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하 감독 장편 연출 작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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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죽거리 잔혹사 (2004) Spirit Of Jeet Keun Do - Once Upon A Time In High School | |
<colbgcolor=#010101,#010101><colcolor=#ffffff,#e0e0e0> 장르 | 드라마, 학원, 액션, 멜로, 로맨스, 느와르, 성장, 시대극 |
감독 | 유하 |
각본 | |
제작 | 차승재, 노종윤, 이민희 |
출연 | 권상우, 이정진, 한가인, 이종혁, 박효준 외 |
촬영 | 최현기 |
편집 | 박곡지 |
음악 | 김준석, 정세린 |
촬영 기간 | 2003년 6월 29일 ~ 2003년 11월 30일 |
제작사 | |
배급사 | CJ엔터테인먼트 |
개봉일 | 2004년 1월 16일 |
상영 시간 | 116분 (1시간 56분) |
대한민국 총 관객 수 | 3,115,767명 |
상영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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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영화. 유하 감독. 권상우, 이정진, 한가인 주연. 2004년 1월 16일 개봉했다. 1970년대 강남 8학군의 상문고등학교와 은광여자고등학교를 참고해 배경으로 하고 있다.2. 예고편
3. 시놉시스
1978년, 우리들의 학원액쑌로망 이소룡의 절권도는 과거 무도인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다. 단순한 무도가 아니라 오직 싸움에 이기기 위해 창조된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절권도는 우리에게 뒤돌아 볼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길이 정해졌으면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 브루스 리, <절권도의 길> 중에서 - 이소룡이란 홍콩 스타가 우리를 사로잡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내게도 이소룡은 최고의 우상이었다. 우리는 이소룡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도 금방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땐 그가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멋진 사나이였다. 그때 꿈이 하나 있었다면 바로 이소룡처럼 되고 싶다는 거였다. 사는 동안, 누구나 인생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시절이 있을 것이다. 내겐 1978년이 그런 해였다. 그해 봄 우리집은 강남으로 이사를 왔다. 강남의 땅값이 앞으로 엄청나게 오를 것을 예견한 어머니가 서둘러 결정한 일이었다.[1] 내가 전학간 곳은 말죽거리 근방에 있는 정문고등학교였다. 나는 정문고의 악명을 어렴풋이 듣긴 했지만 그 소문이 제발 사실이 아니길 바랐다. 1978년 말죽거리의 봄, 현수(권상우)는 강남의 정문고로 전학온다. 정문고는 선생 폭력 외에도 학생들간 세력다툼으로 악명높은 문제학교. 이소룡 열혈팬이라는 이유로 금세 죽고 못사는 친구가 된 모범생 현수와 학교짱 우식(이정진). 하교길 버스안에서 올리비아 핫세를 꼭 닮은 은주(한가인)을 보고 동시에 반하는 현수와 우식. 하지만 은주는 다정한 현수보다 남자다운 우식에게 빠져든다. 한편, 학교짱 자리를 놓고 선도부장 종훈과 한 판 붙은 우식. 종훈은 비열한 방법으로 우식을 이기고, 우식은 그 길로 학교를 떠난다. 우식 없는 틈을 탄 종훈의 괴롭힘, 열반으로의 강등, 더해가는 선생들의 폭력, 게다가 은주마저 결국 우식을 택하자 현수의 분노는 폭발한다. 현수는 밤새 연습한 쌍절곤을 들고 학교 옥상으로 향하는데. |
4. 등장인물
자세한 내용은 말죽거리 잔혹사/등장인물 문서 참고하십시오.5. 줄거리
