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03 20:21:13

윌리엄 홀시


파일:나무위키+유도.png   동명의 가수에 대한 내용은 Halsey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파일:us_army_ww2.png 제2차 세계 대전 미군 장성급 지휘관
{{{#!wiki style="margin:-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육군
★★★★★
육군 원수
헨리 아놀드 | 더글러스 맥아더 | 조지 C. 마셜 |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
육군 대장
오마 브래들리 | 조지 S. 패튼 | 조지프 스틸웰 | 마크 클라크 | 조나단 웨인라이트
★★★
육군 중장
레슬리 맥네어 | 존 리드 하지 | 앨버트 웨드마이어 | 매튜 B. 리지웨이 | 사이먼 B. 버크너
★★
육군 소장
제임스 밴 플리트 | 모리스 로즈 | 커티스 르메이
||<-5><#000080><tablewidth=100%><tablebordercolor=#cdcdcd> 해군 ||
★★★★★
해군 원수
체스터 니미츠 | 어니스트 킹 | 윌리엄 리히 | 윌리엄 홀시
★★★★
해군 대장
마크 미처 | 레이먼드 스프루언스
★★★
해군 중장
프랭크 플레처
★★
해군 소장
허즈번드 킴멜
해군 준장
알레이 버크

||<bgcolor=#CCC><tablewidth=100%>※ 문서가 있는 인물만 2차 대전기 당시 계급으로 서술함
※ 윗 첨자 : 전사, 윗 첨자 : 육군 항공대
||
}}}}}}}}} ||

윌리엄 프레드릭 홀시 주니어
William Frederick Halsey Jr.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W_Halsey.jpg
이름 William Frederick Halsey[1] Jr.
(윌리엄 프레드릭 홀시 주니어)
출생 1882년 10월 30일, 미국 뉴저지
사망 1959년 8월 16일, 미국 뉴욕 피셔아일랜드
복무 미합중국 해군(1904–1959)
최종 계급 해군 원수
주요 이력 미 해군 제3함대 사령관
주요 참전 제1차 세계대전
과달카날 해전
레이테 만 해전
주요 서훈 해군 십자장
아시아-태평양 전역 메달
제2차 세계대전 승전 메달

1. 개요2. 일생
2.1. 생도 시절2.2. 제2차 세계대전 이전2.3. 제2차 세계대전2.4. 전쟁 이후
3. 평가4. 일화5. 대중매체에서6. 어록7. 진급 내역

파일:external/www.navsource.org/04012306.jpg
파일:external/www.historyofwar.org/halsey.jpg
▲ 컬러 사진.

1. 개요

Kill japs, kill japs, KILL MORE JAPS!
일본넘들을 죽이고, 죽이고, 더 많이 죽이는 겁니다![2]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합중국 해군제독. 최종 계급은 원수였다. 별명은 Bull(황소), Japs Killer.(...)
체스터 니미츠, 어니스트 킹, 윌리엄 리히와 함께 미 해군 역사상 아직까진 단 4명 뿐인 해군 원수 중 한 명이다.[3]

위에 나오는 Kill japs, kill japs, KILL MORE JAPS! 같은 문구를 봐도 알 수 있듯 적을 대하는 태도가 꽤나 무자비했던 사람으로, 육군의 조지 S. 패튼이나 공군의 석기시대 매니아 커티스 르메이의 해군 버전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2. 일생

2.1. 생도 시절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아버지가 동명이인이고 해군 대령까지 지냈던 인물인데, 홀시와 체스터 니미츠가 사관생도였던 시절에 중령이었던 아버지가 해사 항해학부 부장으로 근무했다보니 홀시와 니미츠가 홀시 시니어에게 함상 훈련을 받기도 했다.

2.2. 제2차 세계대전 이전

행정상의 이유로 소위에서 중위로 진급하자마자 바로 대위까지 진급(사실상 중위 계급을 스킵)해 버린 독특한 전력이 있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에는 대서양 함대의 어뢰 전대를 지휘하기도 하였으며, 여러 어뢰정구축함을 지휘하면서 이미 상당한 공훈을 세운 인물이었다.

