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한의 국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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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 개요
咨離牟盧國《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소개된 마한 54개국 중 하나이다. 정확한 위치는 불명이나, 마한 소국 목록에서 보통 충청남도 천안시에 비정되는 목지국 바로 다음으로 등장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충청도 지역에 위치했을 것으로 보인다.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에 비정하기도 하며, 660년 백제가 멸망한 이후 당나라에 의해 설치된 웅진도독부의 지명 자래현(子來縣)과 연관지어 당진군에 비정하기도 한다. # 그러나 자래현의 백제 시절 명칭은 부수지(夫首支) 또는 벌수지(伐首支)였기 때문에 확실한 설은 아니다.
한편 자리모로국의 '모로(牟盧)'는 마한의 다른 소국인 모로비리국의 이름에서도 나타나며, 〈광개토대왕릉비〉[1], 《삼국사기》[2], 《일본서기》[3], 《양서》[4], 〈울진 봉평리 신라비〉[5] 등 후대의 문헌에서도 다양한 차자표기로 문증된다. 당시 한자음을 고려하면 실제 음가는 '모라'에 가까웠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뜻은 확실치 않으나 보통 일본어의 무라(むら)와 연관지어 마을이라고 해석한다.[6]
또는 《일본서기》에서 구례모라성(久禮牟羅城)이 구례산(久禮山)으로도 나타난다는 점을 들어 산의 뜻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실제로 같은 문헌에서 한자 산(山)을 모로(モロ)라고 훈독하기도 했고[7] 《용비어천가》에서도 산을 뜻하는 순우리말 뫼의 고어형 '모로'가 나타나므로[8] 역시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1] 396년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점령한 옛 백제의 성들 중 구모로성(臼模盧城), 각모로성(各模盧城), 모로성(牟盧城), 모루성(牟婁城), 고모루성(古牟婁城)이 있다고 기록했다.[2] 전라북도 고창군의 백제 시절 지명으로 모량부리현(毛良夫里縣)이 등장한다. 이는 마한의 소국들 중 하나인 모로비리국(牟盧卑離國)에서 기원한 지명이므로 모로(牟盧)와 모량(毛良)이 같은 단어임을 알 수 있다.[3] 529년 3월 신라가 공략한 성들 중 하나인 포나모라(布那牟羅), 동년 4월 왜국의 오우미노케나가 머무른 가야의 구사모라(久斯牟羅), 530년 9월 기사에서 등장하는 이사지모라성(伊斯枳牟羅城), 구례모라성(久禮牟羅城), 등리지모라(騰利枳牟羅), 모자지모라(牟雌枳牟羅), 그리고 554년 12월 백제의 부여창이 요새를 쌓았다는 구타모라(久陀牟羅)가 기록되어 있다.[4] 6세기 신라인들은 왕성을 건모라(健牟羅)라는 명칭으로 부른다고 기록했다. 이는 《남사》에도 실린 내용이다.[5] 524년 1월 15일의 기록으로, 울진 지역에 거벌모라(居伐牟羅)라는 지명이 있었다고 한다.[6] 참고로 현대 한국어의 '마을'과는 별개의 어원을 가지는데, 마을의 중세 한국어 형태는 'ᄆᆞᅀᆞᆶ'이었기 때문이다.[7] 487년 기사에서 백제의 지명 대산성(帶山城)을 '시토로모로노사시(シトロモロノサシ)'라고 훈독했다. 자세한 내용은 ㅅ계 합용병서 문서 참조.[8] 가산(椵山)이라는 지명 표기를 '피모로'라고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