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8-17 23:00:29

페트로파블로프스크급 전함

파일:러시아 국기.svg 러일전쟁 및 제1차 세계 대전의 러시아 해군 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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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fff,#191919> 어뢰정 페르노프
구축함 프로젝트 35노트형, 노빅급(데르즈키급, 오르페이급, 이쟈슬라프급, 피도니시급), 프로젝트 마트로소프 1917년형
잠수정 / 함 델핀, 솜급, 카사크타급, 미노가, 아쿨라, 카르프급, 카이만급, 크랍, 모르즈급, 바르스급, 나르발급, A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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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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Полтава

1. 개요2. 제원3. 설계
3.1. 형태3.2. 화력3.3. 장갑3.4. 엔진
4. 운용

1. 개요

러시아 제국이 건조하고 운용한 전드레드노트페트로파블롭스크(Петропавловск)급 전함.

러시아에서는 페트로파블롭스크(Петропавловск)급이 아닌 폴타바(Полтава)급으로 칭하며, 1890년대에 완성된 러시아 제국 해군 태평양 함대의 전드레드노트급 전함들이다.

러일전쟁 당시 첫 실전을 겪으며 1번함 페트로파블롭스크는 여순항 전투에서 기뢰에 폭침되었으며, 2번함 폴타바는 일본 제국 해군에 노획 후 편입되어 '단고'라는 함명을 새로 부여받고 활동하였다. 1차대전 당시 독일 제국의 식민지였던 산둥 반도에 대한 공격에 참여하였으며, 1917년 러시아 북해함대의 기함으로 반환되었다. 러시아 혁명 이후 적백내전 당시 적군 소속으로 편입되어 활동하다 백군을 지원하는 영국 해군에 의해 버려졌다.

2. 제원

폴타바급 전함[1]
Петропавловск (броненосец)
이전급 시소이 벨리키
다음급 로스티슬라브급 전함
전장 114.6m
전폭 21.3m
흘수 8.61m
기준배수량 11,354 톤
만재배수량 11,536 톤
출력 보일러 14개
10,600HP
항속거리 10노트 (약 19km/h) 순항 시 6,940km
최고 속력 16노트 (약 30km/h)
동력 기관 3단 팽창식 피스톤 왕복 증기기관 2기
추진 2축 프로펠러
무장 주포 12인치(305mm) 2연장 40구경장 함포 2기
중간포 1892년형 152mm(6인치) 45구경장 함포 2연장 4기, 단장 4기
부포 3파운더 47mm 속사포 12기
속사포 단장 37mm 속사포 28문
어뢰 15인치 단장 수상 어뢰발사관 4문
18인치 단장 수중 어뢰발사관 2문
기뢰 50발
장갑 측면 305~406mm
갑판 51~76mm
포탑 254mm

3. 설계

3.1. 형태

페트로파블로프스크급 전함의 선체는 건현이 높은 평갑판형 선체였지만 특징적인 중량경감을 위한 텀블홈형 선체였다.
전방 밀리터리 마스트 배후에는 연돌 2개가 세워졌으며 그 주변은 함재정을 비치하여 각 현에 1기씩 배치했다. 함재정 비치소 후방은 후방 밀리터리 마스트가 세워졌다.

3.2. 화력

주포로는 <Pattern 1895 30.5cm(40구경) 포>를 채용했는데 그 성능은 331.7kg의 포탄을 15도로 14,640m까지 쏠 수 있었고 사거리 5,490m에서 201mm의 현측갑판을 관통했다. 이 포는 연장포탑에 수납되었는데 최대각은 15도, 최저 5도였으며 선회각은 135도로 주포신의 제어, 포탑의 선회, 포탄의 장착, 장탄 등은 주로 증기펌프의 수압으로 이루어졌으며 장탄기는 전력과 동시에 보조로 인력을 필요로 했다. 발사속도는 분당 1발이었다.
부포로는 <Pattern 1892 15.2cm(45구경) 속사포>를 채용했다. 그 성능은 41.4kg의 포탄을 20도로 11,520m까지 쏠 수 있었으며 사거리 5,490m에서 43mm의 장갑을 관통했다. 포탑형식의 부포는 최대각이 20도, 최저 6도로 선회각은 135도였으며 발사속도는 분당 3발, 단장포가 부포는 최대각 20도, 최저 5도로 선회각은 100도였으며 발사속도는 분당 5발이었다.
그리고 수뢰정 방어용으로 프랑스 호치키스 사의 4.7cm 포를 라이센스 생산한 <Pattern 1873 4.7cm(43.5구경) 속사포>를 채용했다. 근접화기로는 3.7cm 속사포를 단장포가에 28기를 탑재했으며 대지공격용으로 <파라노프스키 6.35cm(19구경) 야포>를 2기 탑재했다. 대함공격용으론 38.1cm 어뢰발사관을 단장으로 1번 주포탑의 측면과 후방마스트의 측면에 1문씩 합 4개, 45.7cm 수중어뢰발사관을 각 현에 1기씩 2기를 배치했다.

