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8 13:49:18

애진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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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영국 국기.svg 제1차 세계 대전의 영국 해군 군함 파일:영국 해군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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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드레드노트급 전함의 계보 파일:영국 해군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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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함
중간포 폐지/대응방어 및 증기터빈 도입

드레드노트


 
방뢰격벽 추가/부포 구경 강화

벨레로폰급


 
부포 수량 증가

세인트 빈센트급


 
장갑 강화/주포 배치 개선

넵튠급


 
마스트 수량 감소

콜로서스급


 
주포 구경 강화

오라이언급


 
장갑 및 속력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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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포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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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포 구경 증가/속력 강화/중유 보일러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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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벤지급


 
주포 구경 강화/집중방어체계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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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3급 기반으로 소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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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 조지 5세급(1939)


 
신형 주포 도입/속력 강화

라이온급


 
속력 강화

뱅가드

순양전함
드레드노트 기반으로 경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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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속거리 증가

인디패티거블급


 
주포 구경 및 장갑 및 속력 강화

라이온급


 
속력 및 항속거리 증가

퀸 메리급


 
부포 구경 강화

타이거급


 
주포 구경 및 속력 강화

리나운급


 
포탑 1개 추가/장갑 강화

어드미럴급


 
어드미럴급 기반으로 주포 구경 강화

K2/K3급


 
K3급 기반으로 경량화

J3급


 
M3급 전함의 순양전함 설계

I3급


 
I3급 기반으로 경량화

G3급

기타
라이온급 기반 수출용 전함

에린

/
 
퀸 엘리자베스급 기반 수출용 전함

애진코트

/
 
수출용 전함

캐나다

/
 
수출용 전함/항공모함으로 개장

이글

/
 
고속 대형 경순양함/항공모함으로 개장

커레이저스급

/
 
1915년 제안된 순양전함

인컴패러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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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S Agincourt

1. 개요2. 제원3. 건조
3.1. 주인이 바뀌었어요3.2. 주인이 또 바뀌었어요
4. 퇴역까지5. 미디어에서6. 모형화

1. 개요

함명인 애진코트(Agincourt)는 백년전쟁 당시 영국군의 대승리 중 하나였던 아쟁쿠르 전투에서 기원한 것이다. 아쟁쿠르는 프랑스 지명이고 이걸 영어로 읽은 게 애진코트. 이 함명이 붙은 영국 해군 함선은 역사상 총 5척(건조 취소된 경우까지 6척)이며, 이 항목에서 설명하는 것은 그중 가장 유명한 1914년에 취역한 전함이다. 현재에는 건조 중인 아스튜트급 공격원잠 7번함의 함명으로 예정되어 있다.

2. 제원

애진코트급 전함
Agincourt-class battleship
기준배수량 27,850톤
만재배수량 30,860톤
전장 204.7m
전폭 27.1m
흘수 9.1m
승조원 1,268명
출력 34,000kW
최고 속력 22노트
항속거리 10노트로 7,000해리
동력 기관 밥콕 앤드 윌콕스 증기보일러 22기
파슨스 직결식 증기터빈 4기
추진 4축 프로펠러
무장 주포 BL Mk.XIII 12인치 2연장 함포 7기 14문
부포 BL Mk.XIII 6인치 단장포 20문
3인치 단장포 10문
어뢰[1] 21인치 어뢰 발사관 3문
장갑 현측 229mm
갑판 25~64mm
주포탑 203 ~ 305mm
장갑함교 305mm

