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9-19 01:25:45

손차박

차박손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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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
2.1. 김민재
3. 누가 최고인가?4. 박지성 vs 손흥민5. 손차박 다음은?6. 언사

1. 개요


파일:손차박.jpg

대한민국 축구에서 역대 최고로 평가받는 축구 선수손흥민-차범근-박지성을 일컫는 말이다. 시대는 차범근-박지성-손흥민의 순이기에 차박손으로도 많이 불리지만, 어감의 이유로 손차박이라고 불린다.[1]

2. 상세

손흥민, 차범근, 박지성 세 선수 모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FIFA 센추리 클럽[2]에 가입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각 소속팀의 레전드로 평가받는다. 또한 당시 비유럽인이라 후보에 들 수 없었던 차범근을 제외하면 박지성, 손흥민 모두 발롱도르 후보에 들었던 경력이 있다.

차범근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바이어 04 레버쿠젠에게 UEFA컵[3] 우승을 안겼으며, 당시 전 세계에서 최고의 세컨드 스트라이커 중 하나로 평가 받았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과 분데스리가[4]의 명실상부한 레전드 선수이다. 현역 은퇴 후에도 수십 년간 한독 관계발전을 위해 애쓴 공로를 기리는 의미로 독일 정부로부터 십자공로훈장을 받았다. 국가대표로 136경기에 출전해 대한민국 선수 중 A매치 최다 골 기록인 58골을 넣었으며, 세계 최연소 센추리 클럽 가입 기록을 가지고 있다. (24년 139일) 또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32년만에 본선 진출한 1986 FIFA 멕시코 월드컵에 참가하였다.[5][6][7]

박지성은 지치지 않는 체력과 투지로 '3개의 폐', '두 개의 심장' 등의 별명을 가졌으며, 21세기 국내에서의 월드컵과 해외축구 붐을 일으킨 선수이다[8]. UEFA 챔피언스 리그, 프리미어 리그 등 통산 17개 트로피를 들어올렸고,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월드컵 4강, 원정 첫 16강 성과를 이룩하는 등, 거쳐갔던 모든 소속팀[9]들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최전성기를 이끈 선수다. 당연히 전성기를 함께 한 소속팀들에서도 모두 레전드라 평가받는다.

손흥민은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 유럽 무대 200골, 프리미어 리그 아시아 선수 역대 최다골, UEFA 챔피언스 리그 아시아 선수 역대 최다골, 발롱도르 후보 11위[10] 등 아시아의 축구 관련 기록을 대부분 경신했다. 소속팀에서도 토트넘 홋스퍼 FC 역대 최다 어시스트 기록을 갱신[11]했으며, 2025년 기준 손차박 중 유일한 현역 선수이다. 소속팀이었던 토트넘 홋스퍼 FC의 레전드로 평가받으며, 한국 축구를 넘어 현 세대 아시아 축구를 상징하는 선수이다.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을 원정 16강으로 이끌고, 2015 AFC 호주 아시안컵 준우승에도 기여하였다. 원래 나머지 두 선수들에 비해 무관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이 평가의 발목을 잡았으나, 2024/25 유로파리그를 우승하는데 성공하면서 오랜 설움을 풀게 되었다.

2.1. 김민재

김민재SSC 나폴리에게 33년 만의 세리에 A 우승을 안겼으며, 세리에 A 최우수 수비수, 발롱도르 후보 22위[12] 등 아시아 역사상 전례없는 활약을 펼친 센터백이다. 현재는 FC 바이에른 뮌헨에서 주전 센터백으로 활약 중이며, 대한민국에서 해외 리그에 진출한 선수들 클럽 네임벨류로는 역대 최고 중 하나를 논할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13]

여러 매체에서 자주 다루는 역대 아시아 최고의 축구선수에는 아직 손차박처럼 상위권에 올라간 경험이 없지만 우승 후보도 아니었던 팀에서 압도적인 활약으로 리그 우승의 주역이었고, 현재는 FC 바이에른 뮌헨에서 핵심으로 활약하면서 리그 우승에 성공했다.

