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22 23:29:37

김경수(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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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대 경상남도지사
김경수
파일:김경수2.jpg
이름 김경수 (金慶洙)
출생 1967년 12월 1일 ([age(1967-12-01)]세)
경상남도 고성군[2]
본관 김해 김씨 삼현파[3]
학력 진주동명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인류학 / 학사)
병역 제2국민역(근위지절강직)[4]
가족 배우자 김정순, 슬하 2남
종교 천주교 (세례명: 바오로)
신체 180cm[5], AB형
소속 정당 더불어민주당
의원 선수 1
의원 대수 20
현직 경상남도지사
약력 대통령비서실 공보담당비서관
대통령비서실 연설기획비서관
봉하재단 사무국장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본부장
더불어민주당 경남도당위원장
더불어민주당 뉴파티위원
제20대 국회의원
제37대 경상남도지사 (민선 7기)
링크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1. 개요2. 상세3. 생애
3.1. 학창 시절3.2. 정치 입문3.3. 노무현의 마지막 비서관3.4. 번의 낙선, 그리고 20대 총선3.5. 경남도지사 재출마, 당선3.6. 경상남도지사 직무수행
3.6.1. 2018년3.6.2. 2019년
4. 논란 및 사건사고5. 기타6. 관련 문서7. 선거 이력8. 둘러보기

1. 개요

대한민국정치인. 소속 정당더불어민주당이다.

2019년 현재 제37대 경상남도지사로,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관으로 일했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 사후 정계에 입문해 두 차례에 걸친 선거 패배를 딛고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경남 김해시 을 선거구에서 62.4%의 득표율로 당선돼 대한민국 제20대 국회의원이 됐다. 그리고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 경상남도지사 선거에 도전장을 내밀어 52.8%의 득표율로 당선돼 경상남도지사가 되었다. 3당 합당 이후 처음으로 민주당계 정당 소속으로 당선된 경상남도지사이다.[6]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가장 대표적인 친문계 정치인으로 손꼽히며 친문계로부터 새로운 차기 대권 주자가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인물이다.[7]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로 들어가기 이전부터 누구보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수행하였고, 그의 대변인 격으로 활동해 왔다. 대통령 취임식 직전과 직후 김정숙 여사와 운전기사를 제외하고 문 대통령과 같은 차를 탄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과 매우 가까웠던데다 공교롭게도 친노계 - 친문계의 정신적 고향인 PK 태생이기에 정치공학적으로 호남영남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8] 그러나 드루킹 여론조작 사건의 공범으로 지목되어 피의자로서 수사를 받았으며, 김경수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으나 기각되었다. 이후 2018년 8월 24일, 허익범 특검이 김경수에 대해 드루킹 여론조작 사건의 공범으로 선거법위반 적용 및 불구속 기소를 결정했고 2019년 1월 30일,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며 항소 준비 중이다. 도지사직은 법정구속으로 인해 중지된 상태. 그리고 이후 4월 17일에 보석 허가 되어 석방됨으로서 도지사직에 복귀할 것으로 보인다.

2. 상세

1994년 신계륜 의원의 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2002년 노무현 대선 캠프에 합류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후 청와대 제1부속실 행정관, 연설기획비서관, 공보비서관을 두루 거쳤고 2006년에는 1년간 수행 비서를 맡았다. 퇴임 이후에도 봉하마을로 내려가 수행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노무현의 마지막 비서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사실을 문재인에게 알린 사람도 김경수 비서관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후에는 중앙 정치와 거리를 두고 봉하재단 사무국장, 노무현 재단 봉하사업본부장을 지냈다.

2011년 민주통합당에 입당,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상남도 김해시 을 선거구에 국회의원 후보로 나섰으나 현직 의원인 김태호에게 밀려 떨어지고,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도 경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했으나 새누리당 홍준표 현직 지사에게 밀려 또 다시 낙선했다. 하지만 연이은 낙선에도 포기하지 않고 밑바닥 민심을 다지면서 20대 총선에서 다시 한 번 김해시 을에 도전해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 중 가장 많은 득표율을 거두며 승리했다. 이후 친문계 의원으로서 의정 활동에 전념하며 문재인 정부를 뒷받침하다가, 당 지도부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단 한 번도 민주당 후보가 승리하지 못한 험지 중 험지인 경남도지사에 다시 도전, 드루킹 여론조작 사건 의혹을 정면돌파하면서 과반 이상의 표를 얻으며 경상남도에 최초로 민주당 깃발을 꽂는 데 성공했다.

