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08 21:47:54

베아른급 항공모함

제2차 세계 대전의 프랑스 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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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프랑스군해군 군함
잠수함 <colbgcolor=#fff,#191919>시렌급, 아리안급, 시르세급, 아고노트급, 샤피르급, 루키아급, 루드타블급, 쉬르쿠프급, 미네르바급, 오로라급, 롤랑 모릴로급
구축함 M89형+, 데 본 소함대+, 부라스크급, 라드루아급, 르 아르디급, 라 멜포메네급, 라 콤바탕트
대형구축함 데 본 대형+, 자구아르급(샤칼급), 게파르급, 에이글급, 보클랭급, 르 팡타스크급, 모가도르급
연습순양함 잔 다르크급
경순양함 프로젝트 171형+, 뒤게-트루앵급, 에밀 베르탱, 라 갈리소니에르급, 드 그라스급A
중순양함 뒤켄급, 쉬프랑급, 알제리급, 프로젝트 C5형, 생 루이급
수상기모함 코망단 테스트급
항공모함 베아른급, 조프리급
순양전함 17,500톤급+, 37,000톤급+, 23,333톤급+, 26,500톤급+, 23,690톤급+
전함 당통급, 쿠르베급, 브르타뉴급, 노르망디급+, 리옹급+, 됭케르크급, 리슐리외급, 알자스급
기타 부갱빌급 포함
취소선: 계획되었으나, 취소된 함선
※ 윗첨자+: 1차 세계 대전 전후 2차 세계 대전 이전 해체 및 계획 취소되었지만 편의상 틀에 넣은 함급
※ 윗첨자A: 전후 취역 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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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함 → 항공모함

베아른급 항공모함


 

 
영국에서 대여

아로망쉐급 항공모함


 
첫 중형 항공모함

클레망소급 항공모함


 
원자력 추진 도입

샤를 드 골급 항공모함


 
영국과 협업 / 개발 취소

미래 프랑스 항공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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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éarne

1. 개요2. 제원3. 역사
3.1. 전함에서 항공모함으로3.2. 우월한 성능3.3. 퇴물이 되다3.4. 2차 세계대전 개전3.5. 전쟁 이후
4. 베아른의 결점5. 매체에서의 등장

1. 개요

프랑스의 본격적인 첫 항공모함으로, 폭발적인 항공기와 항모의 발전이 이뤄지던 시대가 낳은 기형아 혹은 시대를 잘못 만난 비운의 함선. 같은 처지의 타국의 개장 항공모함보다도 성능이 크게 부족하여 비판이 집중되는 면도 있다.

2. 제원

베아른
Le Béarn
건조
[[프랑스|]][[틀:국기|]][[틀:국기|]] 바르 라센쉬르메 FCM
기공 1914년 1월 10일
진수 1920년 4월 15일
취역 1927년 12월 5일
처분 1967년 3월 31일
표준배수량 22,501t
만재배수량 28,900t
전장 182.5m
전폭 35.2m
흘수 8.86m
추진 보일러 12기 (총 40,000PS)
증기 터빈 3중 팽창식 4기
프로펠러 4축
최고 속력 21.5kn (약 39.8km/h)
항속 거리 10kn (약 19km/h)에서 12,000km 정도
승조원 875명
무장 주포 6.1인치 함포 8문
부포 3인치 대공포 6문
1.5인치 대공포 8문
어뢰 발사관 21.7인치급 4문
기타 호치키스 기관총 12정
장갑 측면 83mm
활주로 24mm
함재기 32기
함재기 승강기 3기

3. 역사

3.1. 전함에서 항공모함으로

본래는 노르망디급 전함의 5번함이었다. 1914년 1월 10일 건조에 착수해서 제1차 세계대전으로 건조가 늦어지다 전후인 1920년 4월에 진수했다. 그러나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으로 신규 주력함의 건조가 모조리 금지되면서 해체될 위기에 내몰렸다.

그러나 동 조약에서, 건조 중이던 주력함을 각국이 최대 2척씩 항공모함으로 개장할 수 있다는 조항이 베아른의 운명을 살렸다. 프랑스 정부와 해군은 노르망디급 전함 5척 중 가장 최근에 건조된 베아른을 항공모함으로 개장하고, 나머지 4척을 침몰해체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나머지 동급함들이 침몰·해체되는 동안 베아른은 1923년부터 항공모함 개장공사를 받아 1927년 5월에 취역했다.