이후 구축함 전단을 지휘하다가 1930년대 중반에 해전대학(Naval war college)과정과 비행사 훈련을 거친 뒤 항공모함 함장을 역임하였으며, 이후 소장으로 승진한 뒤 항공모함 기동부대를 지휘하였다.[4] 그리고 진주만 공습 이전에는 중장으로 태평양 함대에 배속되어 있었으며, CV-6 엔터프라이즈를 중심으로 한 항공모함 기동부대를 지휘하고 있었다.[5]

2.3. 제2차 세계대전

1941년 12월 진주만 공습부터 1942년 6월 미드웨이 해전 사이에 있었던 주요 항공모함 작전의 야전 사령관은 홀시 제독이었다. 하지만 미드웨이 해전 직전에 풍토병을 얻는 바람에 장기간 요양을 해야 했고, 그 후임으로 엔터프라이즈 기동부대를 지휘했던 사람이 훗날 홀시 제독과 함께 태평양 함대의 야전 지휘관으로 활약하는 레이먼드 스프루언스 제독이다.

과달카날 전투 중반에 완전히 회복되었으며, 원래 항공모함 기동부대를 지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당시 과달카날 전투에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남서태평양 방면 해군 사령관 곰리 제독이 워낙 소극적인 지휘를 하고 있었던 까닭에 교체해달라는 요청이 어니스트 킹 제독의 귀에 들어가고 있었고, 스프루언스 제독이 항모 운용에 적응하기 시작한 시점이라서, 곰리 제독을 대신하여 남서태평양 방면 해군 사령관으로 부임하였다. 당시 이 소식을 들은 남서태평양 방면의 해군과 해병대원들 모두 환호했다고 하며, 이후 적극적인 지원을 하여 과달카날 해전에서 최종적인 승리를 얻는데 일조를 하였다.

이후 남태평양 방면군의 해군 부대를 중심으로 미 제3함대[6]가 창설되자 대장계급을 부여받고 초대 사령관으로 부임하게 된다. 그리고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지휘하는 남서태평양 방면군[7]과 긴밀한 협력 하에 수레바퀴 작전(Operation Cartwheel)[8]에 참여하였다.

남태평양의 주요 섬들이 정리된 후로는 딱히 굵직한 전투가 없었는데, 그 때문에 홀시 제독의 능력을 묵혀 두기 아깝다고 판단한 태평양 함대는 전투 부대의 지휘관을 스프루언스 제독과 홀시 제독이 1년씩 번갈아가면서 지휘하도록 조치하였다. 이 때문에 홀시 제독이 지휘하는 동안은 3함대, 스프루언스 제독이 지휘하는 동안은 5함대로 불리면서 사실 부대원은 바뀌지 않은 해괴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레이테 만 해전 당시 일본군 해군 오자와 지사부로의 유인 작전에 낚여서 주력 부대를 끌고 추적하는 바람에 상륙 부대가 털릴 뻔한 적도 있으며, 이후에 태풍이 몰아치고 있는데도 대처 미숙으로 함대가 2번이나 피해를[9] 보아서 군사법원에 소환되어 강제로 퇴역할 뻔한 적도 있는, 다소 아쉬운 이력도 남아 있다.[10] 이게 홀시 제독의 군생활을 통틀어 거의 유일한 전략상의 실책이었다.

이후 일본 침공 직전에 스프루언스 제독과 교대를 하였다가, 다시 귀환하여 일본이 항복할 때까지 함대를 지휘하였다. 참고로 일본이 항복문서를 서명한 전함 미주리가 바로 홀시 제독의 기함이다.

2.4. 전쟁 이후

일본군의 항복 후 항복 조인식에 참석한 홀시 제독은 그 후 10월 25일에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가서 퇴역신청을 냈는데, 오히려 트루먼 대통령은 4일 후에 그를 원수로 추대했다. 원래 원수로 추대되는 것은 전쟁 중에 이미 결정이 난 상태지만 동일한 함대를 교대로 지휘하면서 아직 대장계급인 레이먼드 스프루언스 제독의 문제 등이 있어서 미루어진 것이었다. 그래서 홀시는 1947년에 퇴역했다. 그 후 홀시는 정부 임원과 여러 회사의 중역을 거치다가 1957년에 뇌졸중으로 모든 직함에서 물러났는데 1959년 8월 16일, 자택에서 심장 발작으로 사망했다. 홀시의 장례는 국장으로 진행되어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치됐다.

