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06 07:44:30

마르크앙드레 아믈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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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ddddd,#010101><colcolor=#000000,#dddddd> 마르크앙드레 아믈랭
Marc-André Hamelin[1][2]
파일:마르크앙드레 아믈랭.png
출생 1961년 9월 5일 ([age(1961-09-05)]세)
퀘벡주 몬트리올 베르됭(Verdun)
국적
[[캐나다|]][[틀:국기|]][[틀:국기|]][3]
직업 피아니스트, 작곡가
가족 아버지(1934-1995)[4], 어머니, 여자형제, 배우자[5]
학력 뱅상 댕디 음악학교 (졸업)
템플 대학교 음악대학 (학사, 석사)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1. 개요2. 연주/평가3. 작품 목록4. 디스코그래피5. 여담

[clearfix]

1. 개요


▲ 아믈랭이 쇼팽-고도프스키 연습곡집 45번, 7번, 8번, 13번, 18번을 차례로 연주하는 영상.[6]

캐나다 출신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엄청난 테크닉으로 슈퍼 비르투오소(Super Virtuoso)라고 불린다.[7] 퀘벡주 몬트리올에서 출생하였고, 5살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했다고 한다. 약사이자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였던 아버지 덕에 어렸을 적 부터 샤를 발랑탱 알캉이나 고도프스키, 소랍지같은 작곡가들의 곡을 접할수 있었다고 하며[8], 몬트리올에 있는 뱅상 댕디 음악학교를 졸업 후 미국 템플 대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밟았다. 1985년 카네기 홀 국제 아메리카 음악 콩쿠르(Carnegie Hall International American Music Competition)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9] 그의 명성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동시에 프로 연주 생활도 이 즈음 시작되었다. 1989년에는 버지아나 파커 상을 수상하였고, 2003년에 Officer of the Order of Canada, 2004년에 Chevalier de l’Ordre du Québec이라는 훈장도 수여받았다. 2017년에는 밴 클라이번 콩쿠르[10]에서 심사위원을 맡았고, 이에 대한 커미션으로 "'무장한 병사'에 의한 토카타(Toccata on L'Homme Armé)"를 작곡했다.

이처럼 피아니스트 쪽으로 유명하긴 해도 아는 사람만 아는 그런 인물이었지만, 엉뚱하게도 인터넷 등지에서는 인간이 칠 수 없는 피아노곡으로 한때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군 서커스 갤럽의 작곡가로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2. 연주/평가

'슈퍼 비르투오소'라는 수식어 답게 현대 피아니스트 중 테크닉면에서는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봐도 무방하다. 리스트, 알캉이나 고도프스키, 부조니 등 고도의 연주 기교가 요구되는 작품들이 그의 레파토리의 주를 이룬다! 거기다 아믈랭 본인이 작곡한 에튀드들도 종종 연주하는데, 하나같이 비인간적인 난이도를 자랑한다.

큰 손을 갖고 있는데, 11도를 집는 너비도 너비지만 두께가 엄청나다. 그러면서도 매우 유연하고 빠르다. 이런 손에서 나오는 터치의 묵직함은 실로 엄청난 것으로, 수십분을 상회하는 알캉의 곡을 연주하고도 피날레에 피아노가 터질듯한 소리를 낸다. 체력도 엄청나다. 간간히 조금 땀을 흘리는 것 이외에 지친 기색을 보이질 않는다.