3. 생애

3.1. 학창 시절

1967년 12월 경상남도 고성군 개천면에서 말단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와 생활력 강한 어머니 사이에서 4남 1녀 중 장남이자 장손으로 태어났다. 교육열 강했던 어머니는 아들을 괜찮은 중학교에 보내기를 위해 초등학교 6학년인 김경수만 인근 대도시인 진주시로 전학시켰다. 김경수는 친척 집에서 기거하면서 진주천전국민학교, 진주남중학교, 진주동명고등학교를 졸업했고 1년 재수하여 87학번으로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에 입학하였다.

80년대 후반은 반독재 학생운동이 가장 극렬했던 때로, 먼저 대학생이 된 동창들과 만나면 가끔 시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재수 생활 동안에는 공부하기 바빠 사회 현실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한 이후 교정에 학생들이 던진 짱돌이 날고, 경찰이 쏜 최루탄이 난무하는 현실을 알게되면서 대한민국 정치에 강렬한 고민을 품게 되었다. 집안의 기대와 공무원인 아버지에 대한 걱정 등으로 많은 번민과 방황을 했지만 나만 출세하자고 조용히 공부만 하는 것은 시대에 죄를 짓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2학년에 올라가면서 본격적으로 학생 운동에 뛰어들게 되었다.

대학교 3학년인 1989년 총학생회 학술부장 시절 가을 축제 때 ‘북한 바로알기 자료집’을 만들었다가 국가보안법상의 이적표현물 제작 반포 혐의로 구속되는 등 모두 세 차례 옥살이를 했다. 6월 항쟁이 끝난 뒤에는 그해 여름 방학에는 ‘공장활동’(공활)에 참가했다. 수원의 와우공단에 있는 자동차 부품회사를 택했는데 일이 익숙지 않은 그는 입사한 지 며칠 안 돼 쇠로 된 부품의 구멍을 다듬는 작업을 하다가 왼손 검지 손가락을 크게 다치는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나중에 군 면제를 받았다고 한다. 한겨레

1996년 대학교 후배이자 동성동본인 부인과 결혼하여 슬하에 2남을 두었다. 사귀던 시절 결혼을 생각할 때 여자친구와는 동성동본인데다 본인은 영남, 여자친구는 호남(전남 신안) 출신이라 집안 어른들께 어떻게 허락을 받아야 할지 한참 고민했다는데, 막상 부모님은 여자친구를 만나 본 뒤 흔쾌히 허락하셨다고 한다. 아내와 결혼할 때 조건이 정치 일은 해도 절대 출마는 안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20년 뒤에 남편이 민주당 국회의원에 경상남도지사까지 될 줄은 아마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3.2. 정치 입문

대학 졸업 후 <리더스 비젼>[9]의 편집부 기자 생활을 했으나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던 중 1994년 신계륜 의원실에서 일하던 학교 선배의 "국정감사 기간에만 도와달라"는 부탁으로 여의도에 발을 디뎠다. 어떻게 보면 단기 아르바이트로 정치에 입문한 셈이다. 국정감사 후 신계륜 의원이 정책비서로 같이 일해보자는 권유를 했고, 이를 승낙하면서 정규직 전환본격적인 보좌관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10]

15대 총선에서 신 의원이 낙선하자 15대 국회에서는 유선호 의원실에서[11], 16대 국회에서는 임채정 의원실에서 근무했다. 2001년 말 청와대 정무수석에 임명된 유선호 전 의원의 요청에 따라 청와대 보좌관으로 자리를 옮겼으나, 태어나기도 전에 휴전선에서 장교로 근무하다가 월북했던 외삼촌 때문에 연좌제에 걸려 3개월만에 청와대에서 보따리를 싸서 나가야 하기도 했다.[12]

하지만 새옹지마라고, 청와대에서 나온 것이 그를 새로운 만남으로 이끌었다. 이광재의 권유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전략기획팀 부국장으로 합류하면서 노무현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전략기획팀에서 뛰어난 업무 능력을 보여준 김경수 보좌관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거쳐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국정상황실 행정관, 청와대 연설기획비서관, 대통령 공보비서관 등을 지냈다. 대선 전까지만 해도 별다른 안면조차 없는 사이였지만, 참여정부 집권 중반기에는 어느새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명이 되어 있었다.

