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8 15:48:33

소설의 시점

1. 개요2. 시점 전환3. 시점의 종류
3.1. 1인칭
3.1.1. 1인칭 주인공 시점
3.1.1.1. 예시
3.1.2. 1인칭 관찰자 시점
3.1.2.1. 예시
3.2. 3인칭
3.2.1. 3인칭 관찰자 시점
3.2.1.1. 예시
3.2.2. 전지적 작가 시점
3.2.2.1. 예시
3.3. 2인칭
3.3.1. 예시

1. 개요

소설의 작중 현실을 누가 어떤 각도에서 묘사하는가 하는 것. 시점에 따라서 효과가 여러가지로 나누어지며 소설작법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2. 시점 전환

프로소설가도 한 소설 내에서 시점을 바꿔가며 쓰는 경우가 있다.[1] 인물별로 1인칭 시점을 돌아가며 쓰는게 아니라 1인칭이었다 전지적 시점이었다 다시 1인칭으로 돌아오는 등 소설가 쓰기 나름이다. 특히나 대중성과 독창성이 중요시되는 요즘은 이런 틀의 파괴가 중요시되고 있지만 말 그대로 뉴메타라서 인칭 자체에 대한 이해가 적은 초보에게 추천되지는 않는다.

초보 작가가 시점 전환을 실수하다보면 분명히 문체는 1인칭인데 전지적으로 등장인물이 자연스럽게 독심술을 써대는 사태가 가끔 벌어진다. 그렇지만 시점 전환 실수는 독심술보다는 보통 독자가 받아들이기 힘든 문장 구조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3. 시점의 종류

인칭대명사
1인칭 2인칭 3인칭


소설의 시점에는 4가지가 있다. 이 네 가지는 2개의 범주로 나뉘는데, 이에 대해서는 하단의 표를 참조 바람.
이야기 속의 서술자 이야기 밖의 서술자
1인칭 주인공 시점 전지적 작가 시점
1인칭 관찰자 시점 3인칭 관찰자 시점

3.1. 1인칭

화자인 "나"가 주어가 되어 소설의 문장을 풀어낸다.

양대 1인칭 시점은 모두 "화자가 이야기를 자신의 주관에 따라 왜곡할 수 있다."는 서술 트릭을 가지고 있다. 초보 작가가 실수를 하면 가끔 1인칭 시점인데 평범한 주인공이 독심술을 쓰거나, 관찰자가 상대의 마음을 읽어서 내면 묘사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런 실수는 제쳐두더라도 1인칭 시점의 주인공이 되면 퇴폐적인 삶을 사는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자기에 대해 객관적인 묘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자신의 상황을 정당화하거나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자신은 물론 독자까지 납득시키기도 한다. 사실 작가 입장에서는 그닥 나쁘지 않은 기법인 것이, 이렇게 자기 자신을 판단할 수 없는 어리석은 주인공을 보여주고 그의 극단적인 결말을 보여주었을 때 독자들은 작가의 의도대로 주인공에게 잔뜩 감정이입을 했다가 충격을 받고 책을 덮는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서술 트릭까지 넣어서 작중에 나오고 있던 인과관계를 뒤틀어버리가도 하면 충격과 공포와 함께 카타르시스가 뒤따르기 때문에 잘 쓰기만 한다면, 어디까지나 잘 쓰기만 한다면 괜찮은 작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현대의 스릴러나 추리, 혹은 그 둘을 결합한 장르가 대체로 이런 식이다. 고전적인 서술기법에서 탈피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어떤 시점에 와서는 이게 클리셰가 된 경향도 있어 식상하게 보일 우려도 있지만 말이다.

또는 자기 몸 간수하기도 힘든 급박한 상황인데 주변 상황이나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주구장창 상세하게 묘사해대는 어색한 경우도 나오기도 한다.

사랑 손님과 어머니처럼 화자의 심리를 이용해 독특한 상황묘사를 보여준 경우도 있다. 참고로 엔더의 게임으로 대히트를 친 오슨 스콧 카드가 쓴 작법서 '캐릭터 공작소'에서도 1인칭은 어렵다는 식으로 조언이 나온다.