전체적인 스토리는 1978년 다소 내성적인 성격의 '김현수'라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새롭게 전학간 정문고등학교[2]에서 변화해 가는 과정이다. 권상우가 현수를 연기했으며 2003년 《동갑내기 과외하기》(494만 관객)에 이어서 이 영화를 통해 충무로에서 스타로 발돋움했다. 절권도를 수련하면서 특유의 탄탄한 몸매를 보여준다.현수의 아버지가 태권도 도장을 운영해서 어릴 때부터 태권도를 해온 듯 하지만, 소심하고 조용한 모범생이었던 현수는 친구 우식을 따라 일탈해보기도 하고, 떡볶이집 아줌마의 유혹에 성관계 직전까지 가기도 하고, 은주와의 풋사랑에는 좌절하고, 우식과는 은주 문제로 멀어지고 하는, 소위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다. 그런 시기를 거치면서 학교와 집에서의 숨막히는 환경에 답답해하다가 선도부장 종훈이 우식을 꺾은 뒤 의기양양하게 날뛰자 결국 울분이 폭발하여 학교를 잡고 있는 종훈을 비롯, 악명높던 선도부 깡패들을 완전히 때려눕히고 퇴학당한다.[3]
이후 대학교 진학을 위해 검정고시 및 입시 학원을 다니게 된 현수는 옛 사랑이었던 은주를 우연히 만나지만, 옛날 자신을 설레게 했던 첫사랑 은주가 아닌 대학에 낙방한 은주로서 멋적은 인사만 나누고 헤어지고, 이제는 '이소룡'이 아닌 '성룡'의 영화가 걸려있는 극장 앞에서 '햄버거'와 농담을 나눈 뒤 그 배우의 연기 흉내를 내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6. 평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한국영화 1001|'''죽기 전에 꼭 봐야 할 한국영화''']] |
2024년을 기준으로 영화의 시간적 배경이 되는 1978년은 무려 46년 전이고, 영화 자체도 개봉한 지 정확하게 딱 20년이 된 작품이라서 연령대가 낮은 관객들은 권상우가 이소룡을 따라하는 단순한 학원 액션 영화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작품의 본질은 「유신 정권 당시의 학창 생활」에 대한 애증 어린 회고담이며 그것을 배경으로 어느 한 청소년의 성장기이다. 공부 잘하고, 성실하고, 순진하고, 첫사랑을 바라보기 바쁜 평범한 학생이 1970년대 당시 제도권 교육의 폭력적 현장에 휩쓸리면서 쌍절곤으로 선도부원들을 때려눕히는 괴물이 되는 과정을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당대의 우상이자 아이콘었던 이소룡, 이소룡에서 성룡으로 주도권이 넘어가던 격변기(?), 폭력과 강압, 비리가 난무하던 군사독재 시절의 고등학교, 나이를 속이고 몰래 '고고장'과 '롤러장'을 다니던 학생들, '빵집'에서의 데이트, 학교 앞에 늘 아이들이 모이던 떡볶이집
이 영화의 백미는 후반부에 옥상에서 현수와 선도부장 차종훈 패거리가 혈투를 벌이는 옥상 결투씬. 사실성을 살리기 위해 100% 리얼 액션으로 촬영했다고 한다. 권상우가 절권도를 수련하는 장면 자체는 멋있는데, 막상 싸움에 들어가면 합이 딱딱 맞는 영화적 액션이 아니라 뒤에서 선빵치기부터 시작해서 실제 고등학생들이 할 법한 개싸움으로 흘러가는데 이 리얼함이 포인트다. 결정적으로 초중반부에 3학년과 한판 제대로 벌인 뒤 우식이 현수에게 '애들 싸움은 별거 없고 선빵을 날리면 이긴다'는 말을 하는데, 막판의 싸움도 그렇게 되었다. 현수의 엄청난 맷집과 체력, 그리고 쌍절곤을 이용한 선빵 역시 승리의 핵심. 이 마지막 옥상 결투신은 의외로 해외에서도 꽤나 유명한데, 한 외국인이 Bullies vs Bruce Lee Fan이라는 제목으로 유튜브에 올린 옥상 결투신이 무려 1,000만(2023년 12월 기준)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기 때문. 결투신에 대한 평가는 호평 일색.[4]
영화를 보며 눈치챈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 장면에서는 1980년대를 관통하는 액션 기술들과 미장센은 죄다 나온다. 앉아 회전차기, 진공 무릎찍기에 드롭킥, 샤이닝 위저드, 삼각차기같은 1명을 발판으로 삼아 걷어차며 방향을 회전해 반대방향의 적을 때리는 기술과 앞차기로 2명을 밀어내는 장면 등등... 거기에 지금이야 17대 1이 싸움 허세의 정점이었지만 당시만 해도 이소룡의 영향인지 5대 1이나 6대 1의 클리셰들이 유행했다.