3.3. 노무현의 마지막 비서관

노무현 대통령 퇴임 이후 가족들과 함께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정착해 노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보좌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저서인 운명은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던 그날 새벽, 자고 있었던 문재인 당시 변호사가 김경수 당시 비서관에게 노 전 대통령이 등산을 떠났다가 부엉이바위로 떨어져 상태가 엄중하다는 연락을 받는 장면으로 시작된다.[13] 김 지사는 노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봉하를 떠나지 않고 봉하재단 사무국장,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본부장을 지냈다.

노 전 대통령의 비서이자 봉하마을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로 살면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간 노무현과 함께 공부하는 시간은 큰 행복이었다고 김 의원은 회고했다. 오랫동안 보좌관 생활을 해왔지만 자신이 직접 정치에 뛰어들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결혼 전에 아내에게 약속까지 했지만 2009년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그는 '바보' 노무현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 직접 정치에 뛰어들게 되었다.[14]

3.4. 번의 낙선, 그리고 20대 총선

2011년 야권 통합을 추진한 시민운동모임 ‘혁신과 통합’ 때부터 문재인을 가까이에서 보좌하기 시작했다. 이후 민주통합당에 입당했다. 당시 주변에서 2011년 4·27 경남 김해시 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가서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을 지켜야 한다는 주변의 압박이 강했지만 고심 끝에 “꽃이 되기보다는 단결과 연대의 거름이 되고 싶다”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하지만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한 국민참여당 이봉수 후보는 한나라당 김태호 후보에게 패배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본인이 직접 경상남도 김해시 을 선거구에 국회의원 후보로 나서 새누리당 김태호 후보와 맞붙어 47.88%의 적지 않은 득표율을 얻었으나 아깝게 떨어졌다. 이후 18대 대선에서 당시 문재인 후보의 대선 후보 수행팀을 전두지휘했다.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한 지붕 아래에서 같이 일했던 사이지만 사실 당시까지만 해도 문재인 대통령과 김경수 의원의 사이가 딱히 가깝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혁신과 통합'을 시작으로 18대 대선에 이르러서 문 대통령이 김 의원에게 대선 후보 수행팀장을 맡을 정도로 둘은 가까워졌다. 첫 대선 실패 이후 문 대통령은 어딜가나 김 의원과 함께 움직였다.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경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새누리당 홍준표 후보와 경쟁했지만 이번에는 꽤 큰 표[15]차이로 낙선했다. 하지만 당시까지 보수세가 강했던 경남이었고 보수계 중견 정치인인 김태호홍준표의 전국적인 지명도 등의 차이를 감안하면 선출직 정치인으로서는 신인에 가까운 김경수 입장에서는 선전한 편이었고, 김해시창원시 성산구에서는 오히려 홍준표를 앞섰다.

또 이 선거가 이후 김경수에게는 커다란 정치적 자산이 되었다. 도지사 선거 전부터 "미소천사"라는 전국적 팬클럽이 조직되었는데, 선출직 경험이 없는 정치인으로서는 거의 유일한 사례였다. 노사모가 있지 않냐고 할 수도 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시 16대 총선에서 낙선하긴 했지만 이미 재선 국회의원 경력이 있었다.

그후 절치부심 끝에 밑바닥부터 김해시 을 지역구에서 활동을 했고 민심을 얻어가는 데 성공했다.[16] 2012년 선거 때는 사실상 본인도 김해를 잘 알지 못했을 때 출마했다면 2016년 선거에서는 차원이 다른 상황에서 선거에 임했다고 할 수 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이만기[17] 후보를 꺾고 무려 62.4%의 득표율을 기록하여, 민주당 후보들 중 전국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며 당선되었다.[18] 김해시 갑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의 현역 의원 민홍철 후보가 재선에 성공하고, 함께 실시된 김해시장 재보궐선거 및 시의원 보궐 선거에서도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면서 더불어민주당김해시에서 완승하기도 했다.

