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21 16:01:55

로베르토 바조

로베르토 바지오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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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前 축구 선수에 대한 내용은 디노 바조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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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바조의 역임 직책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유벤투스 FC 주장
스테파노 타코니
(1990~1992)
로베르토 바조
(1992~1995)
잔루카 비알리
(1995~1996)
}}} ||
로베르토 바조의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파일:발롱도르 트로피.png
파일:FIFAWorldPlayer.png
파일:월드사커 로고.png
파일:옹즈도르.png
파일:실버볼.png
1994 FIFA 월드컵 실버볼
파일:세리에 A 로고.svg
[[틀:세리에 A 도움왕(2000년대)|
2003-04 세리에 A 도움왕
]]
베스트팀
파일:1994_fifa_world_cup_logo.png

1994 Ballond'or
수상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2위
로베르토 바조
3위
파올로 말디니
1994 FIFA 올해의 선수
수상
호마리우
2위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3위
로베르토 바조
1994 Onze d'Or
Onze d'Or Onze d'Argent Onze de Bronze
호마리우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로베르토 바조
1995 Onze d'Or
Onze d'Or Onze d'Argent Onze de Bronze
조지 웨아 로베르토 바조 파올로 말디니
파일:월드사커 로고.png
Player of the Year 1994
수상
파올로 말디니
2위
로베르토 바조
3위
호마리우
}}} ||
로베르토 바조의 기타 정보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연도별 전 세계 축구 이적료 1위
1989
로날드 쿠만
(900만 유로)
1990
로베르토 바조
(1310만 유로)
1991
로베르트 프로시네츠키
(1500만 유로)