다만, FC 바이에른 뮌헨 이적 이후에는 기대에 비해 아쉬운 모습이라는 평가도 공존하고 있다. FC 바이에른 뮌헨2024-25 분데스리가에서 최소 실점[14]을 기록한만큼 준수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지만, FC 바이에른 뮌헨이라는 메가클럽의 주전 수비수의 기준에는 완전히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이에른 뮌헨은 매 시즌 트레블을 노리는 팀으로, 분데스리가뿐만 아니라 DFB-포칼UEFA 챔피언스 리그 등 토너먼트 경기에서도 꾸준하고 완성도 높은 퍼포먼스를 요구한다.

김민재는 특유의 적극적이고 리스크를 감수하는 수비 스타일로 인해 결정적인 실점 장면에 관여하는 경우도 있었으며[15], 이러한 점이 구단, 현지 언론, 그리고 팬들의 믿음을 얻지 못 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16][17][18] 플레이 스타일과 전술, 부상을 비롯한 컨디션 난조 등의 이유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경기에 출전을 한 만큼 패배에 대한 책임은 따른다. 무엇보다 이러한 흔들리는 모습을 가장 큰 무대에서 보여주었기에 바이에른 뮌헨의 입장에서는 일종의 계륵과 같은 선수가 되버린 셈이다.

그러나 한국 선수로 보자면 여전히 역사에 남을 만한 활약을 보여준 수비수임은 분명하다. 유럽 4대 리그 중 두 리그[19]에서 우승 트로피를 핵심 선수로 들어올린 유일한 한국 선수이며, 특히 나폴리에서는 우승 후보가 아니었던 팀을 정상으로 이끈 중심축이었다.[20] 또한, 2024-25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파리 생제르맹 FC를 상대로 MOM(Man of the Match)으로 선정될 만큼 하이레벨 경기에서도 존재감을 입증한 바 있다.[21]

김민재는 아직 커리어 전성기에 있으며, 추후 바이에른 뮌헨 또는 타클럽 이적 이후의 퍼포먼스에 따라 평가가 더 높아질 가능성도 충분하다. 박지성, 손흥민 등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선수들도 커리어 내 부진한 시기를 겪은 적이 있었던 만큼[22], 단기간의 기복만으로 선수 전체를 평가하기는 이르다고 볼 수 있다.

3. 누가 최고인가?


손흥민, 차범근, 박지성 이 세 선수는 모두 다른 시대에 뛰었고, 플레이스타일이 달랐으며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임팩트와 퍼포먼스를 남긴 선수들이다. 국내의 축구팬 사이에서는 "이 셋 중에 누가 가장 뛰어난 선수인가?" 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으며, 해외축구 갤러리와 같은 극단적인 의견이 오고 가는 커뮤니티에서는 서로 세력을 이루어 한심한 전쟁을 벌이기까지 한다.

현역 K리그 축구선수 85명의 손차박 투표 결과, 박지성이 45표로 1위, 차범근이 21표로 2위, 손흥민이 19표로 3위를 차지했다.

2021년 3월 90min은 아시아 역대 최고의 선수로 차범근선정했으며, 파울리노 알칸타라[23], 손흥민, 박지성이 그 뒤를 이었다.

2024년 2월 포포투는 아시아 역대 최고의 선수로 손흥민선정했으며, 차범근, 혼다 게이스케, 박지성이 그 뒤를 이었다.

2024년 3월 기브미스포츠는 아시아 역대 최고의 프리미어리거로 박지성선정하였으며, 2위로 손흥민을 선정하였다.

2024년 4월 기브미스포츠는 아시아 역대 최고의 선수로 손흥민선정했으며, 차범근, 파울리노 알칸타라[24], 박지성이 그 뒤를 이었다.

