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08:44

고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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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대 북만주 지역에 위치했던 국가
1.1. 왕사
2. 마한의 열국 중 하나

1. 고대 북만주 지역에 위치했던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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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국은 고대사 기록에서 나타나는 고대 만주의 국가로, 탁리국이라 쓰이기도 하였다.

중국 후한왕충이 쓴 《논형》에는 '탁리(橐離)', 《삼국지》의 주석 중 하나인 배인(裵駰)의 주석에 인용된 《위략》에는 '색리(索離)', 《후한서》에는 '고리(高離)'로 나타나는데, '탁(橐)'과 '색(索)'은 모두 '고(藁)'를 잘못 쓴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통설이다. 고리국에 관한 기록은 사서뿐 아니라 《수신기》같은 위진남북조대의 소설에서도 확인된다.

부여의 시조 동명은 고리국의 영품리왕으로부터 탈출해 부여 땅에 나라를 세웠다고 한다. 고구려추모왕부여를 탈출해 졸본으로 도주한 설화는 이 설화를 참고했을 가능성이 크다. 자세한 설명과 논형 본문의 해석은 동명왕 문서로.

위치는 부여 북부일 것으로 보인다. 고고학적으로 청동기 문화를 이루었던 반농반목 문화권인 송눈평원(지금의 송원시 일대/하얼빈 시 서남쪽) 지방의 망해둔 → 백금보-한서2기 문화권에 이를 비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고고학적으로는 망해둔 문화권 말기 당시 일부 집단이 길림 지역으로 남하하여 그 지역에 살던 예족들을 피지배 집단으로 두고 연합하면서 서단산(쓰퇀산) 문화권을 이루는 걸로 나타나는데, 이 서단산 문화권이야말로 다름아닌 부여다. 서단산 문화권, 즉 부여는 세력을 키워 동명왕 세력이 갈라져나온 본류였던 고리국을 역으로 병합하게 된다. 이는 부여-고구려 관계와 비슷한 이야기다. 즉 고리국과 부여의 관계는 부여와 고구려의 관계와 정확히 일치한다.

고리국은 고구려와의 연관성도 주목 받고 있다. 부여의 건국신화와 고구려의 건국신화가 똑같고, 이름부터 고구려는 고구려(高駒驪), 구려(句麗), 구려(駒驪), 고려(高麗), 고리(高離) 등의 여러 이름으로 기록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고고학적으로도 비슷한 패턴은 입증되었다. 서단산 문화권에서 발전한 포자연 문화권, 즉 부여인들 중 일부가 또 다시 남하하여 요동 동부 및 남만주 일대(원래는 고조선의 강역이었으나, 고조선이 진개의 연나라에게 패배해 요동에서 밀려나 서북한으로 밀려난 이래로 연나라와 고조선 모두 지배권을 행사하지 못해 그 일대에 잔류한 고조선인들이 자치하는 권력 공백지가 된 지역이었다)에 살던 조선인들과 연합해 나라를 세우게 되는데 그것이 졸본부여와 고구려였다. 1차 남하는 기원전 2세기고 2차 남하는 기원전 1세기인데 다들 아다시피 2차 남하는 고주몽의 고구려 건국기와 문헌상 시기가 일치하며, 1차 남하는 별도의 문헌 기록은 없으나 정황상 졸본 부여의 건국과 어느 누가봐도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현재 고구려의 국호는 (城)을 뜻하는 고대 한국어 '*고로(溝漊)' 및 '*골(忽)'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 중론으로, 고리국에서 부여가 나오고 부여에서 고구려가 나왔다는 건국신화를 믿는다면 국호가 같은 어원을 공유할 가능성이 있다. 고대엔 도시 하나가 나라였음을 생각하면 고리국과 고구려는 도시국가 이름이 도시인 셈이다. 고구려라는 명칭은 본래 한나라에서 고조선 멸망 후 한사군을 설치할 때 현도군이 관할하던 지역의 토착 지명을 따서 이름붙인 고구려현에서 유래했다. 이를 고려하면 고구려의 고(高)는 마찬가지로 현도군에 속해있던 상은태(上殷台)현의 상(上)과 서개마(西蓋馬)현의 서(西)처럼 방위를 나타내는 접두사였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고구려의 본래 형태는 '구려(句麗)'였을 것이다.

사실 고고학적으로 봤을 때 고구려의 직접적 뿌리는 부여에 있지 고리국에 있지않다. 하지만 고구려는 다분히 의도적으로 고리국에 근본을 올린 듯 여겨진다. 백제 건국 주도 세력 또한 고고학적 결과만 두고 봤을 때는 어디까지나 고구려에서 나온 세력이지 부여와는 무관하지만 실제로는 고구려 계승이 아닌 부여 계승을 내세우며 고구려와 다투었던 부분과 정확히 일치하는 측면이다. 그러한 맥락으로 백제는 성왕남부여로 국호를 고치기도 하고, 백제의 국성부여씨로 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쨌든 고구려는 결국, 부여 동명왕이 나온 근본이었던 고리국의 옛 터전 전체를 영역화하는 데 성공한다. 부여가 태조대왕 때부터 본토를 본격적으로 침탈당하기 시작하면서 북쪽으로 밀리고 밀려 끝내는 부여 자신들이 멸망시켜 흡수했던 옛 고리국 일대로 터전이 축소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결국 장수왕~문자명왕 때 고구려가 이 세력들마저 흡수하여 결국 고리국의 모든 영역이 고구려의 판도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때문에 고구려가 고리국의 해모수에게서 나왔다는 주장은 사실이 될 수가 없으나, 고리국의 옛 영역 전체를 영역화하여 그 주민과 영토 전체를 계승하여 정체성까지 모두 고구려화한 건 사실이었으므로 고구려의 고리국 계승 내러티브는 더욱 확고하게 굳어진다.

고구려에게서 나온 백제가 모체인 고구려를 뛰어넘어 진정한 부여가 되고자 하였으나, 이런저런 어려움으로 그 과업에 실패한 것과 대조를 이루는 묘한 대목이다.

1.1. 왕사

대수 왕명 재위기간 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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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품리왕 ? ? ~ ? 국내의 삼국사기, 중국 사서에 등장
국내의 문헌에는 해부루왕의 다른 왕호(王號)라 하나
중국의 문헌에는 고리국의 왕이라 전해짐
동명왕 동명 설화에는 탁리국왕으로 기록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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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마한의 열국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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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離國

지금의 경기도 오산시에 있었다고 추정하는 견해가 있으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기재된 마한 소국 목록에서의 위치 및 하술한 광개토대왕릉비의 기록을 통해 경기도 지역에 위치했다는 사실만이 검증될 뿐이다.

3세기 중반에 백제 고이왕에 의해 병합되었을 것으로 보이며, 〈광개토대왕릉비〉에서 396년 고구려 광개토대왕에 의해 점령된 백제의 성들 중 하나로 고리성(古利城)이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그때쯤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으리라 추측된다.

참고로 네이버 웹툰 무사만리행에서 주인공의 고향이 이 고리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