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1-19 22:01:21

이은주(배우)

파일:이은주_배우.png
이름 이은주(李恩主)
출생 1980년 12월 22일
전라북도 군산시 월명동
사망 2005년 2월 22일(항년 24세)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발인예배 2005년 2월 24일, 분당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신체 170cm, 48kg, A형
본관 덕수 이씨
학력 군산초등학교
군산여자중학교
군산영광여자고등학교
단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종교 개신교(장로회)[1]
데뷔 1997년 드라마 '스타트'
링크 팬카페

1. 소개2. 생애3. 자살4. 유서 전문5. 출연작
5.1. 영화5.2. 드라마5.3. 뮤직비디오
6. 수상 경력7. 트리비아

1. 소개

대한민국배우.

도시적인 차가움(이지적이고 팜므파탈적인)과 따뜻한 감성을 고루 갖춘 대체할 수 없는 분위기를 가진, 2000년대 초중반을 대표했던 여배우였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연기력과 특유의 아우라를 통해 연상의 대배우들과 작업할 때도 자신만의 느낌을 잃지 않고 스스로의 존재를 대중들에게 일찍 각인시켰던 배우였다.

그러나 한창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던 2005년 2월 22일, 우울증 증상이 심해지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때 그녀의 나이 고작 25살.

생전에 탄탄한 커리어를 쌓아가며 영화, 드라마에서 입지를 굳혀나갔으며 필모그래피가 쌓일수록 많은 사람들이 한국 영화계를 이끌어 갈 차세대 여배우로 손꼽곤 하였다.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최고의 여배우로 성장하였을 것이라는 것에 이견이 없다. 그렇기에 일찍 떠난 것이 더욱 큰 아쉬움으로 다가오는 배우이다.

2. 생애

전라북도 군산시에서 1남 1녀중 둘째로 태어났다. 이은주의 친가는 군산에서 '흥보당'이라고 하는 금은방을 운영했었다. 아버지는 프로 당구 선수 출신으로 '흥보당'의 일을 돕다 금은방이 문을 닫은 후에 '천일당구장'을 운영하였다. 어린 시절을 부유하게 자란 이은주의 원래 꿈은 피아니스트였는데 5살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피아노를 배웠다.

1996년 선경 스마트 학생복 모델 선발 대회에 은상으로 입상하였다. 당시 그녀는 군산영광여자고등학교 1학년 재학 중이었는데 어머니와 교복을 사러 갔을 때 매장 주인이 교복모델 대회에 나가볼 것을 권하였다. 이은주 자신은 별 관심이 없었으나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 몰래 원서에 사진을 붙여 보낸 것이 예선을 통과하였고 총 50명 중 7명을 뽑는 본선에 참가하였는데 정작 자신은 초대 가수들을 볼 생각으로 올라갔지 뽑힐 생각은 하지도 않았었다고. [2]

그 해 말 스마트 교복 CF에 나오게 되었고 그 다음 해 KBS 2TV의 드라마 '스타트'를 통해 연기자로 데뷔했다.


이은주가 처음으로 등장한 당시 스마트 교복 CF

카이스트로 유명해지기 전에는 예능에도 간간히 출연했었다. 첫 예능 프로가 '코미디 전망대'였는데 '요즘 애들 이렇게 살아요' 코너에 고등학생 신분으로 출연했다.[3] 이후 '좋은 친구들', '가족오락관', '퍼즐특급열차'에도 출연했었다.

1998년 8월 SBS 납량특집드라마 <어느날 갑자기>에서 귀신과 함께 스티커 사진기에 찍힌 후 자살하는 여고생 박성주 역으로 짧게 출연하였고 8월 말부터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백야 3.98> 1화에서 아나스타샤 (심은하)의 어린 시절 역으로 출연 하였다.

1998년도 말 그녀는 박종원 감독의 영화 <송어>에 캐스팅 되어 처음으로 영화에 입문하게 된다.