인템포 연주가 10분을 상회하는 알캉의 마이너에튀드 Op.39 No.10을 8분 30초 만에 완주하는 영상. 어느 사람들은 1분 앞당기는 게 뭐가 어렵냐고들 하겠지만.. 10분에서 8.5분으로 단축하는 것은 연주를 17.6%가량 빠르게 했다는 것이다.[11] 그런데 이 곡 자체가 원래 속도로 연주해도 매우 어려운 곡이다. 얼마나 어려운지를 비롯한 자세한 내용은 샤를 발랑탱 알캉/에튀드 항목 참조.
유튜브를 찾아보면 최근 올라오는 연주들은 거의 9분대에서 머무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중 아믈랭 만큼의 정확도와 깔끔함을 보여주는 연주는 거의 없다.[12] 반면 아믈랭은 무작정 빠르게 치지 않고, 전체적인 속도는 높인 채 곡의 분위기에 따라 템포를 조절하여 곡의 효과를 높였다. 이들을 고려했을 때 아믈랭의 해석은 이 곡에 대한 혁명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테크닉 위주의 피아니스트들이 다른 피아니스트보다 상대적으로 감정적인 성향과 자기과시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에 비해[13] 아믈랭은 섬세함과 깔끔한 절제를 갖춘 밸런스형 피아니스트다. 그의 테크닉은 굳이 과시하지 않아도 쉽게 눈에 띄는데, 그 어떤 난잡하고 빠른 패시지도 음표 하나 놓치지 않으며 정확하고 묵직하게 터치한다.

그가 연주한 쇼팽의 뱃노래(Op. 60)[14]발라드3번에서는 매우 정석적인 연주를 보여준다.

또한 레파토리의 시대가 아주 다양하여 초기 바로크부터 현대 음악까지 없는게 없다. 그의 말로는 다양한 작곡가를 발굴해 내고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을 즐긴다고 한다. 그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매우 예술적인 곡들[15]을 사람들에게 소개한다. 아믈랭이 리사이틀을 여는 것도 자신의 기교를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 목적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나, 라흐마니노프와 같은 차이코프스키의 제자 출신 니콜라이 메트네르, 니콜라이 카푸스틴[16]의 경우 아믈랭의 연주, 즉 발굴 작업으로 인지도가 상승했다는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레파토리의 방대함 때문에 한 레파토리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피아니스트들에 비해선 음악적 진중성이 떨어진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예를 들어 쇼팽의 경우 크리스티안 짐머만같은 콩쿨파 피아니스트들과 비교되어서 까이기도 하고, 프란츠 리스트의 경우는 치프라호로비츠, 라흐마니노프알렉시스 바이센베르크나 얼 와일드에 비교된다. 실제로 그가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음반 발매전에는 아믈랭의 초인적 연주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발매 후 기대에 미치지 못해 실망이라는 평이 많이 보였다.[17]

하지만 이건 명백한 오해인것이, 그는 그의 엄청난 테크닉을 오로지 곡을 연주하기 위한 도구로만 사용할 뿐이지, 그 이상으로 쇼맨쉽을 발휘하는 건 녹음은 물론 라이브에서도 자제한다. 쇼팽과 라흐마니노프 정도 되는 레벨의 곡들이 너무 쉽고 무난하게만 들리니, 불꽃 튀기는 연주를 기대했던 사람들이 당황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일단 그의 성격 자체가 거장 음악가로서는 정말로 드물게 밝고 둥글둥글하고,[18][19] 지나치게 진지하거나 격정적인 연주 자체가 그의 스타일이 아니다. 수많은 어려운 레퍼토리들을 게임 클리어하듯이 즐기면서 연구하고 연주하는, 이 시대의 굇수라고 볼 수 있다.

3. 작품 목록

항목 참조

4. 디스코그래피

항목 참조.

