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러시아의 주력전차/러시아식 분류 | |
시대별 세대 구분 | MBT 세대 구분(서구권) |
1세대 전차 T-34-76, T-34-85, T-44 | |
2세대 전차 T-54, T-55, T-62 | 1세대 MBT T-54, T-55 |
3세대 전차 | 2세대 MBT T-62, T-64(A/BV), T-72(A/B/BA), T-80(B/BV/U) |
4세대 전차 T-90 | 3세대 MBT T-64(BMU/EU), T-72(B3U/B3MU), T-80(U/UK/BVMU), T-90 |
5세대 전차 T-14 | 3.5세대 MBT |
※ T-34부터 T-64(Object 432)까지 중형전차, T-64A(Object 434)부터는 주력전차로 분류 ※ 윗첨자U: 소련 해체 이후 개발된 차량 |
Т-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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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크라이나군 소속 T-64 기동 영상 |
현재 우크라이나군과 몰도바군의 주력 전차이자 T-14, T-84까지 이어지는 러시아군, 우크라이군의 주력 전차 계보의 시조다. T-80은 아예 가스터빈 단 T-64 계획에서 탄생했고 T-72는 차대와 현가장치를 Object 167에서 가져왔지만 전면 장갑과 변속기, 모듈 배치, 화력 체계같은 신규 설계와 기술적 특징을 T-64에서 계승했기 때문이다.[3] 그리고 T-72가 Object 187을 거쳐서 Object 195와 Object 188(T-90)로 나아가고 이게 다시 T-14의 개발로 이어진다.
2. 제원
Т-64А (Объект 434) T-64A (Object 434) | |||||
{{{#!folding 【펼치기 · 감추기】 | 개발 및 생산 | ||||
개발기관 | KMDB | ||||
개발연도' | 1968년 | ||||
생산기관 | 말리셰프 공장 | ||||
생산연도 | 1969~87년 | ||||
생산량 | 약 8,000대 | ||||
운용연도 | 1973~현재 | ||||
운용국가 | |||||
제원 | |||||
전장 | 6.54m(차체) // 9.225m(전체) | ||||
전폭 | 3.415m | ||||
전고 | 2.172m | ||||
중량 | 38.5t | ||||
탑승인원 | 3명(전차장, 포수, 조종수) | ||||
공격력 | |||||
주무장 | 51구경장 125mm 2A26 또는 2A46-1(1974년형부터) 활강포 (37발)[6] | ||||
조준장치 |
| ||||
부앙각 | − // +° | ||||
회전각 | 360° | ||||
부무장 | |||||
기동력 | |||||
엔진 | 5TDF 액랭식 디젤엔진[7] | ||||
최고출력 // 회전 수 | 700hp(515kW) // 2,800rpm | ||||
출력비 | 18hp/t(kW/t) | ||||
변속기 | 수동변속 7단 전진&1단 후진[8] | ||||
현수장치 | 토션 바+유압식 쇼크 업소버 | ||||
최고속력 | 50km/h(도로)[9] // 45km/h(야지) 후진 4km/h | ||||
항속거리 | 600km(도로) // 360km(야지)[10] | ||||
접지길이 // 접지압력 | 4.242m // 0.84kg/cm² | ||||
초호능력 | 2.85m | ||||
초월능력 | 0.8m | ||||
등판능력 | 30° | ||||
도하능력 | 도섭 : 1m[11] 도하 : 5m[12] | ||||
방어력 | |||||
장갑형식 | 주조장갑, 균질압연장갑, 복합장갑 | ||||
차체 | 전면 | 80+105(STB)[13]+20mm / 68° | |||
측면 | 80mm | ||||
포탑 | 112+138[14]+138mm / 30° | }}} |
3. 개발
3.1. 오비옉트 430
1950년대 초에 시작된 T-54를 대체하는 차기 전차 개발 계획에서 경쟁작 오비옉트 140과의 경쟁에서 승리한 오비옉트 430은 1958년부터 본격적으로 양산용 프로토타입이 준비되었다[15]. 이 Object 430은 100mm D-54TS(2A24) 전차포를 채용한 시제차량이 1960년에 완성되어 각종 테스트를 받았다.그러나 이 Object 430은 탐색기간까지 포함하여 10년에 가까운 기간동안 개발되었음에도 신기술이 지나치게 많이 투입되어서 완성도가 낮았고 동시기에 배치된 미국의 신형 전차인 M60에 비해 성능면에서도 상당히 열세였기 때문에 당시 지상군 총사령관을 맡고 있던 바실리 추이코프에게 T-55에 비해서 고작 10% 강할 뿐인 쓰레기라는 평가를 받았다. 결국 430의 실패를 대비한 반쯤 실험용 전차였던 Object 165와 166, 즉 T-62가 430 대신 양산되었다. 그리고 430은 공격력과 방어력의 증가를 요구받아 양산이 취소되고 퇴출된다.
