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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마사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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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손 마사요시(孫正義, Masayoshi Son)
한국명 손정의(孫正義, Son Jeong-ui)
출생 1957년 8월 11일, 일본 사가현 토스시
본관 일직 손씨
본적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동구 입석동
학력 UC Berkeley 경제학과 학사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1957~1989) →
파일:일본 국기.png 일본국(1990~ )[1], 인터넷[2]
식구 아버지 손삼헌, 어머니 이옥자
동생 손태장(손 타이조)[3]
4형제 중 차남
링크 트위터, 페이스북
재산 2조4600억엔, 한화 약 24조5천억 [4]
1. 개요2. 신조3. 생애
3.1. 소프트뱅크의 창업과 발전
4. 트리비아
4.1. 한국과의 관계4.2.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구단주

1. 개요

일본에서 활동 중인 한국계 일본인 기업인. 소프트뱅크 그룹의 창업자로서 소프트뱅크 그룹 주식회사 대표이사 사장, 소프트뱅크 주식회사 대표 집행역 사장 겸 CEO,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오너 등을 맡고 있다. 참고로 겅호엔테테인먼트의 대표이사 겸 아시안 그루브 주식회사 대표이사이자 사장인 손태장이 손정의의 막냇동생이다.

2018년 9월 포브스에 따르면 24조 5천억원의 재산으로 일본 부자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여담으로 그 정의와 한자도 같다. 정의의 손정의 이런 식으로 말이다.

2. 신조

인생 50년 계획

* 20대에 이름을 날린다.
* 30대에 최소한 1천억 엔의 군자금을 마련한다.
* 40대에 사업에 승부를 건다.
* 50대에 연 1조엔 매출의 사업을 완성한다.
* 60대에 다음 세대에게 사업을 물려준다.

손 마사요시의 어록 중 가장 유명한 '인생 50년 계획'은 그가 19세가 되던 해에 세운 것이다. 경이로운 것은 50대까지 그의 인생이 그가 세운 인생 계획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2016년 7월 현역 은퇴를 철회하고 10년은 더 하고 싶다고(인공지능이 인류 역사상 최대의 패러다임 시프트를 가져오기 때문) 소프트뱅크 주주총회 직전 날에 밝혔고 후임을 퇴임시켰다.# 원래는 60세 생일에 깜짝 은퇴 발표를 계획했었다고 한다.

3. 생애

한국계 일본인 사업가로 재일교포 3세이다. 손마사요시 회장의 아버지 손삼헌은 대구광역시 동구 입석동 128번지[5]에서 태어났다. 당시 할아버지 손종경(1899~1968년)은 벼농사를 짓는 가난한 농민이었는데, 1930년대 일본 육군항공대 비행장을 만들면서 농사 지을 토지를 잃었다고 한다.

그래서 먹고살 길이 막막해지자 돈벌이를 위해 가족을 이끌고 일본으로 향했는데, 광복 이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살림살이는 여전히 어려워 1년 가량 머물다 다시 일본으로 가 큐슈 지역에 정착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일본에서 광산노동자로 일했고, 할머니는 리어카에 음식물 쓰레기를 담아 가축사료로 쓰곤 했는데, 어렸을 때 그는 아버지, 어머니 모두 밖에 나가 일하시느라 잘 볼 수 없었고, 할머니가 끄는 리어카를 타고 놀면서 자랐다고 한다. 손마사요시는 그러한 할머니의 고생 이야기를 하며 공석에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손마사요시 일가가 재산을 불린 것은 그의 부모 대에서였다. 손마사요시의 부친인 손삼헌은 소액 대출업을 했고, 파칭코 사업으로 재산을 불렸다. 부친은 사업 감각이 뛰어났다고 하는데, 한 예로 파칭코 주차장에 유료 낚시터를 만들어 '붉은 잉어를 낚으면 보너스 만엔'이라며 호객을 했는데, 파칭코로 잃은 손님은 낚시에서 돈을 따려 했고 보너스를 딴 손님은 다시 파칭코로 갔다고. 완벽한 무한루프

하지만 그가 10대일 때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되어 피를 토하며 병원에 입원하자, 그는 가족을 지탱하기 위해 사업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어릴 적 꿈은 교사, 화가, 정치인이었지만 일본 내에서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이 심한 직업이기에 상대적으로 차별이 덜한 사업가를 선택했다고. 여담으로 그는 훗날 방송에서 어린 시절 재일교포라고 동네 아이들이 던진 돌에 머리를 맞은 적이 있다는 경험을 밝히기도 했다. 아버지는 그가 한국에서 대통령(?)이 되기를 원했다고.