3. 평가

레이테 만 해전에서 적의 기만전술에 말려든 일화[11]태풍 크리가 워낙 유명해서 그렇지 실제론 상당한 기간 동안 기동부대를 이끌어온 베테랑[12]이었으며 둘리틀 특공대, 산타크루즈 해전, 과달카날 해전, 시부얀 해전, 구레 군항 공습 등 다양한 전투에서 기동부대를 지휘한 지휘관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는 여러모로 레이먼드 스프루언스처럼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인물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한 자리나 오히려 인간적인 면모로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 있는 자리에 적합한 인물이라는 평가가 많다. 실제로 그가 이끈 함대의 승무원 대다수가 레이테 만 해전 당시 오자와에게 낚여 즈이카쿠를 잡으러 갔을 때 그의 심정은 이해한다고 말했다. 또한 과달카날에서도 그가 부임해 온다는 소식을 듣자 장병들이 환호했었을 정도.

물론 고위 제독으로써 역량이 부족한 것은 아니기에[13] 남태평양 해역군 사령관 재직 시절 수레바퀴 작전을 이끈 홀시는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줬는데. 흔히 알려져 있던 불같은 성미와는 전혀 다르게 전술,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와 그렇지 않는 곳을 잘 구분해서 전쟁 중기부터 미군이 벌인 개구리 뛰기의 초석이 된다. 또한 육군을 제외한 미군의 타 군종과 호주 같은 타국 군대를 깔보았던 맥아더 장군과 달리, 특유의 친화력을 잘 살린 지휘 덕분에 휘하 육군과 해병대 장성들과의 마찰이나 그의 구역에 있었던 동맹국인 뉴질랜드 군과 마찰도 없었고, 같은 해군의 마크 미처 제독과 켈리 터너 제독 같은 실력 좋으면서도 성격이 정 반대인 제독들을 마찰 없이 지휘를 하며 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나중엔 해군을 무시하던 맥아더 장군과도 거의 관포지교에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전체적으로 명장이고 용장이긴 하지만, 감정적인 성격이 강한 데다 같이 싸운 동료 중 하나가 태평양 전쟁 불패의 명장 스프루언스 제독이고 레이테에서 적의 기만책에 속아넘어간 것이 커서 평가가 많이 깎인다.

