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3 04:47:24

코브라(태풍)

1944년 태풍 코브라
레이더 사진[1]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Typhoon_Cobra%2C_18_December_1944_east_of_Luzon.jpg
진로도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Cobra_1944_track.png
활동 기간 1944년 12월 13일 ~ 12월 18일
영향 지역 파일:미크로네시아 연방 국기.svg 미크로네시아 연방
파일:팔라우 국기.svg 팔라우
파일:필리핀 국기.svg 필리핀
파일:미합중국 해군기.svg 미국 해군 제38임무부대[2]
태풍 등급 4등급[JTWC]
태풍 크기 -
최저 기압 907hPa
최대 풍속 1분 평균 62m/s
1. 개요2. 피해
2.1. 기록 사진
3. 여파4. 여담5. 관련문서6.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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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Typhoon Cobra
Halsey's Typhoon

1944년 12월 13일 필리핀 해에서 발생한 태풍이다. 처음에는 924hPa로 예상되었으나 태풍에 휘말린 함대의 관측에 의하면 최저 907hPa까지 내려갔었다. 12월 19일에 소멸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윌리엄 홀시 제독이 지휘하던 미 해군 제38임무부대(Task Force 38, TF38)가 이 태풍에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되어 큰 피해를 보았다. 역사에 남은 가장 유명한 태풍 중 하나.

또한 자살공격이 아닌 진정한 역사적 의미에서의 가미카제로 꼽히는 태풍이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원나라/고려의 원정 때와는 다르게 이때는 기술력이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발달한 20세기였는데도 불구하고 군함은 3척이나 가라앉고 수십척이 손상되었으며 인명도 790명씩이나 죽었다. 만약 이 정도로 강한 태풍이 아직 목조함선들이 사용되던 시대에 발생했다면 맞는 쪽은 무조건 끔살 확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원나라 때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태풍조차도 일본을 지키주지 못했다.

2. 피해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가 않아 그저 "홀시가 배 몇척 깨먹은 사건" 정도로 언급이 되지만, 실상은 태스크 포스 전체, 그것도 말이 좋아 태스크포스지 1944년 겨울 당시 기준으로는 거의 궤멸된 일본 해군 전체보다 더 많고, 당시 나머지 연합군 함대를 다 합쳐야 겨우 상대가 될 정도로 미국의 해군력을 다 때려박아 만들어놓은 당시 세계 최강의 해상함대 가용전력에, 피해입은 전력만으로도 당시 웬만한 중진국 해군의 전체 전력 이상의 가용전력이 바다에 잠겨버린 대재앙이었다.

이를 두고 "일본 해군 제4함대사건의 미국 해군 버전"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실제 홀시의 함대가 입은 피해는 제4함대 사건과 비교하기 미안할 수준이다. 제 4함대 사건은 54명의 사망자를 냈고 침몰한 군함은 없었다. 반면 태풍 코브라 사건은 아래 서술되어 있듯이 구축함 3척 침몰에, 순양함들까지 죄다 도크의 중환자가 되어버렸고 사상자만 해도 790명이나 된다. 어지간한 대규모 함대전에서나 나올 피해를 자연재해가 일으킨 것이다.
함번 함명 함급 피해
DD-350 패러것급 구축함 침몰, 202명 사망, 62명 생존
DD-354 모너핸 패러것급 구축함 침몰, 256명 사망, 6명 생존
DD-512 스펜스 플레처급 구축함 침몰, 317명 사망, 23명 생존
CVL-25 카우펜스 인디펜던스급 경항모 격납고 손상 및 함재기 8기 망실, 1명 실종
CVL-26 몬터레이 인디펜던스급 경항모 격납고 화재, 3명 사망
CVL-27 랭글리 인디펜던스급 경항모 손상
CVL-28 캐벗 인디펜던스급 경항모 손상
CVL-30 샌재신토 인디펜던스급 경항모 함재기 및 에어인테이크 손상
CVE-18 알타마하 보그급 호위항모 격납고 손상
CVE-57 안치오 카사블랑카급 호위항모 주요 수리 필요
CVE-74 네헨타 베이 카사블랑카급 호위항모 손상
CVE-88 캐이프 에스퍼란스 카사블랑카급 호위항모 비행갑판 화재 및 주요 수리 필요
CVE-98 콰잘레인 카사블랑카급 호위항모 조타능력 상실
BB-61 아이오와 아이오와급 전함 추진축 1개 손상 및 수상기 1기 망실
CA-68 볼티모어 볼티모어급 중순양함 주요 수리 필요
CL-89 마이애미 클리블랜드급 경순양함 주요 수리 필요
DD-349 듀이 패러것급 구축함 배전반 침수로 조타능력 및 레이더, 전기동력 상실
DD-355 아일윈 패러것급 구축함 주요 수리 필요
DD-484 뷰캐넌 글리브스급 구축함 주요 수리 필요
DD-572 다이슨 플레처급 구축함 주요 수리 필요
DD-673 히콕스 플레처급 구축함 주요 수리 필요
DD-731 매독스 알렌 M. 섬너급 구축함 손상
DD-796 벤험 플레처급 구축함 주요 수리 필요
DE-44 도날드슨 에바츠급 호위구축함 주요 수리 필요
DE-416 멜빈 R. 나만 존 C. 버틀러급 호위구축함 주요 수리 필요
DE-418 태버러 존 C. 버틀러급 호위구축함 전방 마스트 망실
DE-740 워터맨 캐논급 호위구축함 손상
AO-60 낸터할라 시마론급 급유함 손상
ATF-104 지카릴라 아브나키급 함대예인선 손상
AE-6 샤스타 보급함 갑판 일부 붕괴로 항공기, 탄약 손상

