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디케이터 Stephen Decatu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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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스티븐 디케이터 주니어 Stephen Decatur Jr. |
출생 | 1779년 1월 5일 |
13개 식민지 메릴랜드 식민지 신퍼센트 | |
사망 | 1820년 3월 22일 (향년 41세) |
미국 워싱턴 D.C. | |
복무 | 미합중국 해군 |
최종 계급 | 미국 해군 준장 |
복무 기간 | 1798~1820 |
학력 |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
1. 개요
미국의 군인.2. 생애
메릴랜드 식민지 신퍼센트에서 스티븐 디케이터 시니어의 아들로 태어났고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 진학하며 17세부터 조선소에 고용되어 프리깃함 USS 유나이티드스테이츠 함을 건조감독했으며 존 베리 휘하에 수습장교로 승선했다. 프랑스와의 유사전쟁 당시 대위로 진급했고 잠시 USS 노퍽함에 있었으나 유나이티드스테이츠함으로 복귀했다. 전후 군축으로 수병들을 줄였으나 본인은 살아남았다.1차 바르바리 전쟁당시 스쿠너인 USS 엔터프라이즈를 지휘해 해적선 1척을 나포했고 튀니지에서 과감한 돌격으로 바르바리에게 나포된 USS 필라델피아를 격침시켰다. 트리폴리에서 함선과의 포격전이 진행되고 있는 과정에서 별동대를 편성해 적의 함선에 탑승 후 백병전을 벌여 함선을 나포했다. 이 공으로 25세의 나이에 대령으로 진급했다.
미영전쟁당시 다시 유나이티드스테이츠함으로 돌아와 존 로저스의 함대 소속으로 대서양을 항해했다. 2차 바르바리 전쟁 당시 해군 총사령관으로 알제리로 건너가 기함을 나포하고 왕과 협상에서 우세를 보이며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이후 국내에서 요직을 장악했으나 1820년 체서피크 레오퍼드 사건으로 인해 군경력이 끝난 제임스 배런과 권총으로 결투를 펼쳤고 배런을 죽이고 싶지 않았던 디케이터는 배런의 허벅지를 명중시켰으나 배런은 디케이터의 복부를 명중시켜 중상을 입혔고 이틀 후 사망했다.
3. 여담
- 초창기 미 해군을 대표하는 인물답게 여러 함선에 이름붙여졌고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 있는 디케이트 스트리트는 그의 이름을 땄다.[1]
- 미국 일부 주에 있는 디케이터 카운티, 디케이터시는 이 인물의 이름에서 따왔다.
[1] 주변 거리역시 바르바리 전쟁, 미영전쟁에 활약한 인물들을 땄다. 제임스 로렌스의 이름을 딴 로렌스 스트리트, 윌리엄 베인브리지의 이름을 딴 베인브리지 스트리트, 아이작 헐의 이름을 딴 헐 스트리트, 토머스 맥도너의 맥도너 스트리트, 올리버 해저드 페리의 이름을 딴 페리 스트리트 총 6개의 거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