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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본위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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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원리3. 종류4. 장단점
4.1. 장점4.2. 단점
5. 역사
5.1. 19세기 열강의 금본위제 도입5.2. 제1차 세계 대전대공황5.3. 브레턴우즈 체제(1944~1971)5.4. 닉슨쇼크와 브레턴우즈 체제의 종말
5.4.1. 문제점5.4.2. 대처법
5.5. 이후
6. 금본위제 폐지 이후 변동환율제의 문제점7. 여담

1. 개요


금본위제도( / Gold standard)는 화폐 단위의 가치와 의 일정량의 가치가 등가관계(等價關係)를 유지하는 본위제도이다. 비슷한 제도로 은본위제도가 있다.

이 제도는 1717년 영국아이작 뉴턴이 조폐국장 재직때 영국중국에서 비단도자기 수입으로 이 지불수단이 되어 시중에 이 부족하자 금본위제를 주장하며 의 교환비를 임의로 1:15로 정한 것이 시작이다.

2. 원리

을 직접적으로 화폐로 이용한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또한 안정적이고 가치가 높은 금화의 유통은 국가의 경제를 떠받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다음은 그중 유명한 것들이다.

근현대에는 대영제국이나 미국과 같은 패권국가의 화폐를 일정량의 으로 바꿀 수 있도록 교환 비율을 정하고, 다른 나라들이 자국의 화폐를 그 강대국의 화폐와 연동하는 식으로 펼쳐졌다. 간단히 말하자면 중앙은행이 통화량과 같은 을 보유하고 있고, 지폐를 가져오면 일정 비율을 금으로 바꿔주는 것이다. 예컨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71년까지 유지되었던 브레튼우즈 체제의 경우, 35 미국 달러중앙은행에 주면 1온스를 얻는다. 일반인이 금을 가져간다고 해서 받아 주는 것은 아니다.

귀금속의 일종으로서 공급이 상당히 제한되어 있었기에 패권 국가가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개방 경제 체제 하에서 금본위제는 세계 경제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제도가 된다. 19세기 중엽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영국 중심의 고전적 금본위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70년대 초반까지 유지되었던 미국 중심의 고정 환율제(브레튼 우즈 체제)가 그 좋은 예이다.

금본위제 시행 이전엔 을 동시에 사용하는 복본위제가 운영되었다. 즉 , 혹은 을 법정화폐로 동시에 인정하는 것이다. 유럽에서 경제력이 강한 영국프랑스는 금은복본위제. 이 부족하거나 동이 풍족한 스웨덴러시아는 은동복본위제를 운영했다. 이 경우 시장에 통화가 부족한 일이 일어나기 어렵지만 대신 국제시장에서 은 시장가격과 해당국가 법정 교환비가 다른 경우가 생겨난다. 이 경우 차익거래를 통해 가치가 올라간 화폐를 녹여서 상품으로 전환하거나 가치가 내려간 화폐만 시장에 도는 상황이 생긴다. 이를 발견한 것이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는 그레샴의 법칙이다.

3. 종류

  • 금화 금본위제도(gold coin standard)
    금화 자체가 화폐로서 시장에 유통되는 제도다. 금화의 주조와 융해가 가능하기에 금의 가치가 곧 화폐의 가치가 된다. 금본위제 중 가장 원시적인 형태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많이 나타났다. 운반이 불편해서 시장에 유통시킬 수 없는 경우가 많은 단점이 있었다.
  • 금핵(金核) 금본위제도
    중앙은행에 금을 비축해 두고, 금의 가치만큼 지폐로 된 화폐를 발행하여 시장에 유통시키는 제도이다. 태환의 형태에 따라 금지금 본위제도와 금환 본위제도로 나뉜다.
    • 금지금 본위제도(gold bullion standard, 金地金本位制)
      은행이 보유한 금괴만큼 화폐를 발행하는 제도이다. 지금(地金)은 밑바탕이 되는 금이란 뜻으로 금괴를 가리킨다.
    • 금환 본위제도(gold exchange standard)
      금본위제를 시행하는 국제금융중심지(e.g. 영국)의 화폐(금환)를 각국 중앙은행이 매매를 통해 보유함으로써, 금 보유와 같은 효과를 내는 것이다. 따라서 이 나라들의 화폐는 직접 금으로 바꿀 수는 없으므로 불태환 화폐라 할 수 있다.

