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9 04:57:00

우지 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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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전개
2.1. 검찰의 유해성 조사2.2. 보사부의 무해론
3. 이후
3.1. 삼양식품3.2. 시장 점유율에 미친 영향3.3. 동물성 기름에 대한 인식3.4. 2010년대 이후
4. 우지 등급5. 출처6. 관련 문서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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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라면, 쇼트닝, 마가린, 식용유 등 모든 동물성 유지식품 시장 역사상 최대의 흑역사.

1989년검찰삼양식품 등 일부 식품회사가 식용에 적합하지 않은 우지(쇠기름)를 써서 식품을 생산하여 식품위생법을 위반하였다는 취지의 중간 수사 결과 발표를 하여 식품업계 전반에 벌어진 대혼란이다. 검찰의 발표 후 며칠도 지나지 않아 보건사회부는 이들 우지가 무해하여 식용에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발표를 하였으나 소비자 불신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고 수사 대상이 된 기업들은 순식간에 존폐의 기로에 서서 경영난을 겪어야 했으며 동물성 유지식품 시장 전체가 한동안 정체에 빠졌다.

2. 전개

2.1. 검찰의 유해성 조사

1989년 11월 3일 '공업용 우지(쇠기름)'로 면을 튀겼다는 익명의 투서[1]서울지방검찰청에 날아들면서 시작되었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 비식용 우지를 수입한 삼양식품, 오뚜기식품, 서울하인즈[2], 삼립유지[3], 부산유지 등 5개 업체를 적발하고 대표 및 실무 책임자 등 10명을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구속/입건하였다.

당시 검찰이 밝힌 위법 사항은 이들이 라면을 튀기거나 쇼트닝, 마가린을 만드는 데 쓰이는 정제 쇠기름의 원료로 미국에서 수입해 온 2등급(Top White Tallow) 및 3등급(Extra Fancy Tallow) 등 '비식용 유지를 정제하여 식용유로 사용한 것이 안전한가?' 였다.[4]

검찰은 이들 정제 쇠기름의 산가(부패의 정도)가 기준(0.3)을 넘어선 0.4가 나온 것도 문제지만 이들이 썼던 우지가 1989년부터 개정된 식품공전[5] 중 원료 조항에 위배된다고 강조하였다. 당시 개정된 식품공전에는 1988년까지 완제품 단계에서만 규제하던 것을 1989년부터는 원료단계부터 규제하는 조항이 추가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개정 식품공전 중 문제의 원료규제 조항은 우지의 경우 "소의 지방조직은 품질이 양호하고 신선한 것이어야 한다. 원료는 흙, 모래, 짚 등과 같은 불순물이 충분히 제거된 것이어야 한다. 원료는 품질 변화를 방지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으로 보관/관리되어야 한다"고 추상적으로 명시되어 있어 논란거리를 안았다.

또 당시 완제품(정제 쇠기름)의 성분규격은 '산가 0.3 이하, 비중 0.893~1.640, 수분 0.3% 이하, 요트가 32~50등급' 등 9개 항목에 걸쳐 구체적으로 규정되었는데, 검찰은 문제의 완제품에 대한 유무해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유해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검찰의 사법처리에 대해 업계는 즉각 반발하였다. 특히 삼양식품 측은 "우지를 써서 라면으로 제조해 온 건 20년 전부터다. 국민에게 동물성 지방분을 보급한다는 취지에서 우지를 수입하고 정제하여 식용 우지로 사용할 것을 정부에서 권장하고 추천했기에 사용한 것이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우지의 수입 과정이나 정제하여 식용 유지로 쓰였다는 점에 있어서 식품위생법상 제반 검사에서 적격한 것으로 인정되어 왔다"며 "1989년 우지 수입 단가가 팜유 수입가보다 톤당 100달러가 비싼데도 불구하고 우지를 썼던 것이 이를 증명한다."고 하며 "우지나 팜유를 비롯한 식물성 유지들은 원유 상태에선 비식용"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소비자 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6] 등 소비자 단체들은 성명을 통해 해당 업계의 사과와 제품의 전량 수거, 유통업자들의 해당 제품에 대한 진열 판매 중지,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보건사회부의 항구적 대책 마련 등을 촉구하였다. 또한 언론 역시 검찰 발표 후 '원유 상태의 비식용 우지'를 '공업용 우지'로 표현해 '심층취재'나 '분석' 식의 융단폭격을 해 대 소비자들에게 마치 공업용 기름을 써서 라면이나 마가린 같은 유지식품을 제조하는 것처럼 인식을 심어 주었으며[7] 미국, 일본, 동남아 등지의 언론들도 덩달아 한국산 라면의 문제점을 대서특필하기까지 했다. 또 노태우 대통령 역시 당월 8일에 문제식품의 유무해 여부를 조속히 판정하고 인체에 유해한 식품 및 의약품의 제조/판매 및 해당 과정에서의 위법행위를 철저히 수사해 의법조치하라고 내각에 특별 지시를 내렸다.

