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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이래 최후 세대의 전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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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Российский императорский флот линкор «Гангýт» |
ВМФ Линейный корабль «Парижская коммуна» |
1. 개요
러시아 제국이 건조하고 운용한 드레드노트급 세바스토폴(Севастополь)급 전함. 이후 제정이 붕괴되고 소련으로 변화함에 따라 근대화 대개장[3]을 거쳐 소련 해군에서 옥차브리스카야 레볼루치야(Октябрьская Революция, 10월 혁명)급 전함으로 재취역하였다. 러시아 제국의 최초 드레드노트급이자 러시아 제국의 후신인 소련에서 유일무이하게 사용된 자국산 전함급으로 러시아 드레드노트급 전함의 처음과 끝을 장식한 함급이다.[4]동시대 전함으로서는 매우 빈약한 12인치 주포와 얇은 장갑, 시대에 뒤떨어진 구식[5]이라는 문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크게 활약했다. 특히 2번함 마라는 함생중 2번이나 격침되었지만 착저상태에서 함포를 쏘는 등 고군분투했다.
이름은 핀란드 항코(Hanko) 반도의 러시아어 표기에서 유래했다.[6] 러시아 제국 해군의 첫 승리가 대북방전쟁 당시 스웨덴 해군을 상대로 한 강구트 해전이었기 때문이다.[7]
2. 제원
세바스토폴형 전함[8] Линейные корабли типа «Севастополь» | ||
이전급 | 안드레이 페르보즈반니급 (실질적) | |
프로젝트 스크보르초바 1907년형 (취소) | ||
다음급 | 임페라트리차 마리야급 | |
전장 | 181.2m | |
전폭 | 26.9m | |
흘수 | 8.5m | |
기준배수량 | 23,288톤 | |
만재배수량 | 25,850톤 | |
출력 | 52,000SHP | |
항속거리 | 10노트 (약 18.5km/h) 순항 시 5,900km | |
최고 속력 | 초기 | 24.1노트 (약 44.6km/h)[9] |
1936년 | 22.5노트 (약 41.6km/h) | |
동력 | 기관 | 증기 터빈 4기 |
추진 | 4축 프로펠러 | |
무장 | 주포 | 패턴 1907 3연장 305mm 52구경장 함포 4기 |
부포 | 패턴 1905 120mm 50구경장 함포 16문 | |
패턴 1935 34-K 76.2mm 55구경장 대공포 1문 | ||
대잠 | 450mm 어뢰 발사관 4문[10] | |
장갑 | 측면 | 125 ~ 225mm |
갑판 | 12 ~ 50mm | |
포탑 | 76 ~ 203mm | |
포좌 | 75 ~ 150mm | |
함교 | 100~254mm |
3. 동형함 목록[11]
순번 | 함명 | 진수 | 취역 | 제적 | 비고 |
1 | 강구트 (Гангут)[12] → 옥차브리스카야 레볼루치야 (Октябрьская революция) | 1911년 10월 20일 | 1915년 1월 11일 | 1956년 2월 17일 | 스크랩 |
2 | 페트로파블롭스크 (Петропавловск)[13] → 마라 (Марат)[14] | 1911년 9월 22일 | 1915년 1월 5일 | 1953년 9월 4일 사고로 침몰 | |
훈련함으로 사용 후 스크랩 | |||||
3 | 세바스토폴 (Севастополь) → 파리즈스카야 콤무나 (Парижская коммуна)[15] | 1911년 7월 10일 | 1914년 11월 30일 | 1956년 2월 17일 | 스크랩 |
4 | 폴타바 (Полтава)[16] → 프룬제 (Фру́нзе) | 1911년 7월 23일 | 1914년 12월 30일 | 1940년 12월 1일 |
4. 함생
4.1. 건조
12문의 12인치 함포로 무장한 드레드노트급 함선으로 당시 러시아의 기술력 낙후로 인해 설계를 대외적으로 공개 입찰했는데, 결국 영국 존 브라운 사가 선택되어 설계 및 기술지원을 하였다.러일전쟁 당시 침몰한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인 페트로파블롭스크급의 이름을 계승한 이들은 1909년 건조가 결정되었으나 제국의 재정 악화로 인해 두마(의회)에서 건조를 미뤘다.[17] 그러나 차르 니콜라이 2세의 압력에 의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조선소에서 1909년부터 건조에 착수하여 1914년 1번함 강구트가 진수된 것을 시작으로 총 4척이 진수되었다.
