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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환/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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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환의 선수 경력
통합 선수 경력: 오승환/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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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013년 2017년 2021년

1. 개요

삼성 라이온즈 소속 우완 투수 오승환의 선수 경력을 모아 놓은 문서.

2. 아마추어 경력

도신초등학교 5학년 11월. 다소 늦은 시기에 야구에 입문했다. 원래 다니던 학교에는 야구부가 없었다. 마침 담임선생님이 야구부가 있는 학교에서 전근을 와 학교에서 체력장 테스트를 할때 운동신경을 보고 야구를 권유했다. 체력장 테스트때 고무공을 던지는 종목에서 전교에서 가장 멀리 던지는 모습을 유심히 보고 권유를 했다고 한다. 이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운동 선수의 길을 걷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훗날 말했다.

늦게 야구에 입문했지만 어릴 때 테니스 공으로 친구들과 야구를 할 때 주로 투수를 하고 방망이도 꽤나 잘치는 등 야구에 흥미와 재능을 갖고 있었고 곧 두각을 나타내 우신중학교 시절 138km, 한서고등학교 1학년 때 145km/h에 육박하는 공을 던져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스카우트의 눈길을 사로잡기도 하였다. 프로 전,두각
파일:external/www.sisaweek.com/69042_49091_5822.jpg
경기고등학교 시절 오승환(오른쪽). 왼쪽은 경기고 시절 동기였던 이동현.[1]
파일:타자 오승환.jpg
타자로 나오기도 하던 고교 시절.

2학년을 마친 뒤 2000년 경기고등학교의 개교 100주년 우승 프로젝트를 위해 경기고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에이스 이동현[2]의 뒤를 확실히 받쳐 줄 투펀치가 되어줄 것이라고 기대받았지만, 안타깝게도 허리 부상 때문에 빛을 발하지 못했다. 대신에 타자로서 활약했다.[3]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준우승,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의 대업을 이루고 고교 졸업 후 단국대학교에 입학했다. 투수로서 재능과 가능성을 본 강문길 감독의 권유로 다시 투수가 되었다. 그러나 허리부상이 나을 때쯤, 팔꿈치 부상으로 결국 수술을 받게 되었다. 긴 재활 끝에 3학년 때 복귀해 이후, 대학 최고의 투수로 일약 명성을 떨치게 된다. 2004년 회장기 전국대학야구 추계리그회장기 전국대학야구 춘계리그에서 동기생 송산, 윤요섭, 최훈락, 2년 후배 허도환, 3년 후배 나지완과 함께 단국대의 우승에 기여했다. 다만 수술 경력이 있고 폼이 특이하여 혹평을 당하기도 했다.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40916184924978.jpg
(출처: 포토로)
이러한 부상 경력 때문인지 당시 삼성 수석코치였던 선동열[4]은 오승환을 뽑지 않으려고 했었다고 알려졌었지만, 훗날 오승환이 한미일 통산 500세이브를 달성한 뒤 한 선동열의 인터뷰에서는 본인이 직접 뽑았다고 언급한 만큼 정확한 사실에 대해서는 확실치 않은게 사실이다.[5] 심지어는 계약 직전까지 갔었다는 오승환의 지역 연고 구단인 LG 트윈스까지도 내구성 의구심에 외야자원이 필요하다는 요청으로 정의윤으로 지명을 선회했다는 소리가 있다. 게다가 삼성보다 먼저 지명이 가능했던 한화는 당시 무능한 스카우트진들에 의해 오승환보다 떡대가 좋다는 이유로 오승환을 거르고 양훈을 지명하였다. 그러나 삼성 스카우트진의 강력한 건의에 의해 삼성은 오승환을 2차 1순위로 지명하게 된다. 그리고 2차 1픽 윤성환, 오승환이 연속으로 성공했다.

3. 삼성 라이온즈 1기

파일:오승환11.jpg
★★★★★
(2005~2013)
끝 판 대 장 오 승 환
- 오승환 등판시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전광판 문구

3.1. 2005 시즌

파일:05오승환.jpg
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3.svg

삼성 라이온즈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그도 첫 해엔 노예였다. 아무리 대학에서 검증된 투수라고 해도 신인을 첫 시즌부터 고정 마무리로 쓸 순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중간계투와 마무리를 넘나들며 한 경기 2이닝씩도 흔하게 던지는 등 개같이 굴려졌고, 61경기 출장에 무려 99이닝을 던졌다.

이 해 오승환은 역대 손에 꼽히는 투수의 신인 시즌 중 하나로, 무려 10승 1패 16세이브 11홀드를 기록, 승률왕까지 차지했다.[6] 그렇다, 오승환도 10승 투수 출신인 것이다. 역대 프로야구 선수 중 1시즌 10승 10세이브 10홀드를 기록한 것은 아직까지도 이때의 오승환이 유일한 기록[7]으로 남아있다. 또한 평균자책점은 무려 1.18[8], 블론세이브는 단 하나뿐이었고, 선발도 아닌 주제에 삼진은 무려 115개를 잡아내며 삼진순위 5위에 드는 기염을 토했다. 선발 등판이 없었던 선수들을 기준으로는 무려 역대 8위에 해당한다. 이 해 MVP를 수상한 선발투수 손민한보다 삼진이 10개가 더 많다. 한국시리즈에서도 3경기 등판, 1승 2세이브. 특히 2차전에선 연장 10회 무사 1,2루 위기에 등판에 3타자 연속삼진을 잡아냈다. 당연히 신인왕까지 수상하며 95년 이동수 이후 무려 10년만에 삼성에서 배출한 KBO 신인상 수상자가 되었다.[9] 그리고 2005년 한국시리즈에서도 김재걸과 경쟁 끝에 MVP를 따냈는데 정작 본인은 김재걸 선배가 MVP를 받을 거라 예상했었다고.

