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6 15:30:10

라파엘 베니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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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베니테스의 역임 직책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둘러보기 틀 모음
대표팀
클럽
파일:발렌시아 CF 로고.svg

59대
파일:리버풀 FC 라이버 버드 로고(레드).svg

18대
파일: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로고(2014~2021).svg

69대
파일:첼시 FC 로고.svg

3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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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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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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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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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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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축구 감독
파일:라파엘 베니테스.jpg
<colcolor=#000000> 이름 라파엘 베니테스
Rafael Benitez
본명 라파엘 베니테스 마우데스
Rafael Benítez Maudes
출생 1960년 4월 16일 ([age(1960-04-16)]세)
스페인 마드리드
국적
[[스페인|]][[틀:국기|]][[틀:국기|]]
신체 175cm
직업 축구 선수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eeeeee><colcolor=#000000> 선수 레알 마드리드 C (1978~1979)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1979~1981)
→ AD 파를라 (1981 / 임대)
AD 파를라 (1981~1985)
리네라스 CF (1985~1986)
감독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1986~1989 / 코치)
레알 마드리드 유스 (1989~1991 / 코치)
레알 마드리드 U19 (1991~1993 / 코치)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1993~1995)
레알 바야돌리드 CF (1995~1996)
CA 오사수나 (1996~1997)
CF 에스트레마두라 (1997~2000)
CD 테네리페 (2000~2001)
발렌시아 CF (2001~2004)
리버풀 FC (2004~2010)
인테르나치오날레 (2010)[1]
첼시 FC (2012~2013 / 임시 감독)
SSC 나폴리 (2013~2015)
레알 마드리드 CF (2015~2016)[2]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2016~2019)
다롄 프로 (2019~2021)
에버튼 FC (2021~2022)[3]
RC 셀타 데 비고 (2023~2024)[4]
국가대표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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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평가
4.1. 전술 능력4.2. 선수단 관리4.3. 유망주 육성
5. 기록
5.1. 선수
5.1.1. 대회 기록
5.2. 감독
5.2.1. 대회 기록5.2.2. 개인 수상
6. 여담
6.1. 리버풀과의 사랑6.2. 첼시 시절 무리뉴의 천적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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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페인축구 선수 출신 감독.

UCL, UEL, 라리가 우승 경력을 가지고 있는 감독이다. 발렌시아, 리버풀, 인테르, 첼시, 나폴리, 레알 마드리드 등 강팀들의 감독을 맡았으나, 국가대표팀 감독 경력은 아직까지 없다.

2. 선수 경력

스페인 마드리드 출신으로 13세 때 레알 마드리드 유스팀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레알 마드리드 C와 카스티야에서 유망주 시절을 보냈고, 이 시기에 유니버시아드 스페인 대표로 뽑혔으나 캐나다전에서 상대 선수의 악의적인 태클로 중상을 입으면서 1년 넘게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고, 이 후 레알 마드리드 A팀 데뷔를 이루지 못하고 저니맨이 되었다가 불과 26세에 은퇴했다. 선수 생활 도중이었던 1982년 마드리드 공과대학에서 체육교육학 학위를 취득했다.

3. 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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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평가

베니테스에 대한 평가를 놓고 엇갈리는 양측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탄탄한 수비와 미드필드 구성을 보여주는 전술가 vs 커리어 초기 이후 전술적 발전 없이 퇴보 중인 감독
적절한 로테이션이 어우러진 효율적인 선수단 관리 vs 로테이션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선수들의 폼을 해치는 감독
능력에 비해 과소평가 받는 감독 vs 능력에 비해 과대평가 받는 감독
발렌시아, 리버풀, 첼시, 뉴캐슬의 부흥을 이끈 마법사 vs 인테르, 나폴리, 레알 마드리드, 에버튼을 망쳐버린 사기꾼
커리어 훌륭한 감독 vs 커리어 훌륭한 감독
컵 대회에 강한 감독 vs 리그에서는 큰 성과가 없는 감독[5]
프로페셔널한 선수단 관리 vs 답이 없는 소통 사망꾼[6]

4.1. 전술 능력

베니테즈 전술 능력 중 최고로 평가받는 부분은 수비조직력이다. 특히 리버풀 시절에 구상한 수비라인은 상당히 유명했고 토너먼트에서 괄목할만한 성적을 올린 핵심 요인이었다. 그의 수비철학은 상대에게 공간을 허용하지 않고 컴팩트하게 라인과 라인사이를 운영하는것이다. 즉 수비-미들-공격 이 셋 사이가 상당히 좁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올라간 수비라인은 발빠르고 볼 잘 다루는 키퍼였던 레이나를 활용하여 약점을 최소화했다. 또한 플레이메이커와 발빠른 원톱을 상당히 잘 활용하는 감독이다. 아이마르와 제라드를 대표로 한 그의 플레이메이커 활용능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고 그저그런 스트라이커였던 미스타를 원톱으로 내세워 19골이나 넣게 했던 것이나 스페인에서 유망주였던 토레스를 일약 세계 최고의 공격수 중 하나로 폭발시킨 점 또한 마찬가지다.

발렌시아 시절부터 팀의 플레이메이커 아이마르를 활용하는 4-2-3-1은 완성도 높은 전술가로서 베니테스를 평가하게 만들어 주었고, 라리가 우승과 유럽 대회 준우승 등 좋은 성과를 올렸다. 발렌시아에 이어 부임한 리버풀에선 대륙 축구를 도입했으며, 그의 축구가 거의 완성판에 가까웠던 2008-09 시즌은 스티븐 제라드사비 알론소를 중심으로 놓은 4-2-3-1로 강팀의 면모를 보였으며 이 시절에는 레알 마드리드를 안필드에서 4:0으로 발라놓고도 레알이 운이 좋아서 골을 덜 먹었다는 인터뷰를 하는 패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반면 자신의 팀의 상황에 맞는 맞춤 전술을 짜는 것과 경기에서 전술 변화에 대한 대처 능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먼저 리버풀에서는 알론소의 이적 후 제라드의 부담을 덜어줄만한 자원을 구하거나 다양한 공격루트를 찾으려 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알베르토 아퀼라니, 루카스 레이바 등은 모두 알론소의 공격 전개 능력의 반도 못따라오는 모습을 보였다. 오히려 아퀼라니와 루카스는 태클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

흔히 베니테스는 4-2-3-1 만 쓰는 감독이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베니테스는 리버풀에선 4-2-3-1보단 4-4-2를 훨씬 더 많이 쓰는 감독이었다. 그 4-2-3-1도 사실상 제라드를 아이마르와 같은 4-2-3-1의 플레이메이커가 아닌 섀도우 스트라이커로 톱 아래에 놓는 4-4-2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고, 그마저도 제라드가 전방 지역에서 풀 시즌을 소화했던 시즌은 08-09 시즌 정도 뿐이다. 베니테스가 4-2-3-1을 쓰던 시절은 발렌시아 시절이었고, 파블로 아이마르와 같은 고전적인 플레이메이커를 기용함과 동시에 창조성이 부족한 당시의 발렌시아 중원 사정상 최상의 선택이었을 뿐이었다. 또한 헥토르 쿠페르 감독 밑에서 성공한 팀이었던 만큼 포메이션을 크게 수정하지 않았던 탓도 있었다. 리버풀에선 공격형 미드필더의 창의성에 의존할 필요가 없었는데, 당장 사비 알론소가 깊은 곳에서부터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었고, 제라드 역시 그 위치에서 알론소와 함께 나란히 뛸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베니테스는 언제나 중원에서 로테이션을 가져가길 좋아했다. 가령 08-09 시즌 초, 맨유와의 리그 홈경기에서 제라드와 토레스를 벤치에 앉히고 4-4-2를 가동한 리버풀은 특유의 중원 장악 늪축구를 선보이며 맨유에게 2:1로 승리했다.