러일전쟁으로 태평양, 발트 함대를 모조리 날려먹어 전드레노트급인 파촘킨이 가장 최신의 전함이었던 제정 러시아 해군에게 첫번째 드레드노트급인 이들은 그야말로 금쪽같은 존재들이었다. 같이 건조된 드레드노트급 임페라트리차 마리야급[18]과 이들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의 러시아 주력 전함으로서 분투했다. 하지만 기구하고 짧은 함생을 이어가며 대부분 침몰로써 함생을 끝마친 임페라트리차 마리야급과 달리 강구트급은 제2차 세계 대전 때까지도 살아남았다.
명칭 부분에서 2번(마라)과 3번함(파리시스카야 콤무나)은 프랑스와 관련되어 있다. 물론 프랑스 혁명과 파리 코뮌의 역사성을 기념하기 위한 것. 당시만 해도 이상주의, 국제주의 성향이 매우 강했던 공산주의의 일면을 알 수 있다.
러시아에서는 진수일을 기준으로 함번을 정해서 세바스토폴, 폴타바, 페트로파블롭스크, 강구트 순서대로 1, 2, 3, 4번함이고 이 함급을 강구트급이 아닌 세바스토폴급으로 부른다.
4.2. 운용
1911년부터 건조가 재시작되었고 세계대전의 압박으로 인해 포탑과 사통장치의 마무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임에도 1914년에서 1915년 사이에 해군에 인도된다. 당시 제 2위의 강대한 해군력을 보유한 독일 제국이 핀란드 만을 통해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진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 네 함선은 발트 함대에 소속되어 수도 방위 임무를 맡았다. 하지만 독일은 북해에서 영국 해군과의 일전에 몰두한 나머지 러시아 해군에는 관심도 두지 않아 러시아가 우려한 핀란드 만을 통한 공격은 하지 않았다.[19] 그래서 기뢰부설함을 호위하러 몇 번 출항한 것 이외에는 딱히 한 일 없이 훈련에만 전념하며 전력을 유지하고 있었다.몇 년이 흘러 1917년 러시아 혁명이 터지고 러시아 내전이 벌어질 때, 이들은 선상 반란[20]으로 레닌의 볼셰비키에 합류하였고,[21] 핀란드가 독립함에 따라 얼음 여정(Ice Voyage)이라 알려진 본부 이전을 실시하여 헬싱키에서 함대를 이끌고 얼어가는 핀란드 만을 통과하여 페트로그라드의 크론슈타트로 위치를 옮겼다. 하지만 백군을 지원하여 내전에 참가한 영국 함대에 대항하여 레닌그라드를 방어하고 있던 페트로파블롭스크(마라)를 제외한 나머지는 인력 부족으로 항구에 주저앉아 운용이 제대로 되지 않는 형국이었고, 설상가상으로 페트로파블롭스크가 항구를 습격한 영국 어뢰정의 뇌격으로 항구 안에서 격침당해 착저했으며, 폴타바(프룬제)가 정박 중에 전방 보일러에 불이 나서 내부가 홀랑 타버리는 심각한 피해를 입는다. 결국 폴타바는 사실상 전함으로서의 수명은 끝나버렸다.
