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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교도소 國軍矯導所 Military Correctional Institution | |
<colbgcolor=#000><colcolor=#fff> 창설일 | 1949년 3월 1일(육군형무소) 1979년 7월 1일(육군교도소) 2014년 11월 21일(국군교도소) |
상징명칭 | 희망대 |
소속 | 대한민국 국군 |
상급부대 | 국방부 조사본부 |
종류 | 교도소 |
역할 | 대한민국 국군의 범죄자 관리 |
교도소장 | 육군 중령 최제명 (육사 00기) |
위치 |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경충대로597번길 57-128 |
서신주소 | (17414)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사서함 900-10호 국군교도소 교정교화과 |
연락처 | 031-640-7624, 7629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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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국방부 조사본부 예하에 있는 대한민국 유일의 군교도소이다.
2. 상세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에 있는 대한민국 국군의 국방부 조사본부 예하 군교도소이다. 일명 남한산성, 다른 말로 "희망대"라고도 부른다.대한민국의 국군 교도소는 대한민국 국방부 소속이다. 명칭은 교도소지만 사형수와 미결수, 적군 스파이도 수감하는 구치소의 기능도 한다.[1]
대대급 부대로, 교도소장은 각군 군사경찰 병과의 중령이 맡는다.[2] 역대 소장은 전부 육군에서 나왔다.
군 교도소이므로 교도관 역할은 군사경찰 장병들이 맡는다.
과거 육군본부 직할부대로 육군인사사령부에서 관리하던 "육군교도소" 시절에는 해군, 해병대, 공군의 교도 대상자들은 위탁 형식으로 수감했다.
그러던 중 2014년 11월 21일에 국방부 직할 "국군교도소"로 바뀌면서 감시/관리하는 근무 군사경찰도 육군 외에 3군 군사경찰들이 모두 배속되게 되었다. 통상 해군 2명, 해병 2명, 공군 2명, 육군은 인원이 정해져 있지 않다.
국군교도소에서 미결수 신분으로 있을 경우에는 군복무기간에 산입되지만[3], 기결수 신분으로 있을 경우에는 군복무기간에 산입되지 않는다. 이 경우 전역 일자가 변경되므로 병적증명서 기록에 영원히 남게 된다.[4] 국군교도소를 갈 정도면 군기교육대도 덤으로 붙을 가능성이 높은데, 이것 역시 병적증명서 기록에 영원히 남는다.[5]
모든 군종의 1년 6월 미만의 실형을 선고받은[6] 병[7]과 군 사형수[8] 또는 민간인이라 할지라도 군형법과 관련된 사고를 친 성인 범죄자[9]를 수용한다. 장교와 준사관, 일정 기간 이상 복무한 부사관, 이들에 상응하는 계급을 받고 장기 근무한 군무원은 수감 기간과 관계 없이 무조건 여기로 수감되므로 무기수나 장기수도 의외로 많다.
국군교도소에서 생활하는 수용자는 모두 남자 현역 군인으로, 1심 판결 후 항소 또는 상고 중인 미결수와 형이 확정된 기결수로 구성돼 있다. 사형수를 포함한 장기수도 일부 있지만 1년 6월 형 미만의 수용자가 많다고 한다.
군 교도소 내부 구조는 군 교도소에 적응할 시간을 주는 "신입소"동, 군 구치소 성격의 "미결수"동, 형이 확정된 "기결수"동, 문제를 일으켜서 징벌이 내려진 수련생들을 독거수용하는 "징벌"동이 있다. 계급에 따라서 따로 독방을 배정하지 않고 장교동이 따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필요하다고 생각될 경우[10]에 독방수용을 한다.
미결수 간부들은 부사관과 위관, 영관으로 나누어 혼방을 사용하며 형량이 확정되어 기결수가 되면 군인사법 제40조 제1항 제4호 및 같은 법 제10조에 의하여 제적된다. 일반적으로 이천과 가까운 여주교도소로 이송되어 남은 형을 집행받지만 가뭄에 콩나듯 남는 경우도 있다. 병의 경우 1년 6월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앞에서 설명하였듯 제2국민역 또는 병역면제로 병역처분변경 후 역시 여주교도소로 이송된다. 다만 실무적으로 보면 재판을 하는 동안 복무 기간이 만료되는 경우가 일반적이고 1년 6월 미만의 형이 확정되더라도 복무 부적격자로 분류되어 전역명령이 내려질 확률이 높다.(#) 여군의 경우 구속되어 있는 동안 본 교도소의 미결수동이 아니라 계룡대 근무지원단 영창에 수감된다. 형이 확정되면 형량 상관없이 제적(전역)되며 나머지 형기가 있다면 법무부 교정본부 예하의 교도소로 이감된다. 나머지 형기가 얼마 남지 않았으면 계룡대 영창에 그대로 남겨 놓은 뒤 석방시키거나 거주지 인근 교도소의 여성사동 등으로 옮길 것이다.
3. 연혁
- 1949년 3월 1일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에 "육군형무소"로 창설
- 1950년 12월 18일 - 대구광역시 동구 동촌동으로 이동[11]
- 1955년 7월 21일 - 부산광역시 서면으로 이동. 당시 위치는 경남공업고등학교 옆이었다.
- 1962년 6월 28일 - 경기도 성남시로 이동, "육군 제1·2교도소"로 분할 (당시 경기도 광주군의 일부였음.)
- 1979년 7월 1일 - 제1·2교도소 통합, 육군교도소로 개칭
- 1985년 10월 22일 -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으로 이동
- 2014년 11월 21일 - 대한민국 국군 국방부 조사본부 예하 기관으로 소속 변경 및 국군교도소로 개칭
- 2022년 6월 - 새 수형시설 준공(기존 시설 옆)
4. 역대 교도소장
역대 국군교도소장 | |||||
역대 | 이름 | 계급 | 임관 | 비고 | 기타 |
초대 | 조용욱 | 육군 중령 | |||
2대 | 박호종 | 육군 중령 | |||
3대 | 김성천 | 육군 중령 | |||
4대 | 채왕식 | 육군 중령 | 학군 21기 | ||
5대 | 이용훈 | 육군 중령 | 학군 00기 | ||
6대 | 강현 | 육군 중령 | 학사 00기 | ||
7대 | 최제명 | 육군 중령 | 육사 00기 |
5. 관리 문제
국군교도소라고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일반교도소와 달리 더 엄격하게 관리할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12] 하지만 언론을 통해서 아래의 사건이 보도되면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제28보병사단 폭행사망 사건의 주범 이찬희 병장이 다른 수감자들을 상대로 6개월 동안 폭행, 성추행[13] 등 가혹행위를 일삼은 것이 드러나 추가 기소되었는데, 이찬희 병장을 비롯한 수감자들을 군사경찰 간부가 아니라 군사경찰 병들이 관리해 온 것으로 확인되었다.