4. 장단점

4.1. 장점

  1. 금본위제에 기반한 안정적 통화수급은 물가를 크게 안정시켰다.[1]
  2. 금본위제에 기반한 고정환율제도는 환리스크를 크게 감소시켰다.
  3. 자유무역체제 하에서 시행된 금본위제는 각국에 무역수지와 재정수지의 균형을 담보하였다.
  4. 외부에서 오는 경제적 충격에 영향을 덜 받는다.[2]

4.2. 단점

  1. (기술발전 등의 이유로) 생산성이 향상되어 금의 채굴속도를 상회할수록 디플레이션을 유발하게 된다.[3] 즉 통화공급량이 금의 채굴속도에 크게 좌우받게 되는데 이 금의 채굴량을 급격하게 늘리거나 줄이는 것은 매우 어렵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화폐공급이 불안정해지고 이에 따라 통화정책이 사실상 불가능해져 경기변동에 대응할 수 없게 된다.
  2. 여러 나라가 금본위제를 시행할 경우, 그 중 하나의 나라에서 내부적인 경제충격이 오게 되면 그 충격은 그대로 다른 나라에까지 전달된다. 충격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되는 셈이다.
  3. 중상주의에 매몰된다. 중앙은행들은 물가를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금을 확보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즉 금본위제 국가 사이에서는 제한된 자원을 누가 더 많이 갖느냐 하는 제로섬 게임이 되며, 이는 필요 없는 국제갈등을 불러온다.
  4. 경제규모의 성장속도에 비해 금의 매장량이 턱 없이 부족하다.[4]
- 참고: 연준의 기원과 목적에 대한 버냉키의 강의 중에서 제7강 '금본위제'

5. 역사

5.1. 19세기 열강의 금본위제 도입

1867년 유럽 통화회의에서 주요 열강들은 자국 통화에 대한 금본위제를 도입하기로 약정하였고, 1890년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금본위제 전환을 마지막으로 이는 현실화되었다. 일본의 경우, 청일전쟁삼국간섭의 결과 획득한 막대한 보상금으로 1897년 금본위제를 실시하였다.[5]

5.2. 제1차 세계 대전대공황

제1차 세계 대전으로 막대한 통화량이 필요해지자 각국은 금태환을 일시 정지하고 통화증발(화폐발행 증가)에 나섰다. 이는 실물과 통화량을 연동시키던 금본위제에 대한 상당한 타격이었다. 게다가 1920년대 전후 복구과정에서 금본위제로 복귀하던 와중 대공황 발발로 구 파운드 중심의 금본위제는 결정적으로 무너져 버렸다. 영국은 1925년 금본위제로 복귀했다가, 1931년 금본위제를 포기하였다.

일본은 열강 중 가장 늦은 1930년 금 해금을 통해 금본위제로 복귀하였으나 대공황이 한창이던 시기였던지라 대실패. 쇼와공황을 불러오면서 경제가 거의 붕괴 위기에 직면한다. 결국 1931년 다시 금본위제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엔화 가치를 안정시키기 위해 금을 끌어모았다.[6]

명나라 이래로 은본위제도를 채택하고 있던 중화민국 국민정부는 1934년에 실시된 미국의 은 구입법으로 경제위기가 발생하자 은본위제를 폐기하고 금본위제를 실시하고자 했으나 미국 측에서 미국의 금을 은으로 사고 싶다는 중화민국의 요구를 거절하면서 금본위제 전환을 포기하고 1935년 11월 4일 법폐개혁을 단행함으로 관리 통화제를 실시했다.

대공황 당시의 상황은 기존 패권국이었던 영국의 무능력과 새로이 패권국으로써 리더십을 발휘했어야 할 미국의 의지부족과 방관이 겹쳐지면서 일어난 것이었다. 즉 패권교체 시기라는 과도기의 혼란으로 볼 수 있다.

