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2 23:03:35

실비아 리킨스 살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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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리킨스 살인 사건
Murder of Sylvia Likens
<colbgcolor=#ddd,#0f0f0f> 발생일 1965년
발생지 미국 인디애나 주 인디애나폴리스
가해자 거트루드 배니체프스키(Gertrude Baniszewski)[1][2]
피해자 실비아 리킨스(Sylvia Likens)
범죄 항목 성폭력, 아동학대, 상해, 살인
사망자 수 1명
위치
1. 개요2. 전개 과정
2.1. 거트루드가 실비아를 만나기 전2.2. 실비아 리킨스2.3. 학대의 시작
3. 목격
3.1. 급증하는 학대
4. 지하실
4.1. 구출 실패4.2. 살해4.3. 재판4.4. 심판과 그 이후
5. 여담6. 관련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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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 인디애나 주 인디애나폴리스 시에서 거트루드 배니체프스키가 자신의 자녀와 이웃집 아이들과 함께 집에서 돌보던 16세 소녀 실비아 리킨스를 장기간 학대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을 말한다.

1966년 그녀는 1급 살인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인디애나 주 역사상 가장 잔인한 범죄이자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건으로 알려졌고 많은 소설과 논픽션의 주제가 되었다.

이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 아메리칸 크라임에서의 오역으로 인해 한국에서는 "배니체프스키 대 인디아나 주 사건"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배니체프스키 대 인디아나 주"는 배니체프스키를 심판하기 위한 재판명이며 살인 사건에 대한 것이 아니다. 미국의 재판명은 로 대 웨이드 처럼 A vs. B 형식으로 붙는데 형사 사건의 경우 상대가 주 정부(검사)가 된다.

2. 전개 과정

2.1. 거트루드가 실비아를 만나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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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0> 거트루드 배니체프스키 거트루드의 딸인 폴라 배니체프스키
거트루드는 1928년 9월 19일 인디애나 주 인디애나폴리스 매리언 카운티에서 노동자 집안 출신인 아버지 휴 M. 판 포산(1889~1939)[3]과 어머니 몰리 머틀 오클리(1896~1984) 사이에서 3남 3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아버지와는 매우 친밀한 관계였으나 어머니는 냉담한 성격이었다.

11세였던 1939년에 그의 아버지가 심장발작으로 갑자기 사망하는 장면을 목격한 지 5년 뒤, 16세에 학교를 중퇴하고 보안관 대리로 일하던 18세의 존 배니체프스키(John Baniszewski Sr., 1926~2007)[4]와 결혼해서 4명의 자녀를 낳았다. 존은 불같은 성격이었고 '화나게 했다'며 자주 그녀를 구타하였다. 거트루드는 존과 10년간 결혼 생활을 하고 이혼하였다. 이혼 후 1년도 채 되지 않아 에드워드 거스리(Edward Guthrie)와 3개월간 결혼 생활을 하였으나 아이들이 번거롭다며 거스리가 이혼을 요구하여 존과 다시 재결합하고 1963년 이혼할 때까지 7년간 함께 지내며 2명의 자녀를 더 가졌다.

34세 때 23세인 데니스 리 라이트(Dennis Lee Wright Sr., 1942~1977)와 동거하였고 라이트는 그녀를 더욱 심하게 학대하였다. 2명을 임신하였으나 구타로 추정되는 원인으로 1명은 유산하였다. 생존한 1명의 자녀가 태어나자 라이트는 그녀를 버리고 사라졌고, 마지막 자녀 이름이 '데니스 주니어'였다. 전부 7명의 자녀를 가졌고 6번 유산하였다. 라이트가 사라진 후부터 먹고 살 수가 없어 닥치는 대로 일하며 입에 풀칠을 하게 되었다. 자식들 중 17세의 장녀 폴라가 중년 남성과의 불장난으로 임신 3개월이 되었을 때 상황은 최악이 되었다.