다만 충분히 예상이 가능했던 게 이전까지 병 계급 수용자들 중에 이찬희 병장처럼 잃을 게 없는 상황인 인간과 잃을 게 많은 단기 수감자들이 함께 감방에 갇힌 사례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14] 즉 잃을 게 없어진 사람을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해서 군교도소 측이 경험이 없었기에 벌어진 비극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이후 SBS의 궁금한 이야기 Y에서 국군교도소장이 이 병장의 교도소 내 가혹행위 문제를 계기로 교도직 대한민국 군무원 채용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원래 이찬희 병장 같은 경우는 형이 확정될 경우 법무부 산하 민간 교도소로 이송되어야 하는데,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어 국군교도소에 수용했던 것.
군 교도병도 역시 문제가 있다. 국군교도소라고 하니 뭔가 특수한 부대 같고 마치 특수부대처럼 자원자 혹은 뛰어난 신체능력을 가진 인원을 선발할 것이라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이들은 많은 한국 남성들이 그렇듯이 뺑뺑이를 통해 우연히 자대가 국군교도소로 배치된 인원들에 불과하다. 즉 그냥 군복무를 하러 입대했다가 지원 후 면접 등을 통해 군사경찰으로 뽑힌 다음 그냥 뺑뺑이 돌려서 국군교도소로 배치받았기 때문에 일반 육해공군 병들과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차이가 거의 없다. 물론 군사경찰이라서 평균 신장은 조금 큰 편이지만 확연한 차이를 느끼기는 어려우며, 특히 해공군 군사경찰은 경계군사경찰 수요 때문에[15] 체구가 작은 경우도 쉽게 뽑힌다. 현역 입영 대상자라면 얼마든지 자대가 국군교도소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반면 이들에게 요구되는 근무수준은 절대 쉽지 않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 보면 일과표에 따른 수용자 통제, 이동소요에 따른 계호, 외부 계호, 수용자 간 혹은 수용자와 근무자 간 마찰 중재[16], 돌발 상황 대처[17]와 같이 복잡하고 어려운 임무가 주어진다. 불침번이나 위병소와는 비교를 불허하며 당연히 영창 근무보다도 어렵다. 단순히 암기해야 할 사항도 행정병급으로 많으며 외운다고 끝이 아니라 몸으로 완전히 체현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는 "교도병은 2~3일 교육만 받으면 바로 배치되기 때문에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는 사실과 크게 다르다. 간부나 병사/수병들도 근무 난이도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신병은 절대로 혼자 근무에 투입되지 않는다. 군사경찰 병과 특유의 지독하게 길고(...) 주말을 가리지 않는 근무[18]를 선임병과 함께 3~4주간 근무를 서면서 배우게 된다. 아마 "교도병은 2~3일 교육만~"하는 구절은 일반 영창 근무자의 사례를 교도소 근무자도 똑같다고 생각했거나 혹은 선임병과 함께 근무 투입한 신병을 정식 근무자로 오인했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 3~4주도 완전히 충분한 시간이라고 하기에는 힘든 이유가 존재한다.
어떤 부대든간에 똑같겠지만 신병이 가장 곤혹스러운 건 선임들과 간부들의 이름과 계급을 외우는 것이다. 하지만 국군교도소 신병은 수련생들의 이름과 해당 수련생이 수감되어 있는 수용실 호수까지 외워야 한다. 수련생의 인적사항은 누가 일일이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니고 눈치껏 얼굴을 보고 이름을 외워야 한다는 게 문제이다. 만약 이름과 얼굴을 못 외웠을 경우 근무자들의 이름은 군복 이름표에 새겨져 있기도 하고 여차하면 물어보면 그만이지만 수련생들의 옷에는 이름이 적혀 있지 않고 수련생들에게 가서 이름을 물어본다는 거 자체가 약점을 하나 제공하게 되는 꼴이라서 물어볼 수도 없다. 그렇다고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선임한테 물어볼 수도 없는 것이 손가락질하는 걸 수련생이 봤다가는 바로 진정서 작성하여 국가인권위원회에 보내 버린다.[19]
그리고 교도병들은 무전기[20]를 차고 인이어를 끼고[21] 근무를 선다. PD로 오고가는 말의 80% 이상은 CEOI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CEOI도 외워야 하는데 그냥 야간근무 때 외우는 문어 답어 수준이 아니라 교도병으로서 사용할 만한 모든 명사를 암호화시켜서 암구호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CEOI를 못 외우면 무전 내용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 대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22] 2015년만 하더라도 CEOI가 한국어 단어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한 근무자가 사형수 김민찬에게 CEOI표를 흘려버려서 3~4자리 숫자로 변경되었다.
그런데 위의 문제점들은 진짜 문제점이 아니다. 교정직 공무원들이라고 해서 죄다 우락부락한 떡대들인 것도 아니고 평범한 남성이라는 건 반대로 말하면 특별한 결격 사유도 없다는 것이다. 또한 어려운 근무 난이도도 병으로서 어려운 수준일 뿐 실제 교정직 공무원들처럼 서류작업이나 수용자 상담같은 고급 임무는 당연히 맡기지 않는다. 일반 영창보다는 훨씬 복잡하지만 결국 교도관의 손발로써의 역할에만 충실하면 되는 것이다 보니 아무리 재능 없는 사람이라도 몇 달을 근무 서다 보면 충분히 한 사람 몫을 한다.
