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09 22:54:45

라르스 라예르베크

라르스 라예르베크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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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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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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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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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축구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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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0f0f0,#222222><colcolor=black,white> 이름 라르스 라예르베크
Lars Lagerbäck
출생 1948년 7월 16일 ([age(1948-07-16)]세)
스웨덴 쇠데르만란드주 카트리네홀름시
국적
[[스웨덴|]][[틀:국기|]][[틀:국기|]]
신체 188cm
직업 축구선수(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f0f0f0,#222222><colcolor=black,white> 선수 알뷔 FF(1960~1969)
지모네스 CK(1970~1974)
감독 킬라포르스 IF (1977~1982)
아르브로 BK (1983~1985)
후딕스발스 ABK (1987~1989)
스웨덴 U-21 대표팀 (1990~1995)
스웨덴 B 대표팀 (1996~1997)
스웨덴 대표팀 (1998~1999 / 코치)
스웨덴 대표팀 (2000~2009)
나이지리아 대표팀 (2010)
아이슬란드 대표팀 (2011~2016)
노르웨이 대표팀 (2017~2020)
국가대표 없음
1. 개요2. 선수 경력3. 감독 경력
3.1. 클럽 감독 경력3.2. 국가대표팀 감독 경력
3.2.1. 스웨덴 경력3.2.2. 나이지리아3.2.3. 아이슬란드3.2.4. 노르웨이
4. 전술 스타일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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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웨덴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노르웨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아이슬란드를 사상 최초로 유로 본선에 올려놓고 또 8강까지 진출시키는 돌풍을 일으키며 감독 생활 막바지에 커리어 정점을 찍은 감독. 과거엔 그의 이름이 라스 라거벡이라고 알려졌지만 이는 영어식으로 읽은 것이며 실제 스웨덴어로 읽으면 라르스(라슈) 라예르베크이다.[1]

2. 선수 경력

이름난 축구 감독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라예르베크의 선수 시절도 보잘 것 없다. 그는 12세 때인 1960년에 스웨덴 리그의 Alby FF라는 곳의 유소년 팀에 입단해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현역 시절 그의 포지션은 미드필더였다고 한다. Alby FF에서 그는 무려 9년 동안 선수 생활을 했으며 이후 22세 때인 1970년에 Gimonas CK로 이적해 거기서 4년 동안 더 선수 생활을 한 뒤 은퇴했다고 한다.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에는 단 1번도 발탁된 적이 없으며 14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선수 시절 동안 겨우 2팀 만을 거쳤고 오직 스웨덴 리그에서만 선수 생활을 했다.

3. 감독 경력

3.1. 클럽 감독 경력

26세라는 이른 나이에 선수 생활을 접은 라예르베크는 지도자의 길로 뛰어들었고 3년 뒤인 1977년에 스웨덴 리그의 Kilafors IF팀의 감독을 맡았다. 그 때 그의 나이 불과 29세였다. 그가 Kilafors IF 감독을 맡게 된 데에는 전 룸메이트였던 쉘 페테르손(Kjell Pettersson)의 추천 덕분이었다고 한다. 그는 1982년까지 Kilafors IF 감독을 맡은 후 1983년에 Arbra BK로 옮겨가 2년 동안 감독 자리를 역임했다. 이후, 1987년에 Hudiksvalls ABK 감독을 맡아 1989년까지 재직했다. 이것이 라예르베크의 마지막 클럽 감독직 경력이었다.

3.2. 국가대표팀 감독 경력

3.2.1. 스웨덴 경력

라예르베크는 1990년에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 U-21 감독을 맡은 이후 2016년 현재까지 26년 동안 국가대표팀 감독 자리만 맴돌았다.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 U-21 감독과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 B팀 감독을 차례로 역임한 후 1998년, 당시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토미 쇠데르베리(Tommy Söderberg)가 그를 보조 코치로 선임하여 A대표팀 코칭 스태프에 합류했다. 이후 2000년에는 감독으로 승격되어 토미 소더베리와 2인 감독 체제를 이루었다.

이렇게 2인 감독 체제로 출범한 스웨덴이 처음으로 출전한 국제 대회는 UEFA 유로 2000이었다. 그 때 스웨덴은 이탈리아, 튀르키예, 벨기에와 함께 B조에 속해 있었다. 1차전에서 스웨덴은 벨기에에 1 : 2로 패배했고, 2차전에서 터키와 0 : 0 무승부를 거두며 8강 진출의 불씨를 살렸으나, 마지막 경기에서 그 조 끝판대장인 이탈리아에 또 다시 1 : 2로 패하며 1무 2패로 조 최하위를 기록해 허무하게 탈락했다.