베니테스는 알론소와 마스체라노에게 거의 역할을 나누지 않고 박스 투 박스 임무를 수행하게 했다. 리버풀 시절 가레스 배리를 노렸던 것도 당시 그가 리그 최고의 박스 투 박스 선수였기 때문이었으나 결과론적으론 패착이 되었다. 흔히 베니테스 감독이 리버풀에 부임한 이후로 전형적인 스패니쉬 축구를 구사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리그에서 누구보다도 극도로 컴팩트하고 공수 균형을 맞추는 4-4-2 축구를 선호했다. 오히려 맨유와 아스날 등이 좀 더 대륙적인 기술 축구를 하는 팀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컴팩트한 축구가 강팀을 상대로 아주 효과적으로 들어 먹혔기 때문에 리버풀은 언제나 국내외 빅클럽들을 상대로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선수단의 네임 밸류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음에도 늘 리그의 빅4와 유럽 챔피언스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온 것은 분명히 베니테스 특유의 늪축구의 공이 컸다고 할 수 있다. 빅클럽들은 위상에 걸맞게 좋은 축구를 구사하기 위해서 상대적으로 위험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격적인 운영을 하지만 리버풀의 밸런스 있는 축구에 오히려 말려드는 상황이 많았다.

허나 반대로 말해서 이러한 축구 스타일로 인해 상대적으로 수비적이고 거칠고 단순한 축구를 하는 리그 중하위권 팀들을 상대로는 무기력하거나 허망한 패배를 당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리버풀이 '의적풀'이라는 별명을 얻는 데도 한 몫 했다. 컴팩트하고 전방을 향해 뻥뻥 내지르기만 하는 리버풀 특유의 축구가 강팀에겐 먹혀도 내려 앉는 약팀들을 상대로는 창의성이 결여된 축구 그 이상 그 이하도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리버풀이 자랑하던 그 중원은 알론소의 이적으로 인해 그나마 남아 있던 창의성을 상실했고 알론소를 대체하려던 아퀼라니는 로마에서 보던 그 선수가 아니었다. 그토록 염원하던 가레스 배리도 얻지 못했다. 제라드가 홀로 분전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거기다가 선수단 운영에 늘 잡음이 있었던 베니테스의 장악력에 한계가 오자 리버풀은 당연하다는 듯이 몰락했다.

인테르에서는 이런 단점이 극명하게 드러나며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자신에 전술에 전혀 맞지 않는 선수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술을 수정하기 보다는 억지로 선수들을 맞지 않는 포지션과 역할을 부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과거 무리뉴가 베테랑 수비라인의 효율적인 수비 후 마이콘, 웨슬리 스네이더, 디에고 밀리토 중심으로 한 빠르고 직선적인 역습을 추구하는 전술로 트레블을 이뤘다면, 베니테즈 부임 후에는 적절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라인을 끌어올리며 템포를 느리게 형성하다[7] 비어 있는 수비 뒷 공간으로 상대방에게 역습을 쉽게 허용하며 허무하게 실점하는 모습을 자주 연출하였다.[8]

또한 선수 교체 타이밍에도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팀이 밀리고 있을 때나 아니면 경기가 답답할 때 적절한 교체 카드 투입으로 경기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능력이 떨어진다. 그가 맡았던 리버풀은 스쿼드가 다른 강팀들보다 약했다는 반론이 있지만, 하위권 팀들에게 무를 캐거나 뜬금없이 패배할 때 교체카드를 좀처럼 쓰지 않아 경기도 지고 주전선수들의 체력도 소모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는 2009-10 시즌 리버풀이 최악의 부진을 겪을 때 극명하게 드러났고, 첼시와 인테르 시절에도 지속적으로 지적받는 단점이다.

이외에 그의 전술적 역량을 보여주는 예로 꼽히던 컴팩트한 공수 간격 유지도 현재 상태로는 시대에 뒤떨어진 구닥다리라는 평도 있다. 레알에서의 모습을 보면 공격수와 수비수의 물리적 간격이 꽤 좁은 것은 맞지만 그 사이에 있는 미드필더들 역시 분리되는 경향을 보여 중간 지대가 없는 축구를 함으로써 축구적으로는 공수 간격이 벌어진 상태로 경기를 치르고 있으며, 그로 인해 베니테스 레알의 빌드업이란 상대 수비 배후로 공을 뻥뻥 질러서 공격수들이 배후만 노리게 만드는, 토레스 쓰던 시절의 스타일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후방에서 빌드업을 할 때도 미드필더의 후방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상대 전방 압박에 저격 당하는 일이 잦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지적들에 따르면 베니테스는 현재 단지 선수빨로 축구를 하고 있을 따름이라는 얘기가 된다.

사실 첼시 시절에도 그렇고 베니테즈가 딱히 중앙에서 경기를 풀어가기보다는 측면으로 공을 전개하는데 중앙에 중원이 없으니 측면 공격으로 빠르게 풀어가는 편은 아니고 측면으로 미드필더를 분리시켜 공간이 나면 좌우전환을 하는 식으로 크로스를 올린다. 뉴캐슬에서도 역습아니면 이런 식이다. 후방빌드업에서도 따라서 포백 보호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수미 혼자서 압박을 견딜 수는 없으니 사실상 골키퍼에게 공주고 나머진 전진시켜 측면에 공 뿌리는 식이다. 애초에 리버풀에서도 빌드업시 미드필더들은 빠르게 전진하는 것에 집중했다. 다만 이러한 공격상황에서의 전술은 사실상 미드필더를 활용하지 못하는 구닥다리인 것과는 다르게 수비전술 자체는 구닥다리라고 보기엔 어렵다.

뉴캐슬에서의 모습을 보면 4-2-3-1에서 수비시 4-4-2와 가까운 형태로 전방과 수비진이 콤팩트하게 간격을 유지하며 하프라인에서 라인을 물려 상대를 측면으로 압박하고 2선과 4백은 적절히 움직이면서 풀백이 상대 윙을 마크하러 가면 미들진이 벌어진 사이 공간을 커버하며 상대를 고립시키거나 수비라인과 별다름 없는 컴팩트한 위치로 상대 공격을 잘 차단한다. 압박에 있어서도 측면으로 빠지면서 4백 라인이 이상해져도 미들필더 둘이서 압박가서 공탈취하거나 틀어막는 등 콤팩트한 수비 사이에서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여준다. 이는 뉴캐슬 공격이 딱히 라인을 올리기보단 역습 등을 노린채로 대부분 수비적인 운영을 함에도 있겠고 공 탈취 이후에도 좋은 공격을 하는 편은 아니지만. 뉴캐슬 선수단을 보자면 베니테즈가 선수빨로 축구를 하고 있진 않다. 공격은 몰라도 수비전술 자체는 탁월한 모습을 보여준다.