Object 430이 T-64의 개발에 큰 영향을 준 것은 맞으나 그렇다고 Object 430 자체가 T-64의 직접적인 시제품은 아니다. Object 430은 그 자체로 완성된 차량으로서 T-54를 대체할 소련의 차기 주력전차로 고려되었으나 T-62에 밀려 양산되지 못한 전차라 실질적으로 T-64A와는 차이가 크다.
3.2. 오비옉트 432
1961년부터 말리셰프 공장에서 오비옉트 430을 기반으로 설계를 바꿔가며 화력과 방어력을 업그레이드한 Object 432가 개발되었다.오비옉트 432 기획안에는 115mm 구경의 2A21 주포를[16] 탑재하고 세계 최초로 전기-유압식의 자동 장전 장치를 탑재했다. 포탑 내엔 2명만을 태움으로써 포탑 용적을 줄여 피탄면적과 무게를 줄이려는 시도였다. 이로써 Object 432 프로토타입은 430의 36톤에서 30.6톤으로 무게가 줄어들었다.
동시기 서방의 M60 전차나 센추리온 전차에 탑재된 로열 오드넌스 L7 계열의 105mm 강선포와 성형작약탄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력 증가를 위해서 유리섬유 기반의 복합장갑을[17] 차체에 적용했다.[18] 그리고 포탑용적의 축소로 줄인 무게를 장갑에 투자하여 T-64의 최종 무게는 36.5톤으로 조정이 되었다.
오비옉트 432는 전신 설계안인 430을 바탕으로 출발했지만 대부분의 구성요소가 새롭게 바뀌면서 사실상 별개의 전차가 되었다.[19] 신형 현가장치 테스트에는 T-55가 사용되었다.
T-55 기반 차량의 주행 테스트에서 기록된 항속 거리는 900km였으며 이후 시험은 1961년 중반에 중단되었다. 원인은 트랙을 따라 차량의 로드 휠이 굴러가는 동안 반복적인 하중으로 인해 발생하는 고무-금속 조인트의 피로 파괴였고, 그 후, 내구성이 더 높은 재료를 선택하여 결함을 제거했다.
그 다음에 Object 432의 첫 번째 시제차로 지정 중량을 달성한 시험에서 확인된 주행거리는 500km였다. 테스트 결과, 최대 속도로 주행 시 부품 파손, 롤러 내부 완충 장치의 파괴 등 여러 가지 결함이 확인되었다.
그 후,1962년부터 1963년까지 75번 공장에서는 6개의 프로토타입을 생산했고, 샘플은 승인 및 예비 테스트를 통과했으며, 그 동안 섀시, 엔진, 로딩 메커니즘 및 기타 부품과 구성 요소, 조립에서 결함과 단점이 발견되었다. 차량에 대한 여러 가지 전술적, 기술적 요구 사항이 충족되지 않았다. "Object 432"가 상태 테스트를 위해 보내졌지만 테스트는 실패했고 탱크는 서비스용으로 승인되지 않았다.
국가 테스트에서 Object 432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소련 군부는 여전히 신형 전차가 필요했다. Object 432의 작업 결과를 분석한 결과 기존 기술을 사용하여 생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밝혀지면서, 신규 생산 시설을 만드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설개국에서도 전차 산업의 작업 기관에 참여했다.
오비옉트 432 시제차량은 여러가지 테스트를 받고 소련 당국에게 T-64라는 제식명을 부여받아 1966년에 본격적인 생산에 돌입한다[20].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T-64A가 나왔기 때문에 초기형 T-64는 1968년까지만 생산되었다.
한편 1963년에는 432의 설계를 더욱 개선하고 125mm 활강포 를 장착하여 성능을 향상시키는 작업이 시작되었고, 이 차량은 Object 434로 명명되어 수년 후에 T-64A가 되었다.
4. 특징
우리는 오늘날에도 T-64가 NATO에 미치는 영향을 볼 수 있다. 이 새로운 탱크의 능력이 알려지자마자, 서방 군대는 그것에 대항하기 위해 무기를 개발하고 배치하기 위한 반격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중략) T-64가 60년대와 70년대의 NATO 탱크에 대항하여 전투에 들어갔다면, 그것은 확실히 전쟁터를 지배했을 것이다. |
미 육군 제임스 M. 워포드 대위,[21] 1990년 3~4월 Armor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출처] |
M-60 전차와 T-64의 비교 |
보기륜 배치가 T-44부터 T-62까지 사용된 5쌍의 대형 보기륜 구조가 경량화를 위해 알루미늄이 적용된 6쌍의 직경 550mm 소형 보기륜으로 대체되었고, 상단에는 그동안의 소련군 전차에 단 적이 없는 지지륜(리턴롤러) 롤러들이 4쌍이 추가되는[23] 변화가 생겼고, 무한궤도도 더블핀 방식으로 바뀌었다. 보기륜 설계는 오비옉트 430의 것을 따랐기 때문에 스탈린 전차같은 이전 소련제 중전차처럼 림까지 금속으로 만들어졌다.