5.3. 브레턴우즈 체제(1944~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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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536349> 연표 사건
193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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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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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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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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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3월
오스트리아 병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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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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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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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그리스 침공
194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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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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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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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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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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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바르샤바 봉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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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벌지 전투
194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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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포츠담 회담 |
8월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 만주 전략 공세 작전 · 일본 제국의 항복 |
9월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 매년 전황·추세 등 상세한 내용은 연표 해당 연도 참고 }}}}}}}}}}}}

파일:87c-Bretton-Woods-World.jpg

2차 대전에서 연합국의 승리가 확실해지자, 미국은 전후 세계의 금융질서를 세우기 위한 회의를 개최했다. 미국의 해리 덱스터 화이트(Harry Dexter White)와 영국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가 거의 3년 동안 머리를 맞대고 준비한 끝에 1944년 7월 1일, 44개 동맹국과 이들의 식민지에서 온 730명의 대표단이 미국 뉴햄프셔 주, 브레턴우즈(Bretton Woods)라는 스키 휴양지에 있는 마운트 워싱턴 호텔에 모였다.[7]

소련을 포함한 전 세계 44개 국가와 정부를 비공식으로 대표하는 전문가들이 모인 회의 석상에서 신통화제도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는데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어느 국가의 통화도 아닌 국제 통화인 방코르(Bancor)[8]를 도입할 것을 지지하였으나, 해리 덱스터 화이트[9]는 패권국이 된 미국USD를 통용할 것을 주장하였다. 결국 미국의 입장이 받아들여져 미국 달러를 기축 통화로 한 금본위제를 채택하기로 결정하였고, 이것을 브레턴우즈 체제(Bretton Woods System, BWS)라고 부르게 된다.

고전적 금본위제와의 결정적인 차이는 각국의 중앙은행이 금 태환을 독자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만이 독점적으로 금 태환을 실시하는 것으로써, 타국 통화는 모두 USD와의 환전을 통해 간접적으로 금과 연결되었다. 세계 각국의 화폐가 (주기적으로 변경되는) 고정 환율로 달러와 고정되고, 달러는 35달러당 금 1온스로 교환할 수 있게 고정한 것이다. 이 제도를 시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유럽 각국이 미국의 물자를 금으로 구입하고 패전국들이 전쟁 배상금을 금으로 지불하면서, 종전 당시 미국이 전 세계 금의 무려 70%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링크

전후 서유럽 국가들은 재건을 위해 막대한 양의 돈을 찍어 유통시켜야 했는데, 자체적으로 금본위제도나 은본위제도를 실행할 만큼의 금은이 국고에 없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신용화폐'에 대한 개념이 없었으므로, 전시도 아닌 평상시에조차 금이나 은으로 태환이 안 되는 화폐가 신용을 얻으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당시 경제활동 인구, 특히 투자 / 고용을 주도할 장년층들은 두 번의 세계대전과 전간기 독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직접 경험 / 목격한 세대였다. 지금(2020년대)이야 정부의 신용을 담보로 발행하는 화폐를 의심하는 것이 이상하지만, 당시는 오히려 믿는 쪽이 이상했던 것이다.

전쟁 직후 이들이 발행한 지폐는 사실상 미국이 대리로 보증을 서준 셈이다. 미국은 미국대로 서유럽의 동맹국들을 쑥대밭으로 내버려두면 당시 떠오르는 강자였던 소련에 의해 전 유럽이 공산화될 위험이 있었고, 어느 국가의 통화도 아닌 방코르는 위험했기 때문에[10] 미국 달러기축 통화로 민 것이다.

한편 브레턴우즈 회의에서 결정한 것은 단지 기축통화뿐만은 아니었다. 대표단은 화이트와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제시한 의제 검토에 착수했고 3주에 걸친 다자간 협상을 한 끝에 세계은행(The World Bank), 국제통화기금(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 국제부흥개발은행(The International Bank for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을 설립하기로 했다.[11] 이 기구들은 전쟁으로 초토화된 유럽을 회생시키고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자유무역이 지배하는 세계경제체제의 근간을 마련했다.

동시에 이 회의 석상에서 미국 대표단은 막강한 미국의 해군력으로 전세계의 모든 해상무역로를 보호할 것이며, 동시에 세계적으로 가장 거대한 미국 시장을 외국에 개방할 것임을 약속하였다. 미국이 전적으로 비용을 부담하고 모든 해상 무역을 철저히 보호하는 동시에 인류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소비 시장인 미국에 대해 무제한의 접근 기회를 부여했고, 미국이 제시한 이 체제에 동참하는 국가들이 자국의 시장을 미국 상품에 개방하리라는 기대는 크게 하지 않겠다고 했다. 미국은 사실상 회의에 참석한 모든 나라의 경제를 간접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셈이었다. 즉 브레튼우즈 회의에서 결정된 것은 앞으로 세계경제는 막강한 미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에 바탕을 둔 자유무역체제로 굴러갈 것이라는 사실이다.[12]

