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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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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공산당 선언』 친필 초안,
칼 마르크스의 주석이 있는 『자본론』 제1권 사본
Manifest der Kommunistischen Partei,
draft manuscript page and Das Kapital.
Erster Band, Karl Marx's personal annotated copy (영어)
국가·소장 국가 : 네덜란드/독일
소장 : 네덜란드 국제사회역사연구소
등재유형 기록유산
등재연도 2013년
제작시기 1867년

1. 개요2. 내용
2.1. 상품가치2.2. 상품물신2.3. 기계와 대공업2.4. 시초축적
3. 판본4. 한국 번역본
4.1. '서울출판사'본4.2. '이론과 실천'본4.3. '백의 출판사'본4.4. 김수행4.5. 강신준 본4.6. 채만수4.7. 황선길 본4.8. '모두의책' 출판사 본4.9. 그 외의 '한국어' 번역본
5. 여담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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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자본론 (Das Kapital)』은 카를 마르크스가 집필하고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편집한 서적이다. 1859년 마르크스의 저술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1][2]의 연장선상에서 집필됐다. 참고로 "자본론"이라는 단어는 일본어 번역을 그대로 베껴온 것(중역)으로, 직역하면 "자본"이 옳다. 보다 정확히는 "자본-정치경제학 비판"이 원제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론(論)'으로 끝나는 대부분의 고전이 그렇다.[3]

2. 내용




마르크스는 <자본론> 제1권 서문에서 자신이 설명하는 내용이 자본주의의 특정한 역사적 단계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밝혔다. 다시 말해 시간이 흐르며 자본주의가 어느 정도 변화를 겪더라도 그것이 '자본주의'인 한 지속될 수밖에 없는 본질적인 특징을 분석하려는 것이 마르크스의 의도였다.

<자본론>의 부제는 '정치경제학 비판'이다. 여기서 '비판'이 겨냥하는 대상은 경제학의 개별 이론들이 아니라 '정치경제학 전체'다. 즉, 마르크스는 부르주아 경제학의 이러저러한 설명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틀렸다는 식으로 말할 의도가 없었다. 오히려 <자본론>의 목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학이라고 일컬어지는 학문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었다.

애덤 스미스로 대표되는 고전경제학이나 현대 주류경제학은 가격(가치), 이윤, 생산자, 소비자 같은 현상들을 과학적인 이론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이런 시도는 가격, 이윤, 생산자, 소비자 등이 자연과학이 연구하는 중력, 마찰력, 원자, 분자 등과 같이 '객관적/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것들이라고 상정한다. 바로 이 점이 마르크스가 비판한 지점이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자본주의사회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경제현상들은 오직 자본주의적인 사회구조 속에서만 그런 형태로(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정리하면, 자연스러운 경제현상이라고 당연시되는 가격이나 이윤 등부터 의문시하고 이것들이 왜 '자연스러워 보이도록' 존재하는지를 밝혀야 한다는 주장이 <자본론>의 요지다.

<자본론>에는 '착시현상'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 표현은 <자본론>의 핵심을 담고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 구성원들의 관계를 매개하는 상품 가격이나 이윤지향 생산이 '자연화'되는 상황이 경제학자들이 어떤 오류를 저질러서 발생한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 속에서 그 구성원들이 일상적으로 행하는 실천들에 연동되어 생겨난 관념이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사진에 담긴 풍경이 착시현상으로 인해 두 가지 모습으로 보인다고 할 때 관찰자의 눈에는 '실제로' 두 모습이 보인다. 자본가들이 생산수단(기업체)을 소유하고 노동자들이 임금노동을 하고 개별 작업장들이 대량생산한 상품들이 시장에 모여 그 가치를 평가받는 사회구조,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라면 가격/이윤/생산자/소비자 등은 '실제로' 자연적인 현상인 듯 '보인다'. 하지만 착시에 따라 보이는 모습이 사진 속 풍경의 '본질'은 아니듯이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안에서만 나타나는 경제현상 역시 인간사회의 '본질'은 아니다. 이 점을 규명하기 위해 <자본론>은 사회적 필요노동시간, 상품물신, 화폐물신 등을 상세하게 논한 것이다.