3.2. 우월한 성능

초기형 항공모함들중 가장 늦게 개발된 만큼 초기형 항공모함들의 문제점을 견본으로 삼아 성능을 크게 향상시켰다.
  • 당시로선 매우 드물었던 방식인 아일랜드식 함교로 함교와 연돌을 수직 일체화해서 공간의 낭비를 줄였다.
  • 연돌에 해수분무형 냉각장치를 설치하여 항모로서 치명적인 난기류 및 시야 문제를 해결했다.
  • 항공기 운용의 최적화를 위해 항공기용 엘리베이터를 3개로 늘린 것도 베아른이 세계 최초이다.
  • 함선의 함두부터 함미까지 끝에서 끝까지 개통시킨 갑판항모 개념을 채택했다.
  • 최초로 가로식 함재기 착함제동장치를 채택하였다.

이렇게 베아른급 항공모함에는 당대의 선진적 설계들이 투입되어 건조되었다. 이러한 설계는 이후 근대적 항공모함 설계의 표본이 되었다. 그래서 건조 당시인 1920년대에는 초기형 항모세대의 최종주자에 걸맞는 선진적 설계를 가진 항공모함이였다.

3.3. 퇴물이 되다

그러나 1930년의 미칠듯한 항공기술의 발달은 베아른을 퇴물로 만들어 버렸다. 이 시기, 항공기들의 기본속력은 400~500km/h로 올라가고 이에 따라 기체가 커지고 중량도 늘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베아른은 함의 선천적인 한계로 1930년대에 등장한 신형기들을 운용하기엔 능력이 부족했다.

거기에 더해 프랑스 내부적으로 1930년대의 항공기술 발달에 호응하는 후계함의 개발이 늦어져 적절한 시기에 세대교체를 이루지 못했다. 프랑스도 1930년대에 이미 베아른의 노후화를 인식하고 신규항모를 건조해 대체하고자 하였으나 세계 대공황의 여파로 건조를 질질 끌다가 막상 대공황이 좀 풀리고 건조좀 해보려고 하자 2차대전이 터지면서 나가리돼버렸다. 어차피 건조하고 싶어도 남아 있는 건조대가 없었다. 후계함급으로 조프리급이 어느 정도 건조가 진행되긴 했지만 전함이 우선순위로 건조되면서 남아 있는 선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3.4. 2차 세계대전 개전

개수하기도 전에 전쟁이 터진 덕분에 베아른은 구식화된 능력을 가지고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된다.

그러나 독일포켓전함인 그라프쉬페 추격전에 참가했다가 너무 느려서(…) 중도철수했고, 캐터펄트 작전으로 영국의 손에 넘어갔다가 자유 프랑스군에 재인도되었다. 그러나 운용할 여력도 없고 운용하려고 해도 낡아서 쓸모도 없었기에 항공기를 수송하는 비행기셔틀로 이용 되었다.

이 무렵 영국은 독일군의 유보트에 시달리고 있었기에 미국으로부터 구축함호위항공모함을 닥치는대로 도입하고 있었지만, 베아른급 항공모함은 호위항공모함으로 쓰기에도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선단호위에 쓰이지 않았다.

3.5. 전쟁 이후

전후에는 프랑스 유일의 항공모함으로서 연습용으로 잘 사용되다가 1967년 3월 21일 이탈리아에서 스크랩 처리되었다. 따라서 전쟁전에 만들어진 항공모함으로는 가장 수명이 길었다.

