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기남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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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前 축구감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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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기남 文基男 | Mun Ki-nam | ||
<colbgcolor=#eeeeee,#191919> 출생 | 1948년 | |
평안북도 정주군 | ||
사망 | 2025년 8월 9일 (향년 77세) | |
국적 |
(1948~1998)
(1998~2025) | |
신체 | 키 173cm | |
가족 | 아버지 문정찬 (1926년생)[1] 어머니[A] 양아버지[3] | |
배우자 이창실 (1950년생) 장남 문경민[4] (1972년생) 장녀 문경희 (1975년생) 차녀 문유진[5] (1977년생) 차남 문경근[6] (1981년생) | ||
큰아버지 문정섭 (1919년생)[7] 작은아버지 문정필 (1934년생)[8] 작은아버지 문정길 (1935년생)[9] 외삼촌[A][11] | ||
학력 | 평양연극영화대학 (졸업) | |
직업 | 축구선수 (공격수 / 은퇴) 축구 감독 | |
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 북한 U-20 축구 국가대표팀 (1965~1976)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1974~?) 은파산체육단 (1981~1990?)[A] |
감독 | 은파산체육단 (1981~1990?)[A] 북한 U-20 축구 국가대표팀 (1990) 코리아 U-20 (1991) 북한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1999~2000) 울산대학교 축구부 (2005~2009) 울산대학교 여자 축구부 (2010~2025) |
1. 개요
북한이탈주민이자 대한민국의 축구 감독. 제14대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다.2. 생애
2.1. 북한서의 선수 및 감독 활동
1948년 평안북도 정주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문정찬은 광산 사무소장으로 일하다 1950년 4월에 조선로동당에 끌려간 뒤# 겨우 살아 돌아와 6.25 전쟁이 발발하자 삼촌들과 함께 월남하였고[14] 이후 외가가 있던 평양시에 피신하여 살기 시작했다.# 평양연극영화대학를 졸업하고, 외삼촌에게 축구를 배워 1965년 로동자체육단에 입단하여 스트라이커로 활동했다. 동년에 북한 U-20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1974 테헤란 아시안 게임에 국가대표로 참가했다. 하지만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이 발생하자 월남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량강도로 강제 추방 당했다.#이후 장성택의 비호를 받아 복권되어 조선로동당에 입당했고 1981년에 국가보위부 5국 소령이 됐다. 또한 은파산체육단에서 선수 겸 감독으로 활동했다.
1990년 U-20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아 아시아 청소년 축구 선수권대회 준우승을, 1991년 남북 단일팀 북측 코치를 맡아 포르투갈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대회에서 8강 진출까지 이끌었다. 이후 북한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아시아축구연맹 여자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준우승까지 이끌었다. 1999년부터 2000년까지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2000 AFC 아시안컵 레바논에도 진출을 실패하자 감독직에서 물러나 북한축구연맹경기처 상급부원으로 활동했다.#
2.2. 탈북 이후
2003년 8월 부인과 자녀들을 데리고 탈북하여 중국을 거치고선 2004년 1월에 한국으로 귀순했다.2005년 2월 정몽준의 추천으로 울산대학교 축구부 감독을 역임했다. 2005년 전국체육대회에서 준우승을 하여 지도자상을 수상했다.# 2008년 10월 3일에 열린 OB축구대회에 출전했다.
2009년까지 지휘봉을 잡다가 2010년에 울산대 여자 축구부 고문을 역임했다.
2.3. 사망
2025년 8월 9일 오후 10시경, 노환으로 사망했다. 향년 77세.#3. 여담
- 1991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입었던 유니폼이 2001년에 한 축구 수집가의 손에 들어갔다가 수원월드컵기념관에 전시됐다.#
[1] 생사불명으로 생존시 [age(1926-12-31)]~[age(1926-01-01)]세.[A] 황씨 또는 최씨로 추정.[3] 최씨로 추정.[4] 탈북 이전에는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 선수였다. 탈북 이후 연세대학교 체육교육과를 졸업했고 대한축구협회 3급 심판 및 3급 지도자 과정 이수. 현재는 개인사업자로 일하고 있다.[5] 개명 전 이름은 문용희.[6] 서강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고 성남 FC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었다. 현재는 서울신문 기자로 일하고 있다.[7] 생사불명으로 생존시 [age(1919-12-31)]~[age(1919-01-01)]세.[8] 생사불명으로 생존시 [age(1934-12-31)]~[age(1934-01-01)]세.[9] 생사불명으로 생존시 [age(1935-12-31)]~[age(1935-01-01)]세.[A] [11] 북한에선 축구를 잘했다고 소문난 사람이었다고 하나 현재는 생사불명이다.[A] 선수겸 감독.[A] [14] 이후, 문기남이 탈북한 후 아버지의 생사를 찾아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사망할 때까지도 생사를 찾지는 못했다고. 그래서 현재까진 문기남의 아버지와 삼촌들은 생사불명 상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