5월 3일 마산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7회 라이온(2점)-이대호(1점)에게 백투백 홈런을 맞았는데, 이것은 오승환의 해외 진출 이전 동안 딱 한 번 있었던 백투백 홈런이었다.[10] KBO 복귀 이후에는 2022 시즌, 2024 시즌 KT전에서 맞았다.

3.2. 2006 시즌

파일:06오승환.jpg
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4.svg

그리곤 소포모어 징크스는 개나 주라는 듯 ERA 1.59, 47세이브를 기록하며 단일 시즌 최다세이브 기록을 경신했다. 전업 클로저치고는 조금 많은 63경기 79⅔이닝을 소화하는 동안 삼진을 109개나 잡아내는 괴력도 뽐냈다.

평균자책점이 첫 해보다 못하지만 FIP 0.6, FIP+ 599로 당시 역대 단일시즌 불펜투수 중 최고의 FIP을 기록했다.[11] 괴물1 괴물2 심지어 이 기록은 2011년에 본인이 갱신한다.

WBC, 코나미컵 대회 등으로 인해 제대로 쉬지 못하고 계속 던져 온 탓인지 2006년 연말에는 구속이 시즌 중보다는 좀 떨어진 편이었고 그 때문에 도하 아시안게임 한일전에서 당시 사회인 야구선수였던 초노 히사요시에게 홈런을 맞으며 졸지에 '오뎅환'이라 불리며 까이기도 했다.[12]

3.3. 2007 시즌

파일:07오승환.jpg
명불허전 오승환, 40세이브를 기록하며 KBO 사상 최초로 2년 연속 40세이브를 기록했다. 다만 05, 06시즌 연속으로 비교적 많은 이닝을 소화한 탓인지 세이버 스탯들은 전 시즌에 비해 상당히 하락했다. FIP의 수직 상승이라던가.[13]

07 시즌부터는 1이닝을 초과해서 투구하는 경기가 적어지는 등, 제대로 관리되는 전문 마무리투수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게 된다.

3.4. 2008 시즌

파일:08오뎅.jpg
3월 18일 두산 베어스와의 시범경기에서 9회 말에 등판했다가 김용의의 타구에 오른손바닥을 가격당하는 사고를 겪었지만 다행히 큰 부상을 입지는 않았다.

그간 정규시즌, 포스트시즌, 국제대회 등 휴식 없이 살인적인 강행군을 한 탓에 2008 시즌에서는 정상이 아닌 몸 상태로 던졌지만[14], 떨어진 구속을 구위, 제구력으로 메꿔내는 마술을 보였다. 다만 4월 25일 롯데 자이언츠 전에서는 시즌 첫 패[15]와 블론을 당했다. 브래드 토마스에게 시즌 중반 잠시 세이브 1위를 넘겨준 적도 있지만 이는 오승환이 못했다기보다는 팀이 막장이었기 때문. 저 때 삼성은 선발들이 조기에 털리는 바람에 세이브 기회 자체가 잘 오지 않았다. 덕분에 지친 체력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는지, 후반부 들어서는 구속도 상당 부분 회복되었다.

결국 최종적으로 39세이브를 기록하며 세이브 1위는 했지만, 단 1개 차이로 아쉽게 3년연속 40세이브를 기록하지 못했다.

몇 년 후 오승환 본인이 밝히길 이때부터 팔꿈치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이 09~10시즌에 제대로 터져버린 것.

3.5. 2009 시즌

파일:09오뎅.jpg
최대 문제는 1점차 세이브 상황에서 더 잘 던진다는 것. 점수 차이가 많이 벌어지거나 세이브 상황이 아닌 동점에 올라올 때는 그냥 제대로 샌드백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덕분에 2009년 7월 2일 18세이브를 기록하며 세이브 부문 단독 선두...까지는 좋은데 평균자책점이 4.40으로 한기주급 평균자책점. 게다가 피홈런 7개로 벌써 한 시즌 맞을 홈런을 다 맞은 상황. 6월 21일 잠실에서 열린 LG와의 더블헤더 2차전에서는 2-1로 지고 있던 7회말 1사 만루에서 등판하자마자 이진영에게 2타점 2루타를 맞고, 다시 만루에서 박용택에게 프로 데뷔 첫 만루홈런을 허용해 앞선 투수 윤성환이 남겨둔 주자들을 모조리 홈으로 불러들리고 오승환 본인도 0이닝 3실점하면서 자존심을 구겼다.

이 상황에서 블론세이브는 아직 5월 15일 롯데전에서 기록한 1개. 9이닝당 삼진 비율은 14.38개로 웬만한 선발 에이스를 훨씬 웃도는 수준. 참고로 7월 2일 현재 삼진 1위인 고효준의 9이닝당 삼진 비율은 10.37개.[16]

다만 7월 19일 어깨통증으로 강판[17]당했는데 이게 알고보니 어깨 인대가 찢어져 버렸다고 해서 시즌 아웃. 그뒤에 재활에 들어갔다. 재활이 성공적으로 된 듯.

3.6. 201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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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7일 시범경기에서 1이닝 1피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하면서 "더 이상의 블론세이브는 없습니다. 올해 목표는 몇 세이브가 아니라 최대한 불을 안 지르는 거지요."라는 목표를 내놓았다.