3. 건조

1905년 그때까지의 모든 기술을 총집합시켜 만든 새로운 형태의 전함 드레드노트의 등장은 기존 유럽 열강국가 간의 건함 경쟁만 부추긴 것은 아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20세기 초 남미는 전통의 3대 강국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가 각각 지역 패권을 둘러싼 경쟁을 펼치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유럽 수준의 미칠 듯한 경쟁은 아니었지만 매우 치열한 건함 경쟁이 이루어졌는데 이를 ABC(Argentia, Brazil, Chile) 건함 경쟁이라 불렀다. 그리고 드레드노트의 등장으로 비싸지만 제값 하는 이 결전병기의 확보는 건함 경쟁에서 확고한 우위를 선다는 상징성을 갖고 있었기에 삼국 모두 드레드노트급 신형 전함을 확보하길 희망했다.
  • 브라질은 1910년에 12인치 주포 12문을 장비한 미나스제라이스급 전함 3척을 영국에게 발주하여 그중 2척('미나스제라이스(Minas Geraes)', '상파울루(São Paulo)')을 도입했고 아르헨티나는 1914~15년에 걸쳐 리바다비아급 전함[2] 2척('리바다비아(ARA Rivadavia)', '모레노(ARA Moreno)')을 미국으로부터 도입했으며 칠레는 1911년에 영국에다 14인치 주포 10문을 장비한 초드레드노트급 전함 2척('알미란테라토레(Almirante Latorre)', '알미란테코크라네(Almirante Cochrane)')을 주문했지만 1차대전 발발로 영국이 매수했고[3] 1920년에서야 알미란테라토레 1척만을 인수해 1척을 보유하게 된다.[4]

그중 가장 적극적인 것은 브라질이었는데, 1910년대 초 커피와 목재, 고무의 수출로 경제적 호황을 맞고 있던 브라질은 라이벌 아르헨티나가 미국에 리바다비아급 전함 2척을 발주하자, 해군력의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미나스 제라이스급 3번함의 건조를 맡은 암스트롱 사에게 아직 건조되지 않은 3번함의 건조 계약를 취소하고 당시 막 등장한 전함이자 기존의 드레드노트급보다 더욱 강력한 초드레드노트급 전함의 건조를 의뢰했다. 이에 암스트롱 사는 브라질의 의뢰를 받아들여 1911년 9월 14일 새로운 전함의 건조에 들어갔다.

당시 브라질 정부가 의뢰한 새 전함은 영국 해군이 건조하던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의 설계를 기반으로 하였으나 아무래도 수출용이다 보니 많이 다운그레이드되었다. 대표적으로 주무장이 퀸 엘리자베스급이 2연장 15인치 주포 4기인데, 수출용 전함은 2연장 12인치 주포 7기이다. 다만, 이는 충분히 납득 가능한 다운그레이드인데 15인치급 주포는 열강국가 간의 전함 간 해전에서나 의미있는 거라 아직 경쟁국인 아르헨티나와 칠레가 드레드노트급 전함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12인치로도 충분히 의미있고 막강한 화력이었다. 그 외에는 1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만이 보유했던 사격 제원 산출 및 사격 통제 시스템인 Dreyer Fire Control Table이 장비되어 있지 않았다. 또한 브라질의 희망으로 격벽이 설치되지 않고 넓은 선실을 여러곳에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전함은 구조조차도 1급 기밀이었고[5], 2차 대전을 앞둔 일본, 독일이 그런 문제로 난항을 겪은 것도 사실이다. 또한 일본이 얻어간 것보다 더 개선된 레인지 파인더가 있었다.[6] 그래서 앞서 나열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가치있는 배였다. 영국도 세일즈할때 호텔에서 나무 깎아 모델쉽을 만들어서 보여줘가며 설득하는 세일즈맨 정신을 보였다.

새 전함은 이 전함을 건조하기 위해 취소한 미나스제라이스급 3번함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의 이름을 그대로 이어받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3.1. 주인이 바뀌었어요

건조가 착실히 진행되던 1913년, 영국과 암스트롱 사로선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신규 전함을 발주한 고객인 브라질 정부가 디폴트를 해버린 것이다! 브라질은 무리한 군사경쟁과 함께, 자원 수출에 의존하는 경제의 한계에 봉착해서 재정적으로 어려움에 빠진 상태로, 결정적으로 1913년, 발칸 전쟁 이후 불어닥친 불황으로 인해 브라질의 주요 수출 품목이던 커피고무, 특히 고무의 국제가격이 폭락하여[7] 그야말로 망한 상태였다.