장갑 구조 |
또한 일반적인 궤도차량용 토션바 서스펜션과 달리 금속 봉이 차체를 전부 가로지르지 않고 차체 폭 절반까지만 오도록 길이를 줄였고, 길이가 줄어든 양쪽 토션바 봉을 차체 중앙의 마운트에 대칭적으로 고정했다. 이러한 서스펜션 설계 덕분에 서스펜션 암이 거의 완벽히 좌우 대칭을 이루며 배치되었다. 그리고 1, 2, 5, 6번 보기륜의 로드암은 유압식 쇼크 업소버가 보조한다.
엔진도 이전 소련 전차들에 주로 사용된 V-2 엔진 계열이 아니라 오비옉트 430 개발 당시부터 연구되었던 새로운 5TD 계열 대향 피스톤 엔진이 장착된다. 변속기는 여전히 수동변속기이며 후진 기어도 이전처럼 1단만 있지만, 전진 단수는 T-62까지의 5단에서 7단으로 늘어났다.[24] 그리고 소련 전차로는 처음으로 M47 패튼에도 장비되었던 영상합치식 광학식 거리 측정기가 탑재되어 기존 소련 전차들이 주로 채택했던 목측식 장비를 대체하여 명중률의 향상을 도모했다. 또한 자동 장전 장치를 탑재한 신형 포탑을 개발하여 탄약수를 빼고 소련 전차의 3인 운용 개념을 확립하였고, 포탑 크기를 줄여서 피탄 면적을 더 낮출 수 있었다.
초기에는 115mm 구경 2A21 활강포를 장착하여 T-62와 화력이 동급이었으나, 화력을 더욱 강화한 버전이 요구되자 Obj.434 기획안을 진행하여 125mm 2A26 활강포를 장비한 버전이 T-64A로 제식 채용되어 1968년 5월에 채택되었다. 강력한 주포와 복합장갑의 사용으로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IS-2, IS-3, T-10같은 중전차들의 역할 일부도 대체할 수 있었다.[25]
그리고 1965년 이후부터 1968년까지 생산된 T-64 초기형 950대는 T-64A에 준하는 사양인 T-64R로 개량되었다. T-64A와 T-64R은 동독 주둔 소련군[26]을 중심으로 공격형으로 배치되어 나토군을 겨냥했다. T-64가 대량배치되면서 1970년대 중후반에 T-62는 2선급 장비로 돌려지게 된다.
그리고 주포발사 대전차 미사일인 9M112 Kobra를 발사할 수 있도록 사격통제장치가 개량된 T-64B가 1976년부터 생산되었다. T-64B는 3세대 전차에 근접한 '레이저 거리 측정기 + 환경감지센서(측풍감지기 등) -> 탄도컴퓨터 -> 결과값을 조준에 자동으로 반영' 이라는 체계를 소련 최초로 실현하여 이후 소련 전차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27] 80년대부터 콘탁트-1이 양산되면서 이를 쐐기형으로 장착한 T-64BV가 양산되다가 T-80UD로 생산이 대체된다.
T-64 양산 수량표
다른 소련 전차와 다른 T-64의 고급사양중 하나로 차장용 무인기관총을 들수 있는데, 회전하는 큐폴라 해치에 전차장용 관측장비와 IR 사이트를 장착하는 소련 전차의 특성탓에 기존 T-55, T-62는 대공기관총을 포수석에 달았고, T-72는 큐플라 후방에 기관총을 장착하는 병맛 설계로, 기관총을 쏘려면 큐플라를 180도 돌린다음 해치를 열고 기관총을 잡고 다시 적을 찾아 조준해야 한다.
반면 T-64는 IR 사이트와 차장용 관측장비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기관총을 별도의 조준경을 통해 차내에서 조준, 사격을 바로 할수 있도록 설계됐다. 그래서 T-64 큐플라 측면에는 기관총 조준을 위한 잠망경이 튀어나와있는걸 볼수 있으며, 기관총과 총탑등 무거운 장비를 회전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전동 모터가 달려있다. 이 총탑은 T-64를 제작하는 우크라이나의 하르키우 공장에서만 생산되기에 키로프 공장에서 생산된 T-80B/U에는 빠졌으며, T-64의 생산라인을 활용하기 위해 부품을 다수 공유하는 T-80UD에만 설치됐다.