3월 27일 개막전에서 최고구속 147km/h의 위력적인 공을 뿌리며 호투했지만 세이브까지 원 스트라이크를 남기고 이진영에게 동점홈런을 맞으며 첫 경기부터 블론세이브를 기록했고 결국 삼성의 패배로 경기가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바로 며칠 뒤 열린 한화전에서 8회말 2사부터 올라와 4타자 연속 삼진을 잡아내면서 아직도 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두 경기 밖에 등판 안했지만 이 페이스대로라면 돌직구가 부활했다고 봐도 무방할듯 싶었다. 그런데 4월 8일 강정호에게 쓰리런을 맞으며 또 블론세이브를 기록했다. 다행히 끝내기 폭투로 팀이 승리하긴 했다.

4월 30일, 대전 한화 이글스전에서 9회 마무리로 등판했던 오승환은 부상으로 인해 자진강판되는데, 문제는 자진강판의 사유가 사타구니 가래톳 부상. 가래톳 부상은 하필 네이버에서 검색하면 매독, 임질의 증상으로 나오는터라, 졸지에 성병환, 톳승환이라는 별명이 붙어버렸다.

6월 16일, 사직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9회말 2아웃에서 마무리로 나와서 이대호에게 홈런을 맞으면서 또 블론. 다행히 팀이 이기긴 했지만….

7월 2일까지 팀의 블론세이브가 3개뿐인데 그게 전부 오승환이다.

6월 18일, 팔꿈치 부상으로 2군으로 내려가는데 검진 결과 팔꿈치에 뼛조각이 발견되어 결국 뼛조각 제거수술을 받게 되었고 복귀는 포스트시즌 이후로 예상, 선감독은 포스트시즌에 등판하긴 무리라 예상했다.

2010년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벌인 자체 청백전에서 폭풍같은 3실점. 구속은 147km/h을 찍었다고 한다. 포스트시즌 등판 의욕이 엄청나게 강해서 선동열 감독도 놀라워했다. 하지만 몸상태가 아직은 불안하다 본 것인지 두산 베어스와의 플레이오프 엔트리에서는 제외되었다.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2010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했고, 오승환은 프란시스코 크루세타채상병을 대신하여 구자운과 함께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는 포함되었다.

10월 15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3:2로 이기던 5회말 2사 만루 상황에서 4번째 투수로 등판했지만, 6번타자 김강민의 대타로 나온 박재홍에게 밀어내기 볼넷, 7번타자 김재현 2타점 적시타를 맞고 정현욱으로 교체되었다. 다행히 정현욱이 8번타자 박경완을 삼진으로 잡아 이닝을 끝내서 오승환의 자책점은 기록되지 않았고, 팀은 스코어 5:9로 역전패했다.

한국시리즈에서 2경기 1⅔이닝 1피안타 1볼넷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팀은 준우승했지만 고작 4세이브를 기록하며 커리어로우를 기록한 오승환에게는 잊고 싶은 한 해가 되었다. 그러나 오승환은 이해의 부진을 기점으로 2011년 이후 레전드로서의 길을 다시 다져 나가게 된다.

3.7. 201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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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201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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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20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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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신 타이거스

국내 정상급 선수들이 다 그렇듯이 오승환도 일본 진출 떡밥이 존재했다. 압도적인 모습으로 부활한 2011년때 슬슬 제기되기 시작했는데 당시 오치아이 투수코치를 비롯한 전문가들의 의견에 의하면 일본리그 진출을 가정할 경우, 투피치의 적은 구종이라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제구력 좋은 강속구 투수이기에 마무리로서 분명히 상위클래스에는 들어간다고 했다. 참고로 오치아이 투수코치는 한일간의 야구격차에 대해서 굉장히 솔직하게 평가한다. 즉 한국야구가 일본야구 수준이라는 식의 립서비스는 하지 않는 사람. 단 같은 팀 선수라서 립서비스해줬을 가능성은 있다.

결론적으로 분명히 일본에서도 최상위에 속하는 구위이기에 성공 가능성이 낮지는 않지만 더 좋은 제구력과 더 다양하고 예리한 변화구가 뒷받침 되지 않은 상태 그대로 일본에 진출한다면 자칫 한국선수의 일본진출 잔혹사가 또 하나 늘어날 수 있다는 평가였다. 물론 애초에 리그간 이적이라는게 단순히 선수의 기량을 떠나서 수많은 변수[18]가 존재하기에 아무도 예상 할 수 없다. 그 누가 알았겠는가? 일본 역대 최고의 투수라던 마쓰자카 다이스케는 MLB에 가서 반짝 활약을 보이다 ERA/FIP 4점대로 처참히 몰락하고, 탁구장을 홈구장으로 삼았던 만년 하위권 팀에서 멘탈 훈련만 계속 해온 구로다 히로키가 MLB에서 여러 시즌 동안 꾸준한 활약을 해 올 줄이야......[19]

한편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완벽한 투구 내용[20]을 보여주면서, 일본 진출이 다시 한번 거론되었다. 특히 오릭스 버팔로즈후지카와 큐지가 미국으로 떠난 한신 타이거스 등의 구단은 대놓고 관심을 표했다.

게다가 메이저리그 진출 떡밥이 갑작스럽게도 2013 시즌에 접어들면서 튀어나왔는데, 류현진이 한국야구에서 워낙 독보적인 최강의 에이스로서 한국야구 최초로 포스팅을 통해 메이저리그로 간 사례로 인해 독보적인 최강의 마무리인 그 역시도 메이저리그 진출이 가능하지 않냐는 의견이 나온 것이 계기. 공식적으로 언급된 것은 아니지만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오승환을 체크하고 있는 모습이 13시즌에 종종 보였다.[21][22]

그리고 2013년 11월 5일, 삼성 라이온즈 측에서 대승적 차원으로 오승환의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23][24]

일단 각 리그에서 오승환을 노리는 관심 구단을 하나씩만 꼽자면 우선 일본프로야구한신 타이거스. 위에서도 말했지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의 호투에서부터 오승환을 대놓고 노리고 있었고 거액의 돈으로 러브콜을 날릴 준비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뉴욕 양키스. 마리아노 리베라가 은퇴해서 불펜 보강이 시급하기 때문에 우완 투수인 오승환을 노리고 있다는 루머가 떴다.[25]

2013년 11월 20일, 한신 타이거스와 2년간 7억엔으로 입단을 합의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이틀 후인 11월 22일, 한신 타이거스와 2년간 9억엔(계약금 2억엔, 연봉 3억엔, 옵션 연간 5천만엔)에 계약을 확정하였다. 카더라지만 몇몇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구단은 왜 포스팅 시스템도 안해보고 성급하게 일본행을 결정했냐는 아쉬움의 소리를 했다고 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카더라에 불과.