영국 정부가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고객이 돈이 없다고 배째는데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영국 해군이 이를 인수하는 것도 문제였다. 결국 브라질에 맞춰서 다운그레이드된 것들이 전부 문제가 된 것. 보통 12인치 포신이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제일 심각하게 여긴 것은 격벽이었다. 포탑은 크레인으로 들어내면 되지만, 격벽은 갑판을 뜯어내서 다시 격벽을 붙일 수도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안하자니 함선의 방어력이 마음에 걸린다. 그리고 설령 이걸 다 해서 스펙을 맞춰놔도 퀸엘리자베스급 전함보다 비쌀 것이 뻔했다. 전함의 건조 비용을 통째로 떼이느냐 아니면 더 비싸게 전함을 사서 수습하느냐의 답없는 선택지에 처한 것.[8]

이런 상황에서 암스트롱 사에 구세주가 나타났으니 바로 오스만 제국이었다. 예산 확보 미비, 기존 군함의 관리 미비, 근대식 수병의 양성 미비 등으로 인해 1870년대부터 오스만 제국의 해군은 그야말로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1890년대에 들어서야 해군 전력의 약화 문제를 인식한 오스만 제국은 해군의 중요성을 깨닫고[9] 1910년 독일로부터 퇴역한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인 브란덴부르크급 2척을 구매하였으며[10] 1911년 영국 비커스 사에게 레샤디에급 전함 2척[11]을 발주하였다.

그러나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을 확보하였음에도 오스만 해군은 곧바로 벌어진 발칸 전쟁에서 피사급 장갑순양함 '요르요스 아베로프(Θ/Κ Γεώργιος Αβέρωφ)'를 앞세운 그리스 해군에게 또다시 털렸으며[12] 에게 해와 마르마라 해의 제해권을 내주면서 패전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이에 오스만 제국은 전드레드노트급으로는 그리스 해군을 상대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드레드노트급을 구매하기로 결정하였다. 하지만 당시 영국과 독일이 주도한 건함 경쟁으로 인해 중고함 매물이 없었고, 시간과 예산을 많이 잡아먹는 대형 전함, 특히 시간과 예산을 더 많이 잡아먹는 드레드노트급을 발주하고 설계하고 건조에 들어간 뒤 진수하고 취역시키고 인도받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이 상황 속에서 오스만 제국에게 있어 느닷없이 주인을 잃고 방치된 리우데자네이루는 알라가 내려준 축복이었다.

이에 오스만 정부는 바로 브라질 정부 및 암스트롱 사와 협상을 개시, 차관을 빌리고 성금까지 모아가며 전함 구매 예산 275만 파운드를 확보하고 이를 지불, 1914년 1월 리우데자네이루 구매 계약을 완료하였다.[13] 이때 함명은 브라질이 명명한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오스만 제국이 명명한 '술탄 오스만 1세(Sultan Osman-ı Evvel)'로 바뀌었다.[14]

건조는 착실히 진행되었고, 해가 바뀌어 1914년 여름 오스만 제국은 엄선한 정예 해군요원들을 영국에 파견했다. 술탄 오스만 1세와 기존에 주문한 레샤디예급 1번함 레샤디예, 2척을 인도받기 위해서였다. 마침내 근대적인 신형 전함을 확보할 수 있다는 사실에 오스만 제국은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고, 반면 주변국, 특히 그리스는 오스만이 자신들보다 먼저 드레드노트급 전함, 그것도 초드레드노트급과 거의 동급의 전함을 확보했다는 사실에 절망에 빠져 있었다.[15]

그런데...

3.2. 주인이 또 바뀌었어요

그런데 오스만 제국 해군 장교들이 배를 인수받을 준비를 다 해놨던 1914년 여름, 유럽 정세는 어느 때보다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사라예보 사건을 시발점으로 7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세르비아에, 8월 1일에는 독일이 러시아에, 그리고 8월 3일에는 독일이 프랑스에 선전포고하고 중립국 벨기에를 침공하면서 전 유럽은 걷잡을 수 없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이때 술탄 오스만 전함이 정박 중이던 영국은 프랑스, 러시아와 맺은 삼국협상과 동시에 벨기에의 중립을 보장한 상태였는데 독일이 프랑스와 전쟁을 벌이고 동시에 벨기에를 침공하면서 영국도 독일과의 전쟁에 돌입하게 된다. 그런데 당시 독일은 건함 경쟁을 표방하며 영국 해군과 비등한 해군을 보유했다고 알려져 있었다.[16] 이런 상황을 두고 영국의 해군성 장관이던 윈스턴 처칠은 급격히 성장한 독일 해군과의 결전을 앞두고 단 1척의 전함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슈퍼드레드노트급 전함인 술탄 오스만 1세가 오스만 제국에게 인수된다는 것에 주목했다.