초보 작가가 하는 또 다른 실수로는 '나'라는 인칭대명사를 절대 써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다. 이건 1인칭 시점이라 굳이 화자인 '나'를 지칭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인데, 명백하게 잘못된 논리이다. 일단 '주어'가 없으면 문장 성립 자체가 안 되는데, 화자가 자기 자신을 주어로 지칭해서 서술해야 할 때가 의외로 많다. 이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초보 작가들이 쓸데 없이 '나'를 습관적으로 반복해서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용을 자제시키는 경우가 아예 써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와전되거나, 1인칭 시점과 일기를 동일시해서 '나'를 쓰면 안 된다는 식으로 인식하는 경우다. 일기와 1인칭 시점의 소설을 동일시하는 건 크게 잘못된 인식이다.

화자의 일기나 기록문 등의 형식을 취하기도 한다.

또한 서술자를 누구로 정하는가가 또한 중요한 과제이다. 서술자를 잘 고른다면 이런 난점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지만, 잘못 고르면 상술했듯 이야기를 흥미롭게 끌고 가기가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

이런 난점을 적절히 극복한 1인칭 시점의 캐릭터로는 셜록 홈즈 시리즈존 왓슨이 있다. 왓슨은 개성 넘치는 주인공 홈즈를 관찰하는, 평범하고 친숙한 화자이다[2]. 기본적으로 추리 소설은 특성상 프레임이 좁은 것이 재미를 주기 유용한 만큼, 1인칭 시점을 선택한 것은 작가의 신의 한 수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홈즈 시리즈는 장편소설이 아니라 대부분이 짧은 에피소드의 모음이라 1인칭 시점의 단점이 두드러지기 어렵다. 요컨대 1인칭 시점이 나쁘다는 말이 결코 아니며, 다만 이야기의 성격을 많이 타는, 다루기 까다로운 시점이라는 이야기다. 그러기에 후술하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의 단점들도 거의 드러나지 않는데, 이것은 존 왓슨이 직접 행동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관찰자이기 때문이다. 라이트노벨에서 보면 주로 화자인 주인공은 자기가 직접 행동하기 때문에 주변 관찰보다 주인공의 감정, 행동묘사에 치우치는 경우가 많지만 왓슨은 직접 사건을 해결하는게 아닌 홈즈를 관찰하며 따라다니면서 서포트하는 역할이라 좋은 시너지를 내는 것.

여러모로 제약이 심한 시점이지만 잘 쓰인 1인칭 시점 소설은 몰입감이 상당하다. 인물이 이야기 속에서 직접 말해주기 때문에 작품을 훨씬 생생하게 읽을 수 있고 글을 쓸 때도 주인공의 심리나 처한 상황 등을 더욱 세세하고 긴장감 있게 묘사할 수 있다[3]

3.1.1. 1인칭 주인공 시점

주인공이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이 시점의 경우 서술자(=주인공)의 심리 서술이나 행적, 개인적인 감상이 두드러진다. 이를 극대화한 기법이 바로 의식의 흐름 기법. 주인공이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그대로 서술하는 방식이다. 다만 주인공이 자신의 내면을 그대로 얘기해 버리기 때문에 독자의 상상력이 제한되는 편이다. 대표작은 바로 이상날개.

숱한 라이트 노벨들에서 1인칭 주인공 시점이 자주 보이는데 이유는 대체로 주인공에 대한 독자의 동일시가 쉽고, 또한 작가(지망생)들이 주인공을 자신의 아바타로 활용하면 이야기 쓰기가 쉽고, 주인공에 대한 애착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인데, 그런 이유만으로 1인칭 시점을 사용한다면 득보다 실이 크다.