5.4. 닉슨쇼크와 브레턴우즈 체제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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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960년대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면서 엄청난 재정적자를 보았으며[13], 이에 따라 여러 국가들이 과연 미국의 금태환능력이 있는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금보다 더 많은 통화를 찍어낸다고 의심하기 시작했으며, 특히 프랑스는 보유하고 있는 미국 달러를 모두 금으로 바꾸려고 했다.

그러자 1971년 8월 15일 리처드 닉슨금태환 정지를 선언하며 금본위제는 사실상 막을 내렸으며, 이후 세계 화폐 시장은 기본적으로 변동 환율제에 의해 굴러가게 되었다.

5.4.1. 문제점

대략 30년 정도 굴러갔던 브레턴우즈 체제의 금본위제도에는 결정적인 문제점이 내포되어 있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금본위제하의 주요국들의 정치적, 경제적 충격에 따라 경제 불안이 가중되면, 사람들의 기대도 부정적인 방향으로 형성된다.
  2. 세계 경제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가 "우리는 수출만 하고 수입은 하지 않겠다"와 같은 정책을 견지하거나 자기 세력권 내에서 블록을 형성하여 자기네끼리만 무역을 할 경우, 협력 시스템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여러 강대국을 중심으로 한 제살깎아먹기 폐쇄 경제 시스템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있다. 대공황 시기 미국 등 주요 국가들의 삽질이 대표적이었다.
  3. 트리핀의 딜레마(Triffin's dilemma)
    달러를 국제 거래에서 사용하려면 그만큼 달러를 많이 찍어내서 전 세계에 공급해줘야 한다. 그런데 달러를 많이 찍어내면 달러의 가치가 떨어져서 아무도 달러를 받으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달러 가치를 유지하려고 달러를 조금만 찍어내면 국제 거래에서 달러가 부족해진다.