이후 스웨덴은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유럽 지역예선에서 튀르키예, 슬로바키아, 마케도니아, 몰도바, 아제르바이잔과 함께 4조에 속했다. 비교적 수월한 조에 편성된 이점을 잘 살려 8승 2무(승점 26점)의 성적으로 조 1위를 차지해 1994 FIFA 월드컵 미국 이후 8년 만에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조 추첨에서 그만 헬게이트가 열려버렸다. 당초 유럽 지역예선 9조에서 1위를 차지한 잉글랜드가 톱 시드에서 탈락하면서 잉글랜드가 들어가는 조는 무조건 죽음의 조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게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스웨덴은 월드컵 본선보다 더 뚫기 어렵다는 초극악 난이도의 남미 예선을 당당히 1위로 통과한 아르헨티나와 아쉽게 톱 시드에서 탈락한 잉글랜드, 거기다 당시까지 카메룬과 아프리카 축구의 양대산맥이었던 나이지리아까지 들어간 역대 최악의 죽음의 조로 꼽히는 F조에 배정되고 말았다.

조 추첨이 끝난 직후 스웨덴은 나이지리아와 함께 이 조의 2약으로 꼽혔다. 즉, 어느 누구도 스웨덴의 16강행을 예상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라르스 라예르베크, 토미 소더베리 2인 감독이 이끄는 스웨덴은 이 예상을 과감히 깨부쉈다. 그 예상이 부숴질 조짐을 보인 건 일본 사이타마에서 열린 잉글랜드와의 1차전에서였다. 역대 최강의 스쿼드를 자랑하는 잉글랜드는 일본 관중들의 압도적인 응원을 등에 업고[2] 스웨덴을 몰아붙였고, 스웨덴은 막강한 수비로 버티기에 급급했다. 전반 24분, 잉글랜드의 솔 캠벨이 선제골을 넣으며 앞서갔지만, 스웨덴은 그 때까지 34년 동안 잉글랜드에 단 1번도 패배하지 않은 이른바 바이킹 징크스라는 역사를 갖고 있었다. 후반전 들어 잉글랜드가 잠그기 모드에 돌입하자 그 틈을 노린 스웨덴이 대반격에 나섰고, 결국 후반 14분에 니클라스 알렉산데르손이 동점골을 터뜨려 1 : 1 무승부를 거두었다. 이후 고베로 옮긴 스웨덴은 조 최약체로 꼽히는 나이지리아와 2차전을 치렀다. 당시 나이지리아는 1차전에서 아르헨티나에 0 : 1로 석패하여 반드시 이 경기에서 승점을 따내야지만 16강 진출을 노려볼 수 있었고, 스웨덴 역시 나이지리아를 잡아야 16강 진출을 노려볼 수 있었다. 그런데 전반 27분, 나이지리아의 줄리어스 아가호와가 먼저 선제골을 터뜨렸다.[3] 0 : 1로 끌려가게 된 스웨덴은 곧바로 반격에 나섰고 이후 전반 35분에 헨릭 라르손이 동점골을 터뜨렸고, 후반 18분에 또 헨릭 라르손이 역전골을 터뜨려 2 : 1 역전승을 거두었다. 이 경기에서 승리한 스웨덴은 아르헨티나를 1 : 0으로 이긴 잉글랜드와 승점은 4점으로 같았으나, 다득점에서 앞서 조 1위로 성큼 올라섰다. 한편 나이지리아는 이 패배로 인하여 탈락 확정. 이제 마지막 이 조의 끝판대장인 아르헨티나와의 3차전 경기가 남았다. 경기는 6월 12일, 미야기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1차전에서 나이지리아를 1 : 0으로 제압하며 기분 좋은 출발을 했지만 2차전에서 데이비드 베컴페널티킥 골에 무너지며 잉글랜드에 0 : 1로 패해 1승 1패의 전적으로 3위에 처져 있었다. 그러므로 반드시 스웨덴을 꺾어야지만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 닥공축구의 대명사 마르셀로 비엘사가 이끄는 아르헨티나는 경기 초반부터 이 대회 모든 팀을 통틀어 가장 강력한 공격력으로 스웨덴을 밀어붙였다. 스웨덴은 경기 내내 잠그고 버티는 수비로 일관했다. 전반전을 0 : 0으로 버티는데 성공한 스웨덴은 후반전 들어 간간이 역습으로 득점을 노렸고 마침내 후반 14분, 알렉산데르 스벤손의 프리킥 골로 오히려 1 : 0으로 앞서갔다. 1골을 앞서간 스웨덴은 다시 잠그기에 돌입했고 아르헨티나는 계속해서 공격적으로 밀어붙였으나 바위 같이 단단한 스웨덴의 수비를 좀처럼 뚫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하염없이 흐르던 중 후반 43분, 마침내 아르헨티나가 페널티킥을 얻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스웨덴의 수문장 마그누스 헤드만이 펀칭으로 선방해버렸다! 하지만 그 볼이 페널티 에어리어 오른쪽으로 흘렀고, 그 볼을 에르난 크레스포가 받아 재빨리 슛을 날려 동점골을 뽑아냈다. 1 : 1로 따라붙은 아르헨티나는 남은 시간 동안 사력을 다해 공격을 퍼부었으나 스웨덴은 조직적인 수비로 계속해서 걸어잠갔고, 결국 경기는 1 : 1로 끝났다. 1승 2무(승점 5점)를 기록한 스웨덴은 잉글랜드와 같은 승점을 기록했고 득실 차 역시 똑같이 +1이었지만 다득점에서 앞서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역대 최악의 죽음의 조에서 1위를 차지한 스웨덴은 단숨에 우승후보로까지 치솟았다. 거기다 당대 세계 최강이자 이 대회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프랑스, 아르헨티나, 포르투갈 등이 모조리 조기에 짐을 싸는 호재를 맞았으니 그보다 더 여건이 좋을 수가 없었다. 스웨덴의 16강 상대는 개막전에서 프랑스를 1 : 0으로 격파하는 이변을 일으킨 세네갈이었다. 오이타에서 열린 16강전에서 스웨덴은 전반 11분 만에 헨릭 라르손이 선제골을 터뜨리며 1 : 0으로 앞서갔다. 그러나 전반 37분, 세네갈의 앙리 카마라에게 동점골을 허용했고, 이후 정규시간 90분이 다 지나갈 때까지 양팀은 지루한 공방전만을 이어갔다. 경기는 결국 연장전으로 흘렀고, 스웨덴은 계속해서 세네갈을 몰아붙였지만 좀처럼 세네갈의 골문을 열지 못했다. 그러던 중 연장 전반이 다 끝나갈 때 세네갈의 역습에 수비진이 급격히 허물어졌고 결국 앙리 카마라에 골든골을 허용하며 1 : 2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결국, 스웨덴은 16강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2004년, 스웨덴은 UEFA 유로 2004에서 톱 시드를 차지했으나 또 다시 이탈리아, 덴마크, 불가리아와 함께 죽음의 조인 C조에 속했다. 1차전에서 스웨덴은 조 최약체 불가리아를 상대로 헨릭 라르손이 2골을 뽑아내는 맹활약을 보인 끝에 5 : 0으로 대파했다. 2차전에서는 이 조 최강으로 꼽히는 이탈리아와 1 : 1 무승부를 거두었다. 이제 이 조의 행보는 3차 방정식 수준으로 꼬이게 되었다. 우선 불가리아는 1차전에서 스웨덴에 0 : 5로 2차전에서 덴마크에 0 : 2로 패해 총 2패로 광탈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스웨덴과 덴마크는 모두 1승 1무(승점 4점)로 승점은 같으나 득실 차에서 스웨덴이 3골 더 앞서 조 1위에 있었다. 한편, 이탈리아는 덴마크와 스웨덴의 경기를 모두 무재배에 그쳐 2무(승점 2점)로 조 3위에 있었다. 즉, 3차전 결과에 따라 아직 3위에 머물고 있는 이탈리아가 조 1위가 될 수 있고 현재 조 1위인 스웨덴이 조 3위로 떨어져 탈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탈리아에서는 스웨덴과 덴마크가 서로 담합해서 자신들을 떨어트릴지도 모른다는 음모론을 퍼뜨렸고, 자신들이 그 담합하는 현장을 감시하겠다고 설레발을 떨었다. 과연 이탈리아의 말대로였는지 스웨덴과 덴마크는 2 : 2로 비겼다. 결국 이탈리아는 최약체 불가리아를 2 : 1로 이겨 1승 2무(승점 5점)를 기록하고도 상대 다득점에서 밀려 탈락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기록했다.[4] 그리고 스웨덴과 덴마크는 사이좋게 1, 2위를 나눠 가지며 8강에 올랐다. 그렇게 8강에 오른 스웨덴은 네덜란드와 맞붙게 되었다. 스웨덴은 네덜란드의 공격을 강력한 수비로 막아내며 정규시간 90분, 연장전 30분을 모두 버텨냈다. 그렇게 스코어는 0 : 0으로 끝났고 승부차기로 넘어갔다. 두 팀 모두 승부차기에 약한 팀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네덜란드가 3번 킥커까지 모두 골을 성공시킨 반면 스웨덴은 3번 킥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실축해 그 때부터 사실상 승부가 갈렸다. 그러나 스웨덴의 4번 킥커 프레드리크 융베리가 골을 성공시켰지만 네덜란드의 4번 킥커 필립 코퀴가 실축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양팀 5번 킥커는 모두 골을 성공시켜 서든데스로 넘어갔다. 그러나 스웨덴의 6번 킥커 올로프 멜베리가 실축한 반면, 네덜란드의 6번 킥커 아르연 로번이 골을 성공시켜 결국 스웨덴은 4 : 5로 패해 8강에서 탈락했다. 이 대회가 끝난 후 공동 감독이었던 토미 소더베리가 사임했다.