브레시아 칼초 영구결번
No. 10

파일:유벤투스 FC 로고(화이트).svg
유벤투스 FC 명예의 거리 헌정 50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이름 국적 포지션 소속기간 출장경기 득점
피에트로 아나스타시(Pietro Anastasi) 이탈리아 FW 1968–1976 303 131
로베르토 바조(Roberto Baggio) 이탈리아 FW 1990–1995 200 115
로메오 베네티(Romeo Benetti) 이탈리아 MF 1968–1969
1976–1979
159 23
로베르토 베테가(Roberto Bettega) 이탈리아 FW 1969–1983 481 178
카를로 비가토(Carlo Bigatto) † 이탈리아 MF 1913–1931 233 1
잠피에로 보니페르티(Giampiero Boniperti) † 이탈리아 FW 1946–1961 462 182
펠리체 보렐(Felice Borel) † 이탈리아 FW 1932–1941
1942–1946
307 161
세르조 브리오(Sergio Brio) 이탈리아 DF 1974–1990 378 24
잔루이지 부폰(Gianluigi Buffon) 이탈리아 GK 2001–2018
2019–2021
689 0
안토니오 카브리니(Antonio Cabrini) 이탈리아 DF 1976–1989 440 53
움베르토 칼리가리스(Umberto Caligaris) † 이탈리아 DF 1928–1935 198 0
마우로 카모라네시(Mauro Camoranesi) 아르헨티나/이탈리아 MF 2002–2010 288 32
파비오 카펠로(Fabio Capello) 이탈리아 MF 1969–1976 239 41
프랑코 카우시오(Franco Causio) 이탈리아 MF 1967–1968
1970–1981
447 72
존 찰스(John Charles) † 웨일즈 FW 1957–1962 178 105
잔피에로 콤비(Gianpiero Combi) † 이탈리아 GK 1921–1934 367 0
안토니오 콘테(Antonio Conte) 이탈리아 MF 1992–2004 419 44
안토넬로 쿠쿠레두(Antonello Cuccureddu) 이탈리아 DF 1969–1981 433 39
에드가 다비즈(Edgar Davids) 네덜란드/수리남 MF 1997–2004 235 10
알레산드로 델피에로(Alessandro Del Piero) 이탈리아 FW 1993–2012 705 290
루이스 델 솔(Luis del Sol) 스페인 MF 1962–1970 294 29
디디에 데샹(Didier Deschamps)[1] 프랑스 MF 1994–1999 178 4
안젤로 디 리비오(Angelo Di Livio) 이탈리아 MF 1993–1999 269 6
치로 페라라(Ciro Ferrara) 이탈리아 DF 1994–2005 358 20
주세페 푸리노(Giuseppe Furino) 이탈리아 MF 1969–1984 528 19
클라우디오 젠틸레(Claudio Gentile) 이탈리아/리비아 DF 1973–1984 414 10
욘 한센(John Hansen) † 덴마크 FW 1948–1954 187 124
파올로 몬테로(Paolo Montero) 우루과이 DF 1996–2005 278 6
파벨 네드베드(Pavel Nedvěd) 체코 MF 2001–2009 327 65
라이문도 오르시(Raimundo Orsi) † 아르헨티나/이탈리아 FW 1929–1935 194 87
카를로 파롤라(Carlo Parola) † 이탈리아 DF 1939–1954 340 11
안젤로 페루치(Angelo Peruzzi) 이탈리아 GK 1991–1999 301 0
잔루카 페소토(Gianluca Pessotto) 이탈리아 DF 1995–2006 366 3
미셸 플라티니(Michel Platini) 프랑스 MF 1982–1987 224 104
피에트로 라바(Pietro Rava) † 이탈리아 DF 1935–1946
1947–1950
330 15
파브리치오 라바넬리(Fabrizio Ravanelli) 이탈리아 FW 1992–1996 160 68
비르지니오 로세타(Virginio Rosetta) † 이탈리아 DF 1923–1936 315 16
파올로 로시(Paolo Rossi) † 이탈리아 FW 1973–1975
1981–1985
138 34
산드로 살바도레(Sandro Salvadore) † 이탈리아 DF 1962–1974 450 17
가에타노 시레아(Gaetano Scirea) † 이탈리아 DF 1974–1988 552 32
루시디오 센티멘티(Lucidio Sentimenti) 이탈리아 GK 1942–1949 188 5
오마르 시보리(Omar Sívori) † 아르헨티나/이탈리아 FW 1957–1965 253 167
알레시오 타키나르디(Alessio Tacchinardi) 이탈리아 MF 1994–2005 404 14
스테파노 타코니(Stefano Tacconi) 이탈리아 GK 1983–1992 337 0
마르코 타르델리(Marco Tardelli) 이탈리아 MF 1975–1985 375 51
모레노 토리첼리(Moreno Torricelli) 이탈리아 DF 1992–1998 230 3
다비드 트레제게(David Trezeguet) 프랑스/아르헨티나 FW 2000–2010 320 171
잔루카 비알리(Gianluca Vialli) 이탈리아 FW 1992–1996 145 53
지네딘 지단(Zinédine Zidane) 프랑스 MF 1996–2001 214 31
디노 조프(Dino Zoff) 이탈리아 GK 1972–1983 476 0

[1] 세리에 B로 떨어지고 선수들이 이적하고 감독인 카펠로도 레알로 가버린 상황에 취임하여 2006-07 시즌 세리에 B에서 우승을 하고 바로 팀을 승격시켰다. 그러나 선수 영입 권한으로 갈등을 빚고 사임하였다. 그 후로 몇 년을 삐걱거린 것을 보면 정말 아쉬운 점이다.

}}} ||

}}} ||
이탈리아의 前 축구 선수
파일:0792bda2b734e3eb2a3ee9e4ca343512.jpg
이름 로베르토 바조
Roberto Baggio
출생 1967년 2월 18일 ([age(1967-02-18)]세)
베네토도 비첸자시 칼도뇨주
국적
[[이탈리아|]][[틀:국기|]][[틀:국기|]]
신체 174cm | 체중 73kg
직업 축구 선수 (공격수[1], 미드필더[2] / 은퇴)
축구 행정가
종교 불교 (창가학회)
주발 오른발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비첸차 칼초 (1983~1985)
ACF 피오렌티나 (1985~1990)
유벤투스 FC (1990~1995)
AC 밀란 (1995~1997)
볼로냐 FC (1997~1998)
인테르나치오날레 (1998~2000)
브레시아 칼초 (2000~2004)
행정가 이탈리아 축구 연맹 (2010~2013 / 기술위원장)
국가대표 56경기 27골[3] (이탈리아 / 1988~2004)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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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배우자 안드레이나 파비
장녀 발렌티나 바조
장남 마티아 바조
차남 레오나르도 바조
}}} ||
1. 개요2. 선수 경력3. 평가4. 기록
4.1. 대회 기록4.2. 개인 수상4.3. 수훈4.4. 클럽 기록
5. 어록6. 바조에 대한 헌사7. 기타
7.1. 외모7.2. WAGs