종합하면 구축함 3척이 침몰하고 다수의 함선이 손상되었으며, 79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함재기 146대가 손·망실되는 대피해를 보았다. 테스크 포스 소속 함선의 거의 대부분이 주요 수리를 받아야 했는데, 이건 해당 선박이 치명타를 입어서 도크에서 세월아 내월아 수리만 받아야 하는 수준의 피해를 입었단 것이다.

이는 미 해군과 일본 해군이 질과 양 모두 동등한 수준에서 교전을 벌였던 마지막 전투인 산타크루즈 해전 때 미군과 일본군이 입은 각각의 피해(함재기 및 인원 한정)를 모두 합친 수준과 맞먹는다.

전함 조차 추진축이 파손되는 심각한 손상을 입었을 정도니 태풍의 위력이 정말 어마머마했다. 당시 미 해군이 필리핀 주변 해역의 재해권을 탈환한지 그리 오래된 시기가 아니었기에 이 해역에 대한 기상 정보 수집이 거의 되고 있지 않았고, 덕분에 태풍을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태풍이 다가오기 시작할때, 38 임무대는 이 태풍이 필리핀으로 직행하리라 여겼는지 남으로 변침하지 않고 그대로 북상하기로 했는데, 예상과 달리 태풍이 아주 빠르게 북으로 역 변침 해버리면서 얄짤 없이 태풍과 마주치게 되었다.

아예 황천 낌새가 나자마자 항해를 포기하고 피항 하는 게 정답이었지만 당시 38 임무대는 항공 지원을 위해 이동 중인 것은 물론 해상 급유를 받아야 했고 이미 항구에서 멀리 나온 상태라 피항을 하기도 여의치 않았다.

그나마 피해를 줄여보고자, 회의 끝에 홀시 제독은 필리핀에 오는 태풍이 편서풍을 받아 북으로 방향을 튼다는 것에서 착안하여, 남쪽으로 변침하기로 결정했는데, 타당한 판단이었으나 실상은 거꾸로 태풍 속으로 돌아오는 꼴이 되었다.

필리핀을 거치는 태풍은 필리핀 북부에서 편서풍에 꺾여 일본과 한반도를 향해 가거나, 종종 중국을 향하는 경우가 많고, 필리핀에 상륙하는 경우에는 흔들리지 않고 그대로 필리핀 본토를 향해 직진하는 경우가 많아 38 임무대의 판단은 일리가 있는 결정이었다.

그런데, 코브라는 추측한 것과 달리 북으로 급격히 변침(?)한게 아니었다. 게다가, 한동안 아주 완만하게 북상하던 코브라는 갑자기 북으로 확 꺾어 급속도로 북상하였고, 이것으로 그치지 않고 갑자기 필리핀을 향해 급변침 하더니, 얼마못가 갑자기 북으로 급변침 후 소멸하는 기행을 보여주었다.

파일:cobra_fake_card.jpg
[4]

당시 상당 수의 함선들이 연료를 거의 소모해 해상 급유를 필요로 했으며, 너무 많은 탱크가 빈 탓에 무게가 한쪽으로 쏠려있으면서, 연료가 있는 탱크는 연료가 바닥나기 직전이니 너무 가벼웠다.

