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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반적으로 '비판 이론(독일어: Kritische Theorie, 영어: Critical Theory)'이라는 용어는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하버마스 등에게서 출발하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철학적 사회학적 현실 비판을 일컫는다.[1]이들은 인간을 하나의 부품으로 여기는 자본주의의 비인간화(물화) 문화가, 소비의 단계에서 돈의 위계질서를 형성하고 여기서 행복 찾기를 강요하기 때문에 사회를 권위주의적으로 만들어버린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대중 문화와 광고를 통해 소비의 거짓 욕망을 부추기고, 수요에 비해 과도하게 생산된 상품은 실제로 살아가는데는 필요없는 소비를 끊임없이 충족시키므로, 이러한 사회에서 소비에 대한 돈의 위계질서와 그에 따른 권위주의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대부분의 비판 이론가들은 혁명을 통해 권위주의가 사라질 것이라는 유토피아적 희망을 품지 않으며, 혁명이 아니라 오직 문제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만이 이러한 권위주의를 견제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2] 즉, 자본화된 대중 문화의 비인간화(물화)된 정서와 권위주의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만이 권위주의의 성장(파시즘)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2. 상세
이들 비판이론가들은, 사회적 억압과 지배의 원인이 ‘이성’ 그 자체가 아니라 ‘이성의 왜곡과 억압’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이성'의 전체주의적 특성을 공격하긴 하지만, 그것은 '이성이 왜곡되었기 때문'이며, 진정한 이성의 역할은 '사회를 비판함으로써 사용되어져야 된다'는 것이다.이러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 이론은 헤겔의 '주관 이성'과 '객관 이성'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헤겔의 이런 이성 개념은 이후 비판이론가들에 의해 재해석되어 '도구적 이성'과 '비판적 이성'으로 다시 구분되는데, '도구적 이성'은 단지 삶을 살아가는 수단으로써 사용되어지는 것이기에 기존 체제에 대해 무비판적이다. 반면 '비판적 이성'[3]은 기존 체제(사회)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을 통해, 그 체제(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함으로써 사회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방지하고, 이를 통해 개인의 자유를 확보하는 의미를 지닌다.
사회 비판의 내용은 대체적으로 '마르크스적 사회 비판'으로 수렴된다. 즉, 자본주의 사회는 사람을 목적으로 다루지 않고 수단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은 기계적 역할을 수행하는 '전체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기계적 도구 역할에서 벗어나 이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 끊임없는 비판적 사고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비판을 멈추면 그 사회는 결국 개인을 자본의 도구로 사용하게 된다는 경고인 셈이다.
이성의 문제점을 지적한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데, 다만 비판이론은 이성을 제대로 쓰지 않으면 전체주의로 빠질 수 있으니 사회를 반성하는 데에 이성을 사용하자는 입장이라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성이 아무리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비판한다고 하더라도 그 역시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이성은 비이성과 다를 바가 없고, 따라서 이성 옆에 비이성을 둠으로써 이성의 권위를 낮추고 비이성[4]의 권위(해체)를 높여야 된다는 입장이다.
3. 프랑크푸르트학파 1세대
프랑크푸르트학파 1세대로는 보통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테오도어 아도르노, 막스 호르크하이머 등이 꼽힌다. <계몽의 변증법>, <도구적 이성 비판>, <미학이론> 등의 저작들이 읽어볼 만하다.<계몽의 변증법>은 비판 이론가들의 저작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으로, 현대의 고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는 '신화-형이상학과 종교-계몽'으로 나아가는 계몽의 변증법적 진행 과정을 다루고 있으며, 근대의 역설[5], 칸트와 니체의 계몽사상, 오디세우스 서사시에서의 계몽적 요소, 계몽의 신화로의 회귀 등이 주로 다루어진다.
<도구적 이성 비판>은 막스 베버식의 '목적합리성'을 이성의 도구적 사용으로 파악하는 호르크하이머의 저작이다.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베버의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아서, 베버가 목적합리성이 지배하는 세계를 '쇠우리'에 갇힌 세계로 본다면 호르크하이머는 그것이 '근대의 역설'을 발생시킨 원인으로 파악한다. 즉 이성이 반성과 성찰을 상실하고 오직 도구적으로만 사용되게 된 결과, 이성적인 제도와 학문이 오히려 극히 비이성적인 지배와 폭력을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미학이론>은 아도르노의 미학 저작으로, 현대의 대중문화 혹은 '문화산업'에 대해 비판하면서, 근대의 대안이 될 수 있을 '진정한 예술'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다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아도르노는 근대라는 거대한 체제가 단순한 예술로의 도피로 극복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비판 이론을 전공하는 학자들은, <미학이론>을 단순한 절망의 이야기로, 다시 말해 근대라는 거대한 체제 앞에서 윤리적-예술적 세계로 도피하는 미학으로 읽지 않을 것을 권한다.