진짜 문제점은 처음 서술한 바와 같이 이들은 근본적으로 그냥 기간병이라는 것이다. 병 계층이 100% 징집병으로 구성된 특성상 일단 책임감이 부족한 인원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23] 그리고 결국 이들은 전역한다. 열심히 가르쳐 숙련시킬 만하면 사회로 나가 버리고, 새로 들어오는 신병은 당연히 까막눈(...)이라 다시 처음부터 가르쳐야 하는 이런 현상은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한 부분이다. 거기다 복무기간의 단축은 이러한 현상을 더욱 부채질한다. 결론적으로 기간병 대신 임기제부사관이나 군무원을 넣는 편이 현재로서는 최선책이다.[24] 임기제부사관의 경우 적어도 1년은 더 의무적으로 복무하는 데다 봉급다운 봉급을 받아 의욕도 있기 때문이다. 직업병 제도를 신설하여 기간병을 100% 직업병으로 채우는 것이 더 이치에 맞다. 또 법무부 교정본부(당시 법무부 교정국)에서 인원을 파견해서 전문 교정시설로 바꿔야 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6. 수형생활
이곳에선 수용자나 재소자라고 불리지 않고 수련생으로만 불린다.죄수복 색상은 법무부 교정본부와 같이 미결수가 갈색, 기결수가 하늘색이며 사형수는 형이 집행되지 않았기에 미결수의 갈색 죄수복을 입는다. 죄수복에는 일반 교도소와는 달리 상의 왼쪽 가슴쪽에는 찍찍이가 있어 수용번호를 붙이고 다닌다. 상의 뒷면에 "희망" 이라는 큼지막한 글씨와 하의 허벅지 양쪽에 희와 망이라는 글씨가 적힌 게 특징. 일단 군법상의 죄를 짓고 들어오면 우선 해당 부대 영창에서 구속수사를 한 뒤에 해당 사단, 함대, 비행단 혹은 그 위 단위 군사법원에서 1심 판결 후 국군교도소로 이감된다.
미결수인 경우엔 아직까진 군인의 신분이기에 월급이 지급되며[25] 재판 출석 시에도 군복으로 갈아입고 재판에 임한다.[26] 미결수 동에는 열심히 반성문을 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항소심의 경우 서울특별시 서초구의 서울고등법원에서 이뤄지며[27], 상고심은 대법원에서 이뤄진다.
6.1. 처우 및 복역
계급 대우는 받지 못한다. 계급을 인정하면 계급을 무기로 교도소의 기간병에게 갑질을 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감되기 전에 장성급 장교였어도 계급은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수감자에게 조 중위님 이런 호칭 따위 없다. 수형번호 또는 그냥 '이름+수련생님'으로 호칭된다. 옛날에는 아예 아래 계급 대하듯 반말로 막 대했는데, 2000년대 초에 인권위에 미결수는 계급이 살아 있는데 아래 계급처럼 취급당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진정서가 날아온 이후 수련생님으로 호칭이 바뀐 것으로 알려져 있다.[28] 그래서 수감자 가족들도 조 중위의 가족이라는 호칭이 아니라 한때 중위였던 조 아무개의 가족이라는 호칭을 쓴다.흔히 알려진 것처럼 이등병으로 강등시키진 않으나, 그렇다고 아랫사람으로 대우한다는 얘기도 절대로 아니다. 미결수는 아직 유/무죄 여부가 확정된 상태가 아닌 사람을 뜻하는 말이고, 만약 무죄나 선고유예(병의 경우는 여기에 더해 집행유예도)가 선고된 경우 복직도 가능하기 때문에 일단 계급은 고대로 유지시킨다. 재판으로 유죄가 최종 확정되기도 전에 파면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 경우는 파면으로 민간인이 되었으므로 민간교도소에 수감된다. 또한 실형을 선고받아 자동파면되었다 해도 이등병으로 강등시킨 후 파면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계급이었던 채로 파면된다. 현재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 자체로 이등병 강등 처분은 되지 않으며[29] 예외는 임관 그 자체를 부정하게 한 경우, 예를 들어 대졸이 지원 자격인 장교를 가짜 대졸 학력으로 임관했다가 들통난 사례 정도이다.
죄수복은 피복은 하계, 동계용으로 2벌을 지급하고 식사 역시 수감된 방이 아닌 식당에서 식사를 함을 원칙으로 한다. 단, 식사의 경우엔 해당 부대의 급양식단과 똑같은 식단으로 먹는다.[30] 2004년 여름을 기점으로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로 교도소 내부 PX를 열었으며[31] 병 기결수동 내부에 개인샤워시설이 생기고 하루 저녁 8시마다 1시간만 볼 수 있었던 뉴스시청 시간을 2시간으로 늘리는 등[32] 수감자의 인권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주말에는 비록 철 지난 영화겠지만 영화감상 역시 가능하다.[33] 운동 및 체육활동은 우천시를 제외한 하루 한번 오전 및 오후시간까지 허용된다. 하지만 단체로 나가는 걸 원칙으로 한다. 종교행사 역시 일요일에 주 1회 참석이 가능하다. 주로 여가활동으로는 독서가 있고, 교도소 내 도서관에서 최대 5권까지 책 대여가 가능하며 검열을 거친 도서를 요청을 통해 구매해 들여오는 것도 가능하다. 수감된 사형수 중 한 명인 임도빈 육군 보병 병장이 미소녀 나오는 만화책을 반입해 읽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독방 수감자 역시 대여는 가능하지만 직접 도서관에 가서 읽거나 빌려 올 수 없고 도서 목록에서 선택하면 사서 수련생들이 넣어준다. 부식 같은 경우도 건빵이나 사발면 같은 증식도 정말로 잘 주는 편. 주 1~2회 정도 단체 목욕탕에서 온수로 샤워가 허용된다. 허나 자살이나 자해의 문제로 샴푸 같은 액체세제는 금지하고 무조건 비누 같은 고체세제만을 허용한다.
보건의료 및 건강상의 문제로 교도관에게 얘기하면 한달에 한 두번 정도 군의관이 와서 진료를 해 주며 질병이 호전되지 않으면 버스를 타고 국군수도병원에서 외진이 가능하다.[34] 국군수도병원 외진을 수시로 다녀와 봤거나 입원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특히 수요일[35]에 국군교도소 군사경찰들이 기결수를 데리고 다니는 걸 심심찮게 볼 수 있다.[36]
기결수 확정 후 일단 징역형이기에 일을 해야 되는데 여기서 기술교도대 출신 기간병들과 함께 일을 할 수 있고 급여도 지급된다.[37] 일을 함과 동시에 한식, 중식 조리사, 컴퓨터 워드 프로세서, 자동차 정비기능사, 전기 및 가스용접 자격증을 딸 수도 있다.