    국제 정치학 및 경제학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공급과 가치의 배타적 특성 때문에 둘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이 핵심이다. 미 예일 대학교 교수였던 로버트 트리핀(Robert Triffin)이 미 의회 연설에서 증언한 내용에서 유래한 개념이다. 미국의 35달러를 금 1온스와 연동하고 다른 나라의 화폐를 달러와 연동함으로써 형성된 환율 제도로 서구권의 붕괴는 일단 막았다. 그 다음 스텝으로 세계 경제가 활발히 돌아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이 끊임없이 달러를 세계 시장에 공급하는 것이었다. 세계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국가 간의 거래도 늘어나는데, 이에 필요한 화폐는 세계의 표준 화폐인 달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국이 달러를 세계 시장에 공급할수록 1달러의 상대적인 가치는 떨어지게 된다. 그렇지만 명목상으로 달러는 여전히 35달러당 금 1온스의 가치를 보증하게끔 되어 있다. 따라서 미국이 보유한 금보다 달러 발행을 지나치게 많이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다른 나라에서는 달러를 모두 미국에 주고 금을 요구하면 개이득이 된다. 이것이 실제로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 골의 정책이었다. 당연히 드 골이라고 깽판치고 싶어서 이런 것은 아니고, 프랑스 경제가 68운동이라는 정치적 위기에 처해서 침체할 것으로 예측한 환투기 세력이 프랑스 프랑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베팅한 것이 원인이었다. 고정환율제 하에서는 프랑화 가치를 유지해야 했으므로 계속 외환시장에 개입했는데, 막상 싸우다보니 영국보다도 풍족했던 금 보유량이 겨우 14일 만에 모조리 소진되고 말았다. 프랑스가 고정환율제를 포기할 게 아닌 이상에야 어디선가 금을 계속 구해와야 했고, 가장 확실한 수급처는 미국과의 금 태환이었던 것이다. 달러를 갖다주고 금을 가져와서 프랑화를 계속 방어해야 했던 것. 프랑스로서는 고정환율제라는 약속을 어기지 않기 위한 대응이었으나, 이 행동이 금본위제라는 더 근본적인 약속을 깨트릴 도화선이 될 거라는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결국 달러를 버리고 금을 가지고자 하는 경제주체가 많으면 많아질수록 "금 1온스 = 35달러"의 원칙에 대한 신뢰는 바닥을 치게 될 것이고, 당연히 이걸 가만히 내버려두면 세계 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즉, 금의 보유량이 일정하다는 가정하에서, 통화가치와 통화량은 반비례한다. 따라서 안정된 통화가치와 통화량 증가 둘 다를 동시에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이 바로 트리핀의 딜레마.
  4. 트리핀의 딜레마보다 더한 것은 미국의 국제수지 적자라 할 수 있다. 미국은 1940년대까지는 무역수지 흑자국이었으나, 1950년대 들어 유럽, 일본 등의 추격으로 국제수지가 적자가 되었다. 그에 따라 외국의 달러 보유고는 늘어난 반면, 미국의 금은 지속적으로 유출되어 달러화의 가치는 계속 추락하게 되었다. 더욱이, 존슨 행정부의 '위대한 사회' 계획이라는 대규모 복지 프로그램과 베트남 전쟁 전비로 정부지출이 폭증했고 이는 무역수지 적자를 심화시켰다.[14] 그러나 만약 경상수지 적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기축통화의 조건인 일반적 통용성을 충족할 길이 없게 된다. 즉 기축통화국에게 경상수지 적자는 필수적일 수밖에 없으며 그 대신 국채발행을 통해 자본수지를 흑자로 맞춰서 밸런스를 유지하게 된다. 다만 이는 미국처럼 '돈을 빌려다 소비를 해도 묵인할 정도의 위치'여야 가능하며 그렇지 못한 국가에서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되면 외환위기를 맞게 될 수밖에 없다.
  5. 불가능의 삼각정리
    옵스펠드, 크루그먼 등에 따르면 '고정 환율', '자유로운 자본 이동 보장', '자주적인 통화 정책' 세 가지를 동시에 충족하는 것은 불가능하고[15] 기껏해야 두 개 정도만 충족할 수 있다. 금본위제는 고정 환율 제도라 볼 수 있는데, 이 경우 한 나라의 통화 정책은 그 통화 가치 유지에만 쓰이므로 자본 이동을 제한하지 않고서는 자주적인 통화 정책을 사용하기가 어렵다.[16]
  6. 금광이 많은 국가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 금 보유 측면에서 유리하므로 국제적인 부의 분배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는 해당국들에게 유리할 수도 있지만, 자원의 저주라는 현상 때문에 장담은 못한다. 특히 그 옛날 에스파냐 제국이라든가.

1, 2번은 대공황의 피해를 가중시킨 요인이었고, 3번은 브레턴우즈 체제가 붕괴하게 된 원인이었다. 금본위제의 문제점을 자세히 알고 싶다면 다음을 참고할 것. #1 #2

5.4.2. 대처법

브레턴우즈 체제를 유지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 금에 대한 달러 가치 절하
    즉, 금 1온스와 맞교환하는 달러의 금액을 올려버리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원래 1온스에 35달러 하던 것을 1온스에 70달러로 책정하는 방식인 셈. 이렇게 하면 금 1온스를 사기 위해 필요한 달러가 더 많아지니 미국 입장에서는 금 유출을 기존보다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1온스=35달러라는 국제 규정을 변경해야만 할 수 있는 방법이고, 결국 닉슨 쇼크가 단행될 때까지 실행되지 않았다.
  • 달러의 대대적인 긴축
    총수요 감축으로 미국 내의 경제불황을 야기시키며 가뜩이나 심각한 국제수지 적자를 심화시킬 수 있었다.
  • 타 국가들의 통화 가치 절상
    이 방법은 타 국가들과의 협의가 필수적이다. 이유는 미국과 무역을 하는 국가들에게는 손해가 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달러의 가치는 고정시킨 상태로 다른 통화의 가치를 절상하면, 타 국가들이 보유한 달러가 미국으로 줄줄 빠져나가게 되어 전 세계의 달러 공급량이 감소한다.
    결국 달러 가치가 상대적으로 감소해 금교환 수요가 늘어날 수도 있겠지만, 미국은 결국 무역수지를 개선해야 금을 공급할 수 있으므로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단, 이 방법은 타 국가들의 무역 적자를 내 버리기 때문에 반발의 여지가 크다. 그래도 제일 강대국인 미국선진국들과 합의하여 이를 어느 정도 실천하기는 했으나(스미소니언 협정), 그 정도는 너무 더뎠을 뿐만 아니라 이걸로 인플레이션이 해소되는 것도 아니니 고정환율제 하에서는 무역적자가 지속될 수밖에 없었으므로 상기한 미국의 쌍둥이 적자가 지속되어 스미소니언 협정은 파기되고 아래와 같이 변동환율제로 이행하게 된다.
  • 미국 중앙은행, 즉 연방준비제도가 금 보유를 늘리는 것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달러가 늘어난 만큼 금도 같이 늘어나면 된다. 자산비중 조정 등 방법은 무관. 하지만 금은 달러만큼 마음 먹은 대로 찍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금이 많아지면 금의 가치도 하락할 수 있다. 여담으로 이 방식은 자원이 많은 소련이 좋아했다.

