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09 18:53:54

코리에츠



1. 사전적 의미2. 러시아 해군의 군함 이름
2.1. 이 이름이 붙은 함선들
2.1.1. 코리에츠(1888)2.1.2. 코리에츠(1906)2.1.3. 코리에츠(1989)

1. 사전적 의미

Кореец
러시아어한국인을 뜻하는 단어이다.

2. 러시아 해군의 군함 이름

러시아 해군의 군함 이름. 2024년 현재까지 총 3척의 함명으로 사용된 적이 있는 이름이다.

2.1. 이 이름이 붙은 함선들

2.1.1. 코리에츠(1888)

1대 코리에츠이자, 코리에츠급 포함의 선도함. 이름의 유래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한국인, 정확하게는 러시아 내에 거주하던 고려인이다[1]

코리에츠는 1886년 8월 7일 스웨덴 스톡홀롬에서 진수되었고, 이후 1888년 정식으로 러시아 해군 태평양 함대에 편입되었다. 코리에츠는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주로 활동하며 조선(대한제국), 일본, 청나라의 항구들에 자주 기항하였다.

1889년 의화단 운동이 벌어지자 코리에츠는 8개국 연합군 소속으로 청나라에 파견되었으며, 1900년 6월에는 연합군과 함께 청나라의 다구 포대를 공격하는 작전에 투입되었다. 이 과정에서 코리에츠는 청나라 측 해안포의 반격을 받았고, 그 결과 포탄 6발에 피탄당해 9명의 사망자와 20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후 1904년 초, 포트 아서(뤼순)에 머물고 있던 코리에츠는 전함 바랴그와 함께 당시 일본과의 분쟁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던 한반도의 제물포(인천)으로 이동해 러시아 선박들을 보호하고 해당 해역에서 러시아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활동했다. 그리고 1904년 2월 7일, 코리에츠는 제물포로 접근하는 대규모 일본 함대를 포착했고, 즉시 뤼순항에 원군을 요청했다.

그러나 다음날인 2월 8일, 코리에츠는 제물포를 빠져나려고 시도했으나 일본 함대가 이를 막아섰다. 한편 이때 코리에츠는 일본 함대를 뤼순에서 도착한 증원군으로 생각하고 축포를 장전했으나, 거리가 가까워지자 뒤늦게 이들이 일본 해군임을 알고 축포 대신 실탄을 장전했다. 한편, 그 사이 일본 해군 순양함 치요다는 코리에츠를 향해 어뢰를 발사했고, 이를 본 코리에츠가 함포를 발포하여 맞대응하면서 러일전쟁의 막이 올랐다. 참고로 이 사건에 관해서는 현재까지도 일본과 러시아 측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2]

어찌되었든 양측의 포격과 뇌격은 모두 빗나가면서 첫 교전은 어떠한 사상자도 없이 마무리되었다. 이 교전 직후, 코리에츠는 제물포 항내로 귀환하였고, 바랴그의 함장 프세볼루트 루드네프는 일본 해군의 항복 요구를 거절함과 동시에 바랴그와 코리에츠를 이끌고 제물포를 탈출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2월 9일, 두 함선은 일본 해군의 봉쇄를 뚫으려고 시도했으나 숫적 열세를 뒤집진 못했고, 결국 그날 오후 다시 제물포로 후퇴해야 했다. 코리에츠는 이 전투에서 함포 52발을 발포하며 분전했으나 함포의 사정거리 문제로 포탄 대부분은 일본 함선들에 닿지도 못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으로, 일본 해군은 바랴그에 공격을 집중시켰던 탓에 코리에츠는 매우 경미한 피해만을 입었다.

한편 제물포 항내로 귀환한 코리에츠와 바랴그는 일단 중립국 함선들 옆에 정박하여 공격을 피하려고 노력하였으나, 뒤쫓아온 일본 해군과 다시금 교전을 벌이게 된다. 이 과정에서 바랴그를 나포하려는 일본 승조원들과 이를 막으려는 러시아 승조원들이 바랴그의 선상에서 격렬한 싸움을 벌였고, 이를 목격한 코리에츠의 승조원들은 함이 나포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오후 4시경 포탄 2발에 불을 질렀다. 그렇게 코리에츠는 대폭발을 일으키며 가라앉았고, 미리 탈출한 승조원들은 프랑스 해군 순양함 파스칼함으로 이동해 프랑스의 보호를 받았다. 이들 생존 승조원들은 전원 프랑스령 인도네시아를 거쳐 최종적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귀환하였으며, 니콜라이 2세는 이들 전원에게 전부 4급 성 게오르기우스 훈장을 수여하며 치하했다.

이후 가라앉은 코리에츠함의 잔해는 일본 해군이 1905년 건져낸 다음 스크랩시켰다. 참고로 이 과정에서 코리에츠에 게양되었던 러시아 해군기와 바랴그의 함수기는 일본 측에 노획되어 인천 향토박물관에 전시되었다가, 광복을 거쳐 현재는 최종적으로 인천 시립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2.1.2. 코리에츠(1906)

길략(Gyilak)급 포함의 함선이자 2대 코리에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건조된 뒤 1906년 러시아 해군에 인도, 최종적으로는 발트 함대에 편입되었다.

이후 벌어진 1차 세계 대전에서는 리가 만 해전에 참전했으나 1915년 8월 8일 독일군에게 나포되는 것을 막기 위해 승무원들이 스스로 자침시키는 것으로 최후를 맞이했다. 어찌 1대 코리에츠와 최후가 너무 비슷하다면 기분 탓일 것이다.[3]

2.1.3. 코리에츠(1989)

그리샤-III급 초계함으로, 3대 코리에츠. 1989년 4월 하바롭스크 조선소에서 건조되었다.

이쪽은 위 두 척과 다르게 처음부터 코리에츠라는 함명으로 불리지는 않았다. 원래 함명은 MPK-222였으나, 러시아 내 고려인 단체의 요청으로 2003년 11월, 코리에츠로 개명되었다.

이 함은 2024년 현재도 러시아 해군 태평양 함대에서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1] 코리에츠를 포함한 코리에츠급 포함 8척은 전부 러시아 내 거주하던 소수민족들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2] 일본은 코리에츠가 먼저 함포를 발포하여 치요다에 화재가 발생했기에 어뢰를 발사함으로서 대응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반대로 러시아는 치요다가 먼저 어뢰를 발사했으며 코리에츠는 이에 대응해 응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3] 단, 리가 만 해전은 제물포 해전과 다르게 러시아 측이 승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