뉴캐슬에서의 수비적인 운영이 인테르, 레알 등에서의 보여준 성적과는 다르게 성적을 내고 있는 것을 봐도 베니테즈의 콤팩트한 공수간격은 수비에 있어서는 괜찮은 편이다. 물론 전환과정에서 거리가 너무 떨어져있어 볼운반에 있어서 개인능력에 의존하는 식이고 공격전환을 하다가 오히려 볼을 빼앗겨 실점하고 있다. 4-2-3-1만 고집하고 공격이 가능하다고 느끼는 건지 전술적 선택이 매우매우 한정적인 감독인 건 맞다. 나폴리에서도 그렇고 맡은 모든 팀에서 똑같은 전술만 쓰기에 발전이 없다. 다만 뉴캐슬 시절 후반부에는 드디어 4-2-3-1을 버리고 5백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 르죈이나 셰어같은 볼플레잉 센터백이 많고 론돈이란 스트라이커가 있던 뉴캐슬이었기에 5-4-1 전술은 빛을 발했다. 허나, 아쉽게도 팀을 떠났다.

에버튼에서는 감독 부임 이전부터 팬들의 많은 우려를 받았으나 부임 이후 여름 이적 시장에서의 적은 영입과 전력 누수에도 불구하고 시즌 초반에는 롱볼 전술, 세트피스, 이적생들의 좋은 활약 등 좋은 경기력과 성적을 보여주었으나 주축 선수들의 부상으로 조금씩 나락으로 떨어지다가 디뉴를 팔아먹고 콜먼을 레프트백으로 기용하는 기이한 전술을 선보이기까지 하다가 결국 시즌 초반 이후 시즌 초중반부터는 12월에 거둔 아스날전 1승을 제외하곤 전혀 승리를 챙기지 못하며 팀을 강등권 근처까지 추락시키고 경질되었다.

4.2. 선수단 관리

이러한 베니테즈의 전술 단점 외에 가장 크게 비판 받는 부분은 선수단 관리 능력이다. 선수 기용 등의 결정에 있어서 상당히 독단적이라는 비판이 있으며 팬들은 물론 선수들과 마찰을 빚는 경우가 자주 있다.[9] 대체로 선수들은 전술 적인 능력은 훌륭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자신들을 지나치게 피곤하게 하고 간섭을 자주 하는 것 같다고 털어놓는다. 라파와 트러블이 생겨 이적한 사비 알론소 역시 라파의 능력에 대해서는 "리버풀은 라파를 지켜야 한다"는 인터뷰로서 인정했지만 다른 인터뷰에서도 주변 사람 피곤하게 하는 성격의 소유자라 했던 바 있다.# 또, 베니테즈는 매우 냉정한 성격이라 선수들과의 심리적으로 교감하는 능력이 매우 떨어진다. 주제 무리뉴가 한창 스티븐 제라드에게 러브콜을 보낼때 제라드의 마음이 흔들렸던 것도 리버풀에서 엄청난 부담감을 느끼던 제라드에게 베니테즈는 심리적인 서포트를 해주기는 커녕 그를 냉정하게 대했던 것에 상당 부분 기인한다.[10] 심지어는 그 대인배 하비에르 사네티조차 베니테즈를 비판하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을 정도이다. 또한 에버튼에서는 시즌 시작 전부터 하메스 로드리게스가 이적하더니 이후에는 몸 상태에 아무런 이상이 없는 뤼카 디뉴를 명단에서 제외시키고 불화설이 언론에 보도되더니, 디뉴가 아스톤 빌라로 이적하면서 팀 핵심 선수를 겨울 이적시장 때 팔아 버리는 대참사가 벌어지는 등 그야말로 소통 사망꾼이다. 심지어 한 경기에서는 디뉴를 쓰기 싫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레프트백이 아닌 셰이머스 콜먼을 억지로 레프트백에 활용해 경기를 패하는 등 말년에는 고집이 악행 수준으로 변한 상태다.

상술했듯 대인같은 모습을 보이는 선수들이나 대부분의 감독들 밑에서 묵묵히 잘 뛰어주는 선수들조차 비판할 정도로 선수단 장악에 문제점을 보이는 편. 팬들도 입모아 말하길 베니테즈의 전술이 호불호가 갈릴지언정 마냥 무능하다고는 못하는데 소통문제는 어떻게봐도 베니테즈 탓이라 팀캐미를 망칠까봐 자기팀에 안왔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여론이 많다.

그 외에 한 번 찍은 선수는 반드시 사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지나치게 표출해서 너무 비싼 값이 선수를 영입하는 경우가 있다. 가레스 배리를 영입하겠다는 뜻을 너무 티나게 밝혀서 아스톤 빌라의 밀당에 제대로 걸려들었고, 이 과정에서 배리와 포지션이 겹쳤던 사비 알론소는 자존심에 상처를 받아 불만을 표출하는 사건이 있었다. 정작 2008-09 시즌이 끝난 뒤 알론소는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고 가레스 배리는 맨시티가 먼저 낚아채 버려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를 면치 못했다. 이 공백을 메꾸기 위해 알베르토 아퀼라니를 2천만 파운드라는 터무니없는 가격[11]에 영입했다. 그리고 이후 아퀼라니는 폭망했다.

리버풀 시절 선수단 장사에 관해서는 여러 의견이 분분하다. 라파를 긍정하는 측에서는 돈이 없는 상황에서 오퍼를 하다보니 돈은 돈대로 없고 협상은 질질 끌리면서, 기존 선수를 팔아서 돈을 만드는 바람에 이모저모 계속 꼬였으므로 질힉체제가 아닌 현 리버풀 체제에서의 베니테스라면 장사를 잘 못한다는 얘기가 없을 것이며, 라파가 돈을 좀 많이 쓴 것도 당시 라파가 물려받은 리버풀의 스쿼드가 그리 좋지 않았던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한다. 거기다가 라파가 노리던 선수들 중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시망 사브로사, 조르조 키엘리니 등의 좋은 선수들을 약간의 가격차로 놓친 것도 고려할 만하다고 한다.

비판하는 측은 라파가 설사 지금 체계라고 해도 장사를 잘 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고 한다. 라파가 선수를 포기하는 경우는 1, 나이든 부상이든 폼이 지나치게 떨어지거나 2, 다른 빅클럽에 들어가서 못 빼오거나 두 가지 뿐으로 이 경우가 아니라면 라파는 그 선수에 대한 집착을 멈추지 않으며 작년에 했던 오퍼 올해 또 해서 그 선수의 가격에 비해 비싼 값이 든다 해도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다. 이 과정이 반복됨으로 라파는 호구로 인식이 잡혔고, 라이언 바벨이나 도세나로 털리다가 결국 라파 체제의 막바지에 이르러 아퀼라니와 글렌 존슨[12]이라는 호구 대폭발이 터졌다고 말한다. 또한 이렇게 비효율적인 영입이 많았음에도 불구 6년 동안 거진 40명에 이르는 성인선수와 거진 30명에 이르는 유망주가 영입되었다는 걸로 볼 때 성공확률이 그렇게 높다고는 못한다는 것, 또 선수 판매 역시 별로 큰 재미를 본 적이 없다는 것도 약점으로 꼽힌다.

