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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토 내에 영구 거주자가 없어 관리소는 레위니옹의 생피에르에 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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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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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EE 코드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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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면적 118.3㎢
인구 498,003명 (2020년)
인구밀도 4,200명/㎢ (2020년)
시장

장 뤽 무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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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K로 촬영한 툴루즈
1. 개요2. 역사
2.1. 기원전 ~ 로마 시대2.2. 서고트 왕국 ~ 알비 십자군2.3. 프랑스 왕실령 ~ 프랑스 혁명2.4. 근대~오늘날
3. 특징4. 기후5. 교통
5.1. 시외교통5.2. 시내교통
6. 관광7. 스포츠

[clearfix]

1. 개요

파일:1280px-Toulouse_Capitole_Night_Wikimedia_Commons.jpg
파일:Rue_d'Alsace-Lorraine_(Toulouse).jpg
프랑스 남부 옥시타니 레지옹의 중심도시. 오트가론(Haute-Garonne) 데파르트망의 주도다.

도시 인구는 475,438명[1], 인근 지역만 포함한 도시권 인구는 약 75만명, 근교를 포함한 대도시권 인구는 1,330,954명[2]으로 파리, 리옹, 마르세유에 이어 프랑스 제 4위 규모의 대도시이다.

프랑스의 남서부 도시중에선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며, 상대적으로 젊은 층이 많이 거주하는 도시이기에 남프랑스의 햇살과 어울리는 활기찬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2. 역사

2.1. 기원전 ~ 로마 시대

툴루즈 지역에 인류가 거주하기 시작한것은 전기 구석기 시대부터이나, 실제로 마을을 이루고 생활하기 시작한것은 신석기 시대부터라고 추정되어지고있다. 기원전 3세기 중반부터는 이미 현재의 튀르키예인 지역에서 이주해온 골족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기원전 2세기에는 그들에 의해 처음으로 약 100헥타르 크기의 요새가 건설되어졌다. 이때부터 이미 툴루즈는 스페인과 이탈리아 지방에 거주하던 타 민족들과 상업적 교류를 하였던걸로 보여진다.

그러나 기원전 107년 로마가 이 지역을 점령하고, 골족은 맞서 싸웠으나 결국 패배했다. 이후 툴루즈는 로마가 점령하던 나르본 지방의 행정적이자 군사적인 수도로 발전했으며, 기원전 1세기에는 현재에도 유적이 남아있는 로마시대 구시가지가 처음으로 건설되어졌다. 그리고 기원후 30년까지 약 14,000석 규모의 원형극장을 비롯해 지금은 사라진 수많은 건물들, 그리고 도시를 둘러싸는 성벽이 지어지게 되었다.

서기 257년 순교자 성 사투르니노(Saturninus, Sernin[프랑스어], 축일 11월 29일)가 골족에게 복음을 전파하려다 이교도들에 의해 황소 뒤에 매달려 끌려다니다 순교한 사건이 일어났고, 그리스도교 공인 이후 그의 무덤이 있는 지금 자리에 그의 이름을 딴 생 세르냉 대성당(Basilique Saint-Sernin)이 지어졌다. 333년~334년에는 보르도에서부터 예루살렘까지의 성지순례 여정을 안내하는 "Itinerarium Burdigalense(보르도 여정)"이라는 문서가 작성되어졌는데, 여기서 처음으로 "Civitas Tholosa"라는 툴루즈의 구(舊)명이 현존하는 문서상에 언급되어졌다. 403년에는 지역에서 그리스도교가 부흥하면서 건축 자재로써 벽돌이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2.2. 서고트 왕국 ~ 알비 십자군

로마제국의 쇠퇴 후로 툴루즈는 서고트 왕국의 수도가 되었고, 507년의 부이에 전투로 프랑크 왕국클로비스 1세가 도시를 점령하기 전까지는 골족계 로마인과 서고트인들이 동거를 계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후 동쪽의 셉티메니아 대공국과 남쪽의 서고트 왕국을 스스로 견제해야할 필요를 느꼈고, 629년에 툴루즈 왕국(Royaume de Toulouse)을 세웠다가 얼마 안있어 프랑크 왕국 휘하 대공령(Grand-duché)으로 들어가며 7세기와 8세기까지 피레네 산맥에서 루아르(Loire), 호데(Rodez)에서 지중해까지 뻗어지는 넓은 영토를 자랑했다. 하지만 721년에는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하고 북쪽으로의 세력 확장을 꾀하던 우마이야 왕조와 프랑크 왕국이 격돌한 툴루즈 전투[4]가 벌어지고 나서는, 중세에 들어 카롤루스 대제에 의해 툴루즈 백국이 만들어지며 그것의 수도가 되었다.

