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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colbgcolor=#000> 악셀 호네트 Axel Honneth | |
출생 | 1949년 7월 18일 ([age(1949-07-18)]세) |
서독 에센 | |
국적 | [[독일| ]][[틀:국기| ]][[틀:국기| ]] |
모교 | 본 대학교 보훔 루르 대학교 베를린 자유대학교 (철학 / 박사) (1983년) 프랑크푸르트 괴테 대학교 (Dr. habil.) (1990년) |
지도교수 | 위르겐 하버마스 |
경력 | 베를린 자유대학교 교수 프랑크푸르트 괴테 대학교 교수 컬럼비아 대학교 교수 |
직업 | 철학자 |
[clearfix]
1. 개요
독일의 철학자. 3세대 프랑크푸르트 학파 철학자로, 개인에 대한 사회의 인정 부재가 개인의 자아실현을 막고, 이러한 개인의 자아실현 좌절은 사회 갈등을 유발시킨다는 '인정 투쟁 이론'을 세상에 내놓았다. 호네트는 이러한 '인정투쟁' 개념이 푸코의 '투쟁'과 하버마스의 '의사소통'을 종합하는 개념이라고 주장한다.[1]2. 생애
1949년 독일 에센에서 태어나 라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본 대학교, 보훔 대학교, 베를린 자유대학교 등에서 철학, 사회학, 독문학을 공부했다. 콘스탄츠 대학교, 베를린 자유대를 거쳐 1996년 하버마스로부터 프랑크푸르트대 철학교수직을 물려받았다. 프랑크푸르트 학파 1세대인 아도르노, 2세대인 하버마스의 뒤를 잇는 3세대 프랑크푸르트 학파 철학자로 평가받는다. 2001년부터 2018년까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산실인 사회연구소 소장직을 맡았다.3. 사상
3.1. 미드의 자아실현
호네트는 현대 사회에서의 사회 갈등은 개인의 자아실현 좌절에 달려 있으며, 이러한 개인의 자아실현의 여부는 '사회의 인정'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호네트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우선 미드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여 개인의 자아 실현 과정을 설명한다.미드에 따르면 개인의 자아란 '주격 나( I )'와 '목적격 나(me)'의 화해를 통해서 형성되는데, 여기서 '목적격 나'는 '그가 속한 사회구성원들이 정의하는 나'를 말하고, '주격 나'는 '이렇게 일반화된 타인의 시각(즉, 목적격 나)에 반발하는 또 다른 나'를 말한다. 예를 들면, 학교 친구들이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규정할 때, 내가 이것을 받아들인다면 '주격 나'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친구들의 규정에 반발하여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면, 그 때야 '주격 나'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즉, 사회는 나에 대한 '기대'나 '편견'을 수많은 상황을 통해 규정지으려고 한다. 이럴 때 '주격 나'는 그러한 타인의 편견에 대항하여 각양각색으로 반발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미드는 이러한 '주격 나'와 '목적격 나'가 서로 화해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개인의 진정한 자아상이 형성된다고 본다. 타인의 편견에 대해서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면 나는 그러한 '자아'를 형성하는 것이 된다. 반대로 내가 타인의 편견에 반발한다면 나는 '목적격 나'에게 새로운 자아상을 제시할 수 있고 '목적격 나'가 이를 받아들이면 개인은 자아를 형성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타인(사회)이 나를 '게임 잘하는 또라이'라고 규정한다면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면 그것이 내 자아가 되는 것이고, 내(주격 나)가 마음에 안들어서 '그래도 또라이는 아니지 않냐? 또라이는 빼자'라고 나의 내면(타인을 의식하는 '목적격 나'에 해당)에게 말한다면 나의 내면과의 합의를 통해 나는 '또라이'는 빼고 '게임 잘하는'이라는 정체성만 나의 자아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사회는 계속해서 나를 '게임 잘하는 또라이'라고 인식하면 어떻게 될까? 그때는 사회의 기대에 맞춰 '주격 나'의 요구를 희생함으로써 사회와의 갈등을 피한다.(남들이 그렇게 말하는 게 마음에 안들어도 일일이 싸우기 귀찮아서 그냥 '게임 잘하는 또라이'라고 인정하며 사는 것.) 하지만 '주격 나'의 요구를 희생하지 않는 방법도 있다. 그것은 사회에 대해 저항하는 것이다.(남들이 '게임 잘하는 또라이'라고 말하면 그에 대해 반발하는 것.)