이로 인해 라면은 물론, 쇼트닝이나 마가린을 쓰는 과자, 튀김류, 통닭에까지 영향을 미쳐 관련 상품들의 매출이 줄어들었으며, 소비자 단체들 역시 성명 발표와 불매운동으로 인해 라면의 반품과 생산 중단 사태가 이어졌다. 당시 대다수 국민들과 전문가들 역시 이에 낚여 '공업용 쇠기름'을 썼다고 분노했다. 이는 한국 라면이 강세였던 미국에까지 영향을 미쳐 한국산 라면의 매상이 줄어들어 한국 라면, 나아가 한국 식품 자체에 대한 불신이 더해져 갔다. 당시 수출고가 줄어드는 판에 한국 식품은 물론, 한국 제품에 대한 기피현상이 커질 우려가 생겼고 '국익 논쟁'으로까지 번졌다.

2.2. 보사부의 무해론

그러나 보건사회부는 같은 해 8월 말까지 라면 341건을 수거하였으나 식품공전 규격에 어긋나는 제품은 단 한 건도 없다고 밝혔고 마가린과 쇼트닝 113건 역시 유해 제품이 없었고 쇠기름을 포함한 정제 식용유 286건 중에 8건만이 부적합 판정을 받았는데 이마저도 가짜 참기름이 적발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로 인해 당시 국민들은 검찰이 단속했다면 이런 제품들은 유해한 것이라고 믿었을까 싶더니만 보사부가 이들에게 무해 판정을 내림으로써 혼란을 겪게 되었다. 또 검찰은 당초 식품위생법 위반이라는 범법사실만을 문제삼았으나 보사부가 무해를 주장하고 나서자 국민들의 눈초리를 의식하여 "비식용 우지를 원료로 한 완제품이 무해하다는 것은 마치 하수도물을 정수한 물을 먹어도 된다는 것"이라고 하여 정부 부처 간의 싸움 같은 양상을 보였다.[8]

이 사건으로 국민들의 혼란을 해소하기 위해 KBS와 MBC 양대 방송사가 TV 토론을 통해 해당 제품의 유무해를 가려내기 위해 관련 학자, 당국자, 소비자 대표 등을 불러 토론을 벌였지만 이렇다 할 결론이 나오지 못하였다. 보사부가 무해론을, 학자들은 유무해가 엇갈리고 검찰은 유해의 개연성을 각각 주장하고 나서자 정부는 보사부, 검찰, 학계, 소비자단체 대표들로 구성된 8인 식품위생검사 소위원회를 구성해 조사에 나섰다. 8인 소위는 문제 업체들로부터 라면, 마가린, 쇼트닝을 직접 수거해 국립보건원에서 철야 조사에 들어갔다.

결국 사건발생 13일만에 국립보건원에 의뢰된 8인 소위의 검사결과는 3개 제품 6개 품목 전부 이상이 없는 걸로 나왔다. 그러나 8인 소위의 의뢰에 앞서 검찰이 독자적으로 국립보건원 및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에 의뢰한 검사에서 삼양식품 및 부산유지의 정제 쇠기름, 서울하인즈의 샛별슈마가린 및 맥도날드쇼트닝, 삼립유지의 삼립마가린이 식품공전 규격기준에 위반된 것을 감안하여 보사부는 맥도날드쇼트닝에 품목정지 1개월 및 동 제품 수거/폐기 지시를, 삼양식품과 부산유지의 정제 쇠기름은 품목 제조정지 1개월을, 샛별슈마가린과 삼립마가린에 대해서는 경고 조치를 각각 실시하였다.