일본 현지팬의 반응은 한국에서의 모습을 찾아보고 기대하는 팬과, 아무리 그렇다해도 타리그 출신의 마무리투수에게 너무 돈을 썼다는 우려가 교차하는 중. 또한 한국팬들과 마찬가지로 현지팬들 또한 오승환의 모습에서 후지카와 큐지를 겹쳐보는 시선이 많았다. 한편으로 1회 WBC때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았던 게 오승환이라는 루머가 일본에서 잠깐 돌았으나 얼마 안 가 서재응으로 밝혀졌다.
한편 등번호후지카와 큐지의 22번을 그대로 물려받았다.[26] 사실 21번을 달 수도 있었으나, 해당 번호를 쓰던 이와타 미노루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이를 받지 않고 22번을 받게 되었다. 한신 구단에서 오승환에게 거는 기대를 알 수 있는 대목. 등장 테마곡은 본인의 의사에 따라 '라젠카 세이브 어스'를 쓸 예정이라고 한다. 변경점이 있다면 종소리가 일본 학교에서 흔히 쓰이는 종소리로 바뀌고 원곡자인 N.EX.T와 작곡가 윤치웅이 편곡할 예정이라고 한다.#

힙합가수 주석이 오승환에게 선물한 Oh가 2014년 오승환의 테마곡으로 바뀌었다. #

추가로 이때부터 메이저리그 토론토 때를 제외하고 귀국할때까지는 센트럴리그와 내셔널리그는 지명타자 제도가 없어 투수도 타석에 서야했다.

4.1. 2014 시즌

파일:14오승환.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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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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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5.1. 20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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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2017 시즌

파일:Oh4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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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FA

2년 계약이 끝난 뒤 본격적으로 FA 시장에 나서게 된다. 첫시즌에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으나, 이후 두번째 시즌에는 부진에 시달리면서 안좋은 성적을 찍었다. 이렇게 되면서 친정팀 삼성 복귀 이야기도 조심스럽게 나왔으나 당분간 삼성에는 복귀할 일이 없어보인다.[27][28] 올해 부진했어도 불펜투수로서의 오승환의 가치는 아직 충분하다는 게 주된 평들이다. 관심을 가지고 있는 구단들이 꽤 많은 상황이다.

가장 강하게 링크되어있는 팀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세인트루이스 지역언론, 애리조나 지역언론 모두 애리조나가 가장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밝힌 상황이다. 또한 애리조나의 불펜인 페르난도 로드니가 미네소타로 떠난 상황이라 애리조나는 불펜을 재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2월 22일 애리조나가 일본인 투수 히라노 요시히사와 계약하면서 애리조나 유니폼을 입을 가능성은 낮아졌다. 시카고 컵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텍사스 레인저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등이 언급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관심있다는 기사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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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6일 켄 로젠탈 발 트윗에 의하면 1+1년 275만 달러 계약으로 텍사스 레인저스와 계약을 맺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부 계약은 2018 시즌 : 2.75m /2019 시즌 : 4.5m 팀 옵션 + 25만불 바이아웃/2년간 퍼포먼스 보너스 각각 1m씩인 것으로 보인다. 1+1 옵션 충족시 총액 925만 달러 규모의 계약이다.

이후 기사에 따르면 비록 조건이 더 좋은 팀은 많았지만 결국 오승환 자신은 마무리가 보장되는 팀을 원했고 금액이 낮지만 텍사스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29][30]

그런데 어째서인지 약 10일 지났는데도 계약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텍사스 스캠 라커룸에도 오승환의 라커는 없다. 단장 또한 발표할 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추신수도 오승환의 합류에 대해 구단에 문의했지만 말해줄게 없다는 말만 들었다고... 일각에선 세부 계약내용에서 조율에 실패해 계약이 무산되었거나 메디컬 테스트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게 아닌가란 추측이 나오고 있다.

결국 2월 18일 모두의 우려대로 메디컬 테스트에셔 문제가 생기면서 텍사스와의 계약이 무산되었다.

이후 오승환측에서 팔꿈치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것이 아니라 염증수준이라고 밝혔다.

그후 토론토 블루제이스 구단에서 영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캐나다 언론 기사가 나왔다. 토론토가 이번 시장에서 불펜투수를 보강하기를 원하고 있고 또한 주전마무리 로베르토 오수나가 지난시즌 39세이브를 기록했었지만 블론세이브가 무려 10개나 됐었던 만큼 마무리 투수도 가능한 셋업맨 영입 후보로 오승환을 선택할지도 모른다는 기사 내용이다. 다만 팔꿈치 상태를 고려해서 안전장치로 마이너 계약을 카드로 내밀것이라고 주장했다.

2월 25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계약기사가 나왔다. 정확한 조건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현재 메디컬 테스트만 남겨놓고 있다고 한다.