2.1. 상품가치

재화가 교환되는 것은 인류 역사의 모든 시대에서 일어난 일이다. 즉, 교환은 자본주의 사회가 아닌 사회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하지만 생산되는 재화의 대부분이 상품으로서 교환되는 것은 '오직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다. 예를 들어 중세 초의 봉건제 사회에서는 농업생산물이 그것을 만든 장원 내에서 소비됐고 잉여분이 있을 경우에만 지주, 귀족, 교회에 바쳐졌다. 자본주의에 와서야 대부분의 재화 생산 활동이 교환을 목적으로, 즉 시장에 내다파는 것을 목적으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게 되었다.[4]

교환이 당사자들 사이에서만 개별적으로 일어나고 끝날 때는 교환의 양적 비율이 매우 다양하게 성립될 수 있다. 극단적으로 가정하면 내가 가진 자동차를 상대가 가진 닭 한 마리와 교환해도 나만 만족한다면 무방한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처럼 거의 모든 생산물이 시장에서 교환되는 상황이라면? 누구는 자동차와 닭의 교환을 납득할 수 있고 누구는 말도 안 된다고 여길 수 있으며 다른 누구는 아예 한술 더 떠 닭 1마리를 아파트 1채와 교환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5]

위에서는 일부러 극단적인 예시를 가정했지만 얼추 교환이 될 만한 상품들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 보아도 위에서처럼 양적 교환비율에 대한 기준이 사람들마다 제각각이면 사회적으로 큰 혼란이 빚어질 것임은 자명하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물건들 간의 양적 교환비율들이 어떤 식으로든 서로 들어맞아야 한다. 의자 1개가 옷 2벌 혹은 달걀 100개와 교환된다면 옷 2벌과 달걀 100개도 서로 교환될 수 있어야 하는 식이다.

그런데 의자 1개, 옷 2벌, 달걀 100개가 서로 교환될 수 있다면 이것들 간의 양적 교환비율이 같다고 여겨지게 만들 기준이 존재할 테다. 일상적인 표현으로, 세 물건은 동일한 가치를 갖는 셈이다. 이 연구주제에 관해 애덤 스미스는 물건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량(노동시간)에 따라 가치가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반면 마르크스는 사회 내에서 '생산기술/노동숙련/노동강도 등의 평균수준을 고려할 때 이 상품을 만드는 노고는 이 정도다'라고 통용되는 기준이 상품가치의 척도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것이 유명한 '사회적 필요노동시간' 개념이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어떤 물건의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이 영원히 고정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어떤 상품을 만드는 기술이 발달해 생산이 수월해지면 그 상품의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이 줄어 상품가치가 감소할 수 있다. 아주 극단적인 예시로 3D프린터가 고도로 발달해 자동차 한 대를 순식간에 만들어낼 수 있는 상황을 떠올려 본다면? 재배를 위한 노동/시간의 소요가 필수적인 농산물보다 자동차가 저렴해질지도 모른다.[6]

상품가치와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은 물질로서의 상품이 갖는 성질이 아니다. 자본주의적 교환이라는 관계성 안에서만 성립되는 속성이다.[7] 그런데 신기하게도 상품가치는 교환관계성 밖에서도 사물의 속성으로서 존재하는 듯이 보인다. 그래서 애덤 스미스는 작업 중에 투입된 노동시간이 상품가치량이 된다고 파악했고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은 소비자가 제품에 대해 느끼는 효용이 상품가치량의 원천이라고 파악했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판단하기에 상품가치는 사물에 내재하는 성질인 것처럼 혼동되는 사회적 관계성일 뿐이다. 그리고 이 혼동은 경제적 생산 활동이 사적 기업체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그렇게 생산된 결과물들이 시장이라는 거시적 교환영역에서 양적으로 비교되는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다.

2.2. 상품물신

2.3. 기계와 대공업

통상적으로 산업혁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와트의 증기기관을 위시한 '동력기'였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작업기'에 일어난 변화야말로 18세기 산업혁명의 출발점이었다고 주장한다. 실질적으로 원료에 변형을 가하는 일은 작업기의 몫이고 동력기와 전동장치는 작업기를 운동시키기 위해 존재할 뿐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마르크스는 와트의 업적이 갖는 역사적 중요성을 저평가하지 않았다.