이은주는 이 영화에서 어쩌다 시골 여행에 따라가게 된 '정화'(강수연)의 여동생 역인 '세화'를 맡게 되었는데 첫 영화 데뷔작인데다 10대임에도 불구하고 설경구, 강수연과 같은 기라성 같은 배우들 앞에서도 자신의 맡은 순진한 여고생 역을 잘 연기한다. 영화 내용상 다소 선정적인 장면들도 나오는데 첫 데뷔작이자 고등학생 역 치고는 다소 무거운 역이었다.

사실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은주는 음대에 진학하여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 목표였고 그녀는 촬영이 끝나면 피아노 학원으로 가서 피아노 연습을 했었다. 그러나 <송어>를 촬영하면서 연기자가 되기로 결심, 1999년 단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로 진학하였다.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게 된 계기는 1999년 SBS에서 방영된 드라마 <카이스트>에 출연하면서부터이다. 당시 카이스트는 최고 시청률이 33.6%에 달할 정도로 인기있는 드라마였는데 여기서 이은주는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하며 장학금을 타기 위해 겉으로는 자기 방어적으로 가시 돋힌 말을 타인에게 내뱉으며 현실적으로 돈을 쫓지만 속으로는 팀원들을 생각하는 '얼음공주' 구지원 역을 잘 표현해 냄으로써 대중들의 많은 공감을 얻어냈다.


방영 당시 큰 인기를 모으며 화제가 되었던 <카이스트>.

드라마 방영당시 구지원 역은 시청자들의 압도적인 호감을 받으며 최고의 인기 캐릭터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이 때 드라마의 인기로 멤버들과 함께 인기가요에 특별 무대로 나와 주제곡 '마음으로 그리는 세상'을 불렀는데 직접 솔로 파트를 부르기도 했다.

한편, 송어의 출연은 그녀가 본격적으로 영화에 발을 내딛게 되는 계기가 되었는데 영화 홍보 차 KBS 파워 인터뷰라는 프로에 강수연과 함께 출연했을 때 이를 본 홍상수 감독이 자신이 구상하고 있던 새 영화의 주인공으로 찍고 연출부를 통해 섭외 전화를 하게 된다. 그 영화가 바로 <오! 수정>이다. 처음에는 스케줄 때문에 거절하였는데 이후 홍상수가 직접 여러 번 전화를 걸어 영화 출연을 성사 시켰다.

2000년에 개봉한 흑백영화 <오! 수정>에서 주연으로 발탁되며 본격적으로 영화배우로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 작품이 칸 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 초청작과 전주국제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한 것. 이를 통해 이은주는 제 38회 대종상 영화제 신인여우상을 수상한다. [4]

이 때부터 영화배우로서 그녀의 본격적인 커리어가 시작된다.

2001년 김대승 감독의 <번지점프를 하다>에 극 중 '인우'(이병헌)의 대학 시절 첫사랑인 '태희' 역으로 출연, 아련하고 심금을 울리는 옛 첫사랑의 모습을 잘 연기하였다. 특히나 영화 속 노을지는 석양에서 이병헌과의 왈츠 씬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영화 역시 서울 관객 50만 관객을 넘기며 흥행하였고 그녀는 충무로의 주목받는 여배우로서 성장하게 된다.


번지점프를 하다의 왈츠씬

이후 <연애소설>, <하늘정원>,<하얀방>,<안녕UFO>등의 작품에 주/조연으로 출연하며 필모그래피를 쌓아 나가며 배우 이은주만의 독보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연애소설 역시 서울 관객 59만명을 넘기며 흥행을 이어나갔고 이 영화를 통해 그녀는 그 해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 후보로 선정되었다. 다만 안타깝게도 이후의 작품들은 흥행에는 대부분 성공하지 못했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그녀가 출연했던 영화 중 천만 관객을 돌파한 작품으로서 비중이 크지 않았지만 극 중 '진태'(장동건)와 결혼을 앞두고 가족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보도연맹 명단에 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하는 '영신'을 연기함으로써 많은 관객들의 눈물을 자아냈다.


