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5 21:15:26

피터 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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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틸
일론 머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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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780556><colcolor=#fff> 페이팔 공동창업자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 창업회장
피터 안드레아스 틸

Peter Andreas Thiel
파일:l9GgEjL.jpg
출생 1967년 10월 11일 ([age(1967-10-11)]세)
서독 헤센 프랑크푸르트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1] |
[[뉴질랜드|]][[틀:국기|]][[틀:국기|]][2]
직업 기업인, 투자자, 작가
현직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 (의장 / 2003년~ )
파운더스 펀드 (파트너 / 2005년~ )
발라 벤처 (파트너 / 2010년~ )
미스릴 캐피탈 (파트너 / 2012년~ )
주요 경력 페이팔 (창업자 / 1998~2002년)
클라리엄 캐피탈 (창업자 / 2002~2013년)
페이스북 (이사 / 2004~2022년)
Y Combinator (파트타임 파트너 / 2015~2017년)
학력 스탠퍼드 대학교 (철학 / 학사)
스탠퍼드 대학교 (법학 / J.D.)
종교 기독교(개신교)[3]
소속 정당

재산 70억 달러 (2024년 / 포브스)
SNS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1. 개요2. 생애3. 성향4. 여담5. 어록

[clearfix]

1. 개요

미국뉴질랜드 국적의 기업인이자 벤처투자자.

2. 생애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으며, 부친은 화학 공학자였다. 출생 직후 미국 클리블랜드로 건너갔으며, 부친를 따라서 나미비아에서 유년기을 보낸 뒤 10대가 되면서 가정이 캘리포니아로 터를 잡았다. 실리콘밸리 한복판인 포스터 시티에서 10대를 보낸 탓에, 학교에서는 항상 치열한 경쟁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탓에 당시에 자유를 갈망하며, 자유주의와 반공주의 사상에 빠진 것과 더불어 반지의 제왕을 비롯한 판타디 및 공상과학 소설로 고단했던 나날을 견뎠다고 한다.

1989년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철학 학위를 수여받은 뒤, 1992년에 법대를 졸업했다.

졸업 후에는 남부로 건너가 연방항소법원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뉴욕에서 설리번&크롬웰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중, 정확히 입사 후 7개월 하고도 3일이 지난 시점에서 퇴사했다. 이후 크레디트스위스에서 파생상품 트레이더라는 새로운 직업에 도전하면서, 미국 교육부 비서실의 대변인으로도 활동했으나, 만족하지 못하고 1996년에 서부로 다시 돌아왔다.

서부에 돌아온 뒤로는 인터넷PC의 가능성을 보고, 본인의 이름을 딴 틸 캐피탈 매니지먼트를 설립한 이후 루크 노섹의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비록 노섹의 사업은 실패했으나, 그의 친구였던 맥스 레브친을 만나게 된 이후 삼인방은 필드링크라는 스타트업을 설립한다. 피봇 과정을 거치며 아이디어는 온라인 결제로 구체화되었고, 1998년 사명을 컨피니티로 바꾼 뒤 1999년에 출시한 서비스가 바로 페이팔이다.

2000년 3월에는 같은 건물에서 비슷한 제품으로 출혈 경쟁 중이던 일론 머스크의 X.com과 전략적인 합병을 하여, 사명을 페이팔로 변경했다. 대신 경영권은 머스크가 가져갔다. 하지만 합병 이후에도 개발 방식, 보안, 결제 수수료 등의 문제로 인해 내부는 와해되었고, 팀원들의 전폭적인 신임을 얻은 틸은 2대 CEO로 임명되었다. 2대 CEO로서 2002년에 페이팔을 나스닥에 상장시킨 데 이어, 이베이에 기업을 15억 달러라는 거금으로 매각하는 데 성공했다. 지분 3.7%를 쥐고 있던 틸도 5,500만 달러를 확보하며 백만장자가 되었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틸은 실리콘밸리 연쇄 거물 창업 집단인 페이팔 마피아의 대부로 거듭나며 2000년대 업계를 주도하게 된다.