어머니 이옥자[6]는 한국에서 이주했으며, 근래엔 저명한 나전칠기작가인 길정본의 전문 통역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손정의 회장의 어머니는 롯폰기에서 가정부와 둘이서 생활 중이고 손정의와는 왕래가 적다고 한다. 때문에 손정의와 모친의 사이가 현재는 별로 안 좋은 것 같다는 말도 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입버릇은 '너는 천재다'였다고 한다. 차별에 위축된 아들의 자신감을 키워주기 위해서였는지 어쨌는진 모르지만, 하도 그런 소리를 듣다보니 손정의는 '정말 내가 천재인가'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이 훗날 자신감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사업 제휴를 맺고자 하는 상대방에게 '저는 천재입니다'라고 말하곤 했는데 하도 그러니까 상대방 역시 손정의에게 천재 같은 면이 있어보이는 인상을 받았다고.[7]

여하튼 그렇게 사업가가 되기로 결심하며 주변인들과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여러 생각을 가지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된다(손정의의 표현을 빌리자면 일본을 벗어나 떠돌며, 사업가가 되는 옥을 찾자). 사실 그가 유학을 결심한 배경도 특이한데, 1973년 쿠루메대 부설고교에 들어갔지만 2년 만에 그만둔 손정의는 유학을 결심하지만 막상 가서 뭘 배우면 좋을지 몰라 무작정 도쿄로 상경해 일본 맥도날드 설립자 후지타 덴 회장을 찾아가 수 차례의 문전박대 끝에 간신히 대면하였다. "미래에 세계적 CEO가 되려면 뭘 배워야 하느냐?"는 그의 질문에 후지타는 "컴퓨터 관련을 공부하도록"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후에 사업으로 크게 성공하여 후지타 덴을 식사에 초대했고, 당시의 이야기를 꺼내자 '그때 그 고등학생이 자네였나'고 놀라며 기뻐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후지타 덴이 손정의 회사측에게서 컴퓨터 300대를 발주하는 것으로 마무리.

그렇게 영감을 얻은 그는 도미하여 홀리 네임즈 칼리지의 ESL 과정에 다니고, 후에 2년제 대학교인 홀리 네임즈 칼리지를 졸업하고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 경제학부 3학년에 편입하여 경제학과 컴퓨터과학을 공부하며 1980년 경제학 학사를 땄고, 동시에 경제적 독립을 위해 마이크로칩을 활용한 번역기를 만들어 1980년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 유니손월드라는 벤처기업을 설립하는 등 본인이 직접 특허를 SHARP에게 팔아 사업 밑천을 마련했다고 한다.

3.1. 소프트뱅크의 창업과 발전

1980년, 그는 높은 성적 덕에 모교인 UC버클리는 물론 하버드·스탠퍼드·MIT 같은 학교들로부터 대학원에 진학하여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할 수 있는 제안을 받았지만 졸업만 마치면 다시 일본으로 돌아오겠다는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자신이 19세때 세웠던 인생 50년 계획의 첫 단추를 꿰기 위해 그해 3월, 다시 일본으로 돌아온다. 미국에서 운영하던 사업 '유니슨 월드'는 친구이자 동업자였던 '홍 루'[8]에게 넘겼다.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1년 6개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신의 일생을 걸 40여개의 사업 아이템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역시나 소프트웨어 산업. 그는 소프트웨어를 직접 개발할 수도 있었지만, 이미 소프트웨어 시장은 미국의 거대 개발업체들이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었기에 그는 소프트웨어 개발 대신에 인프라(유통)를 택한다. 결과적으로 그의 선택은 매우 현명했다.