당선되고 난 뒤 민홍철 김해 갑 국회의원 당선자, 허성곤 김해시장 재선거 당선자, 김종근 김해시의원 보궐선거 당선자, 동시에 낙동강 벨트에서 살아남은 양산시 을서형수 당선자와 함께 봉하마을로 가서[19] 노무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했다. 봉하마을은 20대 국회부터 김해 갑에 속해있지만[20] 원래 김해 을 지역구였고, 김경수 의원의 뿌리 깊은 연고 때문에 아직도 다양한 행사 때 김경수 의원이 주최측의 역할을 맡는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후에는 인수위원회를 대신할 국정자문위원회에서 기획분과를 맡았다.

3.5. 경남도지사 재출마, 당선

파일:김경수 56.8%.jpg파일:경수당선.jpg
출구조사 결과 경남도지사 당선 유력
파일:경수확정.jpg파일:당선직후.jpg
경남도지사 당선 확정 당선 직후 봉하마을 참배[21]

6.13 지방선거 이전부터 민주당의 가장 유력한 경남도지사 후보로 거론되어 왔다. 그래서 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 선출 때문에 원내 제1당 지위를 유지해야 하는 민주당 지도부가 김경수 의원을 제외한 현역 의원들 중 몇몇 의원들에겐 불출마를 권고했다는 썰이 있다.[22][23] 다른 곳은 몰라도 3당 합당 이후 보수의 텃밭으로 변해버린 경남에서 민주당 후보가 선택을 받았다는 건 정치적으로 엄청난 의미가 있는 일이기에, 필승 카드로 보았던 김경수의 출마를 위하여 구태여 현역 의원을 내보내지 않아도 될 만한 곳에서는 출혈을 내지 않으려 했던 것.

민주당 지지세가 약한 서부 경남에 위치한 고성군에서 태어났고, 또 서부 경남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진주시에서 고등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서부 경남을 공략하기에는 이만한 적임자가 없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김경수 본인 스스로 출마 의사가 전혀 없다고 직접 말하기도 했고 또 20대 총선에서 재도전해 당선된 지 이제 겨우 2년 조금 넘은 초선 의원이라, 민주당 지지층 사이에서도 "김경수가 유력한 승리 카드라는 점은 인정하나, 본인이 자원하지 않는다면 굳이 내보내려 하지 말라"는 목소리가 컸다.

2018년 4월 2일, 결국 더불어민주당의 경남도지사 단일 후보로 추대되었다. 자유한국당에서는 2012년 총선 때 김해시 을에서 맞붙었던 김태호 전 지사가 출마하는 것이 사실상 확정되면서 6년 만에 리턴 매치가 성사되었다. # 4월 19일 공식 출마 선언을 했는데, 원래는 오전에 경남 진주에서 출마 선언을 하기로 예정되었지만 드루킹 의혹으로 오후로 미룬 뒤 4시 30분 국회 정론관에서 출마 선언을 하였다. 한편, 출마 선언을 미룬 걸 두고 몇몇 기자들은 불출마하기로 했다는 오보를 내기도 했다.[단독]‘댓글 여론조작 파문’ 김경수 의원, 경남도지사 선거 불출마

5월 3일 부로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했고 14일 본인도 참석한 본회의에서 처리되었다. 5월 17일 캠프 개소식을 열고 본격적인 선거 운동은 5월 31일부터 시작했다.

대통령 직계 초선 의원이 배지를 버리고 험지로 가서 전임 경남도지사와 정치 생명을 건 한판 승부를 벌이는 일은 정말 보기 힘든 일일 뿐만 아니라, 야권과 보수 언론이 드루킹 사건을 과도하게 물고 늘어진 것이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경남도지사 출마는 김경수의 이름을 전국구로 알리는 이득(?)을 가져다 줬다.

출구조사에서는 김경수 후보가 16% 차이로 앞서는 것으로 나왔음에도 개표 초중반에는 김태호 후보가 50%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앞서면서 이변이 연출되나 싶었지만, 밤 11시를 기점으로 따라잡기 시작하면서 개표율을 20% 넘긴 시점에서 결국 역전에 성공했다. 개표 초반 김태호 후보가 앞섰던 것은 경남에서도 특히나 보수세가 강한 서부 지역을 먼저 개표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마침 김경수 지지율이 높은 창원시에서 개표기가 고장나는 등의 문제로 수작업으로 개표하느라 늦어진 점도 작용했다. 선거 개표의 자세한 내용은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지역별 결과/동남권 문서 참조.