백만장자가 돤 틸은 2002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클라리엄 캐피탈이라는 헤지펀드를 창업하면서, 투자자로 전업에 나섰다.[4] 주로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글로벌 매크로 전략을 사용했다.

9.11 테러로 인하여 안보 위기를 느낀 뒤, 사업의 기회를 포착한 틸은 2003년 5월,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라는 빅 데이터 프로세싱 업체를 창업했다. 창업 직후부터 CIA의 수주 및 투자를 유치했으며, 주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의 기관들을 대상으로 데이터 플랫폼 구축을 도와주는 업체다. 거시적인 창업 구상은 틸이 진행했으나, 알렉스 카프와 스티븐 코헨이라는 적임자를 찾은 뒤에는 의장 역할에만 집중하고 있다.[5]

2004년 6월에는 페이팔 시절 동료였던 리드 호프먼의 소개로 시드 라운드에서 페이스북의 지분 7%를 50만 달러에 확보하며, 페이스북의 첫 번째 외부 투자자로 참여했다.[6][7]

2005년 페이팔 공동창업자 루크 노섹, 켄 하우리 등과 함께 파운더스 펀드라는 벤처캐피탈을 설립했다. 주로 초기 단계 라운드에서 투자를 진행한다.[8]

2008년에는 클라이엄의 본사를 뉴욕으로 옮겼으며, 80억 달러의 자산을 운용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대침체로 인하여 막대한 손실을 보아 2011년 4억달러 이하로 쪼그라들고 2013년 펀드를 청산했다.

2011년 5월, '틸 장학금'이라는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해당 프로그램에 선발된 22세 이하의 학생은 2년간 대학을 떠난 뒤, 상금 10만 달러로 창업에 매진해야되는 조건이 붙는다. 장학금 뿐만 아니라 Y Combinator처럼 컨설팅과 인맥 소개도 지원해준다고 한다. 틸은 대학의 교육이 날이 갈수록 쓸모 없어진다고 생각하며, 학업으로 인해 불어나는 학자금 대출의 폐해를 부정적으로 여긴다.[9]

2012년 발라 벤처를 창업했다. 파운더스 펀드와는 다르게 미국 바깥에 있는 벤처 기업들에 투자한다.

2012년 6월, 미스릴 캐피탈을 창업했다. 규모가 성숙해진 스타트업 전문으로 후기 펀딩에 참여한다.

2015년, 샘 올트먼과의 인연을 계기로 2017년까지 Y Combinator의 파트타임 파트너로 일했다.

2021년 5월, 암호화폐 거래소인 Bullish Global에 투자함을 밝혔다.# 그의 저서 "제로 투 원"에서 페이팔을 창업했을때 목표가 달러 등 정부의 지배를 받는 법정 화폐가 아닌 탈 정부 화폐를 만들고자 하였다고 하는데 이를 본격적으로 실현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특히 Bullish Global 은 블록체인 개발사인 Block.one에서 개발하는 거래소로서 EOSIO를 이용한 private blockchain에 올라가 구동되면서 거래의 주요 회계사항은 public blockchain인 EOS mainnet 에 기록함으로서 회계투명성과 성능 모두를 잡겠다는 구도이다. 이때 EOS mainnet 위에 페그된 비트코인과 USD로 거래가 이루워진다. 때문에 비트코인의 최대 단점인 전송 속도를 0.5초로 단축시키고 전송 수수료를 거의 무료 수준으로 다운 시킬 수 있다. 이는 페이팔 창업시 피터틸의 꿈이었던 탈중앙화된 화폐로 비트코인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실현시키는 것이다.