보사부가 당시 8인 소위 검사결과를 국민들에게 밝히겠다고 한 것은 이 결과에 따라 행정 조치도 취하겠다는 의미였는데, 8인 소위 검사의뢰 이전인 검찰의 독자적인 검사의뢰 결과를 묶어 행정처분한 것을 두고 언론에서는 검찰의 체면을 고려한 정치적 절충이라고 비꼬았다.

한편 법원은 구속된 5개 업체의 대표 등 10명에 대해 보사부의 무해 발표를 근거로 보석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검찰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항고 의사를 밝혔으나 대기업관련 소송이 늘 그렇듯이 여론이 관심을 다른데 돌린 후에는 항고를 하지 않았다. 결국 검찰은 무성의한 대응으로 시간만 끌면서 전혀 소송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반면 삼양식품 등은 1994년 서울형사지방법원에서 일부 유죄가 인정되어 징역 1년 6개월~3년 및 집행유예 2~5년 등을 선고받았고, 벌금 2,339억원은 선고를 유예했다.(89고합1346) 그러다가 이들이 항소하여 1995년 서울고등법원에서 무죄로 뒤집혔고(94노611), 1997년에는 대법원에서도 무죄로 결론나 사건은 완전 종결되었다.(95도1921)

당시 언론의 논조는 검찰이 무죄인 사람을 구속했다는 식이 아니라 '허가되지 않은 재료를 이용해서 식품을 제조한 식품회사를 보사부가 무해판정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이 의견도, 그리고 이후 보사부 의견을 긍정하는측이나 부정하는 측이나 모두 실수를하는것이, 해당 우지를 그대로 썼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정확히 하자면 애초에 해당 우지는 당시에도 기준 미달이었다. 삼양등 회사가 당시 법을 통과할수 있었던 것은 이 우지를 "재정제"해 당시 기준에 통과되는 수치까지 성분을 조정한 것이다. 기준 미달의 식재료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이를 다시 정제한 식재료를 사용한 것이다. 이것이 안전하냐 안전하지 않느냐, 위법이냐 아니냐를 놓고 당시 검찰과 보사부가 다툰것이다.

3. 이후

3.1. 삼양식품

당시 우지 파동은 일대 파란을 일으켜서 라면산업 전체에 극심한 타격을 입혔다. 특히나 해당 파동의 중심이었던 삼양식품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거의 파산 직전까지 갔다. 이렇게 삼양식품은 대한민국을 뒤흔든 일대 파동을 일으킨 기업으로 식품업계에서 퇴출되다시피 했다.

이 사건에 워낙 치명타를 입은 탓에 삼양식품 근로자 1백여 명은 퇴직금을 못 받게 될까봐 사표를 서둘러 냈으며 CI에는 안전한 식품이라는 문구가 들어갔다. 이후 라면을 튀기는 데는 동물성 기름이 아닌 팜유같은 식물성유를 사용하는 것이 대세가 되었다.

3.2. 시장 점유율에 미친 영향

파일:라면 점유율.gif

사실 우지 파동 이전에도 점유율 자체는 농심이 1등, 삼양이 2등이었다. 우지파동이 터지기 전인 1988년 시장점유율이 농심 54% vs 삼양 26%로 더블스코어의 차이가 났다. 우지 파동 이전부터 당시 사람들의 머릿속엔 아직 삼양 = 라면의 왕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다. 하지만 농심은 1985년부터 '올림픽/아시안게임 공식 라면' 스폰서 계약을 체결하고 이를 활용해 적극적인 마케팅과 공격적인 신제품 개발을 함으로써 시장점유율을 확대했다.[9] 삼양은 올림픽 공식 라면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농심에게 86, 88년 특수, 제품의 고급화, 다양화에서 뒤처진 것이다.

시장 점유율에는 지금은 잘 알려지지 않은 몇 가지 상황이 추가되었는데 1983년부터 본격적으로 라면 업체의 다자간 경쟁구도와 난립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1980년대까지는 삼양이 업계를 선도하고 농심이 따라오는 구도였는데 1983년 한국야쿠르트팔도라면을 시작으로 라면 산업에 뛰어들었고, 1984년 신생기업인 청보식품이 라면 산업에 뛰어들었으며(해당 그래프의 오뚜기가 원래 청보식품이다.), 1985년 한화그룹의 방계였던 빙그레가 우리집 라면을 출시해 라면 업계에 뛰어들었다. 하술할 농심의 히트상품 발매 이전에 삼양의 업계 점유율이 줄어든 건 농심의 품질만 아니라 후발주자들의 대거 참전과 이들의 홍보공세에 점유율을 일부 뺏긴 것이다.