1981년 9월, 그의 고향과 가까운 후쿠오카 현 오도시로 시에 위치한 허름한 2층 건물에서 직원 2명과 함께 소프트뱅크를 창업, 소프트웨어 유통, 컴퓨터 서적 출판 등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안가 컴퓨터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관련 제품 전시회인 ‘컴덱스(COMDEX)’에 출품한 소프트웨어가 ‘대박’을 치는데, 이때부터 일본 벤처기업의 선구자 중 한명으로 승승장구하며 파소나의 남부 야스유키, H·I·S의 사와다 히데오와 함께 벤처 삼총사라고 불리기도 했다.

1983년 봄에 그는 몸에 이상을 느끼자 회사 건강검진에서 직원들과 같이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만성간염 판정을 받아 5년의 생존기간 판정을 받을 만큼 상태가 심각했다. 그는 병상에서 10대 시절 자신에게 큰 감명을 주었던 메이지 유신의 주역, 사카모토 료마의 삶을 각색한 역사소설 '료마가 간다'를 다시 읽게 된다.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메이지 시대가 오기 불과 2개월 전 암살을 당해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꽃같은 생을 마친 료마를 보며 자신도 "남은 생존기간 동안 무엇인가 인생을 불태울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결론을 내려, 다시 삶의 의지를 불태우고 극적으로 건강을 되찾아 1986년 5월, 회사로 복귀했다. 그 기간동안 회사는 고객들과 거래처 등에게 신뢰를 잃었고, 신뢰해 오던 직원 20명이 동시에 사표를 내고 회사를 나가서 따로 회사를 차렸을 만큼 사원들의 배신과 불신도 있었기에[9] 소프트뱅크는 망해가기 일보 직전에 상태였지만, 그는 회사를 정상화시킨다. 미국의 거대 소프트웨어 업체들과의 긴밀한 제휴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이다. 그는 당시 벤처기업에 머물렀던 마이크로소프트와 노벨, 시스코 시스템즈 등을 발굴했다. 「PC계의 천재」라고 불린 아스키의 니시 카즈히코[10] 대비되어 「PC계의 신동」이라고 불리던 시기도 있었다. 또 80년대에는 니시 카즈히코가 아시아의 빌 게이츠라고 불렸지만, 90년대 이후에는 이 호칭이 손마사요시에게 넘어간다.

90년대 들어서는 기존 사업에서 더 나아가 공격적이고 미래지향적인 M&A를 통해 엄청난 성공을 이루었다. 투자가는 아니지만 일본의 워렌 버핏이라 불릴 정도로 먼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 탁월하다. 투자한 기업들은 다음과 같다.

이 외에도 한국 기업인 쿠팡 등 앞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스타트업 기업에게 막대한 투자를 하는 중이며, 향후 회사가 나아갈 방향에 꼭 필요한 기업은 조금 무리를 하고서라도 인수하는 편이다. 그 중 성공적 인수는 바로 2006년 이뤄진 소프트뱅크 모바일의 전신인 보다폰 재팬이며, 현재는 더 큰 미국 모바일 시장 석권을 위해 업계 3위인 스프린트 코퍼레이션을 인수하여 열심히 달리는 중이다. 다만 T-모바일과의 인수합병이 틀어지고 실적이 나빠지는 등 2010년대 기준으론 고전 중이다(...). 이게 다 망할 언락 때문이다. 소뱅과 스프린트는 언락을 더럽게 안 해주기로 유명하다. 이 나쁜 것들

1990년대~2000대 초반 IT버블 때는 자산이 100억 달러를 훌쩍 넘으며 일본최고갑부로 알려지기도 했다. 허나 버블 붕괴 후 11억 달러까지 줄어들었다. 후에 19억 달러로 다시 늘어났다. 붕괴 당시엔 시가총액의 90% 이상이 증발한 셈인데(...)[13] 그래도 부자인 게 함정 이때 언론에선 그를 손가락질하며 경영능력에 의구심을 품기도 했지만, 이러한 언론의 혹평을 이겨내고 과감한 투자와 사업센스로 다시 기업을 일으켜세운다. 당시 손정의는 몸을 피하기보단 주주를 회사로 불러 설득 작업에 나섰는데, 한 거물 투자가가 설명을 듣고 "내 돈을 되찾을 수 있을진 모르겠으나, 당신은 믿을 수 있겠다"라며 돌아간 일화는 나름 유명하다.