이 장면 내내 써먹히는 쌍절곤은 영화 자체를 관통하는 아이템이다. 당시 체육용품점에서 합법적으로 판매하는 쌍절곤은 나무나 플라스틱으로 된 봉에 사슬과 이어지는 부위는 저가형은 구멍난 철판에 돌아가는 쇠고리로 연결된 것이었고 고급형은 베어링을 사용했는데, 봉 부분 내구도가 약해 양아치들은 나무 또는 플라스틱으로 된 봉을 쇠파이프로 교체한 것을 사용했다. 알루미늄 파이프는 가볍지만 내구도가 약하고 가벼운 만큼 파괴력이 약해 잘 사용하지 않았고 알루미늄 봉은 구하기가 어렵고 속이 꽉 차있는 만큼 휘어지기 쉬운데다가[5] 비싸서 안 썼다. 현수처럼 쇠파이프로 만든 것[6]을 선택하고 그것을 전기 절연 테이프 (고무테이프가 더 좋은데, 구하기 어렵고 비싸서 주로 절연테이프를 썼다.)로 감아 재질을 감추고 손에서 미끄러지지 않게 그립력을 강화하는 방법은 실제로 많이 했던 것으로, 영화를 보면 현수의 것은 베어링을 사용한 기성품(체육사에서 사 온 세 종류 중 하나)을 마개조한 자작품이다.[7] 감독이 고증을 매우 잘 했다.
마지막 옥상결투씬 이후로 울먹이며 외치는 "대한민국 학교 좆까라 그래!"[8]는 순수하고 착한 학생을 다른 탈출구가 없도록 폭력적으로 물들이는 당시의 제도권 교육 및 세태를 정면으로 불신하고 비판하는 영화의 주제어라고 볼 수 있다. 이 세태는 국가에 비유하면 국민들이 기득권 지배층에 대항할 꿈도 못 꾸게 폭력적으로 물들이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참고로 저 대사를 외치기 직전에 쌍절곤으로 학교의 유리창을 깨부수고 그 자리에서 선도부 교사들을 향해 내던지는데, 이는 청소년 입장에서 학교라는 감옥을 부수는 것과 더불어 당대 국민의 입장에서 유신독재, 군사정권의 억압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상징적 장면이다. 마치 데미안에서 태어나려는 새가 알이라는 세계를 깨부수는 것처럼, 결과적으로 이를 통해 학교에서 벗어나게되고 더불어 청소년에서 어른이 된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도 1950년대~1960년대 학교를 소재로 한 일종의 비판적인 영화지만, 주인공인 현수와 다르게 한병태는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현실에서도 평범하게 살아간다. 권력자인 차종훈을 참교육하고 마지막에 일갈하며 나가는 장면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하는 장면. 또한 이 장면은 작중 주인공이 좋아했던 이소룡의 용쟁호투에서 오하라를 죽이면서 보여준 (흔히 싱하형으로 잘 알려진) 표정연기를 오마주한 것이기도 하다.
사실 현수가 선도부장 등 무리를 팬 것만 가지고는 그쪽 잘못도 상당히 있었기에 정학 정도에서 그칠 수 있었는데, 유리창을 박살낸 일(=학교 기물 파괴)까지 있는 것 때문에 퇴학을 당한 것이다. 영화에 나온 학교만큼 교칙이 엄하고 교사고 선도부고 폭력으로 억누르던 엄한 학교라면 사람을 안 때렸다고 해도 욕설+기물 파괴만으로도 충분히 퇴학을 받을 수 있다.
주연인 권상우는 특유의 혀짧은 발음 때문에 연기력을 저평가 받는 배우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 발음이 오히려 현수라는 캐릭터의 소심함을 표현하는데 적절해 연기에 호평을 받았다.
