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9 16:24:38

밥 브래들리


밥 브래들리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둘러보기 틀 모음
대표팀
파일:미국 축구 국가대표팀 엠블럼.svg

37대
파일:Egypt_FA.png

42대
클럽
파일:뉴욕 레드불스 로고.svg

7대
파일:스완지 시티 AFC 로고.svg

47대
파일:로스앤젤레스 FC 로고.svg

1대
}}} ||
스타베크 포트발
Stabæk Fotball
파일:0316_spo_ldn-l-mls-note-1.jpg
<colbgcolor=#0079c1> 이름 <colbgcolor=white> 밥 브래들리
Bob Bradley
출생 1958년 3월 3일 ([age(1958-03-03)]세)
미국 뉴저지주 에섹스군 몬클레어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학력 프린스턴 대학교 (B.A.)
신체 177cm | 체중 76kg
직업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0079c1> 선수 프린스턴 타이거즈 (1976~1980)
감독 오하이오 대학교 (1981~1983)
버지니아 대학교 (1983~1984 / 코치)
프린스턴 대학교 (1984~1995)
미국 U-23 대표팀 (1996 / 코치)
DC 유나이티드 (1996~1997 / 코치)
시카고 파이어 FC (1998~2002)
메트로스타즈 (2003~2005)
치바스 USA (2006)
미국 U-23 대표팀 (2006~2007)
미국 대표팀 (2006~2011)
이집트 대표팀 (2011~2013)
스타베크 포트발 (2014~2015)
르아브르 AC (2015~2016)
스완지 시티 AFC (2016)
로스앤젤레스 FC (2017~2021)
토론토 FC (2021~2023)
스타베크 포트발 (2023~ )
경영 토론토 FC (2021~2023 / 스포츠 디렉터)


[clearfix]

1. 개요

미국 국적의 축구감독.

최초의 미국인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감독. 정작 본인은 미국 국적이 강조되는 부분이 그닥 마음에 안드는듯. 그도 그럴것이 브래들리를 주목하는 모든 언론 매체들은 하나같이 다 '구단주가 미국인이라서 골랐다', '프리미어리그의 미국인 개척자다'라는 표현을 써댔다. 실제로 인터뷰에서 그는 "나는 미국인 개척자가 아니라 그냥 축구 감독일 뿐이다" 라고 말했다. 즉, 미국인으로서 주목받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것. 하지만 성적부진으로 경질되었다. 이전에 이집트 축구 국가대표팀미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은 적이 있었다. 그가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기 전에는 주로 미국 대학 축구 리그나 MLS에서 감독이나 코치직을 맡았었다.

그의 아들인 마이클 브래들리스타베크 포트발의 코치를 맡고 있다.

2. 선수 경력 & 감독 경력

2.1. 미국 대학 리그

프린스턴 대학교를 졸업하고 축구 선수로 활동했다. 이후에는 프록터 & 갬블사[1]의 훈련 프로그램의 간부로 일하다가, 1981년에 오하이오 대학교의 스포츠 관리 프로그램에 합류했다. 그러다가 그는 NCAA 1부 리그[2]에 참가하는 팀중 하나인 오하이오 밥캣츠의 감독직을 시작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후에 버지니아 대학교의 감독인 브루스 아레나의 요청으로 버지나아 대학교 축구팀의 코치로 2년간 일했다. 그리고나서 그가 졸업한 대학인 프린스턴 대학교의 축구팀 프린스턴 타이거즈에서 11년간 감독을 맡으면서 아이비 리그 타이틀을 두번 따냈고 NCAA 컵대회에서 1회 우승을 기록했다.

2.2. MLS

1996년, 브래들리는 다시한번 아레나의 보조 역할을 하기 위해 새롭게 창단된 메이저 리그 사커D.C. 유나이티드에 코지직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이렇게 두 시즌을 보낸 뒤, 그는 시카고 파이어 SC의 사령탑으로 선임되었다. 1998년, 브래들리는 시카고를 MLS 컵과 US 오픈 컵에서 더블을 기록했다. 이 성과로 인해, 그는 1998년에 '올해의 MLS 감독상'을 수상했다. 그는 2000년에 시카고를 다시금 US 오픈 컵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MLS 2002 시즌이 지난 후, 브래들리는 자신의 집 근처에 있는 메트로스타즈[3]의 감독직을 맡기 위해 시카고 파이어 감독직에 사표를 냈다.