개장된 마라(구 페트로파블롭스크) |
겨울전쟁 당시에는 핀란드 만이 얼기 전에 핀란드 해안포대를 신나게 포격해댄 것, 그리고 대공포가 대대적으로 증설된 것 외에는 딱히 한 일이 없다가, 독일 국방군의 바르바로사 작전이 개시되어 독일군이 레닌그라드를 포위하자 레닌그라드의 발트 함대 군항에 있던 발트 함대의 기함 마라와 옥차브리스카야 레볼루치야는 루프트바페 의 지상공격 슈퍼 에이스 한스 울리히 루델의 공습으로 마라는 격침당하고 옥차브리스카야 레볼루치야는 대파당한다. 이들은 모두 자력이동이 불가능할 정도의 손상을 입었으며, 마라의 경우에는 폭탄이 주포탑 부근에 명중한 결과, 유폭으로 인해 함수에서 1번 주포탑까지의 구간이 모두 날아가버리고, 전방 함교가 날아가는등 고철로 변해서 수심이 얕은 곳에 착저한 상태였으나, 응급수리를 통해 고정포대로서 독일군과 핀란드군이 몰려오는 곳에 포격을 쏟아부어 공세를 저지했다. 이들의 활약은 마라 참고. 독일군은 이들을 침몰시키기 위해 급강하폭격기 슈투카 에이스 한스 울리히 루델까지 불러냈으나 그의 공격에 큰 피해를 당했음에도 두 함선은 끝까지 임무를 수행했다.
마라의 유폭 직전의 사진, 유폭으로 한방에 격침당했다[28] | 유폭으로 박살난 마라[29] |
특히 마라는 위 사진처럼 1.4톤짜리 폭탄을 맞고 격침되고도 이후 다시 물위로 기어올라와 독일군에게 빅엿을 선사했다.[30] 한편 흑해 함대에 있던 3번함 파리시스카야 콤무나도 마냥 안전한 것만은 아니었다. 독일군이 크림 반도의 방어선을 돌파하자 노보로시스크로 대피하기도 하였으나, 직후의 세바스토폴 공방전 당시에는 개칭 전 함명이기도 한 흑해함대 모항 세바스토폴을 공격하던 독일군과 루마니아군에게 짬짬히 포격을 날려대면서 케르치 반도 상륙작전 당시 지원사격을 맡기도 했다. 이후로도 함포가 다 헤질 때까지 임무를 수행한 후, 수명을 다한 포신의 재가공을 위해 정비를 받은 다음 1943년에 개칭 전 함명인 세바스토폴로 함명이 환원되었다. 이후 거의 박살난 나머지 함대를 이끌고 포티에서 1944년까지 있었다가 1945년 세바스토폴로 복귀한다.
이후 이 전함들은 전후에도 해체되지 않고 훈련함으로 쭉 쓰이다가, 1956년 마침내 스크랩 처리된다.
5. 설계 및 구조
5.1. 화력
1907년형 오브콥스키(오부호프 공장) 12인치 3연장 포탑은 함수에 1기, 전방 함교 후방에 1기, 후방 함교 전방에 1기, 함미에 1기로 총 4기가 설치되었다.[31][32][33] 강구트급 전함의 주포 기준으로 2만 야드 거리에서 8.15인치(207mm)를 관통하며, 1만 야드까지 접근 시 13.85인치(352mm)까지 관통한다. 최대 사거리는 25도 각도에서 2만 5천 480야드(23,300m). 이 조건에서 낙탄각은 40.21도로 해당 포탑은 -5에서 25도까지 양각 조절이 가능했으며 각 포탑마다 100발의 포탄이 할당되었다. 포탑의 각 포신은 발사각 조절을 따로따로 할 수 있다.[34] 3연장 포탑인데다 중심선상에 일렬로 배치되었기에 화력의 집중 면에선 당시 독일의 헬골란트급 전함, 나싸우급 전함, 또는 영국의 드레드노트급 전함이나 벨레로폰급 전함보다 우수했다. 하지만 고작 5~6년뒤 영국과 독일에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들이 배치되기 시작하면서 순식간에 구식으로 전락하였다. 당장 위에 예시로 든 전함들 모두가 등장한지 얼마 안 되어 2선급 전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더 심각한 문제는 만들어진 지 얼마 안된 상황에서도 1선급이라고 보기에는 문제가 있는 전함을 몇십년이 지난 제2차 세계 대전의 피튀기는 상황에서도 화력과 주포배치 등의 문제점을 거의 해결하지 않고 그대로 투입했다는 점이다.[35] 그래서 2차대전 시기의 기준으로 본다면 12인치 주포는 위력이 약했고[36] 포탑의 배치 또한 문제가 많았다. 이는 일본군의 후소급 전함, 이세급 전함이나[37] 이탈리아의 단테 알리기에리 전함의 요상한 비 적층식 포탑 배치와 같은 형식으로, 집중방어 개념과는 동떨어졌기에 후대로 갈수록 방어 효율이 낮아지는 경향이 생겼다. 거기다 이런 구조는 약한 선체 강도와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내어 일제사격을 하지 말라는 명령이 나올 정도였다. 그리고 이런 배치를 하면 주포의 회전과 사격을 위해 비워둘 공간이 많이 필요하기에 대공포나 부수장비의 설치가 곤란해졌다.[38] 그렇기에 강구트는 적으로 상정된 나치 독일의 크릭스마리네에 대응하기 힘들었을 것이며, 그런 연유로 인해 독일의 함대를 피해 전쟁 동안 항구에 처박혀있게 되었다.