4. 베아른의 결점

이처럼 기대와는 달리 저조한 실적을 거두게 된 이유는 아래와 같은 결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 구식 전함을 기반으로 만들었다. 이것이 사실상 베아른을 단기간에 퇴물로 만든 만악의 근원이다. 다른 나라들의 전함이나 순양전함 개조 항공모함들의 경우는 1920년대에 설계한 신형 함선(4만4천톤급)이 기반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이 베아른급이 속한 노르망디급은 1차 세계대전전에 설계해서 건조하다가 1차 세계대전 때문에 건조중지가 되었다가 전쟁후에 다시 건조를 시작했다가 조약 때문에 해체당한 구식전함(2만5천톤급)이었고 그것이 밑의 결점들의 요인이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영국의 커레이저스급 항공모함은 비슷한 배수량인 2만6천이었지만 순양함급의 고속을 요구받아 만들어진 대형 경순양함(실질적으로는 특수업무용 순양전함)이 기반이라 고속(9만마력 30노트)이고 길었던 것 덕분에 이 베아른급처럼 비난받는 신세는 면했다.
  • 선체의 길이가 너무 짧다. 180미터의 짧은 선체는 신형 전투기들에게 필요한 충분한 활주공간을 제공할 수 없었고, 대형화된 기체를 위한 적재공간도 부족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원본인 노르망디급 전함이 속도보다는 화력과 방어력 중심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포격전에 유리하고 집중방어에 편리한 짧고 통통한 선체를 채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항공모함으로 개수하더라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활주공간 부족 문제는 캐터펄트를 설치하면 해결할 수 있지만 당시 프랑스의 기술 부족으로 항공모함용 캐터펄트를 개발하지 못했고, 적재공간 부족 문제는 현실적인 해결책이 사실상 없다. 물론 돈 따위는 신경 안 쓰고 함체를 대폭 연장하거나, 격납고를 한 층 더 올리는 식으로 해결할 수는 있겠지만 전자는 새 항공모함을 뽑는 것에 비해 가성비가 떨어지므로 사실상 채택하기 어렵고 후자는 선체의 복원성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뿐 아니라 안 그래도 느린 속도를 더 느리게 만들기 때문에[1] 역시 채택하기 어려운 방법이었다.
  • 속도면에서도 21노트의 속력으로는 30노트 이상으로 고속 항행하는 고속전함이나 중순양함들과 보조를 맞출수도 없었을 뿐더러 대형화되고 무거워지는 함재기를 발진시키거나 기존 함재기에 무거운 폭탄을 적재하고 출격시킬 때도 악영향을 주게 된다.
    이 문제도 원본인 노르망디급 전함이 속도면에서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2] 따라서 동력기관도 약하고 기관부의 면적도 좁았으며, 앞서 언급했듯이 선체도 속도에는 치명적인 짧고 통통한 선체였기 때문에 고속을 내는 것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기관부 교체 및 구조 변경을 통해 속도를 높일 수는 있겠지만 개조에 상당한 기간과 예산이 소모되므로[3]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방법이었다.
  • 항공기용 엘리베이터도 너무 작아서, 신형 전투기를 갑판에 올릴 수도 없었다. 애초에 건조 당시의 항공기만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엘리베이터라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나마 이 문제는 개장공사를 실시해서 엘리베이터를 교체하면 해결된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비행갑판이 짧으면서도 작고, 속도도 느려서 신형 함재기를 운영하기 곤란한 상태에서 엘리베이터만 교체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베아른급 항공모함이 비난을 받는건 대체로 같은 워싱턴 군축조약기에 전함이나 순양전함에서 개조된 항공모함들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했고, 어떤 경우에는 전간기의 조약형 항공모함보다 배수량이 더 큰 관계로 함재기를 더 많이 적재하거나 신형 함재기가 도입돼도 별 무리 없이 운용이 가능하다는 등 충분한 능력을 발휘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동시기의 미국의 렉싱턴급 항공모함이나, 일본의 아카기, 카가 등은 당당한 주력 항공모함으로 활약했으며, 영국의 항공모함들도 독일과의 최전선에서 혈투를 벌였다. 심지어 세계 최초의 항공모함인 퓨리어스도 30노트로 달리면서 전장에서 부지런히 뛰어다녔다. 그러나 베아른급 항공모함은 눈에 띄는 전과가 없으니, 낮은 능력이 더 눈에 띠어 밀덕들에게 잉여라는 수모와 몰매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5. 매체에서의 등장


[1] 무리하게 격납고를 한 층 더 올려서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류조다.[2] 카가도 베아른처럼 전함을 개조한 항모이기는 했으나 원본인 카가급 전함이 26.5노트 속력의 고속전함으로 계획되어서 베아른과 달리 속도를 그럭저럭 낼 수 있었다. 게다가 카가는 200m가 넘는 전장으로 방호력에 문제가 있었지만 항공모함으로 변경되면서 문제가 해결되었다.[3] 카이오 두일리오급 전함의 사례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