5. 문제점
내가 비록 하르코프 근위 고급전차학교에서 T-64 특기로 기갑장교 과정을 수료했다 하더라도, 저놈의 'T-64'의 단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엄청 많다고. T-72가 차라리 더 좋고, 더 굴리기 이상적이었다. |
소련군 전차장교 V. 부루스코프 |
테스트 중인 T-64 |
피탄 면적과 중량을 줄이기 위해 차체 크기를 축소한 결과 이전 T-55보다도 약간 작아지면서 소련 전차 중에서도 제일 작은 축에 속했다. 여기에 소형화된 2인승 포탑 채용으로 탄약수가 필요없어지면서 내부 용적이 축소되어 거주성이 악화되었다. 소련 전차 설계 사상이 짙게 반영된 결과, 차량 크기가 줄어들면서 경량화와 피탄 면적 감소는 달성한 대신에 널널한 실내 공간에서 오는 이점과 차량의 확장성을 포기한 셈이 되었다.[28]
T-64에서 처음 도입한 초기 코르지나(바구니) 자동 장전 장치는 신뢰성이 충분하지 않아서 사고가 발생했다. 장전 도중에 탄이 걸려버리는 일이 생겨서 이를 수동으로 고치려던 승무원의 손이 끼어버린 것이었다. 비록, 승무원의 손이 절단되거나 할 정도로 큰 부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이 사고는 워낙 유명해서 소련 전차를 위협적으로 보던 1970~80년대 NATO 보고서에도 "소련군 전차 자동장전장치는 사람을 잡아먹는다"라고 올라와 있을 정도였다. 이는 본격적인 양산형 T-64A에 와서 개선된다고 하지만 이번엔 엔진에 문제가 발생했다.
TD 계열 수평대향 디젤엔진은 하리코프 75번 공장에서 자체적으로 개발된 것으로, ChTZ가 생산한 기존 V형 디젤 엔진(V-2 엔진 계열)에 비해 크기 또한 획기적으로 줄어 남은 용적으로 장갑 등 다른 곳에 투자할 수 있었지만 한 여름에도 히터가 없으면 시동이 잘 거리지 않았고, 먼지가 많은 사막환경에서도 문제가 자주 생겼다. 초기 엔진수명 또한 길어야 200시간 정도로 짧았는데, T-64A의 5TD 엔진이 충분한 신뢰성을 확보하게 된 때는 1972년경이다. 단 5TD의 아버지와 같은 엔진인 400마력 4TD 엔진은 시험되던 당시 충분한 신뢰성을 가진 듯 해 보였는데, 신형 전차에 쓰기 위해 급하게 출력을 올린 것이 원인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여담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클리모프에서 개발한 GTD-3TL 700마력 가스터빈엔진이 장비된 T-64T가 키로프 공장에서 개발되었지만 곧 사장되었다.[29]
5TD 엔진의 신뢰성이 T-64의 발목을 잡았다. 애초에 T-64는 소련의 모든 전차공장에서 통일되게 생산되게끔 계획되었고 60년대 말이면 옴스크트란스마쉬, 레닌그라드의 키로프, 니즈니타길의 우랄바곤자보드 등은 모두 T-64를 양산할 준비를 갖추었다. 그러나 탑재되어야 할 5TD 엔진은 일반적인 V계열 엔진에 비해 두 배나 비싸면서도 수명은 반도 안 되었으며,1대당 1년에 한 번 꼴로 오버홀을 해주어야 했다. 이 문제는 70년대를 거치며 개선되어갔다.[30]
이 외에도 새로 적용된 7단 변속기는 기어비와 단수가 늘어난 결과 전진 주행성능이 개선되었지만 후진속도는 오히려 직전의 T-55나 T-62의 절반에 달하는 4km/h로 떨어져서 후퇴시 문제가 될 가능성이 생겼다.[31] 이는 변속기 자체를 신형으로 교체하는 개량형에서 해결 가능하다.[32]
[33]
T-64부터 적용된 전면 장갑 레이아웃은 전면 상단부에 떡하니 조종수 관측창이 있는데, 해당 부분은 관측장치를 설치하느라 복합장갑재가 없고 강판도 얇아서 약점으로 취급된다. 해당 약점은 이후 T-64의 신규 설계가 계승된 T-72와 T-80, T-90에도 남았다. 해당 약점은 한참 뒤에 개발된 오비옉트 187에서 재설계로 완전히 해결되었지만,187은 끝내 채탁되지 않으면서 실질적으로 T-14에서 해결되었다.
