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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중일대립으로 인한 반중감정4. 센카쿠 열도 분쟁으로 인한 반중감정5. 누그러진 반중?

1. 개요

일본은 중국을 극도로 싫어하고 중국과 대립하는 대표적인 나라로 유명하다. 싫어하는 나라 1위 자리를 한국, 북한, 러시아 등과 견줄 정도이고, 일부는 한국과 협력해 중국을 막아야 한다고 할 정도다.[1][2]

2015년 퓨 리서치 센터의 조사 의하면 일본인의 89%가 중국에 대해서 비호감이라고 응답했고, 호감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9%에 그쳤다. # 이것도 내려간 것으로 2013년과 2014년에는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 분쟁 때문에 90%를 넘어갔다. 2015년 외교부가 삼정KPMG에 의뢰해 세계 14개국 성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결과에서는 일본인의 77.7%가 중국을 혐오한다고 답했다. 참고로, 한국은 59.7%, 북한은 88.8%였다. #

그러나 정치적 시류와 현상에 따라서 민간적인 차원은 몰라도 국가적으로는 변동이 좀 있는 편이다. 아베-시진핑, 정상회담 '밀착' 강조…"새로운 중일관계 구축"(종합) 중국 "'포스트 아베' 시대 중일 관계 불확실성 확대" 우려

2. 역사

현재는 매우 험악한 관계로 보이지만 처음부터 일본이랑 중국이 사이가 나쁜 관계는 아니었다. 고대에 일본은 중국의 문물을 흠모하고 잘 받아들였으며, 그 증거로 견당사가 여러 차례 당나라를 방문하고 송나라다이라노 기요모리 정권과 밀접한 무역을 해왔었다. 명나라 초기에는 일본의 해적질에 분개하여 교류를 전면 중단했지만, 동아시아 최대국인 명나라가 강경한 태도를 취하자 겁을 먹은 무로마치 막부가 명나라에게 사죄하고 해적들을 처벌함과 동시에 교류 청원을 요청하였고 명나라는 이것을 받아들여 다시 활발한 교류를 했다.

현재에도 일본은 중국의 시장을 결코 무시할 수가 없는데, 중국 시장의 의존도도 높아지고 있고 양국의 경제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으며, 이 때문에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피하려 하는 경향이 보인다.[3] 이 것은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문화적으로도 한국보다도 친밀한 면이 있는데 교자, 부추 볶음을 비롯한 중국 요리가 일본인들 사이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으며 일본에서 유학하는 중국인 유학생도 많다. 일본의 서브 컬처에서도 한국인 캐릭터는 적어도 중국인 캐릭터는 예나 지금이나 꽤 보이는 편인데다 삼국지, 수호전, 서유기, 중국 신화, 중국무술 등 중국 문화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니.

중국과 일본의 첫 전쟁은 삼국시대 일본이 나당연합군에 멸망되어가는 백제에 원군을 보냄으로 터졌다. 여기서 당나라 군대가 일본군을 무찔러버리게 되었고, 곧 백제가 결국 멸망하게 된다.(백강 전투) 그리고 원나라여몽연합군으로 일본을 공격했는데, 이것은 일본에게 역사상 처음 있었던 외적의 공격이었다. 점령된 지역은 초토화가 되어 일본에서는 모쿠리(몽골)와 고쿠리(고려)가 온다고 하면 어린 아이도 울음을 그친다고 알려질 정도로 충격과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이것이 일본이 처음으로 중국을 적으로 보게 된 계기가 되었으며, 중국에 대한 승전에 도취된 나머지 중국에 대한 응징 겸 정복을 위해 고려원정을 준비하려고 하였으나, 어른의 사정으로 인하여 실패했다.

세월이 흘러서 일본은 대륙을 다시 넘보고, 임진왜란을 일으켜서 조선을 정복하고 그 다음 방향을 대륙으로 넘보려고 했었지만, 조명연합군의 활약으로 인해 일본의 꿈은 실패했다. 다시 몇 백 년 세월이 흘러 아시아 최초로 근대화를 달성한 후, 중국을 바라봤다. 중국은 근대화를 제대로 하지 못 하여 다른 서구 열강들에게 굴욕을 당하는 중이었다. 일본은 그런 중국과 전쟁하여 승리하였다. 그리고 1930년대 일본 제국의 목표 중에 중국 대륙의 정복이 있었고, 그로 인해 중일전쟁이 일본의 침략으로 발생했다.

그러나 광대한 영토와 인구를 가진 중국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고, 연합국의 멤버가 되어서 일본에 맞서게 되면서 오히려 점점 전쟁이 길어지고 미국과의 태평양 전쟁에서 패색은 일본 측에게 기울다가 결국 일본이 미국에게 패하면서, 중국은 일본의 침략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2차 대전 이후 냉전 정세에서, 신중국은 마오쩌둥과 공산정부의 실책(제사해 운동, 문혁 등)으로 나라가 혼란에 빠지고 경제도 정체되었으나 일본은 미국을 위시한 제1세계에 편입되어 착실하게 경제 성장을 하고 국력이 커지고 있었다.