그때쯤 거트루드의 건강도 악화되어 만성적으로 다양한 질병을 겪게 되고 잘 먹지도 못해서 제 나이보다 더 늙은 외모로 바뀌게 되었다.

2.2. 실비아 리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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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0> 실비아 마리 리킨스(Sylvia Marie Likens) 실비아 리킨스와 모친 엘리자베스(Elizabeth Likens, 1927~1998)
1965년 7월, 배니체프스키의 친구인 달린 맥과이어(Darlene McGuire)가 이웃에 살고 있던 16세의 실비아 마리 리킨스(Sylvia Marie Likens, 1949~1965)와 15세의 제니 페이 리킨스(Jenny Fay Likens, 1950~2004) 자매를 소개해 주었다.

제니는 소아마비를 앓고 있었다. 폴라가 자매를 집으로 데려가 음료수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었다. 자매의 어머니 베티(본명은 엘리자베스)는 당시 절도감옥에 있었고, 자매를 데리고 남편에게서 도망친 상태였다. 그 얘기를 들은 폴라는 그 밤을 자신의 집에서 보내자고 했다.

다음 날, 자매의 아버지 레스터 리킨스(Lester Likens, 1926~2013)가 부인을 수소문하다가 맥과이어에게 얘기를 듣고 찾으러 왔다. 거트루드와 대화를 하다 레스터는 자매를 맡아 달라고 했고 부인을 만나 축제 도우미로 계속 함께 일하자는 동의를 구해 레스터와 베티 부부는 매주 20달러를 주기로 했는데 이것이 사건의 원인이 되었다. 그 전에 부부가 먼저 그 집을 잘 살펴보았다면 아이를 맡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시 이스트 뉴욕 스트릿 3850번지에 있었던 베니체프스키네 집은 난방이 안 되었고 식구의 1/2만 잘 수 있는 침대가 있었으며 식사라곤 과자 부스러기가 고작이었고 집안의 곳곳은 먼지로 뒤덮여 있었으며 3명분의 식기만 있었다.

첫 주는 별 문제 없이 잘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부모가 보낸 첫 번째 양육비용이 제때 도착하지 않자 거트루드는 "아무 쓸모없는 개돼지 같은 너희들을 돌보란 말이야?!" 라면서 심하게 화를 내며 팬티를 내리고 침대에 엎드리게 하여 엉덩이를 때렸다. 얼마 뒤 돌아온 레스터와 베티 부부가 아이들을 만났을 때 자매는 거트루드의 협박 때문인지 그 사건에 대해 묵인했다.

다음 주, 실비아와 제니가 쓰레기장에서 코카콜라 을 모아 사 온 사탕을 보고 이를 훔친 것이라며 비난했다. 실비아가 아니라고 설명하자 거짓말까지 한다면서 침대에 엎드리게 해서 몽둥이로 엉덩이를 때렸다.

얼마 후 배니체프스키의 자녀들이 교회에서 돌아와 실비아가 교회에서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 보기 싫었다고 말했다. 화가 난 거트루드는 조미료를 잔뜩 친 핫도그를 강제로 먹게 했다. 실비아가 토하자 그 토한 것을 모두 먹게 했다. 이후 부모가 다시 방문했을 때 실비아는 배니체프스키의 입막음으로 이 일을 말하지 않았다.

2.3. 학대의 시작

1965년 8월, 남자친구에게 자신의 성기를 한 번 만지게 허락해 준 적이 있다는 실비아의 말을 우연히 들은 거트루드는 불결하다며 화를 내고 실비아는 매춘부이고 임신을 했다고 소문을 냈다. 실비아를 때리고 발로 사타구니를 여러 번 찼다. 실비아가 주저앉자 폴라가 의자를 실비아에게 던지며 "의자에 앉을 자격도 없어!" 라고 외쳤다. 그 후부터 실비아는 허락을 받은 후에만 의자에 앉게 했다. 이 무렵부터 거트루드는 자녀들에게 실비아를 계단에서 밀어 굴러 떨어뜨리도록 지시했다.