2024년 12월 19일 매드풋볼이 SNS를 통해 대한민국 축구 레전드인 박지성손흥민의 경기수, 공격포인트, 트로피를 비교하며 두 선수 중 누가 더 나은가?로 설문조사를 진행했고, 표수가 46 대 54로 팽팽하게 갈렸다.[25]

차범근은 개인 기록과 팀 커리어에서 균형 잡힌 성과[26]를 거두었으며, 그의 실력 또한 상당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1970~80년대를 포함한 그 이전의 축구 기록과 영상이 부족하여 직접적인 비교가 쉽지 않다. 또한, 스포츠 선수로서 해서는 안 될 경솔한 정치적 발언 역시 문제가 되고 있으며,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차범근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조차 피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따라서 인터넷 커뮤니티와 언론에서 말하는 손-차-박 중 누가 최고인가?에 대한 논쟁은 대부분 손흥민과 박지성, 이른바 손박대전이 주가 된다.

4. 박지성 vs 손흥민

자세한 내용은 박지성 vs 손흥민 참조

5. 손차박 다음은?

손흥민이 2025년 로스앤젤레스 FC로 이적하며 ‘손흥민의 시대’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후 ‘손차박’을 계승할 유력한 후보로는 김민재, 이강인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앞으로 한동안 대한민국에서 손흥민처럼 아시아는 물론 세계 무대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가진 선수가 확실히 자리 잡지 못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과거를 돌아보면, 이러한 공백기가 종종 있었다. 1970~80년대에는 허정무, 오쿠데라 야스히코 등이 경쟁에 참여한 가운데, 아시아 축구의 왕좌는 차범근이 차지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에는 어느 국가에서도 한 세대를 대표할 만한 압도적인 슈퍼스타가 등장하지 않았으며, 1990년대 후반 알리 다에이가 분투하는 정도에서 그쳤다.
2000년대에서 2010년대로 이어지는 시기에도 비슷한 양상이 이어졌다. 이영표, 자바드 네쿠남, 나카타 히데토시, 쑨지하이 등이 2000년대 최고의 선수로 경쟁하는 가운데, 박지성이 아시아 최고의 선수로 떠올랐다. 이후 2010년대 초반, 카가와 신지, 나가토모 유토, 혼다 케이스케 등 일본 선수들의 약진이 두드러졌으나, 모두가 한 목소리로 인정하는 최고의 자리에는 그 누구도 오르지 못하며, 박지성손흥민 사이의 끼인 세대가 되고 말았다.
이처럼 과거에도 뚜렷하게 한 세대를 대표하는 "아시아의 왕"이라고 부를만한 슈퍼스타가 부재했던 시기가 간헐적으로 존재했다. 현재 ‘손차박’ 이후에도 대한민국에서 손흥민처럼 세계 무대에서 빛나는 스타가 한 명 또는 다수 등장하며 손차박의 계보를 명확히 이어갈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현재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선수로는 김민재[27], 이강인, 압두코디르 후사노프[28], 쿠보 타케후사, 미토마 카오루 등이다.