2006년, 스웨덴은 2006 FIFA 월드컵 독일 유럽 지역 예선에서 스웨덴은 크로아티아, 불가리아, 헝가리, 아이슬란드, 몰타와 함께 8조에 속해 8승 2패(승점 24점)의 전적을 기록했다. 7승 3무(승점 24점)를 기록한 크로아티아와 승점은 같았으나 둘의 맞대결에서 크로아티아가 2번 모두 1 : 0으로 승리했으므로 승자승에서 앞선 크로아티아가 1위로 본선에 직행했고 스웨덴은 조 2위로 본선에 진출했다. 전 대회에서 죽음의 조에 들어서 고생한 것에 대한 보상이었는지 이번 대회에서는 잉글랜드, 파라과이, 트리니다드 토바고와 함께 꿀조인 B조에 속했다. 스웨덴의 1차전 상대는 조 최약체 트리니다드 토바고였다. 스웨덴은 반드시 이 경기를 잡고 가야 했으나, 이게 웬일인지 전후반 90분 동안 18개의 소나기 슛을 퍼부었지만 상대 수문장 샤카 히즐롭의 괴물 같은 선방으로 인해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골문을 도무지 열지 못했다. 결국 0 : 0으로 비겼고, 대회 최약체로 꼽힌 트리니다드 토바고에 첫 승점을 선사시켜주는 굴욕을 당하고 말았다[5]. 2차전 상대는 1차전에서 잉글랜드에 0 : 1로 패한 파라과이였다. 스웨덴으로서는 이 경기마저도 이기지 못하면 16강 진출을 장담할 수 없었고, 파라과이도 이 경기를 패하면 얄짤없이 끝장이었다. 그래서 초반부터 공격적으로 나섰지만, 파라과이는 탄탄한 수비로 스웨덴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렇게 또 한 번 0 : 0 무재배로 끝나는 듯 했던 경기는 종료 직전 프레드리크 융베리의 결승골로 살아났다. 결국 스웨덴은 이 경기에서 파라과이를 상대로 1 : 0 신승을 기록해 2승을 차지한 잉글랜드의 뒤를 이어 2위로 올라섰다. 한편 파라과이는 탈락이 확정되었다. 이제 마지막 잉글랜드와의 경기가 남았다. 두 팀은 바이킹 징크스라는 악연으로 얽힌 팀이었다. 지난 대회에서도 스웨덴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지 못한 잉글랜드는 이번에야말로 징크스를 깨겠다는 각오로 초반부터 공격적으로 나갔다. 마침내 전반 34분, 조 콜이 선제골을 터뜨리며 드디어 그 지긋지긋한 바이킹 징크스를 깨는 듯했다. 그러나 후반 6분, 마르쿠스 알베크가 동점골을 터뜨리며 다시 한 번 바이킹 징크스의 생명력을 연장했다. 잉글랜드는 계속해서 공격적으로 나갔고 스웨덴은 버티고 역습하는 행태로 맞섰다. 팽팽하게 이어지던 경기는 후반 40분에 터진 스티븐 제라드의 골로 깨졌다. 2 : 1로 앞서간 잉글랜드는 이번에야말로 38년 동안 이어진 바이킹 징크스를 깨는 듯했다. 그래서 남은 시간 동안 수비를 강화하며 잠그기에 돌입했다. 그러나 잉글랜드는 마지막 5분을 버티지 못했고 종료 직전 헨릭 라르손이 밀어넣기 동점골을 터뜨리고 말았다. 결국 스코어는 2 : 2로 끝났고 스웨덴은 다시 한 번 바이킹 징크스를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다. 스웨덴은 1승 2무를 기록해 2승 1무를 기록한 잉글랜드의 뒤를 이어 조 2위로 16강에 올랐다. 스웨덴의 16강 상대는 개최국 독일이었다. 잉글랜드에 바이킹 징크스라는 기분 좋은 징크스를 갖고 있는 스웨덴이지만, 독일을 상대로는 오히려 게르만 징크스라는 기분 나쁜 징크스를 갖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스웨덴은 독일의 공격 축구에 초반부터 말려 버리며 전반 4분 만에 루카스 포돌스키에 선제골을 허용했고, 뒤이어 전반 12분에 또 포돌스키에 결승골을 허용하며 0 : 2로 패해 탈락했다. 하지만 라예르베크는 두 대회 연속 16강에 올려놓은 공을 인정받아 계속해서 감독직을 수행했다.