5. 여담

  • 1980년부터 40년 넘게 미국에 살고 있는 아믈랭이라지만 프랑스계 캐나다인, 일명 퀘벡인으로서의 정체성은 계속 유지하고 있다. 2017년 출판된 소곡집 서문에서 "저희 퀘벡인들에게는(To us Québécois)"이라는 말이 적혀 있을 정도.
  • 2023년 4월 1일에 하농 전집을 발매한다는 홍보영상을 올렸다. 링크 하농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것이 목적이라는데, 프리뷰로 17, 59, 31번을 마치 녹턴처럼 느리고 끈적하게 쥐어짜는 모습을 볼 수 있다.[20]
  • 체르니와 쇼팽-고도프스키의 곡에 대한 BBC 인터뷰에서 11도가 거뜬히 닿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거인손(…) 인증을 했다. 오른손이 아닌 왼손이 좀 더 크다고.[21] 라흐마니노프 관련 인터뷰에서는, "라흐마니노프의 손은 굉장히 커서 12도는 거뜬히 닿을 수 있었다. 나(아믈랭)는 11도(도에서 파까지)가 닿는다."라고 자신이 직접 인증했다.
  • 그 유명한 아믈랭의 1997년 12월 11일, 14일 도쿄 리사이틀은 그에게 매료된 일본의 어느 클래식 애호가가 1997년 1월 초청을 제안하면서 시작되었는데, 당연히 거절될 줄 알았던 그의 제안은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그렇게 하나같이 괴물 같은 레퍼토리로 가득차 있었던 아믈랭의 첫 일본 리사이틀은 이틀 모두 만석을 기록하여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1998년 4월 8일 NHK 『クラシックアワー』를 통해 방영된 리스트, 스크랴빈 연주 영상과, 당시 콘서트홀에서 촬영된 나머지 영상들이 2000년대 이후 유튜브에 공개되며 일본은 물론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아믈랭 애호가들에게 아믈랭의 전설적인 리사이틀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후기
  • 개정판 에튀드 1번 트리플 에튀드의 작곡 비화가 있다.[22] 생전에 고도프스키가 이미 쇼팽의 가 단조 에튀드 세 곡, 그러니까 10-2, 25-4, 25-11을 대위적으로 융합하여 완성했음을 짐작케하는 에튀드 목록[23]이 존재하지만 정작 그 악보는 제2차 세계대전중에 유실되고 만다. 그래서 아무도 고도프스키가 이런 일을 한 것을 몰랐지만 아믈랭의 한 친구와 그가 그 묘기를 재현할 수 있을 것인지 내기(...)를 하는 바람에[24] 작곡하게 된다.
    아믈랭의 말한 그의 어떤 친구란 바로 IPAM[25]의 큐레이터인 도널드 매닐디(Donald Manildi)다. 1990년에 쇼팽의 10-5 에튀드를 단조로 편곡해서 발표[26]하자, 도널드가 그 실력을 근거로 아믈랭에게 슬쩍 권유를 한 게 사건의 발단이다. 고도프스키도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였기 때문에 입장이 비슷한 아믈랭에게 내심 기대를 했던 셈.
  • 이와는 별개로 스코틀랜드의 작곡가 앨리스터 힌턴(Alistair Hinton)[27]이 아믈랭에게 도발을 당했는데, 사실 그는 아믈랭이 트리플 에튀드(1992)를 내기 훨씬 전인 1977년에 Les Trois Chopins(세 쇼팽)이라는 이름으로 컨셉이 같은 작품을 완성한 바 있었다. 하지만 본인도 퀄리티에 만족하지 못했고, 고도프스키가 이미 시도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는 곧바로 쓰레기통에 버렸기(…) 때문에 출판까지 가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 아믈랭이 힌턴에게 완성된 트리플 에튀드의 악보와 함께 편지를 보냈고, '세 쇼팽'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으나 '(원고가 있었다면) 당신의 작품을 보고 싶었겠지만 그런 스타일은 아니었을 것[28]'이라는 코멘트를 남겼다. 비록 오래전 작품이지만 아믈랭의 도발에 자극을 받아 힌톤도 같은 해에 '세 쇼팽'을 개정[29]하여 'Étude en forme de Chopin(쇼팽 형식의 에튀드)'으로 이름도 바꿔 출판했는데 정작 퀄리티는 트리플 에튀드가 더 낫다는 평이 자자하다.
