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3 17:11:08

마크 미처



파일:us_army_ww2.png 제2차 세계 대전 미군 장성급 지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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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윗 첨자 : 전사, 육항 : 육군 항공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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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arc_Mitscher.jpg

1. 소개2. 초기 이력3. 흑역사4. 부활5. 평가6. 그 외 이야기

1. 소개

Marc Andrew "Pete" Mitscher 1887년 1월 26일 출생 ~ 1947년 2월 3일 사망.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해군 제독으로 태평양 함대의 주력 항공모함 기동부대를 지휘했던 인물이다.

2. 초기 이력

위스콘신에서 태어났지만 오클라호마에서 자랐고 학교는 워싱턴 D.C.에서 다닌 까닭에 순수하게 위스콘신 출신이라 표현하기는 어려운 인물이다. 어쨌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애너폴리스에 입학하여 1910년에 졸업했다. 최초 부임지는 태평양 함대 산하의 USS 콜로라도였고 한동안은 수상함에서 근무했다. 하지만 1916년에 해군 조종사 자격을 취득하면서 정통파 수상함이 아닌 항공 계통으로 빠지며 그의 운명을 결정했다.

특히 미 해군 최초의 항공모함 랭글리에 탑승하여 같이 배치된 소위 '개척자'들과 함께 해군 항공대의 기반을 닦았고, 항공모함 새러토가의 비행대장을 맡아 훈련에 참여했다. 그리고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태평양 전쟁을 불과 몇 달 앞둔 시점에 요크타운급 항공모함 호넷의 함장으로 부임했다. 당시 호넷은 대서양에 배치되어 있었으므로 미처 역시 버지니아에 머무르고 있었으나 진주만 공습 이후 태평양으로 옮겨왔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00px-Marc_A._Mitscher_and_James_Doolittle.jpg

호넷 갑판 위의 미처와 둘리틀

태평양으로 건너온 호넷이 맡은 첫 임무는 특별한 임무를 수행할 육군 항공대 소속 폭격기가 출격할 수 있도록 일본 근해까지 접근하는 것으로 바로 그 유명한 둘리틀 특공대였다. 항공모함에서 육군 폭격기 B-25가 발진하여 일본 본토를 폭격한다는 다소 황당하게 보일 수 있는 이 계획은 폭격의 전과만 놓고 보면 그리 보잘것 없었지만 미국의 사기를 끌어올리고 일본을 동요시킨다는 프로파간다로서의 목적으로는 대성공을 거뒀다. 심하게 데인 일본해군은 미드웨이를 공격하고 이를 요격하기 위해 나온 미 해군 항공모함을 격멸한다는 작전을 수립했으나 오히려 일본해군의 정예라 손꼽히던 항공모함 4척만 날려먹는 대패를 당하고 말았다.

3. 흑역사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 해군은 대승을 거뒀고 미처는 레이먼드 스프루언스 제독 휘하에서 호넷을 지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커다란 흑역사를 하나 남기고 항공모함 부대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당시 미처는 뇌격비행대의 지휘관 스탠호프 링 중령을 상당히 신뢰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 사람이 부하들에게 평가가 극악이었다는 것이다. 미드웨이 해전 직전에 요크타운과 엔터프라이즈의 비행대 승무원들은 결전을 기다리며 땅에서 마지막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링 중령은 승무원들을 배에 남도록 강요했고 종군기자들이 오면 자신 위주로 취재를 시키는 등의 행동으로 부하들은 그에게 불만이 많았고, 미드웨이 해전에서는 그게 폭발해 그가 뇌격대를 잘못된 길로 이끌자 뇌격대장 존 윌드론 소령이 "Well, the hell with you."[1]라고 하며 뇌격대를 이끌고 그와 따로 떨어져서 가는 사태까지 발생했다.[2] 게다가 그 후 와일드캣 편대와 돈틀리스 편대도 연료가 떨어지자 자신들의 상관에게 아무런 보고도 없이 기수를 돌렸다.

하지만 평소 링 중령을 신뢰하던 미처 제독은 그를 보호하기 위해 보고서에서 일부러 몇몇 부분은 제출하지 않고 심지어 조작까지 하면서 그를 보호해주려고 했으나 직속 상관인 스프루언스에게 그게 걸렸다. 그 덕분에 스프루언스 제독은 미처 제독을 강판했으며 꽤 오랜 기간동안 그를 불신하기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처 제독은 링 중령을 끝까지 감싸돌았으며 해군 십자장을 수여받도록 추천까지 했다.