마르크스가 산업혁명을 가능케 한 변화로 지목한 것은 '작업기가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도구의 수적 증가'였다. 그 대표적인 예시로는 한 작업기가 12~18개의 북으로 방적하도록 설계된 제니방적기가 거론됐다. 제니방적기를 통해 인간의 산업이 동시에 움직일 수 있는 도구의 수라는 측면에서, 인체기관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났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작업기의 발명이 증기기관 혁명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한다. 작업기가 사용하는 작업도구의 수가 늘수록 그 작업기를 가동시키는 데 필요한 장치도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크기 증대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자 인간이 페달을 밟아 동력을 만드는 등의 기존 방식으로는 기계장치의 저항력을 극복할 수가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크라이트 수력방적기가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계절에 따라 물이 고갈되거나 지형에 따라 물을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난관은 와트복동식 증기기관을 발명함으로써 완전히 해결됐다. 와트의 원동기는 석탄과 물을 소비해 동력을 만들었고, 그 힘을 인간이 완전히 통제할 수 있었으며 지리적 사정을 고려치 않고 설치할 수 있었다.

와트는 자신의 발명이 향후 자본주의적 대공업이 발달하는 데 미칠 영향을 어느 정도 직감하고 있었다. 그 점에 관해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와트의 위대한 천재성은 그가 1784년 4월에 얻은 특허권 명세서에 나타나 있는데, 거기에는 그의 증기기관이 ~ 대공업의 보편적 동력기로 서술되어 있다. 그가 ~ 지적하고 있는 사용처들은 예컨대 증기망치와 같이 반세기 이상을 지나서야 도입된 것도 적지 않다. ~ 그의 계승자들인 볼튼-와트회사는 1851년의 런던 산업박람회에 대양 기선용의 거대한 증기기관을 내놓았다." - <자본론> I권 하편

2.4. 시초축적

"아메리카에서 금은의 발견, 원주민의 섬멸·노예화·광산에 생매장, 동인도의 정복과 약탈의 개시, 아프리카가 상업적 흑인 수렵장으로 전환 따위가 자본주의적 생산의 시대를 알리는 새벽의 특징이었다. ~ 그 뒤를 이어 일어난 것은 지구를 무대로 하는 유럽 국가들의 무역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스페인에 대한 네덜란드의 반항으로 개시되었고, ~ 현재 아직도 중국에 대한 아편전쟁 따위로 계속되고 있다." - <자본론> I권 하편
"자본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든 털구멍에서 피와 오물을 흘리면서 이 세상에 나온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 <자본론> I권 하편
자본주의적 생산이 등장하게 된 역사적 과정에 대한 설명.

'자본주의적 생산'은 사회가 생산수단을 소유한 사람들(A)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B)로 나뉘어 있을 때만 이루어질 수 있다. A와 B 사이에는 공식적인 신분 구분은 없으며, B는 과거 시대의 노예농노와 달리 전자에 일방적으로 종속되지 않는다. 양측은 임금노동계약을 체결함으로써야 생산관계를 맺는다. 그런데 어쩌다가 중세 농노제/봉건제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혹은 만인이 평등하다고 여겨지는 근대사회가 대두되는 과정에서 누구는 생산수단 소유자가 되고 누구는 임금노동자가 되는 차이가 생겨났을까?

근대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경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조차도, 위의 질문을 그다지 고찰하지 않았다. 대체로 근면한 자들은 부를 쌓았고 게으른 자들은 그렇지 못했다는 식으로만 생각할 뿐이다. 하지만 마르크스에 따르면 근면이 부 축적에 유리하다는 보편적인 사실과는 별개로, 자본주의적인 자본가-노동자 구분이 등장한 것은 특정 시대에 집중된 폭력적인 과정을 통해서였다.

