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넘어옴1 != null
''''''{{{#!if 넘어옴2 == null
{{{#!if 넘어옴1[넘어옴1.length - 1] >= 0xAC00 && 넘어옴1[넘어옴1.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1[넘어옴1.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1[넘어옴1.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1[넘어옴1.length - 1] < 0xAC00 || 넘어옴1[넘어옴1.length - 1] > 0xD7A3
은(는)}}}}}}{{{#!if 넘어옴2 != null
, ''''''{{{#!if 넘어옴3 == null
{{{#!if 넘어옴2[넘어옴2.length - 1] >= 0xAC00 && 넘어옴2[넘어옴2.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2[넘어옴2.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2[넘어옴2.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2[넘어옴2.length - 1] < 0xAC00 || 넘어옴2[넘어옴2.length - 1] > 0xD7A3
은(는)}}}}}}}}}{{{#!if 넘어옴3 != null
, ''''''{{{#!if 넘어옴4 == null
{{{#!if 넘어옴3[넘어옴3.length - 1] >= 0xAC00 && 넘어옴3[넘어옴3.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3[넘어옴3.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3[넘어옴3.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3[넘어옴3.length - 1] < 0xAC00 || 넘어옴3[넘어옴3.length - 1] > 0xD7A3
은(는)}}}}}}}}}{{{#!if 넘어옴4 != null
, ''''''{{{#!if 넘어옴5 == null
{{{#!if 넘어옴4[넘어옴4.length - 1] >= 0xAC00 && 넘어옴4[넘어옴4.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4[넘어옴4.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4[넘어옴4.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4[넘어옴4.length - 1] < 0xAC00 || 넘어옴4[넘어옴4.length - 1] > 0xD7A3
은(는)}}}}}}}}}{{{#!if 넘어옴5 != null
, ''''''{{{#!if 넘어옴6 == null
{{{#!if 넘어옴5[넘어옴5.length - 1] >= 0xAC00 && 넘어옴5[넘어옴5.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5[넘어옴5.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5[넘어옴5.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5[넘어옴5.length - 1] < 0xAC00 || 넘어옴5[넘어옴5.length - 1] > 0xD7A3
은(는)}}}}}}}}}{{{#!if 넘어옴6 != null
, ''''''{{{#!if 넘어옴7 == null
{{{#!if 넘어옴6[넘어옴6.length - 1] >= 0xAC00 && 넘어옴6[넘어옴6.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6[넘어옴6.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6[넘어옴6.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6[넘어옴6.length - 1] < 0xAC00 || 넘어옴6[넘어옴6.length - 1] > 0xD7A3
은(는)}}}}}}}}}{{{#!if 넘어옴7 != null
, ''''''{{{#!if 넘어옴8 == null
{{{#!if 넘어옴7[넘어옴7.length - 1] >= 0xAC00 && 넘어옴7[넘어옴7.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7[넘어옴7.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7[넘어옴7.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7[넘어옴7.length - 1] < 0xAC00 || 넘어옴7[넘어옴7.length - 1] > 0xD7A3
은(는)}}}}}}}}}{{{#!if 넘어옴8 != null
, ''''''{{{#!if 넘어옴9 == null
{{{#!if 넘어옴8[넘어옴8.length - 1] >= 0xAC00 && 넘어옴8[넘어옴8.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8[넘어옴8.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8[넘어옴8.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8[넘어옴8.length - 1] < 0xAC00 || 넘어옴8[넘어옴8.length - 1] > 0xD7A3
은(는)}}}}}}}}}{{{#!if 넘어옴9 != null
, ''''''{{{#!if 넘어옴10 == null
{{{#!if 넘어옴9[넘어옴9.length - 1] >= 0xAC00 && 넘어옴9[넘어옴9.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9[넘어옴9.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9[넘어옴9.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9[넘어옴9.length - 1] < 0xAC00 || 넘어옴9[넘어옴9.length - 1] > 0xD7A3
은(는)}}}}}}}}}{{{#!if 넘어옴10 != null