포곽식으로 16기가 배치된 120mm 50구경장 부포는 소형 함정에 대응하기 위해 장착되었으며 초당 3.5도의 속도로 25도까지 양각조절이 가능했다. 그러니 항공기에 대응이 불가능한 것은 당연지사였으며, 포곽 특유의 취약점을 가진다. 한 문당 300발의 포탄이 할당되었고(245발에서 증가된 것이다.) 15000m의 최대사거리를 지닌다.
대공포는 76mm 단장포 1문이 마스트 뒤에 장착되었다.[39] 1차대전중 4기가 추가로 증설되었으며 이들은 65도까지 양각조절이 가능했다. 분당 12발의 속력으로 속사가 가능했다. 마라의 경우에는 격침당한 후 착저상태에서 고정포대로 쓰기 위해 임시로 육군에서 운용하던 각종 대공포, 기관총을 추가로 증설한다.
페트로파블롭스크가 항구에 정박한 뒤에는 12인치 주포로 육상을 타격했는데, 전함의 주포를 기준으로는 작은 구경이지만 그래도 일반적인 야포와는 격이 다른 함포였으므로 당시 독일군의 주력 야포였던 15 cm sFH 18를 위력과 사거리면에서 압도하며 활약했다.
5.2. 추진
3,4번 포탑 사이에 위치한 파슨스식 증기터빈으로 4개의 스크류 프로펠러를 돌렸으며, 중앙에도 보일러를 두어 총 42,000마력의 출력을 냈다. 속력은 24.1kn(knots, 노트)였으나,[40] 선체에 대공포등 각종 신형장비가 증설되면서 속도가 떨어져서 1936년에는 22.5kn까지 하락했다.5.3. 장갑
러일전쟁에서 일본 해군의 특수 소이철갑탄에 당한 전훈을 받아들여, 러시아는 함선 전체에 장갑을 둘러쳐버리기로 하고 2중으로 방어격벽을 구성한다. 이는 당시의 철갑탄에 효과적인 방어를 할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유틀란트 해전 이후의 함포 탄종들에는 떨어지는 방어력을 보인다. 거기다 횡방향 격벽은 장갑이 너무 얇았고 구역을 나누는 격벽이 거의 없어 적 전함의 주포를 제대로 맞으면 주포탑, 함교, 바벳 모두가 걸레짝이 될 위험이 있었다. 애초에 전체적인 장갑 두께가 얇다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어[41] 이점은 임페라트리차 마리야급 전함에서나 개선된다.거기다 방뢰 벌지는 커녕 방뢰격벽도 거의 없어서 항공어뢰 한대만 주포탑 아래에 얻어맞아도 끔살이다.[42]
6. 총평
문제와 결함이 많지만, 당시의 대부분의 러시아제 무기답게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장소에서, 능력 이상의 전과를 올린 러시아 최고의 수훈함들이라고 할 수 있다. 강구트급이 없었으면 러시아 내전에서 페트로그라드가 돌파당했을 수도 있고[43], 2차대전 때는 레닌그라드가 함락되어 소련 국민들에게 구 수도가 함락되었다는 충격을 주었을 수도 있었다. 혁명부터 조국 방위까지 전부 함께한 소련으로써는 수호자나 다름없는 배들이었다.특히 이 배들은 순수히 소련의 간판 전함이었다는 점 때문에 2차대전기 다른 열강들의 주력 전함들과 나란히 언급되는 것 뿐이며, 실질적으로는 20세기 초반 1차대전 이전의 초기 드레드노트급 전함이라서 객관적인 스펙으로 따지면 못하고 낫고 따질거 없이 그냥 그 이전 시대의 물건이었다. 이런 동시대 기준으로도 구식인 전함을 가지고 가열차게 전공을 새우며 딱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활약을 하며 명예로운 함생을 보냈다는 점은 결국 무기도 그 운용하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7. 등장 매체