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된 최초의 경남도지사이며, 친문계 핵심 인사로서 당원들의 지지도도 압도적이기 때문에, 드루킹 사건이나 경남도정에서 이렇다 할 하자가 발견되지 않는 이상, 명실상부한 20대 대선의 잠룡이자 문재인 대통령의 후계자로 부상했다고 할 수 있다.# 김경수 본인은 JTBC와의 인터뷰에서 더 큰 정치에 도전할 뜻이 있냐는 질문에 "더 큰 정치 부분은 제가 져야 할 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경남도민들께서 저한테 주신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라고 답했다.

무소속의 깃발을 들고 경남도지사에 도전해 성공한 후보가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주목을 받은 바가 있었지만, 김경수는 아예 민주당 깃발을 들고 나가서 한국당이 경남에 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후보를 상대로 예전의 패배를 설욕하면서 승리하였다. 실로 무시무시한 성과를 낸 것.[24]

당선 다음날인 15일, 여의도에서 열리는 민주당 광역단체장 당선 행사에 참석하지 않고 거제, 통영, 고성, 사천, 남해, 하동, 진주, 의령, 함안 9개 시군[25]을 돌며 민생 현안을 점검하였다.

3.6. 경상남도지사 직무수행

3.6.1. 2018년

법률상 공식 임기가 시작하는 2018년 7월 1일에 재난안전대책회의를 열었다. 본래 7월 2일 공식 취임식을 행할 예정이었으나, 태풍 쁘라삐룬이 한반도에 접근하자 취임식을 취소하고 국립 3·15민주묘지와 창원 충혼탑을 참배하고 경남도청에서 취임 선서를 하며 약식으로 취임 행사를 진행했다.

8월 15일, 리얼미터의 첫 민선 7기 시도지사 직무수행 지지도 조사에서 9위를 기록했다.

9월 10일, 리얼미터 시도지사 지지도에서는 3계단 내린 12위를 기록했다.*

이번 두 번의 조사에서 다른 부울경 광역단체장이 13위, 15위를 기록한 것을 생각하면 그나마 선방한 셈이다. 하지만 허익범 특검이 김 지사를 드루킹과 공범으로 인식하고 기소하는 등 도정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이 놓여져 있고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지지도가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10월 8일, 취임 100일을 맞아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여러 소회를 밝혔다. 이날 방송에서 사실 지사 출마 생각이 없었고 박원순 서울 시장(!)에게 경남지사 출마를 직접 권유했었다거나, 드루킹과의 대질 심문에서 드루킹이 언론에서 다룬 이야기에 묵비권을 행사했다거나 등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풀었다. 김 지사는 드루킹 특검 활동 중 이야기를 하면서 언론의 일방적인 보도가 나오는 와중에 뉴스공장에서 사실에 입각한 보도를 내줬다며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눈에 띄는 지자체장'이 있냐는 질문에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경기지사를 꼽으면서 이재명 지사는 소몰딜, 체감형 정책을 아주 잘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자신과 마찬가지로 여러 논란이 있는 이 지사는 일종의 동병상련이라면서 이 지사에 쏟아지는 논란에 관해서는 시간이 지나면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지사는 친문계 당원들이 가지고 있는 이 지사에 대한 높은 반감과 공격성에 우려한듯 경선에서 받았던 상처들은 이제 서로 보듬어주고 싸우지 말아야 한다며 자신의 팬카페인 ‘김경수와 미소 청년’ 회원들과 당원들에게도 당부했다.

김경수 지사의 도정 100일을 돌아보면 당초 김 지사가 취임하면 적폐청산에 상당한 비중을 둘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그러나 '김경수 도정'은 경제·민생 행보에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결과물이 투자 유치와 일자리 창출, 제조업 혁신 밑그림 구상, 서부경남 KTX의 국가 재정 사업화다.

특히 짧은 시간에 가장 두드러진 성과를 보인 게 바로 투자 유치다. 김 지사는 지난 2일 서울에서 열린 투자유치설명회에서 한국남부발전 등 17개 업체로부터 3조 998억 원의 신규투자와 4220명 고용 투자협약을 끌어냈다. 지난해 열었던 수도권 투자유치설명회 때의 실적[26]보다 4배 가량 증가한 수치다.