1096년에는 교황 우르바노 2세가 생 세르낭 성당의 축성을 위해 도시를 방문하기도 하였다. 1152년에는 현재의 시청 및 시의회 역할을 하는 꺄피툴라(Capitoulat)가 만들어지고, 이것이 현재 툴루즈 시내의 꺄피톨(Capitole)이란 지명의 유래가 된다.1189년의 도시 반란 이후 금전적 부족과 외부의 위협때문에 백작령의 힘은 대폭 축소되었으며, 꺄피톨라는 현재의 시청 자리에 자신들의 첫번째 건물을 건설하게 된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인 1209년에 툴루즈가 속한 랑그독지방에서 카타리파가 힘을 얻자[5], 교황청은 카타리파를 믿는 랑그독지방의 사람들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토벌을 명령하며 알비 십자군을 일으킨다.

툴루즈는 십자군 초기에 레몽 6세가 카타리파 토벌에 협조하기로 마음을 바꿔 베지에와 카르카손이 점령당하는 와중에도 그나마 괜찮을수 있었지만, 1211년에 레몽 6세가 다시 파문당하며 십자군은 툴루즈로 향했고, 공성전 끝에 도시가 함락되자 그는 아들인 레몽 7세와 함께 도주했다. 이들은 지역 도시들의 반란을 주도하며 십자군과 대치했는데, 이 과정에서 십자군의 사령관 몽포트가 전사하고 교황이었던 인노첸시오 3세가 사망함에 따라 십자군은 일단 랑그독 지방에서 물러난다. [6]

1222년에 레몽 6세가 사망하자 툴루즈의 백작자리는 그의 아들인 레몽 7세에게 계승되었으나, 그또한 아버지처럼 3년 후 파문당한다. 당시 프랑스 왕국의 왕이었던 루이 8세는 직접 군대를 지휘하고 남하하며 수많은 도시들을 항복시켰고, 공성전 끝에 끝내 아비뇽까지 점령하였지만 1226년 사망한다. 뒤이어 즉위한 나이어린 루이 9세의 섭정인 블랑카 데 카스티야[7]는 레몽 7세의 외동딸과 루이 9세의 남동생을 결혼시켜 이 둘의 자손에게 툴루즈 백작을 계승하는 방안을 제시했고, 결국 1229년에 프랑스 북부의 모(Meaux)에서 만나 협정을 체결했다. 이 때 그가 프랑스 왕실에 잡혀 고문당하다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레몽 7세는 이후로도 툴루즈 백작령을 되찾기 위해 애썼지만, 결정적인 문제는 작위를 물려줄 아들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두번의 이혼을 불사하면서까지 자식을 갖고자 했으나, 결국 실패했고 1249년에 사망해 툴루즈는 루이 8세의 8남 알폰소에게 귀속된다. 이후 알폰소와 잔느 역시 1271년 8차 십자군 도중에 자식없이 사망함으로써 툴루즈 백작령은 프랑스 왕실영토에 흡수되었다.# 같은해에는 툴루즈 대학(Université de Toulouse)이 최초로 설립되어 교육 중심지로써 가동하기 시작하기도 했다.

2.3. 프랑스 왕실령 ~ 프랑스 혁명

14세기에 들어 툴루즈는 프랑스 왕실의 지원아래 프랑스 제 4의 도시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1337년에 백년 전쟁이 시작되고, 1348년과 1361년, 게다가 15세기에도 흑사병이 창궐하면서 도시는 약탈과 강도질을 비롯한 위험에 시달렸다.

15세기 말부터 16세기까지의 르네상스 시기동안에 툴루즈는 파스텔 제조산업이 발달하면서 호황을 누렸다. 장 베르누이 저택이나 아세자트 저택같은 고급 건축물이 많이 지어진것도 이 시기였다. 그러나 16세기 말인 1560년에는 위그노들과 천주교도들 간의 큰 분쟁이 일어났고, 1562년에는 여왕 칙령으로 위그노들이 도시 밖으로 추방당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학살당했고, 그들의 집 또한 약탈당했다.