영국이 1차 세계대전에 말려든 것이 8월 3일인데[17], 처칠은 7월 28일 당일에 보고를 듣고 이미 전쟁이 날 것을 예견하고, 즉시 해군 병력을 보내어 술탄 오스만 1세에 이미 배에 올라탄 상태였던 오스만 해군 인수요원들을 강제로 내보내고 배를 점거, 영국 해군기를 게양하더니 해군 선적에 편입시켰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오스만 제국은 뱃삯을 전부 다 지불한 상태였다. 당연히 오스만 해군은 이에 격분하면서 강력히 반발하여 항의했으나, 처칠은 쿨하게 "그까이거 돈 주면 될 거 아님?" 하면서 대여비로 하루당 1000 파운드를 제안했다.

하지만 오스만이 지불한 전함 구매 비용만 해도 275만 파운드였다. 당장 단순계산상으로 따져보자면 일당 1천파운드로 275만 파운드를 뽑으려면 약 7.5년이 걸리는데, 단순한 대금 문제를 떠나서 전함 두 척의 인도 지연으로 인한 전력 공백을 생각하면 오스만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다. 원금을 일시불로 반납했어도 문제가 될 상황인데, 성금까지 모아서 간신히 산 전함 값의 0.3%를 대여료랍시고 주면서 날먹하려 한 것이니 달리 말하면 이거나 먹고 꺼지라고 완곡하게 말한 것이나 다를 바 없었고, 후술할 상황까지 보면 그냥 선전포고에 가까웠다.

거기다가 처칠은 단순히 배가 필요해서 뺏은 것뿐만이 아니라, "유럽에서 세계 대전이 터진 상황에서 잠재적 적국인 오스만에 전함을 넘길 수 없다." 라는 의지로 배를 압류한 거라서 오스만의 항의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영국은 사양에 맞춘 전함을 이미 롤 아웃한 데다가, 과거 영국과 프랑스, 독일이 각각 오스만을 지원했지만 영국과 프랑스가 얻은 것은 거의 없었고 독일은 다르다넬스 해협을 요새화한 뒤 실질적으로 강점한 상태였고, 파디샤의 황궁에 당장 군사 고문단을 집어넣어서 총부리를 들이밀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처칠의 생각에는 오스만은 받아먹은 만큼 뱉어낸 적이 없는 상대인데, 동맹국은 어림도 없으며, 독일의 군사력이 뻗치고 있으니 전쟁 동안 중립국이 될 상대도 절대 아니라고 보았던 것.

그러나 당시의 오스만은 친독파와 친영파가 갈라져서 대립을 하고 있던 상황으로, 완전히 독일의 잠재적인 동맹국이라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런 오스만 여론이 급격히 친독으로 기운 것은 전적으로 처칠의 전함 강탈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오스만 제국은 파디샤가 지배하는 나라였으므로 파디샤가 중립을 강력히 표방하면서 찍어누르고 있었지만 말이다.[18][19][20]

그리고, 상황을 보고 있던 독일의 빌헬름 2세는 마침 영국 해군에게 추적당해 오스만 제국의 수도 코스탄티니예에 숨어있던 독일 제국 해군의 몰트케급 순양전함 '괴벤(SMS Goeben)', 경순양함 '브레슬라우(SMS Breslau)' 함과 그 승조원들을 오스만 제국에 선물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했고, 괴벤 함은 '야부즈 술탄 셀림(Yavuz Sultan Selim)', 브레슬라우는 '미딜리(Midilli)[21]'라는 함명으로 정식 오스만 해군 전함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독일인들이 함을 다뤘고, 이들의 함포는 코스탄티니예 황궁을 겨누는 상황인지라 오스만은 그저 애간장만 태울 뿐이었다)