이세계물을 비롯한 라이트 노벨이나 양판소등에서 굉장히 자주 보이는 시점이라 만만하게 보기 쉽지만 사실 1인칭 시점 소설은 쓰기 까다롭다.[4]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나'로 고정되기 때문이다. 프레임이 좁으면 전지적 시점 소설에 비해 주인공을 제외한 인물들의 감정선 묘사, 극적 아이러니[5][6] 조성이 어려워진다. 예를 들어 라이트노벨이나 만화 주인공과 여주인공 사이에 이 있는데, 어느 쪽도 자신의 감정을 내보이지 않는 성격이라면 주인공의 1인칭 시점에서 여주인공은 그저 무뚝뚝한 여자일 뿐이다. 시점을 3인칭으로 바꿔서 여주인공의 심리가 묘사되거나 여주인공이 주인공 몰래 호의를 보이는 행동을 한다면 독자들은 '어서 빨리 기정사실을 만들란 말이야!' 하고 읽는 맛을 느낄 것이다.[7] 하지만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는 상대의 심리를 묘사하기 힘들다. 그러나 여주인공이 주인공에게 호감을 갖고 있음은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적당히 타협점을 보게 되는데, 그것이 주인공의 둔감 속성.

만화의 경우 3인칭 시점이 기본으로 깔린다.[8] 작가가 어느 쪽에 더 카메라를 맞추느냐에 따라 시점의 변화를 조금은 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3인칭이며 시점 이동도 자유롭다. 하지만 소설은 주인공이 자신을 '나'라고 표현하여 '1인칭'임을 공고히 했으면 그 시점을 변화시키는 것이 까다롭다. 소설가와 만화가는 서로 작업 중 힘든 영역이 다른데, 1인칭 시점을 선택한 소설가라면 시점을 최대한 이용하는 센스를 갖춰야 해서 힘들다.

더불어 화자에게 작가가 투영되어 고유의 개성이 희석될 우려도 있고, 최악의 경우에는 비중을 주인공, 화자가 다 먹어버리는 수도 있다. 시야가 주인공에게 고정되므로 주인공의 시야 바깥에 있는 인물들의 활약상은 묘사가 되지 않으니 주인공과 함께 있지 않은 인물들은 죄다 병풍이 된다. 이쯤되면 이미 일기장이나 다름 없다.

게다가 주인공이 다른 인물들을 관찰한것을 보여주는게 아니라, 주인공의 생각이나 행동만 줄창 묘사하게 될 경우 그야말로 주인공에게 비중이 80%가 집중되는 사태가 터진다. 조연이 사건을 그저 바라만 볼 뿐인 다른 관찰자 시점과는 달리 주인공은 주도적으로 행동하면서 움직여 사건을 해결하는 인물이므로, 그리고 한술 더 떠서 주인공이 뭐든 다 잘하고 무조건 승리하는 먼치킨을 만들어버리므로 다른 인물들의 행동을 관찰하는 것보다는 주인공의 활약상이나 행동, 감상을 서술하는게 메인이 되기 때문. 서술 트릭을 쓰기 좋다는 장점이 있지만, 역시 초보 작가가 다룰 시점은 아니다.

게다가 화자(주인공)의 개성이 강하면 독자의 동일시가 어려워져, 앞서 들었던 이유가 퇴색되므로 주인공은 자연히 평범해진다. 그런데 주인공이 평범해지면 주인공의 매력은 물론이고 이야기의 추진력도 떨어진다. 즉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다. 여기에 앞서 서술한 1인칭 시점들의 단점들이 겹쳐져서, 이야기를 흥미롭게 끌고 가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최악의 경우에는 메리 수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3.1.1.1. 예시

3.1.2. 1인칭 관찰자 시점

서술자가 자신이 보는 주인공을 관찰하여 이야기 한다.

서술자는 관찰자 이상의 역할은 하지 않으며, 사건의 중심은 주인공이 된다. 사랑 손님과 어머니가 대표적인 예시로 참고서에서 자주 언급된다. 셜록 홈즈 시리즈 또한 이 케이스. 주인공의 생각을 독자가 추측하는 것이 재미인 작품은 이 시점을 차용하곤 한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 중 아서 헤이스팅스가 나오는 작품들도 이 시점으로 전개된다.