수감자가 탈옥할 경우 육군 제2강습대대 5분대기조가 출동하여 탈옥수를 체포한다.[38] 교도소라고 특별관리하는 건 아니고 국군교도소가 제7기동군단 영내에 설치됐기 때문에 인근 부대가 초동대처를 하는 것이다. 어찌어찌 국군교도소에서 탈옥해도 여전히 제7기동군단 영내에 있으니 금방 눈에 띌 수밖에 없다.
과거엔 남한산성 근처에 있었기에 '남한산성'이라는 은어로 불리기도 했다. 현재 이 자리에는 창성중학교(구 창곡중+창곡여중+영성여중, 2017년에 통폐합)와 한국폴리텍1대학 성남캠퍼스가 있다. 참고로 육군종합행정학교의 상징명칭인 '남성대' 역시 남한산성에서 유래되었다. 이 곳 역시 위례신도시 개발로 현재는 충청북도 영동군으로 이전한 상태. 영동으로 이전하면서 점차 사어가 되고 있지만, 나이 지긋한 사람들은 아직도 남한산성이라 부르기도 한다. 국군교도소로 명칭이 바뀐지 오래인데도 아직 육군교도소, 육교라는 말이 쓰이는 것과 비슷한 상황.
대한민국 국군 장병이 사용하는 침대, 관물대를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39] 내무실(생활관)이 침상 위주였던 예전엔 주로 책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대한민국 법무부 소속 혹은 민영 교도소처럼 이 곳에서도 출소 후를 대비한 직업 훈련 등의 일환으로 교도작업을 하는데, 군부대에 들어가는 비품 일부가 이 곳 수감자들에 의해 제작된다. 물론 총 수감자 숫자를 생각하면 모든 군납 비품을 거기서 다 만들 수 있을 리는 없고, 대부분 각 군 군수사령부에서 민간 업체를 통해 구매한다.
구 육군교도소 시절부터 경찰서 유치장과 마찬가지로 수감자가 0명이 되면 백기를 올리는 규정이 있다. 육군교도소 시기 창설 이래 딱 한 번 잠시 올라간 적이 있는데, 이는 경찰서에서도 작은 군 단위 경찰서에서나 어쩌다 가끔 있을 만큼 드물다.
요즘은 꽤나 처우가 좋아져서 개봉한지 얼마 안 된 최신영화를 주 2회 볼 정도다.
2022년 4월 국군교도소의 재건축이 완료된다면 죄수들의 처우가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40] 2022년 6월, 새로운 국군교도소의 내부가 공개되었다. 사진 참고, 사진2, 사진3
6.2. 사형수
2022년 기준으로 4명이 존재하는데 전부 병 출신으로 육군 3명, 해병대 1명이다. 언론과 나무위키의 문서에 실명이 공개되어 있어 그대로 작성한다. 입소 순으로 작성.- 김용식(1975~)
1996년 10월 1일[41] 강원도 화천군의 육군 제7보병사단에서 당시 상병으로 총기를 난사하여 3명을 살해하고 1명에게 부상을 입힌 후 인질극을 벌이다 2시간 반만에 투항하였다.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중 일어난 데다 이런 문제에 대한 인식이 바닥을 길 때 일어났던 사건이라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당시 기사도 사건이 일어났다고 짤막하게 보도된 게 전부이다.
1985년 제28보병사단 화학지원대 총기난사 사건 이후 한동안 군인에게 사형을 내리지 않았고[42] 이후에는 사형 집행이 정지되었기 때문에 국군교도소의 최고참이다. 확연히 알 수 있는 예시는 현 국군교도소에서 원사로 근무 중인 부사관이 육군교도소 시절에 하사로 임관했을 때도 김용식은 국군교도소에 있었다는 것이다. 신학대학 과정을 공부하고 소내 이발 봉사, 각종 작업[43], 교회 집사[44] 등을 하고 있다. 아예 별명이 깍새나 집사다.[45] 군사경찰이나 수감자들이 '사람 좋은데(?) 대체 왜 사형수인지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도 보인다. 실제로도 모범수이다.[46]
- 김동민(1984~)
2005년 제28보병사단 530GP 사건, 소위 김일병 사건의 그 김일병이다.
사건 이후 5년간 방에서 나오지 않는 은둔형 생활을 하였다. 교도관, 수형자와 일체 대화를 하지 않고 종교 생활도 하지 않으며 밥도 식당이 아닌 자기 방에서 혼자 먹었다. 5년이 지난 2010년 정도부터는 조금씩 마음이 풀려 혼자 화초도 키우고 동물도 돌보고 다른 수형자들과 어울리기도 한다. 어쩌다 한 번 교회도 가고 판타지 책도 잘 읽는 편. 10년간 독거 생활만 고집하다가 2014년~2015년에는 김용식과 같은 방을 쓸 정도로 조금 밝아졌다. 그러나 김용식이 합방 4~5개월 후 김동민 일병의 성격 탓에 같이 못 지내겠다고 해 다시 독거로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으며 다른 사형수와 달리 유난히 특별 감독을 받아 대화 자체가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목격자에 의하면 깔깔이에 슬리퍼 끌고 여유있게 걸어가는데 나이도 많고 머리도 길어서 간부 수형자인 줄 알았다고 한다.
운동 시간에는 철봉만 하는데, 그 덕분인지 마른 체형임에도 불구하고 몸에 근육이 엄청나다. 그리고 식물을 키우는 것을 좋아하고 잘 한다. 어느 정도냐면 교도소 내에서 오렌지를 키워 먹을 정도다.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김용식과는 오랜 세월 동안 봐서 그런지 좀 친한 편이다. 그래서 둘이서 국군교도소 수용동 마당에서 토끼를 기르는데 한두마리가 아니라 족히 수십마리는 넘게 키운다. 플라스틱 망으로 울타리를 치고 키우기는 하는데 굴을 잘 파는 토끼 특성상 툭하면 탈출하는 일이 발생해서 토끼 잡으러 뛰어다니는 경우도 허다하다.
유족들은 아직까지 자신의 가족이 북한군에게 죽었다고 믿고 있어서 국군교도소로 찾아와 동민이를 만나고 싶다고 면회 신청을 하고 있다. 그러나 김동민 일병 본인이 거부하고 있다.