이 대안들 중에서 어느 하나도 완벽한 해결책이 될 수 없었기에, 결국 미국은 최후의 수단으로 금본위제도 자체를 폐기하는 결단을 내렸다.

5.5. 이후

지금은 전 세계 GDP가 '지구 금 매장 추정량'의 가치보다 크고, 거기에다가 생산된 금의 10%는 원자재로 쓰이기 때문에[17] 금본위제를 다시 하고 싶어도 도저히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오히려 2010년대 이후로는 황당하게도 금 대신 비트코인이 그 자리를 노리고 있다. 흔히 비트코인에 대해 '디지털 골드'라고들 비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한민국 인구보다도 적은 수에 불과할만큼 극히 한정된 채굴량, 어느 권력자가 임의로 조작할 수가 없는 POW라는 채굴방식 등의 여러 장점에 주목하며 비트코인본위제(...)를 주장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특히 귀태와도 같은 중앙은행의 인위적인 통화정책을 파멸을 맞아야만 하는 인류악(...)이라고까지 여기는 오스트리아 학파를 중심으로 지지가 높다. 물론 2020년대 초반까지는 투기성 자산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고 여겨지고 있기 때문에 여러 기관 투자세력의 암호화폐 투자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주장은 금본위제가 누리던 그 권위엔 한참 못 미치는 중.

게다가 비트코인은 총 발행량의 5%를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익명의 창시자가 보유하고 있는데, 만약 비트코인이 금본위제 비슷한 기축통화의 위치를 차지한다면 이 5%라는 수치는 전세계 GDP의 약 5~6%를 차지하는 독일과 일본과 비슷하고, 3~4%의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보다 많은 수준이다. 쉽게 말해 일개 개발자가 스스로 만들어 스스로 채굴(생산?)하여 보유한 가상화폐가 독일, 일본의 GDP와 비슷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인정할 사람은 적어도 2023년 현재까지는 아무도 없다. 겨우 5%의 실제 가치조차도 경제학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데, 하물며 비트코인의 나머지 95%는 말할 것도 없는 상황이다.

그렇게 금태환 체제가 종료된 지도 어연 50년이 넘은 2022년 7월 25일, 짐바브웨가 인플레이션 방지를 위해 금화를 법정화폐로 발행했고 이후 2024년 4월 8일 금본위제를 기반으로 한 화폐인 짐바브웨 골드를 도입했다. 짐바브웨가 21세기에 굳이 금본위제를 부활시킨 것은 금을 비롯한 광물들의 매장량이 풍부하고 무엇보다 현 환율제로는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을 정도로 경제 상황이 처참하기에 고육지책으로 도입한 것.

6. 금본위제 폐지 이후 변동환율제의 문제점

1971년을 끝으로 세계경제는 변동환율제를 채택할 수밖에 없었다. 1974년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조약을 통해 원유를 달러로 결제하는 페트로달러 시스템을 통해 달러가 기축통화의 지위를 회복하고 새로운 질서가 잡히는가 했지만, 그것도 50년이 되어가는 2020년대 이후 시점에서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

1990년대부터 이상한 조짐이 여기저기서(동아시아, 러시아) 보이기 시작하더니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른바 대침체가 세계를 휩쓴 후 변동환율제의 근본적 문제인 세계적 불균형(global imbalances)이 가장 심각하다.