3.2. 상호 인정 관계
악셀 호네트는 개인의 자아 형성에 대한 미드의 입장을 받아들이면서도 한 단계 더 나아가, '사회적 인정'의 전제에 대해서 고찰한다. 호네트에 의하면 개인의 '주격 나'가 '목적격 나'에 반응하여 자아를 형성하는 데는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 주체들, 즉 개인과 타인의 '상호 인정'이 전제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개인은 상호 인정 관계에서 자아를 형성할 수 있고, 상호 인정 관계에서 자아를 형성한 개인은 사회적 지지를 획득함으로써 자기 자신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긍정적 자기의식을 형성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상호 인정 관계에서 개인이 사회적 '무시'를 경험하면, 해당 개인은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자기의식이 파괴 된다.호네트는 상호 인정 관계와 이에 따른 긍정적인 자기 의식을 세 가지로 유형화 한다.
첫 번째는 원초적 관계(친밀성 영역)로, 개인이 타인으로부터 사랑이나 우정과 같은 배려를 받음으로써 정서적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상호 인정 관계이다. 이러한 정서적 만족감은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자아상인 '자신감'을 형성한다. 하지만, 개인이 타인으로부터 학대나 폭행과 같은 '무시'를 경험하면 자신감은 파괴된다.
두 번째는 권리 관계(법 영역)로, 개인이 타인으로 부터 옳고 그름의 문제들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이성적인 인격체로서 법적 권리를 존중받는 상호 인정 관계이다. 권리 관계에서 법적 권리를 부여받은 개인은, 사회로부터 타인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 주체로서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고 인지하는 '자기존중감'을 형성한다. 하지만 동등한 법적 권리를 사회로부터 '무시'당하고 보장받지 못하면 자기 존중감은 파괴된다.
세 번째는 가치 공동체 관계(생산 영역)로, 개인이 어떤 가치나 목적을 공유한 공동체 구성원들로부터 자신의 개성이나 능력을 인정받는 상호 인정 관계이다. 개인은 자신이 공동체의 구성원들로부터 가치 있는 존재로 인정받았을 때 사회적 연대를 경험하며, 이를 통해 해당 개인은 자신이 공동체에 기여하고 있다는 긍지인 '자부심'을 형성한다. 하지만 개인이 자신의 능력과 개성에 대해 공동체 구성원으로부터 부정되는 '무시'를 경험한다면 자부심은 파괴 된다.
3.3. 인정투쟁
호네트는 세 가지 상호 인정 관계에서, 개인이 정서적 욕구를 충족하거나 법적 권리를 존중받거나 구성원으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았을 때, 성공적인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이러한 상호 인정 관계에서 '무시'에 의해 개인의 긍정적인 자기의식이 파괴된다면 개인은 자아실현의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개인은 이를 회복하기 위해 사회에 형성되어 있는 '인정질서'에 저항하게 되는데, 여기서 인정질서란 개인의 자아를 인정대상으로 허용할지에 대한 사회적 판단 기준이나 원칙이다. 호네트는 개인이 새로운 자아상을 기존 인정질서에 주장하면 개인은 기존 인정질서와 대립할 수 밖에 없고, 개인의 저항은 기존 인정질서에서 배제된 사람들과의 사회적 연대를 통한 저항으로 확대된다.
그는 이러한 모든 저항을 '인정투쟁'이라고 명명한다. 특히 그는 권리 관계나 가치 공동체 관계에서 발생하는 인정투쟁은,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개인의 권리나 가치의 범위를 확장하여 새로운 인정질서를 형성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호네트는 인정투쟁이 현대 사회를 건강한 사회로 회복시키는 정당한 투쟁이라고 주장한다.
3.3.1. 분배냐, 인정이냐?