[clearfix]

1. 개요

이탈리아의 前 축구 선수. 선수 시절 포지션은 세컨드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판타지스타의 유래가 된 선수이며, 1993년 발롱도르, FIFA 올해의 선수를 석권하고, 1994 월드컵에서 뛰어난 활약으로 이탈리아의 준우승을 이끌었다.[4] 그가 브레시아 칼초에서 달았던 등번호 10번은 현재 구단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어 있다.

2. 선수 경력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로베르토 바조/선수 경력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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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평가

1990년대를 대표하는 공격수 중 한 명으로서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이자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다. 디에고 마라도나가 휩쓸고 지나갔던 1990년대 초반은 축구계를 지배하는 선수가 없었을 정도로 춘추전국시대였지만 그나마 호마리우와 함께 가장 선두에 서 있었던 선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바조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판타지스타[5]. 바조의 플레이는 감탄을 뱉게 할 만큼 환상적이었고, 바조는 팀의 공격 전체를 단신으로 주도할 수 있는 선수였다. 그러나 1990년대는 전술 발달로 클럽들이 선수 개인 기량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던 시기였고, 전술의 부품과 같은 플레이를 원치 않던 바조는 감독과 자주 불화를 겪어 저니맨 생활을 하게 됐다.

바조는 1993년 발롱도르, FIFA 올해의 선수를 수상하며 세계 축구계를 제패했고[6], 3번의 월드컵에서 16경기 9골[7] 2어시스트 및 준우승, 3위, 8강을 기록, 특히 1994 미국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하드캐리하며 결승까지 진출시켰다. 결승전 승부차기 실축[8]으로 준우승을 기록하며 실버볼을 수상하긴 했지만, 이탈리아 대표팀은 바조가 제외된 유로 1996에서 조별리그 탈락, 2002 월드컵에서 16강 탈락을 기록해 바조의 부재를 뼈저리게 체감하게 된다.[9] 이처럼 1990년대~2000년대 초반 그의 이탈리아 팀내 비중은 엄청난 것이었다.

오히려 후대에 평가가 더욱 올라가고 있는데, 비록 팀 커리어는 다른 역대 레벨 선수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하지만, 그가 보여준 개인 기량과 큰 대회 활약상이 고평가 요소가 되고 있다. 현대에 들어서 바조의 위상은 역대 20~30위권[10] 정도로 평가받는다.

4. 기록

4.1. 대회 기록

4.2. 개인 수상

4.3. 수훈

4.4. 클럽 기록

시즌 리그 리그 FA컵 대륙대회
경기 어시스트 경기 경기
1982-83 비첸자 세리에 C1 1 0 - 0 0 - -
1983-84 비첸자 세리에 C1 6 1 - 6 1 - -
1984-85 비첸자 세리에 C1 29 12 - 5 2 - -
1985-86 피오렌티나 세리에 A 0 0 0 5 0 - -
1986-87 피오렌티나 세리에 A 5 1 2 4 2 1 0
1987-88 피오렌티나 세리에 A 27 6 1 7 3 - -
1988-89 피오렌티나 세리에 A 31 15 4 10 9 - -
1989-90 피오렌티나 세리에 A 32 17 6 2 1 12 1
1990-91 유벤투스 세리에 A 33 14 12 5 3 8 9
1991-92 유벤투스 세리에 A 32 18 8 8 4 - -
1992-93 유벤투스 세리에 A 27 21 6 7 3 9 6
1993-94 유벤투스 세리에 A 32 17 8 2 2 7 3
1994-95 유벤투스 세리에 A 17 8 8 4 2 8 4
1995-96 밀란 세리에 A 28 7 10 1 0 5 3
1996-97 밀란 세리에 A 23 5 2 5 3 5 1
1997-98 볼로냐 세리에 A 30 22 6 3 1 - -
1998-99 인테르나치오날레 세리에 A 23 5 10 6 1 6 4
1999-00 인테르나치오날레 세리에 A 19 6 3 5 1 - -
2000-01 브레시아 세리에 A 25 10 10 3 0 - -
2001-02 브레시아 세리에 A 12 11 3 1 0 2 1
2002-03 브레시아 세리에 A 32 12 9 0 0 - -
2003-04 브레시아 세리에 A 26 12 11 0 0 - -