유하 감독의 출세작이라고 불릴만큼 흥행과 평에서 성공한 작품이다. 당시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가 무시무시한 흥행을 이어나가고 있었으나, 탄탄한 완성도로 호평을 받으면서 최종 누적 관객수 311만 5,767명을 기록하며 2004년 3위로 흥행을 거두었다.[9] 2001년 《친구》에 이어 가장 성공을 거둔 복고 청춘물로서 이 평가는 2011년 《써니》가 나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7. 패러디
자세한 내용은 어떤 녀석이 나한테 우유를 던졌어 문서 참고하십시오.2019년작 두번할까요에 이종혁과 권상우가 출연하는데 말죽거리 잔혹사 옥상결투 장면을 그대로 패러디한 두 동창생의 고교시절 회상장면이 나온다. 말죽거리 잔혹사처럼 윗층 복도에서 던진 우유를 맞은 이종혁이 교실로 올라와서 범인을 찾는데 "가오 좀 살려줘라"라는 박효준(햄버거)의 대사를 이 작품에서는 정상훈이 한다. 일대다 대결이 아닌 1:1 맞짱뜨기로 장면 시간도 짧다. 두번할까요(2019) 옥상결투 회상장면
8. 기타
- 제작비화가 상당히 재밌는데 이 영화가 제작되기 전인 1990년대 말 ~ 2000년대 초반에 일본의 이지메문화에서 원조가 된 것이라며 학생들 간의 괴롭힘, 교권추락, 그리고 노골적인 부조리가 이슈화되었고[10] 1960년대~1970년대생 사이에서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저런 일이 없었는데 요새 애들은 문제가 많다", "우리는 가난하긴 했어도 낭만이 있던 시대인데 요새 애들은 그런 게 없다" 라는 말이 나돌았다. 그러자 영화감독인 유하 감독은 빡쳐서 "니들이 학교 졸업한지 너무 오래돼서 다 까먹은거다. 우리 시절에는 저거보다 심했다." 라면서 예전이 좋았다고 헛소리를 하는 자기 또래들을 저격하려고 만든 영화가 바로 말죽거리 잔혹사다. 감독이 염세주의자라 일부러 이런 게 아니라 소위 말해 "니들 그렇게 학창시절에 당해놓고 어떻게 그 시대를 미화할 수 있느냐?" 라는 억한 심정이 담겨있다고 보는 게 맞다. 즉, 본인들도 시대의 피해자면서 이제와서는 왜 그걸 옹호하냐는 것이 골자이며, 좋았던 옛날 편향의 좋은 예시이다.
- 물론 이 당시에는 방송사와 신문 기사들이 제대로 아카이브화 되기 이전이었지만, 이 시대에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같은 옛 시대의 학교폭력을 다룬 작품들은 존재했다. 아무튼 학교 생활을 진짜 과장없이 너무 리얼하게 묘사하는 바람에 나때는 저런 거 없었는데 요새 애들은 먹고 살만해지니 오히려 이상한 짓을 한다는 1960년대~1970년대생을 단체로 조용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1990년대 이후 학폭 관련 범죄 통계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말죽거리는 서울특별시 서초구 양재동[11]에 있는 양재역 사거리의 옛 명칭으로, 조선시대부터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가는 말(馬)들에게 죽을 먹이는 거리라는 뜻[12]에서 유래된 명칭이다.[13]
- 약 5개월의 촬영 기간동안 전라북도 전주시, 군산시, 익산시, 정읍시 일원에서 촬영했다. 그 중 학교와 시내버스[14][15] 가 달리는 한적한 도로 풍경은 전주시에서 촬영되었다.