4. 일화

  • 체스터 니미츠 제독이 태평양함대 사령관으로 부임하고 항공모함을 투입한 첫 작전을 입안했을 때, 항공 관계 쪽 지휘관들이 크게 들고 일어났던 적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니미츠 제독은 항공관련 병종에서 근무한 적이 없으며, 수많은 선배들보다 먼저 소장에서 바로 대장으로 승진한 새까만 후배[14]인 데다가 똑같이 새까만 후배였던 허즈밴드 킴멜 제독이 말아먹은 태평양 함대를 니미츠가 더 말아 먹을까 봐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작전에 나갔던 홀시 제독이 돌아와서 회의에 참석하였는데, 돌아가는 꼬라지에 꼭지 돌아서 대성 일갈하고 작전을 지지함으로써 반대파들을 조용하게 만들었다.[15]
  • 기자들이 일본군을 상대할 때 어떤 자세로 지휘를 하느냐고 질문을 하였는데, 그는 아무말 없이 카메라를 다소 엄하게 노려보는 자세를 취하였다. 근데 사진에 촬영된 그 모습이 황소와 같다고 하여 이후 황소(Bull)란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런 별명에 어울리는 화끈한 성격의 소유자였는데, 그의 명언들로 알려진 이야기들, 그리고 이 항목에 소개된 일화들에서도 그렇긴 하지만 행동도 과격해서 머리 위로 일본의 폭격기가 지나가는데 함교 위로 올라가 주먹을 휘두르며 욕을 하기도 했다.
  • 홀시 제독이 작전을 나가기 직전 사령부에서 제13기동부대란 번호를 부여받았다. 게다가 작전을 위한 출항일까지도 13일. 서양에서 불길한 숫자로 받아들여지던 13을 두 개나 받자 홀시 제독은 심기가 불편하였고, 유능한 참모장이었지만 성질이 좀 불 같았던 브라우닝 중령을 사령부에 보내 온갖 진상을 부리게 함으로써 결국 출항일을 하루 미루고, 제16기동부대란 번호를 새로 부여받았다. 그 후 제16기동부대는 이후 엔터프라이즈 부대의 상징적인 번호로 자리 잡게 되었다.
  • 진주만 공습을 날린 일본을 매우 싫어해 일본을 비하하는 발언은 많이 했지만 일본계를 비롯한 동양계 미군 장병들에게는 매우 관대했다고 한다. 동양계 수병이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는 '그 녀석은 선량한 미국의 국민이자 우리 군의 수병이다. 한 번만 더 그랬다간 피곤죽으로 만들어 버릴 테다.'라며 길길이 날뛰기도 했다고. 그밖에도 부하들을 소중히 여기는 인간적인 일화가 많아 부하들에게 굉장히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일개 수병조차 '그 할아버지를 위해서라면 몇 번이든지 목숨을 바칠 수 있다'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
  • 과달카날 전역이 후끈하게 달아올랐을 때, 니미츠 제독이 잠시 말라리아에 걸려 입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 때 홀시 제독이 "니미츠가 와병 중이라 근무를 할 수 없으니, 현재 태평양에서 내가 니미츠 다음으로 유일한 사성 제독이니 잠정적인 태평양함대 사령관"이라면서 나설까 봐 두려워서 태평양함대 사령부의 사성제독 깃발을 계속 게양했다고 한다. 조금 오지랖이 넓은 분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깃발을 계속 게양하도록 지시한 사람은 당시 태평양함대 참모장인 스프루언스 제독이었다.
  • 원래 1944년 겨울에 미 의회가 해군 제독 네 명의 원수 승진을 승인하였으며, 그 대상자에는 홀시 제독도 포함되어 있었다. 다만 동격의 5함대 사령관인 스프루언스 제독이 대장인데, 3함대 사령관인 홀시 제독을 원수로 승진시키기가 좀 그렇다는 의견으로 인해 승진 추천이 보류되었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 대만 항공전 이후 일본군이 "대규모 공격으로 미 제3함대에 큰 피해를 주었으며, 여러 척의 군함을 격침하였다"고 거짓발표를 하자, 홀시 제독은 즉시 니미츠 제독에게 "침몰 당했다는 제3함대는 현재 해저에서 무사히 인양되어 적을 향해 급속 퇴각 중"[16]이라고 재치있게 보고하였다.