호네트와 낸시 프레이저는, 현대사회는 다양한 문화와 인종이 부딪치는 데도 불구하고, 사회가 공평한 '사회적 인정'을 구성원들에게 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갈등이 봉합되지 않는 것이라고 현사회의 문제점을 진단한다.[2]다만 이들은 여성 노동자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경제적 차별이나 문화적 무시의 기원과 그 해결책에 관련해서는 그 의견을 달리한다. 프레이저는 여성 노동에 대한 자본주의적 차별(여성 노동의 저임금)과 가부장적 문화로 의한 문화적 차별(여성에 대한 사회의 낮은 평가; 인정 문제)에 의해 이중적인 불평등을 겪는다고 보았다. 또한 가부장적 문화의 문제(인정)는 자본주의적 차별의 문제(분배)보다 훨씬 먼저 존재했으며, 프레이저는 이러한 문화적 문제(인정)는 자본주의적 문제(분배)와는 별개의 문제라고 진단하면서, 둘의 문제를 따로따로 해결해야 된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호네트는 분배 문제는 인정 문제와 분리해서 생각하면 안된다고 반박한다. 분배 문제란, 상호 인정 관계의 '생산 영역(가치 공동체 관계)'에서, 능력에 따라 돈을 분배받는 사회적 인정에 해당하는 것으로, '분배 문제'는 '인정 문제'에 속한다는 것이다. 즉, 프레이저에게 여성 차별의 해결은 '여성 노동의 저임금 문제'(분배문제)도 바꾸어야 되고, '가부장적 문화'(인정문제)도 바꾸어야 되는 것[3]이지만, 호네트에게서는 인정투쟁으로 사회적 인정질서의 변혁[4]을 이끌어냄으로써 '여성 노동의 저임금 문제'(인정문제)[5]와 '가부장적 문화'(인정문제)를 동시에 해소할 수 있다는 관점이다. 즉 호네트의 관점은 일종의 '인정 일원론'[6]이다.[7]
4. 여담
- 호네트에 따르면, 자신의 '인정투쟁' 이념은 푸코와 하버마스를 연결하고 있는 개념이다. 푸코는 자기 보존(권력)을 위한 투쟁을 주장했지만 소통에 대한 논의는 소홀했고, 하버마스는 의사소통모델이 있지만 갈등 이론과 충분히 결합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호네트의 주장. 따라서 호네트는 자신의 '인정 투쟁 개념은 푸코의 이론적 성과를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이론 속에 통합시키는 개념 장치'라고 말한다.[8] 즉, '인정 투쟁'의 개념에는 소통과 투쟁이 동시에 들어가 있다는 얘기다.
- 비판 이론 1세대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사상은 '전체주의의 역설'이고, 2세대 하버마스의 사상은 '민주적 법치 국가의 역설'이며, 3세대 호네트의 사상은 '신자유주의적 혁명이 담고 있는 역설'이라고, 호네트는 말했다.
- 호네트는 문성훈 교수와의 대담에서 '사회가 개인을 동일화(균일화)하는 것에 대한 저항으로, 인정 투쟁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9] 개인의 사회에 대한 '동일화에 대한 저항'은 파시즘적 생각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전통이기도 하다. 아도르노의 부정변증법 사고체계가 대표적인 예이다.
[1] 즉, 호네트에게 있어서 '인정투쟁'은 두가지로 나뉘는데, '인정'과 '인정투쟁'이다. 전자는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개념을 확장시킨 것이고, 후자는 푸코의 투쟁 개념을 보충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2] 호네트와 낸시 프레이저의 공저 《분배냐, 인정이냐?》에서..[3] 일종의 분배-인정 이원론[4] 이는 구체적 권리 획득을 통한 제도적 인정을 의미한다.[5] 호네트는 이렇게 분배문제도 인정문제로 접근하는 점에서 낸시 프레이저와 차이를 보인다.[6] 다만, 사회적 인정질서라는 규범적 한계 내에서 파생적 현상들의 상대적 자립성은 인정한다.[7] 링크 참고[8]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테제들 p.274 / 악셀 호네트와의 대담 중에서..[9]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테제들 p.2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