2022년 2월, 메타의 연례 주주총회를 앞두고 이사 연임을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2022년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메타 이사회와 정치적인 면에서 충돌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2022년 4월 56억 7,500만 달러의 기업 가치 평가를 받은 보링 컴퍼니의 시리즈 C 펀딩에 파운더스 펀드를 통해 투자했다.

3. 성향

정치적 성향은 공화당 지지자이면서 우파 자유지상주의이다. 남서아프리카 위임통치령(現 나미비아)[10]에 거주하면서 교복을 입고 체벌을 하는 학교를 다녔는데, 여기에서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11][12] 위치 특성상 진보주의 성향이 굉장히 강한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공공연히 자유주의자임을 드러내고 다녔고 스탠포드의 진보문화에 도전하는 보수주의 대학 신문 <스탠포드 리뷰>를 창간했다. <스탠포드 리뷰>를 함께 창간한 멤버들은 후에 페이팔에 합류하여 페이팔 마피아가 되기도 하였다. 대표적으로 데이비드 삭스, 키스 라보이스는 <스탠포드 리뷰>의 창간 멤버였고 이후 페이팔에 합류하였으며 페이팔 매각 후 각각 기업용 SNS '야머'와 부동산 중개 서비스 오픈도어를 창업하였다.[13] 피터 틸은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데이비드 색스와 함께 책 <다양성이라는 미신(The Diversity Myth)>[14]을 써서 스탠포드 교육 과정이 백인 남성들 위주로 편성되었다고 주장하는 당시 진보파 세력과 맞섰으며 심지어는 그러한 진보 계열 인문학 강의를 폐강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15]

2016년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 기조 연설에서 도널드 트럼프 지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하면서, 자신이 게이임을 커밍아웃 하였다. 근본주의 기독교 세력의 영향으로 보수적이면 무조건 호모포비아 성향일거라는 잘못된 편견이 많은데, 트럼프 본인을 비롯한 많은 보수적 정치인들이 LGBT운동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사실 국민의 인권이야 좌우를 떠나서 보장해야 할 당위가 있는 것이기도 하고, 철저하게 학문적으로만 따져볼 때 보수라고 한다면 자유주의자, 특히 자유지상주의일수록 개인의 삶에 대한 개입(타인에 의한 것이든 정부에 의한 것이든)을 혐오하기 때문에 성소수자 인권을 탄압해야 할 이유가 없으며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억압하기 때문에 호모포비아에 반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들은 대신 성소수자 인권 보장을 위한 운동 역시 반대하겠지만.) 물론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 내에서도 공화당 하면 기독교 근본주의와 결탁한 수구꼴통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공화당 지지자 게이' 그 자체가 놀림거리이긴 하다.

하지만 피터 틸은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자와는 다르다. 앞선 전당대회 기조 연설에서는 미국이 쓸데없이 중동을 침략해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고 비판하며[16] 미군 철수를 외치는 트럼프가 옳다고 하였다. 틸은 기술 신봉자이기도 하여 항상 과학기술을 강조하였고 과학기술이 아닌 전쟁에 돈을 쓰는 것에 대해 여러차례 노골적 비판을 한 인물이다. 또한 평소에도 왜 국민 세금으로 금융업계에 돈을 쏟아 그들을 구제해줘야 하는지 의문이라고도 하였다. 이를 보면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자가 아니라 트럼프라는 새로운 인물, 새로운 체제를 원해서 지지했다고 봐야한다. 어렸을 적 틸은 "Make America Great Again" 구호를 외치며 오일쇼크 이후 힘든 시기 등장한 로널드 레이건의 신문 기사를 모두 스크랩 할 정도의 광팬이긴 했다. 하지만 그 이후 그는 정치적 무신론자와 같은 포지션으로 딱히 정치에는 개입하지 않았으나 아마 트럼프에서 레이건의 모습을 봤으며 그가 실패한 구체제의 개혁을 위한 적합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2020년 미국 대선에는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지지연설이나 후원을 하지 않았고# 2024년 미국 대선에서도 공화당이 미국의 혁신, 중국과의 경쟁 등 굵직한 사안에 관심을 갖기 보다 낙태, 트랜스젠더(성전환자) 학생들의 학교 화장실 사용 제한 등 정치적 올바름 이슈에만 매몰되었다는 이유로 그 어떤 후보에게도 후원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공화당 큰손’ 피터 틸, 내년 美대선 후원 중단 선언한 이유(조선일보, 2023년 4월 27일) 관련 기사#