결국 메디컬 테스트를 통과하는데 성공하면서 정식 입단이 확정되었다. 그러면서 오승환은 역대 한국인 첫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메이저리거가 되었고, 김선우에 이어서 역대 한국인 두번째로 캐나다 팀에서 뛰게 된다. 계약은 1+1년이며 첫해 200만 달러 보장[31] 150만 달러 옵션이고 +1이 실행된다면 연봉 250만 달러, 옵션 150만 달러로 최대 수령가능 금액은 725만 달러이다.

6. 토론토 블루제이스

6.1. 2018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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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콜로라도 로키스

7.1. 2018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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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201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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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삼성 라이온즈 2기

파일:19오승환.jpg
(2019~)

귀국 이후 삼성 라이온즈와 협상을 계속 이어 갔고 결국 2019년 8월 6일 연봉 6억에 6년만에 삼성 라이온즈 복귀가 확정되었다. 또한 72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받게 되며 남은 시즌은 재활에 매진할 예정이다.[32] 단, 출장정지 징계 시 급여 지급이 되지 않기 때문에 실 수령액은 절반인 약 3억원 수준이라고 한다. 현재 복귀 시점은 2020년 5월 초로 추정된다. 2020 시즌 개막전이 3월 28일이기 때문에 우취 등 취소가 없을 경우 2020년 5월 2일 경기부터 출전이 가능하다.

2019년 8월 6일 정식 선수로 등록되었다. 하지만 72경기 징계로 잔여 42경기에는 출전하지 못한다. 또한, 해당 징계는 포스트시즌에는 적용받지 않아 삼성이 만약 5강에 들어 포스트시즌에 진출한다고 하더라도 남은 징계 경기 수는 줄어들지 않는다.
파일:오승환 유니폼.jpg
복귀식에서 등번호 21번 유니폼을 돌려받는 장면.
2019년 8월 10일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팬들 앞에서 복귀식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KIA 타이거즈삼성 라이온즈의 시즌 12차전 5회말 이후 등번호 21번이 적힌 유니폼을 물려받으며 착용하고 팬들 앞에서 인사를 나누었다. '내년에는 이곳에서 한국시리즈가 열릴 수 있게 열심히 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2015년 발생한 불법 도박 사건에 대해서는 '후회하고 반성했다. 사죄드린다' 라고 짧게 말했다. 더불어, 2019년 13일날 선수촌 병원에서 정밀검진을 받고 수술 계획을 짤 예정이라고 밝혔다. 실전 복귀는 2020 시즌 4월 말 쯤. 한편 이러한 복귀식에 대해 도박 전과자를 환영해준다며 비판여론이 많았다.
11월 25일 캐치볼 훈련을 시작했다.

8.1. 2020 시즌

파일:오뎅21.jpg
2020년 6월 9일 대구 키움전에서 2447일만의 삼성에서의 복귀전을 가진 오승환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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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2021 시즌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2021 KBO 리그 세이브 1위

파일:21오승환.jpg
2021년 4월 25일 광주 KIA전에서 역대 최초 KBO 통산 300세이브 기록을 달성한 후 강민호와 기쁨을 나누는 오승환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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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2022 시즌

파일:2022oh.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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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2023 시즌

파일:shoh23.jpg
역대 최초 KBO 통산 400세이브 기록을 달성한 오승환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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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FA

2023 시즌 이후 KBO에서는 최초로 FA자격을 취득하게 되었다.

11월 16일 현역 연장을 선언함과 동시에 프런트와 계약에 관해 논의 중이라고 한다.

나이와 보상 규모와 같은 현실적인 요소로 인해 FA 신청 가능성이 높진 않았으나 FA 신청을 하였다. 상술한 요소들로 인해 이적은 불가능한 상황. 사실상 삼성과의 단독 협상이라 주도권은 팀에 있다고 봐야한다. 하지만, 삼성 내에서 입지를 생각하면 이승엽이 2년 36억에 계약을 체결했듯 오승환에게도 후려치기보다는 팀 내 위상에 걸맞은 금액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33]

FA 시장이 열리고 한 달 넘게 사실상 삼성과의 단독 협상임에도 예상과 다르게 계약이 늦어지면서 팬들이 답답해하고 있다.

12월 11월 야구부장 라이브 방송에 따르면 계약 기간과 금액에서 구단과 이견이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구단에서는 1년을 제시한 반면 선수 본인은 2년 내지는 1+1년을 원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시점에서 계약 기간은 사실상 은퇴 시기와 다름이 없기 때문에 합의에 이르기에는 시간이 조금은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12월 18일 야구부장에 따르면, 여전히 구단과 의견 차이는 있다고 한다. 선수 본인은 현역 연장 생활을 할 수 있는 만큼 하려고 하는 의지가 강하다고 한다. 여전히 양쪽의 입장차는 크게 나는 편이어서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한다.

12월 21일 머니볼 정세영 기자에 따르면, 삼성과 오승환의 만남은 현재까지 5차례가 있었고 20일 어제, 선수 측에서 원하는 금액을 밝혔다고 한다. 다만, 여전히 선수와 구단 간의 의견 차이가 있다고는 하나, 잔류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한다. 실질적인 계약 성사는 해를 넘겨서야 알 수 있을 듯하다.

26일 야구부장에 따르면 2년 계약까지는 확정되었고, 금액 관련해서 계속 얘기하고 있다고 한다. 실무진에서는 오승환의 나이를 감안해 2년 보장에는 난색을 표했으나 대표이사가 선수 측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결국 계약기간은 2년으로 정해졌다고 한다.

해를 넘겨 2024년 1월 3일 진행된 야구부장 라이브 방송에서 야구부장이 취재한 내용을 말했는데, 구단에서 오승환에 제시한 금액은 2023 시즌 보장연봉 동결인 2년 28억원 조금 밑이라고 하였다.