5. 어록

나는 축구와 20년 넘게 사랑을 했다. 축구를 할 수만 있다면 수명이 줄어들어도 좋다고 생각할 정도였다.어쩌면 나는 축구를 더 잘하기 위해 도핑을 사용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사용한 유일한 도핑은 끊임없는 노력이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플레이 중에서 항상 가장 어려운 것을 고르고 있다. 평범한 3골보다는 화려한 1골을 넣는 게 좋다. 그게 판타지스타다.
페널티킥을 득점한 건 아무도 기억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실축한 건 모든 이에게 영원히 기억된다.
선수 생활에 미련후회도 없다. 다만,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때 페널티킥은 다시 차고 싶다. 나는 매일 밤 악몽에 시달렸다.

6. 바조에 대한 헌사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탈리아만 그를 넘버원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 지네딘 지단
현재 전세계의 모든 현역 선수들은 전성기의 디에고 마라도나에 미치지 못한다. 그리고 그를 제외한 세계 최고의 선수는 로베르토 바조라고 생각한다.
감독이나 평론가, 해설자축구를 분석하고 해석해 법칙을 찾아낸다. 그들은 축구를 좁게 만든다. 하지만 바조의 플레이는 감독이나 평론가, 해설자들에게 이렇게 고한다. '축구는 이런 것이다'라고. 바조는 축구를 넓게 만든다.
- 요한 크루이프
로베르토 바조는 최고의 이탈리안 판타지스타다. 그는 메아차보니페르티보다 낫고, 역대 최고 중에 포함된다. 펠레, 마라도나, 그리고 아마도 크루이프 바로 뒤엔 위치하겠지. 무릎 부상 문제가 없었다면 아마 바조는 역대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 카를로 마초네
그를 나와 비교하지 마라. 그는 유일무이한 선수다.
- 디에고 마라도나
그는 마라도나보다 더 생산적이었으며 의심의 여지없이 세리에 A 최고의 넘버 10이다. 그리고 그는 아직도 보여줄 게 많으며 더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
- 미구엘 몬튜오리, 1988-89 시즌의 바조를 두고
그는 이탈리아 축구의 기념비
- 마르첼로 리피
바조는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시대에 흔적을 남겼다
- 조반니 트라파토니
메아차리베라가 뛰는 것도 봤다. 그러나 이탈리아 역대 최고의 선수는 바조다.
메아차를 볼 수 있던 행운을 누렸다. 그리고 바조의 플레이를 보며 그를 떠올렸다. 바조는 판타지를 지니고 있다.
- 잔니 브레라
바조가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건 하나의 불행이다. 그는 브라질에서 태어났어야 했다.
- 펠레
그는 기술적으로 완전무결하다
그는 필드 안에서 불가능한 일이 없다
- 지쿠
그는 완벽한 9.5번이다. 그는 진정한 9번은 아니지만 고전적 10번보다는 많이 득점하는 선수다.
- 미셸 플라티니
1994 월드컵은 바조와 나의 대회였다.
- 호마리우
그는 모든 걸 할 수 있는, 에 두고 그야말로 모든 걸 할 수 있는 축구계의 몇 안되는 희귀종 중 하나다.
- 장피에르 파팽
로베르토 바조는 진정한 축구의 천재였다. 그건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어려운 걸 쉬워 보이게 했다. 그는 플라티니가 말했던 것처럼 9번10번 사이의 선수였다. 미드필더도 아니었지만 스트라이커도 아니었다.
바조는 문제가 없었어요. 그를 데리고 있던 코치들이 문제였죠. 그들은 바조와 같은 재능을 다룰 재간이 없었던 겁니다.
- 알레산드로 알토벨리
바조는 지금까지 함께 뛰어본 선수들 중 최고였다
나는 운이 좋게도 여러 위대한 선수들과 함께 플레이했다. 그 중 로베르트 바조는 가장 스페셜했다. 나는 라우드럽, 호마리우, 쿠만, 호나우두, 스토이치코프와 함께 플레이했다. 그러나 바조 같은 선수는 보지 못했다.
- 펩 과르디올라
내가 겨뤄본 상대 중 최고의 선수는 바조다. 그는 축구가 쉬운 것처럼 보이게 했다.
- 맷 르티시에
이탈리안들은 그들의 조직력에 엄청난 강조점을 둔다. 그리고 그들의 영감은 바조로부터 나온다.
- 데이비드 플랫
그는 1994 월드컵에서 우리 아일랜드를 상대로 최고의 경기를 펼치진 못했지만 결국 이내 환상적인 토너먼트를 가졌지. 천재적인 선수야.