- 영화 전함 포템킨 - 소련 영화감독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의 1925년작 영화 전함 포템킨의 최후반부인 포템킨vs함대 대치 장면에서 러시아 제국 함대 소속으로 등장한다. 거대한 3연장 주포탑 4기가 아래에서부터 클로즈업되며 곧 발포할 듯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지만, 곧 붉은 기를 내건 포템킨에 동조하며 조준을 해제하는 것으로 영화가 끝난다. 물론 시기를 고려하면 강구트급의 등장은 고증에는 맞지 않지만[44] 이건 이거대로 귀하다. 그거 말고도 1937년 국제 관함식 즈음에 개장 후의 2번함 마라가 구축함들을 이끌고 항해하는 정면사진이라는 초희귀 사진도 있다. 심지어 이건 영상으로도 존재한다. 연극영화과 학생들에겐 나름대로 친숙한 배일 것이다.
- 네이비필드 - 소련의 2차 전함으로 등장한다.
또한, 3번함은 미국과 소련의 프리미엄 함선으로 등장한다. - Hearts of Iron II - DHR에서는 특이하게도 소련의 1904년 전함 트리로 등장한다. T-34/76과 KV-1을 시제품 완성 시기이자 성능 고증(기본형 중형, 중전차)상의 39년이 아닌 주력 생산 시기인 41년(개량형 중형, 중전차/ 타 버전의 T-34 mod.42/KV-85. [45] )에 맞춰서 연구하는 DHR 특유의 생산기준 연도 고증상 강구트급도 1913년식이나 17년식 전함이 더 맞을것 같은데 강구트급은 이상하게 고증 생산시기인 13년식(초기형 전함)도, 연구기준인 09년 超 드래드노트급도 아닌 성능기준(드래드노트급)으로 등장한다.
- Naval Front-Line - 소련 트리 30레벨 전함으로 등장하며, 무난한 수준의 군함으로 등장한다.
- 위의 후속작 World War:Battleship의 2021년 9월 18일[46] 업데이트로 개장 후의 세바스토폴 함이 등장했다. 구매하거나 이벤트로 받을수 있었으며 현재는 구매만 가능. 성능은 그다지 좋진 않지만, 12인치 12문의 화력은 9문 뿐인 스탈린그라드보다는 확실히 강하다. 하지만 장갑이 약해 근접 난타전을 벌일 경우 재수없으면 야마토의 두세 살보에 격침당하는 경우가 있다. 또 풀업 사거리도 33km 정도라 실컷 초반정찰로 시작부터 발견해 놓고도 못쏴서 딜도 별로 못넣고 결국 죽는데다 하나뿐이라 아까운 정찰기와 파일럿만 잃는 경우가 허다하다. 거기다 느려터진 탄속으로 인해 조준이 어려운건 덤. 또한 부포도 포곽식이라 사거리가 짧고 대공도 안된다. 그나마 있는 강점이라면 위의 포문수 외엔 느린 속도로 인한 정신나간 선회력을 보여주는 덕에 어뢰에 잘 맞지는 않는다는것과, 작고 낮은 함체 덕에 조준이 안좋은 유저나 산탄포 소리를 듣는 함들 상대로는 이쪽도 얻어맞는 탄수가 줄어든다는 점 정도.