거트루드는 실비아에게 언어 학대와 신체적 학대를 시작했고 실비아가 매춘을 했다며 야유했으며 매춘부와 모든 여성은 불결하다는 잔소리를 끝없이 되풀이하였다.

리킨스 자매는 친구들에게 거트루드의 딸인 폴라와 스테파니가 남자친구들과 돈을 받고 성관계를 했다고 얘기했다. 이 말을 들은 스테파니의 남자친구인 코이 허바드(1950~2007, 당시 15세)가 집으로 찾아와 실비아를 폭행했다. 그때부터 거트루드는 허바드에게 자신의 집에 와서 실비아를 상대로 유도 연습을 하라고 지시했다.

그 무렵 거트루드는 실비아의 절친한 친구인 13살의 안나 시스코에게 실비아가 학교에서 남자 친구들에게 안나의 어머니는 매춘부라고 소문을 냈다며 실비아를 폭행하게 했다. 폴라의 친구인 주디 듀크에게도 어머니에 대한 나쁜 소문을 냈다며 실비아와 서로 싸우게 했다. 싸우는 동안 제니에게 실비아를 구타하라고 지시했지만 거절하는 제니가 동의할 때까지 주먹으로 얼굴을 쳤다.

3. 목격

이웃에 이사 온 40대 중년 부부인 필리스와 레이먼드 버밀리온은 거트루드가 많은 아이들을 돌보는 것을 보고 착하고 좋은 사람으로 생각하여 정원에서 바비큐 파티를 열었다. 필리스 부인은 실비아가 얼굴에 멍이 든 채로 주변을 맴돌기만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잠시 후 폴라가 거트루드의 허락 하에 실비아에게 다가가 뜨거운 물을 끼얹는 것을 목격했다.

2개월 뒤, 필리스 부인이 무언가를 빌리러 배니체프스키 가에 갔을 때 실비아가 눈가에 멍이 들고 부어서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였고 입술도 부은 채로 멍하게 왔다 갔다하는 것을 보았다. 필리스 부인은 폴라가 실비아를 폭행하는 것도 목격했다.

이후 상습적인 학대와 폭력을 알아차렸으나 신고하지는 않고 묵인하였다.

3.1. 급증하는 학대

운동복이 없어 체육 시간에 수업에 참석할 수 없었던 실비아가 거트루드에게 사 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해 학교에서 운동복을 훔치자 잘못을 고백하라며 폭행하면서 이미 일상적으로 행해졌던 담뱃불로 손가락 끝을 지져 상처를 내는 학대를 하였다. 그리고 벨트로 구타도 했다. 이후부터 집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실비아가 앞으로는 물건을 훔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심어주기 위해서라며 담배를 끌 때 실비아의 몸에 비벼서 끄게 했다.

학교를 보내지 않았고 얼마 뒤 자매에게 음료수를 사오라고 지시했는데 돌아오자 매춘을 했다며 이웃 소년들이 보는 앞에서 실비아의 성기에 콜라병을 넣게 했다.

4. 지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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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가 감금된 채로 있었던 지하실
콜라병을 삽입한 후 실비아에게 요실금이 생기자 거트루드는 실비아가 더 이상 인간으로 살 수 없다고 생각하고는 지하실감금했다. 지하실에 화장실이 없어 소변대변을 바닥에 볼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을 본 거트루드는 실비아를 깨끗하게 한다는 '목욕요법'을 시작했다. 실비아의 손발을 묶고 뜨거운 물이 든 욕조에 던져 넣는 것이었는데 이걸 하루에 여러 번씩 하는가 하면 어느 날은 하지 않고 넘어가기도 했다. 또한 실비아가 뜨거운 물에 데어 화상을 입으면 상처를 소금으로 문질렀다.

거트루드는 이웃 소년인 리키 홉스(1950~1972, 당시 14세)를 실비아를 괴롭히는 보조자로 데려왔는데 홉스는 중산층 가정의 착실한 학생이었으나 보조자가 된 이후로는 거트루드의 명령은 무조건 따르는 급격한 인격 변화가 있었다.