6. 언사

박지성은 대한민국 축구사의 정점에 서 있는 존재, 과하게 칭찬해도 부족하지않고 한국인이 자랑스러워 해야 할 역사의 중심에 서 있는 선수라고 생각한다.[29]
차범근 출처
내가 100골을 넣든, 200골, 300골을 넣든, (박)지성이 형과 차범근 감독님이 이뤄낸 업적을 넘는 건 불가능하다.[30][31][32]
지성이 형은 우리나라의 영웅이에요.[33][34]
어렸을 때부터 박지성의 플레이를 TV에서 봤다. 박지성은 나의 영웅이었다. 물론 박지성은 나와 포지션이 달라 내가 더 많은 골을 넣을 수 있다. 그렇다고 내가 박지성을 따라잡은 건 아니다.[35]
박지성과 같이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일이었다. 한국에서 그의 명성은 엄청나다. 하지만 나는 그 정도로 이름을 알렸다고 생각하지않는다. 아직 박지성이 이뤄낸 것들을 따라가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길을 터준 선수고, 나는 그의 뒤를 따라가고 있다. 비교적 쉬운길이고 그와 비슷한 길을 걷고있다. 박지성 같은 선수가 되려고 열심히 노력 중이다. 그와 같이 이름이 거론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영광이다. 아주 영광스럽다. 자신을 발전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36]
손흥민
지금은, 제가 부끄럽죠. 지금의 흥민이 정도면 비교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닌데? 워낙 프리미어리그에서 영향력이 커졌고 또 그만큼 본인이 갖고 있는 기량이 너무나 뛰어나기 때문에 지금 상황에서는 비교 불가일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37]
제가 예전에는 차 감독님이 1위라고 얘기했었고 2위가 손흥민 선수라고 얘기했었는데 지금은 손흥민 선수는 아직 현역이기 때문에 지금은 동등한 수준에 올라왔다고 생각을 하고요. 이제 결국 남은 기간 어떻게 활약하냐에 따라서 아마 1위의 자리에 올라가지 않을까, 단독 1위가 되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38]
나는 손흥민이 무척 자랑스럽다. 그는 스스로를 증명했다. 푸스카스상을 수상한 번리전 골을 경기장에서 직접 봤는데 믿을 수 없는 골이었다. EPL 득점왕은 월드클래스 선수에게만 허락되기에 손흥민 이전엔 꿈꾸기도 힘들었는데 그가 결국 이뤄냈다. 그 성과는 나뿐만 아니라 모든 아시아 팬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는 일이다. 정말 위대한 성취이자, 우리 역사에 있어 전대 미문의 성취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그가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강한 선수라고 생각한다. 그의 여정은 다른 한국 선수들과 비교해도 조금 다른 면이 있다. 쉬운 것도 아니었고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어두운 시기에도 침착하게 자신이 해야할 일들에 초점을 맞췄다. 그 점이 그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 그는 스스로 성취한 것들을 받을 자격이 있다. 정말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손흥민이 어릴 때 함께하며 그의 개성, 능력, 잠재력, 퀄리티를 알고 있었다. 그의 전체 커리어를 보면 유럽에서 얼마나 높은 레벨에 다다를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그 레벨'이라고 함은 대중들이 유럽이나 남미 선수들에게 기대하는 레벨이었고, 그런 선수들만 언급되는 상황에서 그는 아시아 선수도 월드클래스로 활약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는 한국의 아이콘이자 아시아의 아이콘이 됐다. 아시아 전체에 걸친 팬들이 그를 사랑한다. 나 역시 행복하고 우리는 그저 손흥민이 세계 최고 레벨에서 활약하는 것을 즐기면 된다. 그가 득점하는 것을 보는 것은 내 기쁨이며 은퇴하는 순간까지 계속 득점했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람이다. 또 모든 아시아 선수들이 그를 바라보고 그를 따라잡기 위해, 혹은 그를 넘어서기 위해 노력하며 역사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39]
박지성
여기 이 선수는 제 기록을 모조리 바꿔 치우고 있고요.
아유, 저야 좋죠. 40년이 지난 얘기를 지금 끄집어가지고 나를 떠올려주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역시 후배들을 잘 둬야 돼요. (중략) 같이 비교는 불가해요, 손흥민 선수하고는. 우리 집사람이 늘 얘기하지만 박지성 선수하고 차범근이 둘이 합해도 손흥민이 반도 못 따라간다고 얘기하거든요. 전 맞다고 생각해요. 손흥민 선수가 지금 이루고 있는 업적은 우리 둘이 못 따라가잖아요. 최고예요.[40]
차범근