- 월드 오브 워쉽
- 러시아 해군의 강구트급 전함 1번함 강구트가 정규 테크트리 4티어 전함 '강구트(Гангут)'로 출시되었다.
- 소련 해군의 옥차브리스카야 레볼루치야급 전함 1번함인 옥차브리스카야 레볼루치야가 프리미엄 5티어 전함 '옥차브리스카야 레볼루치야(Октябрьская революция)'로 출시되었다. 구입으로 프리미엄 상점의 상시판매로 구입 또는 2017년 10월 혁명 기념 이벤트 보상함으로 운용할 수 있다.
- 함대 컬렉션 - 강구트(함대 컬렉션)
- 벽람항로 - 강구트(벽람항로),세바스토폴(벽람항로), 폴타바(벽람항로)
- 워썬더 - 소련 대양해군 트리에 3번함 세바스토폴이 소련시절 근대화 개장, 개명된 버전의 파리시스카야 코뮤나로 등장하며 러시아 제국시절 모습을 간직한 4번함 폴타바도 등장한다.
8. 외부 자료
[1] 러시아 제국 해군의 강구트급 전함 1번함 강구트. 함수에 게양된 깃발은 유니언 잭이 아니라 러시아 해군의 선수기이다.[2] 소련 해군의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수리가 완료된 옥차브리스카야 레볼루치야급 전함 3번함 파리시스카야 콤무나.[3] 추진체계 변경(석탄 → 석유), 대공장비 증설, 갑판 내 불필요 장비 및 배치 재설계, 함교 디자인 변경, 전투수행능력 관련 전투지휘체계 재정의, 연돌 위치 변경 등 다양한 부분에서 새로 건조한 함급 수준으로 개선되었다.[4] 후계함급인 임페라트리사 마리야급은 1차대전때 자침하거나 종전후 해외에 매각돼 스크랩되는 비운의 최후를 맞았고 이후 전함들은 건조 중단되거나 아예 건조되지도 못한 페이퍼플랜이 되어 버렸으니 가장 오랜 시간동안 활약한 러시아의 전함급이 되었다.[5] 아래 도면만 봐도 구식이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서로 떨어진 채 같은 높이로 배치된 비 적층식 포탑과 줄줄이 일렬로 늘어선 포곽식 부포가 이 함급이 설계된 시기를 짐작하게 해 준다.[6] 정확히는 항코 반도를 가리키는 스웨덴어 '항예 우드(Hangö udd)'에서 유래했다.[7] 핀란드는 1809년까지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다.[8] 러시아어 위키 제목[9]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취역한 전함 치고는 굉장히 빠른 편이다. 동시기 미국 해군의 뉴욕급은 21노트 (약 38.8km/h)였다.[10] 수선하 함체 고정형[11] 러시아 혁명 이후 함명이 모두 변경됐다.[12] 대북방전쟁 당시 러시아 해군이 스웨덴 해군을 격파했던 강구트 해전을 기념한 이름. 강구트는 전투가 벌어진 핀란드의 항코(Hanko) 반도의 러시아식 명칭이다.[13] 크림 전쟁 당시 러시아군이 영국-프랑스 연합군을 막아냈던 페트로파블롭스크 공성전.[14] 프랑스어 인명을 키릴 문자로 표기했기 때문에 마라트가 아니고 프랑스식으로 마라라고 읽어야 한다.1943년에 함명이 환원되었고 1950년에 볼호프로 바뀌었다.[15] ж의 발음이 약해져서 s같은 발음을 낸다. 다만 하단에 설명되어 있듯, 이 함의 경우 1943년에 함명이 취역 당시의 함명이었던 세바스토폴로 환원되었다.[16] 대북방전쟁 당시 러시아군이 스웨덴군을 격파했던 폴타바 전투.[17] 정확히 말하자면 있는 군 예산은 육군쪽으로 들어가고 있었던데다 다른 예산은 차르가 임의로 끌어다 쓸 수 있는 황실 내탕금으로(...) 빠져나가고 있었기 때문. 그 바람에 1911년까지는 조선소들이 사실상 사비로 건조하고 있었다(...).[18] 흑해함대 전용. 반대로 강구트급은 발트함대 전용이었으나 이들이 침몰하는 바람에 한 척이 흑해로 오게 된다.