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5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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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하는 (쉬아) 사우디 여성 기도하는 사우디 남성
1. 개요2. 문화3. 외모4. 오해 및 편견
4.1. 사우디인은 전근대적이다4.2. 사우디인은 광신도들이다4.3. 사우디 여성들은 니캅, 아바야를 하고 억압당하는 존재이다.4.4. 사우디인의 전통복장은 케피예, 싸웁이다
5. 출신 인물
5.1. 남성5.2. 여성
6. 관련 문서

1. 개요


사우디아라비아 국적을 보유한 아랍인.[1]

아랍인에 대한 대중적인 고정관념들은 대개 사우디아라비아인을 비롯한 걸프 아랍인에서 비롯되었고 대안 우파, SJW, 퇴행적 좌파에게 사우디인이 아랍인뿐만 아니라 무슬림으로 과도하게 대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본래 아라비아반도의 아랍인들은 대략 6000년 전에 아라비아반도로 이주해 온 셈족의 후손으로 고대 아랍어를 구사했고 7세기에 아랍어를 중동 서부와 북아프리카를 중심으로 각지에 전파한 민족이기도 하지만 아랍인들은 기회만 되면 척박한 아라비아반도 사막지대를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성향이 있었기 때문에 사우디인=오리지널 아랍인이라는 개념은 많은 비판이 따라올 수 밖에없다. 오아시스에 거주하며 대추야자 농사와 상업에 종사하던 사람들 외에도 바다위(بدوي, badawiyy)라고 불리던 낙타 유목민들도 거주하였는데 이들은 문화/생태가 상당히 달랐다.

18세기 후반 와하브파 신학이 보급되었고 20세기에 사우디아라비아가 건국되었다. 이후 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 부국이 되고 생활 수준이 급격히 상승함과 동시에 와하브파 근본주의가 강화되면서 사우디아라비아 영내에 거주하는 아랍인들만 따로 사우디인이라고 분류되기 시작했다.

이름에 '빈' 이나 '빈트'라는 문구가 자주 보이는데 빈은 아들에게, 빈트는 딸에게 붙인다. 실례로 빈 라덴은 '라덴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2. 문화

일반적으로 남성은 케피예, 싸웁을 입으며 여성은 아바야, 니캅을 입는다.

히자즈에 사는 히자즈인을 제외하먄 베두인처럼 유목 생활을 해 왔지만 20세기 이후에 석유로 인한 수익이 급증하면서 네지드, 할리지처럼 과거에 도시가 없었던 지역에도 도시들이 생겨나 점자 정착 생활을 하고 있다.

3. 외모

사우디인의 외모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고 외국인 이주민들도 꽤 있는 데다 국제결혼이 성행하는지라 인도인, 파키스탄인이나 레반트, 북아프리카나 동유럽에서 온 사람들도 상당수 있기도 해서 이들의 혈통이 섞이기도 한다. 중부와 동부는 흑발갈안백인이 대다수고 서부는 이슬람 이전부터 시작된 흑인 노예의 유입으로 흑백혼혈아랍 흑인이 종종 있는데 대개 흑백혼혈이 더 많다. 파티마 알바나위처럼 사우디인 중에 녹안이 있지만 이는 극소수다.

레반트와 마그레브와 달리 갈발이 적고 피부색이 갈색이기 때문에 이집트인, 오만인과 인종적으로 비슷하며 눈섭이 짙기 때문에 아라비아 반도 북쪽에 사는 백인 아랍인들과 차이가 있다.[2][3]

4. 오해 및 편견

한국에서 흔히 알려진 사우디인에 대한 편견 아랍 방송에서 방영된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한국인 인터뷰
파일:saudisprotestreply.jpg
위 동영상에 대한 사우디 네티즌들의 반발 댓글

정치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는 겉으론 미국을 비롯한 서방권과 손잡고 석유를 팔고 무기를 열심히 사지만 뒤로는 와하비즘을 비롯하여 이슬람 극단주의가 성행하고 교조적인 나라라는 이중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전부터 진보, 세속주의자들에겐 악명 높은 나라였는데 2010년대 들어서 사우디와 우호적인 외교관계를 유지해 온 미국에서도 인식이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이중적인 행보와 인권 탄압은 비판받아야 마땅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인식이 사우디를 필두로한 걸프 아랍인 전반을 향한 인종차별적 고정관념으로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사우디아라비아 미남 배우 추방 사건이 와전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대중들의 고정관념과 일치하여 진실인 것처럼 세간에 퍼진 적이 있었다.