, ''''''{{{#!if 넘어옴10[넘어옴10.length - 1] >= 0xAC00 && 넘어옴10[넘어옴10.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10[넘어옴10.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10[넘어옴10.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10[넘어옴10.length - 1] < 0xAC00 || 넘어옴10[넘어옴10.length - 1] > 0xD7A3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if 설명 == null && 리스트 == null
{{{#!if 설명1 == null
다른 뜻에 대한 내용은 아래 문서를}}}{{{#!if 설명1 != null
{{{#!html 잉글랜드의 축구선수}}}에 대한 내용은 [[아담 스미스(축구선수)]] 문서{{{#!if (문단1 == null) == (앵커1 == null)
를}}}{{{#!if 문단1 != null & 앵커1 == null
의 [[아담 스미스(축구선수)#s-|]]번 문단을}}}{{{#!if 문단1 == null & 앵커1 != null
의 [[아담 스미스(축구선수)#|]] 부분을}}}}}}{{{#!if 설명2 != null
, {{{#!html 미국의 정치인}}}에 대한 내용은 [[애덤 스미스(정치인)]] 문서{{{#!if (문단2 == null) == (앵커2 == null)
를}}}{{{#!if 문단2 != null & 앵커2 == null
의 [[애덤 스미스(정치인)#s-|]]번 문단을}}}{{{#!if 문단2 == null & 앵커2 != null
의 [[애덤 스미스(정치인)#|]] 부분을}}}}}}{{{#!if 설명3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3 == null) == (앵커3 == null)
를}}}{{{#!if 문단3 != null & 앵커3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3 == null & 앵커3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4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4 == null) == (앵커4 == null)
를}}}{{{#!if 문단4 != null & 앵커4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4 == null & 앵커4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5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5 == null) == (앵커5 == null)
를}}}{{{#!if 문단5 != null & 앵커5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5 == null & 앵커5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6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6 == null) == (앵커6 == null)
를}}}{{{#!if 문단6 != null & 앵커6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6 == null & 앵커6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7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7 == null) == (앵커7 == null)
를}}}{{{#!if 문단7 != null & 앵커7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7 == null & 앵커7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8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8 == null) == (앵커8 == null)
를}}}{{{#!if 문단8 != null & 앵커8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8 == null & 앵커8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9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9 == null) == (앵커9 == null)
를}}}{{{#!if 문단9 != null & 앵커9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9 == null & 앵커9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10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10 == null) == (앵커10 == null)
를}}}{{{#!if 문단10 != null & 앵커10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10 == null & 앵커10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 == null
{{{#!if 리스트 != null
다른 뜻에 대한 내용은 아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if 리스트 != null
{{{#!if 문서명1 != null
* {{{#!if 설명1 != null
잉글랜드의 축구선수: }}}[[아담 스미스(축구선수)]] {{{#!if 문단1 != null & 앵커1 == null
문서의 [[아담 스미스(축구선수)#s-|]]번 문단}}}{{{#!if 문단1 == null & 앵커1 != null
문서의 [[아담 스미스(축구선수)#|]] 부분}}}}}}{{{#!if 문서명2 != null
* {{{#!if 설명2 != null
미국의 정치인: }}}[[애덤 스미스(정치인)]] {{{#!if 문단2 != null & 앵커2 == null
문서의 [[애덤 스미스(정치인)#s-|]]번 문단}}}{{{#!if 문단2 == null & 앵커2 != null
문서의 [[애덤 스미스(정치인)#|]] 부분}}}}}}{{{#!if 문서명3 != null
* {{{#!if 설명3 != null
: }}}[[]] {{{#!if 문단3 != null & 앵커3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3 == null & 앵커3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4 != null
* {{{#!if 설명4 != null