2010년 6월 15일, 소프트뱅크 30주년을 맞는 주주총회에서 '소프트뱅크 향후 30주년 비전 발표회'가 있었다. 손정의의 철학과 소프트뱅크의 역사를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손 마사요시가 지금까지 살아온 자취를 느낄 수 있는 감동적인 발표이기에 관심있는 위키니트들은 일독을 권한다. 소프트뱅크 향후 30주년 비전 발표 영상, 이후 책으로도 나왔다.

2011년 도호쿠 대지진이 터지며 연쇄적으로 일어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일본에서 원전에 대한 반대여론이 높아지자, 탈 원전 구상을 내놓고 태양광발전 등 자연에너지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공익과 부합되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냈다는 점에서 손 마사요시의 무서움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간 나오토 총리가 탈 원전 선언을 하면서 마사요시의 탈 원전 구상도 더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2019년 현재 일본은 에너지생산에 있어 자연에너지(수력, 풍력, 파력, 조력, 태양에너지)가 원자력 발전소 대비의 효율이 상당히 떨어져 다시 원자력 발전소로 회귀 중이다.

2011년 5월 31일 KT 일본기업 전산 데이터들을 부산 근교로 옮긴다고 발표했다. 정확히는 김해시 구산동의 KT 연수원. 김해국제공항 등 교통시설에 주목한 듯하다.

2011년 9월 15일부터 중앙일보에서 창간 46주년을 기념하여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삶과 경영이라는 제목으로 손 마사요시의 삶과 소프트뱅크의 성장기에 대하여 일정기간 연재하였다.

2014년 기준으로 소프트뱅크의 주식 19.26%를 보유한 최대주주이며, 일본내에서도 손꼽히는 자산가로 알려져있다. 포브스에서 조사한 세계 억만장자 순위에 따르면 2014년에는 일본 2위, 전 세계 45위. 그리고 2014년 9월 중국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가 19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돌풍을 일으키며 데뷔하면서 일본 최고 갑부의 자리(약 17조 2천억)에 다시 오르기도 했다. 2000년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과 만난 후 소프트뱅크가 2000만 달러(약 207억원)를 알리바바에 투자하도록 결정했는데 14년만에 엄청난 수익을 올린 셈이다.

2014년에 34억 달러를 들여 드림웍스를 매입하려고 하였으나 실패했고, 대신 레전더리 픽처스에 2억5천만 달러를 투자했다. 참고로 여긴 영화 인터스텔라를 만든 곳이다.

2019년 기준으로 사실상 손정의는 우버를 중심으로 하는 차량공유 시장의 지배자가 되었다. 2017년 우버에 92억 달러를 투자해서 최대주주가 된 것을 시작으로 중국, 인도, 동남아권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달리는 차량공유 업체들에 356억달러라는 막대한 돈을 투자하여 이들 기업들의 최대주주가 된 것이다. 사실상 대부분의 차량공유 기업들에서 최대주주 또는 2대주주가 된 손정의는 최근 이들 업체들의 해외사업 진출에 영향력을 행사해 불필요한 경쟁을 줄이고 각 기업들이 모국에서 독점시장을 구축하도록 지휘했다.[14]

이러한 행보는 이전부터 자율주행차에 대한 관심을 많이 표명한 손정의가 본격적으로 향후 자율주행차 시장의 근간이 될 가능성이 있는 차량공유 업체들을 손에 쥠으로써, 이후 발전할 시장에 대한 선점효과를 누리겠다는 계산이 깔려있는게 아니냐는 분석으로 이어지고 있다.