문제는 링 중령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미드웨이 해전에서 호넷의 전과가 아예 없다시피 했으며, 연료 문제로 귀환 도중 불시착하여 미귀환한 항공기가 꽤 많았다는 점이다. 소류는 요크타운 항공대가, 아카기와 카가, 히류는 엔터프라이즈 항공대가 격침시켰으며 호넷의 전과는 없다. 결국 성과도 없이 함재기와 조종사만 잃은 꼴. 스프루언스 제독이 열받은 근본적인 원인도 여기에 있다. 스프루언스 제독은 호넷 항공대가 제 일을 똑바로 했더라면 요크타운을 잃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이 일로 제독으로 승진은 했으나[3] 오랜기간 근무해온 항공모함이 아닌 남태평양의 지상기지로 전출조치가 내려졌으며 태평양의 주요 지상기지를 전전하는 신세가 됐다.[4]

4. 부활

파일:Marc_Mitscher_g236831.jpg

1944년. 기함인 CV-16 렉싱턴에서

훗날 TF 58의 명지휘관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지만 1943년 5함대가 창설되던 시점에는 미국 서해안 항공대 사령관직을 맡고 있었다. 다만 첫 전투에서 항공모함 항공대가 다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자 일선에서는 아무래도 미처 제독이 적임자가 아니냐는 의견이 대두됐고, 니미츠 제독이 항공관계쪽 참모들과 장시간 의견을 나눈 끝에 최종결정을 내리면서 마침내 일선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물론 복귀하는 과정에서 마찰이 없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5함대 사령관이 바로 스프루언스 제독이었기 때문이다. 앞선 사건으로 미처 제독을 불신하던 스프루언스 제독은 니미츠 제독의 지휘관 교체 결정에 크게 반발했으며 거부의사를 밝혔다. 결국 니미츠 제독도 전임자를 5함대 항공관계 고문으로 동승시키고 만약 마셜 제도 공습에서 미처 제독이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면 즉시 해임한다는 타협안을 내세울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미처 제독은 이 작전에서 탁월한 항공모함 항공대 운용능력을 보여줬으며 결국 스프루언스 제독의 신임을 받아냈다.
빛을 밝혀라! (Turn on the lights!)

이후 필리핀 해 해전에서 일본을 상대로 승리를 거둬서 마술사라는 별명도 얻는다. 또한 해전 당시 늦은 시간에 공격대를 투입했다가 공격대가 야간착함의 위기에 놓이게 되자 전 함대의 빛을 밝혀 조종사들을 유도한 적도 있다. 다소 위험할 수 있는 결정이었지만 그 덕분에 거의 모든 비행기들이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고, 귀환하지 못한 비행기들도 미처 제독의 지시에 따라 철저한 구조 활동을 진행하여 일부 실종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인력을 구출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 때 작은 개그 에피소드. 마크 미처는 구조 작업을 독려하기 위해 조종사를 구한 함선에겐 아이스크림을 더 많이 배급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한 구축함[5]마크 미처의 비행단 지휘관인 파일럿[6]을 구출하자 "킬러 케인의 몸값은 아이스크림 얼마치입니까?"라고 보고한 것. 물론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으므로 그 구축함은 충분한 양(약 25갤런≒94.64리터)의 아이스크림을 배급받았다고 한다.[7]

미 해군의 방침에 따라 윌리엄 홀시 제독이 스프루언스 제독과 교대하여 부대를 지휘하게 되면서 3함대로 이름이 바뀌었고, 미처 제독 역시 5함대 소속이었으므로 3함대의 존 매케인 제독과 교대를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미처 제독은 중도 인사 교체로 인하여 임기 1년을 모두 채우지 않았으므로 레이테 만 해전까지 이름만 바뀐 TF 38을 지휘한다는 결정이 내려져 교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작전이 완료된 후 매케인 제독과 교대하여 후방에서 휴식을 취했다.

이오지마 전투를 앞두고 다시 매케인 제독과 교대한 미처 제독은 오키나와 전투에도 참여했다. 그 와중에 카미카제 공격을 받아 미처 제독의 기함 벙커힐이 대파되는 상황도 직접 경험했다. 이로 인해 기함을 엔터프라이즈로 교체했는데 그 엔터프라이즈마저 카미카제 공격에 피해를 보아 기함을 랜돌프로 옮겨야 했다.