  • 레이테 만 해전 당시, 오자와의 미끼에 걸려서 한참 헤매고 다니던 상황에서 체스터 니미츠로부터 보안 통신문을 받았다. 내용 자체는 빨리 돌아와서 킨케이드 제독의 7함대를 지원하라는 내용이었다. 이 자체는 문제될 게 없었다. 진짜 문제는 여기에 추가된 문구. 끝 부분에 '온 세상이 궁금해 한다'라는 문구가 추가되어 있었다. 이런 암호 통신문은 앞뒤로 아무 문구나 집어넣어서 도청을 하더라도 문장 길이로 내용을 추측하기 힘들도록 만든다. 마침 통신을 보낸 당일은 발라클라바 전투의 유명한 경기병대의 돌격을 기념하는 날이어서, 이 전투를 소재로 한 알프레드 테니슨의 시의 구절을 넣은 것이다. 그런데 이 통신을 담당한 장교는 이 문구를 도청 방지용 문구가 아니라 통신문의 정식 내용이라고 착각하고 홀시에게 그대로 보내버렸다. 당연히 홀시는 노발대발했다. 자신의 실수와는 별개로 현 상황에서 이런 통신문이 왔다는 건, 니미츠가 홀시에게 "세상 사람들이 다 궁금해 하는데 넌 지금 어디서 무슨 헛짓거리 하고 있냐? 빨리 안와?" 라고 독설을 한 격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니미츠는 본래 홀시를 비롯한 부하 지휘관들의 재량권을 최대한 보장하고 위임하는 성격이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홀시에게 이런 독설을 날린 격이니 더더욱 황당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 통신 장교는 이후 당연히 직책에서 잘렸다.
  • 3함대 사령관을 역임하는 동안 휘하에서 항공모함 기동부대를 지휘했던 사람이 존 S. 매케인 Sr. 제독인데, 오바마 대통령의 상대였던 존 매케인의 할아버지 되시는 분이다. 참고로 존 매케인의 아버지 존 S. 매케인 Jr. 제독도 월남전 당시 해군 대장으로 태평양사령관까지 올랐던 사람. 다만 홀시는 매케인 1세가 급사하는 원인을 제공했다. 당시 매케인 제독은 상당한 고령에 건강도 좋지 않았는데도 해군의 주요 장성이라 직무 강도가 매우 높았고, 때문에 전쟁 기간 내내 수십 kg이 빠질 정도로 몸을 해쳤다. 매케인 1세는 일본이 항복하자 바로 군복 벗고 미국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홀시가 항복 조인식에 참석해 달라고 붙들어서 종전 이후에도 쉬지 못하다가 결국 본국으로 돌아간 지 얼마 안되어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 일본 방송에서 하도 전사설, 사망설을 보도해서 막상 일본 항복 조인식 때 중화민국 대표단은 홀시가 살아서 행사에 참석한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 전후 여생을 레이테 만 해전에서의 자신의 결정에 대해서 해명하는 데 보냈다. 유명한 역사가들과의 논쟁은 아직도 말이 많았던 사항. 홀시는 기본적으로 그때 자신이 그 상황이라도 동일한 결정을 했을 거라고 했다. 다만 지나가는 말로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 때 자신이 있었고 레이테에서 스프루언스가 있었으면 좋았을거라는 말을 남겼다.[17]
  • 미드웨이 해전에서 크게 활약하여 두고두고 회자되는 엔터프라이즈 함상 비행대의 급강하 폭격기 조종사 딕 베스트 대위의 풀네임은 Richard Halsey Best였다.
  • 명배우인 어네스트 보그나인과 닮았다.
  • 아이스크림 때문에 한 위관급 장교를 참교육(?)시킨 적이 있다. 당시 미 해군에서는 수병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배급하였는데, 아무래도 아이스크림을 원하는 사람은 많고 아이스크림 만드는 기계는 한정되기에 배급을 받으려면 긴 줄을 서야 했다. 그런데 한 위관급 장교가 수병들의 줄을 새치기해서 먼저 아이스크림을 받아가는 일이 발생했다. 당연히 수병들은 불만을 가졌지만 계급이 깡패인지라 대놓고 뭐라 말하지를 못했다. 그런데 그 순간 줄 뒤에서 그 위관급 장교에게 욕설을 퍼붓는 소리가 들렸다. 수병들은 감히 장교에게 욕설을 하는 사람이 누군가 싶어서 돌아보았는데 그 자리엔 포스타인 홀시 본인이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려고 수병들과 함께 줄을 서 있다가 새치기하는 꼴을 보고 욕설을 퍼부은 것. 물론 그 장교가 어떤 꼴을 당했을지는 이하 생략.출처 대위님 함대 사령관실로 문닫고 들어 오시랍니다