4. 트리비아

  • 소프트뱅크를 창립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83년에 간염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이를 이겨낸 적도 있다. 이때 그는 가족과 함께 아이들의 미소를 보며 병마를 이겨냈는데, 때문에 병을 완치한 이후 그는 사업의 가치관이 바뀌었다며, '어떻게 하면 좀 더 이 아이들의 미소를 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좀 더 이 아이들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를 사업의 1순위로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 상술된 투병 도중 읽은 손자병법에서 엄선한 14개 문자에 본인이 직접 더한 11개 문자를 조합한 25개 문자로 구성된 일종의 사업 전략인 '제곱법칙'이란게 있다. 어록이 흔히 그렇듯 얼핏 보면 말장난 같기도 하지만, 그가 2010년 다음 세대 경영 지도자를 육성하기 위해 설립한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 개교식 특별 강의에서도 언급할 정도로 그에겐 나름 가치가 있는 문장인 모양이다.#
  • 일본 내에서만 사용되던 갈라파고스화 요소였던 이모지를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도록 퍼뜨린 장본인 중 한명이다. 항목 참조.
  • 트위터리안이 그의 대머리를 두고 '머리카락의 후퇴가 심각하다'는 드립을 친 적이 있는데 이에 대해 '머리카락이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전진하는 것이다'원본는 비범한 트윗을 올려 약 4만건의 리트윗을 기록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15] 「나」에 머리카락은 포함되지 않는거로군. 손 마사요시는 자신의 트위터 어카운트에 자사에 대한 소식들, 소프트뱅크와 관련된 여러 트윗들에 대한 리트윗들, 그리고 명대사급이거나 상당히 비범한 트윗들을 자주는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올린다. 트윗이 올라갈 때마다 매스컴의 주목을 받는건 물론, 일본 내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어서 무려 250만(!)이 넘는 팔로워들이 있으니 한번 방문해보자. 손 마사요시의 트위터.
  • 만화 "정의는 나의 것"의 등장인물 스미코가 존경하는 인물이다. 스미코 曰 "내가 존경할만한 사람은 손마사요시 뿐이야".
  • 메이지유신의 주역 중 한명인 사카모토 료마빠로 알려져있다. 발표회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다.
  • 2011년 도호쿠 대지진의 피해복구를 위해 일본 적십자사에 100억엔을 기부했다. 일본 적십자사가 모은 지진구호기금이 700억엔 정도라고 하는데 손 마사요시 혼자서 1/7을 책임진 셈. 그리고 상술했듯 이후 탈원전을 기치로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된다.
  • 2011년 일본의 모 여론조사 기관에서 실시한 '일본 연예인, 유명인 중 총리에 가장 어울리는 인물' 조사에서 15.8%의 지지를 받아 2위로 뽑히기도 했다. 1위는 18%를 받은 코미디언 겸 영화감독 기타노 타케시.
  • 2016년 블룸버그가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Most Influential) 50인’ 명단에서 25위에 오르기도 했다.
  • 중국 웹사이트에서는 손정의의 동생인 손태정이 화교라고 소문을 퍼트렸으나 전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손자병법에서 나오는 손씨가 아닌 일직 손씨다.