종전 이후 대장으로 승진한 그는 잠시 8함대 지휘를 맡은 뒤 1946년 대서양함대 사령관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6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8]

5. 평가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의리파였다.

당대 항공기는 카미카제에서 보듯이 순항 미사일과 성격이 겹치는 부분이 있는데, 차이점이 있다면 탄두부(?)를 조종사의 판단에 따라 분리하여 적을 타격할 수 있다는 점 뿐이었다. 당대의 인식도 실제로 그러하였으며, 영국 해군은 이러한 '항공모함의 항공기는 사거리가 연장된 수상함의 주포'라는 통찰을 바탕으로 항공모함과 전함의 함동 작전을 구상하여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그래서, 항공기 공격은 그렇게 사람을 적진에 집어넣었다가 도로 끄집어내는 위험을 감수해야하는 데다가 그 '사람'이 매우 값비싸다는 특성을 가진 탓에, 항공기 지휘관은 진취적이고 저돌적이지만 부하들을 아껴야하는 성향을 가져야 좋다고 보았다. 미처는 그러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자신의 전술 전략적인 면은 특출난 점이 거의 없었으나, 그들의 상사가 구상한 전략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도록 조종사들을 이끌고 격려하는데는 매우 뛰어난 사람이었다.

나쁜 의미의 의리파로는 링 중령의 이야기가 유명하지만, 그보다는 파장이 더 컸던 사람이다. 미처가 닦아놓은 미 해군 항공대의 '좋은 조종사 리더에 대한 인식'은 더 이상 그런 류의 자질이 예전만큼 중요하지 않게 된 '미사일과 무인기가 날라다니는 현대'까지도 이어져서[9], 테일후크 스캔들이나 드론 조종사에 대한 차별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홀시와 비교하면, 전술가 전략가로서는 크게 뒤쳐졌으나, 인간적인 매력은 비슷하거나 조금 뒤쳐졌고, 그러나 홀시보다 훨씬 군내 정치적인 처신을 잘했다. 홀시는 자신이 이끄는 군대가 '미국'의 군대라는 점을 중요시하였기 때문에 실수를 종종 저질렀으나, 미처는 '인간'의 모임이 조직이고, '성과는 공동으로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분배될 수 밖에 없다'라는 통찰을 가지는 부류의 군인이었기 때문이다.

6. 그 외 이야기

미 해군은 미처급 선도구축함[10]을 건조하면서 그의 이름을 붙였고, 이 함급이 퇴역한 이후에는 알레이 버크급 구축함 DDG-57에 이름을 승계했다.
[1] 정말로 부드럽게 번역하자면 "네 맘대로 하세요." 정도고, 사실 대놓고 직속상관한테 조까라고 한거다.[2] 심지어 월드론 소령이 옳아서 뇌격대는 제대로 공격 코스로 들어갔다. 효과는 없었지만.[3] 제독 진급 자체는 미드웨이 해전 직전에 예정된 것이었다. 그러나 해전에서 보여준 그의 인사적 행동으로 인해 제독이 되고나서 한동안 한직을 돌아다녔다.[4] 이때 미처제독은 과달카날 전투 직후 칵터스 항공대를 확대 개편한 솔로몬 제도 항공사령관 직위로 과달카날에서 지상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바로..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의 암살을 위한 실무책임자였다. 정확히는 그의 휘하에 있던 육군항공대 P-38 전투기 대대가 작전을 수행했다.[5] 배글리급 구축함 DD-392 USS 패터슨.[6] 윌리엄 “킬러” 케인 (William “Killer” Kane). VF-10 비행단장.[7] 당시 구축함의 급양환경이 워낙 열악했기 때문에 구축함 승무원들은 아이스크림 생산설비가 딸린 대형함과 함께 작전에 투입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이스크림을 얻어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에피소드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하면 구축함 승무원들의 입장도 이해가 될 것이다. 그들 입장에서는 정말 절박했을 것이다.[8] 태평양 전쟁 종전 이후 존 매케인 Sr., 윌리스 리 등 미처 제독을 포함한 적잖은 수의 미해군 제독들이 45~48년 사이에 당시 기준으로도 비교적 이른 나이에 타계하는데, 우연의 일치라기보다는 전시, 함상 근무, 지휘관이라는 3중고가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9] 이 갈등을 보여주는 것이 전통적인 인간상인 매버릭과 현대에 어울리는 파일럿상인 아이스맨을 보여주는 영화 탑건이다.[10] Destroyer Leader, 나중에 미사일 구축함(DDG)으로 재분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