6. 평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시도를 많이 적용해 동독, 헝가리 등 유럽 전선 최전방에서 주력으로 사용한 고성능 전차로 소련군은 새로운 개량 방안이 구상되면 가장 먼저 적용시켰다. T-72같은 염가형 전차와는 위상이 전혀 달랐으며, T-64에서 도입된 설계사상과 기술, 뼈대는 이후 소련 전차에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영향을 주었다.[34]구동계 문제를 비롯하여 상기된 T-64의 주요 결함은 근본적으로 못 고치는 수준이 아니라 단순히 신기술 도입 과정에서 일어난 결함이었고, 5호 전차처럼 당장 생산라인을 풀가동 시키지 않으면 안될 상황도 아니었기에 개량을 통해 70년대를 지나며 대부분 해결되었다.[35] 성능 또한 T-80U가 등장한 1985년 이전까지 소련군에게는 가장 강력하고 중요한 기갑전력이였다.[36] 그런데도 '초기형의 결함'들이 강조된 이유는 냉전기엔 실전을 겪지 않았고, 소련 해체 이후엔 60년대에 개발되었고 더구나 가장 많은 자료들의 원천인 러시아에선 소수만 굴려졌고, 그리고 소련이 T-64를 타국에 수출하지 않아[37] 인지도와 인기가 한동안 애매해진 원인으로 보인다.
작은 크기로 인한 용적 문제도 소련군 전차전 교리를 충족시켰기 때문에 소련군 입장에서는 불편을 감수하는 수준으로 고성능 전차를 운용할 수 있는거라 후속 전차들이 나오기까지 운용하는 동안 크게 문제시 되지는 않았다. 다만 작은 크기로 인한 스펙 한계 문제 자체는 유효해서 T-64의 영향을 많이 받아 개발된 T-72와 T-80은 처음에는 T-64와 거의 동종의 전차로 개발되다가 고출력 엔진 탑재와 용적 확보를 위해 차대를 바꾸거나 대폭 재설계하여 문제를 극복했다.
T-80의 본격적인 배치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소련군은 주 동독 소련군, 주 헝가리 소련군 등 최일선 정예부대에 T-64를 배치해 유사시 대서방 결전병기로서 사용할 예정이였으며, 실제로 T-64는 서방 3세대 전차가 본격적으로 배치되기 전에 후속 전차가 나왔을 정도로 빠르게 등장하여 높은 성능과 대량운용, 양쪽 모두에 성공한 꽤나 위협적인 전차였다. T-64를 기반으로 제작된 T-80이 이후 소련군의 하이급 전차로 운용된 것은 이 전차가 당초 기대를 끝내 충족하지 못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T-64의 실패로 인해 이후 소련군은 급진적이고 혁신적인 전차를 꺼렸다"는 이야기도 낭설에 불과하다. T-64가 여러 실전에 투입되지 않은 것은 아프리카, 중남미 등지의 중요도가 떨어지는 전장들에서는 굴려지지 않아야할 물건들이었으며, 소련은 T-64 이후에도 붕괴 전까지 전차 개발을 위해서 다양하고 과감한 시도를 했다.[38] 단지 그런 시도들이 소련 붕괴 이후 동구권 국가들, 특히 T-64를 보유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부정부패와 군 인프라 붕괴 등의 문제로 빛을 발하지 못 했을 뿐.
T-64는 당대 최강의 성능이자 현재까지도 소련 전차의 틀을 최초로 실현해낸 전차였고, 운용중에 생긴 시행착오들은 이후 개발된 전차들에 영향을 미쳤다 차기 전차인 T-80은 애초에 "T-64에 가스터빈 달아보자"로 시작했고, T-80B와 T-80U 형식의 개발도 T-64와 그 개량계획을 적용한 것인 만큼 소련 전차의 핵심이였다. 그리고 개발되고 50년이 넘은 뒤에 벌어진 제국주의적 동족상잔에서 T-64는 러시아에 저항하는 우크라이나 전차부대의 등뼈로써의 역할을 톡톡히 해냄으로써 인지도가 부족할 뿐이지 성능엔 부족함이 없음을 증명해냈다.
7. 형식
자세한 내용은 T-64/형식 문서 참고하십시오.8. 파생형
- T-64-55 : T-64 차체에 T-55 포탑을 올렸다. 당연히 화력과 방호력이 하락했지만 중량이 감소했고, 가격과 운용 난이도가 감소했다. 이런 괴악한 파생형이 등장한 이유는 T-55보다 근본적으로 우월하면서 T-72보다 낮은 운용 난이도를 가진 전차로 T-55를 운용중인 3세계 국가들을 공략할 수도 있다는 예상이 나왔기 때문이다. 때마침 동구권에서 고철용으로 가져온 전차들이 넘쳐나기도 했고. 그러나 딱히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
- BMVV-64 : T-64A를 기반으로 만든 보병전투차. 상술했듯 대량으로 넘어온 T-64A를 IFV로 개조해 판매할 생각이었다.