이후 브래들리는 메트로스타즈의 감독을 맡으며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내고 있었던 메트로스타즈를 2003년에 팀 역사상 최초로 US 오픈 컵 결승전에 올려보내고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는 등 기대치에 어울리는 팀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또한 결정적으로 브래들리 감독을 알리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그건 D.C.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였다. 브래들리 감독은 당시에 MLS에 존재하던 '골키퍼에 한해 4번째 교체를 할 수 있다'는 규정의 빈틈을 이용, 팀 하워드 골키퍼를 미드필더인 에디 게이븐으로 교체했다. 결국에 게이븐이 결승골을 기록했고, 당시 MLS 사상 최연소 골키퍼로 이름을 올렸다. 그는 이 편법으로 자신의 실용주의적인 면모를 드러내면서 동시에 유명세를 떨치게 된다.

2.3.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

8강 돌풍을 일으킨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과는 180도 대조적으로 미국은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 아무리 죽음의 조라지만 1무 2패에 조 꼴찌라는 경기 내용도 성적도 하나같이 실망스러운 모습으로 대회를 마쳤고, 브루스 아레나도 해당 대회에서의 부진의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했다. 이에 미국축구협회는 브래들리 감독을 팀의 임시 감독으로 임명했다. 브래들리는 미래에(아마도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을 위해) 향후 대표팀의 감독직에 지원할 것을 고려하고 있었다. 애초에 대부분의 관측자들과 일부 대표팀 선수들은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을 떠나 미국 대표팀을 이끌 것을 기대했지만, 클린스만 감독과의 계약 협상은 실패로 끝났다.[4] 많은 이들은 브래들리 감독을 차선책으로 보았지만, 그는 대표팀에 대다수의 젊은 선수들을 소집했고, 팀은 탄탄한 기반을 구축하게 되었다.

2007년 5월 15일, 그의 미국 대표팀 감독 커리어는 성공적으로 시작했다. 북중미의 맹주 멕시코를 상대로 2-0 승리한 것을 포함하여 그는 성공적으로 친선경기 일정을 보냈고, 결국 협회는 브래들리를 미국 대표팀의 정식 감독으로 임명했다. 그가 미국 대표팀을 정식으로 이끌면서 그의 성공가도는 계속되었다. 브래들리의 미국 대표팀은 2007 골드컵 결승전, 4개월 만에 멕시코와의 두 번째 라이벌 매치에서 맥시코를 2-1로 물리치면서 골드컵 우승을 따냈다. 미국 대표팀 감독으로서 첫 해에 브래들리는 5개월 동안 10게임 무패 행진을 포함해 12승 1무 5패의 기록을 세웠다.

미국 대표팀은 대부분이 젊은 MLS 기반의 선수로 구성된 명단을 내보냈지만, 골드컵 우승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2007년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하지 않으려 했다. 코파는 골드컵 후 2007년 여름에 미국이 참가 가능한 두 번째 대회였으나, 미국은 코파에 참가할 의무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에 미국 대표팀은 CONMEBOL에 초청을 받아 결국 코파에 참가하게 되었다. 팀은 토너먼트 개막전이였던 아르헨티나전에서 4-1로 브래들리 감독의 시대 이래의 첫 패배를 기록했다. 그 게임은 2006년 월드컵에서 가나전 패배 이후 일년이 넘는 기간 뒤에 치러진 브래들리의 첫 원정 경기였다. 미국은 파라과이, 콜롬비아에 차례로 패배하면서, 승점 없이 코파 아메리카를 마치고 돌아갔다. 미국은 또한 스웨덴과의 원정경기와 브라질과의 홈 경기를 연속으로 내주었다. 그러나 브래들리의 미국 대표팀 감독으로서의 첫 해는 스위스, 남아공 원정전에서 승리를 가져가면서 좋은 기록으로 마무리했다.