3. 중일대립으로 인한 반중감정

21세기에 들어서는 중국이 점차 강대국으로 부활함에 따라 빠른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패권을 휘두르며 일본을 제치기 시작하고, 일본은 국력이 정체되어 우경화가 진행되기 시작하자 점점 갈등의 씨앗이 커졌다.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 대한 영유권 분쟁이 격화되면서 특히 일본 반중파들을 중심으로 반중 및 혐중감정이 생겼다.[4]

이들은 중국은 남의 땅 차지하려 하지 마라, 중국인들은 대륙도 큰 주제에 뭐가 모자라서 땅을 먹느냐고 조롱하고 비판하기도 하였다. 그러자 중국에서는 과거 일본 제국의 전쟁 범죄 등을 널리 퍼뜨리는 식으로 대응하였다. 이에 맞서 일본에서는 가끔 티베트, 위구르 소수민족과 대만 독립파들과 같이 합류하여 중국 정부의 문제점을 들춰내어 시위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홍콩 우산 혁명 당시 일본의 반중 성향 인물들이 여기에 동조하기도 했다.

2019년 조사에서도 일본인의 80%가 시진핑을 못 믿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

4. 센카쿠 열도 분쟁으로 인한 반중감정

2012년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 및 국유화 논란으로 중국과 중국인들 사이에 혐일 감정이 발생하였고, 중국인들은 일본을 왜노라고 비하하는 것도 모자라, 중국 내에 있는 일본 대사관과 기업 등을 공격하고 일본인 관광객까지 마구 위협, 폭행하였다. 이에 질세라 일본인들도 중국은 미개하고 야만적인 나라라고 욕하고 조롱하였다.

일본인들은 중국에 적대심을 드러내며 반중시위를 벌였고, 중국 정부에 대해서도 센카쿠를 돌려내고 자국민에게 피해를 입힌 것에 대해서 사과하라는 요구를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센카쿠 열도에 오성홍기청천백일만지홍기를 꽂고 일본을 마구 비난하는 중국인들을 체포하자, 역으로 중국은 희토류 원소를 일본에 수출 전면 금지라는 조치를 취하였다.
이에 경제적으로 피해를 입은 일본은 중국 내에 있는 자국 기업들을 철수시켜 동남아 등지로 옮겼다. 그리고 중국의 조치는 일본에 반중감정이 커지는 역효과를 낳게 되었다. 게다가 일본이 이를 갈고 미국으로부터 희토류 원소 개발 기술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고,[5] 또 자기네들만의 대체 기술을 개발하였다. 또한 일본 앞바다에서 전 인류가 수백년동안 사용할 수 있는 대량의 희토류가 매장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5. 누그러진 반중?

2018년 들어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양국간 관계 개선의 분위기와 문재인 대통령의 반일정책의 반사이익을 얻으면서 과거보다 중국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높아졌으며 코로나19가 퍼지기 전까지는 한국인보다 선호도가 높을 정도로 매우 좋아졌다.[6]

2018년 10월 시진핑 중국 주석리커창 중국 총리, 왕치산 부주석 등이 아베 신조 총리를 초청하였다. 기사1 기사2 전격적으로 경제협력을 하고, 중-일간 무역분쟁의 타협, 그리고 미국의 자유무역 지대 복귀를 공동으로 촉구하는 등 일본-중국 중일관계 개선에 나아갔다.

이후 일-중 베이징 공동선언[7]에서는 일대일로 사업에 대한 일본 기업들의 전면 참여 허용, 중국-일본 공동 인프라 투자펀드 1조 달러 어치 창설, 한화 20조원에 상당하는 기업협력, 중국인민은행일본은행기존의 10배인 한화 35조 원 상당(3조 4000억 엔)통화스와프 협정 체결이 이뤄졌다. 양측의 경제 규모를 생각하면 조족지혈이나 서로 필요에 따라선 얼마든지 협력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

미국이 이탈하여 일본만이 대형 국가로 남게 된 TPP중국참여를 검토 한다는 소식도 들려서 충공깽을 안겨주었다. TPP의 의도가 팽창하는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의도임을 생각하면 주객이 전도된 상황.

이 때문에 수상한 중일 밀월이라거나, 아베의 친중행보가 트럼프의 분노를 일으킬 수 있다, 대만까지 이번 중일회담을 경계하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적잖히 있다. 트럼프가 현재 중국에 대해 강경한 외교 자세를 나선 상황에서 이는 대놓고 찬물을 끼얹은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일본의 일대일로 사업 참여에도 논란이 많은데 일대일로는 중국에서 홍보해대는 것 처럼 단순한 경제 전략이 아니다. 실제로 한국내에서도 참여해서 중국과의 관계를 좀 우호적으로 다지고 공사 참여등으로 이득을 좀 볼수도 있지 않냐는 일부 의견이 나왔지만 일대일로 저게 미국에게 무슨 의미인지 생각은 하고 사냐는 매서운 비판들이 쏟아졌다. 유럽에서도 초창기 이에 동참하는 듯 했다가 이후 일대일로가 대놓고 중국만의 이득을 추구하자 반응이 다시 차가워졌다.[8]

게다가 도쿄 15구의 아키모토 쓰카사 자민당 중의원이 카지노 유치를 위한 중국 기업의 관계자가 거액의 현금을 해외에서 불법으로 들어오게 하는 외환법 위반 사건이 터지면서 다시 반중 감정이 커질 수 있는 상황이다.