5. 대중매체에서

  • 1950년대 이미 세미 다큐 영화가 제작될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이때는 1940년대 유명한 악역 전문배우 제임스 커그니가 역을 맡았는데, 의외로 닮았다.
  • 영화 도라 도라 도라에서는 제임스 위트모어[18]가 홀시 역으로 출연했다. 앞 부분에 항모를 끌고 나가기 전에 잠깐, 진주만 공습 후에 파괴된 진주만으로 항모가 입항하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유명한 대사를 원래 상영분에서 하지만 일본과의 관계 때문에 이후 나온 매체에서는 이 부분이 삭제되어 있다.
  • 1976년작 영화 미드웨이에서는 로버트 미첨이 홀시 역을 맡았다. 실제와 같이 피부병에 걸려서 미드웨이에 안 나갔기 때문에 앞부분에 병원에서 이야기 하는 부분만 처리. 실제와 달리 스프루언스한테 "레이, 나한테 묻지 말고 자네 방식대로 하게."라며 전폭적인 신뢰를 보낸다.
  • 허만 우크의 Winds of War에서는 레이테 만 해전 부분에서 유명한 결정 때문에 꽤나 까인다.[19] 1980년대 후반에 이를 원작으로 제작된 드라마[20]에서도 주인공의 대사[21]를 통해 홀시의 결정을 비판한다.
  • 붉은 10월에서 잭 라이언이 홀시 관련 연구를 하는 역사가이다. 원작에서는 홀시의 전기를 쓰고 있다가 호출을 받는 것으로 되어 있고 홀시의 결정이 정당했다고 이전 책에 썼다. 소련에서 라이언의 책을 읽었던 라미우스가 "나도 당신이 쓴 책을 읽었소. 하지만 당신은 틀렸어. 그의 선택은 잘못된 거요. 홀시는 치명적인 오판을 했지.라고 이야기 하는 건 원작이나 영화나 다 묘사 된 장면.
  • 굽시니스트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에선 '윌리엄 시'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황소라는 그의 별명답게 황소뿔을 달고 나온다. 또한 그 레이테 만 해전에서는 오자와에게 항모를 내놓으라며 투우를 건다. 그렇지만 태평양 전쟁의 다른 인물들처럼 비중은 공기 그 자체.
  • 일본 가공전기 만화 몽환의 전함 야마토에서는 주적으로 등장. 현대에서 타임슬립한 주인공 쿠루스의 활약에 빡친 나머지 쓰러진다.
  • 지팡구에서는 진급을 못했는지 마크 미처랑 계급이 같다. 일본군에게 낚인 미처를 보고 자신이 레이테 해전을 지휘하길 원했지만 니미츠는 미처에게 레이테 해전 지휘를 맡긴다.

