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lbgcolor=#003458><colcolor=#fff> 미합중국 제5대 서부방위사령관 헨리 콩거 프랫 Henry Conger Pratt KBE | |
| | |
| 출생 | 1882년 9월 2일 |
| 뉴멕시코 준주 포트 스탠튼 | |
| 사망 | 1966년 4월 6일 (향년 83세) |
| 워싱턴 D.C. | |
| 학력 | 미국 육군사관학교 |
| 복무 | 미국 육군 |
| 복무 기간 | 1904년 ~ 1946년 |
| 최종 계급 | 소장 |
| 참전 | 멕시코 혁명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
| 기념비 | 알링턴 국립묘지 |
1. 개요
미국의 군인.2. 생애
뉴멕시코 준주의 군사기지 포트 스탠튼에서 헨리 클리츠 프랫 대위의 아들로 태어났다. 190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기병 소위로 임관했다. 제4기병연대에서 경력을 시작해 1909년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의 부관을 지냈다. 이후 윌리엄 하딩 카터 소장의 부관을 지내고 1911년 중위로 진급했다. 제9기병연대에서 복무하다가 아서 머리의 부관을 지냈다.제1기병연대에서 복무하고 조지 벨 주니어의 부관을 지냈으며 1916년 베라크루스 원정대에 참가했다. 귀국 후 대위로 진급했다. 1917년 전시계급 소령으로 진급하고 육군통신단 항공반 조종사로 지원해 비행교육을 수료받고 조종 자격을 받았다. 1918년 2월 중령으로 진급하고 미국 원정군 소속이 되어 서부전선으로 건너갔다. 8월 말 대령으로 진급하고 뫼즈-아르곤 공세에 투입되었다.
1919년 귀국해 켈리 비행장 대장을 거쳐 육군 항공근무대장 찰스 T. 메노허의 부괸을 지냈고 지휘참모학교, 육군전쟁대학을 수료했다. 항공 근무대장실에서 복무했고 미첼 비행장 대장으로 복무할 당시 추격기 즉 전투기의 중요성을 깨닫고 여러 모의 비행과 무기 실험을 통해 자신의 이론을 입증하려했다.
1929년 하와이 항공대장으로 임명되었고 1930년 육군 항공 부단장으로 취임했으며 준장으로 진급했다. 임기 종료 후 제2비행단장이 되었고 P-26으로 폭격기들과 모의전을 진행해 4분만에 폭격기 18대를 격추시켰다.
1935년 항공단장 벤저민 폴루이이가 퇴역하자 차기 항공단장 후보에 올랐으나 전쟁장관 조지 던이 항공단 출신은 육군에 비협조적일 수도 있다고 말해 반대하며 상대적으로 항공 경력이 오래되지 않은 오스카 웨스토버가 차기 항공단장이 되었다.
1937년 항공전술학교장을 지냈으며 1939년 이후 필리핀사단장을 시작으로 지상군 참모, 지휘관을 주로 지냈다. 1940년 제2군단장을 지내다가 1941년 전시계급 소장으로 진급해 제3군단장이 되었다. 전쟁이 발발하고 프랭크 맥스웰 앤드루스의 후임으로 캐러비안방어사령관에 임명되었고 1944년 남부방위사령관, 그 해 10월 서부방위사령관을 지냈고 종전까지 지냈다.
임기 종료 후 1946년 제대했으며 1966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