- 데니스 어윈
만일 다시 태어난다면 로베르토 바조로 태어나고 싶다.
- 파올로 말디니
난 바조를 세컨드 스트라이커가 지금처럼 각광받지 못하던 시절에 태어난 선수라 생각합니다. 그는 분명히 그 포지션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였어요. 지금 우리는 믿을 수 없는 클래스의 선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
그는 정말 믿을 수 없는 선수다. 그는 우리 대표팀보물이다.
- 잔프랑코 졸라
정말 천부적인 재능. 또한 선수들을 제치고 수비진에 침투하는데 거대한 능력을 지녔다. 그의 움직임과 기술 때문에 그는 마크하기가 까다롭다. 팀이 언제나 도움을 구하는 선수다.
- 알베르트 페레르
당신은 로베르토 바조를 본다. 그리고 이내 좋은 선수란 어떤 선수인지 깨닫게 된다.
- 라이언 긱스
부끄러운 일이지만 난 축구 선수를 보며 운 적이 두 번 있다. 첫번째는 로베르토 바조고 두번째는 라이언 긱스다.
-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그는 1994 월드컵 8강전에서 스페인을 상대로 골을 넣어 탈락시켰지만 내가 언제나 매우 동경해온 선수임에는 변함이 없다.
- 라울 곤살레스
바르사에서 인테르로 이적해 온 호나우두도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하지만 내가 인테르에서 20년 동안 함께 뛰었던 선수 중에서 가장 위대한 단 하나의 이름을 말해야만 한다면, 그것은 로베르토 바조가 되어야 한다. 그는 퀼리티열정 사이에서 이상적인 밸런스를 가졌다.
- 하비에르 사네티
말총 머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계속 이렇게만 플레이한다면 레게 머리를 한다 해도 개의치 않겠다.
로베르토 바조는 라파엘로와 같다. 델 피에로는 그의 제자이므로 핀투리키오가 된다.
- 조반니 아그넬리
천사들은 그의 다리 사이에서 노래한다.
- 알도 아그로피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우리 팀 최고의 선수다.
- 아리고 사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바조는 위대한 선수이며 난 그에게 엄청난 관심이 있다.
- 알렉스 퍼거슨
1990 월드컵 당시 나는 자원봉사 볼보이로서 체코전에 참가했다. 그리고 그 날 나는 미드필드에서 공을 잡아 30m를 폭풍같이 질주하고 골을 성공시킨 한 선수를 봤다. 나는 그를 보며 커서 꼭 저런 선수가 되리라 다짐했고, 그 꿈을 이룰 기회가 이제 오고 있다.
- 프란체스코 토티, 2002 월드컵 출전을 앞두고
체코슬로바키아의 경기에서 넣은 결승골이 가장 아름다웠고 환상적인 골이었다. 이전엔 바조를 몰랐으나 이 한 골과 그의 크고 푸른 눈이 나를 사로잡았다. 지금도 마음속에 바조가 남아 있다.
- 마돈나
바조와 같은 축구선수를 만나려면 적어도 앞으로 20년이 걸릴 것이다
-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바조를 이탈리아에 그냥 남겨두겠다니, 한 마디로 이건 불공평하다. 다른 선수들에게 주어진 기본적인 기회마저 봉쇄해 놓았기 때문이다.[11] 바조는 혼자서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선수다.나는 트라파토니의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 파올로 디 카니오, 바조의 2002 월드컵 대표팀 소집을 촉구하며
축구에 대해 관심이 없는 미국의 독자들에게 나는 로베르토 바조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장거리 육상 선수들의 무한한 지구력, 단거리 선수들의 스피드, 러닝백의 밸런스와 포인트 가드의 시야를 모두 지닌 선수다.
---
- 마크 우즈
로베르토 바조를 볼 때마다 하나 생각나는 말이 있다. 품격과 격조는 시간이 지나도 쇠락하지 않는다. 그는 몸소 이 것을 증명하고 있다.
- 이탈리아 데이터 스포트
그와 처음 그라운드에 선 날 나는 흥분해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꿈만 같은 시간이었다.
- 잔루카 잠브로타
바조가 브레시아에서 활약할 당시 그는 다른 선수들이 절대 따라할 수 없는 프리킥을 선보였다. 나는 그걸 배우기 위해 노력했다.
- 안드레아 피를로
로베르토 바조와 시합을 하고 난 뒤 너무 감격해서 눈물까지 흘렸다
- 안정환

