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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colbgcolor=#000> 조지 에드워드 무어 George Edward Moore | |
출생 | 1873년 11월 4일 |
영국 런던 | |
사망 | 1958년 10월 24일 (향년 84세) |
영국 케임브리지 | |
국적 | 영국 |
모교 |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컬리지 |
직업 | 철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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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의 철학자. 분석철학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흔히 G.E. 무어로 불린다.2. 업적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컬리지 출신이다. 대학에서 사적 단체인 블룸즈버리 그룹, 사도들의 멤버였으며 중심적인 인물이었다. 선배인 버트런드 러셀에게 강한 영향을 끼쳤고 존경을 받았다. 대학을 졸업한 후 연구원 생활을 했고, 케임브리지 대학교 강사가 되었다가, 교수로 취임하였다. 긴 시간 동안 철학잡지 Mind의 편집자였다. 1951년 메리트 훈장을 서훈받았다.[1]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과 함께 음악회를 가거나 철학을 논하는 등 교분을 맺었다. 한 때 갈등이 생겨 15년간 절교 상태에 있었으나 훗날 사이를 회복했으며 현재 케임브리지 성 자일스 교회[2] 묘지에 나란히 묻혀 있다.
그는 분석철학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분석철학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당시 영국 철학의 주류였던 독일철학과 헤겔철학의 흐름에 반기를 든 최초의 사람이었다. 윤리학 문제에도 관심을 많이 가졌으며, 그의 주저인 윤리학 원리(Principia Ethica, 1903년 저술)는 한국에도 번역되어 있다.
2.1. 《윤리학의 원리》(Principle Ethica)
무어의 윤리학은 그의 다양한 저작 가운데 1903년에 발표된 《윤리학의 원리》에서 가장 잘 드러나고 있다.무어는 인생의 목적이나 행동 법칙의 발견에 대한 방법론을 중심으로 하여 전통적인 윤리 이론을 주요한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였다. 그에 의하면 이는 형이상학적 윤리론(metaphysical ethics), 자연주의적 윤리론(naturalistic ethics), 직각론적 윤리론(intuitional ethics)으로 나뉘어진다.
무어는 전통적으로 선(善)에 대한 다양한 정의들이 모두 타당하지 않다고 비판하였다. 쾌락주의자들은 '좋다'와 '즐거움을 주다'를 동일한 의미로 주장했고, 어떤 자연주의자들은 '좋다'와 '욕구되다'를 동일한 것으로 취급했다. 그러나 무어는 이러한 정의들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X는 좋다"와 "X는 즐거움을 준다"가 같은 의미라면 "X는 즐거움을 줄 수 있지만 좋은 것은 아니다"는 주장이 모순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또한 '좋다'를 '도덕적 승인(moral approval)과 같은 특별한 감정을 일으킨다'로 정의하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봤다. 이는 좋은 상황이 특정 감정이나 욕구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전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자연주의 윤리학자들은 종종 '좋음'과 '좋은 것'을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우정, 건강, 명예, 자유, 평화 등이 모두 좋은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러한 좋은 것들은 동시에 좋음을 내포하면서 또한 즐거움을 제공한다고 설명한다. 이 두 가지를 구분하는 것은 때로 어려울 수 있다. "선이란 쾌락이다"는 정의는 이러한 동일시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동일시는 논리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이는 마치 모든 등변삼각형이 등변이면서 등각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등변은 등각이다"라고 정의할 수 없는 것과 유사하다. 무어는 이러한 오류를 자연주의적 오류(naturalistic fallacy)로 지칭했다. 이는 가치어(value terms)를 비가치어(non-value terms)로 정의하려는 정의적인 오류와 가치 판단을 사실적 판단으로 해석하려는 추론적인 오류를 가리키며, 이러한 비판은 자연주의 윤리론 뿐만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윤리론에도 적용될 수 있다.
선은 매우 단순한 개념이기 때문에 정의를 명확하게 내리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건이 좋은지 나쁜지를 다른 알려진 사실을 기반으로 추론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선은 직접적으로 체감되고 이해되어야 한다고 무어는 주장했다. 여기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어떤 사물의 성질이 좋은지 나쁜지에 대한 문제는 추론이나 논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특별한 성질이라는 점이다. 무어는 또한 선악이 초경험적인 성질이라고 주장하여 그것을 가치실재론으로 이끌었다. 만약 선악이 경험을 초월한 것이라면, 그것은 시간이나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을 것이며 일정한 전체가 한 번에 좋다고 사실이라면, 그와 똑같은 전체는 어디에서든 언제든 그만큼 좋을 것이다.
무어의 윤리학은 쾌락적 공리주의와 구분하기 위해 이상적 공리주의(agathistic utilitarianism)로 불리며, 이것은 쾌락만이 유일한 본래적 선이라고 주장하는 쾌락적 공리주의와 차별화된다.
무어는 헨리 시즈윅의 직각론적 공리설의 영향을 받았다. 시즈위크는 이전의 공리주의가 가지고 있는 이론적 문제, 특히 행동이 반드시 쾌락을 목표로 삼는다는 심리설의 문제와 사실판단으로부터 가치판단을 도출하려는 논리적 어려움을 인식했다. 그러나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 최고의 선이라는 공리주의적 결론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이 결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 최고의 선임이 직관적으로 명백하다고 주장하여 직각론적 기초 위에서 공리주의를 옹호하였다. 무어 역시 최대다수의 최대 선이 인생의 궁극적 목표임을 명백한 원리로서 받아들이는 시즈위크의 입장에 가까웠다.
[1] 영국의 철학자 중 메리트 훈장을 받은 사람은 브래들리, 알렉산더, 화이트헤드, 러셀, 무어가 있다.[2] St Giles' Church, Cambridge. 잉글랜드 국교회 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