐던 사람.[44] 단 이 말을 했을 때만 해도 칠면조 사냥 때의 스프루언스의 행동에 대한 비판 여론이 존재했을 때이다. 전후 일본 기록의 조사 및 1980년대의 연구에 따르면 당시 스프루언스의 행동이 가장 적합한 행동이었다.[45] 대표적으로 함교 창문이 있다. 최초의 핵추진 항공모함인 CVN-65부터 이 창문을 달고 있었으며 스크랩 된 후에는 CVN-80에게 넘겨 줄 예정.[46] 그러나 이 말을 들은 체스터 니미츠는 "다시 한 번 그런 말을 입에 올렸다가는 귀관을 보직에서 해임시키겠다" 라고 강하게 질책했다. 전후에 천황은 일본을 점령하고 나서 병사들의 희생을 줄여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47] 쇼생크 탈출의 브룩스 영감 역할을 맡았던 배우. 2009년 별세.[48] 원작 자체가 대단히 스프루언스를 찬양한다.[49] '전쟁과 폭풍(The wind of war)', '전쟁과 추억(War and Remembrance)'으로 갈라서 제작되었으며, 한국에서는 KBS-1에서 심야에 전편은 1986년에 방영했고, 후편은 1989년 방영했다.[50] 홀시 휘하에서 전함군을 이끌고 있는 중이었다.[51] 이 작품에서 맥아더는 보너스 아미로 쿠데타를 일으켜 동부를 장악한 상태다.[52] J. Bryan (1947). Admiral Halsey's Story. Whittlesey House. pp. 75–76. ISBN 978-1-4325-6693-7.[53] 열대폭풍으로 인해 늦었다.[54] 이때 홀시 제독의 기동함대에 소속된 항공모함 중 한 척이 후에 해전사의 전설을 만드는 요크타운급 항공모함 2번 함 USS 엔터프라이즈.[55] 만화 피너츠에서 스누피가 따라한 대사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