중세 봉건제의 농노와 노예들은 근대로 접어드는 시기에 영주로부터 해방되어 갔다. 즉, 이들은 자신의 신체를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게 됐고 거주 이전의 자유도 갖게 됐다.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이 과정은 동시에 해방된 농노/노예들이 생산수단을 상실하고 봉건제도로부터 제공받던 생존 보장을 상실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각지의 장원별로 농사를 짓던 봉건제에서는 장원에 속한 농노들이 농사에 쓸 도구들을 직접 소유하고 수확량의 상당부분을 영주에게 납부하기는 했어도 농노 본인의 몫도 챙길 수 있었다.[8] 반면에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는 기업체들이 생산도구들을 대량으로 모아놓고 대량생산을 하게 되면서, 농노 개개인이 생산도구를 보유한 채로 자급자족적 생산을 한 뒤 잉여분을 내다파는 방식이 의미가 없어졌다. 물론 여기에는 산업구조 측면에서 공업의 비중이 농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커져가는 경향도 동반되었다. 그리고 영주로부터 해방됨에 따라 독자적으로 경제적 생존을 모색해야 했던 무수한 농민들은 어쩔 수 없이 도시로 가서 공장노동자가 돼야 했다. 이러한 도시로의 이동은 농민들이 더 이상 장원에 예속되지 않기 때문에 가능했다.

3. 판본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었다. 마르크스 본인이 직접 저술한 독일어판이 대표적이고 영어판 역시 마르크스의 관여가 어느 정도는 있었다.[9] 마르크스가 영국 고전경제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영어본이 마르크스의 주장의 참맛을 더 살릴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4. 한국 번역본

4.1. '서울출판사'본

해방 직후인 1947~8년에 서울출판사에서 최영철, 전석담, 허동의 공역으로 자본론이 발간된 바 있는데, 2권까지 번역하고 나서 남북한 각각 단독정부가 수립되는 바람에 번역자들이 월북을 하여 번역을 완결짓지는 못했다.. 물론 이 책은 얼마 안 가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금서로 처리되었다.#

이중 전석담은 도호쿠제국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한 엘리트로, 북한에서 김일성종합대학이나 북한 사회과학원 교수 등을 역임했다.

4.2. '이론과 실천'본

1987년 '이론과 실천' 출판사에서 '자본'이라는 제목으로 제1권이 출간됐다. 당시 이 책의 번역자는 '김영민'으로 표기됐는데 실제로는 어떤 지하조직이 번역을 주도했고 매우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의 번역과 교열 작업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1990년 5월에 발간된 '개역판' 역자 서문을 보면 이를 짐작할 수 있다.[10] 요컨대 '김영민'은 이 책 번역에 참여한 다수의 익명의 기여자들을 대신하는 이름이다. 참고로 최영미 시인의 자전적 장편소설 '청동정원'에는 이 책이 어떻게 번역됐는지 보여주는 장면들이 있다. 나무위키의 최영미 항목에도 해당 사항이 언급돼 있다.

독일어 원본을 번역한 것인 데다 매우 직역투라 읽어 나가기 어렵다는 평이다. 개역판 서문에서도 역자 '김영민'은 "원전의 표현에 충실"할 의도로 직역에 가깝게 옮겼다면서 독자의 양해를 구하고 있다.

그리고 출판사 사장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으나 검사가 이적표현물임을 입증하지 못했고[11] 그 와중에 이론과 실천 대표 김태경이 서대문 경찰서에 자수했는데 검사는 조서 꾸미다가 기소를 포기해 버렸다고. 여담으로 이론과 실천 출판사 대표 김태경의 부인이 훗날 참여정부 법무부 장관을 지낸 강금실로, 남편을 변호하려고 판사 그만두고 변호사가 되었다나.# 석방 항의서가 빗발치자 곧 풀려났다.

1권은 '김영민'이 번역했고 동아대 강신준 교수가 감수 보완하였으며 2, 3권은 강신준 교수가 번역하였다. 한편 류동민(충남대 경제학과 교수)이 쓴 "서울, 1988년 여름"[12]을 보면 비록 소설 형식으로 쓴 것이지만 자본 2, 3권 교열 작업의 풍경을 엿볼 수 있다. 같은 저자가 쓴 논문[13]은 이론과 실천사의 '자본' 번역을 "1980년대에 넓은 의미의 *86세대가 주도했던 마르크스 원전의 출간 및 연구 붐의 일환"으로 파악하며 지식사회학적으로 분석하고 김수행 본에 대해서는 그 연장선상에 있으며 동시에 그 문제점을 정정하려는 시도로 파악하고 있다.