[19] 뭐 독일 해군이 핀란드 만까지 가기 전에 러시아가 항복한 탓도 있다. 독일이 러시아를 확실히 제압하기 위해 알비온 작전을 실행했는데, 이때 리가 만에 있는 무후 섬에서 해전이 발생하기도 했고 보로디노급 전함 슬라바가 격침되었다.[20] 식단 불만이었다고 한다. 파촘킨 반란 사건도 그렇고 이쯤 되면 거의 전통이다.[21] 파촘킨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당시 러시아 해군의 장병 대우는 반란이 일어날 정도로 아주 심각한 상황이었다.[22] 이 혁명은 진압되었다.[23] 사실 크론슈타트의 수병들은 러시아 혁명 당시 볼셰비키의 중요한 세력구성원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급진좌파적인 성향이 강했다. 하지만 집권 이후 볼셰비키(소련 공산당)가 권력지향적 면모를 보이게 되면서 아나키즘적 성향도 상당히 강했던 크론슈타트 수병들이 반 볼셰비키 봉기를 일으키게 된 것.[24] 순서대로 1925년과 1921년과 1921년과 1926년에 개명되었다.[25] 1924년 항공모함으로의 개조가 검토되었다. 하지만 개조했으면 프랑스의 모 항공모함 꼴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26] 1925년 수리 작업이 시작되었지만 예산 부족으로 수리가 중단되었다.[27] 포탑 한 개를 제거해 무게를 줄인다는 계획이었는데 1935년 계획이 취소되었다.[28] 유폭 순간 함교에 전투배치 되어있던 수병들 1~2백여명, 함장, 부함장까지 전사했다.[29] 사실상 고철이 된 상태에서도 육상에 대한 포격지원을 수행했다.[30] 정말 빅엿이 아닐 수 없는게, 레닌그라드 공략에 있어 최대의 장애물이라 판단된 마라를 격침시키기 위해 수십번이나 슈투카 편대를 편성해 파견했으나 미친듯한 방공망이 구축된 군항에서 쏴대는지라 유효타가 거의 없었으며, 한스 루델이 목숨을 걸고 특수제작된 폭탄을 들고 겨우 폭격해 유폭까지 내며 격침시키는 듯 했으나, 어떻게 기어올라와 포격을 끊임없이 해대며 모랄빵을 유도했으니 독일 입장에선 정말 속이 뒤집어져 미칠 노릇이였다.으아니 챠!! 왜 급강하폭격을 때렸는데 멀쩡한 거야!![31] 이 주포는 핀란드 헬싱키의 Kuivasaari 요새에 연장으로 장착되어 있다. 그런데 이놈, 송탄 엘리베이터와 모든 장전 장치가 다 정상 작동하는 녀석이다! 심지어 발사도 된다.[32] 원래 이 대포는 임페라트리차 마리야급 3번함 임페라토르 알렉산드르 III의 주포였는데(강구트급의 것과 동일한 주포를 사용) 1차대전 와중에 나포된 후 프랑스에 넘어갔다가 다시 핀란드에 판매된 물건이다. 사실 대포는 원래 오랫동안 방치됐더라도 완전히 마모됐거나 녹이 슬었거나 금이 가지만 않았다면 충분히 발사가 가능하다. 더 이상 전력으로써의 가치는 별로 없지만, 이 대포는 최근인 2017년에도 핀란드 독립 100주년을 맞아 축포를 발사했다.#[33] 현재 모스크바의 전승 공원에 가면 1문이 해군용 포탄과 함께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볼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블라디보스토크 루스키 섬의 해안포대인 보로실로프 포대에도 폴타바에서 뜯어낸 주포탑으로 만든 해안포 포탑이 남아있다.#[34] 전함 포템킨에 등장하는 해당 포탑의 영상을 보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조금 나중에 건조된 미국의 펜실베이니아급 전함이 포신의 발사각을 독립적으로 조절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부분만큼은 나름대로 선구적이었다.