4.1. 사우디인은 전근대적이다

파일:70s khobar.jpg

1970년대의 코바르 풍경[4]
놀라운 대회 스타킹 228화에 대한 반박 영상

사우디아라비아가 워낙 폐쇄적이기 때문에 사우디인들은 21세기에도 동도서기처럼 전근대 문화를 지니고 살고 있다는 고정관념이 존재하는데 사우디아라비아가 와하비즘 정책 때문에 외국인들에게 이슬람적인 모습만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영내에 세속주의적인 모습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파이살 국왕은 1964년에 집권하자마자 석유 판매로 얻은 자금으로 사우디아라비아를 어느 정도 근대화했는데 그 유산이 1980년 이후 와하비즘 정책이 강화되고 나서도 남아 있다. 2010년대 이후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는 사우디의 석유 고갈을 예측해 와하비즘 정책을 약화시켜 해외 자본을 유입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이는 사우디인이 생존하기 위해선 이슬람 근본주의를 고집할 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흔히 인터넷에 떠도는 70년대 아프가니스탄 사진처럼 사우디도 오히려 70년대에 지금보다 훨씬 더 개방적이고 사회적인 근대화를 추진했지만 1979년 메카 점거 사태라는 초유의 사건으로 인해서 의도적으로 수구교조 광신화 정책을 펴게 되었다.

4.2. 사우디인은 광신도들이다


와하비즘 종주국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이슬람 율법을 조금이라도 어기면 곧바로 테러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비아랍인뿐만 아니라 타 국가의 아랍인들에게도 있다.

2014년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가 발흥했을 때 이를 도운 사우디인들이 있었지만 대다수가 아니라 소수였다.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의 발흥 이전에 알카에다, 헤즈볼라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테러를 자행하는 바람에 테러리즘을 정당화하고 있는 살라피즘은 반이슬람적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사우디 내 와하비스트들은 대개 타종파, 타종교에 배타적인 성격이 있지만 그들도 테러리즘을 혐오하고 사우디 외 무슬림들에게 선교할 때도 테러리즘은 비이슬람적이라고 매년마다 강조하고 있다.[5] 사우디아라비아의 종교경찰소련의 비밀경찰과 달리 사우디인 전체를 감시하는 것[6]도 아니고 영토가 큰 데다 행정력이 약해 일부 사우디인의 세속적인 언행을 다 단속할 수 없다. 여기에 세속화를 지향하는 빈 살만 왕세자의 집권 이후로는 구금 등의 조치를 할 수 없도록 종교경찰의 권한이 상당히 축소되어 있다.#

사우디인들은 다른 지역의 아랍인들과 달리 아라비아반도 출신이기 때문에 고대 아랍인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농사를 짓지 못하고 유목, 상업에 전념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외부인에 대한 정보를 알아야만 했으며 이것이 환대 문화의 원천이 되었다. 사우디인들은 내부적으로 세속주의에 부정적이지만 외부인에 대해서는 친절한 편이며[7] 그들의 종교, 정치를 언급하지 않으면 호전적으로 대하지 않는다.[8]
Aoife Clifford라는 여성 유튜버가 홀로 사우디를 여행하는 모습 Hanna Bint Kim의 여행 동영상

한국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가 남성 관광객을 맞이해도 여성이 홀로 다니는 것은 위험하다는 의견이 초마드, 빠니보틀의 사우디 여행 동영상에서 종종 나오지만 위 동영상에서 보듯이 위협하는 사우디인은 없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개혁개방의 일환으로 관광비자를 2017년에 발급하기 시작했는데 이전에는 북한처럼 베일 속에 싸인 이슬람 종주국이라는 이미지로 알려졌다. 무함마드 빈 살만 이전의 사우디 정부가 파이샬 국왕 사후에 와하비즘 정책 때문에 자신들이 이슬람 국가로만 알려지기 원했기 때문에 사우디에도 자유주의적, 세속주의적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지 못하게 되었다. 그들도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을 우선시하는 무감정한 군단으로만 외국인에게 오해받게 된 것이다.