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자아낸 태극기 휘날리며에서의 '영신'의 죽음.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안녕UFO>에선 장님 역할을 맡아 새로운 연기 시도를 보여주었다.

파일:bulsae.jpg
이은주에게 전성기를 가져다 준 작품 불새

영화에서 다소 주춤하던 그녀는 2004년 다시 브라운관으로 돌아오게 된다.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이후 4년 만의 복귀였다.[5]바로 MBC 불새를 통해서였다.

드라마는 크나큰 신드롬을 일으키며 최고 시청률 31.7프로를 달성하였고 동시간대 경쟁 드라마를 통틀어 시청률 1위를 기록, 수많은 팬을 양산하였다.

불새를 통해 이은주는 그간의 부진을 떨쳐내고 '라이징 스타'에서 한국 연예계를 대표하는 스타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불새의 성공으로 그녀의 인기는 한국을 넘어 아시아 국가들로도 퍼져나가 홍콩 배우 양조위보그 화보까지 촬영하였다. 이렇듯 국내 외 각종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이은주의 커리어는 탄탄대로 장및빛으로 보였다.

이후 차기작(이자 유작이 된) 영화 주홍글씨에서 재즈 가수로 분하여 더 코어스의 'Only When I Sleep'을 직접 부르고, 파격적인 노출 연기를 감행하는 등 작품에 모든 걸 쏟아 부었다.


그녀가 영화에서 직접 부른 Only When I Sleep

그러나 이전부터 앓고 있던 우울증과 영화 촬영 이후 후폭풍은 그녀에게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와 후유증으로 다가왔다. 이미 그녀는 이전부터 수면 부족을 비롯한 생활 패턴의 붕괴를 겪으며 우울증 증세를 겪고 있었다. 사실 우울증은 2004년 1월 <안녕UFO> 홍보차 KBS 비타민에 출연하였을 때, 의사로부터 경미한 증상으로 진단 받았었고 수면 나이는 무려 50세가 넘었었다. [6] 주홍글씨에서의 힘든 노출 연기와 트렁크 신(보면 멘붕 수준이다) 등도 계속되는 스트레스를 악화시켰다. [7] 영화 개봉 이후 그녀의 인터뷰 영상들을 보면 이전과 비교해 확연히 수척해지고 얼굴에는 웃음기가 사라진 것이 느껴질 정도.

그러나 대외적으로는 불새 이후의 인기를 실감하듯 차기 드라마 출연에 대해 구두 합의를 하고 각종 CF, 화보 촬영을 진행, 2004년 10월 말에는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하였다. 영화 주홍글씨는 그 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폐막작으로 상영되었고 이은주는 집중 조명을 받으며 영화제 기간 동안 각종 연예 프로 및 다양한 미디어로부터 인터뷰를 했다. SBS 좋은 아침에서는 따로 25분 가량 시간을 할애해서 불새 이 후의 바쁜 행보와 부산국제영화제 방문 기간 동안의 그녀를 밀착 취재 및 인터뷰 하였다. [8]

11월에는 제 25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에 참석, 직접 영화 주홍글씨에서 불렀던 'Only When I Sleep'을 라이브로 부르기도 하였다. 이 영화제에서 그녀는 '여우주연상' 후보로 노미네이트 되었으나 안타깝게도 수상하질 못했다.[9]


2004년 제 25회 청룡영화상에서 그녀가 라이브로 부른 'Only When I Sleep.'

12월에는 무려 제1회 베이징 한국 영화제에 초청받는 등 바쁜 행보를 이어 나갔다. 심지어 사망 며칠 전에도 화장품CF까지 계약하는 등 누구도 그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리라 믿지 않았다.