4.3. '백의 출판사'본

1989년 백의 출판사도 자본론을 발간했다. 그런데 이 책은 북한의 '조선로동당출판사'에서 1965년 7월 23일에 출판한 간행한 자본론 제1권(2책으로 구성됨)을 일본의 학우 서방에서 1967년 5월 1일 반각 발행한 것을 다시 그대로 반각 발행한 것이다. 이로 인해 백의출판사 대표는 감옥에 갔다.

4.4. 김수행

금서 목록에서 풀린 후 1987년 서울대학교에 갓 부임한[14] 김수행 교수가 번역(영어 중역[15])한 자본론(1989년, 비봉출판사) 2권이 출간되었다. 우선 중역이라는 점에서 기본적인 문제가 있고 자신의 해석에 따른 자의적인 용어 변경 등으로 인해 비판을 받았다.[16] 그러나 자본론을 옛날부터 봐 온 사람들에게는 아래의 강신준판보다 오히려 잘 읽힌다는 평이며 많이 추천받고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자신의 책을 읽을 청년들이 "자본주의를 가장 이상적인 경제체제로 여기는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처럼 현실에 순응하지 않기를, 계급 투쟁을 통한 역사발전론을 주장한 마르크스처럼 역사변혁의 주체가 되기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밝혔다.

2015년 개정판이 발매됐는데 노동사회과학연구소(노사과연)에서 활동하는 강성윤이 실질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고 한다.

4.5. 강신준 본

1987년에 발간된 자본 제1권에 대해 감수를 담당했다고 하고 자본 제2권과 제3권을 번역해서 이론과 실천 출판사에서 출판했던 강신준 교수가 "자본"이란 이름으로 독일어 직역 완역본(5권으로 편집)을 2008년(도서출판 ) 최초로 출간했다. 마르크스가 예나 대학에 들어간 것의 중요성을 경시하는 등의 오역과 해석 방향 자체의 실수로 비판받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세 가지 번역본 중 가장 원전에 충실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실제로 그런지는 각자의 판단)

강신준 교수와 견해를 달리하는 노동사회과학연구소 등의 현장주의자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은 판본이기도 한데 마르크스에 대한 해석은 예나 지금이나 공산주의-사회주의 내부의 계속되는 논란임을 생각해 본다면 자본론 자체를 읽는 데 문제가 될 만한 것은 아니다. 강신준 교수의 자본론 번역에는 중대한 오독이 있지는 않으며 무엇보다 원전에 충실하기 때문에 강신준 교수 개인의 해석은 비교적 적은 편이다.

4.6. 채만수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소장 채만수의 번역판.

4.7. 황선길 본

인천대학교 황선길 교수가 자본론이라는 제목을 사용하지 않고 <자본>이라는 원제 그대로 출간했는데, 현재 자본 1 상/하가 존재한다. 여러 버전의 각주나 해설은 제외하고 원본의 번역에 충실하다. 다른 기타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나 해석상 필요한 부분은 각주로 처리해 지면상 다른 부분에 설명한다. 원본의 번역에 충실하면서 설명이 자세해서 평이 좋다. 다만 인터넷 서점에서 아직 1권 상-하 두 권만 조회되는 것으로 보아 아직 2권(또는 3권까지)은 출판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1권 하편의 출간일이 2019년 2월인 것을 보면 번역 작업 시간이 상당히 걸리는 모양.

4.8. '모두의책' 출판사 본

2022년 다른 출판사에서는 분권해서 내는 자본론 1권을 통째로 출판했다. 아직 2,3권은 소식이 없다.

기존의 독일어 제4판(MEW 제23권)을 저본으로 하였으나 MEGA 독일어 제4판(제2부 제10권)과 초판, 그리고 독일에서 최근에 출간된 쿠친스키 판을 모두 아우른 방대한 작업의 산물이라고 한다.