처칠의 행동으로 인해 여론이 반영친독 쪽으로 기울었음에도 메흐메트 5세는 여전히 중립을 지키려고 시도하였다. 그리고 독일이 일방적으로 공여한 2척은 선적만 오스만으로 옮겼을 뿐 함장도 독일인, 승조원도 독일인. 지휘도 독일 해군의 지휘를 받은 사실상 독일 전함 그대로였다. 이 2척이 나머지 오스만 함대를 멋대로 이끌고 세바스토폴오데사, 노보로시스크 등 흑해의 러시아 항구들을 기습적으로 공격하면서 분노한 러시아가 오스만에게 선전포고, 이에 친독파였던 오스만의 실권자 이스마일 엔베르를 주축으로 파디샤가 지하드와 참전 선언을 하게 만들면서 오스만은 반강제로 전쟁에 뛰어들게 된다. 그리고, 야부즈는 1971년까지 튀르키예 공화국 해군이 쓰다 퇴역시켜 최장수 순양전함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그리고 1차대전 중 영국은 독일의 편으로 돌아선 오스만 제국으로 인해 자그마치 260만이라는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야 했으며[22][23] 갈리폴리 전투라는 세계 전쟁사에 길이 남을 삽질을 벌여야만 했다.[24]

어쨌든 1914년 8월 20일, 우여곡절 끝에 '리우데자네이루'는 '술탄 오스만 1세'를 거쳐 다시 'HMS 애진코트'로 이름을 바뀌어 정식으로 취역한다. 또한 '술탄 오스만 1세'와 같이 인수할 예정이던 레샤디예급 전함 1번함 '레샤디예' 역시 '술탄 오스만 1세'와 마찬가지로 영국한테 강탈당해 'HMS 에린'이라는 이름으로 취역한다. 그리고 2번함 '파티흐 술탄 메흐메트'는 막 건조에 들어간 상태였는데 전쟁이 터지면서 자연스럽게 건조가 취소되었고 나머지 잔해는 스크랩 처리된다.

그리고 영국은 이런 함선 매입을 칠레에게도 또 행한다. 칠레는 영국에게 알미란테 라토레급 전함(알미란테 라토레, 알미란테 코치라네)을 2척 주문했는데, 이중 1번함 알미란테 라토레는 1차대전 발발 당시 거의 완성이 다 된 상태였다. 이걸 영국이 가져간 것이다. 다만 이 때는 함선을 재매입하는 형태로 구입금을 모두 환불해서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이 함선이 캐나다급 전함이다. 2번함은 전쟁으로 인해 건조를 중단했다가 1918년에 마찬가지로 영국이 구입해서 이글급 항공모함으로 바뀌었다.

4. 퇴역까지

이후 스캐퍼플로에 배치되어 제1차 세계 대전의 한복판에 섰으나 독일 해군이 함대결전을 회피한 관계로 실전은 딱 1번뿐인데 그 1번은 바로 세계 최대의 해전이라는 유틀란트 해전. 여기서 애진코트는 독일군 순양함들과 교전하며 어느 정도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종전 후에도 몇 년간 현역으로 남아 있었으나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으로 전함들을 대거 폐기처분해야 할 처지에 놓이자 폐함 처분되었다. 15인치급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들을 지키기 위해 12인치급이었던 애진코트는 최우선적으로 희생된 셈이다.

5. 미디어에서

파일:워쉽 블리츠 애진코트 .jpg

월드 오브 워쉽, 월드 오브 워쉽 블리츠등 에서 영국 5티어 프리미엄 전함으로 등장한다. 월드 오브 워쉽 블리츠에서 12인치 14문의 화력은 근접전 위주의 블리츠 환경에서 꽤나 유용하다.

전함소녀에서도 등장한다.

대체역사소설에서는 배의 기구한 운명 탓인지 주인공 세력이 영국에 말만 잘하면 쉽게 구입할수 있는 함선으로 자주 나온다. 대표적으로 조선이 근대화돤다는 대역인 조선, 혁명의 시대에서는 한국 최초의 전함으로 재탄생해서 이순신함이라는 함선이 된다.