일단 2021년 현재까지의 자료를 바탕으로 판단해보면, 반중 및 혐중 정서는 누그러졌다고 표현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여전히 강하다. 2020년 10월의 일본에서 중국이 unfavorable 하다는 응답은 86%이며, favorable 하다는 응답은 9%에 그쳤다. 코로나 때문에 전세계에 혐중과 반중이 퍼져있기 때문에 이것이 일본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가 하고 볼 수도 있겠지만, 코로나가 퍼지기 전 2019년도에서도, 일본의 중국에 대한 비호감도는 85%에 달했다. [9]

자료를 종합해 보았을 때 세계에서 가장 중국에 적대적인 국가는 일본으로, 이는 근래에 일관적으로 보여지는 성향이다. 누그러졌다고 표현하기엔, 중국은 언제나 일관적으로 일본에게 있어서 비호감의 대상이었던 셈. 앞의 "매우 좋아졌다" 식의 서술은 나무위키 내의 모든 정보가 그렇듯이, 딱히 신빙성이 있는 서술은 아니니 알아서 자료와 정보를 찾아서 걸러서 보도록 하자.

아베가 사퇴하고 새로 수립된 스가 내각에서는 딱히 관계 진전이 없었고, 다시 기시다 내각으로 총리가 바뀌었으므로 기시다 신임 총리의 대중외교를 다시금 지켜봐야 한다.

그러나 중국에서 개최한 올림픽에서 스키점프 혼성 단체전 경기 중 다카나시 사라가 유니폼 규정 위반했다는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오스트리아, 독일, 노르웨이 선수들과 함께 실격을 받는 피해를 입었다. 기사 참조. 일본 국민들은 반중 감정을 또다시 일으키게 되었다.


[1] 한국에도 같은 맥락으로 일본이 싫긴 하지만 그래도 일본과 연합해 중국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2] 특히 냉전 시기의 구우익 성향을 가진 인물들이 이런 주장을 한다.[3] 실제로 현재 일본의 최대 무역 상대국은 중국이다.[4] 애초에 혐한초딩이란 말은 있어도 혐중초딩이란 말은 잘 안 쓴다. '혐'이라는 단어 자체가 '좋아하는'의 반의어 성격이 강하다. 즉 좋아하는 부류가 있으니까 '혐오'하는 부류도 있는 거다. 심지어 한국을 좋아하는 일본인들과 좌파들도 중국만큼은 경기가 날 정도로 매우 싫어하니 말 다 했다. 애초부터 친한파 및 좌파 성향, 심지어 상당수의 우파 성향도 포함한 많은 일본인들이 한국을 좋아하거나 한국과의 협력을 주장하는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중국, 북한은 모두 공산권이고, 대만은 자유권이긴 하지만 중국 때문에 외교는커녕 정식 국가 승인도 받지 못하고 있는 미승인국으로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을 제외하고 유일한 서방 국가인 한국과 연합하여 중국을 견제해 나가자는 의도' 때문이다. 거기다 특히 일본의 진보/좌파 계열들이 중국에 비판적인 이유는, 일본 제국주의만 욕할 게 아니라 2차 대전에서 승리한 후 다시 아시아 패권을 얻어낸 중국이 현재까지 타국에 휘두르는 패권주의적 행동으로 타국들이 괴로움을 겪는다는 점이 주 원인이다. 일본이야 G7 강대국에 속하니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중이지만,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게 중국이 휘두르는 패권은 그 국가들에게서 반중 감정을 심어주며 더더욱 서방세계에 붙게 되는 원인이 된다.[5] 원래 미국이 세계 최초로 희토류 원소 개발 산업에 뛰어들었지만 환경문제로 미국이 희토류 원소 개발을 중지했던 것이다.[6] 일명 차이나 머니인 중국인 대규모 관광객들이 한국인보다 많이 몰려왔다. 적절한 소비를 하는 한국인들과 달리 중국인들은 들리는 상점가에 있는 비싼 상품을 다 쓸어갔으며 토비타신치 같은 일본 뒷세계 사업에도 머니파워를 선보일 정도였으니, 이들 입장에서는 중국인은 그야말로 걸어다니는 돈다발이나 다름없었다.[7] 중국 측에서 전격적으로 공동선언문에서 나 먼저 원리가 아닌 일본을 앞에 쓰는 것을 허용했다. 중화사상으로 무장한 자존심 쩌는 중국이 저러는 건 보기 드문 일이다.[8] 왜냐하면 일대일로는 추진과정에서 국제 기준들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일방적 추진이 이뤄지고 있는데다 친중 국가 중심의 국제 질서 개편의 의도가 있다고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다.[9] 이에 대한 자세한 자료는 혐중 문서의 자료를 참고하길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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