- 고등학생의 이야기를 다룬 15금 영화지만 상당히 걸쭉한 욕설과 폭력성을 자랑한다. 옛날 이야기를 다룬 영화라고 부모님이랑 같이 보다가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쏟아지는 욕에 멘붕할 수도 있으니 주의.[16] 다행히도 TV에서 방영하는 버전은 심한 쌍욕은 삭제한 버전이다. 그렇다곤 해도 새끼 정도는 삭제를 하지 않았으니 TV판도 시청할 때 꽤 주의. EBS1 방영분에서는 욕이 필터링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나왔다.. 고추보집물까지...[17]
- 학교앞 분식집 아줌마가 남학생과 성관계를 시도하는 장면이 있는데 어떻게 15금을 받았는지 궁금해지는 영화. 아마 노출이 적고 실제 관계까지는 가지 않았기 때문인 듯 하다. 사실 영화 등급(그것도 2004년)은 기준이 널널한 편이다.
버거형이 자기 유튜브 채널에서도 이 내용을 다뤘다
- 영화의 배경인 정문고의 모티브가 된 실제 학교는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동에 위치한 상문고등학교다.[20] 강남 8학군 지역 고등학교들 중에 악명높은 학교 분위기를 비롯해 학내비리로도 유명했던 사립고등학교로 그 막장성에 대해서는 전설적인 일화가 엄청나게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게 상문고등학교 비리재단 반대시위 사건. 영화에선 그 중 일부만 취해 엮었다고. 각본과 감독을 맡은 유하 감독, 영화의 제작을 맡은 싸이더스 노종윤 이사, 엔딩 타이틀곡을 부른 가수 김진표, 그리고 부패한 선도부장 차종훈 역을 맡은 배우 이종혁 등이 모두 실제 상문고 출신이다.
- 영화의 히로인이라 할 수 있는 한가인이 연기한 '은주'가 다닌 고등학교는 은명여자고등학교로, 이 역시 모티브가 된 실제 학교는 진짜 말죽거리인 양재역 근방에 위치한 은광여자고등학교[21]이다. 실제 은광여고와 상문고 학생들은 강남이 개발되기 이전인 1970년대부터 영화에서처럼 같은 버스노선으로 함께 통학하던 관계였고 남고와 여고라는 각각 특수한 사정이었던 탓에, 현재까지도 '상은회'라는 명칭으로 상문고등학교와 동문회도 함께 조직하는 등 전통적으로 깊은 유대감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은광여고는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송혜교, 이진, 한혜진, 궁선영, 백지영, 이의정, 음정희, 김준희 등의 연예인들이 나온 학교이기도 하며, 이들 중에 송혜교, 이진, 한혜진은 동기이거나 거의 같은 시기에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 이 영화의 대사에서 따온 건진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다 족구하라 그래!!"라는 글귀로 토모나리에서 홍보하고 있는 '족구왕 동혁이'라는 만화가 연재된 적 있다.
- 권상우 반의 반장인 이석수는 고집있는 모범생으로 그려지는데, 실제로 검사 출신 변호사인 이석수 특별감찰관에서 모티브를 따 왔다고 한다. 이석수 특별감찰관도 상문고 출신으로 유하 감독과 동기였다고 한다.
- 현수의 아버지 역할을 맡은 천호진은 원래 이 영화에 출연할 생각이 없었는데, 말죽거리 잔혹사의 제작사 대표인 차승재가 그와 같은 배재고등학교 동창인 그에게 출연을 설득했다고 한다. 천호진 본인은 차승재와 동창인지 몰랐는데 차승재는 고등학교 때 천호진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차승재가 말하길, 고등학교 시절 자신은 극중 햄버거(박효준 분) 같은 존재였고, 천호진은 극 중 우식이(이정진 분) 같은 존재였다고...(#)
- 2022년 10월 22일, 왓챠에서는 1990년대 미국 학교 친구를 골라보는 이벤트에서 말죽거리 잔혹사의 현수가 후보로 선정되었다. 그런데 말죽거리 잔혹사는 1978년 한국 학교를 배경으로 한 영화로 90년대와 미국은 등장하지도 않는다. 다른 후보들도 90년대에 학교를 다닌 캐릭터들[24]이 아니다.[25].
- 말죽거리 잔혹사와 비슷한 시대배경의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반을 다룬 대표적인 한국의 작품은 국제시장[26], 검정 고무신, 강남 1970, 고고70, 밀수, 그때 그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일본의 작품은 도라에몽, 치비마루코짱이 있다.
