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한의 국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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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牟盧卑離國《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소개된 마한 54개국 중 하나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에 모량부리현(毛良夫里縣)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이는 모로비리국의 국명과 정확히 대응되므로 모로비리국의 위치는 백제 모량부리현이 있었던 전라북도 고창군에 비정된다.
2020년 3월 11일, 고창군 아산면 봉덕리와 고수면 예지리 경계의 작은 야산 태봉에서 마한 시대 토성이 발견되었다. 1765년 간행된 《여지도서》에서 삼한 시절에 쌓은 고성봉(古城峰)이라는 토성이 있다고 기록되었는데, 그 실체가 고고학적으로 확인된 것이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곳이 모로비리국의 중심지였을 가능성이 있다. # 한편 고창군 고창읍 도산리에는 원삼국시대의 분묘군인 만동유적이 위치해 있어 이곳 역시 모로비리국과 연관된 것으로 추정된다.
2. 국명
모로비리국의 '모로(牟盧)'는 마한의 다른 소국인 자리모로국의 이름에서도 나타나며, 〈광개토대왕릉비〉[1], 《삼국사기》[2], 《일본서기》[3], 《양서》[4], 〈울진 봉평리 신라비〉[5] 등 후대의 문헌에서도 다양한 차자표기로 문증된다. 당시 한자음을 고려하면 실제 음가는 '모라'에 가까웠을 것으로 추정되며, 그 뜻은 확실치 않으나 보통 일본어의 무라(むら)와 연관지어 마을이라고 해석한다.[6]또는 《일본서기》에서 구례모라성(久禮牟羅城)이 구례산(久禮山)으로도 나타난다는 점을 들어 산의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실제로 같은 문헌에서 한자 산(山)을 모로(モロ)라고 훈독하기도 했고[7] 《용비어천가》에서도 산을 뜻하는 순우리말 뫼의 고어형 '모로'가 나타나므로[8] 역시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모로비리국의 '비리(卑離)'는 마한의 다른 소국명에서도 접미사로서 여러 차례 나타나는데[9] 이는 훗날 《삼국사기》 등 문헌에 기록된 백제의 지명 접미사 부리(夫里) 및 신라의 지명 접미사 벌(伐/火)과 동계어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 단어는 중세 한국어 'ᄇᆞᆯ'과 현대 한국어 '벌판'으로 이어진다. 위의 내용을 종합하자면 3세기 중반 모로비리국의 국명은 '마을 벌판' 또는 '산 벌판'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모로=산, 비리=벌판 설을 따르면 현대의 고창이라는 이름은 모로비리의 직역으로 볼 수 있다. 고창의 고(高)는 산(山)과 뜻이 통하고,[10] 창(敞) 역시 '벌판'과 비슷한 '탁 트인 땅'이라는 뜻이 있다.
[1] 396년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점령한 옛 백제의 성들 중 구모로성(臼模盧城), 각모로성(各模盧城), 모로성(牟盧城), 모루성(牟婁城), 고모루성(古牟婁城)이 있다고 기록했다.[2] 상술한 백제 모량부리현(毛良夫里縣)이 기록되었다.[3] 529년 3월 신라가 공략한 성들 중 하나인 포나모라(布那牟羅), 동년 4월 왜국의 오우미노케나가 머무른 가야의 구사모라(久斯牟羅), 530년 9월 기사에서 등장하는 이사지모라성(伊斯枳牟羅城), 구례모라성(久禮牟羅城), 등리지모라(騰利枳牟羅), 모자지모라(牟雌枳牟羅), 그리고 554년 12월 백제의 부여창이 요새를 쌓았다는 구타모라(久陀牟羅)가 기록되어 있다.[4] 6세기 신라인들은 왕성을 건모라(健牟羅)라는 명칭으로 부른다고 기록했다. 이는 《남사》에도 실린 내용이다.[5] 524년 1월 15일의 기록으로, 울진 지역에 거벌모라(居伐牟羅)라는 지명이 있었다고 한다.[6] 참고로 현대 한국어의 '마을'과는 별개의 어원을 가지는데, 마을의 중세 한국어 형태는 'ᄆᆞᅀᆞᆶ'이었기 때문이다.[7] 487년 기사에서 백제의 지명 대산성(帶山城)을 '시토로모로노사시(シトロモロノサシ)'라고 훈독했다. 자세한 내용은 ㅅ계 합용병서 문서 참조.[8] 가산(椵山)이라는 지명 표기를 '피모로'라고 읽었다.[9] 막로비리국(莫盧卑離國), 고비리국(古卑離國), 감해비리국(監奚卑離國), 내비리국(內卑離國), 벽비리국(辟卑離國), 여래비리국(如來卑離國), 초산도비리국(楚山塗卑離國)이 있다.[10] 고구려어 달(達)의 경우 지명의 앞에 있으면 高, 뒤에 있으면 山이 되었다. 예를 들어 달홀은 고성이 되었는데 오사함달은 토산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