오승환 계약 이후 FA 임창민 영입전에 뛰어들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협상이 길어지면서 임창민 영입 발표가 먼저 이뤄졌다.[34]

1월 15일, 이종열 단장과 삼성 구단 관계자는 "계약이 잘 마무리되고 있다, 조만간 발표가 가능할 것 같다."며 긍정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1월 16일 삼성 라이온즈와 2년 총액 22억원(계약금 10억원, 총 연봉 12억원)의 조건에 계약하였다.# 그동안 유튜브, 기사를 통해 알려진 금액에 비해 훨씬 적은 금액이고 전년도 연봉에 비해서도 크게 삭감된 금액(최대 17억 원 -> 연평균 11억 원)이라 구단이 적당히 레전드 대우를 해주면서도 실리는 챙겼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2024년 연봉 수령액은 4억 원으로 공시되었는데, 샐러리 캡을 위해 수령 연봉을 조정하는 것에서도 시간이 걸린 것으로 보인다. 계약이 늦어진 이유는 빠듯한 샐러리캡으로 인한 계약 세부내역 조절 때문이었지만, 길어진 협상 기간으로 인해 나온 사실과 다른 이야기들로 오승환은 적잖은 마음 고생을 겪었으며, 이종열 단장도 이에 대해 우려했다는 코멘트를 남겼다. # 같은 날 야구부장의 라이브 방송에 따르면 선수가 최초 제시한 금액은 2023시즌 연봉(14억원, 즉 2년 28억원)을 조금 상회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실제 계약 금액은 구단의 첫 제시금액과 엇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이로써 삼성은 또한 직전 시즌 마무리로 활약한 선수를 무려 3명씩이나 보유한 팀이 되었다.

8.6. 202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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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국가대표 경력

파일:오승환.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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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연도별 주요 성적

10.1. KBO

  • 붉은 글씨는 리그 1위 기록. 진한 표시는 리그 5위 내 기록. 푸른 글씨는 KBO 리그 역대 최고 성적.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오승환의 역대 KBO 기록
<rowcolor=#fff> 연도 출장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ERA- sWAR
2005 삼성 61 10 1 16 11 99 1.18 46 5 20 0 115
(5위)
0.67 28.05 5.77
(1위)
2006 63
(5위)
4 3 47
(1위)[A]
0 79⅓ 1.59 43 1 12 1 109 0.69 44.35 3.31
2007 60 4 4 40
(1위)
0 63⅓ 1.40 41 6 17 2 69 0.90 35.11 2.94
2008 57 1 1 39
(1위)
0 57⅔ 1.40 34 2 15 1 51 0.85 33.19 2.98
2009 35 2 2 19
(4위)
0 31⅔ 4.83 28 7 17 0 51 1.42 96.40 0.68
2010 16 0 0 4 0 14 4.50 13 4 5 0 19 1.29 95.01 0.32
2011 54 1 0 47
(1위)[36][A]
0 57 0.63 27 2 11 0 76 0.67 15.02 3.78
2012 50 2 1 37
(1위)
0 55⅔ 1.94 33 1 13 3 81 0.83 50.18 2.36
2013 48 4 1 28
(4위)
0 51⅔ 1.74 33 4 10 2 54 0.83 40.15 1.69
2020 45 3 2 18
(5위)
2 47⅔ 2.64 44 2 15 2 39 1.24 51.79 1.81
2021 64 0 2 44
(1위)
0 62 2.03 56 3 16 2 57 1.16 43.55 2.54
2022 57 6 2 31
(4위)
2 57 3.32 59 8 13 1 51 1.26 78.21 1.41
2023 58 4 5 30
(3위)
2 62⅔ 3.45 57 9 15 2 44 1.15 80.49 0.77
2024 58 3 9 27
(2위)
2 55 4.91 75 9 18 3 42 1.69 94.56 -0.38
<rowcolor=#373a3c> KBO 통산
(14시즌)
726 44 33 427
(1위)
19 794⅔ 2.25 589 63 197 19 858 0.99 50.90 29.99

10.2. NPB

  • 붉은 글씨는 리그 1위 기록. 진한 표시는 리그 5위 내 기록.
파일:NPB 로고.svg 오승환의 역대 NPB 기록
<rowcolor=#000> 연도 출장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4 한신 64
(5위)
66⅔ 2 4 39
(1위)
5 0.333 1.76 41 5 14 81 18 13 0.81
2015 63
(5위)
69⅓ 2 3 41
(1위)[38]
7 0.400 2.73 64 6 18 66 21 21 1.15
<rowcolor=#373a3c> NPB 통산
(2시즌)
127 136 4 7 80 12 0.364 2.25 105 11 32 147 39 34 0.99
역대 기록(타자)
연도 출장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출루율 장타율
2014 한신 65 2 .500 1 0 0 0 0 1 0 .500 .500
<rowcolor=#373a3c> NPB 통산
(1시즌)
65 2 .500 1 0 0 0 0 1 0 .500 .500

10.3. MLB

파일:MLB 로고.svg 오승환의 역대 MLB 기록
<rowcolor=#ffef00>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2016 STL 76 6 3 19 14 79⅔ 1.92 55 5 18 2 103 0.916 212 2.6 2.9
2017 62 1 6 20 7 59⅓ 4.10 68 10 15 3 54 1.399 103 0.0 -0.1
<rowcolor=#c4ced4>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2018 TOR/COL 73 6 3 3 21 68⅓ 2.63 52 8 17 4 79 1.010 168 1.1 2.3
2019 COL 21 3 1 0 3 18⅓ 9.33 29 6 6 0 16 1.909 56 -0.3 -0.7
<rowcolor=#373a3c> MLB 통산
(4시즌)
232 16 13 42 45 225⅔ 3.31 204 29 56 9 252 1.152 130 3.4 4.4
역대 기록(타자)
연도 출장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출루율 장타율 fWAR bWAR
2016 STL 76 2 .000 0 0 0 0 0 0 0 .000 .000 0.0 0.0
<rowcolor=#373a3c> MLB 통산
(1시즌)
76 2 .000 0 0 0 0 0 0 0 .000 .000 0.0 0.0