  • 내림 마 단조인 에튀드 7번은 원래 전혀 다른 곡이 될 예정이었다. 암암리에 그 자필보가 돌고 있는데 부제가 딱히 없고 non Troppo morendo, lugubre (cominciare più lento) - legatissimo[30]라는 악상 지시가 있을 뿐이라는 점, 3페이지 짜리이며 끝세로줄 표시는 있지만 거대한 '?' 마크와 함께 불완전마디로 종결되는 점 등으로 미루어보아 미완성 자작곡[31]흑역사[32]으로 추정된다. 양손이 n옥타브 차이[33]로 똑같이 움직이는데, 거의 모든 음표에 임시표가 붙어있을 정도로 보기 난해하고, 빠르기도 2분음표 = ca.[34] 60을 지시하고 있지만 정작 악보는 8분음표만으로 표기되어있어 그렇게 느리지는 않다.
  • 이혼을 한 적이 있다. 1999년에 촬영된 것으로 추정된[35] 일본의 다큐멘터리에서는 조디 케린 애플바움(Jody Karin Applebaum)이 아내라고 소개되었지만, 2005년 이혼하고 2016년에 캐시 풀러(Cathy Fuller)와 재혼했다.
  • 이 사람의 10~20대 때 모습[36], 1990년대 후반 모습, 2005년 안경을 낀 모습과 2006년 안경을 벗은 모습, 2015년 안경을 다시 낀 모습을 보면 동일 인물인가 싶을 정도로 외모 변화가 두드러진다. 특히 2006년을 기점으로 외모가 확 달라진다. 탈모 때문으로 보인다.
  • 아직까지도 활발하게 연주 활동을 하고있다. 2004년 1월 30일과 2012년 3월 12일 내한하여 자신의 에튀드 12번을 치는 등 한국 관객들 앞에서 자신의 초인적인 연주 솜씨를 유감없이 과시했다. 이 이후로 한국에서의 인지도도 조금씩 상승하는 중. 2020년 9월 12일, 13일 양일간 내한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의 장기화와 동시에 재확산으로 인하여 취소되었다. 이렇게 코로나19로 인해 연주 활동이 힘들어지자 코로나 초기 라이브 스트리밍 리사이틀을 열기도 했다. 2024년 9월 8일 내한 예정이다.
  • 2017년 들어 미국 제45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반감을 트위터에 자주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이라는 질문에 사임(Resign)이라고 한 마디로 답하기도 했다.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 시즌이 다가오자 "트럼프에 투표하지 말자!"라는 내용의 트윗을 리트윗하기도 하였다. 아래 공화당 의원에 대한 규탄을 포함하면, 아믈랭은 반(反)공화당 성향임을 알 수 있다.
  • 성씨에 아믈랭(Hamelin)이 있어서 그런지, 2015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2위 샤를 리샤르아믈랭(Charles Richard-Hamelin)과 엮이는 편이다. 하지만 마르크앙드레 아믈랭이 트위터에 전혀 같은 집안이 아니라고(no relation) 언급했다.[37] 그럼에도 2022년 7월 9일 리사이틀에서 이 두 명이 모차르트의 피아노 두 대를 위한 소나타와 협주곡, 아믈랭의 탱고를 연주하는 등 계속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 이 기사에 의하면 아믈랭은 1형 당뇨병을 앓고 있다고 한다. 2017년 소곡집에 실린 맨 마지막 곡 '초콜릿에 대한 감상'의 소개글에서 식단제한 때문에 초콜릿을 못 먹었다고 말한 이유가 바로 그것. 정작 아믈랭은 인슐린 주사를 더 맞았는지 조금 먹었다고 한다. 2022년 4월 6일 미국 연방 하원의원 맷 게이츠(Matt Gaetz, 공화당)는 인슐린의 가격 인하를 반대하며 "당뇨가 있는 사람들은 살을 빼야 한다."는 주장을 했는데, 아믈랭은 "1형 당뇨병은 살 뺀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이런 사람들이 법을 만든다."라고 그를 규탄하는 트윗을 올렸다. 1형 당뇨병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췌장 자체가 망가져 있는 상태라 생존하기 위해서는 인슐린을 외부에서 주입해야 하기 때문이다.[38]
  • 지금까지 운전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고 면허도 없다고 한다. 트윗