어느 국가가 돈을 찍어서 의도적으로 자국 화폐의 가치를 낮추면, 그 국가의 상품이 국제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강화돼서 수출이 늘어난다.[18] 자국 화폐를 절하시켜서 떨이에 팔아서 번 돈이니 제살 깎아먹기 같지만, 그렇게 벌어온 수입으로 인한 경제성장이 수입물가 상승으로 인한 타격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고, 수입물가의 상승은 수입품보다는 자국산의 메리트를 높이므로 내수시장도 활성화 시킨다. 즉 손해나 부작용은 거의 없고 이득만 있는 꿀정책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19] 문제는 너도 나도 이 짓을 했다가는 상대적 경쟁력이나 경제는 제자리걸음일 뿐인데 물가 / 자산 가격만 잔뜩 올라서 저축했던 사람들, 채권에 투자했던 사람들만 피를 본다.

아직 이 문제에 대한 완벽한 답은 없다. 그나마 환율조작국 지정으로 제재를 하는 것이 미국이 주도하는 질서상 최선인 상황. 이것도 마음대로 환율조작국을 지정하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게다가 대침체에 대한 대처로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해 돈을 찍어낸 건 미국인데 인플레이션은 다른 나라들에게 전가되는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 어떻게 보면 100년, 길게 보면 수백 년 넘게 금본위제의 대안을 찾으면서 버티던 세계 자본주의의 문제를 체제 안에서 해결하려는 셈이니 만약에 답을 찾는다면 그 사람은 노벨경제학상을 받고도 남을 것이다.

7. 여담

1944년 브레튼우즈에서 열린 회의는 2차대전 이후 세계경제체제를 규정한 아주 중요한 행사였지만, 사전 준비는 엉망진창이었다고 한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대표단은 뉴저지 주 애틀랜틱 시티에서 야간 열차를 타고 이 곳에 도착했는데, 휴양 시설은 엉망이어서 수돗물도 공급되지 않는 호텔 방이 태반이었고, 얼음이나 코카콜라도 모자랐다. 심지어 호텔 종업원이 부족해서 근처에 사는 보이스카우트들이 차출되었다. 호텔지배인이 위스키를 상자째 갖고 자기 집무실에 들어앉아 문을 걸어 잠그고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해프닝도 있었다.

Victoria II는 철저히 금본위제를 채택하고 있는 게임이며, 게임 전체의 화폐 총량을 늘리는 유일한 방법이 귀금속 RGO의 산출이 화폐로 변환되는 것뿐이기 때문에, 금본위제도의 치명적 허점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그중에서 제일 흔한 문제는 화폐 부족. 화폐 공급은 부족한데, 화폐 증발 요소는 매우 많기 때문에 유동성 위기로 인해 공황이 올 수 있다. (그렇다고 모딩으로 인위적으로 화폐 공급을 늘리면 바로 인플레이션이 생긴다.) 이 모든 현상은 금본위제의 치명적 약점을 그대로 반영한다.[20]

QAnon을 비롯한 일부 음모론 신봉자들은 금본위제도의 폐지가 로스차일드 가문 같은 유대자본과 딥스테이트가 경제를 지배하기 위함이라며 금본위제의 부활을 주장하고 있다. 이것에 대해서는 NESARA 문서 참조.

아나코 캐피탈리즘을 비롯한 오스트리아 학파우파 자유지상주의자들 또한 정부가 마음대로 화폐 가치를 조작할 수 없다는 이유로 금본위제를 지지하는 경우가 많다.

카네모토 토모아키 체제 한신 타이거스금본위제라 부르기도 한다.