또한 여기에도 알려지지 않을 비사들이 있는데 이들 기업 모두 결코 당시의 정치권력, 즉 군부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게 라면의 원재료인 밀은 한국에서 전량 수입한다. 수입품을 가지고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식품공업의 정수인 라면 산업은 당시 혼분식 장려 운동의 일환으로 밀가루를 이용해 간편한 한끼 식사를 만들라는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를 따른 군 출신 인사들이 관여했고 이들의 인적자원은 당연히 선발업체인 삼양과 농심이 했던 것처럼 일본 업체들의 기술을 받아다 삼양과 농심의 인력을 끌어들여서 채웠고 그들의 가장 중요한 매출원은 바로 군납라면의 납품이었다.[10] 삼양과 박근혜의 관계, 롯데그룹과 박정희와의 유착관계는 각각 문서에 서술되어 있으며 한국야쿠르트의 창업주 윤덕병은 박정희 경호실장 출신이고 청보식품 장기하 사장은 하나회출신 예비역 장성이었다. 한화그룹 역시 이후락, 서정화 등 박정희, 전두환 정권의 실세들과의 혼맥으로 이어져 있다. 즉 이 시기 라면 업계는 대한민국의 경제, 산업구조 변화에 맞게 성장하는 과정에서 후발주자들의 참여로 양적으로는 성장했지만 전문성보다는 권력과의 유착으로 사업권을 따내서 기존 라면의 복제판을 만들어냈고 그만큼 맛없고 품질 나쁜 라면 브랜드들이 난립했으며[11] 당연히 소비자들은 쏟아지는 광고공세와 그 홍보에 걸맞지 않은 저질 라면들을 많이 접하면서 라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쌓이고 있었다.[12] 그 와중에 1987년 민주화로 인해 이들의 뒷배였던 군부가 실권을 잃고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우지 파동이라는 트리거로 인해 마치 아타리 쇼크처럼 저질 라면들이 시장에서 한꺼번에 퇴출되었던 것. 그 과정에서 결코 정치논리에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 남아 있을 뿐 대규모 공산품 업계에서는 어느정도 통과의례처럼 생길 수 있는 일이다.[13]

실제로 라면 업체들의 경쟁은 1980년대 매우 치열했는데 유튜브 등지에서 1980년대 농심과 삼양의 CF들을 비교해보면 농심 쪽의 CF 퀄리티가 훨씬 좋다는 걸 알 수 있다. 게다가 농심은 1982년에 너구리, 1983년에 안성탕면, 1984년에 짜파게티, 1986년엔 신라면 등의 신제품을 출시했고 모두 대히트를 쳤다. 이들은 지금도 롱런하고 있는 농심의 대표작이다. 반면 삼양은 한박자 늦게 부랴부랴 너구리의 경쟁 제품으로 포장마차 우동, 안성탕면의 경쟁제품으로 서울탕면 & 영남탕면 & 호남탕면 시리즈, 짜파게티의 경쟁제품으로 짜짜로니, 신라면의 경쟁제품으로 이백냥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 결과는 처참했다. 당장 위에 서술한 농심 제품은 지금까지 같은 이름으로 판매 중이지만 당시 나온 삼양의 경쟁제품 중 2020년대 시점까지 단종되지 않은 제품은 짜짜로니 뿐. 그만큼 삼양의 신제품들은 소비자들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했고 삼양은 어쩔 수 없이 삼양라면 매출에만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우지 파동 1년 전인 1988년엔 시장점유율 차이가 배로 벌어져 버렸다.