2008년, 라예르베크 감독이 이끄는 스웨덴 대표팀은 UEFA 유로 2008에 출전했다. 스웨덴은 티키타카로 전성기에 돌입한 스페인과 세계적인 명장 거스 히딩크가 이끄는 러시아, 전 대회 우승팀인 그리스와 함께 D조에 속했다. 1차전에서 스웨덴은 그리스와 맞붙어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페트릭 한손의 득점으로 2 : 0으로 승리했다. 2차전 상대는 이 조의 최강인 스페인이었는데, 이 경기에서 스웨덴은 1 : 2로 패했다. 이제 3차전 러시아와의 단두대 매치가 열렸다. 조 1위인 스페인은 이미 2승으로 8강 진출이 확정되었고, 그리스는 2패로 광탈이 확정되었다. 똑같이 1승 1패의 전적을 지닌 스웨덴과 러시아의 대결에서 마지막 8강 진출자가 가려지게 되었다. 스웨덴은 비기기만 해도 올라갈 수 있었지만, 러시아는 무조건 스웨덴을 이겨야만 올라갈 수 있었다. 결국 이기려는 자의 열망이 더 강했는지 스웨덴은 러시아에 0 : 2로 패배하며 결국 1승 2패로 조 3위를 기록해 탈락이 확정되었다. 이 때부터 라예르베크 감독의 입지는 점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UEFA 유로 2008을 끝낸 후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유럽 지역예선이 열렸다. 이 때 스웨덴은 덴마크, 포르투갈, 헝가리, 알바니아, 몰타와 함께 1조에 속했다. 그런데 스웨덴은 이 조에서 5승 3무 2패(승점 18점)를 기록하는데 그쳐 포르투갈에 승점 1점이 뒤지며 조 3위로 예선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이 조에서 1위를 차지한 덴마크에 2번 모두 0 : 1로 패한 게 타격이었다. 결국 라예르베크 감독은 남아공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스웨덴 국가대표팀 감독직에서 사퇴했다.