4. 프랑크푸르트학파 2세대
프랑크푸르트학파 2세대라고 하면 사실상 위르겐 하버마스를 가리킨다고 보면 된다. <공론장의 구조변동>과 <의사소통행위이론>을 참조하는 것이 좋다.<공론장의 구조변동>은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는 하버마스의 초기 저작이지만 기본 골자가 되는 내용은 부르주아 공론장의 등장과 쇠퇴이다. 그에 따르면, 본래 계몽주의 시대에는 시민사회와 공론장이 공적 문제들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는 역할을 했으며, 이런 방식을 통해 시민의 유의미한 정치 참여가 가능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후기자본주의 시대라 불리는 국면에 접어들면서, 공론장의 기능은 쇠퇴하고 정부와 통치 엘리트의 권한은 강화되었으며, 공적 영역에서 시민사회의 역할은 점차 축소되어 갔다는 것이다.
<의사소통행위이론>은 사회학의 핵심 문제인 합리성의 개념으로부터 출발해, 논증이론, 사회합리화, 의사소통적 합리성 등을 다루고 있는 저작이다. 하버마스의 '언어적 전회' 이후에 쓰여진 후기 저작으로, 그런 탓에 비판 이론 쪽에서 출간된 저작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분석철학적인 스타일에 가깝다.
5. 비판 이론의 후신들
2세대 학자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떨어지지만, 3세대 프랑크푸르트학파 학자로 악셀 호네트가 알려져 있으며 책 <인정투쟁>이 번역되어 있다. 그의 인정 개념은 헤겔에게서 빌려온 것이긴 하지만, 책을 읽어보면 여러 부분에서 그 전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 이론을 계승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프랑크푸르트학파 중 한 명이었던, 헤르베르트 마르쿠제는 미국으로 넘어간 후 비판 이론과 거리를 두게 된다. 마르쿠제는 마르크스[6]와 프로이트의 이론들을 버무려 '이성[7][8]으로 진보하는 폭발적 혁명 이론'을 주장하게 된다.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의 이러한 사상은 신좌익이 68혁명을 일으키는 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이는 이후 마르쿠제와 다른 프랑크푸르트 학자들과의 불화를 야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신좌익의 68혁명이 일어나자, 프랑크푸르트 강의실 내의 비판이론 교수들과 행동을 요구하는 학생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비판이론의 중심에 있었던 아도르노, 하버마스는 68혁명의 극단적인 면모를 비판했으며, 오직 마르쿠제만이 이를 옹호하였다. 이러는 도중 아도르노의 수업에서 세명의 여학생이 윗옷을 벗고 가슴을 드러내며 아도르노를 조롱하였고, 이에 아도르노는 충격을 받고 강의실을 나갔다. 몇 주 후 스위스에서 요양을 하던 아도르노가 심장마비로 죽음으로써 프랑크푸르트학파와 신좌파와의 악연은 끊어지게 된다.
또한 포스트모더니즘, 탈식민주의, 반인종주의 등이 대표적인 비판이론의 후신들로 꼽힌다.
다만, 비판 이론가들과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들 사이에 문헌학적으로 분명한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들뢰즈나 데리다와 같은 철학자들이 마르크스, 헤겔, 니체의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반대로 아도르노나 호르크하이머의 저작을 얼마나 참고했는지는 확실하지는 않다. 특히 비판이론가들은 니체에게서 멀어져 있지만,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들은 대부분이 니체와 직간접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럼에도 둘다 마르크스적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자본주의를 비판한다는 점에서, 그들의 사상은 서로 유사한 의식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이성중심주의 비판, 모든 것을 동일화하는 사고에 대한 저항, 기존의 전통적인 철학을 넘어서려는 시도 등은 포스트모더니즘과 비판 이론 양자에서 꾸준하게 발견되는 목표의식이다. 다만 '비판이론'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이성중심주의 비판'이 다른 점은 비판이론의 경우 '이성의 잘못된 사용'을 경고하고, 이성의 제대로된 역할(즉 반성적 역할)로 돌아가자는 것이라면, 포스트모더니즘의 이성중심주의 비판은 '이성 자체의 한계'를 공격하는 것에 가깝다.
그래서 비판 이론은 이성의 역할은 '비판적 사고'를 하는데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성의 비판적 사고마저도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주장한다.