그리고 김 지사의 대표 공약이자 서울거제를 2시간 교통권으로 좁혀줄 서부경남 KTX 추진을 위해 KTX 사업이 민자가 아닌 국가 재정사업으로 전환하는 것도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혔다. 이런 가운데 김 지사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으로부터 그 답변을 받아냈다. 서부경남 KTX는 사업비가 무려 5조 원대에 달해 국가 재정사업으로의 전환만으로도 의미 있는 성과다. * 다만, 예산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 승인과 사업 조기 착공을 위한 예비타당성(예타) 조사 면제, 예타 조사 면제에 대한 다른 시·도의 견제는 여전히 변수로 남아 있는 상태다. 더군다나 울산 외곽순환고속도로 건설이나 새만금개발사업도 해당 지자체가 예타 조사 면제를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다.

짧은 기간임에도 투자 유치나 일자리 창출에서 성과를 냈는데, 대통령과 가까운 실세 정치인이 단체장으로 당선된 효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10월 8일, 세 번째로 시행된 리얼미터 시도지사 지지도에서 14위를 기록하며 이전 12위보다 2순위 추락하였다. 같은 부울경권 광역단체장도 나란히 15위, 16위를 기록하며 부울경권 단체장들은 좋지 못한 시작을 보이고 있다. #

11월 9일, 리얼미터 시도지사 지지도에서 이재명 경기지사와 허태정 대전시장을 제치고 2단계 오른 12위를 기록했다.

12월 11일, 리얼미터 시도지사 지지도 조사에서 2계단 오른 10위를 기록했다.

신년맞이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는 1계단 하락한 11위(49%)를 기록했다. #

3.6.2. 2019년

2019년 리얼미터 첫 시도지사 직무수행 평가에서 10위를 유지했다.

2019년 1월 29일 서부경남 KTX 건설이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사업으로 확정됐다. 경상남도의 대표적인 숙원 사업 중의 하나가 이제야 첫 삽을 뜨게 된 터라 경남 전역에서도 환영 일색이라는 듯하다. * 이 희소식에 김경수 도지사와 민주당 경남도당 위원회는 정부에 감사를 표했다. *

후술할 드루킹 사건의 1심 판결에 따라 1월 30일 법정구속되면서 직무가 정지되며 경상남도부지사가 도지사직을 대행하였다. 4월 17일에 일단 보석 결정을 받고 나와 78일만에 경남도청에 출근, 다시 도정에 복귀했다.

4. 논란 및 사건사고

  • 대학교 3학년인 1989년 총학생회 학술부장 시절 가을 축제 때 북한의 사회주의 건설 홍보책자인 ‘북한 바로알기 자료집’을 만들었다가 국가보안법 상의 이적표현물 제작 반포 혐의로 구속되었고#, 서울중앙지방법원은 1990년 3월 20일에 징역1년, 집행유예2년, 자격정지1년을 선고하였다.
  • 1991년 9월 9일 경찰청 보안국은 이적단체 민족해방활동가 그룹의 핵심 조직원으로 활동하여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김경수의 구속영장을 신청하였다.# 민족해방활동가 조직은 1988년 2월 김일성 주체사상에 따른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NLPD) 혁명론을 추종하고 주체사상을 학습했으며#,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지향하면서 조직하였으며, 이들은 일정한 장소에 모여 '김일성 신년사', '항일무장투쟁사' 등을 학습해왔다. 또한 60여차례의 각종 시위를 주도하였으며, '전진하는 동지' 등 유인물 40여종을 제작 및 배포하였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1992년 5월 29일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다시 한번 징역1년, 집행유예2년, 자격정지1년를 선고하면서 김경수는 모두 세 차례 옥살이를 했다.

4.1. 여론조작 관련 의혹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드루킹 여론조작 사건/관련 의혹 및 논란 문서의 s-3.1 문단을 참고하십시오.

4.1.1. 드루킹 여론조작 사건/판결

  • 서울중앙지방법원은 1심에서 '드루킹 댓글조작 공모' 사실을 인정했고 업무방해죄로 징역 2년을 선고하고 김경수를 법정구속하였다. 또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는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였다. 김경수는 업무방해죄로 징역형 또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100만 원 이상의 벌금형 중 하나라고 확정되면 도지사직을 잃고 그 형의 확정일부터 10년간 피선거권이 제한된다. 그래서 1심에서 업무방해죄 관련해서는 집행유예 없이 실형,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도 집행유예 징역형이 나온 이상 상급심에서 모두 무죄가 나오지 않고서는 도지사직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4월 17일까지 서울구치소 독방에 수감되어있었다. 기사
파일:구치소로향하는 경수.jpg

김경수 측은 해당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기사
파일:99271C4A5C52AA65158CD5.jpg

그리고 이후 4월 17일, 항소심서 보석 허가되어 법정구속 77일만에 석방됐다.#

4.2. 무허가 가족묘 논란

조선일보 기사 아버지가 고향인 고성군에 정부의 허가 없이 가족묘를 조성한 일이 있다. 이는 "가족묘지나 문중묘지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해당 묘지를 관할하는 시장 등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14조 3항에 위배된다.