즉, 평형을 맞추기 위해 벨러스트 탱크에 평형수가 일부만 차있으면서 동시에 한쪽에 평형수가 몰려있는 아주 불안정한 상태였다.

홀시 제독은 선박평형수가 한쪽에 몰려있는 상태서 침수가 발생하면 선박의 무게 중심을 다시 맞추기 아주 어려워지고, 또한 선박이 흔들리면서 완전히 채워지지 않은 벨러스트 및 연료 탱크들에서 물과 연료가 파도를 따라 기울며 무게 중심 이탈이 일어나 선박 전복 위험이 높아질 것으로 판단, 덜 차있는 벨러스트는 가득 채우거나 아니면 완전히 비우도록 하고, 틀어진 무게 중심은 빈 연료 탱크에 해수를 가득 채워 선박 무게 배분을 맞추되, 가능한 선박의 최하부 탱크 위주로 가득 채워 무게 중심을 낮추면서[5][6] 동시에 무게 중심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도록 명령하였다.

연료 탱크에 바닷물을 채우면 이후 해수에 오염된 탱크를 청소하느라 굉장히 골치가 아파지게 되는데다, 이 임무대는 당장 급유를 받아야 할 정도로 기름이 모자른 상황인데[7] 일단 닥치고 뭐라도 꽉꽉 채워넣어놓으라 해야 했을 만큼 태풍의 위협이 어마어마했고, 홀시의 이 판단은 구구절절 옳아서 따질 것도 없는 판단이었다.

이 명령이 아니었다면 무려 700에 달하는 장병들이 천재지변에 목숨을 잃고 그와 함께 어지간한 주력 함대 수준 전력이 개박살나서 도크의 환자 신세가 되는 정도 피해가 끝나는게 아니라 아예 임무대 전체가 용궁 항해를 하게 되고도 남았다.[8]

안타깝게도 함선 중 DD-512 스펜스는 이 명령을 정확히 따르지 않았다. 결국 DD-512는 폭풍으로 침수가 발생하자 무게 중심이 제 위치를 이탈, 결국 전복되어 침몰하고 말았다. 당시 스펜스는 연료탱크가 거의 비어 있어서 (약 10~15%) 상대적으로 선박 하부가 더 가벼웠기에 무게 중심이 너무 올라간 상태였기으므로 더욱 폭풍에 취약했다.

큰 손상을 입은 DD-673 히콕스, DD-731 매독스도 연료가 거의 없으므로 무게 중심이 높아져 불안정성한 상태였기에 큰 피해를 입었다. 그나마 히콕스와 매덕스는 명령대로 연료탱크에 바닷물을 채워둔 탓에 침몰만은 면했다.

침몰 함선 중 DD-350 헐, DD-354 모너핸 두 척은 구형 패러것급 구축함으로, 기름은 차 있었으나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추가로 500톤[9] 이상의 장비들을 장착하는 개수를 받으면서, 함정 상부가 너무 무거워진 탓에 무게 중심이 올라가 불안정성이 컸고, 결국 폭풍을 견딜 수 없었다.

태풍의 위력이 실로 어마어마했는지라, 현장 당사자인 홀시 제독은 "배수량 5만톤의 아이오와급 전함이 마치 급류의 카누처럼 흔들렸다"라고 나중에 증언했다.

아이오와급 전함은 파나마 운하 통과를 위해 폭이 제한되어서 전체적으로 길쭉한 형상을 하고 있었기에 능파성 개선이 있었음에도 악천후 항해성능은 덩치에 비해 부족한 전함이긴 했지만, 이를 감안한다 해도 전함이, 그것도 세계에서 2번째로 거대한 전함인 아이오와급 전함이 저렇게 흔들릴 정도면 뭐라 더 설명이 필요 없을 또라이 같은 태풍임은 확실하다.

전함은 드레드노트로부터 계승되온 거함 특유의 설계 구조 덕분에 무게 중심이 매우 낮으면서, 그 무거운 장갑에서 나오는 무지막지한 무게까지 더해진 덕분에 항해 시 놀라울 만큼 안정성을 갖는다. 안정적이지 않으면 그 무거운 거포들과 장갑을 덕지덕지 달고 다닐 수도 없다![10] 이미 그 자체로 미칠듯이 무거운 거대 장비들을 올려놓은 이상, 개장하면서 여따 또 뭘 덕지덕지 붙인다 해봐야 상부 무게 감당이 안 되기 전에 공간이 먼저 바닥나므로, 각종 개수로 불안정해지기도 어렵다.