6. 모형화

  • 1/350
    • Iron Shipwrights
  • 1/700
    • 콤브릭
    • 플라이호크 모델
      2019년 발매된 제품이다. 플라이호크다운 인젝션의 끝을 달리는 디테일과 적당한 가격을 보여준다. 조립성은 부품 간의 정합성 자체는 좋지만 가뜩이나 자잘한 디테일이 많은 1차 대전기 전함인데 스케일까지 작아 조립이 마냥 쉽지는 않다. 가격은 품질을 감안하면 적당한 수준이다. 전용 디테일 업 세트를 포함한 디럭스 버전과 전용 마스킹 시트, 목갑판 등도 판매한다.


[1] 주력함은 어뢰로 대잠공격을 하지 않음[2] 12인치 주포 12문으로 미나스제라이스급과 대등하지만 장갑과 속도가 더 우수하다.[3] 알미란테라토레는 '캐나다(HMS Canada)', 알미란테코크라네는 '이글(HMS Eagle)'로 개칭하였다.[4] 알미란테코크라네는 전쟁 당시 항공모함의 가능성을 시험하던 영국 해군이 항공모함으로 개장했기 때문에 인수받을 수 없었다.[5] 요즘은 osprey 사의 anatomy of ship 시리즈를 접하기 쉬워서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6] 함선에 레이더가 달리기 전이다.[7] 여기에는 동남아에서 영국이 경영하는 고무 플랜테이션으로 인해 브라질의 고무 독점이 깨져버린 것도 한몫했다.[8] 당시의 영국 국력으로는 안 될 것도 없었지만, 영국은 자본주의 국가이면서 동시에 군의 문민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는 국가였다. 당연히도 돈을 쥐고 있는 의회에서 돈이 많이 든다면서 딴지를 걸 것이 뻔하고, 이 돈이면 신형함 만드는 게 더 이득이니 해군 입장에선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상황이다.[9] 1897년 그리스와 벌인 크레타 전쟁에서 오스만 제국은 군사적으로는 승리를 거두었으나 해상에서는 그리스 해군에게 말 그대로 탈탈 털렸다.[10] 이것도 처칠이 오스만을 불편하게 보는 데 일조했다.[11] 킹 조지 5세급 전함을 기반으로 하였으나 여러가지 개수가 있었기 때문에 오스만은 '레샤디예급'이라고 불렀으며 함명은 각각 '레샤디예(Reşadiye: 당시 오스만 제국의 파디샤 메흐메트 5세의 별칭)'와 '파티흐 술탄 메흐메트(Fatih Sultan Mehmed)'였다.[12] 엘리 해전과 렘노스 해전에서 오스만 해군은 요르요스 아베로프 단 한 척에게 정자전법을 허용해 큰 맘 먹고 산 브란덴부르크급 2척이 큰 피해를 입는 등 제대로 굴욕을 찍었다.[13] 여담으로 이 구매 계약이 영국과 러시아 제국과의 외교분쟁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자국도 못 가진 최신식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을 러시아의 적성국인 오스만에게 판 것 자체가 영국이 같은 삼국 협상의 일원인 러시아를 엿먹이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것. 때문에 영국 정부가 러시아를 달래느라 상당히 애먹었다. 영국 입장에서도 애진코트를 오스만에 파는 결정이 마냥 땡잡은 상황은 아니었고, 나름대로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는 이야기다.[14] 그리고 리우데자네이루를 팔아치운 브라질은 다른 초드레드노트급 전함을 암스트롱 사에게 의뢰했고 암스트롱 사는 '히아셸루(Riachuelo)'라는 이름의 새 전함의 건조를 시작하였으나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결국 계약이 취소되었다.