17세기에는 가톨릭이 대단히 번성하여, 현존하는 교회중 대다수도 이때에 건설된 것이다. 특히 이 시기에는 퐁 뇌프(Pont neuf)와 꺄날 뒤 미디(Canal du Midi)등 현재에도 툴루즈의 명물로 남아있는 사적들이 지어지기도 했고, 또한 오를레앙의 가스통과 함께 내란음모를 꾸미던 몽모렁시의 앙리 2세(Henri II de Montmorency)가 툴루즈의 꺄피톨 광장에서 처형된것도 이 시기인 1632년이기도 하다.

1762년에는 프로테스탄트가 광장에서 수레바퀴형으로 잔혹하고 정당치 못한 방법으로 처형된 칼라 사건(Affaire Calas)이 일어났다. 볼테르가 이 사건을 두고 "Pièces originales concernant la mort des Srs Calas"라는 문서를 작성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프랑스 혁명기간동안 툴루즈는 몇 번의 작은 약탈사건이나 성벽 공격을 제외하고는 그리 심각한 손실을 입지 않았다. 이 시기에 시의회가 다시 힘을 얻기 시작하기도 했다. 1799년에는 2016년의 레지옹 변경 전까지 쓰이게 되는 "오뜨-갸론"레지옹이 처음으로 구성되어졌고, 툴루즈는 이 레지옹의 수도(chef-lieu)가 되었다.

2.4. 근대~오늘날

1814년에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 의해 만들어진 프랑스 제국대영제국, 스페인 왕국포르투갈 왕국이 툴루즈에서 격돌한 "툴루즈 전투"가 있었고, 나폴레옹의 추락 이후 루이 18세가 재림했을 시기에는 공화주의자와 왕정복고주의자가 도시 내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첨예하게 대립하기도 했었다.

이후 툴루즈에서 도시사회주의가 득세한데 이어 프랑스의 유명 사회주의 정치인인 장 조레스가 "라 데페슈 뒤 미디"라는 현재에도 남아있는 신문을 창간했고, 1856년에는 처음으로 철도역이 생겨나고 19세기와 20세기에 이르기까지 그랑 바자르등을 비롯한 수많은 대형 상점들이 툴루즈 시내 곳곳에 생겨나게 된다.

3. 특징

본래 풍부한 지하 자원을 토대로 한 제철 산업이 발달하였으나, 철광석의 고갈로 인하여 서서히 제철 산업은 쇠퇴하고, 현대에는 프랑스, 더 나아가 유럽 항공우주 산업의 중심지로 발돋움하였다. 에어버스 항공기들이 항상 그리워 하는곳. 세계 여객기 시장을 미국보잉과 양분하는 유럽 최대의 항공기 제작사이자 방위산업체에어버스의 본사와 공장이 툴루즈에 있을 정도. 항공기 동호인들은 에어버스 본사 견학을 위해 툴루즈에 들리기도 한다. 물론 별도로 미국중국에도 공장이 있다. 툴루즈의 항공기 제조업은 역사가 깊어서, 1937년 설립된 국영 회사 SNCASE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 국립 항공우주대학 인근에는 우주과학기술관(Cité de l'espace)도 위치한다. 프랑스와 유럽의 우주기술력을 대표하는 아리안 로켓, 러시아의 소유즈와 미르 우주정거장 일부를 비롯하여 다양한 전시물들이 있다. 미국 워싱턴의 스미소니언에 비해서는 좀 뒤질지 모르지만, 유럽에서는 단연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몽펠리에처럼 전통적인 대학도시로 이름높은 곳이며, 1229년에 처음 문을 연 툴루즈 대학은 파리 대학에 이은 프랑스 사상 2번째의 대학이기도 하다. 2019년에는 l'Etudiant.fr 선정 프랑스 최고의 학생 도시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8] 현재도 시의 중심 국립대학들인 툴루즈 1대학(캬피톨)[9], 2대학(장 조레스)[10], 3대학(폴 사바티에)[11]은 전세계 대학순위에 꼭 등장한다. 이 셋은 원래 하나의 대학이었기도 했기에 다른 프랑스 도시별 대학들처럼 서로간의 협력 또한 활발하다. 프랑스 국립 항공대학교인 ENAC도 이곳에 위치해있다.

프랑스의 유명 소설가인 베르나르 베르베르도 툴루즈 출신이다.