: }}}[[]] {{{#!if 문단4 != null & 앵커4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4 == null & 앵커4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5 != null
* {{{#!if 설명5 != null
: }}}[[]] {{{#!if 문단5 != null & 앵커5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5 == null & 앵커5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6 != null
* {{{#!if 설명6 != null
: }}}[[]] {{{#!if 문단6 != null & 앵커6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6 == null & 앵커6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7 != null
* {{{#!if 설명7 != null
: }}}[[]] {{{#!if 문단7 != null & 앵커7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7 == null & 앵커7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8 != null
* {{{#!if 설명8 != null
: }}}[[]] {{{#!if 문단8 != null & 앵커8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8 == null & 앵커8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9 != null
* {{{#!if 설명9 != null
: }}}[[]] {{{#!if 문단9 != null & 앵커9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9 == null & 앵커9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10 != null
* {{{#!if 설명10 != null
: }}}[[]] {{{#!if 문단10 != null & 앵커10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10 == null & 앵커10 != null
문서의 [[#|]] 부분}}}}}}| 서양 철학사 근대 철학 |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wiki style="margin:-16px -11px;" | <tablewidth=100%> 고대 철학 | 중세 철학 | 근대 철학 | 현대 철학 | }}} | |||
| <colbgcolor=#545454><colcolor=#ffffff> 16-18세기 | |||||||||
| 에라스뮈스 · 모어 · 마키아벨리 · 몽테뉴 · 브루노 | |||||||||
| 합리주의 | · 스피노자 · 말브랑슈 · 라이프니츠 | ||||||||
| 경험주의 | 베이컨 · 홉스 · 로크 · 버클리 · 흄 · 스미스 | ||||||||
| 계몽주의 | 몽테스키외 · 볼테르 · 디드로 · 루소 · 엘베시우스 | ||||||||
| 칸트 / 신칸트주의 | |||||||||
| 19세기 | |||||||||
| 피히테 · 셸링 / 낭만주의: 헤르더 · 슐라이어마허 / 초월주의(미국): 에머슨 · 소로 | |||||||||
| 헤겔 / 청년 헤겔학파: 포이어바흐 · 슈티르너 | |||||||||
| 공리주의 | 벤담 · 밀 · 스펜서 | ||||||||
| 실증주의 | 콩트 · 마흐 / 사회학: 뒤르켐 · 베버 | ||||||||
| 사회주의 | 아나키즘: 프루동 · 바쿠닌 · 크로포트킨 | ||||||||
| 마르크스주의: · 엥겔스 | |||||||||
| 키르케고르 · 쇼펜하우어 · 딜타이 · 베르그송 | |||||||||
| 니체 | |||||||||
| <colbgcolor=#000><colcolor=#fff,#ddd> 애덤 스미스 Adam Smith FRSA | |
| | |
| 출생 | 1723년 6월 5일[1] |
|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스코틀랜드 파이프 커콜디 | |
| 사망 | 1790년 7월 17일 (향년 67세) |
|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 |
| 국적 | |
| 직업 | 경제학자, 철학자, 신학자, 교수 |
| 부모 | 아버지 애덤 스미스 어머니 마거릿 스미스 |
| 학력 | 커콜디 고등학교 (졸업) 글래스고 대학교 옥스퍼드 대학교 베일리올 칼리지 (자퇴) |
| 사상 | 고전적 자유주의, 경제적 자유주의[2] |
| 종교 | 개신교 (장로교회)(이신론)[3][4] |
| 약력 | 글래스고 대학교 논리학 교수 글래스고 대학교 도덕 철학 교수 |
| 대표 저서 | 국부론, 도덕감정론 |
1. 개요
The annual labour of every nation is the fund which originally supplies it with all the necessaries and conveniences of life which it annually consumes, and which consist always either in the immediate produce of that labour, or in what is purchased with that produce from other nations.
모든 국민이 해마다 하는 노동은 그 국민이 해마다 소비하는 모든 생활필수품과 편의품을 공급하는 근원적 자원이며, 그 필수품과 편의품의 재료는 그 노동의 직접적인 생산물이거나, 그 생산물을 가지고 다른 여러 국민에게서 구입한 물품이다.
《국부론(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의 첫 문장.[5] 노동가치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영국의 자유주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며[6] 많은 유럽 열강들이 돈이 많아질수록 순환이 안 되고 더 가난해지는 중상주의와 식민지 경제를 버리고, 자본주의와 자유무역을 선택 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의 기초를 제공했다.모든 국민이 해마다 하는 노동은 그 국민이 해마다 소비하는 모든 생활필수품과 편의품을 공급하는 근원적 자원이며, 그 필수품과 편의품의 재료는 그 노동의 직접적인 생산물이거나, 그 생산물을 가지고 다른 여러 국민에게서 구입한 물품이다.