그래도 라면의 원조라는 강력한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던 삼양이 제품을 개량, 발전시켜 반격할 여지는 남아 있긴 했다. 하지만 한 차례의 대실패로 인한 소극적인 제품 개발과 우지 파동을 연타로 얻어맞아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 특히 삼양라면 최후의 보루였던 군대 납품마저 완전히 붕괴되어 이런저런 피해를 합치면 정말 회사가 넘어갈 정도의 치명상을 입었다. 이후 삼양식품은 8년이나 걸린 재판에서 이겨 결백을 입증했으나 회사는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 실제로 삼양식품은 아직도 그 때 일을 얘기하면서 이를 갈고 있다. 2010년 회장 신년사, 그리고 회장 승계 당시 전중윤 명예회장의 말 등으로 미루어 보면 그 원한은 평생 갈 듯 하다.

이렇듯 우지 파동이 삼양에 준 악영향은 큰 편이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서 삼양이 오뚜기팔도에까지 밀려서 4위로 주저앉은 것까지 우지 파동의 여파라고 볼 순 없다. 2010년대 삼양식품의 부진은 2세 전인장 회장의 사업 확장 실패, 신제품 개발 부진 등이 더 큰 요인이다.

그리고 창업주 일가의 문제도 있다. 삼양이 잘 나갔을 땐 전문경영인을 고용해 회사를 굴렸다. 하지만 우지 파동 이후 그 전문경영인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고 경영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창업주 자식들이 경영권을 쥐었는데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됐다. 몇 년 뒤 창업주 일가는 물러나고 다시 전문경영인을 세웠지만 2000년대들어 회사가 다시 살아나니 재차 경영권을 쥐고 전면에 나왔다. 그리고 라면 회사는 스프, 후레이크, 포장지를 납품해 주고 광고와 유통을 대행하거나 통과세를 받으며 성장한 계열사들이 창업주 일가의 알짜배기 수입원이다. 정상적인 경영 상태라면 회사가 돌아가고 이익이 생겨서 법인세를 내고 이윤을 배당하여 개인이 소득세를 낸 뒤에 가져간다. 그런데 삼양의 창업주 일가는 온갖 공정을 페이퍼 컴퍼니화했다. 그래서 물건을 제조 유통하는 단계에서 회사가 아직 이익을 내지도 않았는데 창업주의 자식손자들은 이윤을 챙겨 그 돈으로 모회사의 주식을 사모으는 식으로 세금을 내지 않는 기업승계를 하고 있었고 이것은 우지 파동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소위 말하는 '일감 몰아주기' 탈세법인 것이다. 결국 이는 회사 자체의 수익성에 막대한 손해를 끼치고 주가도 떨어뜨렸다. 주주총회에서 경영진 일가를 배임으로 고소한다는 말이 돌 정도로 물의를 빚었고 한국경제신문 등 경제지에서도 비판기사를 낼 정도였다.[14]

3.3. 동물성 기름에 대한 인식

또한 그렇지 않아도 썩 이미지가 좋지 않았던 동물성 기름 자체에 대한 인식이 더욱 나빠져서 일반 가정 및 식당에서 사용하는 식용유는 콩기름 등 식물성 지방이 완전히 대세가 되었다. 버터 정도를 제외한 돼지기름과 같은 동물성 기름은 중국 요리집에서나 쓰는 수준.[15] 이런 연유로 사건 당시 오뚜기는 라면 쪽에서 문제가 없었으나 마가린 원료가 말썽이 되었으며 삼립유지와 서울하인즈 역시 롯데삼강에게 시장을 양보하였고 당시 건실한 업체로 알려졌던 부산유지도 사건의 여파로 부도를 맞아 끝내 폐업하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인해서 라면 업계에서 동물성 기름은 한동안 자취를 감추고 팜유가 대세가 되었다. 동물성 기름에 비해 식물성 기름이 몸에 좋지는 않은데 이미지 자체가 그렇게 박혀 버렸다. 팜유는 아무래도 맛이 떨어져서 아쉬운 현상이다. 이 사건 이후 1990년에는 식품공전 및 축산물위생처리법이 개정되어 수입 식용우지는 수출국과 수입국 양쪽의 관계법을 모두 충족시켜야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 사건 하나 때문에 동물성 기름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나쁘며 얼마나 파급력이 컸는지 우지 파동을 겪지 않은 세대들조차도 동물성 기름에 대한 인식이 나쁠 정도다.