[35] 다만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려면 거의 배를 새로 만드는 수준으로 모든 부분을 싹 뜯어고쳐야 할 텐데 그럴 바에는 퇴역시키고 새로운 전함을 건조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가성비가 더 좋다. 그래서 대부분의 실존 전함을 뛰어넘는 성능을 가진 최신식 전함을 새로 건조하려고 했지만, 건조 중에 전쟁이 터져 완성하지 못했다.[36] HMS 애진코트처럼 말이다.[37] 후소나 이세는 적층식이면서 비적층식이다. 그런 괴악한 설계가 나온 이유는 해당 문서 참고.[38] 왜 이런 방식으로 배치했느냐가 의문거린데, 그냥 기술력이 안 돼서다. 같이 건조된 임페라트리차 마리야급도 이런 형식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심지어 1916년에 건조하려 했던 정복자 니콜라이 1세급과 같은 시기 건조하려 한 순양전함 이즈마일급 또한 그렇다. 러시아 최초로 이 설계에서 탈피한 전함은 소비에츠키 소유즈급 전함으로 이탈리아 리토리오급 전함의 설계방식을 채용한데다 능파성은 몰라도 안전성과 협차시 화력은 높을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이마저도 건조중 독소전쟁 발발로 나가리됐다.[39] 당시에는 비행기가 막 전쟁에 사용되기 시작할 무렵이었고, 비행기로 함선을 공격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던 시절이기에 당연했다. 이때의 대공포는 비행기보다는 기구나 비행선을 격추할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40] 드레드노트급에 속하는 전함 치고는 속도가 굉장히 빠른 편이다. 보통 드레드노트급의 평균 속력은 21kn 정도거나, 더 느렸다. 정 반대로 순양전함을 방불케 할 정도로 압도적으로 빠른 이레귤러도 있다.[41] 알래스카급 대형순양함과 비슷한 수준의 현측장갑을 보유하고 있다.[42] 다만 3번함 파리시스카야 콤무나는 방뢰 벌지가 장착된 모습을 보여준다. 그걸 또 프라모델로 만들었다[43] 1차대전이 아니라는 점을 주의. 이때는 카이저마리네에게 쫄아서 전부 페트로그라드 항에서 놀고 있었다. 실제 러시아 제국 해군은 독일 전함들이 와도 강구트급의 손실을 두려워해서 전드레드노트 전함으로 저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44] 포템킨 반란 사건은 1905년에 터졌고 강구트급이 건조되기 전이다.[45] AOD같은 타버전에서는 43년식으로 39년 기본형 전차들의 개량형인 41년식을 바탕으로 다시 한번 개량한 T-34/85와 IS(IS-1,2는 KV-85와는 디자인이 꽤 다르지만 연구 계보상 KV-85와 KV-13을 거쳐 IS가 개발된게 맞다.)가 등장하며 이쪽이 기본형부터 이어진 진보형 중형, 중전차라는 말에도 잘 맞는다. 또 이렇게 하면 준-현대형 전차인 45년식에는 T-44와 IS-3와 같이 기존 전차를 조금씩 개량한 물건이 아닌 기존 T-34나 KV시리즈 또는 IS-2에서 디자인을 완전히 갈아 엎고 냉전시기 소련 전차들의 기본이 되는 물건들이 나오므로 성능과 년도 고증이 잘 맞아 떨어진다. 그런데 DHR은 성능기준이나 시제품 개발완료 및 초기품 전장 투입 기준이 아닌 주력 생산시기 기준이라 좀 엇나가는 고증을 냈다.[46] PC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