다만 본인이 아닌 아버지가 한 일이며 일반인도 많이 저지르는 실수인 점은 참고해야 할 부분이었다. 실제로 묘지에 관한 법률이 정비되기 전에는, 그저 누구 땅의 소유이든 상관없이 풍수지리상 좋은 곳이 있으면 그 자리에 고인을 매장했으며 그 이후로 가족들이 이곳에 묘지를 형성하는 일이 흔했다. 그리고 후보 본인은 문제를 파악한 이후 최대한 빠르게 조치한다고 하였다.

5. 기타

  • 병역은 사실상 면제인 제2국민역 처분을 받았다. 본인이 밝히기를, 사유는 대학생 시절 공장에서 검지를 다쳐 손가락 접합수술을 받았기 때문인데 사실 김경수는 이 사건이 아니었어도 여러번 구속됐으므로 정상적인 군복무를 하진 않았을 것이다. 친구들은 구속을 당하고 군면제를 받았지만 본인은 군면제를 받고 구속을 당해 약간 억울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 1988년 8월 30일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위반으로 서울남부지방법원이 징역 8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하였고, 그래서 1988년 12월 21일 특별사면 되었다.
  • 2019년 현재 51세[27]이며, 정계 진출도 94년에 보좌관으로 시작한 만큼 정계에 오래 몸담은 사람이다. 하지면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 동안으로 손석희 JTBC 보도 담당 사장에 비견될 만하다. 30대 중반 ~40대 초반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 그래서 7회 지방선거 도지사 유세하는 동안 어르신들에게 미청년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여담으로 제7회 지방선거 경남지사 선거에 출마선언하던 날 전재수 의원(부산 북•강서 갑)이 페이스북에 응원 글을 올리며 "경수형" 이라고 언급을 했는데 실제로 김경수 경남지사가 전재수 의원보다 4살 형이다.
  • 동안에다가 미중년이지만 키도 크고, 목소리도 좋아서 여성층들이나 노년층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한다.
  • 애창곡은 유진표의 '천년지기'(트로트).
  • 6.13 지방선거 당시 김해시 광역의원으로 김경수 지사와 이름이 같은 37세의 후보가 출마하여 득표율 67.0%로 당선되었다. 이 동명이인도 민주당 소속이다. 그외에 경기 가평, 충남 공주, 경남 창원에서는 동명의 한국당 기초의원 출마자들이 있었으며 가평을 제외한 모든 후보가 당선되었다.

6. 관련 문서

7.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김해 을) 민주통합당 58,157 (47.88%) 낙선 (2위)
2014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남도지사) 새정치민주연합 559,367 (36.05%) 낙선 (2위)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김해 을) 더불어민주당 70,600 (62.38%) 당선 (1위) 초선[28]
2018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남도지사) 더불어민주당 941,491 (52.81%) 당선 (1위) 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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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원희룡 }}}}}}