[15]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그리스는 독일에게 드레드노트급 전함 '살라미스(Θ/Κ Σαλαμίς)'를 발주하였으며(다만 건조 도중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여 결국 계약이 취소되었다) 미국으로부터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인 미시시피급(12인치 주포 4문 장비) 2척('미시시피(USS Mississippi (BB-23))', '아이다호(USS Idaho (BB-24))')를 도입했다(2척은 각각 '킬키스(Θ/Κ Κιλκίς)'와 '림노스(Θ/Κ Λήμνος)'로 개명했으며 미국은 2척의 매각 대금으로 뉴멕시코급 전함 3번함 '아이다호(USS Idaho (BB-42))'를 건조했다).[16] 후대의 연구에 따르면 독일 해군의 규모는 당시 영국해군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규모였고, 때문에 건함경쟁은 외교적 허세라는 해석이 강하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빌헬름 2세 문서 참조. 허나 세계 2위의 대함대라는 건 사실이고, 오대양 육대주에 분산된 영국 해군과 달리 독일 해군은 모조리 북해에 몰려있으니 영국도 긴장해야 하는 건 사실이었다.[17] 물론 영국이 침공한 것이 아니라 동맹국에 선전포고를 한 것인 만큼 전쟁 참전은 그 전부터 내정되어 있었다고 봐도 무방하다.[18] 사실 처칠의 판단이 옳았는지 아닌지는 지금도 논란이 있는 주제다. 양측이 모두 동의하는 건 처칠의 애진코트 강탈이 불법적인 외교행위였다는 것 하나다. 가장 핵심적인 쟁점은 오스만이 자체적으로 중립 혹은 참전을 결의할 수 있는 주체성이 있었냐 여부라는 점을 알아두는 게 좋다.[19] 다만 전술한 대로 파디샤 메흐메트 5세는 어떻게든 중립을 원했다.(사실 당시 오스만은 전쟁 참전은커녕 크림 전쟁을 기점으로 나라 자체가 위태위태한 상황이었고 도저히 전쟁을 할 여력이 없었다.) 또한 후술할 사건들이 일어날 계기 역시 이 애진코트 사건에 의한 것이라는 것 또한 고려하는 게 좋다.[20] 그리고 영국은 어떻게든 오스만을 끌어들이거나 적어도 중립으로 놔둬야 했다. 오스만이 지정학적으로 미영프와 러시아 사이에 있는 만큼 만일 오스만이 아군이 된다면 오스만을 경유하여 미영프와 러시아가 연결될 수 있다. 허나 처칠의 삽질로 오스만은 적국이 되어버렸고 결국 독일-오스트리아-오스만으로 이어지는 동맹국 라인이 탄생해버렸다. 그리고 이걸 또 뚫어버리겠다고 벌였다가 역대급으로 말아먹은 게 바로 그 유명한 갈리폴리 전투. 거기다 갈리폴리 전투 문서에도 나와있지만 이 전투의 나비효과가 얼마나 컸는지를 생각한다면...[21] 그리스 레스보스 섬의 튀르키예어 명칭.[22] 주요 전장인 서부전선에 동원한 영국군이 약 540만이었다. 수출용 다운그레이드 전함 2척을 얻은 대가치고는...[23] 정확히는 오스만 제국의 해군전력으로는 영국 본토에 공격을 가할 수는 없었지만 흑해의 보스포루스 해협을 잠가버려 러시아에 오는 보급들을 원천 차단했다. 독일의 양면전선의 동쪽을 담당하는 러시아는 보급이 원활하지 못해 전쟁수행 능력이 떨어져 갔고 영국에게 오스만 제국을 공격하라고 요청한다. 참고로 발트해는 덴마크가 중립을 선언한 뒤 기뢰를 뿌려버려서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 또한 그걸 감안해도 원래 러시아의 안정적인 보급 루트는 지중해-흑해 루트였다.[24] 갈리폴리 전투는 튀르키예의 입장에서는 구국의 승전이자 영국의 굴욕이다. 하지만 결국 영국은 현지 아랍인들을 포섭해서 게릴라전으로 선회했고, 오스만 제국은 1차 세계대전 패전 이전에 이미 아나톨리아 반도를 제외한 모든 영토를 잃고 만다. 이로 인해 '외교 말아먹었어도 그만큼 삥뜯으면 그만 아냐?' 하는 생각도 확산되어 버렸다. 1차 대전으로 알자스-로렌+시리아 정도나 얻은 프랑스와 달리 영국이 얻은 중동 영토는 실로 엄청난 면적이었다. 물론 그 땅 얻는다고 중동 전선에서 죽은 수십만의 장병들이 살아오진 않는다는 걸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