경찰은 홉스는 아마도 거트루드의 애인이었고 시종 역할을 하도록 유혹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배니체프스키 가 자녀들은 이웃 소년들에게 나체의 실비아를 보여주거나 계단에서 지하실로 밀쳐 떨어뜨리게 하고는 을 받았다.

실비아는 옷이 벗겨진 채 주로 지냈고 거의 먹지도 못했다. 스프손가락으로 떠먹게 하기도 했다. 간혹 거트루드와 12세의 아들 존 주니어는 실비아한테 지하실 바닥에 쌓인 대변을 먹게 했고 소변을 받아 놓았다가 마시게 했다.

4.1. 구출 실패

이 무렵 제니는 결혼해서 살고 있던 큰 언니인 다이아나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과 실비아가 겪고 있는 무시무시한 공포를 설명하고 경찰에게 연락해 주기를 요청했다. 다이아나는 제니가 단순히 자신의 잘못으로 벌을 받는 것을 싫어하여 자신과 살고 싶어 없는 얘기를 꾸민다고 생각하여 그 편지를 무시해 버렸다.

이웃의 12세인 주디 듀크가 실비아를 보고 어머니에게 "그 집 사람들이 실비아를 때리고 발로 차고 있었어요" 라고 말했으나 어머니는 벌 받을 짓을 하면 그럴 수도 있다고 말하고는 무시했다.

그 후 교회 목사가 방문했을 때 거트루드는 커피를 마시며 실비아가 큰 짐이며 유부남과 성관계를 해서 임신을 했다고 말했다. 그때 실제로 임신 중이었던 것은 거트루드의 딸 폴라였으나, 폴라는 처녀인데 실비아가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 그런 거짓 소문을 냈다고 했다.

목사는 실비아를 위해 기도하고는 집을 떠났다. 목사가 다시 방문했을 때 폴라가 기도하며 "저는 실비아가 너무 싫어요"라고 하자 거트루드는 그 반대라고 불쑥 끼어들었다.

얼마 뒤, 다이아나 리킨스는 동생들을 보러 거트루드의 집으로 갔으나 거트루드는 레스터가 집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다이아나가 억지로 들어가려 하자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위협했다. 그러자 다이아나는 제니가 나올 때까지 숨어 지켜보기까지 한 후에야 제니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이아나가 다가가자 언니와 말해서는 안 된다며 도망쳐 버렸다. 걱정된 다이아나는 사회복지소에 연락했고 사회복지사가 방문했다.

거트루드는 실비아가 너무 지저분하고 매춘부여서 몇 번 걷어차기는 했지만 그 후에 가출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니에게 실비아의 일에 대해 그 애가 가출했다고 말하라고 강요하며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언니처럼 학대하고 지하실에 감금하겠다고 협박했다. 공포에 사로잡힌 제니는 사회복지사에게 실비아가 실제로 가출했다고 말해 버렸다. 사회복지사는 더 이상 추적 관찰할 필요가 없는 사례라고 기록하며 이 사건을 마무리했다.

4.2. 살해

10월 20일 저녁 무렵, 로버트 핸론이란 소년이 배니체프스키 자녀들이 자신의 집 지하실에 있던 물건을 훔쳐갔다며 돌려달라고 요구하자 거트루드가 경찰을 불렀다. 경찰이 필리스 부인에게 전후 사정을 물으러 왔을 때 거트루드와 핸론이 다투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지만 실비아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10월 21일, 거트루드는 존, 코이와 스테파니에게 실비아를 지하실에서 데려와 침대에 묶으라고 지시했다.

다음날 아침, 거트루드는 실비아가 침대에 오줌을 싼 것을 보고 심하게 화를 내며 거실로 데려와 자신의 아들들과 이웃 소년들 앞에서 스트립쇼를 하게 하였고 콜라병을 성기에 다시 삽입하게 했다.