3.2.2. 나이지리아

이후 휴식을 취하고 있던 라예르베크 감독에게 일자리를 준 곳은 다름 아닌 나이지리아였다. 나이지리아는 2010년 1월에 2010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앙골라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둔 샤이부 아모두 감독을 해임하고 새 감독을 구하고 있었는데, 2010년 2월 26일에 결국 라예르베크 감독을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해 남아공 월드컵을 이끌도록 했다. 선수 시절 때는 물론 지도자 시절 때에도 자국 스웨덴을 떠나본 적이 없었던 라예르베크로서는 처음으로 외국에서 감독 생활을 하게 된 것이었다. 한편 이 때 조 본프레레 감독이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자리에 상당히 강한 욕심을 드러냈는데 결국 탈락하자 나이지리아 축구 협회를 향해 거칠게 비난했고, 더불어서 라예르베크를 향해서도 강한 디스를 날렸다. # 그러나 본프레레의 말이 결코 틀린 것이 아닌 게 라예르베크는 오로지 본국 스웨덴에서만 축구인 생활을 쭉 해 온 인물이라 아프리카 축구 스타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데다 월드컵 개막까지 불과 4개월도 채 안 남은 시점에서 갑작스레 지휘봉을 잡게 되어 자신의 팀을 만드는 것은 물론 스타일을 입혀줄 시간도 부족했다. 여기서부터 이미 그와 나이지리아의 몰락은 예견되어 있었다.

한편 남아공 월드컵에서 나이지리아는 아르헨티나, 대한민국, 그리스와 함께 B조에 속해 있었다. 나이지리아의 1차전 상대는 이 조의 최강자이자 대회 만년 우승후보인 아르헨티나였다. 아르헨티나의 가벼운 압승이 예상되었으나, 수문장 빈센트 엔예아마의 맹활약에 힘입어[6] 나이지리아는 아르헨티나의 맹공을 대부분 분쇄했으나 전반 5분에 허용한 가브리엘 에인세의 골을 뒤집지 못하며 결국 0 : 1로 석패했다. 그런데 경기 후 분석 결과 에인세의 결승골이 터질 때 아르헨티나 선수가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반칙을 범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결과적으로 반칙으로 넣은 골로 인해 억울하게 석패하게 된 것이었다. 2차전 상대는 이 조의 최약체 그리스였다. 두 팀 모두 1패를 안고 있었기에 반드시 이겨야만 16강 진출을 노려볼 수 있었다. 초반부터 공격적으로 나온 나이지리아는 전반 16분 칼루 우체의 골로 1 : 0으로 앞서갔다. 그러나 추가 득점을 하는데 실패했고 설상가상으로 사니 카이타가 상대 선수를 가격하는 행동을 해서 퇴장당해 수적 열세에 빠지게 되었다. 수적으로 불리한 상황까지 더해져 경기 내내 그리스의 역습에 잇달아 허를 찔리고 말았다. 그러다가 전반 44분에 디미트리스 살핑기디스에게 동점골을 허용했고 후반 26분 바실리스 토로시디스에 역전골을 허용하며 1 : 2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이로써 나이지리아는 그리스에 월드컵 첫 승 제물이 되는 굴욕을 겪었다. 이렇게 2패를 기록했지만 앞서 열린 경기에서 대한민국이 아르헨티나에 1 : 4로 패하는 바람에 3차전에서 대한민국을 잡으면 16강 진출을 노려볼 수 있었다.[7] 그렇게 대한민국과의 단두대 매치가 열렸다. 초반부터 공격적으로 나온 나이지리아는 전반 12분, 차두리의 실책을 놓치지 않은 칼루 우체의 번개 같은 쇄도로 선제골을 터뜨리며 1 : 0으로 앞서갔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 한국의 반격이 들어왔고 전반 38분, 세트피스 상황에서 이정수에 동점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그리고 후반전에 3분 만에 박주영에게 프리킥 역전골을 허용했다. 1 : 2로 뒤지게 된 나이지리아는 다시 공격적으로 밀어붙였고, 한국은 우주방어에 돌입했다. 후반 21분, 야쿠부 아이예그베니가 정말 좋은 득점 기회를 잡았으나 그만 니가가라 16강 슛을 하면서 땅을 쳤다. 그러나 후반 24분, 김남일이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범한 파울로 페널티킥을 얻어 야쿠부가 동점골을 터뜨렸지만 거기까지였다. 결국 2 : 2로 비기며 나이지리아는 1무 2패로 조 최하위로 탈락하고 말았다. 대회가 끝난 후 라예르베크 감독은 나이지리아 감독직에서 사임했다. 라예르베크 감독은 나이지리아 선수들을 향해 "통제할 수 없을 만큼 개인주의가 심했다."고 디스했다. #