6. 어록

성격만큼이나 강렬하고 인상적인 말도 많이 남겼다. 아래는 그 말들.
"Before we're through with them, the Japanese language will be spoken only in hell."
'이 전쟁이 끝나면, 일본어는 지옥에서나 쓰는 언어가 될 것이다.' [22]
'이 전쟁이 끝나면'이라고 번역된 것이지만 실제로 "Before we're through with them"은 "이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로 해석하는 게 정확하다. 몰락 작전이 계획대로 진행됐으면 진짜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일본은 핵지옥이 돼있을 것이다. 진주만 공습 당시에 기동부대를 이끌고 진주만으로 오던 중이었는데 약간의 시간 차이[23]로 진주만 공습이 끝난 후에 도착해서 진주만의 참상을 보고 한 말.[24]
"I'll take it! If anything gets in my way, we'll shoot first and argue afterwards."
"내가 책임지겠소! 내 앞길을 가로막는 게 있다면 일단 쏴 버리고, 언쟁은 그 나중의 일이오."
진주만 공습 이후 기동부대를 이끌고 웨이크 섬으로 가려는 그를 허즈번드 킴멜이 막으며 "자네 혼자 전쟁할 생각인가? 책임은 누가 지는데?"라고 하자 한 대답이다.

"Attack. Repeat, attack!"
"공격해라. 반복한다, 공격이다!"
산타크루즈 해전 당시 토머스 킨케이드 제독이 적을 발견했다고 통신을 주자 그가 한 대답.
"Hit hard, hit fast, hit often!"
"강하게 쳐라, 빠르게 쳐라, 계속 쳐라!"
그의 좌우명이다.
"Kill Japs, kill Japs, kill more Japs!"[25]
"일본넘들을 죽이고, 죽이고, 더 많이 죽이는 겁니다!"
남서태평양 방면 사령관이 되고 과달카날 시찰에서 앞으로의 전략을 묻는 기자들에게 한 대답이다.
파일:external/www.balloon-juice.com/halsey.jpg
홀시 제독께서는 "일본넘들을 죽이고, 죽이고, 더 많이 죽이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성실한 복무가 노랭이 새퀴들을 죽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Admiral Halsey says "Kill Japs, Kill Japs, Kill More Japs"!.
You will Help kill the yellow bastards if YOU DO YOUR JOB WELL.
이게 기사화된 이후로는 태평양 방면의 미군은 물론이고 미국 본토에서도 크게 유행하였다. 국내 인터넷에서도 홀시가 한 말 하면 많이 나오는 말.
"The only good Jap is a Jap who's been dead six months,”
"좋은 일본넘은 오직 죽은지 6개월 지난 일본넘 뿐이다."
출처: LIFE지 1944년 1월 24일자 30페이지
"The Third Fleet's sunken and damaged ships have been salvaged and are retiring at high speed toward the enemy."
"침몰당했다는 제3함대는 현재 해저에서 무사히 인양되어 적을 향해 급속 퇴각중"
대만 항공전에서 일본군이 항모 19척, 전함 4척, 순양함 7척, 함종 불명 15척 격침 및 격파라는 거짓 보고정신승리를 올린 것을 도쿄 로즈가 발표하자 체스터 니미츠 제독에게 보낸 전문. 태평양 전쟁에서 격침당한 미군 항모의 총수가 11척이다.# 물론 태반은 호위항모들.
"There are no great people in this world, only great challenges which ordinary people rise to meet."
"세상에 위대한 사람은 없다. 오직 평범한 인물들이 일어나 맞서는 위대한 도전이 있을 뿐이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지만 홀시가 남긴 말이다. 임팩트가 부족해서 그렇지 홀시가 남긴 문구 중에는 가장 멋진 말. 브래디 제임스의 논픽션인 아버지의 깃발에도 기록되어 있다. 본인의 전공과 미국 국방을 위해 세운 위대한 업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At the end of WWII, all the towns and cities across the country were looking for a “Hero” to celebrate America’s victory with, Los Angeles chose Admiral Halsey and had a ceremony on the steps of the LA County courthouse to honor America’s hero and at the end of it when Admiral Halsey was leaving, they had a line of sideboys.
The sideboys were active duty and retired Chief Petty Officers that had been brought in from all over the country who had served with Admiral Halsey at one point in their careers.
Admiral Halsey approached one of the retired Chiefs, and they winked at each other.
Later on that evening at a reception for Admiral Halsey, one of the civilian guests at the event asked the Admiral about the wink he shared with the Chief. Admiral Halsey explained, “That man was my Chief when I was an Ensign, and no one before or after taught me as much about ships or men as he did.
You civilians don’t understand. You go down to Long Beach and you see those battleships sitting there, and you think that they float on water, don’t you?”
The guest replied, “Yes, sir, I guess I do.”
To which Admiral Halsey stated, “You are wrong. They are carried to sea on the backs of those Chief Petty Officers.”
"군함은 물에 떠있는게 아니라 CPO들이 받처 들고 있는것이다."
군함에서 기술적으로 전문성을 요하는 CPO들의 역할을 강조하는 말이다.
"일본넘(Japs)들도 끝이군."
이미 폭망한 전황에도 불구하고 카미카제로 발악하는 일본군을 무심하게 바라보며 시크하게 내뱉은 말이다.