잠시 후 옷을 입히고 나서 거트루드는 실비아가 폴라와 스테파니에 대한 나쁜 소문을 낸 것을 떠올리곤 "네가 내 딸들에게 낙인을 붙였듯이 너도 낙인을 받아봐야 해!" 라고 외치더니 실비아의 옷을 모두 벗겨 눕히고는 입에 재갈을 물렸다.

배니체프스키 자녀들이 성냥으로 달군 바늘로, 복부에 "I’m(나는)"이라는 글자를 새긴 후 리키 홉스에게 "A PROSTITUTE AND PROUD OF IT.(매춘부이며, 그것이 자랑스럽다)"는 문구를 새기도록 시켰다.

홉스가 맞춤법을 묻자, "PRO. STI. TUTE(매. 춘. 부)"라고 말하며 종이에 적어주었다. 그렇게 배에 글씨를 새기며 생긴 상처는 3도 화상에 해당되었다.[5]

만족한 거트루드가 방을 나가자 폴라와 리키, 10살 된 딸 셜리는 실비아의 가슴에 "S"를 새겼다. 이후 진술에서 "S"가 "Sylvia"인지 "Slave(노예)"인지 자신들도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리키가 "S"의 아래쪽을 새기고 제니를 불러 나머지를 새기라고 요구했다. 제니가 거절하자 셜리가 나머지를 새겼다.

셜리가 당황해서 잘못 새겨 실비아의 가슴에는 "3"이라고 새겨졌다. 다시 나타난 배니체프스키는 실비아에게 "이제 어쩌니, 실비아? 이제 너는 결혼하지도 못하고, 누구 앞에서건 옷을 벗을 수도 없어. 어때?" 라고 말했다. 재갈을 풀어주자 실비아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이대로 있는 거예요" 라고 말했다.

허바드가 실비아를 지하실로 데려갔고 그곳에서 실비아에게 유도 연습을 하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 제니가 몰래 지하실로 내려가자 실비아는 "곧 죽을 것 같아" 라고 말했다. 제니가 다녀간 후 거트루드가 내려와 실비아를 데리고 올라가 침대에 재웠다.

실비아는 다음날 10월 23일 점심 무렵까지 잠을 잤다. 실비아가 일어나자 거트루드와 스테파니는 따뜻한 물로 목욕을 시켰다. 목욕 후에 옷을 입히고 불러 주는 대로 가출한다는 내용으로 부모에게 보내는 편지를 받아 적게 했다.

'나는 밤에 남자 친구들과 놀았어요. 그 아이들이 차 안에서 내가 무언가를 해준다면 돈을 주겠다고 했어요…. 나를 마구 때렸고 그래서 얼굴과 온몸에 멍이 들었어요. 내 배에도 나는 매춘부이고 그것을 자랑스러워 한다는 말을 새겼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거트루드는 편지 마지막에 실비아의 사인을 빠트렸다.

실비아가 편지를 다 적자 거트루드는 존과 제니에게 실비아를 근처의 쓰레기장으로 데려가 죽도록 방치할 것이라는 계획을 말해주었다. 우연히 이 말을 들은 실비아는 계단을 달려 내려 도망가다가 현관 입구에서 배니체프스키에게 붙들렸다. 실비아를 식당으로 데려가 토스트 몇 개를 주었고, 실비아는 먹으려고 했지만 삼킬 수가 없었다. 배니체프스키는 부엌에 있던 커튼 막대로 실비아의 입을 쳤다.

존이 실비아를 지하실로 데려가 묶었고 거트루드가 접시에 과자를 담아 주었다. 그것을 본 실비아는 "개에게나 줘! 개가 나보다 더 배고플 테니"라고 말했다. 거트루드는 수차례 실비아의 복부를 구타했다.

10월 24일, 지하실로 내려온 거트루드는 나무 방망이로 실비아를 폭행하려고 하다 너무 크게 휘둘러 실수로 자신의 얼굴을 쳐서 눈 주위에 멍이 들었다.