[1] 일각에서는 서열 순서 라는 주장을 하기도 하는 등, 유래가 분명하진 않다. 때문에 박차손, 차박손, 차손박, 손박차 등 사람들마다 다양하게 불리기도 한다.[2] 국가대표로서 A매치에 100경기 이상 참가한 선수 명단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약 10년 이상 해당 포지션에서 국가대표팀의 대체 불가능한 자원이여야만 달성 가능하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 역대 최고 선수를 논하기 위한 최소 조건으로 평가 받는다.[3] 현재의 UEFA 유로파리그가 UEFA컵을 역사적으로 계승하지만, 당시 UEFA컵의 참가자격은 우승팀 빼고 전부 모이는 챔피언스리그였다. 당시의 UEFA컵의 권위는 지금의 UEFA 챔피언스 리그가 갖는 권위보다 살짝 낮은 수준으로, 현재의 리그 중상위권 팀들이 모이는 유로파 리그의 권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4] 1970-80년대 분데스리가는 바이에른 뮌헨, 함부르크SV,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 3강 구도로 유럽에서 가장 강한 리그였다. 당시 유러피언컵 3연패의 바이에른 뮌헨이나, UEFA컵 우승했던 레버쿠젠조차 해당 시즌 분데스리가 중위권에 위치할 정도로 리그 내부 경쟁력이 매우 높았다.[5] 단, 월드컵 예선은 거리 문제로 인해서 참가하지 못하였고, 이 때문에 본선 출전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6] 차범근이 출전하였던 1986 멕시코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전(https://www.youtube.com/watch?v=GDa7PN3wIlE)은 경기 영상도 남아 있다. 허정무디에고 마라도나에게 태권킥을 날렸던 것이 바로 이 경기다. 차범근, 허정무, 조광래, 박경훈, 김주성, 최순호 등이 참가한 대회였고, 2010 FIFA 남아공 월드컵과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만큼이나 황금세대라는 평가를 받는다.[7] 차범근이 이른 나이에 A매치 100경기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현재처럼 FIFA가 전세계 A매치를 관리하던 시기가 아니라서 리그 일정을 무시하고 친선 경기를 20회 이상 잡는 등 기록 뻥튀기 현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메르데카컵이나 박스컵 등 당시 아시아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생긴 것이 대부분이다. 이는 유럽이나 남미도 비슷해서 70년대 이전의 국가대표 경기 기록에서 비상식적인 것들이 다수 발견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8] 박지성이 일으킨 해외축구 붐으로 인해 '해외축구 + 아버지'라는 뜻의 '해버지'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9] 교토 퍼플 상가, PSV 에인트호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10] 아시아 역대 최고 순위[11] 2024년 12월 기준, EPL 통산 어시스트 17위[12] 수비수 중 1위[13] 바이에른 뮌헨의 네임밸류에 견줄 만한 클럽은 박지성이 활약했던 알렉스 퍼거슨 시절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뿐이다. 다만, 2012/13 시즌과 2019/20 시즌 두 차례에 걸쳐 유러피언 트레블을 달성하며 2010년대를 지배했던 FC 바이에른 뮌헨도, 2020년대에 들어서는 매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언저리에서 연이어 고배를 마시며 아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FC 바르셀로나, AC 밀란, 첼시 FC 등과 함께 세계 최강의 자리를 다퉜던 2000대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 비해서, 2020년대의 FC 바이에른 뮌헨은 상대적으로 무게감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존재한다.[14] 파일:2024-25 Bayern.png[15] 다만, 실점에 대한 책임은 포지션이 수비수인 만큼 어쩔수 없기도 하다.[16] FC 바이에른 뮌헨은 전통적으로 극단적인 하이라인 전술과 점유율, 측면 지향형 축구를 구사하기 때문에 뒷공간 부담이 크고, 수비수들의 부담 또한 상당하다. 이로 인해서, 경기가 잘 풀릴 때는 아스널 FC, FC 바르셀로나 등 유수의 빅클럽들을 상대로도 4점차 이상의 대승을 거두지만, 반대로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세트피스나 빠른 뒷공간 역습에 일명 ‘딸깍’ 당하며 0:1 또는 0:2로 무기력한 패배를 하기도 한다. 