군축 조약이나 운하 같은 제약으로 인해 뭔가 좀 이상하게 만들어진 전함이라 해도 엄연히 거포와 떡장을 둘둘 두르고 다니려 만든 물건인고로, 전함은 어지간한 저세상 황천 항해에서도 꿈쩍 하지 않으며 꿈쩍하는 전함을 만드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11]

그런데 바로 그 전함이 파도에 마구 패대기 쳐지며 물 위가 아니라 잠수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상황이었으니, 이것은 예수가 재림해 바다를 진정 시켜도 해결이 안된다 과장해 표현해도 이상할 게 없는 재앙이다.

그런 끔찍한 와중에도 홀시 제독은 어떻게든 해상 급유를 성사시켜 항해를 끝내려 해보았으나, 전술 했듯 홀시의 임무대가 변침하는 족족 태풍이 정확히 따라 변침 해버렸기 때문에, 바다에서 기름 떨어져 퍼지는 것만 간신히 면했지, 제대로된 급유는 죄다 좌절되었다.

피해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되자, 홀시 제독은 항해를 포기하고 철수 명령을 내리게 되었다. 이에 따라 함대가 뿔뿔이 흩어졌으나 1척의 호위구축함 Tabberer은 끔찍한 상황과 홀시 제독의 반복적인 철수 명령에도 불구하고, 51시간 동안 헐에서 41명, 스펜스에서 14명을 구조하고 철수했다.

함대 재편성후 여러 구축함과 항공기로 구조활동에 나선 결과, 크리스마스 이브까지 3척의 침몰선의 실종자 약 800명에서 93명이 구조되었고, 다른 배에서 파도에 휩쓸려간 실종자 중 2명이 구조되었다. 얼마나 끔찍한 태풍이었는지를 감안하면 95명이나마 구해낸 것도 기적이다.

2.1. 기록 사진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Oil_tanker_trying_to_move_into_refueling_position_during_Typhoon_Cobra.jpg

코브라 속에서 급유를 시도하기 위해 기동하는 급유함 낸터할라.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Unidentified_Allen_M_Sumner_class_destroyer_in_heavy_seas_during_Typhoon_Cobra.jpg

구축함 매독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USS_Santa_Fe_(CL-60)_during_Typhoon_Cobra,_December_1944.jpg

선체가 기울어진 경순양함 산타페.

파일:Q3fMNMi.jpg

심하게 기울어진 경항모 카우펜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USS_Langley_(CVL-27)_during_Typhoon_Cobra,_December_194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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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하게 기울어진 경항모 랭글리

파일:external/www.oocities.org/typhoondamage.jpg

1945년 6월 5일 오키나와를 덮친 태풍 코니(Connie)에 의해 갑판이 부러진 경항모 베닝턴

3. 여파

이 사건으로 윌리엄 홀시 제독은 울리히 제도에서 개최된 군사법원(Naval Court of Enquiry)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는데 "함대를 태풍 쪽으로 향하도록 한 판단의 잘못은 있었다"라는 결론이 내려졌으나 실제로 어떠한 처벌을 받지는 않았다.[12]

하지만 다음 해 1945년 6월에 최저기압 980hPa, 최대풍속 130km/h의 태풍 코니(Typhoon Connie)에 홀시 제독이 지휘하던 미 제3함대가 또 피해를 보았고 이번에는 함선 침몰이 없었지만, 다수의 함선이 손상을 입고 6명이 목숨을 잃고 항공기 76대가 손·망실되어 또 군사법원에 소환되어 이번에는 퇴역할 것을 법원에서 권고했지만, 체스터 니미츠 제독의 도움으로 퇴역하지 않고 종전까지 현역에 남아 있을 수 있었다. 모가지는 겨우 피했지만, 태평양 전쟁 발발 때부터 일선에서 일본군을 상대하며 전공을 세웠던 홀시 입장에서 퇴역 얘기가 오가는 건 치욕이나 다를 바 없었다.