105mm 날탄을 방어할 수 있고, 차체 하단에는 지뢰 방어를 위한 추가 장갑이 증설되었으며, 주문에 따라 콘탁트-1과 능동방어장치를 부착할 수 있는 방호력을 보유한다. 엔진은 전방으로 옮겨지고 후방에 넓은 탑승구가 생겼다.BMP-3보다 좋다30mm 기관포와 동축 기관총으로 구성된 무인포탑을 탑재했으며, 필요하다면 대전차 미사일이나 20톤까지의 추가 장비를 장착하도록 개조할 수도 있다. 다만 이쪽도 딱히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
- BMPT 스트라지
T-64에 기반한 우크라이나의 전차지원전투차(BMPT). 30mm ZTM-2(2A42) 기관포 2문, 7.62mm 기관총 2문, AGS-17 기반의 KBA-117 30mm 유탄발사기, 배리어 대전차미사일 4문으로 무장했다.
- 오비옉트 619
주력 전차에 부향장비를 추가하여 수상도하시키는 PST-U 프로젝트의 일환. T-64(오비옉트 432)에 선박형 부품을 둘러 제작한 수륙양용전차/부향정 프로젝트.참조 PST-63으로도 불렸다.
9. 실전
9.1. 소련 아프간 전쟁
T-64A가 소량으로 투입되었으나 엔진 신뢰성 문제 때문에 투입된지 단 1년만인 1980년 무렵에 금방 철수하면서 실질적인 전투에는 쓰이지 않았고, T-55와 T-62가 쓰였다.9.2. 트란스니스트리아 전쟁
1992년 3월 2일부터 7월 21일까지 트란스니스트리아와 몰도바의 충돌로 발생한 전쟁에서 실전 투입되었다.9.3. 앙골라 내전
앙골라 완전독립 민족동맹이 사용했다.9.4. 돈바스 전쟁
우크라이나군의 주요 기갑전력으로 개량형 T-64들이 투입되었고, 러시아편에 서서 참전한 노보로시야 돈바스 반군도 러시아로부터 지원받거나 노획한 T-64 계열 전차들을 사용했다.9.5. 캄위나 은사푸 반란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일어난 군사 반란에서도 사용되었다.9.6.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우크라이나 육군 소속 T-64, 2022년 부차[39] |
이 중 우크라이나 육군의 주력전차로 운용중이며 2024년 4월기준 408대를 손실하였다. 러시아군은 88대를 손실하였다.#
10. 운용국
자세한 내용은 T-64/운용국 문서 참고하십시오.11. 기타
1988년에는 동독 주둔 소련군 소속 T-64A가 조종훈련중 민간 열차와 충돌하여 6명이 사망하고 33명이 부상당한 지나 숲 열차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12. 미디어
자세한 내용은 T-64/미디어 문서 참고하십시오.13. 모형
13.1. 프라모델
- 1:35 스케일
- SKIF제 T-64A
- 트럼페터
- T-64 1972년형
- T-64A 1981년형
- T-64AV 1984년형
- T-64B 1975년형
- T-64B 1984년형
- T-64BV 1985년형
- T-64BM 불라트
- 1:72 스케일
- Model Collect
- T-64 1972년형
- T-64 1981년형
- T-64B 1975년형
- T-64BM
- T-64BM2
1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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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 | <colbgcolor=#0099b5> 1세대 | T-54 | |||
2세대 | T-62M, T-62MV, T-64B, T-72, T-80BV | ||||
장갑차 | 차륜장갑차 | BTR-60, BTR-70, BTR-80, BTR-82A, BRDM-2M | |||
궤도장갑차 | BMP-1, BRM-1K, BMP-2, BMD-1, BMD-2, BTR-D | ||||
차량 | 소형 | 타이푼-K, VP11, 쿠거 | |||
자주포 | 자주곡사포 | 2S1 그보즈디카 | |||
자주평사포 | 2S5 기아친트-S, 2S7 피온 | ||||
자주박격포 | 2S9 노나-S | ||||
대공 차량 | 자주대공포 | ||||
단거리 대공미사일 | |||||
다연장로켓 | BM-21, BM-27 | }}} {{{#!wiki style="margin-top: -30px; margin-bottom: -10px; letter-spacing: -0.9px; font-size: 0.82em" | ※둘러보기 : 우즈베키스탄군의 운용장비 | 현대 기갑장비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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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e1021> MBT | <colbgcolor=#ce1021> 1세대 | 59식, T-55 | ||
2세대 | T-64BV1, T-72AV | |||
경전차 | PT-76, 62식 | |||