- 김민찬(1992~)
2011년 강화도 해병대 동료 총격 사건의 주범이다.[47] 사건을 일으키고 나서 수류탄으로 자살 시도를 해서인지 몸에 살갗이 찢어진 흉터가 있다. 전형적인 초, 중, 고등학생 양아치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교도소에 수감된 지 꽤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탈영을 한다는 등[48] 헛소리를 하고 근무자와 자주 다투는 등 아직까지 적응을 못 하고 있다. 하지만 자주 저녁에 잠을 자지 않고 앉아서 우는 것을 보면 속으로는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후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3년 쯤에는 군사경찰의 권유로 소극적으로 김용식, 김동민을 따라다니며 여러 가지 활동을 같이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해병으로서의 자부심이 여전히 남아 있다. 다른 해병이 신입소로 들어오면 괜히 친한 척하며 말을 걸기도 한다. 해병 교도병을 보면 시비를 걸다가 잘해주는 식으로 밀당을 한다. 따라서 해병 교도병은 웬만하면 마주치지 않는 곳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편이다. 해병으로서의 자부심을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는데, 김민찬이 면회를 마치고 다시 수용동으로 돌아가려는데 비가 오자 우산 없이는 한걸음도 안 움직이겠다고 김민찬이 말했다.[49] 그 때 그 옆을 지나가던 해병 교도병이 "해병은 이 정도 비에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해병으로서의 자존심을 건드렸고 그 말을 들은 김민찬이 피식 웃으면서 비를 맞으면서 수용동으로 돌아갔다. 김민찬의 평소 성격이었으면 바로 노발대발하며 진정서를 가져다 달라고 했겠지만 해병 교도병이 그런 말을 하니 그냥 넘어갔던 모양.
- 임도빈(1992~)
2014년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인 그 임병장으로 2016년 사형 선고. 굉장히 왜소한 체격에 목소리 또한 굉장히 특이해서 성질머리 나쁜 사람이 들으면 욕을 할 만한 목소리 톤을 가지고 있다.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 문서에도 명시되어 있지만 좀 더 자세히 언급하자면 원래는 A급 관심병사였지만 병력 부족으로 B급 관심병사로 낮춘 다음 GOP에 투입시켰다. 투입됐을 당시 임도빈의 맞선임이 엄청난 천사이면서 A급 병사였던지라 맞선임이 실드도 쳐 주면서 군생활을 잘 이어가고 있었다. 문제는 해당 맞선임이 전역하는 것도 모자라 임도빈의 소대장인 문 모 소위가 보직해임[50] 당하면서 발생하게 되었다. 맞선임이 없으면 소대장이 보호해줬어야 했지만 그 소대장마저 없어져서 같이 생활한 적도 없는 데다가 말년중위인 부중대장 강 모 중위가 소대로 내려와서 소대장 직무대리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당시에는 임도빈도 병장이었지만 언급했듯 왜소한 체격과 특이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고 관심병사였기에 맞선임이 전역하자마자 무시와 꾸짖음이 시작되었다. 이에 참지 못한 임도빈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어찌보면 악인으로 태어난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악인으로 만든 것일 수도 있다.
그 때문인지 빤히 쳐다보거나 자신이 부르지 않았는데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한다.수련생이 뭘 하고있는지 관찰해야 하는 교도병으로서는 매우 난감하다...
엄청난 강박증을 가지고 있다. 모든 물건은 자기가 정한 위치에 있어야 하는데, 문제는 무조건 가지런히 놓고 청결한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게 아니라 흐트러져 있어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흐트려져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이 문제가 된다. 뭔가 맘에 안 들 경우 머리를 긁으며 심하면 소리를 지르며 난동을 부린다.
민간 교도소에서는 사형수의 경우 무기수가 가석방될 수 있는 기준인 징역 20년(2010년 형법 개정 이전에는 10년)의 1/3 정도가 지나야 적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때까지는 질풍노도의 시기로 방에만 처박혀 있거나 말 안 듣고 싸움질하는 등 개판으로 생활한다. 1/3 시점이 지나면 일도 하고 공부도 하면서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2/3 정도가 지나면 슬슬 무기수로 감형받기 위해 행형점수에 신경쓴다. 그러나 법정 유기 최고형이 징역 15년에 가중 시 20년에서, 2010년 10월 16일부터 징역 30년에 가중 시 50년(...)으로 늘어나면서 다 포기하고 엉망으로 살고 있다. 2010년 이전 기준으로 무기수는 빠르면 징역 18년 정도만 살고 출소했고 늦어도 21년 정도 살고 출소했다. 2010년 이후에는 몇 년간 출소자가 없다가 최근 들어 고령의 모범수의 경우 징역 상한선에 가까운 27년째에 가석방되는 추세이다.
이에 따라 국군교도소의 사형수 4인방도 교도소 내에서 큰 사고를 치지 않고 모범생활을 한다면 대략 수형생활 30년을 전후하여 무기로 감형받고 무기수로 좀 더 살다가 언젠가는 가석방될 가능성이 있다. 민간교도소의 사형수에 비해 국군교도소의 사형수는 사건 발생 시점의 나이가 워낙 젊으니 가석방될 가능성이 있긴 하다. 그래서인지 국군교도소 수용복 등짝에 찍힌 두 글자가 "희망"이다. 재소자들에게는 출소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희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사형수라면 청, 중년 시절을 모두 감옥에서 보냈기 때문에 출소했다고 바로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기는 힘들겠지만 이들이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는 함부로 예단할 수 없다.[51] 반대로 죽을 때만큼은 사람답게 가라고 거의 죽기 직전에 석방시켜서 요양병원 임종실 등이 자신의 형장이 되어 비유적으로 사형이 집행될 수도 있고.