스스로를 대안우파로 정의한 적은 없지만 여러가지 면에서 대안우파와의 사상적인 접점이 관찰된다. 아인 랜드의 소설 움츠린 아틀라스에나 나올법한 어떤 정치권력의 힘도 닿지 않는 물 위에 떠다니는 수상도시를 진지하게 구상한 적도 있다 앤드류 라이언? 재커리 헤일 컴스탁?, 미국 대안우파들의 사상적 지주인 커티스 야빈[17]의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도 하다.

페이팔 마피아의 일원이자 LinkedIn 창업자이고 스탠포드 시절부터 틸과 친한 사이였던 리드 호프만 또한 스탠포드 때부터 진보 진영이었다. 미국시민자유연맹 등의 진보적 비영리단체에 투자하며 반 트럼프 진영인 와이콤비네이터의 사장 샘 올트먼과도 가까운 사이이며 그 덕분에 와이콤비네이터는 다른 투자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을 파트너로 두지 않지만 유일하게 피터 틸을 예외로 두어 비상근 파트너로 합류시켰다. 이처럼 사업적, 개인적으로 진보 성향의 인물과도 상당히 많이 엮여있고 친밀한 사이로 지내기도 한다. 진보 계열이라 보긴 힘들지만 중도파인 마크 저커버그도 틸의 트럼프 지지 이후 페이스북에서 틸을 해임하라는 실리콘밸리의 많은 구성원들의 주장을 '특정 정치가를 지지한다는 이유만으로 절반에 가까운 사람을 배척한다면 다양성을 논할 수 없다'라며 일단락시켰다.

틸은 자신이 정보기술로 억만장자가 되었음에도, 생산성 측면에서 정보기술은 인류에 제대로 된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다보스 포럼에서 당시 구글 CEO였던 에릭 슈밋의 '컴퓨터 낙관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 적 있다.[A]

프랑크푸르트에서 자란 유아기 시절에 그의 아버지가 호랑이 가죽을 보며 '우리 모두는 죽어'라고 암울하게 말한 것을 그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생물학적 죽음을 기술로서 극복할 수 있는지 여부는 아직도 그의 중요 화두이며, 관련 기업을 설립하고 투자를 계속 하고 있다.[A]