《국부론(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의 첫 문장.[5] 노동가치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 생애
그는 스코틀랜드 파이프 커콜디의 세무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출생일은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1723년 6월 5일 커콜디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스미스가 세례를 받기 약 6개월 전에 사망했다. 네 살 무렵 집시 무리에게 납치되었으나, 삼촌의 도움으로 구출되어 어머니 마거릿 스미스(결혼 전 성은 더글러스)의 품으로 돌아왔다.14세에 글래스고 대학교에 입학하여 철학자 데이비드 흄의 친구였던 프랜시스 허치슨으로부터 윤리철학을 배웠다. 1740년 옥스퍼드 대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했으나, 옥스퍼드에서의 생활은 그의 사상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1746년에 자퇴했다. 1748년 케임스 경의 후원으로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공개 강의를 열었고, 강의가 호평을 받아 1751년 글래스고 대학교의 논리학 교수로 임명되었다. 이듬해 도덕철학 교수가 되었으며, 1750년경 데이비드 흄을 만나 평생의 친구로 교류했다.
1759년 그는 유럽에 명성을 떨친 《도덕감정론》을 발표했다. 명성을 얻었음에도 재정적 여유가 부족했던 그는 1764년 타운젠드 공작의 장남의 개인 교사 제안을 받아들이며 교수직을 사임했다. 그의 임무는 학생과 함께 여행하며 견문을 넓히는 것이었다. 2년에 걸친 여행 동안 프랑스 등 여러 나라의 행정조직을 시찰하고 중농주의 사상가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경제사상을 연구했다. 이 시기에 《국부론》의 초고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나는 요즘 시간을 때우려고 책을 한 권 쓰고 있다네."
애덤 스미스가 저술하기 시작할 무렵 친구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7]
애덤 스미스가 저술하기 시작할 무렵 친구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7]
1776년, 귀국 후 발표한 저서가 바로 《국부론》이다. 그는 이 책에서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을 반대하며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옹호했다. 당시에는 국가가 세금·수출입 규제 등을 자의적으로 시행하던 시기로, 스미스는 체계적 근거 없이 이뤄지는 통제 대신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도록 두면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해 사회 전체의 복지가 증진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야경국가론을 제시하며 국가의 필수 기능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1. 국가는 다른 나라의 폭력과 침략에서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군사력을 보유해야 한다.
2. 국가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을 다른 구성원의 불의나 억압에서 보호하기 위해 사법제도를 엄정하게 세워야 한다.
3. 국가는 사회 전체에는 큰 이익을 주지만 거기서 나오는 이윤이 비용을 보상해 줄 수 없기 때문에 어떤 개인도 건설하고 유지할 수 없는 공공사업과 공공기구를 건설하고 유지해야 한다.
그는 국제 경제 질서에서도 보호무역을 비판하고 자유무역을 옹호했다. 각국 정부가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고 부과하는 관세는 자연적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이며, 자연의 법칙에 부합하는 질서는 국제적 분업을 기반으로 한 자유무역이라고 보았다.2. 국가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을 다른 구성원의 불의나 억압에서 보호하기 위해 사법제도를 엄정하게 세워야 한다.
3. 국가는 사회 전체에는 큰 이익을 주지만 거기서 나오는 이윤이 비용을 보상해 줄 수 없기 때문에 어떤 개인도 건설하고 유지할 수 없는 공공사업과 공공기구를 건설하고 유지해야 한다.
스미스는 인간이 더 큰 만족을 추구하는 성향(propensity)과 교역 본능을 억누르기보다는, 시장을 통해 이기심을 사회적 이익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각 개인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의도치 않게 공익이 증진된다는 그의 통찰은 이후 경제학의 근간이 되었다.
또한 그는 중상주의의 근본 전제를 비판하며, 국민의 부는 금, 은의 축적이 아니라 국민의 노동생산성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생산성을 높이는 핵심 요소로 그는 분업을 제시했지만, 동시에 분업이 노동자의 정신과 신체를 약화시키고 창의성을 저해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중농주의자들의 "농업만이 유일하게 부를 창출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무해한 오류를 길게 검토할 가치는 없다."며 간결하게 반박했다.