7. 기타

  • 월드컵 결승전에서 실축한 PK 때문에 PK 관련 이미지가 좋지 않은 듯 한데, 바조는 122시도 106골, 약 86%란, 이탈리아 역대 1위의 PK 성공률을 자랑하는 선수다. 바조는 은퇴인터뷰를 통해 이런 토로를 남겼다.
선수 생활에 미련후회도 없다. 다만,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때 PK는 다시 차고 싶다. 나는 매일 밤 악몽에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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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년 10월, 유소년 지도자가 돼 베이징체육대학교에서 축구학과 대학생·박사들을 대상으로 유소년 지도법 강의를 진행했다. 특히 '운동(brain kenetic)'란 주제로 자신의 경험을 전수, 동시에 자체 개발한 연령별 프로그램으로 10세 이하와 14세 이하 선수들을 직접 지도했다. 바조는 마지막 날인 18일 대학 포럼에서 '현대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능'이라며 '앞으로 중국도 이를 간과하지 않는다면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 축구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파일:딸 발렌티나 바조와 함께 셀카를 찍은 로베르토 바조.png
  • 발렌티나 바조가 자신과 제일 많이 닮았다.
  • 바조의 선수 시절을 다룬 'Il Divin Codino[13]'가 넷플릭스에서 공개됐다.
  • FIFA 19에서 아이콘으로 추가됐다.
  • 바조의 근황은 아내 안드레이나 파비와 딸 발렌티나 바조의 인스타그램에서만 볼 수 있을 정도로 조용하다.
  • 2022 월드컵 결승전을 앞두고 승부차기까지는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유는 당연히 자신의 실축 때문. 다른 선수들이 그 아픔를 겪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고, 이외 자신의 실축과는 별개로 월드컵 승부차기 3전 전패를 기록했기 좋은 기억이 없다고. 그러나 바조의 바람과 반대로 결승전은 승부차기까지 이어졌고, 킹슬리 코망오렐리앵 추아메니가 실축해[14] 아르헨티나가 우승하게 된다.
파일:La lettera di Roberto Baggio ai giovani.jpg
  • SGI 신도다. 때문에 가톨릭의 본산인 이탈리아에서 바조의 개종 루머는 수시로 돌았고 '이탈리아인들이 바조를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루머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자연을 즐기는데는 보는 것만으로 부족하다며 자신의 농장에서 사냥을 즐긴다.
  • 안정환루드 굴리트와 더불어서 가장 존경하고 좋아하는 선수가 로베르토 바조였다고 밝혔다.[15] 실제로 페루자에서 뛰던 시절에 같이 바조를 상대했던 경기에서는 너무 감동을 해서 눈물까지 흘리면서 뛰었다고 이야기를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가 뽑은 이상형 월드컵 미드필더 부문에서 다른 경쟁자들을 모조리 관광보내고, 지네딘 지단을 아슬아슬하게 꺾고 우승했다. 실제로는 지단을 최고의 미드필더라고 생각하지만, 역시 바조와 굴리트를 더 좋아하는 듯 하다. 바조와 함께 식사를 함께 한 적도 있었는데 너무 멋있더라면서 감탄했다고. 솔직히 외모도 자신보다 바조가 낫다고 할 정도이다. 여담으로 안정환의 플레이스타일이 바조와 자주 비교되는 델 피에로와 비슷하다는 평을 받는데 사실은 바조를 동경하는 만큼 그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 대한민국의 한 대학교 사학과 교수가 교수가 되기 전 2010년 그의 집에 초대된 적이 있다. 링크