[1] 사실 Marc-André 는 연음(enchaînement)되기 때문에 실제 발음은 '마르캉드레'에 가깝다.[2] 이 독법은 아믈랭이 프랑스계 캐나다인임을 감안하여 프랑스어식으로 읽은 것이다. 그러나 1980년 8월부터 계속 미국에 정착한 탓에, 쇼트트랙 선수 샤를 아믈랭을 '찰스 해믈린'으로 읽듯이 마르크앙드레 아믈랭 자신조차 '해믈린'이라고 말한다.[3] 1980년 템플 대학교 수학을 위해 미국 필라델피아로 이주한 후 계속해서 미국에 살고 있고, 현재는 보스턴에 거주 중이다.[4] Gilles Hamelin, 하술하겠지만 아믈랭은 아버지를 자신의 음악 인생을 시작하도록 도와준 아주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5] 본래는 Jody Karin Applebaum과 결혼했으나 2005년 이혼하고 이후 WGBH 라디오 진행자 Cathy Fuller와 연애를 이어가다 2016년 6월 26일 재혼했다.[6] 45번은 '새로운 에튀드 2번'을 편곡한 것으로, 곡 전체에 깔린 폴리리듬이 매우 복잡하기로 악명높다. 7번과 8번은 'Op. 10, No. 5'을 편곡한 것인데, 7번은 각 손의 역할을 바꾼 편곡이며, 8번은 왼손이 다 장조로 전조된 (원본의 오른손) 선율을 연주한다. 13번은 'Op. 10, No. 6'을 왼손만으로 연주하도록 편곡한 것이고, 18번은 'Op. 10, No. 9'를 'Op. 25, No. 2'의 스타일로 편곡한 것이다.[7] 해럴드 숀버그가 뉴욕 타임즈에서 쓴 기사에서 나온 표현으로, 그를 표현할 때 항상 뒤따라오는 별칭이 되었다. 일본에서도 1999년 경, 이 별칭을 제목으로 삼아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다만 아믈랭 자신은 이 별명을 그렇게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한다.[8] 아믈랭은 어릴 때의 이런 영향이 매우 컸던지, 인터뷰할 때 거의 항상 '아버지께서는 굉장한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셨다. (My father was a great (형용사는 very good 등 긍정적인 단어로 많이 바뀐다) amateur pianist.)'라고 아버지 이야기를 꺼낸다. 아믈랭의 아버지는 1995년에 사망했다.[9] 상금 또한 어마어마했는데 당시 기사를 살펴 보면 본래 상금은 1만 5천 달러였는데 커미션곡 초연과 협주 콘서트 계약 등을 위한 프로모션 3만 5천 달러와 녹음계약을 위한 2만 5천 달러가 더해져 총 7만 5천 달러가 되었다. 2022년 시세로 따지면 20만 달러(우리 돈으로 2억 6천만 원)에 달하는 거금이다![10] 이때 대한민국의 선우예권이 우승했다.[11] 원곡은 ♩=100인데 반해 아믈랭의 연주는 평균적으로 ♩=112이며, 난이도가 정점을 찍는 Con brio 부분에서는 오히려 더 빨라져 ♩=125까지 도달한 적도 있다.[12] 다른 알캉 스페셜리스트 잭 기븐스의 연주가 아믈랭의 연주와 함께 쌍두마차를 달린다는 평가가 있다. 하지만 속도만을 따지자면 이 연주도 9분 40초가 최고 기록. 반면 아믈랭의 음반 연주는 9분 20초 가량이다.[13] 물론 치프라나 호로비츠의 모든 연주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호로비츠의 쇼팽 영웅 폴로네즈나 치프라의 순례의 연보를 들어보면 결코 자기과시적이거나 섬세한 면이 떨어지지 않는다. 랑랑도 예술적인 면에서 뒤처지는 것은 아니다. 쇼팽 발라드 연주 영상을 보면 주요 멜로디를 잘 살리고 개성있는 표현을 보여준다. 발라드 1번 피날레 부분에서 쓸데 없이 빠른 건 논외로 하자[14] 유튜브 영상이 삭제되어, 쇼팽 소나타 음반이나 1991년 몬트리올 리사이틀 영상을 참고할 것.[15] 아믈랭은 이 두 가지 조건 중 '예술성'이 충족되지 않으면 잘 연주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아메데 메로의 에튀드(Op. 63) 24번을 '음악성 없는 난곡'이라며 깠고 지금까지 연주한 흔적도 없다(...).[16] 재즈 작곡가로 알려져 있으나 엄밀히 재즈 작곡가는 아니다. 재즈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클래식 작곡가라 할 수 있다.