2005년 2월 18일, 단국대 졸업식에 얼굴이 잘 안 보일 정도로 벙거지를 푹 눌러쓰고 참석한 후에 도망가듯이 빠져나가는 와중에 연예가중계와 짤막하게 인터뷰를 했던 것이 그녀가 대중에게 비춰진 마지막 모습이 되었다.

3.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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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2월 22일, 분당 자택 본인의 방 드레스룸에서 목을 매 숨진 채 오빠에 의해 발견되었다. 경찰은 단순한 우울증으로 인한 충동적 단순 자살로 수사를 마무리 지었으나, 죽기 며칠 전 자신이 재학 하던 단국대학교 연극영화과 졸업식에도 참여해서 밝은 미소를 보여준 사람이 우울증으로 자살했다는 것을 수긍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아 주홍글씨, 가족과의 관계 등 각종 루머가 양산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꽤 오래전부터 우울증 증상을 앓았고 관련 전조 증상들이 그녀의 사망 후 뒤늦게 재조명 받았다. 앞서 예능 프로그램 비타민에서는 우울증 위험이 높다고 판정되었으며 평소에도 수면 부족이 심했었던 것이 드러났다. 유작이 된 영화 주홍글씨 관련 인터뷰에서 "지난 1년 간 너무 고통스러워 죽고 싶었던 적이 많았다"고 기자에게 지나가듯 털어놓기도 하였다.

이미 이전부터 심한 불면증과 식욕부진으로 인한 체중 감소, 외로움 등 전형적인 우울증 증세를 보였었고 이러한 증상은 영화 주홍글씨 이후 더 심해졌다. 더불어 그녀의 개인적인 고민으로 스트레스가 많았던 듯하며 수면 부족과 같은 생활 패턴의 붕괴는 이러한 증상을 더 부채질 했다.

그녀의 지인 하 씨의 인터뷰(유서 속 언니)[10]에 의하면 그 당시 이은주는 자신에게 마음의 병이 있다는 것을 인지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유럽 여행을 다녀오는 등 노력했지만, 우울증이라는 병이 자신을 죽음에까지 내몰 위험한 병인지는 미처 몰랐다고 전했다. 실제로 그녀는 자살 직전 두 차례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불면증과 거식증을 호소하며 진료를 받았다. 그녀는 의료진으로부터 검사를 위해 입원 권유를 받았으나 거절했고, 그 다음 진료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후 자살했다.

자살 직전 우울증으로 힘겹던 때, 그녀의 소원을 적은 메모지에는 "지금 왜 아픈지, 어디가 아픈지 모르지만 빨리 낫기를 희망합니다"라고 적혀있었다고 한다.

이은주 사후 언론사에서 하 씨와의 단독 인터뷰 때 당시의 일화가 좀 더 자세히 드러나 있다. 평소 이은주는 마음이 우울할 때면 소나무 묘목을 사다가 집 근처 강변에 직접 심으며 스트레스를 풀곤 했는데, 2월 초에 나무를 사려다가 주인이 아직 땅이 얼어서 나무를 심으면 곧 죽는다고 해 대신 새해 소원을 적어 나무를 심으려던 자리에 묻었다. 하 씨에 따르자면, 오랜만에 이은주는 환하게 웃었으나 그로부터 보름 후 세상을 스스로 떠났다. 장례를 치른 뒤 하 씨는 그녀가 적은 소원을 파보았고 그 소원이 바로 메모지였다. 생각해 보면 그녀가 얼마나 스스로 고통스러워 했으며 마음의 병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했는지 알 수 있는 마음 아픈 부분...두 번째 소원은 "좋은 여배우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세 번째 소원은 "우리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랍니다"였다고 한다. 해당 종이는 지금 이은주의 어머니가 보관하고 있다고. 기사 전문

장례식에는 그녀가 소속되어 있던 나무엑터스의 연예인들은 물론 많은 배우, 가수, 연예인 지인들이 참석하였고 발인 시 그녀의 옛 연인이기도 하였던 배우 김정현이 영정 사진을 들었다.