《국부론》의 성공으로 그는 부와 명예를 얻었으나, 정작 스스로는 《도덕감정론》을 더 높이 평가했다. 그는 생전에 자신의 묘비명에 "〈도덕감정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라 새겨달라고 요청했다.
Here are deposited the remains of ADAM SMITH. Author of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 and Wealth of Nations.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 여기에 묻히다.
에든버러에 있는 애덤 스미스의 묘비명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 여기에 묻히다.
에든버러에 있는 애덤 스미스의 묘비명
3. 국부론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를#!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국부론#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국부론#|]] 부분을 참고하십시오.4. 평가
5. 오해
스미스는 중상주의를 비판하고 자유시장과 자유무역을 옹호한 사상가로 평가된다. 그러나 그는 흔히 오해받는 것처럼 무제한의 시장 자유를 주장한 인물이 아니었다. 이에 대해 경제사학자 제이컵 바이너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스미스는 중상주의를 반대하고 자유시장과 자유 무역의 옹호자로 자리매김했다. 그에 대한 평가는 다음으로 잘 나타나는데, "애덤 스미스는 자유방임주의를 교조적으로 옹호하지는 않았다. (중략) 그는 정부의 선의와 역량을 거의 믿지 않았고, 정부를 통제하는 자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 자들이 누구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지 꿰뚫어 보고 있었다. (중략) 그럼에도 그는 만약 더 나은 수단이 없다면 개인이 하지 않을 것 같거나 할 수 없거나, 하더라도 잘못될 가능성이 있는 여러 과제를 정부에 맡길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제이컵 바이너
《국부론》에서 제시된 보이지 않는 손 개념은 맥락과 무관하게 인용되면서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라"는 구호로 왜곡되어 왔다. 루트비히 폰 미제스와 같은 극단적 시장 자유주의자들은 이를 자유방임주의의 근거로 사용했지만, 스미스는 본래 경제학자가 아니라 도덕철학자였다. 그는 “독점은 노동임금과 토지지대, 자본이윤을 모두 감소시킨다.”고 지적하며, 정부가 독점을 억제하고 공정경쟁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그는 오히려 국가의 합리적 개입을 긍정한 학자에 가깝다.[8]제이컵 바이너
그는 경제 원리에서 '인간의 이기심'만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는 이기심과 동시에 도덕적 자제와 공감 능력이 있다고 보았다. 그는 "자연적 동정심이 인간의 이기적 행동을 절제하게 하며 사회적 조화를 유지시킨다."고 서술했다. 즉, 스미스가 '이기심'을 강조한 이유는 그것이 도덕심에 의해 제어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며, 이는 당시 정부와 결탁해 독점을 일삼던 중상주의자들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는 인간의 이기심과 도덕성을 동시에 신뢰했으며, 사회가 돌아가는 근본 원리를 규명하려 한 것이지 부도덕한 자본가의 행위를 정당화하려 한 것이 아니었다.
자본가가 제안하는 새로운 상업적 법률 및 규제들에 대해서는 항상 큰 경계심을 가지고 주목해야 하며, 그것들을 매우 진지하고 주의 깊게 오랫동안 신중하게 검토한 뒤에 채택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이익이 결코 정확히 공공의 이익과 일치하지 않는 계급, 그리고 사회를 기만하고 심지어 억압하는 것이 그들의 이익이 되며, 따라서 수많은 기회에 사회를 기만하고 억압한 적이 있는 계급으로부터 나온 제안이기 때문이다.
국부론 1권, 11장 중
국부론 1권, 11장 중
법은 고용주들의 단합을 인가하거나 적어도 금지하진 않지만 노동자들의 단결은 금지한다.