장갑차 | 차륜장갑차 | M8 LACR, AML-60, AML-90, EE-9 | ||
궤도장갑차 | BMP-1, BTR-50, MT-LB, BTR-60 | |||
자주포 | 자주곡사포 | 2S1 그보즈디카, 2S3 아카치야 | ||
다연장로켓 | BM-21, RM-70 | |||
※ 윗첨자R: 퇴역 차량 ※윗첨자C : 노획 차량 ※ {중괄호}: 도입 예정 차량 ※ | }}} {{{#!wiki style="margin-top: -30px; margin-bottom: -10px; letter-spacing: -0.9px; font-size: 0.82em" | ※둘러보기 : 콩고민주공화국군의 운용장비 | 현대 기갑차량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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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 | <colbgcolor=#000000> 기타 전차 | IS-3D | |||
1세대 | T-54, 오비엑트 169rus, T-62Mrus | ||||
2세대 | T-72B1, T-64 | ||||
3세대 | T-72B3rus, T-90rus | ||||
장갑차 | 차륜장갑차 | BTR-4C, BTR-60C, BTR-70C, BTR-80C/rus | |||
궤도장갑차 | BMP-1, BMP-2, BMD-1C, BMD-2D, MT-LBC/rus, BRDM(K111-1)C, YPR-765C | ||||
차량 | 험비C, 테크니컬 | ||||
포병장비 | 자주박격포 | 2S4 튤판, 2S9 노나-S | |||
자주포 | 2S1 그보즈디카, 2S3 아카치야, 2S7 피온 | ||||
자주대공포 | ZSU-23-4 쉴카, ZPU-4 | ||||
다연장로켓 | BM-21, BM-27, BM-30 스메르치, 체부라시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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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 | T-64 | |||||
자주포 | 2S19 무스타-S | |||||
다연장로켓 | TOS-1A 솔른체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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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기(1914~1945) | 냉전기(1945~1991) | 현대전(1991~) |
[1] 오비옉트 140의 포탑을 장착할 수 있도록 차체를 좀 더 늘리고, 115mm 활강포를 주포로 채용했다.[2] T-64A(Object 434) 이전에도 사실상 소련군의 주력전차였던 T-55나 T-62가 존재하였지만 소련에서는 T-64(Object 432)까지도 중형전차로 분류했다. 따라서 정식적으로는 T-64가 소련 최초의 주력전차가 맞다[3] T-72 역시 신뢰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V형 엔진 장착형 T-64A에서 시작했지만, 차체가 너무 작고 고출력 V 계열 엔진을 못 견딘다고 판단되어 차대를 T-62 기반의 오비옉트 167의 것으로 교체한 것이다.[4] 1995년까지 대부분의 T-64A는 스크랩 처리됐으며, 현재 소수만 남은 T-64BV 등을 치장물자로 보관 중이다.[5] 개발국 답게 T-64 계열 최다 운용국으로 T-64E, T-64BM 등 최신 개량형까지 개발했다.[6] 분리장약식 포탄으로 예비 탄약고의 9발을 제외한 나머지 28발은 코르지나 자동장전장치에 보관된다.[7] 5기통 2행정의 수평대향형 터보 엔진이다.[8] 해당 변속기는 T-72, T-90, T-80UD, T-84에도 이어졌다.[9] 리미터 해제 시 최대 60.5km/h까지 가속이 가능하긴 하다.[10] 보조연료탱크를 탑재할 경우 각각 700, 450km로 항속거리가 증가된다.[11] 1976년에 1.8m로 도섭 능력이 향상됐다.[12] 스노클을 장착하고 심수도하를 준비한 상태에서[13] 장갑화된 유리복합섬유의 준말이다.[14] 복합장갑 구조로 고경도의 알루미나 세라믹 볼을 주조포탑에 삽입한 형태다.[15] 이미 T-54를 대체할 신형 전차 프로젝트가 시작했을 때부터 해당 프로젝트로 채택된 전차는 T-64라는 이름을 받는 것으로 정해졌다.[16] T-62의 2A20과는 구경만 같을 뿐 탄약은 분리장약식으로 다르다.[17] T-64A는 포탑의 복합장갑으로 고경도 강판을 이용한 복합장갑을 사용하다 이후 70년대부터 코런덤볼이 적용된 복합장갑이 적용되었으며, 초기형 T-64의 포탑은 알루미늄을 이용한 복합장갑을 적용하였다. 참고[18] 주 목적은 HEAT탄에 대한 내탄성을 높이는 것이다.