4. 기후

남프랑스인 관계로 대체로 기온이 좋으나(온난습윤기후로 1월 6.3도, 8월 22.8도), 지중해성 기후와 북해 공기가 충돌해 비가 간혹 오기도 한다. 한겨울(1월)에도 외출용 코트만 걸치고 나갈 수 있을 정도로 날씨가 온난한 편(평균 10도 안팎). 하루 종일 해를 볼 수 없는 파리에 비해서는 낫긴 하지만, 그래도 겨울에 부슬비가 많이 내리긴 한다. 대신 파리보다는 덜 우중충한 상태에서 비가 내리는 것.

5. 교통

5.1. 시외교통

중앙 기차역은 툴루즈 마타비오(Toulouse Matabiau)역이며, 현재 파리와 직접 연결되는 TGV 전용선[12]은 없지만, 파리 몽파르나스역을 출발하여 보르도까지는 고속선, 이후 재래선을 경유하는 TGV 노선이 운영중이며, [13] 또한 마타비오와 파리 오스테를리츠역을 연결하는 야간열차 노선 또한 존재한다. 일반 열차로는 보르도, 마르세유 방면이 운영중이며, 바르셀로나행 국제선 고속열차도 운행되고 있다.

마타비오 역 바로 옆에는 버스 터미널(Gare Routière)이 위치해 있는데, 파리리옹을 비롯 마르세유, 낭트, 보르도 같은 프랑스 내 다른 도시들은 물론 바르셀로나, 사라고사, 안도라라베야, 마드리드, 리스본이베리아 반도의 도시들로 가는 국제버스 노선들 또한 존재한다.

항공노선 같은 경우에는 툴루즈 블라냐크 국제공항을 통해 인접한 스페인은 물론 영국, 독일, 이탈리아, 포르투갈을 비롯 서유럽&동유럽과 이어지는 항공편들이 상당수 있고, 알제리모로코, 튀니지등 북아프리카행 항공편또한 다수 존재한다. 물론 이 이외에도 튀르키예이스라엘, 캐나다등 여기 다 적기엔 너무나도 많은 행선지가 있다.

특히 오를리 - 툴루즈 항공편은 프랑스 국내선에서 왕래가 꽤 잦은 구간이다. 당연히 리옹이나 마르세유같은 대도시와는 비할 바는 못되지만, 툴루즈는 프랑스 남서부 항공, 철도, 도로 교통의 중심축이다. 에어프랑스와 에어프랑스의 저비용 브랜드 HOP! 는 물론, 이지젯까지 왕복 일 5편 이상씩 꾸준히 날리고 있어 접근은 용이하다. 특히 출장객들이 많이 이용하기 때문에 평일 주말 상관 없이 항상 비행기를 가득 채워서 운행한다. 물론 샤를 드골 공항으로 가는 항공편도 있으므로, 혹시나 이곳을 여행하려는 자가 있다면 CDG 착발 국내선을 이용하면 편리하다. 비용은 ORY에서 2만 원가량 비싸다.

5.2. 시내교통

지하철, 트램, 버스가 운행되고 있으며, 도시권에 속하는 콜로미에(Colomiers), 뮈레(Muret), 에스칼켕(Escalquens)와 툴루즈의 시내의 역간에는 각각 C선, D선, F선이라 명명되는 SNCF가 운영하는 통근열차가 다니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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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루즈 지하철 A선

기타 시내교통의 운영주체는 티세오(Tisséo)로, 지하철의 경우에는 툴루즈의 남서-동을 연결하는 A선과 북-남동을 연결하는 B선이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의정부 경전철에 사용되는 중소규모 무인열차인 VAL208이 다니고 있으며, 이전까지는 편당 2량밖에 없어 배차간격을 촘촘히 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실어나르고 있었으나, 출퇴근 시간대는 물론 평소에도 영 부족한지 2020년 1월 10일부터 편성당 차량 2대를 더 붙여 4량짜리 열차로 운행을 시작하였다. [14] 지하철 내 안내방송은 프랑스어오크어가 함께 나온다.#

2019년 12월 기준으로는 B선 일부 역에서도 승강장 확장 공사가 진행중이다. 장기적으로 B선또한 편당 칸수를 늘려나갈 예상으로 보인다. 또한 시 서쪽 위성도시 콜로미에(Colomier)와 툴루즈시 북쪽의 라바슈(La Vache)를 거쳐 중앙역이 있는 마렝고(Marengo)를 지나 시 남동쪽 경계부근의 라 카덴(La Cadene)으로 향하는 총길이 27km의 3번째 지하철 노선계획이 2025년 운행을 목표로 진행중이다. 가칭은 Toulouse Aerospace Express로, 여러 행정절차들이 마무리 되면 2020년부터 첫 삽을 뜨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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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루즈 트램 T1선