3.4. 2010년대 이후

27년 뒤인 2016년에 뒤늦게 이 사건이 조금씩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최악의 상황을 맞은 박근혜 정부의 비서실장이였던 김기춘이 농심의 법률고문으로 매달 1천만원을 받으며 활동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우지 파동 당시 삼양에 대한 수사를 선두지휘했던 검찰총장이 김기춘이였다는 사실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삼양에 대한 과잉 수사로 삼양을 엄청난 위기에 몰아넣었던 당사자가 경쟁사의 고문으로 일한다는 것은 보은 논란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관련 링크

한편 김기춘의 처신에 대한 세간의 비난 어린 시선에 농심은 김기춘과의 재계약을 하지 않을 것을 밝혔고관련 기사 결국 김기춘은 고문직에서 자진 사임했다. 관련 기사[16] 다만 저 수사가 30년 가까이 지난 일이기에 보은성 인사로 보기는 힘들다.

4. 우지 등급

국가기록원

우지 등급은 국가와 기업마다 분류등급이 달라서 국제적으로 공인된 표준이 없다.
  1. 모든 기름은 원유(crude oil) 상태에서는 비식용이다. 이를 식용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정제해야 한다.
  2. 당시 미국에서는 우지 정제를 16등급으로 관리하고 있었는데 이 중 1급인 Edible Tallow 는 식용이며 2등급(Top White Tallow)과 3등급(Extra Fancy Tallow)은 비누 등을 만드는 공업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3. 삼양은 당시 2등급과 3등급 우지를 수입한 후 이를 재정제해 사용하였으며 이 결과 나온 제품은 당시 조사 결과 완제품 성분 수치에 부합하였다.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시 검찰과 보사부의 결론이 달랐던 것이다. 검찰은 이 부분에서 이미 식용등급이 아닌 우지를 수입했다는 사실을 문제삼았고 보사부는 2, 3등급 우지를 재정제한 기름이 유해하다는 증거가 없고 이전에는 공업용 기름을 수입하는 것이 관행이었기 때문에 행정 지도는 몰라도 처벌은 무리하다고 보았다.

5. 출처

  • 80년대 한국사회 대논쟁집(월간중앙 1990년 신년호 부록) - <우지라면 논쟁(엄철민 저.)>. 중앙일보사. 1990. p413~415
  • 한국 사회의 위기 사례와 커뮤니케이션 대응 방법 (2016년 개정판) - 유재웅 저.