전쟁이 끝난 1945년 10월에 최저기압 969hPa, 최대풍속 150km/h의 태풍 루이스(Typhoon Louise)가 버크너 베이 해군기지를 덮쳐 건물과 함선, 보트, 항공기 등이 손·망실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러한 피해 때문에 이후 미 해군은 종전으로부터 약 14년 후인 1959년 5월 1일에 합동태풍경보센터(Joint Typhoon Warning Center)를 설립하여 태풍에 대한 관측 능력을 높이게 되었다.

피해를 본 함선 중 인디펜던스급 경항모 몬터레이에는 훗날 미국 38대 대통령이 되는 제럴드 포드가 타고 있었다. 당시 포드 본인도 파도에 휩쓸려 갈 뻔하고 화재를 진압하는 등 꽤 고생했다. 몬터레이의 손상은 미국으로 돌아가서 수리해야만 했다.

4. 여담

코브라가 왔을 때 한반도는 매우 강한 1944-1945년 한파가 왔다.

이 태풍에 휩쓸렸던 함선 중 하나였던 구축함 USS 매독스는 훗날 베트남전의 개전을 알린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된다.

5. 관련문서

6. 외부 링크

Typhoons and Hurricanes: Pacific Typhoon, 18 December 1944
Typhoons and Hurricanes: Pacific Typhoon June 1945
Typhoons and Hurricanes: Pacific Typhoon at Okinawa, October 1945
wikipedia:Typhoon Cobra(1944)
wikipedia:Typhoon Connie(1945)
wikipedia:Joint Typhoon Warning Center
The Day a Typhoon Nearly Wiped Out the US Third Fleet
Two Typhoons Crippled Bull Halsey’s Task Force 38


[1] 미 해군이 태풍 코브라를 레이더로 촬영한 것으로, 태풍의 모습이 찍힌 최초의 사진이다.[2] 엄밀히 말하면 지역은 아니나 인명 및 재산피해가 독보적이었기에 이렇게 서술했다.[JTWC] [4] 태풍의 이동 경로와 38 임무대의 침로를 간략하게 표현한 그림. 이 그림에서는 38 임무대가 태풍을 완벽하게 따라다녔다는 것을 몰라서 태풍 경로가 크게 잘못되어 있는데, 훗날에 좀더 정확한 태풍의 이동 경로를 판단해 다시 만든 이동 경로와 비교해보면 38 임무대가 이동한 경로에 딱 맞춰서 태풍이 경로를 꺾은 것을 알 수 있다.[5] 무게 중심이 낮을 수록 배의 안정성이 좋아진다. 대신 너무 낮아져서 부력 중심보다 낮으면 가라 앉는 리스크가 있다. 또한, 무게가 무거워지면 연료 소모도 늘어난다.[6] 연료 탱크가 상대적으로 선박의 아래쪽, 그것도 중심에 위치하기 때문에 이걸 가득 채우는게 가장 안정적으로 무게 중심을 낮게 유지할 방법이었다.[7] 즉 급유를 용케 한다 쳐도 해수를 채웠던 탱크에는 못 넣으니까 급유하다 만 꼴이 될 위험이 있다.[8] 이 아주 정확한 판단이 아니었으면 제 아무리 이성적으로 생각하려는 미 해군이라 해도 "재수 옮 붙은" 홀시 제독을 좌천시키고 싶은 욕구를 피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9] 이 함급은 본래 배수량 1365톤, 만재 배수량 2064톤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 실상 거의 원래 무게의 절반과 맞먹는 무게가, 함선의 아래가 아닌 위에 덕지덕지 붙은 꼴이라 안정적이면 그게 더 이상한 상태인 것. 조약형 구축함이라 비정상적으로 배수량을 작게 해둔 것을 감안해도 정말 무리한 과무장을 추가한 것이다. 이 시기의 구축함들에겐 이런 과무장은 일상이긴 했지만...[10] 요컨데 아무리 홀쭉하게 만들어 봐야 한계가 있다.[11] 일례로 일본 해군 제 1항공전대 소속 정규항모인 카가는 전함으로 건조되던 중 항모로 바뀐 케이스인데, 진주만을 치러 1, 2, 5항전이 하와이로 항해할 당시 최신 항공모함이었던 쇼카쿠와 즈이카쿠는 큰 파도를 만난다 싶으면 거의 20도 가까이 흔들리는 데 반해 카가는 약 5도 정도의 미동에 그쳤다고 전해진다.[12] 국문으로 직역하기가 쉽지 않지만, 재판보다는 조사에 가깝다. 굳이 따지자면 사문회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