트램의 경우에는 T1선과 T2선 두개가 있는데, 두 노선 모두 툴루즈 중심에 있는 지하철 B선과의 환승역 팔레 드 쥐스티스(Palais de Justice)에서 출발해 위성도시 블라냐크(Blagnac)를 거쳐 앙셀리(Ancely)역에서 분기되어, 각각 항공박물관(Aeroscopia)이 있는 아에로콩스텔라시옹(Aéroconstellation)과 툴루즈 블라냐크 공항으로 향하게 된다. 지하철과는 달리 트램은 배차간격이 기본 10분정도 될정도로 긴데다가 공항 및 주변 위성도시와 툴루즈의 연결을 주목적으로 건설되었기에 관광객들이 사용할 일은 그리 없다.

티켓은 티세오 운영 모든 대중교통에서 사용 가능하며 1회권, 2회권, 종일권, 2~3일권 등등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존재하고, 조금 비싸다. 하지만 시내 곳곳에 있는 티세오 사무실에 가서 파스텔 카드(Pastel)를 발급받아 정액제를 사용하면 말도 안되는 수준으로 요금이 저렴해지는데[15], 장기체류시에는 꼭 소정의 발급비를 내고서라도 카드를 받아 사용하자.

자전거의 나라 프랑스답게 벨로툴루즈(VélÔToulouse)라는 공영 자전거 시스템을 운영중이며, 무인대여기 및 거치대가 시내 곳곳에 있다.

6. 관광

역사적으로도 로마시대부터 내려는 긴 역사를 자랑하며 중세부터 현대까지 프랑스에서 상당히 중요한 도시인지라 문화 유산도 많고 교통 인프라도 괜찮음에도 한국에서 관광지로서 인지도가 별로 높지 않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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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루즈를 장미의 도시(Ville rose) 혹은 보라색의 도시(Cité des violettes)라는 별명으로도 부르곤 하는데, 툴루즈의 대부분 건축물이 적황색 벽돌로 지어졌기 때문. 이는 툴루즈 중심가인 캬피톨(Capitole)에 가면 여실히 느낄 수 있다. 해당 문서의 맨 위에 실린 사진에서 볼수 있듯이 시청 앞의 광장은 물론 골목 구석까지 모든 건물들이 붉은 벽돌로 지어져 있어, 낮에 해가 빚추면 반사되는 벽돌의 색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전형적인 남프랑스의 생동감을 여실히 보여주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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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 운하 (Canal du Midi)

중심부에서는 가론 강(Garonne)을 비롯해 위에 언급한 유니크한 시내 풍경부터가 이미 볼거리이며, 1600년대 중반에 건설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운하인 미디 운하(Canal du Midi)에서 떠다니는 하우스보트들의 풍경 또한 일품이다.

엄연히 대도시인지라 국제 축구경기라도 열리면 시내가 응원관광 온 사람들로 초만원이 된다.

요리에 대해 말하자면 스페인, 특히 카탈루냐 지방과 가까워 [16] 그에 영향을 받은 음식들을 대접하는 식당들이 아주 많은데, 대표적인 툴루즈 지방의 지역요리로는 까술레(Cassoulet)라는 강낭콩과 소고기를 이용한 요리가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중 하나인 아를 길(Route Arles)의 중간기착지이다. 로마, 니스, 아를, 몽펠리에에서 출발하는 순례자들은 이곳을 꼭 거치게 되어있으며, 이곳에서도 마찬가지로 순례 도장을 찍어주며, 조개껍질 길안내가 골목에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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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세르냉 성당 (Basilique Saint-Sernin)

툴루즈의 순례길 지정 성당은 생 세르냉 성당으로, 12세기 중세시대 때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져 사료 가치가 매우 높으며 해당 양식의 사원으로는 유럽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중세 시대 문화재를 여럿 가지고 있다. 높은 석조탑이 도심에서 눈길을 끌며, 화려하고 우아한 고딕 양식의 성당과 달리 내부는 수수하고 정갈하다. 문쪽에는 세계지도가 펼쳐져 있어, 각지 순례인들이 자신의 국가에 스티커를 붙여놓았다. 당연히 한국에서도 이미 여럿 거쳐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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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뱅 수도원 (Couvent des Jacobins)

또한 시내에 위치한 자코뱅 수도원은 1230년에 건축된 도미니코회의 총본산이며, 신학자토마스 아퀴나스의 유해 및 묘소가 있는 장소이고, 캬피톨 광장 인근에는 생텍쥐페리가 조종사 시절 툴루즈에 왔을때 묵곤 했던 "그랑 발콩"이라는 호텔이 있다.