4.1. 한국과의 관계

  • 어릴 땐 한동안 재일교포로서 받은 차별 때문에 이름도 일본식으로 쓰며 꽁꽁 숨어지냈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콤플렉스를 더더욱 키울 뿐이었단걸 깨닫고, 아버지가 입원하시고 본격적으로 사업가가 되기로 결심한 이후 미국 유학을 가기 전 할머니에게 부모 고향에 한번 데려가달라고 부탁했고, 10대였던 1972년 가을 할머니와 함께 생애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고 한다. 당시 손정의는 자신이 사업가가 된 계기와 시골이었던 당시 부친 고향의 기억을 2010년 6월 소프트뱅크 '신 30년 비전 발표회'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
  • 이후 손 회장은 1974년 자신의 성을 '야스모토'(安本)에서 '손'(孫)으로 바꿨다. 미국 유학 시절 어학원과 UC버클리를 같이 다닌 2살 연상의 오노 마사미 씨와 결혼하였으며 이후 두 딸을 낳았다. 하지만 역시 일본에서 외국인으로 사업을 하긴 여러 애로 사항이 많았고, 결국 1990년엔 일본으로 귀화했는데, 당시 일본에는 손씨가 없다는 이유[16]로 귀화를 받아주지 않자,[17] 아내를 손씨로 바꾸는 편법을 써서 손씨 성을 지키며 귀화했다. 사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론 일본도 결혼 후 부인이 남편 성을 따르는[18] 서구식 사고가 일반적[19]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거기에 일본은 성을 새로 만드는 게 가능하기에, 아내를 손씨로 바꾸는 방법을 실행할 수 있었다. 고로 이후부턴 한국계 일본인이 되었다.[20]
  • 아무래도 재일교포 출신 중 제일 대성한 사람이다 보니 자연히 한국말을 잘 하느냐 또한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거의) 할 수 없다. 그래도 상대방이 말하면 어느 정도 알아는 듣는다고. 어릴 적엔 재일교포로서 당한 차별 때문인지 본인 스스로도 한국 출신에 대한 것을 철저히 숨기고 살아왔기 때문에 언어를 습득할 기회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을 미워하거나 그런 건 전혀 아니며, 그가 성씨를 한국성인 "손"으로 한건 할아버지, 아버지의 성을 버리고 싶지 않아서라고 밝히기도 했다.
  • 한국에 대한 애정보다 확실해 보이는 것은 재일교포들에 대한 동질감과 애정이다. 자신처럼 일본에서 차별당하고 살고 있는 재일교포들에게 깊은 동질감과 애정을 느끼고 있는 듯 하다. 자신이 성을 다시 한국 성씨인 손으로 바꾼 이유도 한국 그 자체에 대한 애정보다는 재일교포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라는 의도가 있었다고 한다.
  • 2011년 1월 카라 해체설과 관련해서 트위터에 카라가 좋다. 카라의 해체를 반대한다는 글을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당시 카라는 소프트뱅크의 경쟁회사 au의 모델. 이에 대해 손정의는 "그런거에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라는 답변을 남겼다.
  • 2011년부터 몇년째 대구 동구청장과 공무원들이 무료로 손정의의 조상묘를 벌초해주고 있다. 구청은 손정의의 고향이 대구라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벌초해주니 어쩌니 하는 소릴 했는데, 주변에서는 딱 봐도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한 목적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연장선상인지 2010년에는 초청장도 보내보고, 2012년에는 벌초장면을 촬영한 DVD까지 선물로 보냈지만 아무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22]
  • 한때 한국 모 언론에서 아이폰은 원래 손정의의 아이디어였다는 기사를 내서 수많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한 적이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해당 기사는 단순한 대화 내용을 전한 것인데다가 출처가 불분명하고, 기사의 대화 내용을 보면 스티브 잡스도 "외부에서 그런 얘기를 한 것은 마사(손 마사요시)가 처음이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 지금 여러 방면으로 생각 중이다."라고 했다고 하니 이미 애플도 내부에선 그런 식의 아이디어가 나와 있었다는게 된다. 게다가 아이폰 발표에선 iPhone OS 개발에만 수년을 투자했다고 하니 사실 손정의가 아이폰의 아이디어를 제공했다는건 사실이 아닐 확률이 높다. 낚이지 말자.[23][24] 다만, 손정의가 'iPhone for everybody'라는 정책을 펼쳐, 갈라파고스화가 심한 일본 휴대폰 시장에 아이폰 보급에 큰 기여를 한 것은 맞다.
  • 2010년대에도 본인의 신재생에너지 사업 관련해서 한국에 내한해 이재용 등 여러 기업가, 정치인들과 만남을 가지기도 했다. 쿠팡 등 한국 신생 기업에 대한 투자와 대기업들과의 제휴도 활발하다.

4.2.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구단주

야구에 대한 애정이 정말 크다. 슈퍼마켓 체인 다이에가 운영하던 다이에 호크스를 인수하면서 2005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재탄생시켰고 팀은 일본 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투자 능력을 자랑한다.

과거엔 2003년 월드 시리즈에서 플로리다 말린스를 우승으로 이끌고, 다승왕 1회와 올스타 경력까지 가졌던 브래드 페니를 영입하여 야구팬들에게 충공깽을 선사하기도 있다.

비싼 돈을 주고 외국인 선수를 데려왔는데 성적이 시원찮으면 계약기간 연봉 보장을 하더라도 방출크리를 시전하는 건 기본이다. 이범호의 경우에도 3년 계약이었는데 1년 부진하자 방출시켰는데 잔여 연봉은 모두 챙겨줬다고 한다.