4. 여담

  • 자신이 투자한 페이스북의 설립 과정을 다룬 영화 소셜 네트워크를 보고는 '여러 측면에서 사실과 다르다'고 평했다.
  • 한살때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주했지만 12세까지 가정에서 독일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독일어도 할 줄은 안다. 다만 본인 말로도 12세 수준에 멈춰 있다고 할 정도로 많이 더듬거리는 편이고 고급 어휘는 거의 사용하지 못한다. 억양도 전형적인 미국인 악센트. 대충 B2 - C1 구사자와 유사한 수준이다. 오스트리아에서 군복무까지 하고 미국으로 이민한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반대로 영어가 독일어보다 능숙한 셈.
  • 헐크 호건 섹스 테이프를 유출한 고커 미디어의 소송을 배후에서 조종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고커가 피터 틸을 공개적으로 아우팅한 적이 있기 때문. 이 일로 앙심을 품고 있던 피터 틸은 헐크 호건 섹스 테이프 유출 사건이 터지자 헐크 호건에게 거물 변호사를 붙여서 고커 미디어를 말 그대로 박살 내버린다. 고커가 미국의 대표적인 인터넷 찌라시였기 때문에 후련하다는 반응이 많은 한편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 자산가가 마음만 먹으면 맘에 안 드는 미디어를 파산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는 넷플렉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인 <침묵을 거래하는 손>에서 극명하게 나타나고있다.
    물론 반박도 있는데, 역으로 말하면 피터 틸 정도의 자산가가 아니면, 미들 미디어가 악의적으로 한 사람을 박살내려고 찌라시 보도를 해도 일반인들은 도저히 대응할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찌라시 미디어의 횡포 문제도 있다.
  • 독일계임에도 불구하고 유럽 사회와 유럽연합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부정적이다. 그의 저서 "제로 투 원"에서 유럽중앙은행은 임기응변 외에는 할 줄 아는게 없으며 미국 재무성이 달러화에 'In God, We trust'라고 써놓았듯이 유럽중앙은행도 유로화에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자'라고 써놓는 편이 좋다며 비꼬았다. 유럽인들을 '불명확한 비관주의자'라고 지칭하며 이는 먹고, 마시고, 즐기면서 쇠퇴가 진행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는 '유럽인들이 휴가에 열광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라고 하였다.
  • 미스릴 캐피탈 고문역을 맡고 있던 J.D. 밴스가 2022년 중간선거에 상원의원 후보로 출마하자 슈퍼팩을 출범시켜서 당선을 도왔다.
  • 대표 저서로는 <제로 투 원>이 있다.
  • 2015년 2월 내한해서 컨벤션 센터에서 한국의 창업자들을 상대로 강의를 했다.###


5. 어록

시간이 흐른다고 미래가 되지는 않는다.
경쟁은 패자들이나 하는 것이다.
경쟁이 아닌 독점을 하라.
성공한 기업들은 다들 서로 다르다. 각자의 독특한 문제를 해결하여 독점을 구축한 것이다. 반면에 실패한 기업들은 늘 한결같다. 똑같은 경쟁을 벗어나지 못 한 것이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모든 순간은 단 한번밖에 일어나지 않는다. 앞으로 그 누구도 컴퓨터 OS를 만들어서 제2의 빌 게이츠가 될 수는 없다. 검색 엔진을 만들어서 제2의 래리 페이지세르게이 브린이 될 수도 없으며, 소셜 네트워크를 만들어 제2의 마크 저커버그가 될 수도 없다.

(중략)


기존의 모형을 모방하는 것은 쉽지만 그래봐야 세상은 1에서 n이 될 뿐이다. 그러나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면 세상은 0에서 1이 된다.[21]
창조라는 행위는 단 한 번뿐이며, 창조의 순간도 단 한 번뿐이다. 그 한 번의 창조를 통해 세상에는 낯설고 신선한 무언가가 처음으로 생겨난다.
당신에겐 정말 중요한 진실인데, 남들이 동의해주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22]
양복을 입고 다니는 기술 기업 CEO에게는 투자하지 않는다.[23]
우린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원했지만 결국 얻은 것은 140자 뿐이었다.[24]
저는 게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저는 공화당원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저는 미국인이라는 것이 가장 자랑스럽습니다.[25] #
- 2016년 공화당 전당대회 기조연설 중
제가 어렸을 때 가장 중요한 논쟁거리는 '어떻게 하면 소련을 이길 수 있을까'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승리했죠. 그런데 지금 우리는 '누가 어떤 화장실을 써야 하는가'를 두고 필사적인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게 그렇게 중대한 문제인가요?
이 떠들썩한 선거철이 지나고 언젠가 우리 시대의 역사가 기록되는 시기가 찾아왔을 때 중요해질 논점은 단 하나, 새로운 정치가 너무 늦게 시작되었던 것은 아닐까의 여부일 것입니다.
-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 직후 연설에서