4.3. 사우디 여성들은 니캅, 아바야를 하고 억압당하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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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드 모하메드[9] 밀라 앗자흐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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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에 선발된 여성 항공 관제사 패션 행사에 참석한 사우디 여성들

니캅이 이슬람 이전부터 아라비아반도에서 생겨난 페이스베일(Face veil)이기 때문에 이슬람을 근거로 대부분의 사우디 여성들이 관습적으로 니캅을 쓰고 있지만 대도시에 거주하는 중상류층 사우디 여성들은 히잡을 쓰는 경우가 있는데 강약약강하는 종교경찰은 이를 제지하지 못한다.[10] 베일을 안 쓰는 사우디 여성들도 일부 있지만 베일이 의무사항으로 법규화된 사우디아라비아 영내가 아닌 아랍에미리트 같은 타 아랍 국가에서 그럴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알 왈리드 빈 탈랄이 운영하는 로타나의 사옥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 지부라도 히잡을 안 쓰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11]

와하비즘, 베두인 관습 때문에 억압당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목숨이 위협받는 것은 아니다. 여성이 대놓고 위협받는 아프가니스탄은 현재까지도 내전이 일어나고 빈곤이 만성화된 곳이고 파키스탄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달리 이슬람 율법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도시화도 사우디보다 덜하기 때문에 농촌에서 일어나는 닫힌 사회에 기반한 악습이 이슬람이라는 명분으로 일어나는 지역이다.[12]

위 사진에 나온 여성들은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여성들이다. 하지만 알아야 할 것은 저러한 사진은 사우디아라비아 밖에서 찍은 것이라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 들어가서는 공공장소에 나설 때는 이비야를 입어야 하며 저런 사진의 촬영은 물론이고 유통 자체도 엄격히 통제된다. 이 사진들이 의미하는 것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그러한 악습에 기꺼이 동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외국에서 이러한 행동을 해도 사우디아라비아 외교부가 통제하지 않는 이유는 빈 살만 이전부터 왕정은 와하비즘을 뼛속까지 신봉하는 성직자단보다 세속적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사우드 왕조 자체가 원래 종교 꼴통하고는 거리가 먼 그냥 지방 군벌 세력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런 신정국가를 구성한 이유는 아라비아반도를 통일할 때 이슬람 성직자단의 지지를 얻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인데 당시 대부분의 교단이 자신들을 거부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몰아낸 그 후세인이 아랍 최고의 성골인 무함마드 직계 남성 후손이자 수십대에 걸친 메카의 수호자 가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와하비즘 교단과 손을 잡은 것은 오로지 그들만이 지지했기 때문이다. 수니파는 기본적으로 무함마드의 직계혈통을 시아파보다는 덜 중요시하는데 와하비스트들은 극단주의 수니파들인 만큼 다른 수니파들도 그래도 무함마드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손대기 어려워했던 무함마드의 방계 남성 후손의 메카의 수호자 지위마저도 세습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사우디는 성립부터 지금까지 와하비즘 성직자단의 입김이 결코 작지 않은 국가이지만 정작 왕가는 단지 메카를 점령할 구실로 이용할 필요가 있을 뿐 그 종교적 교리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그 전통이 이어지는 것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여성은 사우디아라비아 외부로 가면 사우디 국내의 제약에서 크게 벗어나서 서구권 정도는 아니더라도 다른 아랍 국가와 비슷한 자유를 누릴 수 있지만 와하비즘 성직자단이 직접 통솔하는 종교경찰이 치안권을 가지고 있는 사우디 국내로 들어가면 알짤없다. 세속적인 성향이 강한 왕족으로는 특별한 케이스지만 모두가 망나니인 집안에서도 모범생이 나오듯이 종교적으로 독실한 국왕이 등극했을 때는 행정부가 완전히 종교꼴통으로 바뀌어 사우디 외부에서도 급작스럽게 통제가 강해지기 때문에 과거에 언니나 고모, 엄마, 이모들이 저랬다고 눈치없이 까불다가는 큰코 다칠 수 있다. 실제로 1977년에 미샬 빈트 파흐드 알사우드 공주가 레바논인과 눈맞아 탈출했다가 사우디 외교부의 요청에 의해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체포된 사건이 일어났는데 결국 이슬람 율법을 어긴 죄로 총살당했다. 이 사건의 명예살인이 이슬람과 무관하다거나 시골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선전도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13] 다행히 차기 왕이 될 예정인 빈 살만은 세속주의적 행태를 보이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전제군주국이고 내부적으로는 이슬람 성직자단이 치안권을 가지고 있는 국가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다음 왕권을 빈 살만과 같은 개혁주의적 성향의 왕족이 아닌 극보수주의자가 재차 장악한다면 저 여성들은 망명해야 하거나 자국에서 살해당할 수도 있다.