3.2.3. 아이슬란드

감독경력 사상 최전성기, 빙하에 잠겨있던 변방의 땅을 북유럽 축구의 중심으로 이끌다

이후 라예르베크 감독은 아이슬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했다. 헤이미르 하들그림손 감독과 공동으로 감독을 맡게 된 것이다. 라예르베크로서는 2번째로 공동 감독 체제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인구 32만 명에 불과한 아이슬란드는 유럽에서 대표적인 축구 약체 국가였다. 라예르베크 감독이 부임하기 전에 치른 유로 2012 예선에서도 8경기에서 고작 1승 1무 6패(승점 4점)를 기록하는데 그쳤을 정도였다. 그러나 라예르베크 감독이 부임한 이후 아이슬란드는 점점 실력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유럽 지역예선에서 아이슬란드는 톱시드인 노르웨이를 비롯해 스위스, 슬로베니아, 알바니아, 키프로스와 함께 E조에 속했다. 아이슬란드로서는 다소 버거운 조였으나 놀랍게도 5승 2무 3패(승점 17점)의 전적으로 조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조 2위 팀들 간 순위에서 6위를 차지해 사상 최초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플레이오프 상대는 동유럽의 강호 크로아티아였다. 아이슬란드는 레이캬비크에서 열린 1차전에서 막강한 수비로 0 : 0 무승부를 기록했으나 자그레브에서 열린 2차전 경기에서 0 : 2로 패해 아쉽게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그러나 유럽 내에서 약체로 꼽히는 아이슬란드가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한 것만으로도 유럽에서는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2014년, 아이슬란드는 유로 2016 예선을 치르게 되었다. 이 때 아이슬란드는 네덜란드, 체코, 튀르키예, 카자흐스탄, 라트비아와 함께 A조에 속했다. 이 조에서 아이슬란드의 본선 진출을 예상하는 이는 드물었다. 아무래도 지난 월드컵에서 3위를 차지한 팀이자 명장 거스 히딩크가 지휘하는 네덜란드의 아성을 아이슬란드가 넘기는 어려워 보였고 체코와 터키도 저력이 있는 팀이라 아이슬란드는 잘 해봐야 3~4위 정도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라예르베크 감독이 이끄는 아이슬란드는 이 예상을 과감히 비웃어주었다. 1차전에서 아이슬란드는 터키를 3 : 0으로 대파하며 순항을 예고했고 2차전에서 조 최약체인 라트비아마저도 3 : 0으로 꺾어 2연승을 달렸다. 그리고 3차전 조 최강인 네덜란드와의 맞대결에서 2 : 0으로 깨는 기염을 토하며 3연승을 달렸다. 4차전 체코 원정 경기에서 1 : 2로 패하며 살짝 주춤하긴 했으나 5차전 카자흐스탄과의 경기에서 3 : 0으로 대승을 거두며 체코와 1위 경쟁을 계속했다. 6차전 체코와의 리턴 매치에서 아이슬란드는 2 : 1 승리를 거두어 사실상 1위 자리를 굳혔고 7차전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또 다시 1 : 0 승리를 거두며 6승 1패(승점 18점)의 전적으로 이 조에서 가장 먼저 본선 진출을 확정짓는 기염을 토했다. 이것은 아이슬란드 축구 역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이후 아이슬란드는 카자흐스탄, 라트비아와 무재배를 기록하며 승점 2점을 더 추가해 1위 자리를 굳혔다. 마지막 경기에서 터키에 0 : 1로 패하고 체코가 네덜란드를 3 : 2로 이겨 순위가 뒤집히긴 했지만 이미 본선 진출을 확정했기 때문에 별 의미가 없었다. 라예르베크 감독으로서는 감독 말년에 대박을 치게 된 것이었다.