2008년 초에 브래들리의 미국 대표팀은 2010년 월드컵을 대비해서 세계적인 강호들과의 친선경기를 가졌다. 멕시코전에서 2-2 무승부 후, 미국은 스페인, 영국과의 원졍경기에서 각각 1-0, 2-0으로 패하고 아르헨티나를 홈으로 불러들였지만 0-0 무승부에 그쳤다. 미국은 월드컵 북중미 2차 예선전 에서 바베이도스를 홈에서 8-0으로 무너뜨리며 역사상 가장 큰 승리를 따냈고, 원정에서는 0-1 승리를 거두었다. 3라운드에서 미국은 과테말라, 트리니다드 토바고, 쿠바와 함께한 그룹을 지배했고, 트리니다드 토바고와 함께 4라운드에 진출했다. 4라운드는 그의 아들 마이클이 멀티골을 기록하여 라이벌 멕시코를 2-0 패배로 이끌며, 터프하게 시작했다.

2009년에 브래들리는 스페인을 2-0으로 무찌른 것을 포함하여, 35경기 무패행진과 15연승을 기록하면서 미국 대표팀을 2009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2위로 이끌었다. 2009 골드컵은 컨페더레이션스컵과 일정이 겹치면서 결국 브래들리는 결승전에서 2군팀을 이끌었고, 그 결과 라이벌 멕시코에 5-0 참패를 당했다. 그리고 2009년 8월에 열린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멕시코 시티에서 멕시코와 경기를 치르게 된 미국은 이 경기에서 2-1로 패하면서 멕시코전 연패를 기록했다. 그래도 마침내 미국은 온두라스를 원정에서 2-3으로 꺾으면서 2010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미국 대표팀은 C조에서 알제리를 상대로 1-0 승리, 잉글랜드와 슬로베니아를 상대로 각각 1-1, 2-2 무승부를 거두면서 8년만에 2라운드에 진출했다. 2라운드에서 가나를 만난 미국은 연장전까지 간 끝에 2-1로 패배하면서 아쉽게 월드컵 도전은 16강에서 끝났지만, 이 정도도 상당히 잘 했다고 칭찬을 받았다.

월드컵 후에 브래들리는 2014년 월드컵까지 미국 대표팀 감독 계약을 연장했다. 2011년 6월 골드컵에서 브래들리는 온두라스와의 2차전에서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대표팀을 이끌었는데, 멕시코전에서 2-0 리드를 달리다가 역전을 허용해 4-2로 패배했다. 결국 2011년 7월 28일, 그는 감독직을 내려놓게 되었다.

2.4. 이집트 축구 국가대표팀

2011년 8월 15일, 브래들리는 이집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게 되었다. 당시의 이집트는 2011 이집트 혁명이 지난지 얼마 되지 않아 다소 위험한 상태였고, 이집트 프리미어 리그[5]를 비롯한 모든 축구 리그 일정은 이집트의 포트 사이드 스타디움에서 일어난 소위 '이집트 축구 폭력 사태[6]' 때문에 FIFA의 제재를 받아 전면 중지된 상태였다. 이처럼 이집트가 어려운 환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집트에서 생활하기로 결정한 브래들리의 선택은 많은 이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초반 6경기는 완벽에 가까웠으나, 3라운드 플레이오프 가나전에서 완패를 당하며 아쉽게 탈락했다. 이집트가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하면서 브래들리는 지휘봉을 내려놓았고, 미국의 방송사 PBS에서 브래들리의 이집트에서의 도전을 담은 다큐멘터리, '아메리칸 파라오'가 방송되었다.

2.5. 스타베크 포트발 1기

스타베크는 브래들리가 맡은 첫번째 유럽 팀이였다. 2014년 1월 2일부터 감독직을 맡기 시작했다. 2015 시즌이 끝나고 그는 팀을 떠났다.

2.6. 르아브르 AC

2015년 11월 15일에 프랑스 리그 2르아브르 AC와 2년 계약을 맺었다.

2.7. 스완지 시티 AFC

파일:external/www.swanseacity.net/athn-bob-bradley-12-4x358-3349703.jpg

2016년 10월, 시즌 도중 성적 부진으로 프란체스코 귀돌린 감독이 경질되었고 그 후임으로 브래들리가 부임했다. 브래들리가 미국인이라는 점을 고려했을때 스완지의 새로운 구단주들인 제이슨 레빈과 스티븐 케플런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빅리그 경험이 전무한 브래들리 감독이 어떤 결과를 낼지 우려와 기대가 언론 매체에 집중됐다

그러나 부진한 경기력을 보이며 연이여 패배하는 모습을 보여 결국 시즌 도중 경질되었다. 이로써 스완지는 시즌에 3번째 감독을 물색하게 되었다.