3인칭 관찰자 시점과 달리 관찰자의 추측이나 감상 등의 사견이 들어갈 수 있다. 심지어 이러한 관찰자의 사견이 틀릴 수도 있고, 이 점을 서술 트릭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서술자가 속았다던가, 가치관이 일반적인 경우와 다소 다르다던가 등등.

최근 드라마에서도 1인칭 관찰자 시점이 나타나고 있다. '왔다 장보리!'에서 장비단이 1인칭 관찰자 역할을 하고 있다.
3.1.2.1. 예시

3.2. 3인칭

3.2.1. 3인칭 관찰자 시점

또 다른 말로는 작가 관찰자 시점이라고 한다 서술자가 주관을 배제하고 외부 관찰자의 시점에서 사건을 서술한다. 인물의 내면을 서술하지 않고 객관적인 사건만을 서술한다. 그러기에 독자의 상상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다.

참고로, '막돼먹은 영애씨'와 같은 다큐드라마도 내레이터가 사건을 설명하는 것으로 보아 3인칭 관찰자 시점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2.1.1. 예시

3.2.2. 전지적 작가 시점

서술자가 3인칭 시점에서 사건을 서술하는데, 3인칭 관찰자 시점과의 차이는 인물의 내면까지 파악하여 서술한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서술자가 전지전능한 신과 같은 존재로서 모든 등장인물의 심리와 감정, 생각 따위를 꿰뚫고 있으며, 읽으면서 캐릭터의 등장과 상황의 파악 따위가 비교적 용이하다. 하지만, 독자의 상상을 많이 제한하여 자칫하면 소설이 지루해지기 쉬운 시점이다.

만약 이 설명이 이해하기 어렵다면, 일반적인 영화를 생각해보자. 당신은 영화와 전혀 관계없는 사람으로, 당신이 어떠한 시간적&공간적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영화의 내용이나 진행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또한 당신은 직접 보고 들은, 관찰에 의한 것만 알 수 있다. 여기까지가 3인칭 관찰자 시점이라면, 당신이 초능력자로써 영화의 등장인물을 보면 그 등장인물의 모든 것, 즉 그 인물이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을 포함한 신상, 성격, 목적 따위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해 보라. 이것이 전지적 작가 시점이다.

스토리 안에서 아예 서술자의 자리 자체가 없는 시점이기에, '서술자'를 나타내거나 묘사하는 문장이 아예 없다. 게다가 시공간의 제약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어떠한 상황에 빠진 등장인물이라도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여주인공이 길을 가다 갑자기 튀어나온 괴물에게 통째로 잡아먹힌다고 하자. 그리고 잡아먹히자마자 기절해버린다고 하자. 1인칭 관찰자나 주인공 시점은 단지 그때의 상황을 추측하거나 상상해서 기술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지적 작가 시점은, 괴물의 위에 여주인공이 기절한 채로 도착해 어떤 일을 겪는지 완벽하게 서술해낼 수 있다. 그러므로 서술하는 상황의 폭이 넓고 묘사도 세세하게 할 수 있다.

추가적으로, 제한적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는 것도 있다. 초점화라는 개념과 얽힌 내용인데 이 시점은 전지적 작가의 시점으로 서술되는데, 특정 인물의 내면이 중점적으로 드러나도록 서술한 것을 말한다. 주어진 범위의 지문 내에선 주인공 한 명의 내면만을 서술한다고 해도 어쨌든 전지적 작가 시점이니 시험에 나올 때 주의하자. 조금만 전지적인 작가 시점 수능 기출에 관련 문제가 나온 적이 있다. 한국 문학에서 대표적인 작품은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다. 대중소설 중 이 시점을 사용한 유명한 소설로는 해리포터 시리즈가 있다.