코이 허바드가 내려와서는 빗자루로 심하게 후려쳐 실비아는 기절해버렸다. 그날 밤과 다음 날 10월 25일 아침까지 기절해 있다가 정신을 차린 실비아는 으로 지하실 바닥을 두드렸다. 이웃 사람들은 경찰을 불러야 한다는 생각은 했지만 아무도 연락하지는 않았다.

10월 26일 화요일 저녁 무렵 거트루드는 아이들에게 실비아를 따뜻한 물로 목욕시키게 했다. 스테파니와 리차드 홉스는 실비아를 위로 데려가 옷 입은 채로 욕조에 넣었다. 잠시 후 들어 올려 바닥에 눕혔을 때 실비아가 숨을 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놀란 스테파니가 소생시키려고 노력했지만 실비아는 이미 절명한 상태였다. 공포에 사로잡힌 스테파니는 홉스에게 경찰에 알리자고 말하고는 경찰에 연락했다.

경찰이 도착했을 때, 거트루드는 실비아에게 강요해서 적게 한 편지를 보여주었다. 이런 혼란 중에 제니는 경찰 중 한 명에게 "밖으로 데려가 주면 모든 것을 말하겠어요" 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니의 진술을 바탕으로 실비아의 시체를 발견한 경찰은 거트루드, 폴라, 스테파니, 존, 리차드 홉스, 코이 허바드를 살인죄로 검거하였다. 다른 이웃 소년소녀들인 마이크 먼로, 랜디 레퍼, 주디 듀크, 안나 시스코는 상해죄로 체포되었다.

4.3.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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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0> 현장조사 중인 형사들 압송 중인 리차드 홉스와 존 배니체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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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0> 법정으로 향하는 제니 리킨스와 다이아나 리킨스 재판 참관 중인 실비아 리킨스의 부모[6]
거트루드와 거트루드의 자녀, 홉스, 허바드는 보석금 미납으로 구치되었다.

부검을 통해 2도 화상과 3도의 담배 화상이 100곳 이상, 타박상, 근육신경의 손상이 밝혀졌다. 극도의 고통에 의해 실비아는 그 고통을 견디느라 입술을 깨물어 아랫 입술은 반쯤 끊어져 겨우 붙어 있는 상태였다. 외부 성기는 심한 부종으로 막혀 있었으나 내부는 손상되지 않아 거트루드가 했던 실비아는 매춘부이며 임신했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없었다.

사망 원인은 뇌부종, 뇌혈종, 장기간의 중증 피부 손상으로 인한 쇼크로 판명되었다.

1966년 5월, 거트루드 배니체프스키, 존 배니체프스키, 폴라 배니체프스키, 리키 홉스, 코이 허바드(13세), 요한 홉스(당시 14세) 모두 사형을 구형받았다.

폴라와 거트루드는 폴라가 임신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법정에서 산기가 보여 병원으로 후송되기도 했다. 폴라는 아기 이름을 가족 결속을 뜻한다며 거트루드라고 지었다. 각각의 변호사들은 서로 다른 사람들의 라고 주장했다.

거트루드는 법정에서 실비아의 매춘, 중년 유부남과의 성관계, 잦은 싸움 등등 실비아의 잘못임을 주장했다.

11세였던 자녀인 마리는 처음에는 법정에서 어머니의 말이 맞다고 주장하다가 반대 신문을 하는 동안 갑자기 "신이여, 도와주세요!"라고 외치더니 자신이 거짓말을 했으며 거트루드와 자매들이 실비아를 어떻게 학대하고 살해했는지 고백하였다. 이 증언이 배심원 판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거트루드는 1급 살인으로, 가석방없는 종신구금형을 선고받았다.

4.4. 심판과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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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리킨스의 장례식
폴라는 2급 살인죄를 선고받고 항소했으나, 유죄를 인정하고 형을 감면받는 유죄감면신청을 하여 3년간 감옥에 있다 가석방되었다. 존 배니체프스키, 허바드, 홉스는 소년원에서 8개월간을 살고 출소하였다.