본선에서 아이슬란드는 포르투갈, 헝가리, 오스트리아와 함께 F조에 속했다. 아이슬란드는 이른바 '얼음 수비'로 꼽히는 막강한 수비 축구로 1차전에서 조 최강인 포르투갈의 주포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봉쇄했고 결국 1 : 1 무승부를 거두어 첫 승점을 따냈다. 2차전에서 헝가리를 상대로 전반 40분에 넣은 길피 시구르드손의 페널티킥 골로 1 : 0으로 앞서간 뒤 강력한 수비로 헝가리의 공격을 봉쇄했으나 후반 43분에 터진 자책골로 아쉽게 첫 승 기회를 날렸다. 그러나 3차전에서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마침내 2 : 1로 첫 승을 거두어 헝가리에 이어 조 2위로 16강 진출에 성공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아이슬란드의 16강 상대는 축구 종가 잉글랜드였다. 아이슬란드는 전반 4분 만에 웨인 루니에게 페널티킥 골로 1골을 실점했으나 불과 2분 만에 라그나르 시구르드손이 동점골을 터뜨렸고 전반 17분에 콜베인 시그토르손이 역전골을 넣었다. 이후 아이슬란드는 특유의 '얼음 수비'를 발동했고 말 그대로 잉글랜드를 얼려버렸다. 결국 경기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아이슬란드의 2 : 1 승리로 돌아갔다. 이 경기가 끝난 후 잉글랜드의 감독 로이 호지슨이 사임했으니 아이슬란드의 완벽한 승리가 아닐 수 없다. 아이슬란드의 8강 상대는 개최국 프랑스로 정해졌다. 아이슬란드의 돌풍이 또 한 번 일어날 것인지 아니면 프랑스가 그 돌풍을 잠재울지 모든 이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아이슬란드의 돌풍은 8강까지였다. 프랑스와의 경기에서는 그 전까지 보여주었던 이른바 얼음 수비가 흐물흐물 녹아서 물 수비가 되었다. 아이슬란드는 전반 12분 만에 올리비에 지루에게 골을 내준 걸 시작으로 전반 19분에 폴 포그바, 전반 42분에 드미트리 파예, 전반 44분에 앙투안 그리즈만에게 각각 실점하며 전반전에만 0 : 4로 끌려갔다. 이 경기 전반전에서만 내준 골 수가 이전 4경기에서 기록한 전체 실점과 같았다! 후반전 들어 아이슬란드는 다시 반격을 가했고 마침내 후반 10분 만에 콜베인 시그토르손이 만회골을 넣어 스코어를 1 : 4로 좁혀보았으나 후반 13분에 또 올리비에 지루에게 실점하여 다시 스코어가 1 : 5로 벌어졌다. 그러나 아이슬란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후반 38분에 비르키르 비아르드나손이 만회골을 터뜨려 스코어를 2 : 5로 좁혔다. 이후 아이슬란드는 계속해서 프랑스를 몰아붙였지만 지능적으로 시간을 끌며 잠그는 프랑스의 수비벽을 넘지 못했다. 결국, 아이슬란드는 이 경기에서 2 : 5로 대패하며 8강에서 아름다운 도전을 끝내게 되었다.

그러나 인구 33만 명에 불과한 나라, 또 프로 축구 선수 숫자가 고작 100여 명에 불과한 나라 아이슬란드가 유로 본선에 올라올 것이라고 생각한 이는 드물었고 본선에 올라왔다 하더라도 8강까지 올라갈 것이라 예상한 이가 아무도 없었다는 점을 보면 비록 프랑스에 3점 차로 대패했다 하더라도 거기까지 올라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아이슬란드는 충분히 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다.

프랑스와의 경기가 끝난 후 라예르베크 감독은 "이번 대회는 내게 행복한 여행이었다."고 말하며 아이슬란드 대표팀 감독직에서 사퇴했다. 그야말로 박수칠 때 떠나라를 실천한 셈이다. 이 경기까지 2인 감독 체제로 이끌었던 아이슬란드 대표팀은 이제 헤이미르 하들그림손 감독 1인 감독 체제로 바뀌게 되었다. 라예르베크 감독은 이제 혼자서 팀을 맡게 된 하들그림손 감독이 아이슬란드를 잘 이끌어주길 당부하며 덕담을 건네고 떠났다.기사 링크

3.2.4. 노르웨이

이후 2017년 2월 1일 노르웨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복귀하였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20년 만에 본선 진출을 노리고 있는 노르웨이지만 현재 상황은 녹록지 않다. 4차전까지 겨우 1승 3패(승점 3점)를 기록하는데 그쳐 5위로 처져 있는 상태다. 최하위인 산마리노만 잡은 상태고 나머지 팀들에 다 패배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라예르베크 감독이라고 뭐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고 5차전에서 북아일랜드에 0 : 2로 패배하며 더욱 상황이 악화되었다. 반환점인 5라운드까지 1위는 5전 전승(승점 15점)인 독일이고 2위는 3승 1무 1패(승점 10점)인 북아일랜드, 3위는 2승 2무 1패(승점 8점)인 체코, 4위는 2승 1무 2패(승점 7점)인 아제르바이잔이며 5위가 바로 1승 4패(승점 3점)인 노르웨이이다. 5경기 남은 상태에서 승점 12점 차이인 독일을 넘기는 어려운 상황이니 현실적으로 플레이오프를 노려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 3승 이상을 거두어야 하는 상황이다.

6월 10일, 6차전에서 노르웨이는 승리가 절실했음에도 불구하고 체코와의 홈 경기를 1:1로 비겼고 2위인 북아일랜드는 아제르바이잔 원정 경기에서 1:0 승리를 거두어 두 팀의 승점 차는 9점으로 더욱 벌어졌다. 9월 1일에 치른 7차전 경기에서 노르웨이는 홈에서 아제르바이잔을 맞아 2:0 승리를 거두어 승점 3점을 추가했지만 북아일랜드 역시 최약체 산마리노를 3:0으로 격파하며 승점 3점을 추가해 여전히 두 팀의 승점 차는 9점으로 유지되었다. 그리고 9월 4일에 치러지는 8차전 조 최강 독일과의 경기. 이 경기를 어떻게든 잡고 체코가 북아일랜드를 잡아주어야 했으나 상황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노르웨이는 독일과의 경기에서 공수 양면으로 안좋은 모습을 보이며 0:6으로 대패를 당했고 북아일랜드는 홈에서 체코를 2:0으로 대파하였다.