이런 그의 기대에 보답하듯 2011년 11월 20일 2011년 일본시리즈에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우승했다. 그리고 2014년 일본시리즈2015년 일본시리즈에서도 2연패를 달성했다. 공교롭게도, 2015년 일본시리즈 우승의 주역이자 MVP는 바로 조선의 4번타자 이대호였다. 심지어, 트로이 닐 이후 15년만에 등장한 외국인 출신 MVP이기도 하다.

해 건너 2017년 일본시리즈에서도 상대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에게 시리즈 전적 4승 2패로 이기면서 우승하며 큐슈의 왕자팀으로 입지를 확고히 했다. 그리고; 2018년 일본시리즈에서 일본시리즈에서 처음 만난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게 승리를 거두며 2번째 일본시리즈 2연패를 완수했다.

한때 현대 유니콘스의 매각 당시 카더라 통신으로 현대 유니콘스가 농협-STX-KT에게 모두 매각을 거절당한 이후 손정의와 접촉한 적도 있으나, 당시 기업 매각건으로 정신이 없었던지라 무산되었다는 이야기가 떠돌기도 했다. 신빙성은 의심되지만 혹시나 사실이었다면 롯데에 이어 한일 양국 프로야구 스포츠구단을 가진 기업이 탄생했을지도 모른다.

2018년 1월 13일 김성근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코치 고문에 임명되었는데, 이는 재일 한국인 출신이라는 것에 동질감을 느낀 손 회장의 의향이 반영된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추측이다.

구단 인수 당시 오 사다하루 당시 감독에게 팀의 세계제일을 목표로 내걸었다. 일본제일을 목표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그 말을 들은 왕감독은 자신들이 지향해 온 목표가 상당히 작은 것으로 느껴졌다고 한다.

야구에 관한 것은 모두 맡긴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으며 현장에 간섭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그렇게 큰 돈을 투자하고 참견하지 않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세인들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그리고 "큐슈로 벌어 들인 돈은 큐슈에서 사용하십시오"라고 언급한 적 있는데 돈을 위해 야구를 한다는 발상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구단주다.

경기 직관 시 열정적으로 팀을 응원한다. 직접 깃발을 흔들거나 억울해 하거나 고함치기도 하며 아주 정직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구단주다. 우승 축하 파티에서 선수들 사이에 껴서 샴페인 세례를 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우승 기념 후쿠오카 카퍼레이드, 미야자키 스프링캠프에도 항상 참석한다. 원로 야구인 노무라 카츠야는 "소프트뱅크의 MVP는 감독이 아니라 손정의 구단주입니다" 라고 극찬하였다.