8.1. 이것 좀 만져봐
배우 김부선은 학교 앞 떡볶이집 아줌마로 특별히 출연하였는데, 영화에 잠시 등장한 것치고는 상당히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27] 특히, 권상우가 우울한 마음에 밤에 혼자 떡볶이집 가게에 찾아오자[28] 처음에는 고민상담을 해주는 듯하다가 점차 야릇한 분위기에 흠뻑 빠져, 찐한 키스와 함께 "이것 좀 만져봐"라고 말하며 권상우의 손을 자신의 가슴에 가져다 주고는 성관계 직전까지 가던 장면은 그야말로 충격의 도가니. 권상우는 연기 중에 실제로 당황한 바람에 귀까지 빨개졌다고 했다. 실제 대본김부선 역시 개봉 이후 인터뷰에서 '한참 후배인 권상우가 당황하던 모습에, 그전까지는 일단 씬을 살려보겠다는 생각으로 달려들었던 거지만 후배 앞에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며 살짝 비참한 느낌도 들었다'고 한다.
이 장면이 워낙 강렬했던지라 디씨, 웃대 등의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이 대사로 자주 드립을 친다. 또한 SNL 게임즈의 GTA 동급생에서도 패러디됐고, 불암콩콩코믹스에서도 썼다.# 또한 동명의 야구선수 김현수가 2016년 시즌 초 죽을 쑤다 5월 들어 괜찮은 활약을 보여주기 시작하자, 이 장면을 캡처 뜬 사진에 김현수의 얼굴을 합성한 짤방으로 패러디되기도 했다. 2013년에는 무한도전 뱀파이어 헌터에서 김부선이 뱀파이어들의 대모인 니키타 여사 역할로 등장하면서 이 장면을 그대로 패러디했다. 이때 니키타 여사한테 마늘[29] 목걸이를 선물받던 하하가 깜놀하는 모습은 덤.
김부선이 '안영미 최욱의 에헤라디오'에 나와서 인터뷰 하던 도중 관련 일화에 대해서 얘기한 적이 있다. 김부선은 중년 여인이 고등학생을 유혹하는 내용이 윤리적으로도 좀 그렇고, 현실성이 안 느껴졌던 듯하다. 그래서 김부선이 캐릭터가 이해가 안 돼서 고민을 하던 중에 "감독님, 이런 또라이같은 여자를 어떻게 제가 연기해요?"라고 물어보자... 유하 감독은 "부선씨, 이건 실제로 저의 경험담이에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김부선이 보기에 유하 감독은 되게 선하고 우등생 같은 사람인데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니 놀랐다고 한다.
이 장면은 대본에는 없는 김부선의 애드립성 연기로서 리허설 때도 하지 않았다가 본 촬영에서 즉흥적으로 만든 부분이라는 카더라가 있지만, 그렇지는 않은 듯 하다. 김부선의 또 다른 인터뷰에 따르면, 리허설인 줄 알고 찍은 테이크가 바로 오케이가 나서 한 번 더 찍자고 감독에게 부탁했더니 안 찍어줘서 돌아오는 길에 감독님 욕하고 울었다고 한다.
다만 나중에 개봉 후 유하 감독과 김부선을 만났을 때 대뜸 "(그 장면이) 잘 나왔죠?" 라고 했다면서, 그저 한 테이크만에 감독이 만족한 수준의 장면이 나와서 거기까지 촬영 했을 뿐이고 배우 본인이 혼자 오해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고 모 예능 프로에 나와서 후일담을 풀었다.