그리고 선수단 소통 부재에 묻혀 잘 언급되지는 않지만, 선수단 부상 관리에 취약한 점이 드러나기도 한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인테르 시절 선수단의 줄부상이 이어지면서 트레이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던 것, 그리고 현재 그가 맡은 뒤 줄부상에 시달리고 있는 레알 마드리드. 특히 레알 마드리드의 경우 주전 선수 혹사로 인한 뒷심 부족문제로 안첼로티를 경질하고 로테이션 신봉자로 알려진 베니테스를 선임했는데, 선수단 부상 관리에 베니테스의 책임이 있다면 이건 로테이션이고 뭐고 선임 자체가 문제일 수도 있게 된다.

다만 형편없는 선수단 관리와는 별개로 선수보는 눈만큼은 정말 대단한 수준으로 평가 받는다. 땜방으로 들어간 첼시, 다닐루 하나 사고 땡쳤던 레알, 26m 흑자를 기록한 인테르 시절은 사실상 구단도 팬들도 선수들도 베니테즈를 믿지 않았기에 영입 권한이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전폭적인 지원을 해준 리버풀과 나폴리 시절 영입한 선수들 하나하나의 면모는 정말 화려하다. 리버풀 시절엔 어찌됐든 제라드-알론소-마스체라노로 이어지는 황금 중원과 카윗과 토레스라는 걸출한 공격수를 뽑아 냈고 그 망했다고 평가 받는 나폴리 시절 영입 명단만 봐도 2년 총합 넷스펜딩 - 30m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제대로 데려왔다

주요 영입: 이과인, 알비올, 카예혼, 조르지뉴, 메르텐스, 사파타, 하파엘, 레이나(임대), 굴람, 가비아디니, 쿨리발리, 데 구즈만, 다비드 로페스
주요 방출: 카바니, 치가리니, 산타나, 바르가스 (임대), 칸나바로 (임대) 페르난데스, 베라미, 제말리, 바르가스(임대)

즉 카바니 판돈 + 30m로 이과인, 조르지뉴, 메르텐스, 굴람, 쿨리발리, 데 구즈만, 가비아디니라는 나폴리의 전성기를 이끌 리빌딩을 끝내버린 것. 물론 잘 사놓고 제대로 쓰질 못해서 욕은 먹었지만[13] 지금 와 평가해 보면 확실히 고평가를 받을만한 안목이다.[14] 뉴캐슬에 와서도 이 안목은 어딜 가지 않는지 없는 살림을 최대한 쥐어짜 호셀루, 크리스찬 아추, 맷 리치, 케네디등을 영입하며 승격 첫 시즌 10위라는 걸출한 성적을 내는 데 성공했다.

4.3. 유망주 육성

유망주 문제도 비판과 옹호가 공존한다.

옹호측은 라파가 한 구단에서 선수를 키워낼만큼 충분히 오래 머물지 못했으며, 릭 패리 단장의 사임 이후에는 2009년 3월에 재계약 조건에 유스 문제를 삽입해서 전권을 따냈으니 그 기간이 길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라파가 호세 세구라와 로돌포 보렐이라는 좋은 코치를 영입하고 달글리쉬 역시 데려오는 공훈을 세웠고도 한다. 이후 리버풀에서는 그가 떠난 후 위기 마다 마틴 켈리, 존조 셸비, 대니 윌슨, 존 플라나간, 잭 로빈슨, 제이 스피어링 등 어린 선수들의 활약이 빛났으며 유스들은 다른 유스팀들을 5골 이상의 점수로 털고 다니는 것도 심심치않게 보인다. 또한 잭 로빈슨, 페터 굴라치, 다니 아얄라, 다니 파체코를 키워낸 것 역시 라파이고, 2009년과 2011년 U-20 청소년 월드컵에 출전한 리버풀 선수들의 활약상 또한 뛰어으며 루카스 레이바도 라파의 꾸준한 기용 아래 빛을 봤다.

그리고 라파엘 베니테스 최대의 공훈은 유스 출신을 몇명 키워냈느냐보다도 좋은 코치의 영입으로 좋은 선수를 키워낼 수 있는 시스템을 정착시켰다는 것에서 칭찬을 듣는 것이므로 비록 라파 재임 기간 동안 좋은 유스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도 라파가 유스에 공이 없다고 보긴 어렵다. 게다가 좋은 유망주를 키워서 일정 금액의 이적료를 받고 판매하는 것도 득책인데, 대표적으로 크리스티안 네메스가 3m이라는 이적료를 받으며 판매되었고 스티븐 워녹[15] 닐 멜러, 스콧 카슨, 잭 홉스, 데이빗 마틴, 대미언 플레시스, 대니 거스리, 잭 윗브레드 등은 리버풀에서의 미래가 없었기 때문에 팀에게 짭잘한 이적료 수익을 남겨주고 나갔다. 그리고 6년간 내내 아카데미에 대한 전권을 얻었던 것도 아니었다. 당시 진행되던 전쟁이 그 유명한 릭 패리 & 로비 킨 사가.[16]

반면 비판측은 리버풀에 6년을 머물렀는데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는 건 무리라고 주장한다. 또한 라파가 전권을 쥔 기간이 짧으므로 수가 없었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얘기라고 한다. 왜냐면 유망주를 터트린다는 것은 유망주 아카데미의 전권을 쥔다는 것과 크게 다른 얘기이기 때문이다. 반 할이 토마스 뮐러 및 바트슈트버를 터트린 건 고작 부임 첫 해였다. 피지컬만 좋은 레기 소리 듣던 아바테를 터트린 알레그리도 부임 첫 해란 걸 생각해 보면 자원과 능력만 있으면 터진 유망주는 터지기 때문이니까.