[1] 1990년에 귀화가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있다.[2] 본인이 직접 이야기한 내용. 포털 사이트 등에서 검색하면 나온다.[3] 겅호엔터테인먼트 회장이다. 2017년 현재는 싱가포르로 이주하여 사업을 하고 있다.[4] 2018년 기준 일본 1위, 세계순위 39위이다. 일본 2위는 유니클로의 창업자인 야나이 타다시[5] 동구 지역엔 손정의 친인척들이 살고 있으며 인근의 도동에는 일직손씨 집성촌도 형성되어 있다.[6] 일본명 国本玉子(쿠니모토 타마코)[7] 출처: 손정의-인터넷 제국의 지배자.[8] 후에 그는 중국의 대표적 통신기기 제조업체인 UT스타컴을 창업한다.[9] 손정의는 굴욕감을 누르며 그들을 말렸지만, 결국에는 나갔다. 그리고 이 사원들이 차렸던 회사는 얼마 못 가 문을 닫았다고 한다.[10] 아스키 출판사의 설립자로 빌 게이츠와 제휴하여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을 일본에서 독점적으로 판매하였다. MS가 MS-DOS 이전 BASIC이 주력 상품일때 일본 시장을 개척하였는데, 당시 MS 매출의 60% 정도가 일본 시장에서 나왔을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빌 게이츠는 돈 벌어주니 당연히 자서전에서도 그를 K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각별하게 대했지만, 이후 손정의에게 사업에서 밀리고 개인의 사치스러운 생활 등이 겹쳐 몰락하고 만다. 참고로 빌 게이츠는 손정의와도 친구다. 이후 카즈히코는 사업을 접고 현재는 교육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11] 2천만 달러를 투자하고 이후 추가로 몇 차례 더 투자하여 현재 알리바바 지분의 30% 정도를 보유하고 있다. 대략 15년 전 투자한 2천만 달러가 현재는 수백억달러로 불어났다. 대략 수천배~1만배 이상 불린셈이다.[12] 사실 슈퍼셀 지분은 더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었지만 손정의가 현재 미국 모바일 시장을 목표로 인수한 스프린트의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판매했다는 이야기도 있었으나 현재로는 ARM Holdings 인수를 위한 자금 확보라는 것이 정설.[13] 당시 버블 거품의 직격탄을 맞은 1위는 일년만에 세계 갑부 7위에서 100위권으로 떨어진 브라질의 에이케 바티스타 EBX 그룹 회장. 이 쪽은 무려 99.5%다. 다만 손정의와 달리 바티스타는 정수기만한 유전을 한강만하다고 사기치다가 망해서(...) 재기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14] 실제로 우버는 동남아시아 1위 업체인 그랩에 점유율을 매각하고 해당 지역에서 철수했는데, 이는 손정의가 뒤에서 주도한 것이다.[15] 다만 이 말을 손정의가 처음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미 손정의가 해당 트윗을 하기 약 1년 전쯤인 2012년 3월에 일본 네티즌들 사이에서 한차례 유행했었다고. '1' '2'[16] 정확히는 손씨는 일본인의 성씨로써 걸맞지 않다(相応しくない)라는 이유[17] 다만 현재는 법률이 바뀌어서 일본식 성으로 바꾸지 않고도 귀화가 가능하다.[18] 정확하겐 남편이나 아내 성 둘 중 아무거나 원하는 성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사회 분위기상 남편 성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은 게 사실이긴 하지만. 데릴사위 같이 아내 집안의 자손을 이어야 하는 경우는 아내의 성을 따른다. 물론 일본인끼리의 결혼은 성을 통일하는 것이 법률로 정해져 있지만, 일본인과 외국인이 결혼하면 성을 바꾸는 건 강제가 아닌 자유다. 단 한번 바꾸면 간단히 되돌릴 수 없다.[19] 일본인끼리의 결혼의 경우에는 일반적인 경향이 아니라 법률로 정해져 있는 강제사항이다.[20] 범주:한국계동포 韓國系 同胞,코리안 디아스포라 Korean diaspora.[21] 손정의와 빌 게이츠는 친구이며 함께 논의하기 위해 데려갔다고 한다.[22] 사실 이 행위는 손정의가 심각한 모욕으로 생각해도 할 말 없는 것이기도 하다. 손정의 일가가 무일푼으로 일본으로 떠났을 때부터 누군가 묘역 관리를 꾸준히 해 주었다면 손정의가 매우 고맙게 여기고 경우에 따라 상당한 보상을 해 주었을 것임을 쉽게 예측할 수 있으나, 해당 벌초는 손정의가 일본의 대재벌로 성장한 후 한국에서조차 다 알려진 후에 약 몇 년 정도 한 것일 뿐이다. 심지어 벌초 영상까지 보내 생색을 내었으니 이는 당사자에게 시체팔이 라는 인상을 주기 딱 좋고 심지어 이를 보는 한국 사람들조차 투자유치를 위한 시체팔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기사 및 댓글 참조) 산전수전 다 겪고, 온갖 사람 다 만나본 손정의가 이걸 가지고 한국을 싫어하거나 배척하진 않겠지만 개인적으로 엄청난 불쾌감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23] 그 이전에도 한국에선 세계 최초의 스마트폰은 삼성 MITS이고, 앱스토어 모델의 수익 구조도 삼성의 모 부회장이 먼저 생각해두었던 것인데 구글과 애플에게 뺏겼다는 식의 기사가 올라와 삼성빠들을 감동먹인 적이 있었다. 저걸 지금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들이 많다.[24] 사실 대단할 것이 없는게, 아이팟과 휴대전화의 결합 아이디어는 공공연한 것이었다. MP3플레이어와 휴대전화 두개를 같이 들고 다니기 불편했던 구매자의 필연적인 '니즈'였던 것. 이 시기에도 휴대전화의 작은 용량에 음악 파일을 넣어서 재생은 가능했기에 이미 순수 MP3 플레이어에서 통합기기로 세대교체가 되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