3.3. 장갑

3.4. 엔진

추진기관은 직립형의 3단팽창식 4기통 레시프로 기관 2기 2축 추진으로 요구성능은 10,600마력이었지만 몇 차례의 교체를 하여 <페트로파블로프스크>(네임쉽)은 11,213마력에 16노트를 발휘했다. 여담으로 <폴타바>는 러일전쟁에서 일본 해군에 포획되었을 당시보일러가 노후화되어 있었기에 일본 해군은 미야하라식(宮原式) 석탄 전용 보일러 16기로 교체하여 출력 10,600마력으로 속력 16.2노트를 유지했다.

4. 운용

함명 기공 진수 취역 퇴역 매각
1 페트로파블롭스크
(Петропавловск)[2]
1892년 5월 19일 1894년 11월 9일 1899년 1904년 4월 13일 기뢰에 피뢰되어 침몰
2 폴타바
(Полтава)[3]
1892년 5월 19일 1894년 11월 6일 1903년 8월 1918년 5월 1925년 11월 21일
3 세바스토폴
(Севастополь )[4]
1892년 5월 19일 1895년 6월 1일 1900년 1905년 1월 2일 자침

4.1. 러일전쟁

1번함 페트로파블롭스크는 취역 후 1899년 10월 17일 크론슈타트를 출발해 1900년 5월 10일 뤼순에 도착, 제1태평양전대 기함이 되었으며 의화단 전쟁에도 참전했다.

4.1.1. 뤼순 공방전

  • 1번함 페트로파블롭스크
1904년 2월 8일~9일 밤 페트로파블롭스크는 일본 연합함대가 러시아 함대를 기습했을 때는 공격받지 않았으며 자매함 폴타바는 한 발을 맞고 함교에서 부상자가 2명 발생했다.이후 9일 아침 교전에서 페트로파블롭스크는 연합함대의 6인치 포탄 1발, 12인치 포탄 2발을 맞고 사망자 2명과 5명의 부상자를 냈다. 페트로파블롭스크도 응사해 12인치 포탄 20발과 6인치 포탄 68발을 발사했지만 전과는 없었다.

3월 28일 세바스토폴이 페레스베트와 충돌해 프로펠러가 손상되었다.

4월 13일 새벽 페트로파블롭스크가 자매함 폴타바와 순양함 3척의 호위를 받아 일본 연합함대와 교전을 시도했으나 연합함대가 전함 6척을 동원했기에 후퇴해 항구를 나오던 타 전대와 합류하려 했으나 9시 42분 기뢰에 접촉해 침몰했다.
  • 3번함 세바스토폴
6월 23일 뤼순항 탈출에 실패하고 후퇴하던 중 실수로 기뢰에 접촉해 11명이 사망했지만 항구에 복귀하는 데 성공하고 6주간 수리에 들어간다.

8월 10일, 세바스토폴은 황해 해전에서 선미 포탑의 포 중 하나가 고장난 상태로 일본 함대와 교전을 벌여 몇 발을 피격당했지만 레트비잔과 함께 미카사에 사상자를 냈으나 체사레비치가 피격당하면서 후퇴하고 전투 중 6인치 1문, 47mm 2문을 상실했다.

8월 23일 세바스토폴이 9척의 호위함과 함께 탈출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복귀 중 다시 기뢰에 피뢰당해 피해를 입는다.

12월 5일 203고지가 함락당한 뒤 11인치 포 5발을 맞았지만 안전지대로 도주해 방뢰망의 보호를 받았다.

12월 18일 일본 어뢰정들과 구축함들이 발사한[5] 어뢰 4발 중 한 발이 프로펠러에 맞아 기동 불능에 빠졌지만 반격을 가해 구축함 2척을 격침시키고 6척에 피해를 입혔다.

1905년 1월 2일 뤼순이 함락되자 에센 제독이 세바스토폴을 수심 55미터 해역에 자침시켰다.

4.1.2. 칭다오 전투


[1] 러시아어 위키 제목[2] 크림 전쟁 당시 페트로파블롭스크 공방전.[3] 대북방전쟁 당시 폴타바 전투.[4] 크림 전쟁 당시 세바스토폴 공방전.[5] 3주 동안 세바스토폴을 노리고 80발의 어뢰가 발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