4.9. 그 외의 '한국어' 번역본

북한조선로동당출판사에서 출간한 판본이 존재한다. 반면에 북한과의 교류를 진행했던 이영화 교수에 따르면 80년대 이전부터 자본론은 북에서 금서로 구분돼 있다고 한다. 이 주장은 한국경제의 한경데스크에서도 보도된 적이 있고# 보수논객 조갑제 역시 "자본론을 금서로 지정한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1989년에 출판된 김수행 교수의 초판 번역본을 보면 조선로동당 출판사에서 1984년 출판된 번역본을 참고했다고 분명하게 나와있으며, 백의에서 출판된 자본론 3권, 잉여가치학설사(속칭 자본론 4권)도 이 판본을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도서정리사업 당시 그 이전에 출간된 마르크스의 책들은 도서관으로 넘어갔으며, 현재 북한에서 출판되는 마르크스의 서적 대부분은 주체사상의 내용에 맞게 검열되어 출간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위의 금서로 지정됐다는 소문은 이것과 혼동한듯 하다.

중국에는 연변조선족들을 위한 것으로 보이는 조선어(문화어)판이 존재한다. 베이징의 민족출판사에서 발간한 것으로, 여러 차례 간행됐으며 발췌본도 있다. 참고로 이 출판사는 중국의 유일한 국가급 소수민족 출판기구라고 한다. 냉전 시대에는 스탈린의 저작과 마오쩌둥의 책도 출간한 바 있다.##

5. 여담

거시경제학의 창시자격인 경제학케인스는 당연히 자본론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러나 읽어보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것이 역사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그 책을 시대의 반석처럼 여기며 영감을 얻고 있는 사람들 중에 멍청이가 아닌 사람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이런 책이 왜 이 같은 반향을 가져왔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 쿠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이런 책들이 불 같은 기세로 세계의 절반을 휩쓸 수 있었을까요? ~ 선생님은 자본론과 쿠란을 둘 다 믿으십니까? 아니면 자본론만 믿으십니까? 하지만 자본론의 사회학적 가치가 어떻든간에, 경제학적 가치가 0이라는 것은 확신합니다.[17]
재미있는 사실은 케인스 본인도 훗날 <고용, 이자,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을 펴낸 뒤에 당대의 주류경제학파들로부터 그가 사회주의자라는 색깔론에 시달렸다는 점이다. 실제로 그는 당시 영국 보수당과 대립하는 영국 자유당[18] 소속으로서 자유주의(새자유주의)자였다.

2008년 <교수신문>에서 지난 60년간 한국 사회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책을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이때 응답자의 약 40%가 <자본론>을 꼽았다. 관련 기사