[17] 그러나 이 작곡가들이 앞에 서술한 작곡가보다 비주류인 관계로 "만약 아믈랭 말고 다른 사람이 알캉이나 고도프스키를 쳤다면 아믈랭이 독보적인 존재일수 있을까?"하는 물음을 던지기도 하는데 리스트같은 다른 테크니션의 곡을 잘친다 해서 이들의 곡도 잘 칠수 있다라는 확증은 없다. 그런 가정법은 무의미할 뿐이다. 근데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알캉이나 고도프스키곡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건 사실이다.[18] 인터뷰하는 영상에서 웃는 모습이 등장할 때가 많고, 유머를 좋아해서 아믈랭 에튀드 6번, 9번은 물론 파가니니 변주곡 등의 경우, 그의 유머에 대한 이해 없이는 완벽한 연주를 하기 어렵다. 그의 유머가 극대화된 곡은 Circus Galop과 같은 자동피아노를 위한 곡들이기도 하다.[19] 거장 피아니스트들 중에서 예민하지 않은 성격의 소유자는 정말 손에 꼽을 정도다. 까다로움으로 잘 알려진 작곡가/피아니스트만 해도 호로비츠, 리히터, 미켈란젤리, 쇼팽, 고도프스키, 글렌 굴드, 등등.[20] 물론 만우절 장난이다.[21] 아믈랭 왈, "The left hand is ever so slightly larger."[22] 유투브에 돌고 있는 본인의 연주 영상 초반에서도 이에 대해 설명한다[23] 아믈랭에 의하면 11개가 더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 53개로 남아있다는 것에 감사해야한다[24] 참조 "but a friend of mine……DARED me……to reproduce THAT stunt!" 참고로 "~dared me"까지 일본에서의 인터뷰에서도 똑같이 말한다. 제안 자체가 그만큼 당시에 그렇게 썩 내키지 않았다는 소리다.[25] International Piano Archives at Maryland; 매릴랜드 국제 피아노 기록물 보관소.[26] 아믈랭의 10번 에튀드[27] 2005년 힌턴의 권유 덕분에 12년이나 중단되었던 에튀드 작업을 4번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이어 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결국 4년 뒤 에튀드의 모든 12개 곡이 23년만에 완성되었다.[28] I would have been interested in seeing yours, but I guess it was not to be[29] 원고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기억에 의존해서 다시 작업했다고.[30] 너무 작아지지 않게, 슬프게(lento보다 더 느리게 시작) - 아주 매끄럽게[31] 12번 에튀드의 작곡 시기에서 멀지 않은 1987년 2월 21-22일로 기재되어있는 점으로 보아 습작일지도?[32] 에튀드를 다룬 논문에 의하면 아믈랭은 정말로 흑역사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33] 처음과 마지막에는 진짜 쇼팽 프렐류드 Op. 28, No. 14처럼 1옥타브 차이로 움직이지만, 중간에는 2옥타브 이상으로 벌어진다.[34] circa(대략)의 준말[35] 많은 곳에서는 첫 일본 리사이틀이 열린 1997년 12월로 쓰고 있지만, 인터뷰에서 1998년에 발매된 메트네르 소나타 전집이 나오거나, 배경음악으로 1998년에 발매된 "The Composer-Pianists"에 삽입된 아믈랭 에튀드 10번이 흘러나온 것을 보면 맞지 않는다. 영상 중 일부는 이곳이곳에 언급된 리사이틀을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데, 연도 없이 월부터 표기하고 있으므로 제작 연도는 1999년이 유력하다.[36] 이 곳에서 아믈랭의 20대 모습을 볼 수 있다.[37] 후술할 리사이틀 이후 진행된 샤를 리샤를아믈랭과의 인터뷰에서, 샤를은 부모 두 명의 성을 모두 이어 받았기 때문에 그의 성이 리샤르아믈랭이라고 하였다. 스페인어권 혹은 국내 일부 페미니스트의 작명 원리와 같다.[38] 여담이지만 당뇨가 오기 전에는 연주회 전날 스파게티 등으로 탄수화물을 마구 채워 먹어야 되겠다 생각하곤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