[1] 진짜로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강남이 전철 2호선에 들어서고 대도시로 발전하면서 땅값이 1평당 5억까지 뛰었다.[2] 실제 배경의 모티브가 된 상문고등학교에서 한글자만 바꿨다.[3] 현수 혼자서 차종훈을 포함한 8명의 선도부 깡패들을 완전히 때려눕혔다. 그것도 그냥 때려눕힌 것이 아닌 8명 전원을 금속제 쌍절곤으로 머리나 팔, 다리 등을 후려치거나 때리면서 아예 병원에 단체 입원을 시켜버렸다. 그런데 작중에서 현수는 싸움을 하고 싶어하지도 않고 경험도 없으나 운동 신경이 좋아서 농구도 잘하는데다 피지컬 자체는 상당한 편이고, 심지어 우식과 싸울 땐 대등하다 싶을 정도로 선전했으며 아버지에게 태권도 수련을 받고 있다는 묘사를 충분히 해 놔서 뜬금없이 강해진 주인공이란 느낌은 들지 않는다.[4] 주로 실제싸움을 보는듯 한 리얼함을 칭찬하는 댓글들이 많다.[5] 그래서 철봉을 속이 빈 쇠파이프로 제작한 것도 사용자의 몸무게로 인한 휘어짐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만일 속이 꽉 찬 쇠막대로 제작했다면 사용자의 몸무게 때문에 얼마 안가 금방 휘어졌을 것이다.[6] 수도용 파이프는 강하지만 너무 무거워 안 되고, 방범창이나 철문을 만드는 데 쓰는 두께가 비교적 얇은 쇠파이프나 스텐리스 파이프를 철공소의 자투리 철재를 얻는다든지 해서 구해 썼다.[7] 게다가 꺼내는 장면을 보면 두 개나 쓴다. 양쪽 허리춤에 하나씩 꽂은 상태에서 옥상으로.[8] "대한민국 학교 족구하라 그래!"로 순화(?)된 드립으로 유행한 적도 있다.[9] 1위는 《태극기 휘날리며》, 2위는 315만 관객의 《어린 신부》였는데 이 세 작품이 상반기를 그야말로 집어삼켰다. 그리고 후반기 한국 영화 흥행은 원빈, 신하균 주연의 《우리 형》과 정우성, 손예진 주연의 《내 머리속의 지우개》 외에는 계속 부진했다. 2005년 1월 《말아톤》의 500만 관객까지 말죽거리 잔혹사와 어린 신부는 대작들 사이에서 상당한 성공을 한 셈이었다.[10] 다만, 통계상으로 보면 청소년 범죄 자체는 1997년에 정점을 찍고 점점 하락세였기는 했었다. 여담이지만, 이 당시 일본도 체벌을 하는것은 기본에 머리를 빡빡하게 깍거나, 0교시, 야간자율학습을 강제하는 학교도 비일비재하는 등, 학생들을 빡세게 굴렸던 시대였었는데,(일명 관리교육) 사실 이 당시가 오히려 학교폭력이 절정에 달하던 시대였었고, 또한 이것이 일본 만화와 게임에도 영향을 주면서 한국에도 어느정도 영향을 주기도 했었다. 오히려 일본에서 학교폭력이 눈에 띌 정도로 줄어들기 시작한 것은 유토리 교육이 도입되기 시작한 1990년대 후반부터의 일이었다.[11] 강남구 도곡동과 서초구 서초동, 양재동의 경계가 되는 사거리이다. 보통 이 사거리는 서초구 관할로 보는데, 강남구 도곡동 영역이 1/4밖에 되지 않고, 양재역 사거리에 부속된 주요 시설이 모두 서초구 쪽에 있기 때문이다. 이 사거리 지하에 있는 3호선/신분당선 양재역도 주소가 서초구 양재동이다. 또한 이 일대는 서울 편입 이전 광주군 언주면의 중심지이기도 했다.[12] 한자로는 馬粥巨里(또는 馬竹巨里)로 쓴다.[13] 서울 도성에서 출발했다고 치면 13km 정도 되는 지점으로 말이 평지를 걷는 속도면 한두 시간이면 되는 거리이지만, 실제로는 조선시대에는 다리가 없어서 배를 타고 건너야 했기 때문에 배 시간을 맞춰서 걸었다 치면 4~5시간 정도는 걸려야 도달하는 지점이었다. 당연히 사람도 말도 배가 고파서 이쯤에서 말죽도 먹이고 사람도 요기를 했다고 한다. 