다만 감형위원회에서 감형을 논할 때 수형생활보다도 가장 먼저 보는 게 죄질이다. 죄질이 나쁘면 아무리 모범수로 생활한다고 해도 감형 대상으로 잘 올리지 않는다. 당장 위의 김용식도 국군교도소 몇몇 간부와 사형폐지단체, 종교계에서 감형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부조리와 가혹행위로 인한 사건이라는 참작 요소가 있음에도 성과가 없고 2007년에 몇몇 사형수를 무기수로 감형한 이후 지금까지 사형수의 감형도 없다. 차라리 사형제 폐지 자체를 기다리는 게 더 확률이 높을 지경. 무기수로 감형된다 쳐도 무기수가 가석방될 때까지 걸리는 기간도 늘어나는 추세이며, 무기수 가석방 허용 조건인 20년 이상 복역은 사형수로 지낸 기간은 포함하지 않는다는 해석이 내려져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듯이 이들이 무기징역으로 감형될 기간인 20년 후, 가석방될 기간인 40년 후에는 가석방 심사기준이 완화될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점이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도 나오는데 주연인 레드(모건 프리먼 분)는 살인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째, 30년째에 가석방 심사를 받았으나 부적격 판정을 받았으나 40년째에는 심사위원들도 젊은 사람들로 바뀌었고 그에 따라 심사기준이 더 진보했기에 결국 가석방을 받는다. 이처럼 먼 미래에는 이들과 비슷한 나이대인 MZ세대들이 법조인 대다수를 차지할 것이고 안 그래도 MZ세대 절대다수는 위의 4명, 특히 임도빈에게 공감하고 있는 만큼 가석방 기준이 완화되어서 희망을 잃지 말고 열심히만 생활한다면 가석방될 가능성도 분명 존재한다.
제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의 주범인 이찬희는 이들보다 가벼운 형량인 40년형을 선고받아서 법무부 교정본부로 넘겨져 민간 교도소에 수감되었지만 행형성적이 평가가 안 될 정도로 제일 엉망인 데다 교도소에서도 사고치고 다녔던 것이 다 알려져서 가석방은 꿈도 꿀 수 없다.[52] 되려 형량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훨씬 높다. 또한 죄를 지은 원인도 저 위의 4명은 병영부조리의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 사례지만, 이찬희는 빼도박도 못하는 병영부조리의 가해자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사형수의 민간교도소 이송을 권고했다. 징역 1년 6월 이상을 선고받은 병은 민간교도소로 이송하는데, 사형수만 이송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기도 하고 사형수의 효과적인 교정·교화와 관리의 효율성을 이유로 들었다.[53] 그러나 법무부는 위에서 언급한 대로 민간교도소에서는 총살형을 집행할 수 없으니 불가하다고 거부한 상태이다.[54][55]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시나 계엄 상황 이외에는 군인이라도 총살형이 아닌 교수형으로 집행하도록 법을 개정하는 방안도 있었으나 실질적 사형 폐지 상태에서 해당 법안에 손대면 사형 집행 재개로 읽힐 수 있다는 문제 때문인지 흐지부지된 상태.
6.3. 장애인이 수감되는 경우
장애인 중 병무청 신체검사를 받는 과정에서 걸러지지 않아 현역 판정을 받게 된 사람이 입대 후 범죄에 연루되어 수감된 경우이다. 장애인이 병역판정검사를 받게 되는 나이인 만 19세가 되는 해가 되기 전에 장애인 등록 후 등록유지를 했으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국군교도소의 장애인 수감자는 장애인 징병의 피해자이며, 아래의 사례가 국군교도소에 수감된 장애인과 연관된 내용이다.제28보병사단 폭행사망 사건의 주범 이찬희 병장에게 가혹행위 피해를 당한 수감자 중에 지적장애인이 있었으며 2012년 칠곡에서 일어난 묻지마 살인사건의 가해자가 살인사건을 저지르기 13년 전에 군복무를 하다 탈영해서 8개월 동안 수감된 지적장애인이다.[56]
6.4. 민간인이 수감되는 경우
국군교도소에 민간인 신분으로 수감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군형법은 군인 및 군무원에게 적용되기 때문에 불명예 전역한 군인 및 군무원들이 수감된다.- 초병 폭행
- 초병 폭행 후 초병의 개인 화기, 장구류 탈취 - 강화도 해병대 총기 탈취 사건의 범인이 여기에 해당된다. 아예 초병을 살해한 혐의가 있다.
- 독극물 살포
- 군용물에 관한 죄
- 군사기밀 유출 - 완전한 민간인은 어렵고 주로 군무원들이 저지른다.
군무원이 아닌 순수 민간인은 군사재판을 받더라도 국군교도소로 가지 않고 법무부 교정본부 구치소나 교도소, 소년교도소,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 소속 소년원[57]으로 가게 된다.
장교 출신자의 경우에는 병적에서 제적되어 서류상 민간인이 되어도 무조건 이 곳에 수감된다. 육군 군사경찰 대령 한 명이 징역 12년형을 선고받고 장교동에 수감된 사례가 있다. AH-1H 코브라 공격헬기 관련 문제로 287억의 뇌물을 받았는데, 대부분 재산을 은닉했고 군검찰에서도 단 한 푼도 찾지 못했다고 한다. 현재는 이미 출소한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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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건 몇몇 일반 교도소도 같은 기능을 한다.[2] 교도소장은 사단 군사경찰대장이나 국방부 조사본부 보직과 달리 실적은 낼 수 없고 관리 위험이 큰 보직 특성과 진급이 느리고 병과장이 준장인 군사경찰 병과 특성상 짬 중령이나 대포중(대령 진급을 포기한 중령)들이 맡는다. 심지어 동기가 준장이나 소장인 경우도 있다![3] 다만, 전역 직전에 미결수 신분인 경우에는 전역이 보류되므로 전역 일자가 바뀌게 된다.[4] 국군교도소를 갔다온 것은 기록되지 않지만, 입대일과 전역일을 역산하여 계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020년 1월 1일에 입대했는데, 2021년 12월 31일에 전역했다면, 그 사이의 6개월은 국군교도소를 간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5] 군기교육대는 최대 15일인데, 징역은 1개월 단위이므로 명확히 구분될 수 밖에 없다.