[1]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광역단체장 출마로 인한 사퇴[2] 학창시절은 경남 진주시에서 보냈다.[3] 김해 김씨 삼현파(三賢派) 24세손, 수로 72세손 '洙'자 항렬이다. 막장 유튜버였던 김윤태는 그의 아들뻘이고 다른 당 소속이었던 김무성 국회의원은 그의 아버지뻘이다.[4] 대학생 시절 공장 활동을 가다 사고를 당해 왼손 검지 손가락 접합수술을 받음[5] 상당히 키가 큰 편이다.[6] 2019년 현재 국회의원인 김두관 전 경상남도지사는 2010년 6.2 지방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야권 단일화 이후에 당선, 그리고 나서야 더민주의 전신인 민주통합당에 입당한 사례로 처음부터 민주당계 당적을 달고 출마한 김경수 경남지사와는 과정이 다르다.[7] 친문 유력 정치인들은 추미애, 홍영표, 전해철, 최재성, 박범계, 임종석, 김태년 등 많이 있지만 5선 추미애를 제외하면 대부분 3선 정도의 의원들이고, 그 추미애 또한 이재명컷오프시키지 않았다는 점에서 극렬 친문들의 비토를 받고 있는 반면, 민주당 최초의 경상남도지사인 김경수는 그 극적인 상황들로 인해 친문의 직계 후계자로 자리매김했다.[8] 2018년 시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층인 친문이 가장 선호하는 차기 대권 후보임은 틀림없다.[9] 지금은 사라진 30~40대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월간지였다.[10] “전두환 군부 독재정권 하에서 국회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나 싶었다. 그러나 국감 기간 직접 겪어본 국회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국회에서 하는 일이 통쾌하고 보람도 컸다.”(김경수, <사람이 있었네>,2014)[11] 유선호 의원이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김부겸 후보에게 패해서 낙선.[12] 다른 곳도 아니고 국민의 정부에서 그런 이유로 잘랐겠나 싶겠지만, 그만큼 청와대에서 근무하기 위해서 신원이 철저해야 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13] 2012년 초 문재인이 출연한 힐링캠프(SBS)에서도 후반부에 자막으로는 봉하마을에서 연락왔다는 식으로 표현되었지만, 음성으로는 문재인 대통령 본인이 김경수 비서관이라고 직접 실명까지 언급했다.[14] 이러한 일련의 이야기는 본인이 모신 문재인 대통령과 이야기와 굉장히 비슷하다. 괜히 그가 친문의 장자로 대우 받는 것이 아니다.[15] 353,795표(22.8%p)[16] 낙선 후 지역 마을 회관에 회갑연이 열리면 귀신같이 찾아가 어르신들이랑 부대꼈다고 한다. 처음에는 민주당 사람이라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지만, 나중 가서는 볼도 꼬집고 술도 얻어마시는 등, 그야말로 밑바닥 민심을 긁어모았다고 한다. 그 결과 지역구 내에서는 '우리 경수'라고 불린다고.[17] 당시 현역이었던 김태호 의원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상대가 이만기로 바뀌었다. 이만기는 2004년 총선에서 민주당계 정당열린우리당으로 출마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낙선하였고, 이후 한나라당 - 새누리당 계열로 자리를 옮겨 출마한 것이다.[18] 2위는 대구 수성구 갑에서 62.3%의 득표율로 당선된 김부겸 의원인데, 득표수로만 따지면 김부겸 의원이 1등이라고 전해진다.[19] 이들만 간 게 아니라 경남권에 나섰던 이들 및 당직자들도 함께 갔었다고 한다. 다만, 2년 전에 눈물을 흘리면서 갔던 김영춘 부산진구 갑 국회의원 당선자는 이번엔 다른 부산 당선자 4명과 함께 참배했다.[20] 현재 민홍철 의원 지역구가 김해 갑이다.[21] 좌우에는 김해 을 재보궐선거 당선자 김정호 의원, 부인 김정순 씨가 서 있다.[22] 실제로 전남도지사 선거 출마를 시사한 이개호 의원이 기존 입장을 철회하고 불출마를 선언했다.[23] 이번 민주당의 당헌 당규에는 「선출직 공직자가 임기를 4분의 3 이상 채우지 못하고 다른 선거에 출마할 경우 경선 득표수의 10%를 감점한다」는 조항을 신설해 현역 의원의 지선 출마를 억제했다.[24] 김태호는 경남 출신에 7차 지선 전까지 경남에서 치뤄진 여섯 선거에서 모두 당선된 만큼 경남에서만큼은 자기 기반을 확실히 갖추고 있던 강자 중에 강자다. 게다가 경남은 3당 합당 이후 민주당에게 사지였다가 그나마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기점으로 경합 지형으로 돌아선 상황이었다.[25] 거제를 제외하면 상대적으로 민주당계 정당 지지세가 약한 서부 경남으로 분류되는 시군들이다.[26] 투자 유치 금액 9,100억 원·인력 고용 1141명[27] 그러나 현직 광역자치단체장 중 가장 나이가 적다.[28] 더불어민주당20대 총선 당선인들 중 최고 득표율을 기록. 2018. 5. 3. 의원직 사퇴, (경남지사 선거 출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