[1] 이 때만 해도 이동현은 연고구단 LG의 1차 지명까지 받을 정도로 경기고의 에이스 투수였고 오승환은 그냥 후보에 불과했다... 이동현에게는 참으로 비극적인 일인게 커리어 첫 감독이 김성근이라 한국야구 역사에 남을 정도로 혹사당했고 이 혹사로 이동현은 오승환에게 밀리게 된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이동현은 19년간 LG의 원 클럽맨으로 활약하게 되었다. 훗날 아들이 LG의 지명을 받지 못하면 은퇴시키겠다고 공언할 정도로 LG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2] 1년 먼저 서울고에서 경기고로 전학왔고 1999년 대붕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을 이끌었다.[3] 주로 1번 타자에 외야수로 출장했으며, 당시 야수로서도 괜찮은 활약을 보였다. 발도 제법 빠른 편이었고 하일성 위원도 경기고 경기를 중계하면서 오승환이 프로에서 통할 만한 타격 재질을 가졌다고 칭찬했다.[4] 2004년 당시 선동열의 보직은 수석코치였으나 김응용 감독으로부터 투수와 관련해서는 전권을 부여받았다.[5] 실제 몇몇 기사를 보면 오승환의 지명을 두고 언제는 반대했다 하고 언제는 찬성했다 하고 말이 다른데, 굳이 끼워맞추자면 처음에는 오승환의 지명을 반대했다가 나중에 찬성으로 돌아섰다고 볼 수 있다. #1 #2[6] 불펜 투수가 승률왕을 차지한 것은 2024 시즌 박영현이 승률왕 타이틀을 거머쥐기 전까진 유일한 기록이었고, 불멸의 기록일 것으로 모두가 예상하고 있었다.[7] 여담이지만 선동열 감독이 (뭔가 다른 의미의) 트리플 더블을 만들어 주기 위해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9승이었던 오승환을 일부러 등판시켜서 1승을 슬쩍 챙기게 했다. 좀 더 부연하자면 동점 상황에서 선발 라형진을 일찍 내리고 오승환이 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는 동안 팀이 리드를 잡아 10승을 챙겼기 때문에 거저먹은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쨌든 선동열이 오승환에게 승률왕 타이틀을 만드는데 일조한 셈. 이 기록에 가장 근접했던 선수는 각각 2승, 1승이 부족했던 06시즌 정대현(8승 11홀드 15세이브), 10시즌 정현욱(9승 11홀드 12세이브) 등이 있다.[8] 역대 시즌 중 가장 많은 이닝을 던진 시즌이지만, 0점대 평균자책점의 몬스터시즌인 '11시즌만 제외한다면 가장 낮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시즌이다. 세이브 신기록을 세웠던 2006시즌의 평균자책점도 1.59이었다.[9] 스탯티즈 기준 WAR 역시 5.77로 전체 1위를 기록했지만 18승에 ERA 2.46을 기록한 손민한에 밀려 시즌 MVP는 수상하지 못했다.[10] 실제로 오승환은 이대호에게 약한데, 상대타율은 그렇게 높지도 낮지도 않지만, 통산 28피홈런 중 3홈런이 이대호에게 맞은 홈런이다(오승환 상대 홈런 1위). 그 다음으로는 2홈런의 손시헌. 또한 이대호가 오승환에게 블론세이브를 안긴 횟수도 2012년 기준 통산 블론세이브 16회중 2회, 무려 전체의 12.5%를 차지한다.[11] 참고로 선동열 커리어 중 가장 높았던 FIP+는 1995년도의 499.[12] 사실 오승환에게 홈런을 때린 초노 히사요시는 프로팀에게 지명을 받았지만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지명을 받기 위해 지명을 두번이나 거부하고 사회인 야구에서 뛰다 2009년 드래프트에서 요미우리에 1순위로 지명될 정도로 재능 있는 선수였다. 그리고 2010년 센트럴 신인왕에 이어 2011년 센트럴 리그 타격왕을 수상하면서 자신의 실력을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다. 당연히 오뎅 장사라는 건 사실이 아니며 이 루머는 아시안게임 한일전 직후 2CH에 올라온 걸로 가장해서 개드립을 친 면갤러 '더리올'이 썼는데 - 오뎅장사, 시골 역 역장 등 아마추어로 구성된 일본 대표팀이 한국 대표팀을 꺾었고, 말년에 그 일을 회상한다는 내용 - 경기 패배 후 이 면갤러는 야갤에 2CH 눈치를 보러 갔다가 이런 글이 있더라라는 식으로 구라를 깠고 당시 일본 사회인 야구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던 상황이라 국내 네티즌들은 진짜로 대표팀이 조기 야구회 같은 동호회 집단한테 발리고 온 줄 알고 가루가 되도록 깠고 결국 사실이 밝혀진 뒤에도 이미 굳어져 버린 별명이라 그냥 그대로 쓰이고 있다. 덤으로 이 면갤러는 08베이징 올림픽 우승,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결승 이후에도 번역인 척 개드립을 쳐서 수많은 이들을 낚았다.[13] 스탯티즈 기준으로 150이 약간 안 되는 FIP+을 기록했다. 100이 리그 평균이 되는 스탯이므로 충분히 나쁘지 않은 스탯이지만 05, 06시즌 압도적인 스탯(FIP+가 각각 221, 593)을 찍은 것을 감안하면 후유증이 있긴 있었던 모양.