7.1. 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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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저 미남은 누구야?
마돈나, 바조의 1990 월드컵 체코슬로바키아전 장면을 보며
그에겐 여성들을 기절하게 만들고 동시에 남성팬들을 울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가브리엘 마코티
바조의 눈빛은 정말 매혹적이다. 많은 여성팬이 그의 눈빛에 감전됐다
2008 올림픽 기념주화 제조사 초청 흥보대사로 중국 방문을 한 바조를 본 중국 여성팬
미남 축구선수로 유명하다. 판타지스타의 조건에 외모가 들어간 이유로, 미국의 어느 기자가 바조의 외모를 보고 '여성들에게 인기폭발하게 생겼다'고 말할 정도였고, 마돈나가 바조에게 프로포즈를 할 정도였다. 나이가 든 현재도 미중년이다.

7.2. WA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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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동창 안드레이나 파비와 1989년결혼, 2남 1녀를 두었다.

[1] 세컨드 스트라이커[2] 공격형 미드필더[3] 대표팀 역대 득점 공동 4위.[4] 그리고 결승전에서의 승부차기 실축으로 더 유명하다.[5] 애초에 판타지스타 자체가 바조를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어다.[6] 바조의 발롱도르 순위는 1993 1위, 1994년 2위로 잔니 리베라와 함께 이탈리아 역대 최고고, FIFA 올해의 선수 순위도 1993년 1위, 1994년 2위로 파비오 칸나바로를 제치고 이탈리아 역대 최고다.[7] 6골이 토너먼트 골이다.[8] 이미 바레시, 마사로가 실축해 바조가 성공해도 베베투가 성공하면 준우승이 확정되는 상황이었다. 바조가 에이스로 독박을 쓴 것.[9] 유로 1996은 사키 감독과의 불화로, 2002 월드컵은 유로 2000에서 토티, 델 피에로의 맹활약으로 바조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한 트라파토니 감독의 외면으로 제외됐다.[10] 보통 메시, 펠레, 마라도나, 크루이프, 호날두, 베켄바워, 디 스테파노, 지단, 호나우두, 푸스카스, 플라티니 정도가 역대 10위권을 형성한다.[11] 월드컵 예선에서 바조를 한 번도 기용하지 않은 것[12] 사실 1989년 바조는 안드레이나 파비와 결혼을 했기 때문에 마돈나가 유부남에게 프로포즈를 한 것이라서, 바조가 제대로 대처를 한 것에 가깝다.[13] 한국명은 '로베르토 바조: 말총머리판타지스타'.[14] 다만 코망은 마르티네스에 막혔고 추아메니는 골대 옆으로 실축해 바조처럼 골대 위로 띄우진 않았다.[15] 루드 굴리트는 안정환과 세대가 완전 다르기 때문에 경기를 함께 뛰어보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