그리하여 2경기 남은 시점에서 조 2위 북아일랜드의 승점은 19점, 노르웨이의 승점은 7점에 묶였고 두 팀 간 승점이 12점으로 벌어져 결국 예선 탈락이 확정되었다. 체코 역시 승점 9점에 불과해 2위 북아일랜드와 승점 차가 10점이 나므로 결국 예선탈락이 확정되었다. 10월 5일, 9라운드에서 조 최약체 산마리노를 상대로 8 : 0으로 대파를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이미 탈락이 확정되었기에 10라운드에서 북아일랜드를 100 : 0으로 이겨도 노르웨이는 본선에 진출할 수 없다.

2018년 3월 A매치데이 때는 24일에 호주를 상대로 4:1 역전승을 거두었다. 27일에는 알바니아를 1:0으로 이겼다. 5~6월 평가전때는 6월 3일 아이슬란드전은 2:3으로 가볍게 승리하고 6월 7일에 파나마도 1:0으로 눌렀다.

2020년 10월 UEFA 유로 2020 플레이어오프에서 세르비아에게 패하며 노르웨이를 이끌고 첫 국제 대회 진출에 실패했다. 이후 노르웨이 대표팀 감독직에서 내려왔고, 이것을 끝으로 축구계를 사실상 은퇴했다.

4. 전술 스타일

일단 그는 기본적으로 수비적인 전술을 선호한다. 탄탄한 수비를 바탕으로 역습을 펼치는 게 그의 기본 전술이다. 특히 공격적인 플레이를 주로하는 풀백들의 사용 방법에서 공격적으로 쓰기보다 빠른 발을 활용해 상대 공격수 침투에 순간적으로 발이 느린 센터백들의 뒷공간 커버를 대비하는데 많이 치중하는 편이다.

사실 스웨덴 뿐 아니라 북유럽 팀들이 대체로 수비 조직력을 바탕으로 역습을 펼치는 전술을 즐겨써왔다. 라예르베크 감독 역시 그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어쨌든 라예르베크 감독이 재임했을 당시 스웨덴은 비록 월드컵에서 다득점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끈끈한 수비 조직력 덕분에 2개 대회 연속으로 16강에 올랐다. 특히 그 중 한 번은 우주괴수 아르헨티나가 버티는 조였고 그 조에서 1위를 차지하기까지 했을 정도다.

다만 그는 모험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즉, 밀리고 있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과감한 승부수를 띄워 뒤집으려 하는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안정적이고 실리적인 축구를 선호하기 때문에 그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가 치른 메이저 대회에서 유난히 무승부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이 점은 한국의 허정무 전 감독과도 다소 유사하다.

수비축구 신봉자인데다 임기응변이 다소 떨어지는 편이라 경기 내용 자체는 지루하고 별 재미는 없지만 그래도 나름의 성과는 챙겨오는 전형적인 실리주의 감독이라 보면 된다. 그가 아이슬란드라는 유럽의 약체팀을 이끌고 대박을 치게 된 것도 약팀을 지휘하는데 알맞은 전술을 구사하기 때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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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EFA 유로 2008 참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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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EFA 유로 2016 참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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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회의 참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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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웨덴어에서는 J가 영어의 Y소리가 나며, 전설모음 앞의 G를 J로 읽는다. 유사한 예로 스벤예란 에릭손 감독도 과거에는 스벤고란 에릭손으로 알려졌다가 스웨덴어의 발음을 살려서 스벤예란 에릭손으로 표기가 바뀐 것이다.[2] 당시 같은 개최국이었던 한국의 관중들은 인기팀과 비인기팀 응원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으며, 특히 세네갈과 같이 경제 사정이 어렵고 지리적으로 멀어 오기 어려운 제 3세계 팀들 위주로 응원을 보냈다. 그러나 일본은 주로 인기 팀들만 응원했다. 특히 그 무렵에 잉글랜드 대표팀이 일본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는데, 그 당시 잉글랜드의 경기를 보면 그 경기가 일본에서 열렸는지 영국에서 열렸는지 헛갈릴 정도였다.[3] 이 때 아가호와가 선보인 백 덤블링 세레모니가 대회 최고의 골 세레모니로 선정되었다.[4] 이 부분에 대해서는 승자승 원칙 문서 참고.[5] 그리고 이게 16강에서 독일을 만나버리는 결정적 원인이 되고 말았다.[6] 경기를 봤으면 알겠지만 엔예아마의 선방쇼가 없었다면 최소 5-0 혹은 그 이상의 스코어가 나올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7] 아울러서 한국을 크게 이기고 2승을 기록한 아르헨티나 역시 나이지리아의 그리스전 경기 결과로 인해 16강이 100% 확정된 상태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