그런데 그녀의 자살 직후에 가수 전인권이 갑작스럽게 자신과 이은주가 연인 사이였다는 주장을 해서 세간의 비난을 받았다. 이에 이은주의 친오빠는 분노하며 이를 전면 부인 하는 글을 썼다. 위에도 언급된 그녀의 친한 지인이었던 하 씨는 둘의 관계는 전인권의 일방적인 집착에 가까운 행동이었다고 전했다. 이은주는 전인권을 그저 연예계 선배님 그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전인권의 이 같은 행동(수십 통의 문자를 보낸다든가)을 매우 부담스러워 했지만 이은주의 여린 성격 탓에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줬다고 전했다. 그 당시 이은주는 2살 연상의 회사원 남자친구도 있었다고 하 씨가 사후 인터뷰에서 밝혔다. 위에도 언급된 하 씨와의 인터뷰 전문을 읽어보면 전인권의 행동이 좀 더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 가뜩이나 심란해 할 유족들을 더 당황스럽게 했다는 점에서 전인권은 한동안 비난을 면치 못했다.

4. 유서 전문

엄마 사랑해. 내가 꼭 지켜줄 거야. 일이 너무나 하고 싶었어.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게 되어 버렸는데 인정하지 못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 힘듦을 알겠어…

엄마 생각하면 살아야 하지만 살아도 사는 게 아니야. 내가 꼭 지켜줄 거야. 늘 옆에서 꼭 지켜줄 거야. 누구도 원망하고 싶지 않았어. 혼자 버티고 이겨보려 했는데… 안 돼… 감정도 없고… 내가 아니니까. 일 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어. 맨날 기도했는데 무모한 바람이었지. 일 년 전이면 원래 나처럼 살 수 있는데 말야.

아빠 얼굴을 그저께 봐서 다행이야. 돈이 다가 아니지만 돈 때문에 참 힘든 세상이야. 나도 돈이 싫어. 하나 뿐인 오빠. 나보다 훨씬 잘났는데 사랑을 못 받아서 미안해. 나 때문에 오빠 서운한 적 많았을 거야. 가고 싶은 곳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먹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가족끼리 한 집에서 살면서. 10년 뒤 쯤이면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다 해보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가장 많이 가장 많이 사랑하는 엄마,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는데.-내가 꼭 지켜줄게 꼭 지켜줄게.-
마지막 통화: 언니…고마웠고 미안했고 힘들었어. 꼭 오늘이어야만 한다고 했던 사람. 고마웠어-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날 사랑해줬던 사람들-만나고 싶고 함께 웃고 싶었는데…일부러 피한 게 아니야. 소중한 걸 알지만 이젠 허락지 않아서 미안해.

5. 출연작

5.1. 영화

5.2. 드라마

5.3. 뮤직비디오

6. 수상 경력

수상 연도 시상식 부문 작품
2001년 대종상 신인여우상 오! 수정
2004년 MBC 연기대상[11] 베스트커플상 (With 이서진) 불새
여자 최우수상
2005년 디렉터스 컷 시상식 특별 연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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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트리비아

  • 원래 꿈이 피아니스트였을 정도로 그녀의 피아노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배워 음대 진학을 목표로 삼다 연기에 매력을 느껴 연극영화과로 진학한 케이스이다. 생전 그녀의 피아노 실력은 그녀가 출연한 작품들에서도 볼 수 있는데 <카이스트>에서도 그녀가 직접 피아노 치는 장면이 몇 번 등장한다. 심지어 피아노 치던 어린 시절의 자신의 모습을 환영으로 마주치는 납량특집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 영화 주홍글씨에서도 등장한다. 생전에 이소라의 프로포즈에도 나와 이병헌과 호흡을 맞춰 빌리 조엘의 'Just The Way You Are'을 연주하기도 하였다.