다만, 시즌 약 50경기 중 패배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한 번 패할 때마다 실점에 관여한 수비수나 무득점에 그친 공격수는 팬들과 언론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맞는다.[17] 유럽 무대에 여전히 존재하는 아시아인 선수에 대한 편견이나 인종적 요소도 감안해야 한다. 특히, 빌트지와 같은 일부 현지 언론들은 악의성이 의심될 정도로 김민재에게 지속적으로 낮은 평점을 부여했다.[18] FC 바이에른 뮌헨은 독일인들의 자존심과 같은 클럽이다. 이 때문에 FC 바이에른 뮌헨의 유럽대항전은 국가대항전 성격 또한 띄고 있음을 감안해야한다. 즉, 챔피언스리그에서 프리미어 리그 빅6, 레알 마드리드 CF, FC 바르셀로나, 세리에A 3강 등을 만나는 것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아시안컵에서 일본, 이란 등과 같은 숙적을 만나는 것과 같다. 이를 감안했을 때, 현지 팬과 구단은 이러한 단두대 매치에서 김민재의 들쭉날쭉한 고점과 저점이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19] 세리에A, 분데스리가[20] 이때의 퍼포먼스가 매우 뛰어나 세리에 A 최우수 수비수상, 세리에 A 올해의 팀, 발롱도르 후보 22위(수비수 중 1위) 등 개인 수상도 휩쓸었다.[21] 박지성이나 손흥민이 아시아의 공격수도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MOM급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면, 김민재는 전혀 다른 포지션인 아시아 수비수도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MOM급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22] 박지성은 PSV 입단 첫 해와 QPR 시절에 부진했으며, 손흥민 역시 토트넘 입단 첫 시즌(2015-16), 득점왕 다음 시즌(2022-23), 2024-25 시즌 등에서 경기력 기복으로 비판을 받은 바 있다.[23] 스페인 이중 국적[24] 스페인 이중 국적[25] 기사가 나온 시점에선 정확히 반으로 갈렸다.[26] UEFA컵 우승 2회, 키커 올해의 팀 2회 등[27] 단, 앞에서 김민재가 따로 문단으로 올라와있듯, 이미 2023년을 기점으로 김민재를 동급의 위상으로 보거나, 김민재의 시대를 예상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SSC 나폴리에서의 활약 이후 2025년 까지, 수비수임에도 아시아 몸값 1위를 유지하는 동시에 유럽에서 크게 성공한 최초의 아시아 센터백이라는 상징성 때문이다. 그러나 수비수라는 포지션의 한계로 인해 스타성이 조금 아쉽고, 유럽에서 활약한 시기가 손흥민의 커리어 정점 시기인 득점왕 시즌과 UEFA 유로파 리그 우승 시즌 사이에 계속 겹쳐있었기 때문에 주목을 덜 받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활약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가장 높은 확률로 손차박 라인에 올라설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28] 맨체스터 시티 FC압두코디르 후사노프 역시 주목받고 있다. 어린 나이임에도 프리미어리그에서 매우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어, 대한민국과 일본이 사실상 양분하다싶이 했던 유럽 5대리그의 아시안 슈퍼스타의 자리를 새로운 국가의 선수가 가져갈 가능성도 배제할수는 없다.[29] 2021.02.14[30] 손차박 질문에 대한 답변[31] 출처[32] 대화의 희열에서 이를 들은 차범근은 박지성에게 흥민이가 사회생활 잘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33] 박지성과 손흥민을 데려다 두고 각종 분야에서 누가 더 뛰어나냐고 묻는 질문 중 '누가 한국에서 더 유명한가?' 라는 질문에 대한 손흥민의 대답 중 일부이다.[34] 출처[35] 출처[36] 출처[37] 2019년 12월 19일, 팬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회자되었던 손박 논쟁에 대한 기자의 물음에 대한 답변. 반면 손흥민은 박지성에 대해 포지션이 다르기 때문에 본인이 골을 많이 넣었을 뿐, 본인이 박지성을 넘어선 것은 아니라는 답변을 내놓았다.[38] 2022년 9월 18일 뭉쳐야 찬다 2 방송분[39] 손흥민의 리그 100호골 특집 인터뷰에서.[40] 대화의 희열에 출연하여 손차박 대전에서 손흥민을 1위로 꼽으며 한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