여러 국가의 국부와 본질과 원인에 대한 탐구 1권, 8장 중
이처럼 스미스는 자본가들의 임금 체불, 탈세, 분식회계, 담합 등 사회적 해악을 비판하며, 정부가 이러한 불공정 행위를 방관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9]여러 국가의 국부와 본질과 원인에 대한 탐구 1권, 8장 중
따라서 그는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라"는 주장과는 거리가 멀다. 그의 주장은 부패한 정부와 결탁한 중상주의적 독점이 개인의 자유보다 더 큰 폐해를 낳았기 때문에, 그 대안으로서의 시장 자율성을 강조한 것이다. 즉, ‘보이지 않는 손’은 정부의 독점적 개입을 비판하기 위한 논리이지, 시장 독점이나 무제한의 자유를 정당화하는 논리가 아니다.
《국부론》은 방대한 분량으로 인해 완독자가 드물다.[10] 과거에는 정보 접근성이 낮아 스미스의 사상을 단편적으로 이해한 경우가 많았으며, 일부 극단적 시장자유주의자들은 '보이지 않는 손'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인용해왔다. 최근 들어 그의 본래 의도가 재평가되면서 이런 오해가 점차 바로잡히고 있다.
결국 애덤 스미스는 정부가 기업의 이익을 위해 시장에 개입하는 정경유착을 비판한 철저한 반독점주의자였다. 그의 경제철학은 자유시장과 도덕경제의 균형 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6. 기타
- 그는 죽기 전 친구들에게 자신의 미발표 저술들을 불태워 달라고 부탁했다. 놀란 친구들이 이유를 묻자 너무나도 부끄러운 졸저라서 도저히 세상에 내놓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평생을 써온 글들을 허무하게 재로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한 친구들은 이 분부를 어기고 책으로 내려고 생각했는데, 이걸 알아차렸는지 스미스도 죽기 직전 친구들에게 아무래도 안 되겠다, 내 눈앞에서 태워달라고 부탁했다. 친구들은 할 수 없이 그의 눈 앞에서 벽난로에 집어넣어서 남은 글들을 전부 불태웠고 이걸 보고 나서야 마음놓고 눈을 감았다고 한다.
당시 재가 된 그의 글은 분량으로 따지면 20권이 넘을 정도로 많은 글이었고, 결국 그의 사후 발표된 미발표 저술 등은 단 하나도 없다. 때문에 지금까지도 많은 경제학자, 철학자들은 그때 재로 사라진 글들이 두고두고 애석하다고 한탄하기도 한다.
- 낯가림이 다소 심하고 작은 키에, 남과 대화할 때 말을 더듬고 얼굴을 계속 흔드는 이상한 버릇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 성격치고는 유머도 있었는지 지인들 앞에선 다음과 같은 우스꽝스러운 장난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하루는 애덤 스미스가 친구들과 궁전을 지나다가 근무를 서는 근위병을 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지팡이를 쳐들고 근위병 쪽으로 가서, 총을 들고 늠름하게 움직이는 근위병 뒤에 붙어서 그 행동을 따라했다고 한다. 이를 본 친구 하나는 원숭이가 사람 따라하는 꼴 같다는 말을 남겼고, 웃음거리가 된 근위병은 짜증스러운 얼굴을 했다고.
- 원채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어서, 그가 교수로 임명되었을 때도 말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도 교수로서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고 학장이 되기까지 연구를 끊임없이 거듭했기 때문에 그를 싫어했던 이들도 결국 그의 능력을 인정했다. 말년에는 영국 수상과 고위급 정치인들마저 존경심을 표할 정도로 대가로 인정받았는데 그런 찬사에 매우 쑥스러워했다고 한다.
한 번은 고위급 인사들이 모이는 자리에 참석해야 했는데, 그만 지각을 했다. 하지만 그 당시 수상이던 피트는 "우리 모두는 그저 당신의 학생일 뿐이죠."이라고 농담하며 유야무야 넘어갔다.
- 어린 시절부터 몽유병이 종종 나타나서 한번은 잠든 채로 무려 24km를 걸었다고 한다.