2013년에는 경희대학교에서 교양수업으로 마르크스 경제학 등을 강의하던 임승수가 자본론을 가르친다며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반미 사상을 가졌다는 이유로 학생에 의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신고되는 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자본론 강의를 개설한 대학을 찾기 어려운 한국과 달리 중국에서는 경제학과와 정치교육학과의 전공필수 과목으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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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술이라지만 개요만 대충 써 놓은 요약 초고 정도. 그나마 '자본'을 쓰면서 목차 등의 구성이 꽤 바뀌었다.[2] 이때의 정치경제학은 당시에도 주류경제학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고전파 경제학'을 지칭한다.[3] 흔히 '자본론의 후속편'이라고 지칭하는 블라디미르 레닌의 '제국주의론' 역시 원제는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다. 1980년대 말에 나온 번역본들이 모두 '제국주의론' 타이틀을 달고 출간돼 남한 운동판에서도 '제국주의론'이라는 단어로 이 책을 지칭하는 관습이 있는데 2017년에 아고라 출판사에서는 원제 그대로 번역본을 출간했다.[4] 실제로 상업은 농업 같은 다른 산업이 발전되어야 비로소 발전할 수 있다. 상업이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다른 산업에서 만든 생산품을 사고파는 행위이므로 다른 산업에서의 생산력이 미진하면 상업 또한 미진할 수밖에 없다. 물론 상업을 주 산업으로 하는 상업국가들도 존재하긴 했지만 이들은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 중계무역을 하거나 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인도나 이슬람권에서 나는 향신료 등이 전혀 나지 않았지만 이슬람권 등지에서 향신료 등을 수입해 유럽 각지에 팔았다.[5] 이런 식의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는 게 초인플레이션. 화폐라는 것도 결국은 교환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초인플레이션도 평상시에는 비정상적으로 여겨지는 교환이 현실이 되는 경우다. 물론 이런 상황을 아무도 원하지는 않지만.[6] 물론, 이렇게 가정하더라도 기본 원료비용부터가 월등한 자동차가 농산물보다 저렴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의 얘기는 어디까지나 논리적or관념적 가정, 그것도 매우 극단적인 가정이다. 당초에 농업, 어업 등은 생산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시킬려고 해도 할 수 없는데 생산물이 생물이기 때문이고 자라는 데 필수적인 기간이 있으니까 당연히 불가능하다.[7] 사병과 장교의 관계를 떠올려보면 이해가 쉽다. 현역 군인일 때는 계급상 상관인 사람에게 복종해야 한다. 하지만 전역한 뒤에 동네에서 장성을 마주친다면? 그냥 아저씨일 뿐이다. 군 조직 내에서만 성립되는 상관-부하 관계성이 없어졌기 때문이다.[8] 또 영주들도 이런저런 관습법 등 여러 요인으로 농노들을 함부로 수탈하기도 곤란했고(동유럽 제외) 또한 농노들이 근본적으로 농업에 종사한다는 점에서 아무리 생산시간을 억지로 늘려도 생산물이 그만큼 늘지 않으므로 농노들도 쉴 시간이야 있었다. 물론 영주들이 이런저런 부업을 시키긴 했지만...[9] 공산당 선언도 비슷하다. 원고는 독일어지만... 다만 독일어 역시 애덤 스미스의 영어 원판에 영향을 많이 받은 글이라 엥겔스도 "영어 어투가 강하다"(그러니까 영어식 독일어)고 썼다.[10] 이 개역판 역자 서문의 작성자를 강신준 교수로 오인하는 경우도 있는데(김공회. 2010. 「Das Kapital의 성격과 그 번역이 대한 몇 가지 이슈: 새로 완역 출판 된 『자본』의 서평을 겸하여」. 《마르크스주의연구》, 제7권 제4호., p.122 각주 7) 이는 사실이 아니다.[11] 강신준 교수의 회고에 따르면 이적표현물인지 확인해야 되기는 한데 당연히 경제학에는 문외한인 검사가 몇 번을 읽어 봐도 "이게 뭔 소리다냐"며 이적표현물이냐 아니냐를 파악하는 건 고사하고 내용 자체를 당최 이해를 못 했고(...) 경제학자들에게 자문을 구해야 했는데 당시 자문을 구할 대상 가운데 한신대학교 김수행, 박영호, 정운영 교수는 진보 측 입장이었고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안병직(공교롭게도 이 사람들 중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 대해서 최고의 전문가다. 뉴라이트가 되어 버려서 그렇지.), 배무기 교수는 모두 자문 요청을 거절했다.[12] 류동민, '기억의 몽타주: 서울 1988년 여름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 한겨레출판사, 2013년 6월 21일 출간)의 "제1부[13] 류동민, "『자본론』번역의 내면 풍경" (마르크스주의 연구 제13권 제1호, 2016.2)[14] 민주화 직후 서울대학교에서 대학원생들이 수업 거부와 파업까지 불사하면서 만든 자리. 그러나 2007년 그가 퇴임하고 나서는 다시 마르크스경제학 교수 자리는 공석이 되었다. 이후에는 노사과연 등에서 활동하는 강성윤이 시간강사로 정치경제학 입문, 마르크스경제학, 현대마르크스경제학 세 과목을 맡아 강의하고 있다.[15] 펭귄 클래식 본을 사용하였다고 한다.[16] 김수행 교수는 영국에서 유학했으며 영국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Ben Fine을 사사했다. 때문에 파인의 독특한 자본론 해석을 수용하고 있는데 문제는 이쪽은 마르크스주의자들 중에서도 소수파라는 것... 자본론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공산이론가들 사이에서도 많은 논란거리가 되지만 당연히 번역을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17] 1934년 케인스에게 자본론을 읽어 보라고 권한 버나드 쇼에게 보낸 답장 중. 조지 버나드 쇼는 사회주의자였다. 맥락을 보아 케인스는 자본론을 읽어보지는 않은 것 같다.[18] 직계 후신은 2024년 영국 총선 직후 기준 영국 제3당 자유민주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