[6] 1년 6월 이상의 형이 선고되면 그 즉시 전시근로역에 편입되어 전역 처리되고, 6년 이상의 형이 선고되면 아예 군번이 말소되어 소속 군에서 제적되기 때문에 국군교도소가 아닌 법무부 산하 여주교도소에 수감된다. 이천의 근처 지역이 여주이기 때문이다.[7] 수감 도중 복무 기간을 채우면 전역 조치하고 법무부 산하 교도소로 이감된다.[8] 군 사형수들은 사형 집행이 군형법 제 3조에 따른 총살형이라 총살형을 집행할 수 없는 법무부 산하 구치소 및 교도소인 법무부 교정 기관으로 이송하지 않는다. 다만 군 사형이 1986년 이후 중단되었기에 현재는 사실상 무기금고수로 처우하고 있다.[9] 초병과 관련된 범죄로 오는 경우가 많다. 미성년자는 아무리 군 관련 사고라 할지라도 김천소년교도소로 가거나 소년보호처분을 받을 경우 소년원으로 간다.[10] 혼방하면 문제가 발생할 것 같은 경우, 사고를 친 경우, 정말 수용공간이 없어 독방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 등[11] 과거에 흔히 대구형무소라고 불리던 곳(당시 대구 중구 삼덕동)이 있지만 이 곳과 별개다.[12] 남한산성으로 불리던 과거의 악명이 영향을 끼친 것도 있다. 엄밀하게 따지만 과거에도 구타와 가혹행위만 많았고 '관리'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남한산성 시절이라고 아래의 사건이 안 일어났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말이다.[13] 성기 노출, 타 수감자를 화장실에서 옷을 벗기고 오줌을 뿌림.[14] 재소자들은 원래 반성과는 별도로 교도관의 말은 꽤 잘 듣는 편인데 국군교도소에 수용된 인원들은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민간교도소에 비해 형이 평균적으로 짧고 단기간에 사회로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 하지만 여기에도 예외는 있는데 바로 사형수, 무기수, 그리고 20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장기수들이다. 물론 군교도소 측도 이걸 알기 때문에 직업군인 출신 장기수나 병 사형수들은 당연히 별도로 관리하므로 사고를 치지 않지만, 이찬희 병장은 흔치 않은 병 출신 장기수였기에 관리를 어떻게 할지 애매한 상황이었고 이 과정에서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날뛸 만한 조건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15] 육군은 대부분의 병사가 경계근무를 서지만, 해공군은 평시엔 군사경찰만 경계근무에 투입된다. 그래서 육군 출신들이 야간근무 얘기를 꺼내도 공감을 못 하는 해공군 출신들이 많다. 공군 병 총원 중 군사경찰의 비율은 15~20% 정도다.[16] 사태가 심각해지면 교도관이 해결하지만 사소한 수준의 마찰은 대개 근무병이 해결하고 추후 보고한다.[17]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돌발상황이 발생한다. 뜬금없는 환자 발생, 문제 있는 수용자의 난동을 비롯한 기행, 수용자간 통방 등등 예시를 들면 끝도 없다.[18] 교도병들은 연중무휴 똑같이 근무를 선다.[19] 이게 참 웃긴 게 뭐라고 적든 간에 사실확인을 위해 인권위에서 조사가 들어온다. 조사가 온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지휘관 입장에서는 큰 피해이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진정서가 안 보내지도록 수련생들을 어르고 달랜다. 그것을 아는 수련생들도 수틀리면 무조건 진정서를 쓴다고 협박을 하고 교도병들은 그 협박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20] 일명 "PD"라고 불린다.[21] 수련생들이 무전 내용을 들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22] 선임들에게 갈굼받는 건 둘째치고 계획에 따라서 움직여야 하는데 무전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시간이 지연되기 때문에 수련생들의 불만이 폭주하게 된다. 특히 밥 먹을 때나 운동시간에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바로 욕을 하는 수련생들을 볼 수가 있다. 참고로 욕을 들어도 교도병들이 조치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고 그냥 욕을 먹어야 한다.[23] 제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의 이 병장이 교도소 내에서 행패를 부렸을 때 피해자의 도와 달라는 요청에도 그냥 지나간 것은 이렇듯 권한이 없는 병들이 있기 때문이다.[24] 다만 군무원을 투입하는 건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행정직 군무원을 배치시키려 하면 당연히 반발할 것이며, 그렇다고 한 곳뿐인 교도소를 위해 군무원에 교정직렬을 신설하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아서 여러가지로 골치 아플 가능성이 높다.[25] 이는 영창에서도 똑같다. 아직까진 군인 신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직이 수형이기 때문에 수당은 일절 없으며 기본급만 나온다.[26] 1심 재판은 해당 부대에 인근한 보통군사법원에서 이뤄지고 판결 뒤 교도소 수감 후 2심 재판은 서울고등법원에서 이뤄진다.[27] 호송차량을 타고 이천에서 서울 서초동까지 간다. 서울고등법원까지 가는 이유는 고등군사법원이 폐지되어서 군 항소 관련 업무가 서울고등법원으로 이관되었기 때문이다.[28] 상급심에서 판결이 뒤집혀서 석방된 중위가 진정서를 넣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기결수에 대한 대우까지 바뀐 것으로 봤을 때는 민간교도소까지 수용자 인권이 점차 좋아지기 시작하던 2000년대 초의 영향이 클 것이다.[29] 물론 징계로 강등이 있기는 하지만, 이건 이등병 강등이 아닌 고작 1계급 강등이다.[30] 단, 사고를 저지르고 독방에 갇히면 1명만 있는 독방의 식사 시간에는 추가로 1명의 근무자를 부르고 계호상태에서 철창문 따고 들어가서 식판을 준다.[31] 영치금이나 기술교육대(技術敎育隊) 노역급여로 계산 가능하다. 농협 체크카드가 쓰인다.[32] 주말의 경우 검열을 거친 음악 프로그램 등 뉴스 이외의 TV 시청도 가능.[33] 그래도 비디오 출시 후 3개월 정도가 지난 영화를 틀어준다.[34] "희망"이라는 죄수복을 입고 수도병원을 가면 주변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다. 