참고로, 전지적 작가 시점은 3인칭 전지적 시점과 같은 말이다. 소설과 같은 서사갈래에서, 작가와 서술자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기에 혼동하지 말자. 작가는 작품을 쓰는 사람이고, 서술자는 작품 내부에서 이야기를 말해주는 가상의 화자이다. 작가는 항상 작품 외부에 있으며, 서술자가 작품 안에서 이야기 속의 등장인물이 될 수도 있고, 이야기 밖에서 이야기를 서술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전자가 1인칭 (관찰자, 주인공)시점이고, 후자가 3인칭 (관찰자, 전지적)시점이다. 따라서 전지적 작가 시점이나 3인칭 작가 시점이라는 용어는 엄밀히는 3인칭 전지적 시점과, 3인칭 관찰자 시점이 맞는 용어인 것이다. [12]


서로 비슷한 시기에(약 2010~2012년경) 사커라인에서 이 용어를 패러디하여 전지적 꾸레시점이라는 말을 썼다.
3.2.2.1. 예시

3.3. 2인칭

실험적인 문체로 2인칭 시점이 있다. '너' 또는 '당신'이 주체.[13]

그러나 2인칭 시점을 시점이라는 개념으로 인정하는 것은 매우 어폐가 많으며 학술적으로 이는 용인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교과서에 괜히 2인칭 시점의 존재가 없는 것이 아니라 2인칭 시점은 본질적으로는 1인칭이나 3인칭 시점에서 주어를 '나/그/그녀'에서 '너'로 바꾼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엄밀히 따져, 작품의 주인공이 1인칭이라면 이를 관찰하는 모든 '너'는 3인칭이 된다.

2인칭이란 하이퍼링크를 통해서 할 수 있듯, 대화에서 상대방을 가리키는 대명사인 '너'나 '당신'과 같은 말 이전에 한 개인이 먼저 존재한다. 2인칭이란 개념은 타인을 인식하고 그 타인이 개인과 상황 따위의 맥락을 공유해야지만 개인이 사용 가능한 일종의 생략과 같다. 제아무리 술자가 2인칭 대명사로 지칭된들 독자에겐 제 3 인물이며, 그 시점을 가진 주체는 스스로를 1인칭으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2인칭 시점은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다. 요컨대 주체와 객체 이외에 시점이 적용되는 것은 없다.

즉 2인칭 시점 자체의 특징이 분명히 있기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스타일이나 기교일 뿐이지 별개의 시점으로 구분하기는 어렵다. 아래는 그 예시다.
너는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너에게 첫눈에 반했다.
가령 위와 같은 글에서 첫번째 문장은 분명히 주어가 '너'이지만, 어디까지나 1인칭 시점이다. 왜냐면 '네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는 사실은 '나'가 목격하고 나의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는 배가 고프다. 그래서 치킨을 시켜먹는다.
이런 글이 대표적인 2인칭 서술 방식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본질적으로 불안정한데 왜냐면 '너'라는 대명사는 '나'가 있어야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2인칭 시점에서의 '나'를 억지로 상정하자면 신이나 전지적 존재, 혹은 작가가 될 것이다. 즉,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단순히 '그/그녀' 대신 '너'라는 대명사를 사용했을 뿐이지 별개의 시점은 아닌 것이다. '그녀는 배가 고프다. 그래서 치킨을 시켜먹는다'로 바꾸어도 뉘앙스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이 책을 읽고 무엇을 느끼셨는지요?
위와 같이 독자를 '너'로 설정한다면 작품 내의 서술자가 작품 밖의 독자에게 말을 건네는 것으로 제4의 벽을 허물게 된다. 작품이 이중구조를 띈다면 서술 트릭이나 메타픽션이 될 수도 있는 등 상황에 따라 복잡하다. 특별한 연출의 예.

