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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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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는 재임했던 감독들이 확인되지 않는 기간(1956년~196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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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수체육단
小白水體育團
파일:Kim Jong-hun 2010.jpg
<colbgcolor=#ff0000> 이름 김정훈
金正勳 | Kim Jong-hun
출생 1956년 9월 1일 ([age(1956-09-01)]세)
북한 평양시
국적
[[북한|]][[틀:국기|]][[틀:국기|]]
신체 미상
직업 축구선수(수비수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ff0000> 선수 4.25체육단(미상)
감독 4.25체육단(?~2007)
북한 대표팀(2007~2010)
소백수체육단(2011~불명)
국가대표 4경기 0골(북한 / 1973~1985)
1. 개요2. 감독 경력3.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이후 숙청설4.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북한축구선수 출신 감독.

2. 감독 경력

2010 남아공 월드컵 당시의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44년만에 북한을 월드컵 본선으로 이끈 감독이다. 2011년부터 소백수체육단 감독직을 맡았으나, 일가족이 행방불명되며 사실상 숙청당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1]

선호하는 전술 스타일은 파이브백이라는 두터운 수비를 앞세운 후 정대세 같은 준족의 공격수들로 역습을 하는 5-4-1 포메이션의 선수비 후역습 스타일이다. 이런 김 감독의 전술로 북한은 최종예선에서 단 7골만 넣고도 사우디아라비아, 이란이라는 만만찮은 상대들을 제치고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이후 44년 만에 본선행 티켓을 따냈고 본선에서도 브라질을 상대로 1:2로 접전을 펼치는 등 크게 선전했다.

하지만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후반전에 갑자기 팀 조직력이 와해되며 0:7로 대패하면서 바로 탈락이 확정되었고, 이 문제로 수용소 크리를 먹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이는 영국의 어느 찌라시 수준의 일간지에서 파비오 카펠로 감독을 조롱하는 기사를 냈는데, 이것이 와전되어서 마치 김정훈 감독이 혹독한 사상 비판을 받은 후 건설 현장에 끌려가서 강제 노동을 당하고 있는 것처럼 잘못 알려진 것이다.

사실 애초부터 그는 사상 비판을 받은 적도 건설 현장에 끌려간 적도 전혀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김 감독은 44년 만에 월드컵 진출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훈장까지 받았을 정도로 북한에서 영웅 대접 받던 사람이었고, 또 그는 대표팀 감독에 부임하기 전에 4.25 체육단 감독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월드컵이 끝난 후 계약이 만료되어 다시 원 소속팀인 4.25 체육단 감독으로 복귀했다고 한다.[2]

3.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이후 숙청설

그러나 위 문단의 내용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보도가 나왔다#. 북한 탈북자 출신이자 북한 소식에 정통한 주성하 기자의 보도에 따르면, 김정훈 감독이 월드컵 직후 평안남도 회창군에 있는 노동교화연대로 끌려가 강제노동을 당했고, 참가한 선수들은 1주일 동안 사상투쟁 회의를 하는 정도로 그쳤다고 한다. 이후 외신에서 김정훈 감독이 강제노동을 당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FIFAAFC북한축구협회에 사실확인을 요청했고, 그 해 8월경에 부랴부랴 김 감독을 평양 낙랑구역 보위사령부 초대소로 데려와 약 두 달간 휴양을 시킨 뒤에 11월 AFC 감독의 밤(Coach of the year) 행사에 참가시켜 외신보도가 거짓이라고 믿게끔 쇼를 했다는 것이다.[3]

이후 김 감독은 4.25 체육단의 2군팀인 소백수체육단 감독으로 강등당했고, 그 후 얼마 뒤에는 아예 북한 축구계에서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냥 은퇴를 한 것이 아니라 아내와 딸도 함께 사라져 버린 것이다. 즉 숙청당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직접적인 이유는 월드컵 대패가 아닌, 김정훈 감독의 아내가 김정훈 감독이 노동교화에 처해진 사이, 남편을 구명하기 위해 당간부들에게 탄원을 하러 다녔는데, 그 때 김정은의 생모인 고용희와의 무용단 시절의 친분을 어필한 것이 한창 후계구도에서 불안한 입지에 있던 김정은을 자극한 것이라는 것이다.

한국과 외국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졌지만, 북한은 아직도 김정은의 생모인 고용희에 대해서는 우상화를 가급적 자제하고 비밀주의로 유지되고 있다. 재일교포인 고용희가 김정은의 생모라는 사실이 북한에 널리 알려지면 김정은의 정통성의 근거인 백두혈통이 훼손되기 때문이다.

주성하 기자는 만일 김정훈 감독과 그 일가족이 죽지 않았다면 전부 정치범수용소로 보내졌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러나 북한발 소식통은 특성상 오보가 상당히 잦은 편이기에[4] (물론 무조건 거짓일 거라고 확언할 필요도 없다) 명확하게 확인된 것이 아닌 이상 현재로서는 한 귀로 듣고 흘리는 것이 낫다. 일단 현재까지 확인된 부분은, 2010년 11월 ‘AFC 감독의 밤’ 행사 이후 전혀 소식이 들리지 않는 것 정도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동정 여론도 있으나, 당시 천안함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되던 시기였으며 대한민국 측 기자의 질문을 '북한'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아예 무시해버린 적이 있기에 실력도 되지 않으면서 그리 인터뷰에서 고자세로 나오다가 수령님께 숙청당했다는 비판적 여론이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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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식적인 숙청 소식은 없으나, 굳이 혼자 행방불명된 것이 아니라 일가족 전체가 행방불명된 것은 물론 숙청 원인까지 공개되며 사실상 숙청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만약 숙청된 것이 사실이라면 시간이 오래 지난 현재는 어떤 방법으로 숙청되었든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2] 자료 출처: 북한 김정훈 감독, 4·25 체육단으로 복귀 확인[3]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에서도 이런 식으로 소련이 숙청설을 보도한 서방 언론을 망신준 사례가 언급된다.[4] 주성하 기자는 북한에 대한 상당한 전문가이긴 하나 그런 주성하 기자조차도 오보를 종종 내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