유망주를 1군에 올려서 훈련에서 시험해 보고, 실전에서 기용해 나가며 키우는 게 1군 감독이 할 일인데 반대측은 라파는 이 점에서 심각할 정도로 문제가 있다고 한다. 라파 체제에선 11.5m이나 주고 영입한 바벨씩은 돼야 교체로나 깔짝깔짝 나오다 어쩌다 주전 한 번 나오는 식으로 출전시키다 결국 재능과 폼이 다 떨어지면 다른 팀으로 방출되는 수순이었다. 바벨이 재능이 뛰어나서 오래 버텼지 저메인 페넌트, 엘 자르, 시나마 퐁골, 르 탈렉 등 비싼 돈 주고 영입한 많은 유망주들은[17] 쓸쓸히 리버풀을 나가야 했으며 루카스 레이바 같은 경우는 운수 좋은 예외라고.[18] 제라드의 부상 및 알론소와 마스체라노의 체력 문제와 카드 문제 때문에 루카스 레이바의 경우는 땜빵 출전의 기회가 많았고, 알론소가 나가고 제라드의 부상이 격화되며 뛰지도 못할 아퀼라니가 들어온 덕에 강제적인 출장기회가 꾸준히 부여될 수밖에 없었기에 터졌고 이런 사례를 볼 때 유스 터트리는 솜씨가 썩 좋다고 하긴 어렵다.[19]

그리고 라파가 좋은 코치를 영입해서 기틀을 깔았다는 것, 그건 틀림없는 일이지만 그 효율은 의문스럽고, 비판에 대한 변명이 되기 어렵다. 라파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첫째, 라파가 코치를 갈아치우기 전에도 리버풀의 유스는 잉글랜드의 유스 대회에서 항상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었으므로 그 질이 썩 나쁘지 않았는데 왜 눈에 띄는 선수가 없거나 리버풀을 나가서야 터지는가? 둘째, 리버풀에 6년간 머무는 동안 그 스스로도 많은 돈을 들여 힘써 유망주를 영입했는데 영입한 유망주는 어떻게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것인가? 셋째, 상술되었지만 라파 전임 시절에는 세 명의 월드클래스 유스가 -제라드, 오웬, 캐러거- 탄생했는데 왜 라파 때는 그 자취를 감추다가 달글리시 체제에 이르러서야 집단적으로 유망주들이 눈에 띄는가?[20]

이 물음에 대해 라파가 유스 시스템을 확충했기에 달글리시 체제에 와서야 터졌다는 대답은 유스 시스템이 1, 2년 장사가 아니고 2009년 3월에 전권을 쥐었기에 무리가 있다. 더군다나 라파가 영입한 유망주들이다! 라고 말한다면 라파 체제에도 그 동안 라파가 영입했던 유망주들이 많이 있었다가 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고 비판측은 얘기한다.

유망주 문제에 대해 6년간 라파의 공헌이 본인 색깔의 코치친 물갈이와 더불어 비싸야 3m 가량, 그것도 1.2m이라는 영입비용을 제외하고 거기서 육성비용도 제외해야 되는 이적료 수입 및, 8m씩이나 들이고 영입한 유망주 루카스 레이바가 팀 사정상 어쩔 수 없이 꾸준히 출전하다 겨우 2년만에 터진 거라면 참 슬픈 결과이며, 이와 관련, 선수들의 국대 활동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미끼를 이적 시장에 적극 활용하는 반대급부로 인해 라파 시절에도 리버풀이 부상은 달고 살았는데 그게 또 굳이 달글리시 체제에서만 부상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기용되었다? 라고 주장한다면 받아들이기 어려우며, 사실 이적료 수입이라고 해도 영입할 때 다 1m~2m은 기본으로 들었고 레이바나 페넌트처럼 어느 정도 즉전감으로 영입한 애들은 8m 정도는 들었다는 걸 생각하면 낭비에 가깝다는 게 비판측의 주장이다.

어쨌건 젊고 유능한 감독 이미지였지만 2010/11 시즌 이후에는 그딴건 없고 그냥 7의 법사였다. 2010/11 시즌 종료시까지 백수지만 여전히 PL 복귀를 야심차게 노리고 있다.이후로 리버풀 복귀 떡밥이 몇 차례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는 못했고 대신 2012/13 시즌 첼시의 감독으로 PL에 복귀했다.

에버튼에서 어린 선수인 앤서니 고든, 재러드 브랜스웨이트를 적절히 기용하며 미래가 기대되는 선수로 만든 부분은 에버튼에서 유일하게 긍정적으로 평가 받을 요소다.

5. 기록

5.1. 선수

5.1.1. 대회 기록

5.2. 감독

5.2.1. 대회 기록

5.2.2. 개인 수상

6. 여담

6.1. 리버풀과의 사랑

파일:external/www.empireofthekop.com/qpgdbm.png

리버풀 팬들 사이에서 베니테스에 대한 지지는 엄청나다. 존 헨리의 리버풀 구단주 부임 후 크리스마스 즈음 라파엘 베니테스가 백수가 되었던 시기에는 이런 사진이 돌기도 했을 정도.[23]

사실 리버풀 팬들 입장에서 그걸 본다면 당연히 그런 유난스러운 무한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이미 라파엘 베니테스는 리버풀 시민[24]이라는 점으로도 무한한 지지를 얻고 있다. 임시 감독이던 케니 달글리시가 2011년에 3년 계약을 체결하자 달글리쉬를 응원하는 스카프를 들고 안필드에 나타나 팬들에게 사인 공세를 받았다. 그리고 최악의 참사로 기억되고 있는 힐스보로 참사 추모식에도 참석하여 눈물을 흘리고 기부금을 내는 등, 리버풀 팬들 중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갖는 힐스보로 참사 96명 유가족[25]들에게도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다.

또한 성적으로만 봐도 부임 첫 해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리면서 그동안 리그에서나 유럽에서나 어중간하게 한다는 인상이 강하던 팀을 유럽 챔피언으로 만들었고 그 이후에도 2007년에 다시 한 번 팀을 챔스 결승으로 이끌어내는 등[26] 유럽의 강자로 만들었으며 리그에서도 마지막해를 제외하면 우승은 못했지만 꾸준히 4위 안에 팀을 안착시키면서 빅4의 일원을 유지해나갔다. 마지막 시즌에 7위를 하면서 리버풀을 떠났지만 정작 베니테스의 후임 감독들은 더 죽을 쒀 위르겐 클롭의 부임 전까지 팀의 암흑기가 펼쳐졌으니 더더욱 고평가를 받았다. 리버풀팬들은 리중딱이니 리빅아니 조롱 받던 암흑기를 제라드와 2005 챔스우승 이 두가지가 있었기에 겨우 겨우 버틸 수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니테스가 나중에 첼시와 뉴캐슬 감독으로서 안필드를 방문했을 때는 관중들로부터 따뜻한 환영을 받기도 하였다. 현재 리버풀의 감독인 클롭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 중이다.

이쯤 되면 점점 축구 감독이 아니라 리버풀 팬, 리버풀 덕후가 되는 듯한 분위기. 어쩌면 그가 가졌다고 알려진 성격은 그저 축구와 리버풀을 너무 좋아하는 오덕후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아직까지 리버풀 팬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남아있으나 인테르 팬들에게는 흑마법사에 불과. 틈만 나면 나는 잘 했다, 클럽월드컵과 슈퍼컵 우승이 나의 업적, 모라티가 나를 자른 것은 실수, 나에게 흠결은 없었다, 구단주의 지원이 모자랐다는 언플을 일삼고 있다. 물론 확실히 반드시 아니라고는 못할 말들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베니테스가 2021년 에버튼의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리버풀 팬들에게 묘한 상황이 나왔다. 다만 리버풀 팬들은 팀이 레전드 감독 중 한 명이 다른 팀도 아니고 더비 구단의 지휘봉을 잡는 걸 반대하는 건 맞지만[27], 십수년간 타지에서 고생하다 이제는 가족들 문제도 있고 집과 가까운 곳에서 출퇴근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이해한다는 동정론도 있어서[28] 리버풀보다는 오히려 에버튼 팬들의 반대 여론이 더 큰 상황이다. 더욱이 베니테스는 리버풀 감독 시절 에버튼은 빅 클럽이 될 수 없는 스몰 클럽이라고 디스한 적도 있어서 그 인터뷰가 다시 발굴되어 에버튼 팬들의 속을 박박 긁었고, 빠가 까를 만든다는 원리에 의해 리버풀 팬들이 스몰 클럽이 분에 넘치는 감독을 만났으니 알아서 잘 모시라며 실드를 치는 기묘한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종합하자면 에버튼 부임을 계기로 사랑이 완전히 끝났다기보다는 서먹서먹한 애증의 관계가 되었다고 볼 수 있을 듯.