그나마 미결수는 전투복을 입긴 하지만 애초 현역들도 병원 방문 때는 활동복을 착용하는 상황이고 민간인도 많은데다가, 포승줄과 고무신까지 신었으니 더 잘 티가 날 수밖에 없다. 과거엔 이름표가 노출되어 있어 유죄가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는 명예가 훼손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이름표까지 다 떼고 얼굴을 가릴 마스크, 수갑을 가릴 손목가리개를 착용한 상태에서 군사경찰과 함께 이동하는 것으로 바뀌었다.[35] 수요일은 국군교도소에서 온 수련생들이 예약순서와 대기자와 관계없이 최우선 순위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말 급한 환자가 발생했다면 수요일이 아니더라도 국군수도병원으로 가긴 간다.[36] 안 보려야 안 볼 수가 없는 게 사방 천지가 활동복과 사복인 상황에서 갈색, 하늘색의 수형복이나 전투복을 입고 포승줄로 묶인 사람이 들어오고 그 뒤에는 검은색 유틸리티 조끼를 입고 리볼버를 찬 사람이 들어오는데, 기다리느라 지친 병, 간부들이 그 구경거리를 놓칠 리가 없다.[37] 물론 급여 액수는 일반 사병과는 달리 금액이 아주 적은 교도소의 급여 기준을 적용한다.[38] 경우에 따라 경기도남부경찰청 경찰기동대 또는 형사대, 경기남부도경 예하 이천경찰서 형사대나 경찰 지구대/경찰 파출소에 지원요청을 해서 탈옥수를 검거한다.[39] 대한민국 국군에서 사용하는 침대 생산량의 80% 이상을 차지한다.[40] 재건축 전보다 시설이 훨씬 좋아진다.[41] 날짜를 보면 알겠지만 이 날은 국군의 날이다.[42] 어떻게 보면 군사법원(당시는 군법회의)이 이미 민간법원보다 엄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혜화동 무장 탈영병 총격 난동사건이나 총기난사로 3명을 살해한 사건 등 당시 민간 기준으로도 사형이 선고될 만한 사건에도 무기징역이 선고되었다. 지금도 민간인과 군인이 공범인 사건으로 각각 민간법원과 군사법원에서 재판받을 때 군인의 형량이 민간인과 비슷하거나 약간 낮게 나오는 경우가 부지기수다.[43] 해당 작업을 하는 수련생을 '영선 수련생' 이라고 한다.[44] 교도소 내에도 종교활동을 할 수 있도록 교회, 성당, 불당이 있다. 국군교도소에서 신학대 과정을 마치고 목사 시험도 합격했지만 사형수라서 목사는 안 됐고 전도사 직위만 있다.[45] 물론 수련생 중에 깍새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고 집사님이라고 부른다.[46] 김용식이 처음 군교도소에 들어갔을 때는 수감자는 후임보다 못하게 대우받았으며(당시는 후임에게 구타, 가혹행위를 가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때다.) 사형수라는 이유만으로도 교도병들이 들어가 집단 린치하는 시절이기는 했다. 다만 옛날이라고 사형수가 다 얌전했던 것도 아니고 오히려 더 막나가는 경우도 많았고 아무도 건들지 못하는 지금도 모범수로 지내는 것을 보면 그냥 개인 성격 문제인 듯.[47] 해병대 빤스런 사건의 원인 제공자이기도 하다.[48] 실제로 아프다는 핑계로 국군수도병원으로 가서 차량을 타고 탈출할 계획을 세웠는데 이 계획을 종이에 적어 놓는 바람에 방 수색 때 발각당하고 말았다. 헌병들이 계획에 써 있는 장소에 가보니 실제로 조력자가 차를 대기시키고 있었기에 탈옥 계획이 허풍은 아니었다.[49] 대부분의 사람도 마찬가지겠지만 김민찬은 유독 비를 맞는 것을 싫어하였다.[50] 문 소위는 감시장비를 분실했는데 이를 거짓으로 보고하려다 적발당했고 군사장비 분실과 거짓보고 모의 2가지 사유로 보직해임된 상태이다.[51] 게다가 요즘은 의료기술이 발달해서 100세 시대를 넘어선 200세 시대라는 말이 있는 만큼 함부로 이들의 인생을 예측하는 건 더욱 힘들어졌다.[52] 가석방 허용 여부도 여론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조두순은 만기출소인데도 내보내지 말라고 여론의 성화가 엄청났던 선례가 있다. 그리고 가석방에서 수형 태도보다 더 중요하게 보는 게 죄질을 가장 우선으로 본다. 죄질이 나쁘면 교도소 안에서 무슨 착한 짓을 해도 가석방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흉악범 중에서 가석방된 사람이 없는 것. 미국의 경우 역시 그 샤론 테이트 살해 사건에서도 죄질이 가벼운 편에 속한 공범 레슬리 반 호튼 조차 수감된 지 무려 53년 만에 겨우 가석방 될 수 있었다. 직접적인 살인을 한 것도 아니고 일당들 사이에서 서 있기만 한 게 이거다. 린다 카사비앙은 범행을 포기하고 중간에 도망쳤기 때문에 샤론 테이트의 집에 들어가지 않아서 불구속 입건 선에서 끝났다.[53] 다만 악명높던 20세기 남한산성 시절과 달리 현재는 수용자도 적고 시설도 신축하는 등 국군교도소가 다른 민간교도소에 비해서도 나쁘지 않은 상황이라 정말 민간교도소로 옮기는 것이 사형수에게 좋을지는 의문이긴 하다. 반대로 그러니까 민간교도소로 옮기라는 말도 나온다. 우스운 점은 이것이 기사화되었을 때 아군을 죽인 놈들이 무슨 교화냐, 빨리 사형 집행해라/고통받아라 같은 의견이 나오는 유튜브나 포털 사이트 덧글란 등은 정작 임병장 관련 기사에서는 가혹행위에 저항한 용사이니 영웅이다, 석방하라는 말로 가득 차는 곳이다.[54] 다만 여군은 국군교도소에 수감하지 않고 있는데 현재까지 사례가 없긴 하나 여군 사형수가 있다면 그 때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가 있고 (군사정권 시절이긴 하나) 과거에 민간인 사형수를 육군교도소에 수감했다가 사형 집행 당일 민간 구치소로 옮겨 교수형을 집행한 사례가 다수 있어 민간교도소/구치소에 수감했다가 집행 당일에만 형장으로 옮겨 총살형을 집행하면 그만이므로 진짜 이유는 그냥 관리해야 할 수감자가 늘어나는 것 자체가 싫은 것으로 보인다.[55] 사실 민간 구치소/교도소에도 시설 방호를 위한 무장이 갖추어져 있다. 하지만 사형수를 대면해서 쏴죽여야 하니, 교정본부 측에서 반대할만한 일이다.[56] 지적장애인 중에서 현역병 복무를 하게 된 경우는 병무청에서 장애가 걸러지지 않았거나 장애가 있는 것을 확인해도 3급 현역 판정을 받은 사례이다. 병역판정검사규칙에 정도가 심한 지적장애에 3급 판정을 내리는 기준은 없다. 이 경우에는 소아청소년기 장애가 있을 때 3급 판정을 내리도록 되어 있는 기준으로 3급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며, 정도가 심한 자폐성 장애인 중에서도 그대로 현역병 복무를 하게 된 경우도 이것과 비슷하다.[57] 군사법원이나 가정법원에서 군법에 의해 소년보호처분이 내려졌을 경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