미셸 푸코는 프랑크푸르트학파에서 시도된 것과 같은 방향의 비판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나타낸 적이 있다. 그의 강의록 '생명관리정치의 탄생(Naissance de la biopolitique)'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진실의 역사나 착오의 역사, 이데올로기의 역사가 아니라 진실진술 체제의 역사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진실진술(사법진술)의 역사를 연구하는 것, 이것은 물론 유럽적 합리성에 대한 비판, 유럽적 합리성의 과잉과 관련된 비판 같은 기획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주지하다시피 19세기 초반부터 이런 비판은 모두 각기 다른 형태로 부단히 행해져 왔습니다. 낭만주의에서부터 프랑크푸르트학파에[9] 이르기까지 자신의 고유한 권력의 무게를 가진 합리성에 대한 이의제기가 문제화되어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제안하려는 지식에 대한 비판은 이성 아래의 변함없이 억압적인, 아니 이렇게 말하려고 했는데 그러면 안 되겠고, 이성 아래에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억압적인 것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간단히 말해 비이성 역시 억압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중략).. 다른 방식으로 말한다면, 이 분석이 정치적 범위를 갖기 위해서는 진실들의 생성이나 오류들의 기억을 목표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중략).. 제가 생각하기에, 지금 정치적으로 중요한 것은 어느 시점에 창설된 진실진술의 체제가 일단 어떤 것인가를 한정하는 것입니다.'
푸코에게 있어서 이성의 문제는, 어떤 특정한 종류의 합리성이, 혹은 합리적이라고 믿어지는 어떤 담론들이나 실천들의 체계가, 후에 가서는 오류로 밝혀지는 것들을 '진실되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였다. 이는 《안전, 영토, 인구》와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을 비롯한 후기 강의록에서 일관되게 표명하고 있는 주제이다.
[1] 영어 표현인 'critical theory'의 경우 문예비평(literary criticism)에 관한 이론이라는 의미 또한 내포하지만, 그런 의미를 한국어로 옮길 때는 주로 '비평 이론'이라고 번역한다.[2] 단, 비판 이론가 중에서 마르쿠제만이, 그러한 혁명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마르쿠제도 『에로스와 문명(1955년)』에서는 그러한 혁명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았지만, 『일차원적 인간』에서는 그러한 혁명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마음을 바꾼다.[3] 이 비판적 이성을 지칭하는 용어가 학자들마다 제각각이다. 대충 알기 쉽게 '비판적 이성'이라고 말한 것이지 학술적으로 맞는 용어는 아닌 점에 주의.[4] 푸코에게서는 '광기, 폭력, 성'에 해당하고, 들뢰즈한테서는 '감정(강렬함)과 생성(노마디즘)의 철학', 데리다에게서는 '경계선의 가치역전, 이를 통한 해체 작업'에 해당한다.[5] 근대는 이성적인 제도와 규범, 학문을 통해 비이성적인 지배와 폭력을 정당화하고 실현시킨다는 개념. 이는 이후 <미학이론>에서의 '관리되는 사회' 개념으로 이어진다.[6] 마르쿠제가 기준으로 삼은 마르크스는 후기의 유물변증법에 토대한 마르크스라기보다는, 초기 마르크스(휴머니즘적 마르크스, 헤겔주의적 마르크스)를 의미한다. 마르쿠제가 초기 헤겔주의적 마르크스를 따르므로 반헤겔주의적 후기 마르크스를 따르는 관점과는 달리 '이성'개념을 활용할 여지가 생긴다.[7] 이 때의 이성은 이성주의 철학의 일반적인 이성의 개념과는 다소 다르다. '상상력imagination'과 결합된 형태의 이성이다. 마르쿠제의 체계에서는 이 (유토피아적) '상상력'이 프로이트의 '에로스Eros'에서 유래한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마르쿠제가 말하는 '이성'이란 엄밀히 말해서 '리비도적 이성libidinal rationality'이라는 마르쿠제 고유의 개념이다. 즉, 마르쿠제의 이성 개념이란 리비도를 기준으로 삼는 (이해를 돕기 위해 좀 더 강하게 말하자면, 리비도에 종속된) 이성인 셈이다. 마르쿠제는 이러한 관점으로 이성과 마르크스와 프로이트라는 함께 다루기 어려운 대상들을 융합해낸다.[8] 링크에서 인용 Marcuse’s discussion of potential draws on the Hegelian reconstruction of the idea of essence, while arguing that the projection of potentialities depends on the imagination. Thus insofar as essence is an object of rational consideration, reason itself must incorporate the imaginative faculty. But in his Freudian conception of the psyche, imagination is rooted in Eros. A new concept of reason will evaluate social arrangements and technology on the basis of the second dimension of human beings and nature. A “libidinal rationality” combining imagination and reason will disclose an erotic reality, a reality that presents itself in the forms of beauty and as containing potentials awaiting realization. This would be a less aggressive and destructive form of rationality, but a form of rationality nevertheless[9] 원저에서는 이부분에, '비판이란 무엇인가?(Qu'est ce que la critique?)'를 참조하라는 주석이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