7. 진급 내역

  • 1906.02.02 : 소위(Ensign)
  • 1909.02.02 : 대위(Lieutenant)
  • 1916.08.29 : 소령(Lieutenant commander)
  • 1918.02.01 : 중령(Commander)
  • 1927.02.10 : 대령(Captain)
  • 1938.03.01 : 소장(Rear Admiral)
  • 1940.06.13 : 중장(Vice Admiral)
  • 1942.11.18 : 대장(Admiral)
  • 1945.12.11 : 원수(Fleet Admiral)

[1] 사람마다 읽는 방법이 다양해서 홀시 외에도 헐지, 할제이, 할시, 핼시 등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심지어 일본어 중역 판에서는 하루제 라고 나오기도 한다.[2] 과달카날 시찰에서 그가 앞으로의 전략을 묻는 기자들에게 한 대답이다.[3] 여담으로 조지 듀이는 해군 대원수로 군 생활을 마쳤으나, 이건 명예직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실제로는 대장(4성 제독)까지만 진급했고, 원수(5성 제독)는 되지 못했다.[4] 여담으로 그는 미 해군 내 최고령 비행사 면허 취득자였다. 무려 52세에 취득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살이 30kg이나 빠졌다고 한다.[5] 엔터프라이즈는 홀시가 해전에서 일제를 박살내는데 가장 많은 공헌을 한 공신이다. 그래서 전후 엔터프라이즈가 스크랩(고철로 매각)이 될 위기에 처하자 함선에 근무하던 승무원들이 엔터프라이즈를 기념함으로 보존하고자 만든 협회에 자금을 보태주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아 결국 엔터프라이즈는 매각, 이후 해체된다.[6] 남태평양 주둔 미국 해군에 번호 함대를 부여하여 제3함대로 개칭되었다. 홀시 제독의 경우 이미 42년 10월 남태평양해역군 사령관으로 전구사령관(통합군)이 되었으며 직책상으로 제3함대의 사령관도 겸직했다.[7] 미국이 치른 태평양 전쟁은 크게 볼 때 맥아더 장군과 니미츠 제독이 각각 책임지는 두 곳의 전쟁 구역으로 나뉘었다. 니미츠가 태평양해역통합군을, 맥아더가 미국-필리핀연합군을 지휘하고 있었으며 필리핀을 포함한 동남아시아, 뉴기니섬 ,오스트레일리아 등, 육군의 대규모 주둔이 가능한 큰 섬들과 ANZAC 연합국의 구역을 제외한 나머지 작은 섬들과 태평양 지역은 전부 니미츠의 구역이었다. 니미츠 제독이 관할하는 구역 자체도 무척 넓어서 다시 남태평양, 중태평양, 북태평양으로 나눠서 중부태평양은 직접 책임지고 나머지는 헐지 제독 같은 부하 제독, 장군들을 책임자로 앉혀서 위임했다.[8] 과달카날 전투 종료 후 일본군의 전략거점인 라바울을 목표로 실행한 1943년 전 기간에 걸친 남태평양(맥아더, 홀시)의 미군들이 벌인 공세전역작전, 홀시 제독의 미군은 중부, 북부 솔로몬제도의 주요 섬들을 점령했고 맥아더 장군의 미군은 북부 파푸아 지역을 장악, 뉴브리튼 섬 서부에 상륙했다. 1943년 후반 미군의 전략이 변경되면서(개구리 뛰기) 양쪽의 미군은 라바울을 포위한 채 그 외곽 거점들만 점령하고 1944년 3월경 종결되었다.[9] 1944년 12월 태풍 코브라에 구축함 3척이 침몰하고 다수의 함선이 손상을 입었고 1945년 6월 태풍 코니에는 침몰은 없었지만, 다수의 함선이 손상을 입었다.[10] 홀시를 퇴역시키면 승리의 공이 모두 육군의 맥아더에게 돌아가 버린다는 해군의 내부 사정으로 인해 처벌은 받지 않았다.[11] 레이테에서 실수하게 된 원인은 진주만 공습 당시 공습에 참가한 항공모함 중 한 척인 즈이카쿠 때문이다. 그러나 홀시가 즈이카쿠가 미끼인 것을 알고 있음에도 갔다는 의견도 설득력이 있다. 홀시는 진주만 공습에 가담했던 즈이카쿠를 잡기 위해서라면 물불 안 가릴 성격이었기 때문. 실제로 레이테 만 해전 당시에 홀시가 저 행동을 저지른 원인이 즈이카쿠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다른 전대 역시 이것만은 인정했다. 레이먼드 스프루언스 제독이 필리핀 해 해전에서 승장임에도 부하인 마크 미처 제독 등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이유 역시 즈이카쿠를 살려서 보냈다는 게 가장 컸다.[12] 태평양 전쟁 초기부터 미드웨이 해전까지 기동부대를 지휘해 왔다.[13] "머리가 나쁘다"는 어니스트 킹 제독의 평가를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 킹 제독이 똑똑하다고 인정한 사람은 본인과 스프루언스 제독 둘 뿐이다. 그는 당시 미 해군 최고의 두뇌 중 하나였는데, 그만큼 성격도 괴팍해서 그 자신보다 판단력이 떨어지면 모조리 머리 나쁜 놈으로 취급했다.[14] 일단 짬밥 순으로는 해사 1년 후배지만 니미츠는 고등학교를 마치지 않고 해사에 진학했기 때문에 동기들에 비해 나이가 어렸다.[15] 이 내용은 홀시가 2차 대전 종전 후에 썼던 자서전에 나오는 내용이다. 참고로 이 시기에 좀 유명하다 싶은 장성들이 죄다 자서전을 써서 팔아먹는 것을 니미츠가 싫어했다고.[16] "The Third Fleet's sunken and damaged ships have been salvaged and are retiring at high speed toward the enemy."[17] 단 이 말을 했을 때만 해도 칠면조 사냥 때의 스프루언스의 행동에 대한 비판 여론이 존재했을 때이다. 전후 일본 기록의 조사 및 1980년대의 연구에 따르면 당시 스프루언스의 행동이 가장 적합한 행동이었다.[18] 쇼생크 탈출의 브룩스 영감 역할을 맡았던 배우. 2009년 별세.[19] 원작 자체가 대단히 스프루언스를 찬양한다.[20] '전쟁과 폭풍(The wind of war)', '전쟁과 추억(War and Remembrance)'으로 갈라서 제작되었으며, 한국에서는 KBS-1에서 심야에 전편은 1986년에 방영했고, 후편은 1989년 방영했다.[21] 홀시 휘하에서 전함군을 이끌고 있는 중이었다.[22] J. Bryan (1947). Admiral Halsey's Story. Whittlesey House. pp. 75–76. ISBN 978-1-4325-6693-7.[23] 열대폭풍으로 인해 늦었다.[24] 이때 홀시 제독의 기동함대에 소속된 항공모함 중 한 척이 후에 해전사의 전설을 만드는 요크타운급 항공모함 2번 함 USS 엔터프라이즈.[25] 만화 피너츠에서 스누피가 따라한 대사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