[14] 유일하게 이닝당 탈삼진이 1보다 낮은 시즌이다[15] 조성환이 끝내기 안타를 쳤던 경기다. 이 경기를 기점으로 로이스터 매직이 실현되었다.[16] 단, 이 기록은 본래 불펜 투수가 유리한 기록이긴 하다. 2010 시즌 류현진도 이 부분에선 불펜 투수들에 밀려 10위권 안에 간신히 들었다.[17] 사실 이 이전인 7월 16일에도 구속이 140밖에 안 나오자 선동열 감독이 바로 내리고 배영수를 기용한 적이 있었다. 물론 결과는 대 역전패.[18] 팀의 선수 관리나 선수의 적응력 같은 것을 의미한다.[19] 단 구로다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가 막장이라서 그렇지 이미 센트럴리그를 씹어먹던 에이스 중 하나였다.[20] 8타자 상대 6타자를 삼진...[21] 잠시 최정, 김현수, 강정호도 언급됐지만 어느 순간부터 성장이 정체됐다는 느낌을 주면서 묻혔다. 이 중 김현수와 강정호는 얼마 후에 메이저리그 진출에 성공한다.[22]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 포스팅을 통해 불펜투수를 영입한 적은 없다. 아무리 불펜투수들의 몸값이 오르고 있다지만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포스팅 비용까지 투입하며 불펜투수를 영입하기는 꺼린다.[23] 실제로 삼성 라이온즈 구단은 이 약속을 확실히 지켰는데, 이적료를 고작 5천만엔(한화 약 5억원)만 받으면서 오승환이 용병이 받을 수 있는 최고 대우의 연봉을 받고 팀을 옮기게 지원해줬으며 이전까지 자유계약 신분이 아닌 상태에서 이적한 한국 선수들이 이적료로 수 억엔이 발생했던 것에 비하면 오승환의 이적료는 사실상 형식적인 액수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고 오승환이 라디오 스타에서 밝힌 바로는, 그 이적료마저 오승환에게 줬다고 한다.[24] 박동희 칼럼에 의하면 송삼봉 전 삼성 라이온즈 단장은 오승환의 이적료 자체를 받지 않으려 했지만 다른 국내 구단에 폐가 될 수 있기에 형식적인 절차로 5천만엔만을 받았다고 하며 당시 협상을 하던 나카무라 가즈히로 단장과 보고를 받은 한신 미나미 사장이 놀랄 정도였다고 한다.[25] 허나 이쪽은 말 그대로 루머에 불과. 이미 양키스는 셋업맨인 데이비드 로버트슨을 차기 마무리로 낙점해두고 있었기에 오승환을 노릴 이유가 사실상 없었다. 로버트슨이 화이트삭스로 떠난 후에는 FA 시장에 나온 앤드류 밀러를 바로 영입했다.[26] 사실 후지카와 이전엔 포수 등번호로 유명하던 번호였다. 전설의 1985년 일본시리즈 주전 포수 키도 카츠히코가 이 번호를 달고 현역을 보냈으며, 한신의 암흑기 초중반 주전 포수 및 준주전급 외야수 세키카와 코이치도 한신 재적 막판 몇 년간 이 번호를 썼다.[27] 원래 오승환의 등번호였던 21번을 2017년 시즌에는 최지광이 사용했다가 1년 만에 등번호를 바꿔 다시 21번을 결번 상태로 두자 삼성 복귀설이 흘러나오게 된 것.[28] 더구나 도박 사건으로 인해서 만약 KBO로 리턴한다면, 72경기 출장정지를 수행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29] 2016년 레인저스의 마무리였던 샘 다이슨이 2017년 초반 대폭망하면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이적한 이후 레인저스는 맷 부시를 기용봤지만 세이브 상황만 되면 얻어터졌고 알렉스 클라우디오는 그나마 잘했지만 사이드암 투수이다 보니 공이 느린 탓에 장기적인 마무리로는 부적합했다. 또한 키오니 켈라는 멘탈이 약해 마무리로 쓸 수가 없었고, 그나마 제이크 디크먼이 구위가 괜찮았지만 궤양성 대장염에 걸려 2017년 대부분을 날렸다. 결론적으로는 2017년 레인저스에는 장기적인 마무리로 쓸 수 있는 선수가 없었다.[30] 오승환은 마무리 보장이라고 말했지만 현지 언론에서는 경쟁 후보(candidate to be closer)라는 말을 했지 마무리 보장이라 하지 않았다. 전형적인 언플이라고 보면 된다.[31] 연봉 175만 달러, 2019년 옵션 실행되지 않을 경우, 바이아웃 금액 25만 달러[32] 2019년 8월 10일 홈 구장에 들려 팬들에게 복귀인사를 한다고 한다.[33] 이승엽처럼 등번호에 맞춘 2년 21억원 정도의 금액을 예상하는 팬들도 많지만 아무리 오승환이라도 이미 삼성이 부상과 징계로 한 경기도 뛰지 못하는 2020시즌에도 6억원의 연봉계약을 체결, 부진으로 연봉을 백지위임했던 작년에도 오히려 총액은 17억원으로 인상하며 레전드 대우를 해줬고 42살의 선수에게 그정도 금액은 너무 과하다는 의견과 팀의 레전드에게 이 정도 금액도 못 주냐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삼성팬들 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가장 큰 이유는 샐러리 캡의 존재 때문일 것이다.[34] 2년 8억 규모[A] KBO 한시즌 최다 세이브[36] KBO 역대 최초 무패 세이브왕[A] [38] 토니 바넷과 공동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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