베니테스가 에버튼 감독직에서 물러난 현 시점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리버풀 팬들의 애정도가 더욱 상승했다. 베니테스가 에버튼을 그야말로 쑥대밭으로 만들고 떠났기 때문이다.

베니테스 감독 하에서 에버튼은 리그 16위로 강등 위기에 처해있을 뿐 아니라 메디컬 디렉터, 영입 담당자, 총괄 스카우트, 풋볼 디렉터를 베니테스에 의해 모두 잃었다. 특히 팀의 핵심 선수인 뤼카 디뉴를 하필 리버풀의 레전드 스티븐 제라드 감독이 이끄는 아스톤 빌라로 팔아넘기며 에버튼 팬들의 분노를 자아낸 바 있다. 현지 콥들 사이에서는 ‘Agent Rafa’라는 밈이 유행하고 있으며, 베니테스가 물러난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 안필드에서는 그의 응원가가 울려퍼지기도 했다.

파일:eECz1.gif
국내에서 붙은 별명은 베법사. 유래는 과거 커리어의 전성기였던 리버풀 시절 찍힌 짤이다.[29]

여담으로 롯데 자이언츠내야수 정훈선수도 비슷한 짤방이 있다. 그래서 별명이 투니테즈.

6.2. 첼시 시절 무리뉴의 천적

파일:external/i4.irishmirror.ie/74042091.jpg
주제 무리뉴첼시 감독시절 막강한 포스를 뿜어냈을때, 첼시 구단주 로만과 무리뉴의 최종목표였던 챔스무대에서 두 번이나 4강탈락의 고배를 마시게 하며 무리뉴를 잘 잡아내던 감독이 바로 베니테스다. 무리뉴 시절 첼시의 커리어를 많이도 물먹였다. 2004-05 챔피언스 리그 4강부터 시작해서 2005-06 잉글랜드 FA컵 4강, 2006-07 커뮤니티 쉴드, 2006-07 챔피언스 리그 4강 등 중요한 고비에서 무리뉴는 베니테스를 넘지 못했다. 이때 첼시와 리버풀 팬들은 챔스고 컵이고 허구한 날 서로 만나다 보니 서로 만나게 되는걸 아주 질색했다. 챔스에서 첼시가 하도 베니테스의 리버풀에게 자주 잡히다 보니 그때의 안좋은 기억 때문에 라파가 첼시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 싫어했을 팬이 상당히 많았을 정도다.

이 때 무리뉴와 베니테스의 말다툼은 영국 축구 언론의 단골 소재 중 하나였으며, 중요한 고비에서 베니테스에게 물먹은 무리뉴는 세리에A로 간 뒤에도, 라 리가로 간 뒤에도 뜬금없이 타국에 있던 베니테스를 종종 디스했다. 특히 베니테스가 무리뉴가 맡았던 인테르와 레알 마드리드의 후임감독으로 들어가 커리어를 말아먹으면서 심해졌는데 베니테스의 인테르 시절에서는 디스가 절정에 달했다.[30] 특히 2015년 베니테즈가 레알 감독에 부임할 당시의 디스가 아주 걸작이였는데, 베니테즈의 부인이 뜬금없이 "내 남편이 무리뉴가 맡았던 팀을 맡는게 이번이 세 번째(인테르, 첼시, 레알)네요. 그동안 남편이 무리뉴가 어질러놓은거 치워왔죠"라고 무리뉴를 디스하자하자 무리뉴는 "나한테 신경쓸 시간에 남편 식단이나 신경쓰셔야죠"라며 베니테즈의 외모를 디스했고 트레블팀을 물려받아 놓고도 그 스쿼드를 반년만에 망쳐놓았다고 비판했다. 그점에 있어서 빠와 까를 막론하고 베니테즈를 보던 팬들이 모두 가장 답답해했던 것중에 하나가 언플 실력이 꼽힐 정도인데, 베니테즈가 무리뉴를 잘 잡았다는 것과 상관없이, 업계 최강의 아가리 파이터로서 아르센 벵거와 알렉스 퍼거슨도 찍어누르던 무리뉴와는 대조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무리뉴가 언론 플레이라는 분야에서 워낙 넘사벽이라 그렇지 베니테즈의 언플이 완전 꽝이었던건 아니다. 예를 들어 리버풀 vs 첼시 경기에서 레이나가 화나서 로번을 툭 치자 로번이 드라마틱하게 쓰러지면서 레이나의 퇴장을 유도했을 때 인터뷰에서 "나 좀 바쁘니까 오늘 인터뷰 짧게 끝낼 수 있냐? 로번 병문안 가야 되거든. 걔 병원에 얼마나 오랫동안 있냐?"라고 대답했었다. 이 시기에 사람들이 EPL에 빠져들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당시 빅4 감독이었던 베니테즈, 벵거, 퍼거슨, 무리뉴의 신경전도 있었다.