[1] 금은 실물이므로, 특정 상품의 가격에 비정상적인 변동이 있을 경우 금의 가치를 이용한 차익을 노린 거래들이 해당 상품의 가격 변동을 완충할 수 있다.[2] 대신 화폐유동성에 관한 충격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3] 금본위제가 못 버틴 근본적 원인이다.[4] 단점 1번과 이어지는 부분이다. 이 때문에 이제는 금본위제를 실시하고 싶어도 실시할 수조차 없다. 금 매장량에 비해 경제규모가 턱없이 커졌기 때문.[5] 조선에서는 1883년 당오전 논쟁 당시 김옥균이 금본위제를 주장한 적이 있었으나 당시 동아시아 최강국이던 일본조차 도입하지 못한 상황에서 조선에서 금본위제를 도입한다는 것은 현실성이 없었다.[6] 그 결과가 조선에서의 금광 붐이었다.[7] 왜 하필 브레턴우즈에서 회의가 개최되었나 하면, 당시 미국 내에서는 인종차별이 심했었고, 때문에 미국 대도시의 유명 호텔들이 비백인국가에서 오는 대표단에 거부감를 느껴 호텔 대여를 거부한 것이라고 한다.#[8] 방코르와 완전히 같은건 아니지만, 후에 IMF에서 특별인출권을 만들면서 차용하였다.[9] 현대적 자유교역시장과 US달러를 기반으로 한 기축통화 시스템의 입안자이자 주요 설계자인 재무관료였다. 그는 자본주의적 경제기반을 지지하던 케인지언임과 동시에 소련에 호의를 표하며 소련 정보당국에 협조하던 스파이였는데 그가 신념적으로 소련의 볼셰비키 정권을 지지했는지, 아니면 브레턴우즈 체제에 소련을 완전히 통합시킬 수 있다는 개인적 믿음으로 월권을 저질렀는지에 대해선 미국 역사학계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그의 가족들은 오늘날까지 화이트가 볼셰비키 추종자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일부 일본의 우익학자들과 넷우익은 화이트가 스탈린의 지령을 받고 미일관계를 배후에서 사보타주하며 최종적으로 헐 노트 작성에 개입해 일본제국을 어쩔 수 없이 전쟁으로 끌여들었다는 음모론을 주장하기도 했다.[10] 무역 불균형 때문에 오래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았다. 경쟁력 있는 나라가 끊임없이 무역 흑자를 내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한 나라는 끊임없는 무역적자 + 경제제재의 이중고를 겪다가 방코르를 포기하거나 몰락할지도 모른다는 위협. 고정환율제의 문제와 비슷한데 특히 현재 유로가 유럽 역내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과 비슷하다.[11] 덤으로 1947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GATT)이 체결되었고 이는 현재 1995년 발족한 세계무역기구(WTO)로 이어지고 있다.[12] 하지만 구 소련과 공산권은 결국 마셜플랜을 거부하고 코메콘이라는 독자적인 경제블록을 형성하면서, 미국 주도의 전세계적인 자본주의 시장질서 바깥에 놓이게 된다. 바로 냉전의 시작이다.[13] 지지부진해지는 베트남전도 문제였지만, 결정적으로는 미소 우주경쟁이 컸다. 소련의 스푸트니크 1호 발사가 성공하면서, 미국은 큰 충격을 받았고, 아폴로 13호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희대의 돈지랄을 시작했다[14] 이는 위의 트리핀의 딜레마와도 연계된다. 달러화가 풀리려면 미국이 국제수지에서 적자를 보아야 하는데, 국제수지 적자가 심화되면 달러의 신뢰도가 무너지면서 달러의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15] n개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n개의 수단을 써야 한다는 틴버겐의 법칙, 혹은 IS-LM 모형을 확장한 먼델-플레밍 모형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16] 이 문제는 굳이 브레튼우즈 체제나 금본위제에만 적용되는 것도 아니고, 최근 유로존 위기에도 적용된다.[17] 연성과 전도성이 뛰어나서 주로 전자회로 제작에 투입된다.[18] 일본아베노믹스로 엔화의 환율을 높여서 전세계에 수출을 늘리려는 게 바로 이 원리다. 다만 한국의 경우 경제적 기반이 일본 같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미진하고, 원자재를 수입하여 가공한 뒤 수출하여 이익을 보는 구조이기 때문에 원자재 값도 덩달아 올라 생각만큼 큰 효과가 있지는 않다.[19] 21세기 기준으로는 세계화가 고도화되어 수출을 통해 확보한 외환은 국내 환전 대신 해외 투자로 흘러가는 비중이 높아지고, 내수에서는 환율 상승으로 인해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며 서민 경제가 몰락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상황이 빈번해졌기 때문에 더 이상 이득만 존재한다고 보긴 힘들다.[20] 그나마,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안정적으로 맞춰저 있는 바닐라판의 경우 단기 공황으로 끝나지만, 대부분의 모드들이 어떤 식으로든 유동성 위기가 발생하면서 수요는 넘치는데 공급이 부족하거나, 공급이 넘쳐 가격이 폭락하는데 화폐는 돌지 않아 구매가 되지 않는 등의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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