[19] 430은 T-64의 단순한 전신격 기반일 뿐이다. T-64의 개발이 제대로 끝나고 이후 전차들에게 진짜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는 T-64A를 기준으로 볼 때 주포, 자동장전기, 장갑형상, 장갑재, 포탑, 승무원 숫자, 내부부품 배치 및 부품 구조까지 사실 따지고 보면 430과 T-64A는 큰 틀에서 공통점이 오히려 더 적을 정도로 거의 대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극초기형 모델인 T-64(432)는 430과 어느 정도 비슷한 면도 있지만 이때부터 자동 장전 장치의 유무같이 내부 설계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에 계보상 전신이라는 점 이외에는 430과 T-64 계열의 기술적인 연관성이 많지는 않다.[20] 생산 자체는 1963년부터 시작되었지만 1966년 전까지는 1년에 100대도 생산되지 않을 정도로 저율 생산되었다.[21] 2010년대 이후로 대령까지 진급해 기갑기병연대 지휘관까지 올랐다. 이 사람은 소련의 전차전력을 과대평가해 위협론을 주장해 미국 내부에서도 비판받아서 걸러들어야 한다.[출처] Warford, J. An Assessment of the Soviet T-64 Premium Tank // Armor. — 1990. — № March-April. — С. 22—28.[23] 430은 롤러가 3쌍이지만 T-64(432)로 오면서 중앙쪽의 롤러가 1쌍 늘어났다. 그리고 안쪽 롤러 2쌍이 3번과 4번 보기륜을 사이에 두고 배치되는 식으로 구조가 바뀌었다.[24] 이후 7단 변속기는 T-72와 T-90에도 계승되었다. 다만 엔진 형식의 차이로 변속기 기어박스와 엔진을 연결하는 추가 동력축과 기어가 붙는다.[25] 참고로 중형전차 기반으로 방어력을 강화하여 중전차 역할도 맡는 개념의 전차로 T-64의 전신 오비옉트 430을 기반으로 하는 실험 전차 오비옉트 430U가 만들어진 적이 있다. T-64에서 430U의 이러한 의도가 계승된 셈.[26] 1989년에 서부군집단으로 개칭.[27] 반면 T-72는 T-72B에서도 이러한 사격통제장치가 없었다.[28] 이 문제가 용적 여유와 차대 한계 스펙을 낮췄기 때문에 고출력 엔진의 장착에도 어려움을 줘서 처음에는 T-64의 파생형처럼 개발된 T-72와 T-80은 차대를 다른 전차의 것으로 바꾸거나 대폭 재설계하여 문제를 해결했다.[29] 그래도 T-64에 가스터빈을 장착한 전차를 개발하려는 계획은 멈추지 않아서 수년 후에 오비옉트 219의 개발로 이어지면서 T-80이 나오게 되었다.[30] 여담으로 T-64의 엔진은 사실 영국으로부터 입수해온 엔진의 설계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제작되었는데, 이 때문에 MI6가 소련을 엿 먹이려고 역정보를 흘린 것 아니냐는 음모론이 존재한다.[31] 기존의 5단 변속기보다 전진 기어비가 늘어난 결과 엔진 출력이 더 강화되었음에도 오히려 후진 속도를 높이는게 어려워졌다. 해당 사항은 동종의 변속기가 계승된 T-72 계열과 T-80UD와 T-90에도 해당한다.[32] 마찬가지로 T-72나 T-80UD도 T-72M4CZ나 T-84 오플롯-M형처럼 변속기를 기어비가 바뀌거나 후진 단수가 늘어난 것으로 교체하면 후진 속도를 늘릴 수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러시아군 T-72에서 후진속도 문제가 제기된 것도 변속기가 이전과 동일하게 유지되었기 때문이다.[33] 약점부위 목록. 1번부터 순서대로 조종수 관측창, 포방패, 포탑링, 차체 전면 하단, 포수 조준경, 전차장 큐폴라 부분(우측 5번)[34] T-72가 차대와 현가장치를 물려준 오비젝트 167과 T-64의 영향을 함께 받았다면 맞는 말이지만 서로간의 관계가 전혀없다고 말하거나 크지 않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35] 당연히 우크라이나에서 현재 운용되고 있는 T-64들에게 초기 결함은 해당사항이 없다.[36] 76년에 등장한 T-64B형부터 측풍감지기를 포함한 디지털 사통장치를 장비했는데 T-72는 84년 시제차량이 나와 이듬해부터 양산된 T-72B조차 아날로그 사통을 사용했다. 두 전차는 대놓고 취급이 달랐다.[37] T-72, T-90 계열과 달리 T-80의 인지도가 성능에 비해 낮은 이유 역시 이와 똑같다. 기본적으로 해외 수출과 양적 주력을 맡은 우랄바곤자보드계 전차가 아닌, 전략적 예비대와 성능적 주력을 맡아야할 하리코프계 전차이기 때문.[38] 기존 차량에서 포탑 설계를 변경하고 대구경 주포를 단 정도인 오비옉트 292부터 아예 미래적인 설계를 적용한 오비옉트 477, 오비옉트 490, 오비옉트 640 등 여러 시도가 있었다.[39] 보병들을 탱크 위에 태운 채 기동 중인 모습. 전투 여파로 반응장갑 키트 일부가 손상된 모습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