편지의 형식을 빌리는 서간체 소설 중에도 일종의 2인칭 시점으로 된 것이 있다. 다만 서간체의 경우 어디까지나 본질적으로 1인칭 주인공 시점이며 서간체에서 2인칭 시점이 사용된다면 위에 설명했듯 본격적인 2인칭이 아니라 1인칭 '나'의 시점에서 관찰한 '너'의 이야기를 '나'의 시점에서 쓰는 것이 된다.
"너는 엄마에게 너에 대해서 말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다. 네가 하는 일이 엄마의 삶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이 여겨졌다."
신경숙 소설 '엄마를 부탁해' 中

가장 유명한 2인칭 시점의 소설은 역시 베스트셀러인 신경숙엄마를 부탁해라고 할 것이다. 여기서의 1챕터는 '나'에 대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2인칭 시점으로 되어 있다. 3인칭으로 바꾸어 써도 전혀 무리가 없는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이나, 이 소설에서 2인칭의 사용은 묘하게 강한 임팩트를 주는데 다름 아닌 각각의 독자들 '너'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느끼게 해서, 모든 자식들이 응당 가지고 있는 '부모에 대한 죄의식'을 자극하는 것.

서사 장르가 아닌 게임북이나 매뉴얼, 노래 가사 등 독자를 이입시켜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 2인칭 시점이 유용하게 사용된다. 대표적으로 둠 시리즈의 스토리나 앤드류 허씨의 작품들, 언더테일의 다이얼로그 박스의 중립 서술은 2인칭 시점이다. 과거 머드 게임이 현역이던 시절에는 시청각적인 효과가 전무하여 텍스트로 모든 것을 서술하는 게임 장르라는 특수성 덕에 2인칭이 보편적이었으며[14] 1인칭은 꽤 드물었고(예: 나는 동쪽으로 갔다. 슬라임이 나를 공격한다!), 3인칭은 아예 없었다. 현대의 시각화된 게임에서는 당연히 1인칭과 3인칭 시점만 표현 가능[15]하다는 것을 보면 특이한 케이스이며 완벽하게 2인칭에 들어맞는 드문 경우이다.

3.3.1. 예시



[1] 대표적인 작품이 오상원의 유예[2] 즉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라고 보기엔 어렵다. 더불어 왓슨은 작가의 페르소나이기도 하다.[3] 창은의 프래그먼츠는 1인칭 시점으로, 각 챕터마다 주인공을 변경해 여러 시각을 볼 수 있도록 심리 묘사와 상황전달을 효과적으로 해결했다. 단, 사건에 대한 왜곡 혹은 누락 등 시점의 한계도있다.[4] <황홀한 글감옥>, 조정래[5] 독자나 관객은 알지만 인물은 알지 못하는 상황을 말한다. 이건 앨프리드 히치콕이 역설한, 서스펜스의 기본이다.[6] 만약 1인칭 시점에서 극적 아이러니를 조성하려면, 화자가 자신이 받아들인 정보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취사선택할만큼 좀 어리석어야 한다. 이래저래 어렵다.[7] 만화 카구야님은 고백 받고 싶어 등.[8] 다만, 지문이 있는 만화는 3인칭 관찰자 시점에 가깝고, 지문이 없는 만화는 전지적 작가 시점에 가깝다.[9] 주인공 다움이의 시점 부분을 의미한다.[10] 단, 셜록 홈즈의 사건집에 수록된 '탈색된 병사', '사자의 갈기'는 1인칭 주인공 시점, '마자랭의 다이아몬드'는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쓰였다.[11] 해당 작품은 한국 근현대문학의 고전이라 불리기도 하며, 문예창작학과에서는 1인칭 시점의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 읽히는 경우가 많다.[12] 고등학교와 입시학원에선 그냥 전지적 작가시점이라 가르치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용어의 문제이고, 수능에서도 작가가 아니라 서술자에 대하여 문제가 구성되어 있다. 그러니 꼭 구분하도록 하자.[13] 편지글과 같은 서간체 소설은 대상이 '너/당신'이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나'가 주체이다.[14] 예시: "당신은 동쪽으로 갔다. 슬라임이 당신을 공격한다! 슬라임이 당신의 피부를 살짝 녹였다.(-4) 당신은 얼어붙은 폭풍을 날려 슬라임을 박살냈다.(-157) 슬라임이 죽었다. 당신은 300의 경험치와 100의 골드를 얻었다."[15] 텍스트를 이용한 서술로는 당연히 위의 언더테일처럼 쉽게 표현 가능하지만, 시각적으로는 도저히 이걸 표현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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