거트루드는 항소하여 종신형에서 18년형으로 감형받았다. 18년간 감옥 생활을 하는 동안 모범수가 되어 수선가게를 운영하며 어린 여성 수감자의 귀감이 되었다. 1985년 가석방될 때까지 감옥에서 "대모"란 별명으로 불렸다.

거트루드의 가석방 소식은 인디애나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제니와 가족TV에 나와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2개의 범죄 반대 단체 일원들, 학대 반대 단체들은 인디애나 주에 모여 가석방 반대 시위를 하고 리킨스 가족을 지지하였다. 2개월 후 그 단체들이 인디애나 주민 4,500명의 가석방 반대 서명을 제출하였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거트루드는 가석방되었다.

당시 거트루드는 석방 관련 청문회에서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 나는 약에 취해 있어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실비아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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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의 거트루드 배니체프스키의 모습
1985년 12월 4일, 가석방되어 나딘 판 포산으로 이름을 바꾸고 아이오와주로 가서 살다가 1990년 6월 16일 폐암으로 사망했다.

장녀 폴라는 3년 복역 후 모범수로 석방되어 아이오와주로 간 후 결혼하여 2명의 자녀를 두며 성도 '페이스'로 갈았다. 1998년부터 콘라드 시의 BCLUW 학군 내 학교들을 돌며 보조교사로 일하다가 2012년 과거 행적을 아는 익명의 제보자가 경찰에 신고하자 그녀는 직장에서 해고됐다.

차녀 스테파니는 재판에서 학대에 가담했음을 어느 정도 시인했으나 특별 재판에서 이마저도 무혐의 처분받았다. 교사가 된 후 이름을 바꿔 가면서 결혼해 자녀를 뒀으며 플로리다 주 플로랄 시티에서 거주 중이다. 오늘날에도 자신과 당시 남자친구인 허바드는 학대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재판 당시 결정적인 증언을 한 3녀 마리는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살다가 2017년에 향년 63세로 숨졌고, 4녀 셜리는 학대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며 실비아에게 낙인을 새길 당시 바늘을 달구는 역할을 맡았지만 재판 당시에는 불기소 처분을 받은 채 소식이 끊겼다.

장남 존은 소년원에서 8개월 복역 후 역시 모범수로 출소했다. 어머니가 복역한 탓에 매리언 카운티 사회복지부를 통해 여동생 마리, 셜리와 함께 친부에게 다시 맡겨진 후에 성도 '블레이크'로 바꿨다. 존은 한동안 방황하다가 종교에 귀의하여 갱생을 위해 노력했으며 다른 남매와 달리 자신의 범행을 숨기지 않는 행보를 보였다. 그는 목사부동산 중개업자 등으로 일하다가 2005년 당뇨병으로 사망했다. 그는 수감될 당시에 인디애나 소년원 사상 최연소 죄수였다.

4남 제임스(당시 8세)는 영화 《아메리칸 크라임》 개봉 후 인터뷰에서 '영화는 과장되었으며 실비아가 죽은 이유는 자신의 어머니를 열 받게 해서이다'라고 주장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생후 18개월이었던 의붓동생 데니스 리 라이트 주니어는 화이트 부부에게 입양된 후 보통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자라면서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다가 2012년캘리포니아 주에서 사망했으며, 살아생전에 실비아의 죽음에 관련된 어떠한 사실도 보거나 언급하고 싶지 않다고 언급했다고 한다.

반면 스테파니의 남자친구였던 코이 허바드는 8개월의 징역 생활 후 가석방되었으며, 본명을 유지한 채 인디애나폴리스에 거주하며 여러 차례 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들어갔다. 단, 1977년에는 살인 혐의로 기소됐지만 1983년 1월무죄를 선고받았다. 결혼 후 5명의 아이, 17명의 손주, 1명의 증손자를 두었으나 2007년 영화 <아메리칸 크라임> 개봉 뒤 직장에서 짤렸고 동년 6월에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

지금도 이들의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에는 실비아의 사진을 올리면서 비난하는 댓글이 쏟아지고 있으며 당연히도 이들의 악행에 대한 인과응보이다.[7] 베니체프스키 가문의 인물들도 사실상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의 가해자처럼 죽을 때까지 을 실컷 얻어 먹을 것으로 보인다.