직접 감상해 보도록 하자.
  • 가수 바다와 생전에 매우 절친한 사이였다. 단국대학교 선-후배 사이였던 둘은 평소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로서 바쁜 와중에도 이틀에 한 번 꼴로 전화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2005년 2월 이은주가 생을 달리 하였을 때 충격으로 잠깐 쓰러지기도 했었고 제일 먼저 빈소를 찾아 오열하며 자리를 지켰다. 고인이 세상을 등지기 전 날까지 전화통화를 했었던 것으로 드러나 많은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다. 발인 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울면서 불렀다. 또한 생전에 고인과 찍었던 사진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모아 고인의 어머니께 전달하기도 하였다. 고인의 사망 1개월 후 연예가중계에서 직접 찾아가서 심경을 물어보자 눈물을 감추질 못했는데 그만큼 고인의 죽음이 큰 충격이었던 듯. 이후에도 이은주의 추모 공연에서 노래를 부르고 자신의 sns에 고인을 언급하는 등 안타깝게 생을 저버린 그녀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계속 보여주고 있다.
  • 생전 '여우주연상'을 꼭 수상받길 원했다. 2004년 7월 SBS <생방송TV 연예>에 나와 인터뷰 하길 여배우로서 '여우주연상'을 반드시 수상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었다. 그녀는 주홍글씨에서의 파격적인 열연을 선보이며 모든 것을 쏟아부었으나 안타깝게도 그 해 청룡영화제에서 후보로만 그쳤다. 그리고 세상을 일찍 떠남으로써 그녀의 수상 목록에는 '여우주연상'은 빠져있다. 만일 그녀가 그 해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더라면 그래도 우울증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어 아직까지 연기 활동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며 많은 팬들이 아쉬워하였다. 또한 깊은 연기력으로 만약 여태까지 살아있었더라면 후에라도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하였을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만큼 그녀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불러일으켰다.

[1] 생전에 선정릉역 인근 현대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교단)에 출석하였으며, 그녀의 사후 장례식도 교회에서 치러 주었다.[2] 참고로 이 대회에서 금상을 탄 사람이 바로 송혜교다.[3] 이 코너는 요즘 청소년들의 고민을 콩트로 풀어가는 코너였다.[4] 이때 수상소감으로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하구요. 너무 많이 떨렸어요. 정말 욕심나는 상이었는데 요번에도 못 받으면 어떡하나. 엄마 아빠 얼굴 어떻게 보나 이 걱정이 앞섰거든요. 엄마 오고 싶어했는데 상 못 탄다고 내가 못 오게 한 거 너무 미안하고 아빠 엄마 너무 사랑하고 앞으로 한국영화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고작 4년 후에 그녀가 세상을 등진 것을 생각하면 정말 마음 아픈 대목이 아닐 수 없다.[5] 해당 작품은 그 당시 MBC의 레전드 드라마 허준 으로 인해 시청률 한 자리수를 기록하며 외면받았었다.[6] 이 때 그녀는 정말로 솔직하게 응답했다면서 '지금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가?'에 대해서도 O를 쳤다고 말했다. 이미 그때부터 전조가 보였던 셈이다.[7] 영화 촬영 이후 6kg이 빠졌다고 하였으며 주홍글씨 관련 인터뷰 마다 영화를 '힘들게' 찍었다고 대놓고 말할 정도였다.[8] 해당 프로를 보면 이은주는 그간의 인터뷰와 달리 인기 많은 연예인으로서 비춰지는 스스로에 대해 다소 부담스러워 하는 모습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9] 상은 영화 아는 여자이나영이 수상하였다.[10] 유서의 '마지막 통화 언니 고마웠고 미안했고 힘들었어'의 그 언니다. 프리랜서 영화기획자로 일하는 하 씨는 이은주가 생전에 가장 믿고 의지했던 ‘언니’. 2002년 영화 ’하얀방‘ 촬영 당시 배우와 스태프로 만났다가 친해져 친자매 이상 가는 정을 나눴다고 한다.[11] 해외 체류를 이유로 불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