4.4. 사우디인의 전통복장은 케피예, 싸웁이다

파일:Capture+_2018-04-09-20-54-03-1-1.png
무함마드와 그의 동료들이 묘사된 세밀화. 7세기 당시가 아닌 오스만 제국 시기에 페르시아인이 그렸다.[14]
파일:istockphoto-104268829-170667a.jpg 파일:hijaziwoman.jpg
히자즈 지역에서 유행했던 터번 히자즈 지역 여성의 전통의상[15]

사우드 왕조가 19세기에 아라비아 반도 전체를 정복하기 이전엔 지역마다가 문화와 언어가 세분화되어있었다. 서부의 히자즈, 중부의 네지드, 동부의 할리지는 18세기까지 별개의 문화를 지니고 있었으며 현대인이 알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문화는 중부의 네지드 지역의 문화가 사우디아라비아 전체에 강제된 결과다.

히자즈 지역에서 이슬람 이전에도 터번을 착용했다는 주장이 있지만[16] 이슬람 이전에도 무역이 발달한 곳이기 때문에 인도, 이란, 이집트, 그리스 문화가 공존했다. 메카 출신인 마날 앗샤리프는 히자즈 지역은 원래 니캅, 아바야를 쓰지 않았지만 19세기에 네지드의 와하브파들이 히자즈를 정복하면서 네지드 전통의상을 강요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할리지 지역도 네지드 전통의상이 강요되었지만 사우디아라비아와 별개의 정부로 지닌 걸프 아랍인들은 칼리지의 전통의상을 현재까지 지니고 있다.

5. 출신 인물

※ 중세 시대 아라비아반도 아랍인은 사우디인으로 정의되지 않음.

5.1. 남성

5.2. 여성

6. 관련 문서



[1] 영어 위키백과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 영내 외국인은 포함하지 않는다.[2] 사우디인이 아랍인을 과도하게 대표해 버렸기 때문에 레반트, 마그레브의 아랍인도 사우디인 외모처럼 묘사되고 있다.[3] 북아시아의 황인종에 비해 동남아시아의 황인종은 눈썹이 짙고 눈이 더 크지만 그렇다고 다른 인종으로 분류되는 것이 아니다. 인종은 안면의 특정 부분의 차이보다는 안면의 전체적인 모습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4] 한글 간판이 보이는 건 박정희 정권 시절에 한국인 노동자들이 중동으로 이주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5] 영화 와즈다를 촬영할 때 현지 사우디인들이 비난했지만 무기로 테러하지 않았다.[6] 사우디 종교경찰도 사우디인들을 감시하지만 건물 내부까지 감시하지 않는다.[7] 환대가 상당했던 초마드와 달리 빠니보틀에게는 무심했다는 것은 사우디인의 이중성이 아니고 빈곤한 지역을 관광한 빠니보틀과 달리 초마드는 부유한 지역을 관광했기 때문이다.[8] 종교, 정치 문제는 어느 곳이나 예민한 사항이다.[9] 2012년 와즈다 영화 당시와 외모가 다르지만 동일인물이다. 2022년경에 촬영되었다.[10] 이슬람 율법에는 니캅이 아닌 히잡이 권장 사항이므로 종교경찰은 조리돌림할 근거가 없다.[11] 알 왈리드는 대부호이기 때문에 종교경찰도 어찌 하지 못한다.[12] 파키스탄을 비롯한 남아시아에서 여성 피해 사건들이 자주 보도되는 것은 해당 지역이 무슬림들이 많아도 언론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그 지역의 악습, 범죄가 쉽게 보도될 수가 있는 것이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는 전제왕정이기 때문에 언론이 통제되어 있으며 그 곳에서 범죄가 발생한다고 해도 외부로 알려지기 쉽지 않다.[13] 당시 사우디가 이란 혁명과 메카 포위 사건에 대응하기 위해 이슬람 근본주의를 표방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주장이 있다.[14] 인터넷에 검색해도 나오는 초기 이슬람 세밀화들을 보고 선지자 무함마드는 7세기에 터번을 착용했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실증적으로 아랍 베두인들이 착용하는 케피예와 싸웁으로 묘사되어야 한다.[15] 레반트의 전통의상과 유사하다.[16] Khan, Uthman (May 2014). "Islamic Clothing, Then and Now"[17] 주요 성적은 EVO 2009 길티기어 엑센트코어 플러스 우승, EVO 2011 스트리트 파이터 4 준우승[18] 부친은 사우디 태생의 사우디 국민이 맞지만 조부는 예멘 태생이고, 모친은 스위스 국적이며 조모와 외조모는 이란계이다. 페르시아어 구사도 가능하지만 아랍어는 구사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저 있어 어떻게 보면 이란계 미국인에 더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