5. 여담

  • 거트루드는 자녀와 이웃 소년들을 끌어들여 학대를 지시하였고 얼마 지나자 스스로 실비아를 학대하였다. 남자아이들에게 돈을 받고 실비아에게 강제로 매춘을 시켰다. 이런 행동은 '파리대왕' 현상으로 알려졌다. 매춘 행위라는 말에 처녀라면서 어떻게 매춘 행위를 했나 의문스러울 수도 있지만, 매춘이 꼭 성기의 삽입을 의미하진 않는다. 거기다 실비아의 의사가 고려되지 않았고 증언으로 보아 정신적/육체적 고문을 포함한 것으로, 이것은 단순 매춘이 아니라 특수강간이며 여러 연구에서 강간은 성적인 행위라기 보다는 권력 추구 행위의 일종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조사에서 외부 성기 부종(코카콜라 병 삽입으로 인한 상처와 감염으로 인해)으로 삽입이 어려웠을 것이라는 소견을 낸 것처럼 삽입을 하기 어려워서 안 했을 가능성이 높다.
  • 거트루드의 사망 기사를 본 제니는 어머니에게 '좋은 소식이 있어요. 그 망할 할망구 거트루드가 죽었어요(Damn old Gertrude died). 하하하! 정말 기쁜 소식이에요' 라는 글귀를 사망 기사와 함께 보냈다. 다만 제니는 심장발작으로 2004년에 5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사건이 터졌던 베니체프스키 일가의 집은 주인 없이 한동안 폐허 상태였고, 2003년에 누군가가 사들여 가출 아동을 위한 쉼터로 바꾸려 했으나 인디애나 주 정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지 못해 2009년 모 지역 교회에 의해 주차장 건설 용지로 매입되어 철거공터만 남아 있다. 1998년 아칸소 존스보로 학교 총기살해사건 후에 존 블레이크라 알려진 존 배니체프스키는 어린 범죄자들이 그들의 인생을 바꿀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며 그 자신이 바로 인생을 스스로 바꾼 예라고 주장했다.
  • 2001년 6월 22일 인디애나폴리스 윌러드 파크에 실비아를 기리는 화강암 추모비를 세웠고, 2016년 인디애나 주 분 카운티 레버넌에 있는 아동보호센터 측은 명칭을 피해자 실비아의 이름을 딴 '실비아 아동보호센터'로 변경했다.

6. 관련 작품



[1] 거트루드 라이트(Gertrude Wright) / 나딘 판 포산(Nadine van Fossan)이라고도 불렸다.[2] 1928년에 태어나 1990년에 죽었다.[3] 고조부 데이빗(1809~1862) 대부터 4대째 일리노이 주에서 태어났으며, 네덜란드계 미국인이다.[4] 펜실베이니아 주 영스빌 출신으로, 폴란드계 미국인이다. 1963년 이혼 후 몇 년 뒤에 메리 제인 번스(1929~2019)와 재혼했고, 나중엔 '블레이크'로 성을 갈았다.[5] 즉 단순히 뜨겁거나 차가운 것, 혹은 날카로운 것으로 글씨를 쓰는 것부터가 이미 가혹행위인데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예:fuck, 死)를 썼으니 말이 필요없다.[6] 왼쪽 남자가 아버지 레스터 세실 리킨스, 오른쪽 여자가 어머니 엘리자베스 리킨스다.[7] 미국은 아시아 국가와는 다르게 연좌제 풍습이 없지만 이렇게 가해자의 가족이 비난받는 것을 보면 미국 사회가 이 사건으로 충격을 크게 받았는지 알 수 있다. 더군다나 미국영미법 실행 국가 중에서도 엄벌주의를 중심으로 처벌하는데도 이런 악랄한 사건의 가해자들이 솜방망이 처벌받은 것을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