이젠 둘 다 커리어의 하락세를 겪고 있어서 그런건지 한때는 서로 으르렁거리던 앙숙이었지만, 베니테즈의 뉴캐슬 감독 부임 이후로는 같은 리그에서 부딪히는데도 신기하게 예전처럼 서로 다투지를 않는다. 무리뉴의 맨유에게 4-1로 패배했을 때 무리뉴의 전술을 베니테즈가 칭찬했고 무리뉴 역시 초반에 뉴캐슬 상대로 고전한 것에 대해 "초반에 고전했던건 내 선수들 잘못이 아닙니다. 베니테즈 잘못이죠. 그의 전술이 우리 팀의 허를 제대로 찔렀습니다. 그는 매우 똑똑한 코치입니다"라고 칭찬을 했다. 몇달 뒤 베니테즈의 뉴캐슬이 무리뉴의 맨유를 상대로 홈에서 1-0 승리를 가져왔을 때도 이렇다할 설전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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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대
루체스쿠
(1998-1999)
파일:루마니아 국기.svg
60대
카스텔리니
(1999)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61대
호지슨
(1999)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62대
리피
(1999-2000)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63대
타르델리
(2000-2001)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64대
쿠페르
(2001-2003)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65대
베르델리
(2003)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66대
자케로니
(2003-2004)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67대
만치니
(2004-2008)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파일:스쿠데토.svg 파일:스쿠데토.svg 파일:스쿠데토.svg 파일:코카르다 트리콜로레.svg 파일:코카르다 트리콜로레.svg
68대
무리뉴
(2008-2010)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파일:스쿠데토.svg 파일:스쿠데토.svg 파일:코카르다 트리콜로레.svg
69대
베니테스
(2010)
파일:스페인 국기.svg
70대
레오나르두
(2010-2011)
파일:브라질 국기.svg
파일:코카르다 트리콜로레.svg
71대
가스페리니
(2011)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72대
라니에리
(2011-2012)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73대
스트라마키오니
(2012-2013)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74대
마차리
(2013-2014)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75대
만치니
(2014-2016)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76대
더부르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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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대
베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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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대
피올리
(2016-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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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대
베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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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
스팔레티
(2017-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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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b6ea2>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감독(1대~40대)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감독(81대 이후)
파일:스쿠데토.svg:세리에 A / 파일:코카르다 트리콜로레.svg:코파 이탈리아 / : 수페르코파 / :UEFA 챔피언스 리그 / :UEFA 컵 / :FIFA 클럽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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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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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 현재
초대
로버트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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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임시)
레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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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칼더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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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나이튼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4대
버렐
파일:스코틀랜드 국기.svg
5대
드레이크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6대
도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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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대행)
수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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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대
섹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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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대(임시)
수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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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대
맥크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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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대
셸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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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블랜치플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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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대
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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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대(대행)
굴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12대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13대
홀린스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14대
캠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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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대
포터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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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대(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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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대
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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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굴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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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비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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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대행)
릭스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19대
라니에리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20대
무리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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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대
그랜트
파일:이스라엘 국기.svg
22대
스콜라리
파일:브라질 국기.svg
22대(대행)
윌킨스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22대(임시)
히딩크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23대
안첼로티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24대
빌라스보아스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25대
디 마테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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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대(임시)
베니테스
파일:스페인 국기.svg
26대
무리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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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대(대행)
홀랜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26대(임시)
히딩크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27대
콘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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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대
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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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대
램파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30대
투헬
(투헬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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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대
포터
(포터 체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31대(대행)
살토르
파일:스페인 국기.svg
31대(임시)
램파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32대
포체티노
(포체티노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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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대
마레스카
(마레스카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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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어 리그 | EFL 챔피언십 | FA컵 | EFL컵 | UEFA 챔피언스 리그 | UEFA 유로파 리그 | FIFA 클럽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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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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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 현재
71대
아고스티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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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대
시모니
파일:UEFA EURO ITA.png
73대
벤투라
파일:UEFA EURO ITA.png
74대
레야
파일:UEFA EURO ITA.png
75대
도나도니
파일:UEFA EURO ITA.png
76대
마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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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대
베니테스
파일:UEFA EURO ESP.png
78대
사리
파일:UEFA EURO ITA.png
79대
안첼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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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
가투소
파일:UEFA EURO ITA.png
81대
스팔레티
파일:UEFA EURO ITA.png
82대
가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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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대
마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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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대
칼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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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대
콘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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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SC 나폴리 역대 감독(1대~70대)
: 리그 우승 : 코파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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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
비공식
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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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대
커닝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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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마더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3대
시모어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
4대
마틴
파일:스코틀랜드 국기.svg
5대
리빙스턴
파일:스코틀랜드 국기.svg
6대
미텐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7대
스미스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8대
하비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9대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10대
디니스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11대(대행)
맥폴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12대
맥개리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13대(대행)
하비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14대