2.8. 로스앤젤레스 FC

파일:BB_LAFC.jpg
MLS 신생팀인 LA FC의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미국 무대로 돌아가게 되었다.

2.9. 토론토 FC

2021년 11월 24일, 토론토 FC 감독 겸 스포츠 디렉터로 부임했다.

2023년 6월 26일, 감독 및 스포츠 디렉터직에서 경질되었다.#

2.10. 스타베크 포트발 2기

2023년 9월 10일, 스타베크 포트발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3. 여담

그의 동생 스캇은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시애틀 매리너스와 또다른 MLB의 3팀에서 선수로 활약했다. 현재 그는 프린스턴 대학교의 야구 코치로 활동 중이다.

또다른 동생인 제프는 ESPN과 뉴욕 데일리 스포츠에서 스포츠 저널리스트로 활동중이다.

그의 아들 마이클은 현재 스타베크 포트발에서 코치로 활동 중이며 이전에 에레디비시에, 분데스리가,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세리에 A 무대에서 활약했었다.

스완지 감독 부임 이후 본인의 전술 노트로 보이는 한 장의 사진이 올라왔다.

파일:브래들리_감독_전술노트_유출.jpg
이게 그 문제의 사진

해석하자면 4231 포메이션에서 기성용은 왼쪽 중앙 미드필더를 맡고 그의 파트너로 르로이 페르가 기용되며 각종 화살표가 기성용에게 집중되어 있다. 화살표의 의미로 파란색줄은 penetration, 침투를 의미하고 빨간색 줄은 Interlock으로 연계를 의미한다.

이를 토대로 해석하자면 빨간줄에서 기성용은 수비라인 쪽까지 내려가 볼을 운반하는 역할과 동시에 오른쪽 윙인 네이선 다이어나 최전방의 보르하 바스톤에게 롱패스를 하거나 왼쪽으로 패스길을 열게 된다. 파란줄에서는 앞으로 침투하기도 하고 그 뒷공간은 페르가 메우게 되며 페르는 박스 투 박스처럼 움직이고 기성용은 전체적으로 패스길을 열어주는 키 역할을 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사진은 커뮤니티 내에서 급속도로 퍼져버렸고 스포탈코리아같은 축구 전문지에서도 이를 다룬 기사를 썼으며 심지어 스포티비(!!!)에서도 중계 도중 언급되기도 했다고 한다. 국내 해축팬들은 당연히 기성용이 귀돌린 체제에서 벗어나 다시 스완지에서 주전으로 도약할지에 대한 기대를 모았었다.

하지만...

파일:다 거짓말이야.png

파일:다 거짓말이야2.png
이는 해축갤이 꾸며낸 자작인 것으로 밝혀졌다.

알고 보니 이 자작의 주인공은 스완지 5년차 팬이었고 최근 스완지의 부진에 대해 매우 답답해했으며 귀돌린 감독이 경질된 이후 심심해서 전술을 노트에 구상한 뒤 장난식으로 올렸는데 이게 인터넷에서 우연히 급속도로 퍼진 것이었다고 한다.해명글

자작인 것이 밝혀지자 기사까지 뜨고 말았고 몇몇 사람들은 박문성스렉코비치 이후로 또 하나의 희대의 낚시가 만들어졌다. 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브래들리 역시 스완지 감독직에서 물러나면서 의미가 없게 되었다.

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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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피앤지라고 잘 알려진 브랜드이다.[2] 미국의 대학 축구 리그[3]뉴욕 레드불스[4] 그런데 뜻밖에도 클린스만은 2011년 하반기, 브래들리의 후임으로 자리에 앉게 되었다.[5] 이집트의 축구 1부 리그[6] 이집트 최고의 라이벌로 꼽히는 알 마스리와 알 아흘리의 경기가 있었는데, 원정팬들이 홈 팬들을 자극하는 문구들을 걸어놓아 경기 종료 직후 팬들이 직접 경기장으로 뛰처나와 충돌한 이집트 축구 최악의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최소 73명이 사망했고, 최소 1000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그야말로 최악의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