주변 도시로는 차량과 철도를 통해 보르도 또는 지중해 연안의 페르피냥 등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근처 1시간 거리에는 프랑스의 경주시 급인 카르카손 역사보호지구가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기원전부터 지어진 거대한 요새 도시이다. 요새 내부에는 아직도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어 하나의 역사 도시이며, 많은 프랑스인들이 꼭 한번쯤 여행을 가는 필수 여행지이기도 하다.

7. 스포츠

프랑스에서 역사적으로 럭비의 인기가 상당히 많은 도시 중 하나이며, 스타드 툴루쟁(Stade Toulousain)이라는 프랑스, 아니 유럽 탑급 럭비팀의 연고지이기도 하다. 스타드 툴루쟁은 프랑스 프로 럭비 대회인 TOP 14에서 23번의 우승을 차지했고, 유럽 유러피언 럭비 챔피언스 컵[17]에서 6번의 우승을 차지하는 등 유럽에서 가장 강한 럭비팀 중 하나이다.

축구팀으로는 툴루즈 FC가 있다.

[1] 2016년 1월 1일 조사 기준[2] 2015년 1월 1일 조사 기준[프랑스어] [4] 결과는 우마이야 왕조의 북진 저지 성공[5] 2년 전이었던 1207년엔 툴루즈의 백작 레몽 6세가 파문당하기도 했다. 1208년에 레몽 6세는 교황특사인 피에르 드 카스텔뇌를 만났으나, 격렬한 논쟁끝에 그를 살해하였고 교황은 이를 빌미로 랑그독 사람들을 이단으로 규정해 토벌을 명령했다. 하지만 사실 본래 목적은 정치적인 의도가 다분한 것이었고, 카타리파는 프랑스 왕국교황청의 이해관계가 일치했을때 있던 좋은 빌미였을 뿐이다.[6] 이를 레몽의 반란이라고 한다.[7] 루이 8세의 부인이다.[8] 학생들의 수 및 일자리 수의 증가 등에서 최고점을 받았다.[9] 툴루즈의 중심지인 캬피톨, 즉 시청 근처에 위치했기에 붙은 이름이다. 주로 법학경제학을 담당한다. 도심에 위치한 탓에 캠퍼스 규모는 세 대학중 가장 작다.[10] 주로 인문학사회과학 등을 담당하며, 캠퍼스 규모는 세 대학에서 딱 중간정도이다. 대학의 이름에서 알수 있듯 프랑스의 유명한 사회주의 사상가인 장 조레스의 이름에서 따온것인데, 이것은 그가 당시 툴루즈 대학에서 현 툴루즈 2대학이 담당하는 분야중 하나인 인문학 교수였기 때문이다.[11] 주로 컴퓨터공학화학등 이과계열과 의예과를 담당하며, 세 대학중 캠퍼스 규모가 가장 크다. 대학 이름은 툴루즈 출신이자 1912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유기화학자이자 前 툴루즈 대학교수인 폴 사바티에#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그는 1884년부터 1930년까지 무려 46년의 기간동안 대학 화학과를 담당하고 있었다. "사바티에 반응"으로 명명된, 현재에도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을 만들어내기 위해 사용하는 화학반응을 처음으로 발견하였다.[12] LGV[13] 파리 몽파르나스 - 툴루즈 마타비오 간 약 4시간 10분 소요[14] A선 한정[15] 특히 학생요금제, 31일간 대중교통 정액요금이 10유로밖에 되지 않는다. 카드발급시 학생증 등 증명서류 필요[16] 스페인 내전 당시 스페인 난민들이 이 곳에 정착했다는 얘기가 있다. 대표적으로 공화 정권 하에 보건부 장관을 지낸 페데리카 몬세닐이나 생물학자 암파로 포슈가 여기 정착했다고 한다.[17] 前 하이네켄 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