콕스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15대
찰튼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16대
맥폴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17대(대행)
서겟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18대
스미스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19대(대행)
색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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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아르딜레스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21대
키건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22대(대행)
맥더모트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23대
달글리시
파일:스코틀랜드 국기.svg
24대
굴리트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25대(대행)
클라크
파일:스코틀랜드 국기.svg
26대
롭슨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27대(대행)
카버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28대
수네스
파일:스코틀랜드 국기.svg
29대
로더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30대(대행)
피어슨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31대
알라다이스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32대(대행)
피어슨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33대
키건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34대(대행)
휴튼
파일:아일랜드 국기.svg
35대
키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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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대(대행)
시어러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37대
휴튼
파일:아일랜드 국기.svg
38대
파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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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대
카버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40대
맥클라렌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41대
베니테스
파일:스페인 국기.svg
42대
브루스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43대
하우
(하우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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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어 리그 / EFL 챔피언십 / FA컵 / EFL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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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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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 현재
1대
바클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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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몰리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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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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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소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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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매킨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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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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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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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대
브리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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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대
버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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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대
케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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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캐터릭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
11대(대행)
이글레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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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대
빙엄
파일:북아일랜드 국기.svg
13대(대행)
버튼쇼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14대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15대
켄달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
16대
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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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대행)
가브리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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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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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대행)
가브리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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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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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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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대행)
왓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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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대
켄달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24대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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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대
모예스
파일:스코틀랜드 국기.svg
26대
마르티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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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대(대행)
언스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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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대
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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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대(대행)
언스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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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알라다이스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31대
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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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대(대행)
퍼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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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대
안첼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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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대
베니테스
파일:스페인 국기.svg
35대(대행)
퍼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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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대
램파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37대
다이치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프리미어 리그 | EFL 챔피언십 | FA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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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즌 도중 경질.[2] 시즌 도중 경질[3] 시즌 도중 경질.[4] 시즌 도중 경질.[5] 이 부분은 논쟁의 소지가 있다. 베니테스는 발렌시아에서 레알, 바르사를 누르고 리그 우승을 두 차례나 달성했고, 뉴캐슬에서는 2부 리그 우승 및 팀을 안정적으로 1부 리그 중위권에 안착시킨 업적이 있기 때문. 거기다 리버풀에서는 애초에 팀의 뎁스가 너무 얇아서 리그 우승을 노리기가 힘들었고, 첼시에서는 시즌 중반에 부임하여 리그 3위와 유로파리그 우승을 달성하였다. 이 정도면 베니테스와 비교되는 명장들과 비교해 모자랄지 몰라도 리그에서 성과가 없다고 폄하하는 것은 가혹하다.[6] 그가 거쳐간 팀 마다 굵직굵직한 선수들과 대부분(...) 불화설이 터졌다. 리버풀 시절에는 제라드와 알론소(결국 레알로 떠났다.) 인테르 시절에는 그 대인배 하비에르 사네티가 베니테스를 디스했고, 나폴리에서는 에이스 마렉 함식이 그에게 불만을 드러냈다. 그리고 레알에서는 호날두,하메스 로드리게스와 불화설이 떴다. 그나마 조용했던 시기가 발렌시아나 첼시 시절을 꼽을 수 있지만 첼시 때는 램파드도 베니테스에게 '좋은 관계를 맺는 감독은 많지만 베니테스는 아니다'라고 대놓고 저격하기도 했다. 마테라치는 베니테스를 보고 '그 놈은 인간성이 가장 큰 문제'라며 비난했다. 마테라치는 앙금이 어지간히 쌓였는지 베니테스가 레알에서 경질당하자 "거봐 그럴줄 알았지ㅋ"라고 디스했다.[7] 특히 이런 전술에서 스네이더는 쥐약이다. 스네이더는 커리어를 통틀어 클럽이든 대표팀이든 빠르고 직선적인 팀 컬러에서 빛을 발했다.[8] 특히 트레블의 1등 공신급인 저 세 선수는 베니테스 부임 이후 상당한 부진에 시달리게 되는데, 그나마 평범 수준으로 클래스가 떨어진 마이콘은 양반이고, 스네이더는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우왕좌왕하다가 계륵 취급 받는 선수로까지 떨어져 쫓겨나다시피 이적했으며, 2009-10 시즌 UEFA 올해의 선수였던 밀리토는 1년 반동안 리그 최악의 선수가 되어 황금쓰레기통상까지 수상하기에 이른다. 다만 밀리토는 2011-12 시즌 후반기에 부활하여 리그 득점 2위(24골)에 오르기도 했다.[9] 엄밀히 말해서 전술쪽은 호불호도 갈리고 장단점이 존재하는데 진정한 단점은 이쪽에서 온다고 볼 수 있다.[10] 반면 무리뉴는 제라드가 상대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애정을 드러냈던 것으로 유명하다.[11] 그런데 당시 로마 팬베이스에서 넥스트 토티가 될 인재를 너무 쉽게 넘겨줬다는 비난이 있었을 정도로 거래 자체는 기대감을 가지게 하던 괜찮은 거래였다.[12] 다만 글렌 존슨은 가격이 비싸서 비판받지 리버풀에선 준수한 활약을 보여줬다.[13] 후임 감독인 마우리치오 사리는 이 선수들을 매우 잘 써먹으며 나폴리를 다시 부활시켰다.[14] 물론 데 구즈만과 가비아디니는 앞의 다섯 선수에 비하면 나폴리에서의 활약이 그리 오래간 것은 아니지만 이 다섯 명의 선수들이 베니테즈가 부임하던 시절에 모두 온 것은 안목만큼은 확실하다고 볼 수 있다.[15] 라파가 팔아먹었으면 팔아먹었지 발굴한 건 아니다.[16] 위에서 언급했던 가레스 배리 영입 시도 당시 가지고 있던 한정된 돈을 가지고 릭 패리 단장이 일방적으로 로비 킨을 사온 일화. 결국 킨은 기존 팀 선수들과 융화되지 못하고 6개월만에 토트넘으로 돌아간다.[17] 그런데 이 부분 예시가 이상한게, 페넌트는 이미 24살의, 아스날에서 성공하지 못해서 하위팀으로 갔다가 버밍엄에서 터져서 다시 빅클럽으로 이적한 경우이고, 엘 자르는 자유계약, 시나마와 르 탈렉은 울리에 감독의 영입이며 시나마같은 경우는 라파 부임 후 일년 반 동안 교체가 많긴 해도 리그만 22경기를 뛰었으니 그리 기회가 적지는 않았다.[18] 이들 유망주들은 정말 재능이 뛰어났기 때문에, 특히 챔스 4강 8강에서 조커로 들어와서 무서운 활약을 보여주는 바벨 같은 경우는 대단히 안타깝게 재능이 소진되고 포텐을 못 터뜨린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와서 보면 이들 유망주들은 리버풀과 라파에 재능을 빨렸으며 적기에 다른 클럽으로 이적해 자신의 날개를 펼 만한 기회를 제공받지도 못했다. 르 탈렉은 리버풀을 탈출하고 나는 리버풀의 노예가 아니라고 했을 정도로 무척 안타깝고, 이건 라파가 크게 잘못한 일이다.[19] 다만 토레스, 스크르텔, 알론소, 아게르, 넓게 보면 제라드나 캐러거 등 아주 어린 선수가 아니라 어느 정도 기량이 있어서 꾸준한 출장이 보장되는 선수의 경우라면 반 정도 터진 포텐을 다 터트리는 데는 무리가 없어 보이긴 한다.[20] 하지만 달글리시 체제에서 눈에 띈 유망주는 라파가 영입하거나, 라파가 키워 낸 아이들이다. 또한, 달글리시 체제에서 유망주가 적극적으로 기용 된 것은 선수의 이탈(오른쪽 수비수인 글렌 존슨과 마틴 켈리의 부상으로 인한 존 플라나간의 기용 / 중미 괴멸로 인한 쉘비의 기용 등) 때문에 불가피한 면이 컸다. 6년을 부임했는데 라파의 손이 닿지 않은 유망주가 있다면 정말 괴상망측한 얘기다.[21] 알프 램지 어워드[22] 돈 발롱 어워드[23] 결과는 팀의 최고 레전드인 케니 달글리시가 부임하였다.[24] 리버풀로 가족 전체가 이민을 왔고 인테르와의 계약 후에도 계속 리버풀에 거주하고 있다. 아내 몬체 베니테스는 지역지와 인터뷰를 하기도 한다. 심지어 에버튼 팬들에게까지 거의 지역 유지에 준하는 대접을 받고 있는 정도. 아이들 역시 영국에서도 괴악하기로 소문난 리버풀 사투리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스카우저가 되었다. 하지만 이 점이 훗날 베니테스가 리버풀의 지역 라이벌인 에버튼 감독으로 부임하는 데 영향을 미친 걸 보면 역시 '사람 인생은 모른다'는 말이 딱 맞아들어가는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25] 그 중엔 스티븐 제라드의 사촌도 있다. 당시 최연소 희생자였다고.[26] 아테네에서 AC 밀란의 반격으로 우승은 실패.[27] 베니테스의 에버튼 감독 부임 소식 이후 리버풀의 전설적 감독 6명(빌 샹클리, 밥 페이즐리, 조 페이건, 케니 달글리시, 베니테즈 그리고 위르겐 클롭.)의 그림을 새겼던 리버풀 걸개에서 베니테스의 얼굴만 지운 사진이 떠돌아다니고 있다.[28] 사생활이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보니 일반적으로는 팬데믹 속에서 영국에 있는 가족들이 그리웠을거라고들 추측하지만, 부인이나 자식들의 건강 문제가 아닌가 하는 염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이 정도로 동정적인 여론은 해외 팬들보다는 영국 현지 팬들과 전현직 리버풀 구단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더 강하다. 그리고 리버풀 팬들 입장에서는 냉정히 보면 에버튼 못지 않은 껄끄러운 사이인 첼시에서도 잠시 일하며 트로피도 들어본 감독이다보니 에버튼 따위는 봐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29] 해당 움짤은 2005년 3월 20일 안필드에서 열린 2004-2005 시즌 프리미어 리그 머지사이드 더비에서 전반 막판에 나왔다. 해당 경기는 이후 82분에 팀 케이힐의 골로 에버턴이 추격했지만 최종적으로 2:1로 리버풀이 이겼다.#[30] 무리뉴가 첼시를 떠난 후 희한하게 베니테즈와 무리뉴는 가는 팀이 겹친다. 무리뉴가 인테르에서 트레블을 이룬 후 레알에 가자 인테르는 베니테즈를 선임한 후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 후 베니테즈의 임시감독 임기가 끝난 첼시에 무리뉴가 컴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