- 의외라면 의외일 수도 있지만 미국의 양심적 지식인이자 사회주의자인 노엄 촘스키가 자주 인용하는 인물이다. 국부론에서 말하는 초기적 자유주의와 중상주의 비판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
- 평생 독신으로 살았는데 그 이유는 여성공포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포를 느끼지 않은 여성은 어머니 마거릿과 사촌누이 재닛 뿐이었고, 어머니와 같이 살다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로는 재닛의 돌봄을 받으며 살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세 여성과 얽힌 적도 있었다. 이들은 스미스가 흄과 함께 프랑스 사교클럽에서 교류하면서 만난 여인들인데 세련된 매너에 풍부한 학식을 가진 스미스에게 호감을 품었다는 것 같다. 한 명은 스미스와 같은 호텔에 머문 후작부인인데 스미스를 유혹하려고 부단히 애썼으나 당연히 그와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 한 명은 스미스가 젊은 시절 만난 '진'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름답고 교양 있는 여성이었는데, 의외로 스미스가 이 여인을 몇 년 동안 사랑했다고 한다. 이유는 몰라도 이 둘의 사랑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참고로 진 또한 평생 결혼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 1981년부터 2006년까지 스코틀랜드 클라이즈데일은행 50파운드 지폐의 도안에 그의 그림이 있었다. 2007년부터 2020년까지 영국 20파운드 지폐의 도안으로도 사용되었는데, 이전판의 인물은 잉글랜드가 자랑하는 음악가인 에드워드 엘가였다. 2007년은 그의 탄생 150주년으로 관련 단체들이 여러 가지 행사를 준비하던 그 무렵 2007년부터 20파운드권 인물이 엘가에서 스코틀랜드의 애덤 스미스로 갑자기 변경되어 위의 단체들이 허탈해했다는 후문이 전해진다.[11]
- 문명 2에서 간접적으로 등장한다. 경제학 연구가 완료되면 불가사의로 "애덤 스미스의 무역회사(Adam Smith's Trading Company)"를 지을 수 있다. 효과는 유지비용이 1골드인 도시 건물들의 유지비용을 없애준다. 불가사의를 지으면 나오는 동영상에서는 국부론의 표지도 나온다.
[1] 정확히 160년 후인 1883년 6월 5일에 경제학사의 또 다른 거두인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태어났다.[2] 다만 후술되어 있듯 애덤 스미스는 시장 만능주의자는 아니었으며 단지 중상주의와 보호무역 등으로 대표되는 정부의 역할을 반대했을 뿐이다. 스미스는 정부가 할 일은 오히려 독과점 방지라고 봤기 때문에 그 독과점이 벌어질 수 있는 정경유착을 비판하고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하는 한편 그것을 대체할 자유무역과 자유시장을 옹호한 것이다.[3] 장로교회 신자인 어머니 밑에서 성장했고 성인이 된 후에도 신앙 생활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4] 그의 사상, 종교적 견해는 이신론과 많이 밀접해 있다. 심지어 그는 종교의 해체까지 옹호할 정도였다. [5] 애덤 스미스, 『국부론』, 유인호 옮김, 동서문화사. 2012.[6] 다만 그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도덕철학자로 여겨졌으며 애덤 스미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의 생전에는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고 경제에 관한 내용은 철학의 하위 분야로 분류했기 때문이다. 경제학이 독립된 학문이 된 것은 20세기의 일이다.[7] 이 문장은 거시경제학의 창시자격인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경제학에 막 흥미를 붙일 무렵 친구에게 "어쩌면 나는 경제학에 소질이 있을지도 몰라."라고 한 말과 더불어 경제학 역사상 가장 겸손한 말로 꼽힌다.[8] 그의 사상은 자유방임주의의 철학적 기반이 되었지만, 스미스 자신은 그러한 극단적 시장자유주의를 주장하지 않았다.[9] 에이먼 버틀러는 "국민이 대부분 가난하고 비참한 나라가 부유할 수는 없다."는 스미스의 말을 인용하며, 이는 부의 분배가 자본가가 아닌 국민에게 돌아가야 함을 뜻한다고 설명했다.[10]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마찬가지로, 인지도에 비해 오독이 많은 책으로 평가된다.[11] 또한 엘가 도안의 20파운드권은 2000년부터 2007년까지 10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사용된 반면 스미스 도안의 20파운드권은 2007년부터 2020년까지 10년 넘게 사용되었기에 엘가의 팬들은 더욱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