참고로 말죽거리는 조선시대 주요 간선로였던 영남대로상에 위치했던 곳으로, 이 지역 주변에 '원지동(院趾洞)', '신원동(新院洞)' 등의 지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역원(驛院)이 존재했던 곳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14] 대우 BF105 버스가 촬영용 버스로 사용되었다. 1970년대~1980년대에 많이 사용되었던 프론트엔진 버스이며, 2003년이면 해당 버스가 지방 소도시에서 여객용으로 소수 사용되던 시절이다.[15] 구 서울여객 소속 78번. 당시 말죽거리에서 서울역 구간을 운행했으며 1997년 수서역 구간으로 단축. 2000년 삼영교통과 서울여객의 양사 합병으로 현재의 도선여객으로 사명을 변경한 후에도 존속하다가 2004년 개편 때 4312로 명맥을 잇고 있다.[16] VOD 버전만 해당.[17] 하지만 시간이 지나선 편집해버린다..[18] '찍새'가 머리를 감았다.[19] 배우 박효준이 맡았던 배역이다. 극중 본명은 함재복으로 본명으로 불려지는 경우가 거의 없으나, 우식이 야한 책을 뺏길 때 "햄버거요.", "누구?", "함재복이요."라고 선생에게 말하는 장면이 있다. 별명에 어울리는 본명과 생김새를 지닌 캐릭터. 여담으로 1978년에도 햄버거라는 단어는 존재하였다. 주로 영어 교과서에 등장하였으며, 제과점이나 주한미군부대 근처의 식당에서 햄버거를 판매하기도 하였다. 다만 가격대가 비싼데다가 대중적인 음식이 아니다보니 맛보기 쉽지 않았을뿐이었다. 국내의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가 등장한 시기는 1979년이다.[20] 상문고등학교는 영화 설정보다 5년 이른 1973년에 개교하였는데, 과거에는 상문중학교(1970년 개교)도 있었으나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 문제로 인해 1975년에 폐교되어 현재는 이 학교만이 남아있다.[21] 은광여자중학교도 함께 있었지만, 은광여중은 은성중학교(남녀공학)로 바뀌었다.[22] 극 중 영화 감독인 주인공의 친구가 영화를 만들었는데 영화의 제목이 <남부건달 항쟁사>. 거기다 주연배우는 이종혁.[23] 차종훈 옆에 붙어서 껄렁이기만 하는 병풍 역할을 하다가 차종훈한테 권상우가 "야 이 X대끼야. 니가 그러케 따움을 자래? 옥땅으로 올라와." 하고 도전하자, 차종훈 대신 권상우한테 "이 X발로미 X도 아닌 X끼가 어디서 깝죽대?"하고 말하며 나섰다가 권상우한테서 "따까리 X끼는 꺼져!"라는 팩폭으로 역관광을 당한다. 그 앙갚음으로 뒤에서 비겁하게 대형 거울로 권상우의 머리를 내리쳤다가 분노한 권상우한테 철제 문짝에 머리를 연거푸 찍히는 개굴욕을 당하면서 비참하게 K.O.당한다.[24] 화이트 칙스의 올슨 자매로 변장한 케빈과 마커스, 리플리의 리플리, 퀸카로 살아남는 법의 레지나.[25] 리플리는 1959년도의 이야기고, 화이트 칙스와 퀸카로 살아남는 법은 2000년대 초반을 다룬 영화다.[26] 월남전 및 파독광부 한정.[27] 실제로, 배우 김부선은 과거에 분식집을 운영했다. 한편으로 이게 슬픈 이야기인데, 김부선이 질이 나쁜 성상납 제의를 거절한 바람에 부당하게 방송 일이 끊겨서 생계유지 목적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했다. 김부선 본인도 방송에 나와서 성상납 제의를 받은 과거에 대해 억울하다면서 울분을 토한 적이 있다.[28] 권상우가 찾아오게 된 것은, 전에 가게에서 떡볶이를 먹을 때, 김부선이 권상우에게 시간에 구애받지 말고 언제든지 오라고 당부했기 때문이다.[29] 해당 특집의 설정으로도 그렇고 실제 뱀파이어와 관련된 전승에도 뱀파이어는 마늘에 약하다는 얘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