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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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발족 · 우지 파동 · 임수경 방북 사건 · 문익환 방북 사건 · 황석영 방북 사건 · 서경원 방북 사건 · 전교조 출범 · 5.3 동의대 사태 · 이철규 의문사 사건 · 설인종 고문치사 사건 · 노무현 명패 사건 · 대한항공 175편 추락 사고 · 대전 직할시 승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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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991년 지방선거 · 남북기본합의 · 남북한 UN 동시 가입 ·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 연쇄 분신 파동 ·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 · 김부남 사건 · 이형호 유괴 살인 사건 · 대구 성서 초등학생 살인 암매장 사건 ·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 · 거성관 방화 사건 · 여의도광장 차량질주 사건 · 새만금 착공 · 수서지구 택지 특혜 분양 사건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 ·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 군 부재자투표 부정 폭로 사건 · 초원복집 사건 · 수요집회 개최 ·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 · 김보은 양 사건 · 대덕연구단지 준공 · 경부고속철도 착공 · 수도권 신공항 착공
1993년 과천선 개통 ·우암 상가아파트 붕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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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투서를 보낸 자가 누군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2] '소머리표'와 '코알라표'로 유명한 서울식품공업의 자회사. 현재는 크래프트하인즈코리아지만 유지사업은 2004년 삼양웰푸드로 분사시켜 삼양그룹으로 넘겼다.[3] 1997년 모기업인 삼립식품의 부도로 법정관리를 받으며 삼립웰가(2000)-웰가(2001)로 바뀌었다가 2005년에 롯데그룹에 인수되고 2013년에 롯데푸드(당시 롯데삼강)에 합병됨.[4] 그러나 지금도 미국은 2등급은 정제할 경우 개별 식품용으로 판매가 가능하고 3등급은 정제했을 때 일부 식품에 허용하는 등 원래 정제해서 식품용으로 쓸 수는 있었다. 미국 맥도날드가 90년대 중반까지 EFT 등급의 3등급 우지를 정제해서 감자와 너겟을 튀겼는데 단 한 번도 비식용이라고 미주권, 유럽권에서 까인 적이 없다. 패스트푸드의 대명사로 툭하면 별별 이유로 까이는 게 다반사인 그 맥도날드다.[5] '식품규격기준'이라고도 하며 식품위생법의 하위 규정임.[6] 현 명칭은 소비자시민모임. 2016년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당시에도 참여연대 등과 함께 옥시 불매운동을 주도했다.[7] 당시 일요일 밤의 대행진에 나온 한 콩트의 내용은 독사과를 먹고도 살아난 백설공주에게 공업용 우지 라면을 먹이자고 작당하는 마법 거울과 계모 왕비였다.[8] 하지만 실제론 제대로 정수처리한 하수도 물은 무해한 게 맞다. ‘어린이들의 장래희망’ 1순위인 우주비행사도 ISS에 있을 땐 자신의 소변을 정수해서 마신다. 우리가 먹는 수돗물도 상수에 있는 하수가 일부 섞여 있는걸 정수한 것이다.[9] 당시 1986 서울 아시안 게임1988 서울 올림픽은 범 국가적으로 엄청난 홍보를 하던 상황이라 공식 상품 스폰서가 되었다는 것은 한국에서 엄청난 이미지를 쌓을 수 있었다. 또한 이전의 올림픽이 적자를 면하지 못했을 무렵 서울 올림픽을 흑자 올림픽으로 하기 위해 당시 5공 정부가 했던 일 중 하나가 휘장사업, 즉 (한국 한정) 공식 상품 스폰서 제정인데 당연 많은 기업이 높은 후원금을 내고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 공식 스폰서 기업은 확실하게 밀어주었다. 여담으로 이 휘장사업 없었으면 88 서울 올림픽 또한 다른 올림픽저럼 적자로 끝났다.[10] 청보와 팔도 모두 1986년 군납업체에 선정되었다. ###.[11] 여기에는 당시 5공 정부의 물가안정 정책도 한몫 한다. 4공 말기의 급격한 물가상승으로 민심이 들썩였던 것을 염두에 두어 5공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물가안정을 강제했는데 당연 기업들에게 제품값을 올리지 못하게 강권한 것이다. 반면 원료의 대부분은 수입이라 정부에서 가격을 통제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재료값은 올라도 제품값은 못 올리니 업계에서는 질을 떨어뜨려서 채산성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여담으로 이 시기 농심이 1위로 치고 나간 것, 지금도 유명한 농심의 라면 제품들이 대부분 이 때 등장한 것 또한 물가안정 정책과 관련된다. 기존 제품의 가격을 올릴 수 없으니 아예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비싸게 출시하는 것.[12] 권력과의 유착이다 보니 상호간에 피터지는 경쟁보다는 권력자들끼리의 교통정리로 적당히 일정한 수준의 판매량을 나눠먹는 방향이 될 수밖에 없었고 당연 선발주자의 점유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13] 실제로 라면을 먹는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파동을 대부분 겪었다. 인도 라면의 납파동이나 중국 라면의 폐식용유 파동 등.[14] 다만 경제신문의 비판은 삼양식품의 무능한 창업주 자손들이 다시 경영을 맡는다는 것에 한정돼 있었고 일감 몰아주기와 저런 방식의 상속은 그런 걸 안 하는 대기업 집단을 꼽기 더 쉬웠던지라 넘어갔다.[15] 게다가 이 후 저질 쇼트닝을 뽑아내는 공장을 고발한다면서 정작 쇼트닝이 아니라 돼지기름을 뽑아내는 과정이라고 오보하면서 수개월간 중국집의 수입이 반토막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결국 돼지기름을 포기하게 된다.[16] 그래서인지 세월호 정국이 한창이던 2014년 6월 14일 작성된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에 적힌 당시 김기춘 비서실장의 업무지시 내용에는 1.야간의 주간화, 2,휴일의 평일화 3.가정의 초토화 ※라면의 상식화라는 멘트가 적혀 있었다. 이날은 김영한 민정수석이 처음 청와대로 출근한 날이었다. 하지만 저것은 그저 그 세대의 인스턴트 식품 = 야식 = 라면이기 때문에 적은 대명사였을 가능성이 크다. 1, 2, 3번이 모두 퇴근하지 말고 말뚝박으란 소리를 적어 놓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