[1] 1978~[2] 2011~[3] # #[4] 운용 수수료 2%와 초과수익 수수료 20%를 가져가는 일반 헤지펀드와 다르게, 운용 수수료를 안 받는 대신 초과수익 수수료를 25% 가져가는 방식으로 펀드를 구성했다.[5] 클라리엄 캐피탈에서의 펀드매니저 역할이 주업에 가까웠다.[6] 2012년과 2016년, 2017년에 도합 11억 달러가 넘는 금액에 매각하여 2,000배가 넘는 수익률을 거뒀다. 페이스북의 창업을 다룬 데이비드 핀처의 영화 소셜 네트워크에서도 이 내용이 드러나 있다.[7] 여담으로 해당 투자금은 페이스북이 6개월 내로 150만 유저를 모으는 것을 조건으로 걸었던 전환사채였다고 한다. 근소한 차이로 목표 달성에 실패했으나, 틸은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시켰다.[8] 페이팔 마피아 동료들이 설립한 스페이스X, 뉴럴링크, 링크드인, 옐프, 야머 등을 비롯하여 에어비앤비, 스트라이프, 리프트, 딥마인드, 스포티파이, 안두릴 인더스트리즈, 누뱅크, 아사나, 쿼라 등에 성공적으로 투자하며 2023년 기준 120억 달러 이상의 보유 자금을 운용하고 있다.[9] 2017년까지 100명 이상의 장학생을 뽑았고, 이들이 창업한 회사의 기업 가치는 10억 달러를 상회한다고 한다. 가장 유명한 사례로 루미나 테크놀로지의 창업자이자 포브스의 최대주주인 오스틴 러셀, 피그마를 창업한 딜런 필드 등이 있다. 2024년 기준으로 피그마 하나만 하더라도 기업가치가 100억 달러에 달한다.[10] 독일 식민지였다.[11] 일론 머스크를 비롯한 대부분의 페이팔 마피아 구성원들은 자유주의자이다.[12] 여성참정권을 실책이라고 언급하거나 자유지상주의과 거리가 먼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는 등의 행태나 각종 극우적인 언행을 볼 때 일반적인 자유지상주의라기보다는 고자유지상주의자(paleolibertarian)에 가깝다. 고자유지상주의는 고보수주의의 하위 분파로 여겨진다.[13] 데이비드 색스는 피터 틸에 이어 <스탠포드 리뷰>의 2대 편집장이 되었다.[14] 국내 미출간[15] 다만 이후 피터 틸은 <스탠포드 리뷰>의 성과가 만족스럽진 않다고 한다. 당시 논쟁이 치열했으나 양쪽 모두에 별 소득은 없었던 참호전과 같은 양상이었기 때문이다.[16] 물론 이는 힐러리 저격이기도 하다. 힐러리는 리비아 침공에 앞장섰으나 지금 리비아는 IS의 훈련기지가 되었다고 언급하였다. 그 전에 침공을 시작했던 부시 또한 비판한 적이 있다.[17] 신반동주의의 창시자. 민주주의는 실패했으며 중세시대 사회구조로 돌아가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 인물이다.[A] 조지 패커, <The Unwinding>[A] 조지 패커, <The Unwinding>[20] 팔란티르 - 천리안 - 빅 데이터 프로세싱, 발라 - 창조 - 벤처캐피탈, 미스릴 - 단단함 - 자산운용.[21] 그의 대표적 저서 제목이 <Zero to One>인 이유[22] 그가 신입사원 채용 면접 때 하던 질문이다.[23] 늘 후줄근한 후드티만 입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했던 마크 저커버그에게 그가 기꺼이 투자했던 사실을 연상시키는 발언이다.[24] 트위터를 의미하는 것이지만 트위터를 비판하는 의미는 아니다. 그보다는 과학기술이 과거에 비해 정체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의 친구 일론 머스크도 비슷한 생각으로 기업을 창업하였다.[25] 이 말 직후 참석한 수많은 공화당원들이 "USA! USA!"를 외치며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다만 떨떠름한 표정으로 박수를 약하게 치거나 팔짱만 끼는 사람들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